남자는 대학 시절,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교련 과목에 대한 반대 운동을 하다 당국에 검거되어 자퇴를 강요받았다. 학교를 그만 두고 무얼 할까 생각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극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걸로는 먹고 살 방도가 안될 것 같았다. 영화를 하면 밥은 먹고 살겠지 싶은 마음이 들어서 영화사에 들어갔다.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그는 종전 후에는 도호 영화사에서 인정받는 감독이 된다. 그러나 공산당원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그는 미군정 하에서 뜻밖의 시련을 겪는다. 도호 제작사는 사회주의 영화인들의 노조와 충돌한다. 이른바 '도호 쟁의'라고 불리는 그 사건으로 영화사를 나와야 했다. 빙수 장사를 했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마침 영화사에서 분쟁 보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영화를 한 편 찍는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그 돈을 가지고 제작사를 차린다. 감독 야마모토 사츠오의 이야기다. 그에게 제 2의 영화 인생을 열어준 작품은 '폭력의 거리(暴力の街, 1950)'였다.

  영화는 '도조'라는 소도시에서 벌어진 부정부패 사건을 다룬다. 도조로 발령받은 신참 기자 키타는 지역 유지 오니시와 경찰, 검찰 간부의 유착 관계를 알게 된다. 오니시는 직물 공장을 소유하고 있는데, 암거래로 물건을 빼돌려 큰 돈을 벌고 있다. 관공서 뿐만 아니라 야쿠자와도 결탁한 오니시는 도시의 권력자로 군림하며 온갖 횡포를 부린다. 키타가 오니시에 대한 고발 기사를 내자, 앙심을 품은 오니시는 검찰 신청사 개관식에서 키타를 폭행한다. 키타는 굴하지 않고 그에 맞서 신문사의 동료들과 함께 도조 시에서 벌어지는 불의를 기사로 써낸다. 그들의 뜻에 동참한 시민들은 범죄 추방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오니시와 야쿠자, 부패한 경찰과 관리들은 회유와 협박으로, 나중에는 폭력을 휘두르며 저항한다. 과연 도조 시에 정의는 실현될 수 있을까?

  '폭력의 거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극영화임에도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마치 뉴스 보도 화면처럼 중간 중간 내레이터가 사건의 개요를 설명해 준다. 기자들이 써내는 기사들은 몽타주 기법으로, 야쿠자들이 과거에 저지른 폭력과 범죄 행위는 재연 장면으로 제시된다. 재미있는 장면도 있는데, 신문사 편집장이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들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부분이다. 야마모토 사츠오 감독은 등장한 인물들의 얼굴 위에 커다란 흰색의 가위표(믿을 수 없음)와 세모(판단 유보)로 표시해 놓는다. 그런가 하면, 나중에 시민들이 주최한 대규모 집회는 시네마 베리테(Cinema Verite)를 연상케 한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에게 직접 마이크를 주면서 의견을 말하게 하는 장면은 영화에 사실성을 더한다(물론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이들은 출연 배우들이다). 이것은 영화의 끝부분에 실제로 도시에서 개최된 마츠리 촬영분을 넣은 것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 영화를 '재미'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당시에 어떻게 크게 흥행했는지 그다지 납득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밋밋하고, 서사는 극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재미' 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진실'이었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1948년에 있었던 '혼조 사건'이 그것이다. 아사히 신문기자가 사이타마 현 혼조 시의 부정부패와 폭력 범죄 사건을 취재하면서 겪은 것을 1949년에 책으로 펴냈다. 그리고 '폭력의 거리'는 사건의 그 도시 혼조에서, 주민들의 협조를 받으면서 촬영되었다. 1950년까지도 혼조의 상황은 안정되지 못한 상태였다. 영화 제작은 야쿠자들의 방해를 받는 가운데에서 강행되었다. 그러니까 영화 속 집회 장면의 사람들은 동원된 엑스트라들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온 실제 주민들이었다. '폭력의 거리'의 사실성은 그런 상황에서 획득한 것이었다.

  '폭력의 거리'는 종전 후, 공권력 부재의 상황에서 토호와 범죄조직이 결탁한 소도시의 비극을 그려냈다. 미군정 하의 일본 사회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혼조 사건'은 일본 정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화에는 GHQ(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GHQ가 개입하고 나서야 사건이 대강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 영화가 상영이 되자, 경찰을 비롯한 관료 조직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겉으로는 영화가 시민들의 공권력 불신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그 속내는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냈다는 데에 대한 열패감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실은 당시 일본의 공권력과 관료 조직이 진정으로 자정 능력이 있었는가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던진다. 부패한 사업가와 야쿠자들은 자리를 잃지 않았다. 미군정 하에서 좌익 세력과 공산주의자 색출의 선봉에 선 야쿠자들은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포착한다. 영화의 결말에서 시민들이 거둔 승리가 불완전하고 잠정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근절되지 못한 범죄와 폭력의 뿌리는 이후 일본 사회에 단단히 자리잡게 된다.



*사진 출처: 100satsuoyamamoto.com



**다음 글은 월요일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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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꽤나 단조롭고 지루하다. 그러나 영화가 마침내 끝났을 때 어떤 감정의 파고가 밀려왔다. 그것은 흥분도, 감동도 아니었다. 약간의 충격 같은 것이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마도 '이지 라이더(Easy Rider, 1969)'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것이다. 영화를 만든 감독 몬티 헬먼(Monte Hellman)도 그 점에 동의했다. '자유의 이차선(Two-Lane Blacktop, 1971)'은 '이지 라이더'의 성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영화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이지 라이더'의 아류작인가 하면 그건 분명히 아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나도 처음엔 '이지 라이더'의 마일드한 버전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영화는 자신만의 차선(lane)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의 시작은 어두운 밤, 시의 외곽에서 자동차 경주를 벌이는 장면에서부터이다. 1955년형 쉐보레를 경주용 엔진으로 개조한 차를 몰고 다니는 드라이버(제임스 테일러 분)와 정비공(데니스 윌슨 분)은 자동차 경주에 미쳐있다. 그들은 캘리포니아에서 66번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향하는 여정을 이어간다. 들르는 곳마다 자동차 경주장을 찾아 경주를 하고, 그렇게 딴 돈으로 길거리 생활을 이어간다. 그들은 우연히 만난 GTO를 모는 운전자(워렌 오티스 분)와 워싱턴 D.C.까지 경주 내기를 하게 된다. 여기에 히치 하이커 걸(로리 버드 분)이 동행한다. 가는 도중에 GTO의 차는 엔진에 문제가 생기고, 드라이버와 정비공은 돈이 떨어져 곤란을 겪는다. 이들은 가기로 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이 영화 속 인물들에는 이름이 없다. 그들은 또한 대화도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거의 나누지 않는다. GTO의 경우는 예외다. 히치 하이커들에게 관대한 그는 자신의 차를 기꺼이 제공하며,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게이, 히피, 묘지를 찾아가는 할머니와 손녀,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공허하며 아무 의미도 없다. '자유의 이차선'의 인물들은 결코 소통하지 못한다. GTO가 드라이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자, 드라이버는 듣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드라이버와 정비공은 자신들의 목적지를 묻는 이들에게 '동쪽'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목적지는 수시로 바뀐다. GTO는 히치 하이커 걸에게 원하는 어디든지 데려가 주겠다며 허세를 부린다. 멕시코도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사실 가야할 곳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삶의 방향성도 상실한 사람이다. 영화 속의 인물들은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도 없고, 삶의 목적도 의미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확실한 것은 길 위에 서있다는 것 뿐이다. 되는대로 살아가는 방랑의 삶. 도대체 그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미국의 1960년대는 격동의 시기였다. 폭발적으로 분출했던 민권 운동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것이 1960년대 말에 이르면 가중된 피로와 침체의 형태로 나타난다. 미국민들은 대외적으로는 패색이 짙어가는 베트남전을 보며 실망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국면에 처해있었다. 1971년에 이른바 '닉슨 쇼크(Nixon Shock)'라고 불리는 경제조치가 이루어진다. 금-달러 태환을 가능하게 했던 금본위제의 폐지는 달러 부도에 대한 선언이었다.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로소 미국은 달러를 무제한 찍어낼 수 있는 양적 완화를 취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그러한 경제적인 혼란과 침체는 세계 경제까지 뒤흔들었다. 미국민들의 삶의 질과 안정성은 떨어졌고, 그것은 공동체적 이상 보다는 '개인'에 대한 극명한 자각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언론인 톰 울프는 1970년대를 'Me' Decade로 규정하기도 했다.

  '자유의 이차선'에 나오는 인물들은 1960년대 반문화 운동의 결과로 나타난 '개인'을 보여준다. 그들은 미국이라는 거대 공동체적 구심점에서 이탈한 파편화된 개인들이었다. 그렇게 떨어져 나온 무수히 많은 개인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삶의 위로를 찾았다. 1970년대의 미국에서는 명상과 요가와 같은 종교 관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영화 속의 드라이버와 정비공에게 종교는 자동차였고 그것이 주는 위로는 속도였다. 거기에는 즉각적인 만족과 위험이 수반된다. 그러므로 GTO는 이런 말로 드라이버에게 경고한다.

  "언젠가 그 속도에 잡아먹히게 될 거야."

  그것은 드라이버가 도로에서 목격한 장면으로 나타난다. 그는 가다가 차 사고 현장을 보게 되는데, 거기에는 목이 부러져 죽은 시신이 있었다. 과속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 길 위의 삶의 댓가는 그렇게 참혹했다. 언젠가 드라이버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미래이기도 한 그 현장은 소멸과 망각을 상징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맞닿아 있다. 감독 몬티 헬먼은 매우 건조한 로드 무비 속에서 자신의 시대에 대한 탐구와 성찰을 보여준다. 중심에서 이탈한 개인들의 방랑과 끝없이 침잠하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1970년대 미국의 불안하고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 보게 된다.



*사진 출처: criterion.com

 


**사진 출처: paris-la.com 히치 하이커 걸을 연기한 로리 버드. 영화를 찍을 당시의 나이는 18살이었다. 로리 버드는 26살의 나이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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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부터 EBS 클래스e에서는 노문학자 석영중 선생이 강의하는 '도스토옙스키와 여행을'을 방영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창작의 근원이 되었던 도시들과 여행지, 그곳에서 쓴 작품들에 대해서 들려준다. 먼저 '죄와 벌'이 다루어졌고, 오늘로 '백치'가 끝났다. '죄와 벌'은 읽은 책이라 이해가 쉬웠는데, '백치'는 오래 전에 도입부만 읽다가 그만 둔 소설이었다. 마침 자료 화면으로 나오는 영화가 1958년에 제작된 동명의 영화라서 찾아서 보았다. 꽤 두꺼운 이 소설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 영화, 소설의 중간 부분에서 끝나버린다...

  원래 영화 '백치'는 2편으로 기획되었는데, 배우들의 일정이나 여러 문제 때문에 감독 이반 피리예프가 후속편을 찍는 것을 포기했다. 국영 영화사 Mosfilm에서도 별다른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던 모양인지 영화는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뒷부분이 궁금하면 소설을 읽든가, 아니면 나중에 TV 시리즈로 제작된 것을 찾아서 보아야 한다.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들을 볼 때 거는 기대는 이런 것이다. 길고 두꺼운 소설을 짧은 시간에 이해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소설 속의 인물과 사건을 재현된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경우 그런 기대들은 완벽하게 충족되기 어렵다. 아니, 완벽은 커녕 소설과 영화 사이의 괴리를 절실히 느끼는 데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이 '백치'를 영화로 본다고 해서 원작 소설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도스토옙스키의 경우, 그의 복잡하고 긴 소설에는 작가의 사상을 대변하는 인물들의 열변과 생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인물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사건들이 주가 된 영화로 그의 소설에 접근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 때문에 나는 영화 '백치'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소설의 영화화는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지며, 그 결과물은 소설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마거릿 미첼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빅터 플레밍 감독의 1939년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한번 보자. 영화는 남북 전쟁을 배경으로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 애쉴리 윌크스의 애증에 찬 세월을 보여주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원작 소설에서 묘사된 남북 전쟁 전의 남부의 상황, 전쟁의 발발, 전후의 재건에 이르는 세부적 역사는 생략되어 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영화로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이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멋진 배우들과 화려한 세트, 유려한 영화 음악(이 영화의 타라의 테마는 유명하다)이 전부다.

  이것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닥터 지바고(1965)'는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의 모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원작 소설이 가진 깊은 사유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러시아 혁명에 이은 내전, 공산 정권의 수립이라는 역사적 상황이 주인공들의 상황과 맞물려 펼쳐지는데, 영화는 그런 배경을 과감하게 생략했다. 심지어 인물들에 대한 묘사도 축약되어 있다. 영화 초반부에 라라와 코마로프스키의 내연 관계가 애매하게 제시되는 것과 달리, 소설은 라라와 모친과의 사이에서 그가 가진 영향력을 잘 알 수 있다. 적군과 백군으로 대립해서 싸운 러시아 내전의 상황이라던가 지바고가 쓴 시들도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오마 샤리프와 줄리 크리스티, 알렉 기네스가 펼치는 명연기, 눈부신 설원의 풍경, 그리고 라라의 테마로 유명한 모리스 자르의 음악이 영화 '닥터 지바고'에 있다.

  결국 그런 영화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문학과 영화의 근원적 괴리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 또는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들에서 원작 텍스트에 대한 이해없이 영화를 비평하는 행위는 무모한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내가 소설 '백치'를 읽지 않고 영화 '백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적인 부분에 대해서이다. 주로 풀쇼트와 미디엄 쇼트로 제시된, 인물들의 대사와 표정 연기가 주가 되는 드라마라고 밖에는 말할 것이 없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원작 텍스트와 따로 분리된 '영화'라는 텍스트가 완벽한 형태로 존재하며, 그것을 가지고 비평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에서 기인한다. 문학 작품을 영화화한 경우, 적어도 번역된 저작물이 있다면 그걸 읽어 보고 나서 영화에 대해 분석하는 것이 비평의 기본 자세라는 생각을 늘 한다. 어떤 면에서 1958년작 영화 '백치'는 문학과 영화의 관계에 대한 은유적 텍스트인지도 모른다. 결코 만들어지지 못한 후속편은 영화가 소설의 절반 정도만을 이해할 수 있는, 비어있고 상상의 가능성을 남기는 다른 차원의 결과물임을 상기시키는듯 하다.  



*사진 출처: ru.kinori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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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중력을 무시한 쇼트로부터 시작한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카메라가 풍경을 훑어 내려간다. 소년은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온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첫 장편 영화 '이반의 어린 시절(Ivan's Childhood, 1962)'의 도입부이다. 원래 이 영화는 찍기로 한 감독이 따로 있었다. 러시아 국영 영화사 Mosfilm은 소속 신인 감독 에두아드르 아발로프에게 영화를 배정했다. 그런데 이 감독의 초반 촬영분을 보고서 도저히 그대로 진행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타르코프스키는 대안으로 급조된 감독이었다. 기존의 촬영분은 모두 폐기되었다. 29살의 타르코프스키는 그렇게 자신의 첫 영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이후 그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여러 중요한 요소들, 어쩌면 그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단서들이 짜임새있게 배치되어 있다.

  영화의 배경은 2차 대전, 독일과 접전을 벌이는 국경 지대이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교회는 군 주둔지가 되었다. 갈체프 중위는 피폐한 몰골의 소년을 데려왔다는 사병의 보고를 듣는다. 소년은 무조건 본부와의 교신을 요구한다. 갈체프는 곧 이 소년의 이름이 이반 본다레프이며, 정찰 척후병으로 복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이반을 본부의 콜린 대위는 후방의 군사학교로 보내려고 하지만, 소년은 그 결정을 거부한다. 독일군에 의해 가족이 희생된 이 소년은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다. 이반은 갈체프와 함께 지내면서 조금씩 마음을 터놓게 된다. 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Stalker, 1979)'에서 영화를 지배하던 물 떨어지는 소리를 여기서도 들을 수 있다. 이반이 머무는 갈체프의 방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물방울 소리, 그 소리와 함께 관객은 이반이 거울 속에 비친 갈체프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게 된다. 물 소리, 거울 덕후인 타르코프스키의 시작은 이러했다.

  '물'에 대한 타르코프스키의 사랑은 강박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이반이 꿈을 꾸는 장면에서 보이는 우물가에는 어머니가 서있다. 이 영화 속에서 현실과 꿈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의 물의 의미는 너무도 다채로워서 어느 하나의 의미로 규정할 수 없다. 이반이 꾸는 또 다른 꿈에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는 이반과 어린 여동생이 나온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보여지는 회상의 장면에서 이반은 얕은 해변가를 여동생과 함께 가로질러 간다. 관객은 이제 이 감독의 '물 사랑'을 그의 전 작품에서 목격하게 될 터였다.

  타르코프스키가 그토록 좋아하는 '그림' 사랑도 엿볼 수 있다. 갈체프는 이반이 심심할까봐 자신이 독일군에게서 압수한 그림책들을 보여준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목판 연작 '요한묵시록'의 그림들이다. 지옥을 연상케 하는 무시무시한 그림들은 이반에게 자신이 겪은 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상기시킨다. 폐허가 된 교회의 십자가와 벽에 보이는 이콘(ikon)들은 타르코프스키가 1966년에 만들게 될 '안드레이 류블료프(Andrey Rublyov)'의 예고편처럼 보인다. 이런 그림에 대한 타르코프스키의 애정은 사실 그가 겪은 전쟁의 경험에서 기인했다. 전쟁 시기, 그와 가족은 모스크바의 빈집들을 전전하며 지냈다. 버려진 부유한 주택가에는 엄청나게 많은 화첩들이 있었고, 그 그림들이 타르코프스키의 정신 세계를 채웠다.

  물과 함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에서 보이는 수직 이미지가 '이반의 어린 시절'에서는 콜린과 간호 장교 마샤의 대화장면에서 등장한다. 빽빽하게 들어찬 자작나무들의 숲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속내를 들여다 본다. 비껴가는 대답들과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사랑의 감정은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 명확하게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 감독은 자신이 만드는 영화 안에서 될 수 있는대로 의미를 숨기는 것을 영화 철학으로 삼았다. 그 숨겨진 의미들은 그가 보여주는 이미지들 안에 자리한다. 영화의 이미지로 시를 써내려가는 시인이자 영화 감독의 탄생은 바로 이 영화에서부터이다.

  '이반의 어린 시절'은 전쟁의 참혹함을 그려내고 있음에도 관객은 슬픔의 감정과 함께 기이한 평온함과 마주하게 된다. 아마도 후자의 감정은 전쟁 이전의 이반의 기억들이 펼쳐지는 꿈의 이미지들에서 유래하는 잔향일 것이다. 시인이자 번역가였던 부친의 재능을 물려받은 타르코프스키는 문장이 아닌 이미지의 시들로 자신의 생을 채워나갔다. '이반의 어린 시절'은 그런 그의 예술적 첫 걸음인 동시에 영화사적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업들을 통해 이제 영화는 이미지로 구현되는 정교한 예술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동시대를 비롯해 후대의 많은 영화인들이 그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반의 어린 시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해변가의 고목은 그가 만들어갈 새로운 영화사적 흐름에 대한 이정표처럼 보인다.   



*사진 출처: zagonka.ru  이반 역의 니콜라이 부를리야예프. 타르코프스키는 1973년의 회고록에서 니콜라이의 연기가 너무 가식적이고 과장되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썼다. 그러나 자신의 첫 영화가 가지는 의미를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사진 출처: levelvan.ru  '이반의 어린 시절' 해변가 촬영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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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도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있을까? 우리가 '명화'라고 부르는 영화들은 아마도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매번 새롭게 갱신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명화와는 반대로 잊혀지는 영화도 있다. 작품성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고, 원래 가진 가치보다 저평가된 경우도 있다. 때론 세월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관객들과 평론가들에게 잊혀지는 영화들을 보면서 그 유통기한을 가늠해 보곤 한다.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1992년작 '막을 올려라(Noises Off)'도 어쩌면 그렇게 잊혀지는 영화인지 모르겠다. 1982년에 영국의 작가 마이클 프레인이 쓴 동명의 희곡을 각색해서 만든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 비평가들의 외면을 받았다.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라스트 픽처 쇼(The Last Picture Show, 1971)', '페이퍼 문(Paper Moon, 1973)'으로 1970년대 미국 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가 만든 영화들은 흥행에 연달아 실패하면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이 영화 '막을 올려라'도 그 쓸쓸한 영화 경력의 후반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렇다면 '막을 올려라'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영화인가?

  연극 연출가 로이드(마이클 케인 분)는 'Nothing On'이라는 연극 상연을 준비하는 중이다. 촉박한 시한 때문에 테크니컬 리허설(음향과 조명, 배우들의 동선을 점검하는 리허설)을 생략하고 곧바로 드레스 리허설(공연 전 최종 리허설)에 들어간 배우들의 공연 준비는 삐걱거린다. 여배우 도티는 중요한 소품인 정어리(sardine,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읊어지는 단어다)와 신문을 자꾸 빼놓고 연기하는 문제로 로이드의 지적을 받는다. 도티가 맡은 역은 가정부로 주인 내외가 여행으로 집을 비운 사이에 혼자 시간을 보내려고 주인집에 와있다. 여기에 부동산 업자가 자신의 여자 친구와 들어오는데, 여행을 떠났다던 주인 내외도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 와중에 도둑까지 든다. 이들 극중극의 인물들은 서로가 집에 있는지 모르고 있는 상태이다. 그들은 여러 방을 드나들면서 절묘하게 만남을 피하다가 결국에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발되는 웃음이 'Nothing On'의 핵심이다.

  어렵사리 리허설을 마치고 마침내 오프닝 나이트 날, 로이드의 우려와는 달리 연극은 성공적인 초연을 한다. 이것이 1막이다. 2막의 배경은 순회 공연이 펼쳐지는 플로리다로 배우들의 극심한 갈등 때문에 혼란스러운 무대 뒷편을 보여준다. 3막의 클리블렌드에서는 꼬일대로 꼬여버린 배우들의 관계 속에 각자 제멋대로 대사를 하고 연기하는 엉망진창의 무대 공연 장면이다. 연극이 이렇게 되어버린 데에는 배우들이 서로 연애하는 과정에서 사랑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연상의 여배우 도티와 연인 사이였던 게리는 도티가 프레데릭(크리스토퍼 리브 분)과 사귀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연극을 하는 도중에 골탕을 먹인다. 그런가 하면 연출가 로이드는 조연출 포피와 출연 배우 브룩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도둑 역으로 나오는 알콜 중독자인 노배우 셀스던은 소품으로 쓰이는 술에 눈독을 들이느라 동선과 대사를 까먹는다. 이들의 갈등은 연극을 진창 속에 빠져들게 만들지만, 영화의 관객에게는 포복절도할 슬랩스틱을 선사한다.

  '막을 올려라'를 보는 것은 꽤나 즐겁다. 보그다노비치가 '니켈로데온(Nickelodeon, 1976)'에서 보여주었던 독창적인 유머감각을 이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교하게 짜여진 슬랩스틱, 그것이 유발하는 웃음을 담아내기 위해 잘 활용된 롱테이크, 적절한 편집, 배우들의 재치있고 뛰어난 연기, 그 모든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았던 이유는 토니상을 여러 번 수상했던 원작 연극의 성공에 원인이 있었다. 연극을 본 이들은 영화가 원작의 본질을 되살리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거기에다 원작자 마이클 프레인은 희곡을 영화화 하는 과정에서 수정되고 덧붙여진 시나리오에 극심한 반감을 표현했다. 또 다른 비판으로는 원작 희곡이 영국식 영어와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데, 그 모든 것이 '미국식'으로 '미국 배우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불평이었다. 연출가 역의 마이클 케인과 술꾼 배우 역으로 나온 덴홀름 엘리엇, 이 두 명의 영국 배우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처럼 연극을 못 본 관객의 입장에서는 정말 재미있는 영화이지만, 연극팬들에게는 '막을 올려라'가 연극에 비해 수준미달로 여겨졌던 것 같다. 원작 희곡이 어떤가 싶어서 영문 대본을 찾아봤는데, 무려 150쪽이 넘는 꽤 긴 분량이었다. 무척 길고 복잡한 내용의 희곡을 이 영화보다 얼마나 더 잘만들어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영화는 '웃음'에만 촛점을 둔 나머지, 캐릭터들간의 관계 설정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단점을 갖고 있기는 하다. 거기에다 저속한 '화장실 유머(toilet humor)'가 나온다는 점도 이 영화의 평판에 좋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막을 올려라'는 경박스럽고, 연극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혹평을 받으면서 흥행에서도 실패했다. 보그다노비치에게는 이후 영화 경력의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영어 제목 'Noises Off'는 연극 용어에서 따온 것이다. 연극 상연시 필요한 효과음을 무대 밖 offstage에서 틀어주는데, 그것을 지시하는 용어가 'noises off'이다. '막을 올려라'의 극중극의 배우들은 원래 정해진 대사와 연출, 효과음은 죄다 무시하고 자신들 멋대로 공연하게 된다. 그 제멋대로의 공연은 결국 관객에게 큰 박수를 받는다. 나는 그 배우들처럼 보그다노비치의 유쾌한 일탈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유통기한이 좀 더 길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토록 재미있는 영화가 잊혀지기 보다는, 좀 더 오래 관객의 곁에 머무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사진 출처: movieforum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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