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천둥의 시대 - 미국의 서부 정복과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
햄프턴 시드 지음, 홍한별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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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는 이 사람의 이름을 기념하는 곳이 꽤 많다. 도로에서부터 산, 국립공원, 육군 기지에도 붙어있으며 네바다 주는 주도(州都)를 그의 도시(Carson City)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평생동안 읽거나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미국 전역에 퍼졌고, 생전에 그의 모험담을 묘사한 싸구려 소설책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책 속의 그 남자를 용맹함과 지혜로움, 개척과 도전 정신의 화신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유명한 정치인도, 정식으로 군에 복무한 군인도 아니었다. 비버 가죽과 모피를 팔던 상인에서 탐험가의 길잡이가 되었고, 자신이 습득한 미개척지의 해박한 정보를 바탕으로 군대의 참모로 맹활약했다. 미국의 서부 개척사에서 이 사람의 이름을 빼버린다면 그것은 그 역사의 거의 전부를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미국이 뉴멕시코를 습득한 미국-멕시코 전쟁, 나바호 인디언들과의 전투, 남북 전쟁에 이르기까지 그의 활약은 그야말로 종횡무진이었다. 그의 이름을 콜로라도,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일대의 지명에서 꽤 자주 볼 수 있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키트 카슨(Kit Carson), 햄튼 사이즈가 쓴 '피와 천둥의 시대'는 그의 이야기와 함께 미국 서부 개척시대를 조망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은 카슨은 계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16살에 집을 떠난 그는 말안장 가게의 견습생 일을 하다가 그만 두고 모피 사냥꾼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당시에 비버를 잡아서 그 가죽을 파는 일은 꽤나 큰 돈벌이가 되었다. 사냥꾼과 상인으로 활동하면서 카슨은 험한 오지와 산의 지리에 익숙해진다. 모피 무역이 시들해질 무렵, 그는 미국의 정치인이며 탐험가인 존 프리몬트(John Charles Fremont)의 측량 탐사 여행에 동행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본격적으로 발휘한다. 프리몬트 트레일(Fremont Trail)은 카슨의 도움으로 만든 탐험로였다. 카슨은 서부의 산과 지형에 정통한 사람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무엇보다 그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은 인디언들과의 전투였다. 그가 인디언들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를 쟁취했는지, 패배자에게 어떤 치욕을 안겨주었는지에 대한 무용담이 대중에 퍼져나갔고, 그는 오늘날로 치면 유명인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었다. 정식 군인도 아니었으면서 장군의 참모로 중요한 조언을 했고, 무수히 많은 전투를 치뤘다. 그 대부분은 나바호 인디언들과의 전투였다. 그와 미국 군대에게는 전투였지만, 나바호 인디언들에게는 절멸에 이르는 비극의 여정이었다.

  '피와 천둥의 시대'는 카슨의 일생에 등장하는 미국 역사의 여러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가 함께 나온다. 미국-멕시코 전쟁을 지휘했던 스티븐 커니 장군, 남북 전쟁을 치룬 북군의 셔먼 장군, 나바호 인디언들과의 전투로 그들을 몰살의 위기로 몰아넣은 칼턴 준장에 이르기까지 카슨은 그들의 주요한 여정에 함께 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카슨이 남부 출신(노스 캐롤라이나)으로 자신의 처가(세 번째 부인은 뉴멕시코의 히스패닉 출신이었다)를 비롯해 남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에도 북군으로 참전했다는 것이다. 카슨이 노예 해방을 내건 공화당의 정치 신념에 동참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자신도 노예 소유주였고, 그에게는 그런 정치적 대의 보다는 현실적 판단이 우선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북군은 승리했고, 카슨의 판단은 옳았다. 그는 언제나 승리자의 편에 서있었다.

  모피 사냥꾼으로 시작한 그의 직업적 이력에서부터 인디언들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았다. 카슨에게 인디언들은 적이기도 했지만, 때론 동지이기도 했다. 사업의 파트너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인디언 부족들과의 관계에서 그는 인디언들의 문화의 관습에도 정통하게 되었다. 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부인은 인디언 여성이었다. 그는 비록 자서전에서 의도적으로 그 부인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가 적어도 인디언에 대한 맹목적인 적대감으로 가득찬 인물은 아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인디언에 대한 이해와 지식은 인디언 부족, 특히 나바호족의 비극적 미래와 이어졌다. 서부 개척 시대에 미국 군대가 인디언들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 것은 단지 군사력뿐만이 아니었다. 거친 오지의 전투에 있어 카슨과 같은 협력자의 도움은 매우 절실한 것이었다.

  뉴멕시코가 미국의 영토로 편입된 이후 나바호 인디언들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그 땅이 멕시코의 것이었을 때에도 나바호족은 그곳 거주민인 히스패닉들을 비롯해 이웃 부족 아파치족과 잦은 무력 충돌을 일으켰다. 땅과 가축을 두고 벌이는 생존의 싸움이었고, 그것은 그곳이 미국 땅이 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패배로 점철된 학살의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인디언들에 대한 병적인 증오를 가진 칼턴 준장은 나바호족들에게는 지옥의 사신이었다. 물론 카슨도 그 살육극에 동참했다. 그럼에도 카슨은 나바호족의 '몰살' 보다는 '격리'라는 방식이 미국의 미래를 위해서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보호 구역(Indian Reservation)의 아이디어는 그렇게 실행되었다. 카슨은 자유롭게 흩어져 살던 나바호족을 황무지와 같은 땅에 몰아넣는 그 여정, 'Long Walk'과 정착지 Bosque Redondo에서의 비참한 삶으로 나바호족이 절멸의 위기에 처한 모든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864년에서 1868년에 이르는 그 기간 동안에 나바호족의 인구는 9000명에서 4000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미국 정부는 이주 정책의 실패를 자인했고, 나바호족에게 이전의 거주지로 돌아갈 자유를 부여하고 새로운 관리 정책을 모색하게 되었다. 

  '피와 천둥(Blood and Thunder)'은 영어 관용구로 '유혈과 폭력이 자행되는'이라는 뜻이다. 키트 카슨의 생애는 그 말과 정확히 부합했다. 저자 햄튼 사이즈는 '피와 천둥의 시대'에서 카슨을 매우 온정주의적인 시각에서 기술한다. 그는 카슨을 모험가와 탐험가, 모범적인 군인, 인디언들에게 연민을 가진 인간으로 그려낸다. '인디언 보호구역'은 나바호족에게 절멸 대신 생존을 보장해준 카슨의 인디언에 대한 성찰과 연민을 보여준다는 식이다.


  키트 카슨의 평판은 서부 개척 시대의 미국의 '영웅'에서, 1970년대에 인디언 역사와 관련된 여러 저작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무지막지한 학살자'로 급전직하했다. 그러나 그 반응이 격렬한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은 그런 흐름 속에서 카슨에 대한 수정주의적 관점에서 쓰여진, 매우 미국중심주의적인 사관으로 기술된 책이다. 어떤 면에서 미국인들에게 키트 카슨을 부정하고 폄하하는 것은 미국의 근대 역사에 대한 부정이고, 미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편향된 온정주의를 '객관성'으로 포장하는 것은 제 3자의 시선에서는 매우 불편하고 역겹게 느껴진다. 미국 서부의 원래 주인이었던 이들에게 몰살 보다는 길고 고통스러운 미래를 선사한 인물, 키트 카슨에게 주어진 학살자의 오명은 결코 탈색될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이 책의 한계는 카슨과 함께 했던 미국 군대, 그 모든 것을 계획하고 지시한 당대의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어두운 그림자를 부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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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앳된 얼굴의 소녀가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15살 와카에는 주정뱅이 아빠와 계모가 있는 집이 싫다. 밀린 공납금을 내라는 채근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여인숙을 하며 뚜쟁이 노릇을 하는 고모는 와카에를 일꾼으로 부려먹으며 게이샤로 만들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와카에를 유일하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은 착한 동네 오빠 사부로다. 21살의 사부로는 도쿄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때려치우고 고향 호쿠리쿠로 돌아왔다. 와카에의 딱한 상황에 연민을 갖게 된 사부로는 학업을 이어가라며 공납금도 보태주고 공부도 도와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직업도 없고 불안정한 처지의 사부로도 마음이 힘들기는 마찬가지. 와카에와 사부로는 각자의 삶의 길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우라야마 키리오(浦山桐郎) 감독의 1963년작 '비행소녀(非行少女)'는 2개의 영어 제목을 가지고 있다. 일본 사이트에서는 'Each Day I Cry'로 병기하고 있고, 해외 사이트에서는 'Bad Girl'로 검색된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면 'Bad Girl'의 영어 제목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 와카에(이즈미 마사코 분)를 '비행소녀'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병마로 일찍 세상을 뜬 어머니, 그 슬픔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와카에의 현실은 비참하기만 하다. 술꾼 아버지는 돈이나 벌어오라며 내몰고, 뚜쟁이 고모와 마을 야쿠자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은 와카에를 이용해 먹을 궁리만 할 뿐이다. 음주와 흡연, 상습적인 도벽을 가지고 있는 와카에의 모습은 불행한 환경에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엇나가는 소녀에 가깝다.

  사부로(하마다 미츠오 분)는 와카에를 올바른 길로 이끄려고 애를 쓰지만, 사부로의 처지도 괴롭다. 참의회 의원으로 입후보해서 한창 선거운동 중인 형은 사부로를 한심하게 생각한다. 형에게 게으르고 쓸모없는 놈으로 취급받지만, 사부로에게도 형은 속물적이고 위선적인 존재다.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서 일으켰던 시위에서 그의 형은 방관자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출세를 위해 정치인으로 나서려고 하는 모양새가 영 마뜩잖다. 이 영화에서 기록 영화의 한 장면으로 나오는 그 시위는 1952년에 일어났던 '우치나다 투쟁(内灘闘争)'이다. 한국 전쟁으로 포탄 수요가 늘어나자 미군은 해안 사구가 있는 우치나다에 포탄 사격 시험장을 만든다. 그에 반대한 마을 주민들은 1952년부터 1957년까지 철거를 요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우치나다의 주민들은 물론이고 일본 내의 시민, 정치 단체들이 집결한 총력적인 투쟁이었다. 결국 미군은 사격 시험장을 철거했다. 일본 곳곳에 세워지기 시작한 미군 기지에 대한 반대의 움직임이 처음으로 거둔 성과였다.

  영화 속에서 '우치나다 투쟁'이 비록 삽화적 기억으로 언급된 사건이기는 해도, 감독 우라야마 키리오는 풋풋한 사랑 이야기 속에 일본 사회의 내면을 투영시킨다. 영화는 사부로가 집에 들어오면 보게 되는 형의 선거운동을 여러 장면으로 넣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과 술 접대를 하며 혈연과 지연에 호소하는 형은 결국 참의원에 당선된다. 실제로 1953년에 우치나다의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은 미군 기지 철거를 외친 후보가 아니라 백화점을 소유한 돈 많은 지역 유지였다. 그것은 외적으로는 외세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 일본 사회가 내부적으로는 끈끈한 가족주의의의 그림자에 매여 있음을 입증한다. 기회주의자로 묘사된 사부로의 형은 당시의 기성 세대를 대변한다. 그들은 전후 혼란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사부로와 같은 젊은 세대에게 변혁의 이상을 설파하기 보다는, 사회로의 빠른 정착과 체제 순응을 요구했다. 그러므로 사부로의 형은 사부로에서 실제적인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라고 야단친다. 사부로는 형에게 반발해서 집을 뛰쳐나가도 봤지만,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술집의 웨이터였을 뿐이다. 결국 사부로는 동네 양계장의 관리인으로 취직한다.

  와카에는 사부로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부로는 책임을 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안다. 돈을 벌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와카에와 결별을 택하지만, 와카에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결국 와카에가 실수로 양계장에 일으킨 방화는 두 사람을 더 멀어지게 만든다. 와카에는 교화원으로, 사부로는 기술 직업 학교로 간다. 재봉일을 배우며 진정한 자립과 갱생을 위해 노력하던 와카에는 오사카의 일자리를 소개받고 떠나려 한다. 그런 와카에를 사부로가 붙잡는다. 와카에는 어떤 선택을 할까?

  영화의 원작은 모리야마 케이가 쓴 소설 '사부로와 와카에', 부제는 '푸른 구두(青い靴)'이다. 영화 초반부에 와카에는 술집 여종업원의 하이힐 구두를 훔친다. 멋진 구두를 신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던 와카에는 오사카로 떠나는 길에 그 구두를 강물에 내던진다. 괴롭고 힘든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와카에를 태운 오사카행 기차는 끝없이 이어지는 선로를 달린다. 비행소녀에서 진정한 어른으로 향하는 그 여정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와 슬픔을 딛고 용기있게 일어서는 와카에의 모습에서 관객은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것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일어서는 것이며, 결코 도망치지 않고 스스로 그 모든 것과 직면함을 의미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매일 울었던 와카에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우라야마 키리오는 15살 소녀의 재생을 위한 고통스러운 마음의 여정을 '비행 소녀'에 담아냈다. 관객은 그 여정 속에서 전후 혼란기의 상처를 봉합하고 현실에 매진하는 일본 사회의 단면도 엿볼 수 있다
.



*사진 출처: blog.cinema1900.yokohama 와카에와 사부로를 연기한 이즈미 마사코와 하마다 미츠오. 와카에를 연기한 이즈미 마사코의 당시 나이는 열 다섯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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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의 초연은 1913년 5월, 파리에서였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안무와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음악에 관객들은 극심한 반감을 표출했다. 관람을 했던 비평가의 기록에 따르면 관객들은 '던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무대로 내던졌다'고 했으며, 분노에 휩싸인 이들의 난동으로 경찰이 출동해서 40명에 이르는 이들을 쫓아내야만 했다. 마니 카울(Mani Kaul) 감독의 1969년작 '그의 로티(Uski Roti, A Day's Bread)'를 보고 나서, 나는 '봄의 제전' 초연 때의 파리 관객들을 떠올렸다. 아마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본 인도 관객들의 반응도 그에 못지 않았을 것 같다. 영화를 본 어느 인도 의회 의원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라고 혹평했다. 대중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도 없고, 아무 재미도 느낄 수 없는 이 영화에 국가의 세금이 지원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그랬을까?

  '그의 로티'는 인도 작가 모한 라케시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버스 운전사 수차 싱의 아내 발로는 매일 남편의 먹을 거리 로티(인도의 빵)를 만드는 것을 중요한 일과로 여긴다. 남편은 아내가 있는 시골 마을에 정차할 때 그 빵을 가져가는데, 발로는 매일 먼 거리를 걸어와서 정류장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어느 날, 아내가 늦게 와서 빵을 받아가지 못하자 수차 싱은 화를 낸다. 도시에서 방을 얻어 사는 그는 1주일에 한 번 아내를 찾아오는데, 그것도 발을 끊겠다고 말한다. 내연녀를 두고 도박이나 일삼는 남편이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발로. 밤늦게까지 로티를 가지고 버스 정류장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나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 반대한다."
 
  25살의 마니 카울은 기존의 영화 문법과 관습 전부를 배반하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흔히 '영화'가 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들, 또는 '영화'가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것들을 젊고 야심만만한 신인 감독은 내던져 버렸다. '그의 로티'를 보는 관객들은 분절되고 파편화된 이미지들, 시간 순서를 무시하는 서사, 때론 제각각인 장면의 속도를 견뎌야만 한다. 관객들은 발로의 마음 속 불안과 고통, 걱정이 만들어낸 환영들을 보게 된다. 거기에는 '조화'나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신체의 일부분, 특히 '손'을 몽타주로 편집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마니 카울이 로베르 브레송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브레송의 '소매치기(Pickpocket, 1959)'에서 손이 영화의 서사 그 자체가 되는 것에 카울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로티를 만드는 발로의 손, 자신의 머리와 수염을 정리하는 수차 싱의 손, 그의 외투에서 돈을 빼가는 내연녀의 손, 이 밖에도 이 영화에서는 여러 다양한 '손'의 활약을 볼 수 있다.

  마니 카울은 이 영화에서 자신이 이야기를 듣고 떠올린 이미지를 마치 그림을 그리듯 한 장씩 보여주는 것을 원했다. 그가 재현한 머릿 속의 이미지들은 사실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영화가 보여주는 방식, 즉 배우들과 그들이 나누는 대사,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카메라의 원근법이 존재하는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 그런 이유로 '그의 로티'의 내러티브는 기존의 영화 문법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매우 낯설고, 기이하며,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이 영화는 마치 끊임없이 관객들로부터 서사를 격리시키는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므로 관객은 영화가 만들어낸 서사의 거리를 어떤 식으로든 메꾸어야하는 짐을 짊어지게 된다.

  이 난해하기 짝이 없는 영화적 실험에 동시대의 관객들은 냉담했다. '그의 로티'는 인도 영화 산업의 육성을 위해 만들어진 정부 기관 FFC(Film Finance Corporation)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는데, 대중성이 결여된 이 작품에 '세금 낭비'라는 일반의 비난이 쏟아진 것은 당연했다. 오히려 카울이 보여준 새로운 영화 문법에 주목한 이들은 서구의 비평가들이었다. 이 영화가 던지는 근원적 질문, 즉 '과연 영화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카울이 제시한 답에 시간이 갈수록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리트윅 가탁(Ritwik Ghatak), 사티야지트 레이(Satyajit Ray)로 대변되는 인도 평행 영화(Indian Parallel Cinema, 1950년대에 주류 상업 영화인 볼리우드를 거부하면서 일어난 새로운 영화 운동)에서 마니 카울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색채를 보여준다. 그는 사실주의적인 영화 문법을 거부하고, 그것에 균열을 일으키고 흔드는 것에 흥미를 가졌다. '그의 로티'가 좋은 영화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그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엉성하고 조악한 내장재로 지어진 건물 같은 이 영화는 분명히 '새로운 그 어떤 것'이다. 감독 마니 카울은 관객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그의 로티'의 관객들은 이 영화에 접근할 자신만의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지루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미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screendaily.com


**사진 출처: pintere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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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아버지는 당의 집단 농장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불순분자의 가족으로 낙인이 찍힌 그의 성장기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강인한 어머니는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정규 교육의 혜택은 받았으나, 원하지 않은 자동차 기술 학교에 입학해야만 했다. 학업을 마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운전사, 엔지니어 같은 직업으로 떠돌았다. 해군으로 병역을 마친 뒤에는 교사 자격증을 따서 문학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다 영화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그는 25살의 나이에 무작정 모스크바로 갔다. VGIK(러시아 국립 영화 학교)에 들어간 그는 배우와 감독으로서 경력을 쌓아간다. 그는 소설도 꾸준히 써냈다. 자신의 고향 알타이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그려냈다.

  그가 1972년에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스토브 벤치(Печки-лавочки)'에도 알타이 농민 부부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Happy Go Lucky', 러시아어 원제목인 '스토브 벤치'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동명의 제목으로 2008년에 나온 영국 영화가 있어서 우리말 제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스토브 벤치'로 쓰기로 했다. 그것은 러시아 주택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스토브(화덕)와 연결된 벽돌 의자를 뜻한다. 감독 바실리 슉신(Vasily Shukshin)은 그곳에 앉아서 보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고향의 따뜻함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외딴 알타이 시골 마을의 평화로운 일상 풍경에서부터 시작한다. 유유히 흐르는 강가에서 뱃사공이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마을에는 이반 부부의 여행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지고, 주민들은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즐거워 한다. 우수 농민으로 뽑힌 이반은 흑해 휴양소 입장권을 포상으로 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부부의 여행은 결코 편하거나 즐겁지 않다. 이반은 촌사람이라며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사업가와 말다툼을 벌이는데, 사업가는 차장을 불러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려고 한다. 차장이라는 인간도 이반을 깔보고 하대하기는 마찬가지. 그들은 서로를 '동무(comrade)'라고 부르지만, '기차'라는 공간은 그들 사이의 명백한 위계 관계를 드러낸다. 촌부를 경멸하는 사업가, 행색과 지위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속물적인 차장, 도둑과 같은 칸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이반을 강압적으로 취조하는 경찰. 어떤 면에서 그것은 소련 사회의 내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부부의 여행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광활하고 유려한 대자연의 풍경과는 다르게 삐걱거리는 소음을 낸다. 이반은 그럴수록 고향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그가 자는 동안 꾸는 꿈에서는 고향의 들판에서 아내와 행복하게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이 나온다. 이반은 고향의 부모님과 아이들 생각을 하며 편지를 보내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껄끄러운 여행을 그나마 상쇄시켜주는 것은 부부에게 호감을 보이는 언어학자 노교수의 친절이다. 그는 모스크바의 집에 부부를 초대한다. 그러나 화려하고 복잡한 대도시 모스크바는 이반에게 피곤함을 가중시킬 뿐이다.

  바실리 슉신에게 자신이 나고 자란 알타이의 풍광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영화의 초반부에 펼쳐지는 시골 마을의 묘사는 마치 민속지학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한다. 가진 것은 없지만 여유롭고 순박한 농촌 사람들에게 결핍과 불행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슉신은 있는 그대로의 알타이를 담으려고 했다. 그러나 Goskino(소련 국가 영화 위원회, 영화의 검열과 제작 전과정을 주관했다)는 좀 더 세련되고 부유한 모습의 농촌이 담겨지길 바랬다. 그때문에 슉신은 영화를 자신의 뜻대로 만들 수가 없었다. 검열 과정에서 여러 장면들이 삭제 되었고, 그 결과 영화는 온전하지 않은 서사를 가지게 되었다. 기차에서 이반이 겪게 되는 갈등을 묘사하는 부분도 당국은 마뜩잖게 여겼다. 제작 전과정에서 당국은 압력을 행사했고, 슉신은 지루하고 치열한 싸움을 이어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만큼은 슉신도 양보할 수 없었다. 마침내 보고 싶었던 흑해의 해변가에서도 이반은 그다지 즐겁지 않다. 그는 탁 트인 고향의 대지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게 다야. 끝이라구."

  영화 속 이반을 연기한 배우이면서 감독이었던 슉신은 그렇게 대담하게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알타이 대지의 일부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었던 슉신의 의지는 그 마지막 장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 '스토브 벤치'는 어떤 면에서는 슉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 뉴라 역을 연기한 사람은 그의 아내였고, 그들 부부의 두 딸도 영화에 잠깐 동안 등장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찍은 그 언덕에는 슉신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는 이 영화를 완성하고 2년 뒤, 촬영 도중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45살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어쩌면 그가 제일 좋아했던 스토브 벤치처럼 고향 알타이의 언덕은 그를 기념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일 것이다. 



*사진 출처: in-w.ru



*다음 글은 일요일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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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14 11:06   좋아요 0 | URL
푸른별님 영화 리뷰 팬입니다
일요일 포스팅 기대 할께요 ^ㅅ^

푸른별 2021-05-14 15:53   좋아요 0 | URL
scott 님과 같은 독자가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에릭 로메르가 보여주는 담론의 공간; 나무, 시장과 미디어 라이브러리(L'Arbre, le Maire et la Médiathèque, 1993)

  영화는 시골 초등학교의 수업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마크는 아이들에게 '만약(If) ~ 한다면'이라는 조건문의 용법을 열심히 가르치는 중이다. 영화는 7개의 장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매 장마다 조건문이 제시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장: 만약에 1992년 지방 선거 전날에 대통령의 소속 정당이 소수당이 되지 않았다면... 관객들은 예기치 않은 7개의 '우연'이 인물들의 생각과 그들이 개입된 사건을 어떻게 바꾸어 가는지 보게 된다.


  에릭 로메르 감독의 1993년작 '나무, 시장과 미디어 라이브러리(The Tree, the Mayor and the Mediatheque)'은 시골 마을에 세워질 복합 미디어 센터를 두고 대립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에서 '정치'가 다루어진 적이 있었던가? '나무, 시장과 미디어 라이브러리'는 얼핏 보기에 로메르의 정치적 관점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의 신념과 가치관의 차이, 그것이 가져오는 변화와 파장이다.

  Vendée 라는 작은 마을의 시장 줄리앙은 주민들을 위한 복합 미디어 센터를 세우려고 한다. 비록 그가 속한 사회당이 선거에서 패배해서 소수당이 되기는 했지만, 전에 문화부에서 따온 예산으로 건축은 이미 설계에 들어갔다. 그러나 마을의 초등학교 교사 마크는 그 건물이 마을의 경관을 해치고, 외지인들의 유입은 환경 오염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줄리앙은 미디어 센터를 짓게 되면, 외지인들의 방문이 늘어나고 그런 활기가 마을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그는 언론의 도움을 기대하며 친척이 소개해준 저널리스트 블랑딘의 취재에 협조한다. 블랑딘은 마을 사람들과 인터뷰도 진행하는데, 건물 신축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마크의 주장을 흥미롭게 듣는다. 마침내 나온 블랑딘의 기사는 줄리앙의 바램과는 달리 마크의 인터뷰를 부각시킨 것이었다. 과연 줄리앙이 바라는 대로 미디어 센터는 지어질 수 있을까?

  에릭 로메르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들 속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줄리앙이 여자친구 베레니스와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그는 결코 개발지상주의자가 아니다. 줄리앙은 자연을 사랑하고 소박한 시골 생활에도 만족한다. 중앙 정치로 진출해 보라는 베레니스의 권유에도 시장 업무가 우선이라고 말한다. 시장으로서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려는 그의 성실한 자세는 '복합 미디어 센터'라는 꿈과 맞닿아 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와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최대한 환경친화적으로 건물을 지으려는 줄리앙의 의도가 드러난다. 그는 시골 마을도 도시화의 추세에 따라 변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크는 그런 그와 정반대의 지점에 서있다. 마크의 생각은 아내와 딸과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그는 건축 계획이 의회로 진출하려는 줄리앙의 정치적 야심에서 나온 것이며, 결국 그 건물은 마을의 흉물이 될 거라고 본다. 마크는 시골의 풍경은 훼손되지 않아야할 절대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의 생각을 상징하는 것은 건축 부지에 있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이다. 그는 그 나무가 베어지게 된다면 마을을 떠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크는 정작 자신의 의견을 줄리앙에게 직접 말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혼자 궁시렁대는 뒷방 늙은이처럼 단지 부인과 딸에게 자신의 불만을 토로할 뿐이다.

  110분에 이르는 러닝 타임 동안 관객들은 아직 지어지지 않은 가상의 건물을 두고 벌어지는 대화의 향연을 목격한다. 여기에는 환경보호론자와 개발주의자의 관점, 정치와 관료주의, 쇠락해가는 농촌 마을의 현실, 편향된 언론이 특정 사건에 미치는 영향이 마치 옷감의 무늬를 짜듯 촘촘히 배치된다. 로메르의 특기란 그런 것이다. 그는 인물들의 일상적 대화를 통해 문제의 본질을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영화에는 어떤 대단한 정치구호나 시끄러운 시위가 등장하지 않는다. 인물들은 각자가 가진 생각을 말하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비록 타협할 수 없는 신념의 차이를 확인했다 하더라도 그런 대화의 기술은 다양한 관점에서 하나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블랑딘이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농촌의 삶과 신축 건물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장면을 통해 관객들은 개발과 자연보호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얼마나 편협한 것인가 알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줄리앙에게 의견을 피력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 마크는 편협하고 독단적인 사고방식에 갇힌 인물처럼 보인다. 그런 아빠와는 달리 10살된 마크의 딸 베가는 대화를 통한 소통과 타협의 가치를 알고 있다. 똑똑하고 야무진 소녀는 줄리앙에게 마을에 미디어 센터가 필요하지 않는 이유와 그 대신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곤조곤 일러준다.   

  영화를 보고나면 그런 의문이 든다. 로메르는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1980년대와 90년대에 프랑스에서는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여러 정책들이 시행되었다. 개발 바람과 함께 신축 건물들이 들어섰고, 현지 주민들의 필요와 의견을 고려하지 않은 쏟아붓기 식의 행정적 낭비라는 지적이 나오게 되었다. 정치인들은 정책을 세우고, 건축가는 그 정책에 따라 건물을 짓는다. 그런 실제적 행위는 사람들의 일상에 때론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로메르는 푸른 잔디밭과 나무 한 그루, 그리고 그곳에 들어설 가상의 미디어 센터를 대비시킨다. 관객들은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고 그 두 풍경 가운데 하나의 것을 선택했을 때를 상상해 보게 된다. 어떤 선택이든 절대적으로 옳고 좋은 것은 없다. 아마도 로메르는 그 선택의 기로에서 다양하게 발생할 수 있는 담론의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로메르의 소박하지만 흥미로운 영화 작업은 '나무, 시장과 미디어 라이브러리'로 남았다.  



*사진 출처: filmsdulosan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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