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밤의 충돌(Clash by Night, 1952)'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거친 바다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갈매기와 물개가 조업 중인 선박들 주변에 모여든다. 대형 그물에서 쏟아지는 생선들은 통조림 공장으로 이동한다. 여성 노동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생선을 자동화 라인에서 분류한다. 마치 수산물 가공업에 대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도입부를 가진 영화, 프리츠 랑 감독의 1952년작 '밤의 충돌(Clash by Night)'이다. 원작은 클로드 오데츠가 1941년에 발표한 동명의 희곡으로 브로드웨이 연극으로도 공연된 작품이었다.

  한가로운 몬테레이의 어촌 마을에 화려한 외모의 여성이 도착한다. 매(Mae)는 고향을 떠난지 10년 만에 돌아왔다. 높은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무거운 여행 가방을 끌고 가는 여자는 영 그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다. 여자는 남동생 조의 집을 찾아간다. 조는 누나가 보낸 그간의 삶을 궁금해 한다. 매는 '꿈은 컸지만, 결과는 보잘 것 없었지'라는 말로 대신한다. 매와 알고 지냈던 마을의 순박한 어부 제리(폴 더글라스 분)는 매와 데이트를 시작한다. 동네 영화관의 영사 기사 얼(로버트 라이언 분)도 매를 좋아하게 되지만, 매는 얼의 불안하고 상스러운 면모를 경멸한다. 어떻게든 삶에 안착하고 싶었던 매는 제리와 결혼하고, 둘 사이에는 딸도 태어난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의 답답함에 지친 매는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데...

  '밤의 충돌'은 프리츠 랑 감독의 후기작으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작품이다. 당시에도 이 영화는 작품성 보다 다른 의미로 큰 화제가 되었다. 영화에서 조의 여자 친구로 나온 마릴린 먼로 때문이었다. 먼로는 누드로 찍은 화보 달력을 내놓았는데, 먼로를 취재하려고 촬영장은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제작사 RKO는 몰려든 기자들을 내쫓는 것이 일이었고, 촬영장의 분위기도 어수선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먼로는 감독의 연출 지시는 무시하고 자신의 개인 연기 교사의 지시를 따랐으므로 프리츠 랑을 격노하게 만들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주연 배우 바바라 스탠윅을 비롯해 폴 더글라스, 로버트 라이언은 집중력을 발휘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 바바라 스탠윅 최고의 연기력을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평범한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 야심많은 여자의 고통과 좌절을 보여준다. 주부의 일상을 견디는 것이 매에게는 갈수록 힘들게 느껴진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과 비슷한 기질을 가진 얼에게 끌리고, 매는 결혼 생활을 끝내기로 한다. 프리츠 랑이 보여주는 이 멜로 드라마는 매우 현실적이며 절제되어 있다. 동시대의 감독 더글라스 서크가 화려함이 넘쳐나는 세트에 갇힌 중산층 여자의 멜로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과는 차별되는 점이다. 바바라 스탠윅은 어부 아내의 일상을 연기한다. 빨래를 널고, 식사를 준비하고, 아기를 돌본다. 프리츠 랑은 어촌 마을의 선술집, 결혼 파티, 해수욕장을 보여줌으로써 일상적 풍경이 가진 사실성을 강조한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프리츠 랑은 일반적 멜로 드라마 서사의 전복을 시도한다. '밤의 충돌'에서 매의 성격적 결함과 타락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은 남편 제리이다. 그는 착하고 나무랄 데 없는 가장이며, 아내에게 충실한 사람이다. 나쁜 남자에 의해 슬픔과 고통 속에 빠지는 멜로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과 바바라 스탠윅이 연기하는 매는 정반대의 지점에 서있다. 제리는 아내의 부정(不貞)에 분노해, 그 상대방인 얼을 죽이려는 행동에 이르기까지 한다. 이 가엾은 남자를 보면서 감정적으로 동요할 관객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일 것이다. 이 영화는 일반적 멜로 드라마의 여성 관객들을 소구
(求)하지 않는다. 멜로 드라마를 향유하는 주 관객층이 여성임을 상기한다면 의외의 점이다. 더글라스 서크의 영화가 상영되는 당시 영화관 매표소는 여성 관객들로 미어터졌다.

  자신을 떠나게 해달라는 매의 간청에 제리는 외친다. '당신은 끔찍한(rotten) 여자야!' 그 여자, 매의 얼굴에서 '이중배상(Double Indemnity, 1944)'의 요부 필리스가 얼핏 스쳐지나가는 것도 같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살인을 부추기는 악녀 필리스를 연기한 사람은 바바라 스탠윅이었다. 분명 '밤의 충돌'의 매는 나쁜 여자이지만, 엄마 역할까지 포기하지는 않는다. 매는 딸을 자신이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놀라운 일이다. 가정을 버리려는 여자가 불륜남과 함께 떠나면서 자식을 데려간다는 것은. 결국 모성이 매를 잡아끈다. 제리는 아내를 용서하고, 여자는 다시 가정에 안착한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스탠윅이 연기한 또 다른 영화 '스텔라 달라스(Stella Dallas, 1937)'의 헌신적인 엄마 스텔라를 떠올리게 된다.

  왜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여자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는가? 영화가 만들어진 1952년에 미국은 공산주의자들과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밖으로는 한국 전쟁을, 안으로는 매카시즘으로 인해 미국 사회는 이전에 비해 매우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2차 대전 중에 이루어진 여성의 사회 진출은 종전과 함께 다시 축소되었고, 여성들은 가정으로 복귀했다. 가정과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보수적 가치는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굳건해져 갔다. 매카시즘은 공식적으로 1954년에 종결되었지만, 그 여진은 195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1950년대의 헐리우드 영화들 속에서 그것이 미친 영향력을 분리해서 보는 일은 불가능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영화의 제목은 19세기 영국 시인 매튜 아놀드(Matthew Arnold)의 시 '도버 해변(Dover Beach)'에서 따왔다.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은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의 해변가에 서있는듯 하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폭풍우 속을 걸어간다. 관객들은 '밤의 충돌'에서 바바라 스탠윅의 치열한 연기와 함께 프리츠 랑이 보여주는 전복적 멜로의 서사를 발견하게 된다.  



*사진 출처: milibrary.com   배우 바바라 스탠윅과 로버트 라이언



*다음 글은 화요일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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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얼마 전부터 TV 리모컨의 전원 버튼이 잘 눌러지지 않았다. 아주 힘을 꾹꾹 주어서 눌러야만 작동이 되곤 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새 리모컨을 사려고 했다. 그래도 전원부 버튼만 안되는 것인데 고칠 방법이 없나 싶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고칠 방법을 알려주는 글들이 주르륵 뜬다. 고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버튼의 접점이 닳거나, 이물질로 인해서 생긴 문제이므로 리모컨 분해 후에 접점 부위를 손보면 된다. 이물질을 제거해도 잘 안되는 경우는 전도성이 있는 알미늄 포일을 접점에 작게 붙여주면 된다. 그렇게 리모컨은 다시 살아났다.

  아주 사소한 수리였지만, 그걸 해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접점(接點)에 문제가 있으면 아무리 기판이 정상이라고 해도 전류가 흐르지 않아서 작동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할 때에도 작고 보잘 것 없는 문제들이 일의 시작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글쓰기'의 경우에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제대로 된 좋은 글을 써야한다는 압박감, 이런저런 이유로 오늘 말고 내일은 쓸 거라는 다짐,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는 영감, 그런 것들... 도러시아 브랜디는 '작가 수업'에서, 글을 쓰려는 이들이 마주하는 그런 근원적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 한다.

  사실 이 책을 오래전에 사두고 그냥 책장에 넣어두었던 것 같다. 작년 가을부터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예전에 샀던 글쓰기 책들을 가끔씩 들여다 보고 있다. 대개는 그냥 흘려버리는 그저그런 조언들이지만, 이 책은 좀 다른 면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작가'라는 직업의 정체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디는 작가는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매일, 일정량의 글을 써내려갈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작가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 습관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다른 직업에 대해서 고민해 보라는 충고를 곁들인다.

  우선 글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가운데 자신이 좋아하는 시간대 뿐만 아니라 다른 시간대에도 익숙하게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사실 글을 쓰는 사람마다 자신이 더 선호하는 작업 시간대가 있기는 하다. 브랜디는 그것을 뛰어넘으라고 일러준다. 어느 시간대든 글을 쓸 수 있는 습관을 갖게 된다면, 비로소 작가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첫 번째 열쇠를 얻게 된다. 꾸준함과 성실함이야말로 작가가 가져야할 기본적인 덕목이다.

  브랜디는 그 다음의 작업으로 스스로의 글에 비평하는 자아에서 해방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비판적 자아는 일단 내려두고, 무의식 속에 자리한 창조적인 글감들을 길러 올리라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줄리아 카메론이 쓴 '아티스트 웨이'였다. 글쓰기에 대해 다룬 그 책에서도 창작에서의 무의식의 중요성을 다룬다. 솔직히 그 책은 내게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다. 카메론의 그 책은 브랜디의 책에서 영감을 받아 나온 많은 글쓰기 책들의 하나였다. 1934년에 이 책이 출간된 이후로, 글을 쓰려는 많은 이들이 브랜디의 조언을 따랐다.

  오늘 날의 관점에서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구식의 관점과 조언이 있기는 해도, 작가 지망생에게는 커다란 줄기에서는 귀담아 들어야할 이야기들이 있다. 글을 쓰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제 막 글쓰기에 들어선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안내자가 되어준다. 생각대로 글이 써지지 않거나, 쓰다가 그만 두기를 반복하는 이들은 자신의 글쓰기 버튼의 접점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신만의 글쓰기 습관과 일과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다음에 글쓰기의 전원 버튼을 눌러 보라.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은 마치 허름한 원조 맛집을 방문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화려한 인테리어나 친절한 고객 응대는 없다. 다만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음식이 차려질 뿐이다. 결국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작가됨', '글쓰기'의 본질이다. 매일, 일정 분량의 글을 써내는 습관과 자신의 내면에 갇혀 있는 이야기들을 해방시키는 것. 그런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작가'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작가 수업'은 그 정체성을 갖추기 위한 첫걸음, 그리고 그 길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원칙을 다룬다. 글을 쓰려는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구판이 절판되고, 2018년에 다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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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아마도 '직장 로맨스'의 아나톨리에게는 루드밀라의 눈물을 보았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영화는 통계청 직원 아나톨리가 자신의 직장 동료들을 소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통계청의 수장으로 오로지 일 밖에 모르는 구닥다리 옷차림의 노처녀 루드밀라, 무한긍정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나톨리의 대학 동창 올가, 루드밀라의 비서로 멋내기가 취미인 패션 리더 베라, 마당발로 직장 내 대소사를 챙기는 노조위원장 슈라. 이런 이들과 함께 일하는 아나톨리는 바람난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홀로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어느 날, 그의 대학동창 유리가 부청장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평온했던 직장에는 예기치 않은 로맨스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게 된다.

  엘다르 랴자노프(
Eldar Ryazanov) 감독의 1977년 영화 '직장 로맨스(Служебный роман, Office Romance)'는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일벌레 직장 상사와 사랑에 빠지는 소심남 아나톨리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가을 마라톤(Осенний марафон, 1979)'에서 흔들리는 가을 남자를 연기했던 올레그 바실라시빌리가 이 영화에서는 철벽남 유리로 나온다. 그는 돈에 쪼들리는 친구 아나톨리에게 새로 생긴 부서장 자리의 승진을 위해 상사 루드밀라를 꼬드겨 보라고 한다. 유리의 부임 축하 파티에서 아나톨리는 루드밀라에게 시와 노래를 불러보며 호감을 보여주려 애를 쓰지만, 루드밀라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그런 루드밀라에게 아나톨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일벌레라며 모욕을 주고, 루드밀라는 당혹감 속에 자리를 뜬다. 다음 날, 사과를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아나톨리는 상처받은 루드밀라의 눈물을 보고 연민을 갖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직장 로맨스가 시작되는 가운데, 올가는 유리에 대해 가졌던 대학 시절의 연애 감정이 되살아나서 편지 공세를 시작한다. 이 어지러운 직장 로맨스는 어떻게 끝날 것인가...

  이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음악이다. 구 소련 시절 모스 필름 제작의 많은 영화에서 안드레이 페트로프의 음악은 독보적이었다. '나는 모스크바를 걷고 있네(1964)'와 '가을 마라톤(1979)'에서의 서정적인 선율은 모두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직장 로맨스'에서도 페트로프의 눈부신 실력이 발휘된다. 랴자노프 감독이 가사를 쓴 여러 곡의 노래들이 영화에서 흘러나오는데, 모스크바의 가을 풍경과 매우 잘 어울린다. 주인공들의 심정을 잘 나타내는 시적인 가사들은 랴자노프가 시인들의 시에서 인용한 구절들이 포함되었다. 그 노래들이 흐르는 '직장 로맨스'는 오늘날의 관객들에게는 1977년의 모스크바, 그곳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풍속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직장 로맨스'의 캐릭터들은 구시대의 도식적인 젠더 관념을 명백하게 반영하고 있다. 사회적 경력에서는 나름의 성취를 이룬 루드밀라는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는 외로운 여자로 묘사된다. 루드밀라는 자신이 일에 매진하는 이유가 외로움을 잊기 위해서라고 아나톨리에게 말한다. 삼십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중년의 여자처럼 보이는 촌스러운 옷차림과 딱딱한 매너를 지닌 루드밀라를 직원들은 '우리의 할멈(our hag)'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흉을 본다. 이런 루드밀라가 사랑에 빠지게 되자 심정의 변화와 함께 외모를 가꾸기 시작한다. 오직 '사랑'만이 이 가엾은 처지의 노처녀를 구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올가의 처지는 루드밀라 보다 더 나쁘다. 가정을 가진 유부녀임에도 대학 동창 유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올가는 그런 자신을 추스리지 못한다. 올가가 유리에게 보낸 편지들은 곧 직장 동료들에 의해 웃음거리가 되고, 결정적으로 유리는 노조에 공식적으로 올가의 문제 해결을 의뢰함으로써 모멸감을 안겨주기에 이른다. 랴자노프 감독이 그려낸 '직장 로맨스'의 여성들은 사랑의 감정에 말할 수 없이 약하고 흔들리는 그런 존재로 그려진다. 이것은 영화 초반부에 통계청의 여직원들이 출근하자마자 화장이며 외모 치장에 열을 올리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에서도 부각된다. 여성은 나이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외모를 가꾸고, 타인의 시선과 관심을 갈구하는 존재임을 각인시킨다. 여성에 대한 관음적 시선은 음흉한 눈길로 여직원들의 몸매를 훔쳐보는 중년의 남자 직원 표트르가 대변한다.

  '직장 로맨스'는 그렇게 당시 소련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관점을 투영한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사회주의 국가 소련에서도 여전히 여성은 전통적 가정의 안주인 역할을 수행해야 했고, '직장'은 '가정'의 하위 범주에 속했다. 루드밀라의 비서 베라는 멋진 패션 리더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틈만 나면 얼마전 이혼한 남편에게 다시 돌아와줄 수 없냐고 전화를 걸어 애걸한다. 루드밀라는 아들 둘을 혼자 키우느라 힘들다는 아나톨리의 푸념에 그래도 당신은 아이들이 있으니 행복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런 루드밀라는 얼마 안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게 된다. 영화는 마지막의 자막에서 9개월 후, 아나톨리에게 세 번째 아들이 태어났다고 알려준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 소련에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고,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었던 영화였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본 오늘 날의 젊은 러시아 여성은 영화가 매우 구시대적이며, 아나톨리의 세 번째 아기가 아들이라고 분명히 알려주는 자막도 우습기 짝이 없다고 짧은 감상평을 썼다. 그렇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2011년에 러시아에서 개봉된 리메이크 영화가 혹평 속에 흥행에 실패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럼에도 '직장 로맨스'가 보여주는 로맨틱 코미디의 서사는 매우 부드러우며 관객을 즐겁게 만든다. 직장 내의 위계 관계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마음을 열고 사랑에 빠지는 루드밀라와 아나톨리의 사랑 이야기는 결코 억지스럽지 않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아나톨리 역의 안드레이 미야코프, 루드밀라 역의 알리사 프로인드리치는 구 소련 시절을 대표하는 국민 배우들이었다. 브레즈네프 시절의 경제적 침체기에 소련의 관객들은 이런 즐거운 영화라도 보면서 삶의 시름을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 쏟아져 나온 코미디 영화의 유산 가운데 랴자노프 감독의 '직장 로맨스'는 빛나는 보석과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러닝 타임이 꽤 길다. 155분의 길이로,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구 소련 시절의 영화사 모스 필름(Mosfilm)은 유튜브에 전용 채널을 개설해 놓았다. 무료이며, 영어 자막이 제공된다. 번역이 간결하고 아주 좋다.


***사진 출처: newperexo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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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21 17:11   좋아요 1 | URL
오! 푸른별님
유툽으로 당장 달려 갑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구든 자신의 과거로부터 벗어난다는 일은. 왕 샤오슈아이의 2014년작 '틈입자(闖入者, Red Amnesia)는 어느 노부인의 길고 어두운 과거의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베이징의 낡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덩 부인의 일상은 늘 바쁘다. 결혼한 큰 아들 가족을 비롯해 혼자 살고 있는 막내 아들의 먹을거리를 챙기고, 요양원에 있는 노모를 방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버거워 보이는 핸드 카트를 끌고 다니며 악착스럽게 자식의 삶에 관여하는 덩 부인에게 본인의 삶이란 없어 보인다. 집에서 혼자 식사할 때, 죽은 남편을 떠올리며 대화하는 것이 덩 부인의 가장 개인적인 시간이다. 그런 변함없는 일상에 어느 날부터 걸려온 장난 전화가 균열을 일으킨다. 아무 말도 없이 끊어버리는 전화는 계속 이어지고, 창문으로는 돌이 날아온다. 큰 아들의 집 문 앞에는 쓰레기가 투척된다. 도대체 누가, 왜 그런 장난을 하는 것일까?

  '상하이 드림(靑紅, 2005)', '11송이 꽃(我十一, 2011)'에 이어 나온 왕 샤오슈아이의 '틈입자'는 그의 문화대혁명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사실 이 영화를 그 연작의 마지막으로 보기도 어려운 것이 그의 2019년작 '아들(地久天长)'에서도 문혁은 변주된 주제로 이어진다. 문화대혁명이 이 감독에게 그토록 중요한 영화적 주제가 된 이유는 왕 샤오슈아이의 어린 시절에서 찾을 수 있다. 문혁 시기의 '하방(下放)'은 대도시 출신의 지식인과 중산층들에게 지방과 시골로의 집단적 이주를 강제했다. 그의 가족도 상하이에서 귀주 지역으로 이주했고, 그는 13살이 되었을 때에야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그 시절의 궁핍하고 고통스러웠던 가족의 삶은 왕 샤오슈아이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그는 '청홍'에서는 상하이로의 귀환을 꿈꾸는 시골 마을 일가족을, '아들'에서는 문혁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화해하는 오늘날의 구세대를 그린다. 어떤 면에서 '틈입자'는 그 가운데에 자리한 연결 고리와도 같은 작품이다.

  영화는 계속된 장난 전화에 불안과 혼란을 느끼는 덩 부인의 마음을 따라간다. 발신자 추적 전화기나 경찰에 신고하는 것으로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덩 부인은 문득 얼마 전에 들은 짜오의 죽음을 떠올린다. 귀주에서 살았던 문혁 시기, 둘째를 가지고 있었던 덩 부인은 상하이 이주권을 두고 짜오의 가족과 경쟁했다. 그것은 단지 원래 살던 고향으로 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중국의 '후커우(戶口)' 제도는 출생지에 따라 학교와 직업, 주택 소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대판 신분제도나 다름없다. '청홍'에서 청홍의 일가족이 상하이로 필사적으로 귀환하려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덩 부인은 태어날 둘째의 미래를 위해서 이주권을 얻으려 애를 쓴다. 열심한 당원이었던 짜오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방하는 서한을 당국에 써보냈고, 결국 이주권은 덩 부인의 차지가 된다. 덩 부인의 자녀들이 누리고 있는 대도시에서의 안온한 일상은 그런 과거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제 덩 부인을 불안하게 만드는 전화는 더이상 '장난'이 아닌 것이 된다. 덩 부인은 그것이 죽은 짜오의 혼령이 과거의 과오에 대해 사죄를 요구하기 위해 걸어온 전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덩 부인의 주변에는 젊은 청년이 그즈음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고장난 족욕기를 고치는 길을 동행해준 그 청년에게 덩 부인은 식사를 대접하지만, 청년은 덩 부인의 사진첩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달아나 버린다. 덩 부인은 마침내 과거로의 여행을 결심한다. 귀주에 남아있는 짜오 가족을 찾아가서 용서를 빌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고통스러웠던 과거로의 여행은 2019년작 '아들'에서도 반복된다. 어린 아들의 죽음을 잊고자 다른 도시로 떠났던 부부는 노년이 되어 그곳을 방문한다. 그들은 아들을 죽게 만든 가해자의 가족을 용서하고 화해한다. 그러나 '틈입자'의 덩 부인의 여행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사죄와 화해의 시도는 거부당한다. 왕 샤오슈아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옥상의 열려진 창문을 오랫동안 보여준다. 그것은 한 개인의 과거의 기억과 역사는 열려진 통로를 통해 어떤 식으로든 현재와 이어짐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망각하고 부인하려고 해도 과거는 현실 속에 흘러내리며 영향을 끼친다. 왕 샤오슈아이는 문혁이라는 길고 어두운 그림자가 오늘날의 중국인들에게 드리워져 있음을 그렇게 '틈입자'의 덩 부인을 통해 보여준다.

  이 영화는 베니스를 비롯해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덩 부인 역을 연기한 류종의 연기가 아주 좋다. '틈입자'가 가진 나름의 묵직하고 성찰적인 메시지가 호소력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왕 샤오슈아이의 문혁 연작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 가진 의미를 계속된 영화 작업으로 충분히 보여주었다.


  '청홍'과 '아들'에 이어 '틈입자'는 내가 왕 샤오슈아이의 영화를 보고 쓴 세 번째 리뷰이다. 이제 왕 샤오슈아이는 과거의 '문혁'이 아니라 현재의 중국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북경 자전거(Beijing Bicycle, 2001)'를 만들었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창작자로서 오늘날의 중국인들의 삶과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북경 자전거'가 북경의 지저분한 뒷골목을 보여주었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의 탄압을 받았던 기억 때문일까? 왕 샤오슈아이는 공인된 역사적 과오인 '문화대혁명'으로 회귀해서 도통 현실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과거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끊고, 열려진 창문으로 오늘날의 중국을 볼 수 있기를, 그리하여 다음 작품에는 그 현실의 풍경이 담겨져 있기를 기대한다.



*사진 출처: en.hkcine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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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헐리우드 영화의 자기 복제, 'Sirocco(1951)'와 'The Garment Jungle(1957)'의 경우'


 *이 글에는 'Sirocco(1951)'와 'The Garment Jungle(1957)'의 결말이 들어 있습니다.

 

  소설을 쓰는 데는 세 가지 법칙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게 뭔지 아무도 모른다 -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영국의 작가)

  흥행이 잘 되는 영화를 만드는 법칙이란 것이 있을까? 그 비밀을 아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다만, 망해버린 영화에 대해서라면 언제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차고도 넘칠 것이다. 이 글에서는 1950년대 헐리우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과거의 영화를 베끼려다 쓴 맛을 본 두 편의 영화를 다룬다. 커티스 베른하르트 감독의 '시로코(Sirocco, 1951)'와 빈센트 셔먼 감독의 '패션 전쟁(The Garment Jungle, 1957)'이 그것이다.

  "우리의 보기(Bogie)는 슬프고 늙어 보였어요."

  영화 '시로코'를 본 험프리 보가트의 어느 팬은 리뷰에 그렇게 썼다. 'Bogie'는 팬들이 보가트를 부르는 애칭이기도 하다. 그랬다.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 1942)'를 베낀 티가 역력한 '시로코'에서 보가트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활기와 열정이 부족했다. 보가트의 팬들로서는 정말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짠할 만도 하다. 영화는 서사의 엉성함과 총체적인 부실로 마치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 같다. 1925년에 프랑스가 점령한 시리아 다마스커스에는 아랍 토후 에미르 하산을 중심으로 무장 독립 투쟁이 벌어진다. 해리(험프리 보가트 분)는 아랍 측에 무기를 밀매하면서 꽤 큰 수익을 내고 있다. 무기 밀매상을 찾아내려는 페로 대령(리 J. 콥 분)과 해리와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거기에 페로의 애인 비올레타(마르타 토렌 분)가 해리와 도피를 시도하게 되면서 상황은 복잡해 진다.

  '시로코'의 대본을 본 보가트는 뭔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이 영화의 제작자로 뛰어들었다. 시나리오 작가 11명이 달라붙어서 보가트를 부각시킬 최선의 각본을 만들려고 애썼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 시도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시종일관 '카사블랑카'를 떠올리게 만든다. 무기 밀매로 얻은 수익으로 불안한 정세의 다마스커스에서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해리는 '카사블랑카'의 도박장 운영자 릭과 병치된다. 페로가 해리의 정체를 의심하고 그의 정보 파일을 들여다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해리의 전직은 '도박장 운영자'였다.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그런 베끼기는 '카사블랑카'의 보가트를 상징했던 담배와 모자, 트렌치 코트가 똑같이 재현된다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배우조차도 잉그리드 버그먼을 연상케 하는 외모를 지녔다. 마르타 토렌은 버그먼과 같은 스웨덴 출신의 금발 미녀 배우였다. '시로코'가 '카사블랑카'와 다른 점이 있다면 타락한 캐릭터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도박장을 운영하면서 해외로 도피하려는 이들에게 통행증을 얻어주는 댓가로 돈을 챙기는 릭과는 달리 해리는 무기 밀매로 이득을 보는 비도덕적인 인물이다. 비올레타는 자신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페로를 증오하고 그의 죽음까지 간절히 원하는 여자다. 잉그리드 버그먼이 보여주었던 가슴저린 사랑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시로코'의 서사는 관객들에게 그 어떤 설득력도 갖고 있지 못하며, 감동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심드렁하게 볼 수 밖에 없는 관객에게도 마지막 장면은 좀 놀라울 수 있다. 해리가 죽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이 영화의 결말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왜 무기 밀매상 해리가 죽어야 했을까? '카사블랑카'의 결말은 미국의 2차 대전 참전과 연합국과의 관계를 상징하지만, '시로코'의 결말은 당시의 미국 상황과 연관해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을 휩쓸던 매카시즘 광풍은 영화계에까지 밀어닥쳤다. 이른바 헐리우드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의회에서 증언을 강요당했던 해당 영화인들은 극심한 고초를 겪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증언을 거부하고 매장되거나, 적극적으로 협조하거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타협하거나, 그 세 가지 가운데 하나였다. 영화 '시로코'에서 페로 대령 역을 연기했던 리 J. 콥은 마지막의 경우였다. 공산주의자로 찍힌 그는 증언을 내내 거부하다가 영화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협조했다. 어떤 식으로든 그 시대에는 중간 지대란 존재할 수 없었고,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해야만 했다. 무수한 인명 피해를 내는 무기 밀매를 하면서 프랑스 군와 아랍 게릴라 사이에서 생존을 모색했던 '해리'라는 캐릭터는 박쥐와도 같은 회색 분자나 다름없었다. 배신자, 변절자는 처단해야 마땅한 존재였다. 결국 해리는 자신들의 존재를 밀고할까 두려워하는 아랍 세력 측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익에 따라 그 누구와도 협력했던 '카사블랑카'의 닉에게 허용되었던 관용이 해리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시로코'의 페로 대령으로 나왔던 리 J. 콥은 영화 '패션 전쟁'에서 이윤에 눈이 먼 악덕 기업가 월터 역으로 나온다. 영화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 1954)'의 패션 업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로버트 알드리치가 영화 촬영 도중 제작사 컬럼비아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것으로도 유명한 영화이다. 영화를 좀 더 부드럽고 등장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로 끌어가기를 바랬던 제작자 해리 콘과의 극심한 갈등은 알드리치의 하차로 이어졌다.


  알드리치는 노조 탄압을 위해 폭력 조직과 손을 잡는 사업가와 의류 산업계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고 싶어했다. 그러나 영화 제작 과정에서 늘 강한 목소리를 냈던 컬럼비아의 창업주 해리 콘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알드리치 대신에 투입한 셔먼의 '패션 전쟁'은 월터와 노조와의 투쟁 보다는, 월터의 아들 알란과 노조 지도자의 미망인 테레사의 관계가 더 부각되었다. 알란 역을 맡은 배우 커윈 매튜스는 컬럼비아 소속의 신인 배우로 컬럼비아에서 밀고 있는 배우이기도 했다. '워터프론트'가 보여주었던 사회적인 메시지는 '패션 전쟁'에서는 좀 더 희석되었다. 매우 현실타협적인 이 영화에서 부도덕한 사업가와 그가 손잡은 갱의 우두머리는 처벌받는다. 빈약한 서사와 신인 배우들의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한 연기는 이 영화가 '워터프론트'의 작품성과 흥행 성공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을 입증한다.

  1950년대에 제작된 두 편의 영화, '시로코'와 '패션 전쟁'은 흥행에 성공한 앞선 영화들을 모방했다. 플롯과 캐릭터의 유사성을 최대한 강조함으로써 관객들의 기호를 맞추려고 애썼다. 그러나 독창성과 예술성이 결여된 모방은 실패로 귀결되었다. 그럼에도 두 영화는 헐리우드의 흥미로운 자기 복제를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관객들은 이 글에서 언급한 세 편의 영화에 나온 리 J. 콥의 다양한 연기도 볼 수 있다. '워터프론트'에서 그는 부두의 무법자 조니 프렌들리를 연기한다. 그 영화의 감독은 엘리아 카잔, 그는 공산주의자 동료들을 적극적으로 밀고하며 헐리우드에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그런 카잔과 함께 작업하면서 리 J. 콥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슬프고 늙은 Bogie를 볼 수 있었던 '시로코'의 서늘한 결말 또한 그 시기의 미국 사회를 보여준다. 이렇듯 두 영화 속에는 제작 당시의 시대적인 사건과 분위기, 제작사와 감독과의 갈등, 배우의 개인사가 들어있다.



*사진 출처: en.wikipedia.com  배우 Lee J. Cobb


**사진 출처: tc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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