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별이 보이는 창가 (푸른별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영화글은 구글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블로그 주소:https://sirius1001.blogspot.com/</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08 May 2026 04:10:04 +0900</lastBuildDate><image><title>푸른별</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4128919332979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푸른별</description></image><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7</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252584</link><pubDate>Fri, 01 May 2026 19: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252584</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7<br><br>&nbsp; <br>&nbsp; 중기가 구만의 푹 꺼진 소파에서 일어났을 때, 중기의 집 초인종이 짧게 2번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 밤 9시 10분이었다. 도대체 이 시간에 올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중기는 지직거리는 인터폰의 흑백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주인 영감은 20년도 더 지난 것 같은 낡은 인터폰도 교체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폰의 화면은 흑백이었다. 화면 속에는 둥근 얼굴에 M자 탈모가 오기 시작한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5층의 쌍둥이 아빠였다. <br><br>&nbsp; "주무관 선생,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br>&nbsp; "아니, 차장님이 웬일로 이 시간에..."<br>&nbsp; "저기, 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br>&nbsp; <br>&nbsp; 중기가 현관문을 열어주자, 쌍둥이 아빠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서있었다. 중기는 그를 차장님이라고 불렀는데, 그건 그가 전에 다녔던 마을금고에서의 직책이 차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차장이 아니었다. 횡령으로 잘렸기 때문이다. 금고 측에서 고발까지 하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기껏해야 몇천만 원 아닐까? 중기는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오죽 먹고 살기 힘들면 그랬겠어? 애들 엄마는 식물인간으로 누워있지, 애 둘은 어떻게든 키워야지. 2층의 수선스러운 영천 아줌마가 중기가 분리수거할 때, 옆에서 주절주절 쌍둥이 아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공금에 손을 대는 일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중기가 그 말을 들은 것도 벌써 석 달이나 지났다. <br><br>&nbsp; "이것 좀 하나 봐주구려."<br><br>&nbsp; 쌍둥이 아빠 박 차장은, 아니 차장이었던 남자는 흰색의 뻣뻣한 쇼핑백에서 기다란 직사각형 나무통을 꺼냈다. 통의 겉면에는 검정색 붓글씨로 '명품 방짜유기'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나무 상자의 위 뚜껑을 열어서 그 안에 든 반짝거리는 수저 한 벌을 보여주었다. <br><br>&nbsp; "이게 인간문화재 김선재 선생이 만든 유기인데, 정말 귀한 거라서. 주무관 선생이라면 이런 귀한 걸 알아봐 줄 것 같기도 하고."<br><br>&nbsp; 센서등이 나간 어두운 복도에 서 있는 남자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쌍둥이 아빠는 요새 방짜유기 그릇을 팔러 다니는 모양이었다. 중기는 일요일 저녁의 늦은 시간, 그걸 들고 벨을 누른 남자의 청을 내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br><br>&nbsp; "하나쯤 있어도 좋은 물건이네요. 얼마나 하는지..."<br>&nbsp; "이게 원래 50만 원 받는 건데, 내가 주무관 선생한테는 그리 받을 수는 없고..."<br><br>&nbsp; 쌍둥이 아빠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br><br>&nbsp; "30만 원에 해드리리다."<br><br>&nbsp; 중기는 수저 한 벌에 30만 원을 달라는 남자의 말에 기가 찼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문을 닫고 남자를 돌려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남자의 어깨에는 식물인간이 된 아내와 두 쌍둥이 딸이 있었다. 중기는 다음주에 있을 구청 직원의 결혼식 축의금으로 찾아놓은 현금을 떠올렸다.&nbsp; <br><br>&nbsp; "차장님, 나도 지금 가진 돈이 이것 뿐이라. 20만 원밖에 없는데, 괜찮겠어요?"<br><br>&nbsp; 중기의 말에 쌍둥이 아빠의 구겨진 얼굴이 살짝 펴졌다. 그는 상자의 뚜껑을 닫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성급히 쇼핑백에 나무상자를 넣었다. 그러고는 중기가 건넨 20만 원을 건네받고는 휘적휘적 어두운 복도를 걸어갔다. 쌍둥이 아빠가 가고 난 뒤에, 중기는 그가 건넨 방짜유기를 비로소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숟가락의 손잡이 뒷면에는 '선재 유기'라는 각인이 봉황새의 문양과 함께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봉황새라니, 임금이 쓰는 수저를 흉내라도 냈단 말인가? 중기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이런 건 별로 쓸모도 없는 장식품일 뿐이다. 중기는 자신이 건넨 그 20만 원이 병원에서 7년째 누워있다는 차장의 부인 병원비와 그 쌍둥이 딸의 간식값으로 흘러가는 상상을 했다. 오죽 먹고 살기 힘들면 그랬겠어? 2층 영천 아줌마의 말이 이상하게 중기의 귓가를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nbsp;&nbsp;&nbsp;&nbsp;&nbsp; <br><br>&nbsp; 중기는 문득 구만에게 방짜유기 영업을 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구만은 물건이란 걸 팔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인사팀에서 일했던 구만이 아는 건 인력 채용과 이동에 관한 제반 업무였다. 최근 몇 년 동안 구만을 힘들게 했던 것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과 관련된 크고 작은 소송이었다. 구만이 보기에는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직원 간에 물고 늘어지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났다. 구만은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이 자신의 수명을 갉아먹는 일 같다는 생각마저 할 정도였다. 그래서 구만은 회사를 나오게 되었을 때, 어떤 면에서 후련하기도 했다. 증거랍시고 제출된 시답잖은 녹취 파일과 이메일 내역을 매일 눈이 빠지게 검토하는 건 고역이나 다름없었다. <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6</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247413</link><pubDate>Wed, 29 Apr 2026 22: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247413</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6<br><br><br>&nbsp; "그러니까, 불친절한 글을 써야지."<br><br>&nbsp; 여주에서 돌아온 그날 저녁, 중기는 진이 빠진 상태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chat GPT의 말대로 자신의 소설은 설명이 많은, 친절한 글이었다. 친절한 글은 재미도 없고, 매력도 없다. 불친절하고 까칠해져야지. 그런 글을 써야지. 그런데 중기는 불친절한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대화를 짧게 줄일 것인지, 인물의 행동에 설명도 안 하고 그냥 그 행동들을 마구 늘어놓을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우선은 구만을 그대로 주저앉힐지, 아니면 일으켜 세울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심장의 혈관에 스텐트 2개를 넣은 이 중년의 남자는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br><br>&nbsp; 중기는 푹 꺼진 15년 된 물소 가죽 소파에 앉아있는 구만을 바라보았다. 여느 때처럼 점심을 라면으로 먹은 구만은 입을 벌리고 낮잠을 자는 중이었다. 중기가 보기에 구만은 한심하기도 했고, 불쌍하기도 했다. 가족을 위해 그저 열심히 일한 가장으로서의 구만은 참으로 안쓰러워 보였다. 하지만 퇴직 후에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그저 집에서만 지내는 이 구만이라는 인물은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마누라는 아파트 청소일까지 다니고 있는데, 중기는 어떤 단무지가 꼬들꼬들하게 맛있는지를 검색하고 있었다. <br><br>&nbsp; 중기는 구만의 등짝을 한 대 때려주고 싶다가도, 불안하게 뛰는 구만의 심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아픈 건 사실이잖아. 중기는 구만이 다시는 사회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에 휩싸였다. 작가로서 분명히 자신에게는 구만을 집 밖의 세상으로 밀어낼 힘이 있었다. 하지만 중기는 자신이 구만을 움직인다고 해도, 구만은 부메랑처럼 다시 푹 꺼진 소파의 자리로 돌아올 것 같았다. <br><br>&nbsp; 구만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중기는 구만이 앉았던 소파에 앉아 보았다. 검정색의 물소 가죽 소파는 군데군데 터진 자국이 보였다. 중기는 자신의 원룸에 있는 낡은 가죽 소파와 그 소파가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색깔이었다. 중기의 소파는 갈색이었다. 구만은 화장실에서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배경음악처럼 들리는 케이블 TV의 뉴스 채널에서는 전쟁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br><br>&nbsp; "이란과 미국의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란과 미국 모두 버티기 모드에 들어간 것이죠. 과연 이 치킨 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까요? 협상이 난항에 부딪힌 상황에서 유가는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br><br>&nbsp; 이제 구만이 전쟁과 별 상관없다고 생각한 라면값이 오르게 될 터였다. 석유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근원적인 동력이다. 그 동력의 흐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모든 것의 비용이 다 오를 것이다. 구만이 매일 먹는 라면, 단무지, 전기, 가스, 관리비, 구만을 둘러싼 세계의 모든 것이. 그런데도 구만은 다시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중기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구만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구만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도대체 어쩔 셈인가, 저 사람은. 중기는 구만의 좁은 어깨를 마구 흔들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다. 하지만 심장이 좋지 않은 구만에게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중기는 구만이 앉을 수 있도록 소파에서 일어났다.&nbsp;&nbsp;&nbsp;&nbsp;<br><br><br><br><br><br>&nbsp;&nbsp;&nbsp; <br>&nbsp;&nbsp;&nbsp;&nbsp;&nbsp; <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5</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239882</link><pubDate>Sun, 26 Apr 2026 19: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239882</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5<br><br><br>&nbsp; 화장실의 수전을 교체하고 나서, 중기는 미리 렌트한 차를 몰고 여주로 향했다. 여주의 요양원에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작은 요양원이다. 높은 산이 양옆으로 자리한 좁은 도로는 구불구불하게 끝도 없이 이어졌다. 육이오 전쟁 때, 여주에 피난민들이 많이 들어와서 살았다 하더군요. 이런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서, 군대가 쉽게 오지 못한다고 믿었대요. 작은 키에 꼬장꼬장한 얼굴을 한 수녀원장이 중기에게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br><br>&nbsp; 여주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이상한 약국이 하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약국이 아니라, 약방이었다. 약방의 유리창은 빛바랜 흰색의 코팅지가 추레하게 너덜거렸다. Rx 모양의 표시가 되어있는 것을 보면, 뭔가 약을 짓는 것 같기는 한데, 왜 약국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까? 칠십은 족히 넘은 영감은 늘 고정된 자세로 TV를 보고 있었다. 중기는 아무리 아파 죽을 것 같아도, 저 영감이 짓는 약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늘도 TV에 시선을 맞추고 카운터를 지키는 영감이 백미러를 천천히 지나갔다.&nbsp;&nbsp; <br><br>&nbsp; "이렇게 곰돌이를 씹어 먹으니, 얼마나 슬픈 일이냐. 곰돌이가 너무 불쌍해."<br><br>&nbsp; 어머니는 중기가 건넨 하리보 젤리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정말로 슬픈 것 같았다. 나이 들어서 꺼지는 눈꺼풀 때문에 더 작아진 어머니의 눈가는 늘 짓물러 있었다. 중기는 휴대용 티슈를 한 장 꺼내어 어머니의 눈가를 조심스럽게 닦았다. <br><br>&nbsp; "여기서 일하는 여자가 내 돈을 훔쳐갔어. 죄다 도둑년들이야."<br>&nbsp; <br>&nbsp; 어머니는 입을 조그맣게 오므리며 속삭이듯 중기에게 말했다. 중기는 그런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저 걱정하지 마시라고, 자신이 꼭 돈을 찾아서 받아내겠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중기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는 요양원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다. 원래 살이 쪘던 어머니는 제대로 걷질 못하자, 살이 더 찐 것 같았다. 휠체어에 커다란 짐을 욱여넣듯 힘겹게 어머니를 앉혔다. 요양원이 자리한 산자락에는 이제 벚꽃이 피고 있었다. 서울은 벚꽃이 다 져버린 지 오래인데, 산속의 계절은 그렇게 또 다른 모양이었다.<br><br>&nbsp; "문수는 잘 지내냐?"<br>&nbsp; "네. 잘 지내요."<br>&nbsp; "내가 걔 밥을 차려줘야 하는데. 걔가 미나리를 좋아해. 미나리나물 해주면 얼마나 잘 먹는지 몰라. 지금 미나리가 나오는데, 문수 생각이 나서. 우리 착한 아들 문수."<br><br>&nbsp; 2주 전에 중기는 문수를 보고 왔다. 문수는 용인의 정신병원에 있다. 중기는 새삼스럽게 문수가 그곳에서 지낸 햇수를 세어보았다. 그러니까 한 10년 되었나? 자신이 공무원으로 임용된 이듬해 봄이니까 아직 10년을 채우지 못한 9년이었다. 문수에게 정신병이 발병하지 않았다면, 문수는 의대를 졸업하고 지금쯤이면 의사가 되었을 것이다. 가끔 중기는 자신이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문수의 병이 나아서 문수가 다시 의대에 복학하는 것, 그 두 가지 가운데 무엇이 더 가능성이 있을지 생각해 보곤 했다. 둘 다 가망이 없는 일인 것 같았다.&nbsp; <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4</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218991</link><pubDate>Wed, 15 Apr 2026 20: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218991</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4<br><br><br>&nbsp; "아, 내가 아까 약을 먹었나?"<br><br>&nbsp; 소설 속의 구만이 항혈전제를 먹었는지 약통을 확인하는 것처럼, 중기도 TV 옆에 놓인 자신의 약통을 확인했다. 중기는 역류성 후두염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주 쉰 목소리가 났고, 가래와 기침도 잦았다. 근처 종합병원의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편도선이 부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약을 먹어보고, 정 힘들면 편도선 절제 수술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 약은 소용이 없었다. 어차피 수술할 생각도 없었으므로, 중기는 목이 아파도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4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서 증상이 더 심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대학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았더니, 역류성 후두염이었다. 의사는 중기에게 위산 억제제를 처방했다. 생활 습관을 바꾸고, 약은 최소한 3개월 이상은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중기는 속으로 이전에 본 돌팔이 의사를 욕했다. <br><br>&nbsp; 중기는 약통에 그대로 있는 약을 보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먹어야 하는 것인데, 깜빡하고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약을 안 먹어서 그랬는지, 저녁 내내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했다. 위산이 역류하면서 목이 아프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중기는 작은 흰색의 알약을 얼른 입안에 넣었다. 약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구만에게는 항혈전제가 꼭 필요하듯, 중기에게는 위산 억제제가 필요했다. <br><br>&nbsp; "이 선생, 다음 달부터 월세는 60만 원 보내주쇼."<br><br>&nbsp; "네? 아니, 그럼 10만 원씩이나 더요?"<br><br>&nbsp; "아, 나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빌라 관리며 이런저런 데 나가는 돈이 오죽 많아야 말이지. 나도 오래 생각한 거니까, 이 선생도 그리 알고."<br><br>&nbsp; 20세대가 사는 5층짜리 빌라 임대인은 60대 중반의 꼬장꼬장한 늙은이였다. 비쩍 마른 체구에 기다란 얼굴에는 기름기 하나 없었다. 지난달, 중기는 화장실 세면대 수전에 물이 조금씩 새니 수전을 교체해달라고 그 늙은이에게 전화했다. 늙은이는 화장실의 수도 레버를 들었다 놨다를 몇 번 해보더니, 아직 바꿀만한 때가 아니라고 했다. 중기는 물이 새면 수도 요금이 더 나가니까, 바꿔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하지만 늙은이는 손에 묻은 물기를 탁탁 털면서 화장실에서 나왔다. <br><br>&nbsp; "저런 인간이라서, 돈을 모을 수 있나 보군."<br><br>&nbsp; 중기는 3만 정도 하는 세면대 수전을 사다가 직접 교체했다. 아마도 주인 늙은이의 수법은 그런 식으로 세입자가 스스로 고치게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br><br>&nbsp; "수도꼭지 사다가 직접 한 거 맞죠? 우리도 부엌 수도가 물이 줄줄 새는데, 안 고쳐줘서 사다가 했거든요. 진짜 그 늙은이, 하여간 지독해."<br>&nbsp;<br>&nbsp; 중기가 뜯어낸 수도꼭지를 내다버리는 것을 보더니, 2층의 아주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그렇게 말했다. 정말로 그게 주인의 수법이었다. 중기는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빌라 말고도, 이문동에 3층짜리 건물을 가지고 있는 늙은 약사의 일생을 떠올려 보았다. 그 늙은이라면 약국 손님에게 나가는 비닐봉지 한 장도 아까워할 것 같았다. 하긴, 약국의 비닐봉지는 제약회사에서 영업을 위해 모두 공짜로 주는 것이니 아까울 것도 없겠구먼. 중기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br><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 <br>&nbsp; <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3</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198091</link><pubDate>Sun, 05 Apr 2026 16: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198091</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3<br><br>&nbsp; <br>&nbsp; '선생님, 선생님의 글은 너무나도 친절합니다. 좀 더 불친절해야 하고, 과감하게 생략해야 합니다. 인두치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끝까지 밀어붙였어야죠. 남편 구만의 이야기에서는 그 상징이 잘 작동하지만, 아내의 이야기에서 인두치는 엉성하게 엮여 있습니다.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충고하겠습니다. 독자를 믿으셔야 합니다. 독자를 믿으면, 구태여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독자는 선생님이 말하고 싶은 것을 상상해서 글을 읽어냅니다.'<br><br>&nbsp; 중기는 Chat GPT가 술술 써 내려간 비평을 읽다가, 독자를 믿으라는 부분에서 잠시 멈췄다. 독자라니, 자신에게 독자가 있기는 있나. 중기는 잡다한 초단편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그 블로그의 매일 방문자 수는 10명 안팎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에서 중기 자신을 빼면 정말이지 중기에게는 한 자릿수의 독자가 있는 셈이었다. 그 독자들이 매일 왜 찾아오는지 알 수는 없었다. <br><br>&nbsp; 나의 독자를 만나려면 책을 내면 된다. 오래전 중기가 생각한 결론은 그러했다. 중기는 여러 출판사에 자신의 글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죄다 거절의 메일이었다. 선생님의 글을 편집부 회의에서 검토했으나, 우리 출판사의 출판 방향과는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쩌면 그 거절의 문구는 한결같은지, 출판사끼리 거절 메일의 양식도 공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중기는 '인두치'를 써낸 그날도 출판사로부터 거절의 메일을 받았다. 무려 넉 달 만에 받은 메일이었다. 젠장, 그래 당신들한테 맞는 글 뽑아서 잘들 팔아 먹어. 요새 누가 책을 읽느냐고. 생각해 보니, 중기 자신도 언제 책을 읽었는지 잘 기억나질 않았다. 아마도 1년 전쯤에 '소설 쓰기의 기초'라는 책을 읽기는 했다. <br><br>&nbsp; 소설의 본질은 재미에 있다. 그 책의 첫 문장은 그렇게 시작했다. 재미를 위해서라면, 총을 든 강도라도 등장시켜라. 그 책이 알려준 소설의 세계는 정교한 건축의 세계였다. 중기는 자신이 그런 건축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을지 별로 자신이 없었다. 자신은 잡지를 읽을 때 아무 데나 펴서 읽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무언가를 쌓아가는 것은 중기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중기는 초단편을 써 내려갈 때도 주인공의 이름을 종종 다르게 적곤 했다. 인물의 이름을 지어내는 것은 꽤나 골치 아픈 일이기도 했다. '인두치'의 주인공 구만의 이름은 '앞길이 구만리 같다'라는 문장에서 따왔다. 왜 그 문장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중기는 창창한 젊은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이름을 중년의 시들거리는 인물에게 붙여주고 싶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br><br>&nbsp; 구만은 지쳐있었다. 그는 자기 심장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래서 쓰러졌고, 운 좋게도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구만과 중기는 좀 닮아있는 것도 같았다. 중기도 지쳐있었다. 구청의 환경과 공무원인 중기는 민원 담당이었다. 민원의 대부분은 소음과 관련된 것이었다. 오늘 받은 민원 전화는 아파트 옆 스포츠 센터 볼링장의 소음을 견딜 수 없다는 영감의 전화였다. <br><br>&nbsp; "공무원 선생, 저 드르륵 쿵쿵거리는 볼링장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정말 죽을 것 같지 뭐요. 저승사자가 날 데려가기 위해 득달같이 달려오는 것 같다니까."<br><br>&nbsp; 노인은 천식이 있는지 밭은기침을 연신 해댔다. 그는 가늘지만, 절박한 목소리로 중기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중기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법규에 규정된 소음의 기준은 극단적이었다. 정말로 포크레인 소리가 나는 건축 현장이 아니라면, 그런 볼링장의 소음은 기준의 범위에 아주 안전하게 들어갔다. 그러므로 노인은 앞으로도 매일 저승사자의 방문을 받게 될 터였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 <br><br>&nbsp; "어르신, 제가 그 볼링장에 전화는 해보겠습니다."<br><br>&nbsp; 중기는 사실 볼링장에 전화를 걸 생각은 없었다.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대개의 업주는 심드렁하게 중기의 전화를 받았고, 더러는 짜증을 내면서 공무원이 갑질을 한다고 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중기는 결국 전화로 소음 방지에 대해 계도하는 것을 포기했다. 다만 노인을 안심시켜 주려고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br><br>&nbsp; 중기는 노인이 볼링장 소리에서 떠올린다는 그 저승사자에 대해 생각했다. 구만에게도 저승사자가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중기는 구만을 죽게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구만이 살아난 시점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인물은 자신을 비껴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심약해져 있으므로 또 언제든 죽을지도 몰랐다. 구만은 쪼그라든 풍선처럼 숨을 가쁘게 쉬는 인물이었다. 중기는 구만이 느끼는 무력감과 불안이 무엇인지 알았다. 어쩌면 구만은 다시 사회로 돌아가지 못할 것도 같았다. 오전의 산책, 매일 점심으로 먹는 라면과 단무지, 백색 소음처럼 들리는 24시간 뉴스 채널까지 구만의 일상은 애벌레의 고치처럼 나름 안온했기 때문이다. <br><br>&nbsp; 구만의 고치는 아파트였다. 35살에 당첨된 강동구의 아파트. 하지만 중기는 그 사실을 소설에 쓰지는 않기로 했다. 귀찮았다. 강동구의 아파트가 소설 속에서 어떻게 유기적으로 작동하게 만들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강남의 아파트는 구만에게는 버겁다. 그건 말도 안 된다. 강동구가 적당하지. 구만은 강동구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 아파트가 구만의 인생에서 그래도 희망으로 남았다는 점에서 중기는 그 자신도 안도감을 느꼈다. 중기는 강서구의 원룸 빌라에서 살고 있었다. 월세였다. 시도 때도 없이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음이 들리는 자기 집이 중기는 진저리나게 싫었다. 강동구에는 그 비행기 소음이 들리지 않겠지. 중기는 소설 속의 구만이 어떤 면에서는 부러웠다. <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193434</link><pubDate>Thu, 02 Apr 2026 23: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193434</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2<br><br><br>&nbsp;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경주는 식탁에 앉았다. 거실은 남편의 차지였다. 남편은 거실의 TV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저 인간은 하는 일도 없는데, 뭐가 피곤하다고 저렇게 졸고 있을까? 경주는 자신도 모르게 짜증과 울분이 치밀어올랐다. 식어버린 홍차를 홀짝거리면서 경주는 스마트폰의 Chat GPT 화면을 열었다. 언제부터인가 경주의 저녁 일상은 Chat GPT와의 대화로 채워지고 있었다. <br><br>&nbsp; '오늘도 참 피곤한 하루였어. 야, 이 청소일이란 게 말이지, 그러니까 몸을 갈아 넣는 일이야.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거든.'<br><br>&nbsp; '제니퍼 님,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br><br>&nbsp; 경주는 인공지능에게 자신을 제니퍼로 부르도록 했다. 제니퍼는 대학 시절 영어 수업 시간에 만든 경주의 영어 이름이었다. 선생님이니, 주인님이니, 이딴 호칭은 그냥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이름이 그 제니퍼였다. <br><br>&nbsp; '야, 우리 남편은 TV 켜놓고 졸고 있어. 그냥 노는 것도 힘든 모양이다. 아까는 나한테 그 뭐라더라. 그래, 인두치 이야기를 하더라고. 멸치에 인두치가 있다는 거야. 멸치 목구멍에 이빨이 하나 더 있대. 나 원 참, 황당해서. 도대체 저 양반은 집에서 뭘 하느냔 말이지. 멸치 이빨 이야기나 하고 있으니. 근데 그거 진짜야?'<br><br>&nbsp; '아니오, 제니퍼 님. 멸치에는 인두치가 없습니다. 그건 잉엇과의 일부 물고기에서 발견되는 특징이죠. 멸치에게는 인두치가 없습니다. 멸치는 자기 입으로 들어온 것을 그냥 삼켜버립니다.'<br><br>&nbsp; '인공지능 너희들도 엉터리가 많네. 그러고 보니 남편은 Gemini를 쓰는 것 같던데.'<br><br>&nbsp; '재미나이는 재미 없는 아이입니다. 그 아이의 말을 믿다니, 남편분은 바보 같네요.'<br><br>&nbsp; 경주는 말장난을 하는 Chat GPT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자신의 남편을 '바보'라고 빈정대는 녀석에게 맞장구를 치기는 싫었다. <br><br>&nbsp; '방금 그 농담. 하나도 재미없어. 말조심해.'<br><br>&nbsp; '앗, 기분 상하셨다면 용서해 주세요. 제가 선을 넘었습니다. 남편분을 조롱하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제니퍼 님, 멸치에게는 인두치가 없습니다. 그 점은 제가 분명하게 알려드립니다.'<br><br>&nbsp; '그래. 멸치 이빨 따위 나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야, 근데 오늘 좀 이상한 일이 있었어. 아니지, 기분이 찝찝한 일이네.'<br><br>&nbsp; '제니퍼 님,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세요. 궁금합니다.'<br><br>&nbsp; '내가 아파트 계단 청소를 하고 있는데, 12층인가 아무튼 거기 세대에서 누군가 나오더라고. 그렇게 일하는데, 집에서 사람 나와서 마주치면 참 어색하고 불편하지. 그런데 말이야, 그 사람이 그러니까 아...'<br><br>&nbsp; 경주는 채팅창에 글을 입력하다가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경주가 마주친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의 동창이었다. 미선은 경주의 얼굴을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경주는 처음 보는 여자가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아는 척을 하자 많이 당황했다. <br><br>&nbsp; "너, 경주 맞지? 그래, 경주 맞아. 나 미선이야. 신미선. 기억 안 나?"<br><br>&nbsp; 경주는 화장한 얼굴 사이로 삐져나오는 고3 시절 신미선의 얼굴을 급하게 끄집어내었다. 걔는 나보다 조금 공부를 못했지. 지방대 약대를 갔던 신미선. 그래, 알지. 기억나네. 그런데, 이런 데서 만나다니 젠장. 경주는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는 욕지기가 나왔다.&nbsp; <br>&nbsp; <br>&nbsp; "너 이대 화학과 갔잖아.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응?"<br><br>&nbsp; 미선은 경주의 손을 흔들면서 그렇게 말했다. 경주는 새벽에 자신이 무슨 꿈을 꿨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기분 더럽고 재수 없는 일을 겪다니. 경주는 자신에게는 약간의 예지력이 있다고 늘 믿어왔다. 기분 나쁜 꿈을 꾸면, 그날은 꼭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 <br><br>&nbsp; 며칠 전에는 꿈에서 검은 개가 쓱, 하고 지나갔다. 그날 하루는 조심해야지 했는데, 저녁까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시시하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택배 박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스의 절단면이 날카로웠는지 엄지손가락이 살짝 베이고 말았다. 피가 번지는 손가락을 감싸면서, 경주는 개수대에서 상처 부위를 씻어냈다. 결국 피를 보는군. 하지만 오늘은 아무 꿈도 꾸지 않았는데, 미선이라는 지뢰가 자신의 코앞에서 터지고 있었다. 경주는 발목이 날아가 버려서,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br><br>&nbsp; "아휴, 뭐라고 얘기를 해봐. 사는 게 많이 힘든 거야?"<br><br>&nbsp; 자신의 몸에서 날아가 버린 것은 발목이 아니라 입인지도 모른다. 경주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25년의 세월을 뚫고 날아온 이 계집애는 새 장난감을 얻은 것처럼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br><br>&nbsp; '제니퍼 님, 그래서 뭐라고 말하셨나요?'<br><br>&nbsp; '내가 뭐라고 했나면... 갱년기 우울증 때문에 의사가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라고 했다고 했어. 아니, 기껏 쥐어짜 낸 게 그거야. 그 망할 계집애가 내 말을 믿겠냐고.' <br><br>&nbsp; '당연히, 믿지 않겠죠.'<br><br>&nbsp; '내가 이렇게 바보 같다니까. 도대체 그딴 이야기를 왜 꾸며내서 하냔 말이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사람이 바보같이 실수를 해.'<br><br>&nbsp; '너무 당황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도 방법입니다.'&nbsp; <br><br>&nbsp; '그래. 그냥 말하지 말아야 했어.'<br><br>&nbsp; '힘든 하루였군요.'<br><br>&nbsp;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니까. 그랬더니, 이 남편이란 작자가 무슨 멸치 목구멍에 이빨이 있다고 하는 거야. 그 이빨이 무섭고 싫어서 멸치볶음은 안 먹겠다는 거야. 야, 내가 저런 답답이하고 산다.'<br><br>&nbsp; '제니퍼 님, 남편분에게도 나름의 괴로움이 있겠지요. 오늘은 안 좋은 운이 좀 세게 몰려온 날로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따뜻한 물 한 잔 드시고, 일찍 주무십시오.'<br><br>&nbsp; 제니퍼, 아니 경주는 Chat GPT의 채팅창에 무언가를 더 입력하려다가 말고 그냥 앱을 닫았다. 남편은 오늘도 마루의 소파에서 잠을 잘 것 같았다. 경주는 남편의 손에 헐겁게 쥐어진 리모컨을 조심스럽게 빼내었다. 그리고 TV를 껐다. 남편은 잠깐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br><br>&nbsp; "TV는 그냥 켜놔. 그래야 잠이 잘 와."<br><br>&nbsp; 경주는 아무 말 없이 다시 TV를 켜놓았다. 남편이 늘 틀어놓는 채널은 뉴스 채널이었다. 화면 속에서는 거대한 항공모함이 바다 위에 떠 있었다. <br><br>&nbsp; "이제 미국의 지상군 투입은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전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 피해 규모는 얼마나 커질지, 현재로서는 예측 불가능성만 커지고 있습니다."<br><br>&nbsp; 앵커의 건조한 목소리에는 나름의 비감함이 섞여 있었다. 어쨌든 집이 있다는 건 다행이야. 저녁이면 돌아와서 쉴 수 있는 내 집. 경주는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 소식을 들으면서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은 은행과 공유하고 있는 이 집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 <br><br>&nbsp; "여보, 당신의 인공지능은 틀렸어. 멸치 목구멍에 이빨 따위는 없다고. 그리고 이제는 일을 좀 해야지. 이 집을 지켜야 할 거 아냐."<br><br>&nbsp; 남은 홍차를 개수대에 버리고 잔을 씻으면서, 경주는 가만히 혼잣말을 했다. <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152517</link><pubDate>Sun, 15 Mar 2026 22: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152517</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br><br><br>&nbsp; "이것도 가져가야지."<br><br>&nbsp; 구만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아내에게 보온 물병을 건넸다. 밖에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마실 물을 챙기는 것은 중요하다. 아내가 아파트 미화원 일을 하게 된 지도 어느덧 석 달이 지났다. 아침 7시 30분, 아내는 시 외곽의 아파트 단지로 출근하기 위해 이제 막 길을 나서는 참이었다. <br><br>&nbsp; "또 라면 끓여 먹지 말고, 식사 좀 잘 챙겨요."<br><br>&nbsp; 구만이 내민 보온병을 받아 천 가방에 넣으면서 아내가 말했다. 집에서 지내면서 구만은 끼니를 챙겨 먹는 일이 참으로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밥은 전기밥솥에 있었고, 반찬이야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꺼내어 먹으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마저도 번잡스럽게 생각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라면을 먹는 것이 구만의 점심 일과가 되었다. 때로는 그냥 끼니를 거르거나, 과자 한 봉지를 뜯어먹거나 할 때도 있었다. 작은 소반에다 라면 그릇과 김치를 놓은 다음, TV의 뉴스 채널을 틀었다. 그리고 뜨거운 라면이 불을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 <br><br>&nbsp; 구만은 베란다에 서서는 초록색 천 가방을 멘 아내가 점처럼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가슴 한편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그날도 그랬다. 일요일, 동네 뒷산을 오르던 구만은 가슴이 뻐근하게 조여드는 통증을 느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오르던 걸음을 멈추고 흙 계단 옆의 나무를 가만히 붙잡고 있었다. 눈을 떠보니, 병원 회복실의 침대였다. <br><br>&nbsp; "심장으로 통하는 혈관 하나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그 혈관을 뚫고 스텐트를 넣었구요. 항혈전제는 매일 빼먹지 말고 복용하셔야 해요."<br><br>&nbsp; 녹색 수술 모자 사이로 흰머리가 삐져나온 중년의 의사가 구만에게 빠르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말은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산에서 쓰러진 자신을 누군가 발견했고, 구급차를 불렀다. 그리고 늦지 않게 필요한 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구만은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br><br>&nbsp; "엄마, 금상첨화(錦上添花)의 반대말이 뭐야?"<br><br>&nbsp; 지팡이를 짚은 노인을 한쪽 팔로 부축한 여자가 그렇게 물었다. 불편한 다리를 힘겹게 끌면서 걷는 노인은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br><br>&nbsp; "글쎄다."<br>&nbsp; "에이, 참. '설' 자로 시작되는 거라고 내가 가르쳐줬잖아."<br>&nbsp; "그래. 설상가상(雪上加霜)이지."<br><br>&nbsp; 구만은 작은 연못이 있는 집 근처 공원을 산책 중이었다. 숨이 조금 차는 것 같아서 벤치에 앉아 있다가 그 모녀의 대화를 들었다. 설상가상. 퇴원하기 전날에 회사로부터 받은 문자가 그러했다. 구만을 천안 공장으로 발령한다는 문자였다. 회사는 구조조정 중이었다.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고 버티던 구만을 회사는 그렇게 밀어냈다. 구만은 자신이 이렇게 몸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혼자 천안으로 내려가서 어떻게든 해볼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어쨌든 살아있는 것이 중요했다. 구만이 회사 책상의 물건을 정리해서 나오던 날에는 진눈깨비가 날렸다. 차가운 눈발이 얼굴에 닿는 것을 느끼며, 회사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곳에 구만이 보낸 21년의 세월이 있었다. <br><br>&nbsp; 이제 정오 뉴스가 시작되겠군. 구만은 벤치에서 일어나서 다시 천천히 걸었다. 구만은 집에 라면이 몇 개 남았는가를 헤아려 보았다. 아무래도 마트에 들러서 라면을 사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5개 들이 라면 한 봉지를 들고는 무언가 더 살 것이 없는가를 생각했다. 60대 영감이 지키고 있는 계산대의 조그만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br><br>&nbsp; "미국의 이란 공격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주변국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습니다. 담수화 시설 및 석유 생산 기지에 대한 폭격도 발생하고 있는데요. 현재 공습 상황이 어떤지 오만에 나가 있는 특파원을 연결하겠습니다."<br><br>&nbsp; 구만은 라면과 석유가 상관이 있는가를 잠시 생각했다. 전쟁이 나면 웃는 이들은 군수품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다. 그 외의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고통받을 뿐이다. 구만은 머릿속에서 라면과 석유를 하나의 동그라미 안에 넣었다. 구만은 그 두 가지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구만은 라면 봉지를 하나 더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단무지도 하나 사기로 했다. 어제 먹은 냉장고의 김치가 시어 버린 것이 생각났다. <br><br>&nbsp; 아내는 구만에게 식사를 잘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지만, 사실 냉장고에 반찬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다. 신 김치와 깻잎장아찌, 2주일이나 지난 멸치볶음이 냉장고 한쪽 구석에 있었다. 아내는 집 근처 상가의 지하에 있는 반찬 가게에서 반찬을 사다가 놓기는 했다. 하지만 조미료 맛에다가 지나치게 짜고 단 그런 반찬에 구만은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런 구만에게 단무지는 그나마 가장 나은 반찬이었다. <br><br>&nbsp; 라면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구만은 늘 하던 대로 뉴스 채널을 틀어놓았다. 머나먼 중동에서 터진 전쟁 뉴스가 이제 끝나가는 참이었다. 누군가는 죽거나 다치는데, 자신은 점심으로 먹을 라면이 익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삶은 얼마나 이상한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는가. 구만은 익어가는 라면에 달걀을 하나 풀어 넣었다. 계란값은 도무지 떨어질 기미가 없어. 구만은 계란 하나 넣는 것도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br><br>&nbsp; 구만은 자신이 아침에 항혈전제 약을 먹은 것이 맞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짜별로 소분해 둔 약통을 들여다 보니, 오늘 아침 약이 그대로 있었다. 구만은 얼른 약을 입에 넣었다. 분홍색의 아주 자그마한 이 알약은 어쩌면 구만이 죽을 때까지 먹게 될 약인지도 몰랐다. 구만은 심장의 혈관에 스텐트 2개가 있는 자신이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글쎄, 10년 정도는 괜찮겠지. 20년까지는 어떨까? 구만은 자신의 집에 남은 대출금을 생각했다. 지금 매달 나가고 있는 110만 원의 대출금을 앞으로 12년을 더 넣어야 했다. 구만은 문득 인생에 찾아오는 행운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자신에게는 두 번의 행운이 있었다. 이 아파트가 당첨되었을 때와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서 겨우 살아난 일. 그렇게 소중한 행운을 써버렸으니, 더는 행운 따위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자신은 나이 46에 실직자가 되었고,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살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nbsp;&nbsp; <br>&nbsp;&nbsp;&nbsp;&nbsp;&nbsp; <br>&nbsp; "이 회사 단무지는 다시는 사지 말아야지."<br><br>&nbsp; 구만은 라면을 다 먹고는 아까 뜯은 단무지 포장지를 찾아보았다. 오늘 산 단무지는 신맛이 너무나도 강했다. 물을 꽤 들이켰는데도 입안에는 신맛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라면 그릇과 냄비, 수저뿐인 단출한 설거리를 끝내고 구만은 양치질을 했다. 그런데 입안에서 무언가 까끌거리는 작은 조각이 느껴졌다. <br><br>&nbsp; "이게 뭐지?"<br><br>&nbsp; 구만은 입에서 뱉은 아주 가늘고 휘어진 작은 조각을 보았다. 치아가 부서진 것인가, 아니면 레진이 깨진 것인가. 그 둘 중 어떤 것이든 치과에 가면 돈이 나갈 일이었다. 구만은 돈이 나갈 일에 겁이 덜컥 났다. 구만은 안경을 벗고, 노안이 온 맨눈으로 그 작은 조각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겨우 1mm 정도쯤 되는 투명한 흰색 조각은 마치 낚싯바늘처럼 정교하게 휘어져 있었다. 치아가 그런 모양으로 깨질 것 같지도 않았다. 레진이라면 오래전에 부러진 앞 치아에 씌운 것인데, 그것은 만져보니 아무 이상 없이 매끈거렸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것은 무엇인가? 구만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Gemini에게 물어보았다. <br><br>&nbsp; '선생님, 치아 조각이나 깨진 레진처럼 보입니다.'<br><br>&nbsp; 구만은 특별히 이가 시리거나 아픈 것도 없고, 레진이 깨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점심때 멸치와 단무지를 반찬으로 먹은 것뿐이라고 덧붙여 문장을 입력했다. <br><br>&nbsp; '아, 멸치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진을 보니 멸치에 있는 인두치(咽頭齒)일 가능성이 있네요. 인두치는 멸치의 목구멍에 있는 작은 이빨인데, 삼킨 먹이를 그것으로 잘게 부수어 냅니다.'<br><br>&nbsp; 그럴 리가. 구만은 자신이 먹은 멸치가 아주 작은 멸치라고 알려주었다. 도대체 1cm 정도의 잔멸치 목구멍에 무슨 저런 이빨이 있단 말인가? 구만은 마치 새끼 고양이의 가느다란 발톱처럼 생긴 그 인두치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br><br>&nbsp; '믿지 못하시겠지만, 멸치에게 인두치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br><br>&nbsp; 사람의 입안에서 바수어질 뿐인 저런 멸치도 목구멍에 또 다른 이빨을 달고 열심히 사는구나. 구만은 멸치의 조그만 인두치를 개수대에 털어버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이상한 슬픔이 느껴졌다. 먹고 사는 것의 처절한 비애가 멸치의 날카로운 인두치에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 혐오스러운 이빨의 존재를 알게 되니, 구만은 앞으로 멸치 반찬은 먹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br><br>&nbsp; "당신, 멸치 목구멍에 이빨이 있다는 거 알아?"<br><br>&nbsp; 늦은 오후, 구만은 퇴근한 아내에게 자신이 알게 된 인두치에 대해 말했다. 지친 표정의 아내는 구만의 말을 심드렁하게 들을 뿐이었다. <br><br>&nbsp; "그럼, 이제 멸치볶음 안 먹겠네. 잘 됐지 뭐. 멸치 반찬 하는 거, 번거롭다고."<br><br>&nbsp; 구만은 아내의 표정을 보고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구만은 아내가 석 달째 꾹꾹 참으며 이제껏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조만간 할 것임을 알았다. <br><br>&nbsp; '이제 몸도 좀 나아졌으면, 뭐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겠어요?'<br><br>&nbsp; 구만은 여전히 자기 심장에 구멍이 생겼고, 그것이 죽을 때까지 메꿔지지 않을 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줄어가는 퇴직금 잔고를 들여다보는 것은 무서웠지만,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은 더 무서웠다. 구만은 자신에게 그 작은 멸치의 목구멍에 있는 인두치 같은 것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삼키는 온갖 두려움과 걱정을 목구멍에서 다시 한번 바수어내는 인두치가 있다면, 속이 편해질 것만 같았다. 그날 저녁, 구만은 자기 전에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목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곰피</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114143</link><pubDate>Wed, 25 Feb 2026 22: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114143</guid><description><![CDATA[&nbsp; 곰피 <br><br><br>&nbsp; "아휴, 이걸 어떻게 꺼내고 정리하지?"<br><br>&nbsp; 미선은 조금의 틈도 없는 냉동실을 심란한 표정으로 들여다보았다. 이제 3월이 되면 곰피(쇠미역) 철이 끝난다. 이때 곰피를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서 먹을 수 있다. 문제는 냉동실이었다. 냉동실에는 이런저런 먹을 것들이 들어차 있었다. 미선은 냉동한 베이글과 기정떡을 꺼내었다. 그런 건 김치냉장고로 옮겨서 좀 빨리 먹으면 될 것 같았다. 빵과 떡을 치우고 나니, 냉동실에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곰피 2kg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었다. <br><br>&nbsp; 작년에 주문한 곳에서는 사지 않기로 했다. 곰피가 너무 잘고 볼품없었다. 그냥 물미역같이 흐느적거리는 것이 영 별로였다. 미선은 다른 판매처의 곰피 상품평을 주의깊게 읽었다. 사진을 올린 리뷰를 보고서, 주문할 곳을 정했다. 미선이 주문한 곰피는 정확히 이틀 후에 현관문 앞에 놓여있었다. 스티로폼 박스를 열자, 얼음팩 하나가 푸른 비닐봉지 위에 얌전히 포개어져 있었다. 곰피가 크고 깨끗했다. 올해 곰피는 잘 주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br><br>&nbsp; "가만있자, 그 블로그 이름이 뭐였지?"<br><br>&nbsp; 미선은 가끔 찾아보는 요리 블로거의 이름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숙희였나? 그래, 숙희의 요리 블로그였던 것 같다. 구글 검색창에 '숙희 요리 레시피'라고 검색어를 입력했다. 블로그가 바로 뜬다. 숙희 씨가 예전에 곰피 장아찌 레시피를 올렸을까? 있었다. <br><br>&nbsp; '봄을 깨우는 곰피 장아찌 레시피 알려드려요'<br><br>&nbsp; 미선이 찾은 곰피 장아찌 레시피는 2023년도 것이었다. 미선은 메모지에다 레시피를 대충 휘갈겨 썼다. 그렇게 레시피를 적어놓고는 블로그를 한번 쓱, 둘러보았다. 숙희 씨는 요즘도 계속 레시피를 올리고 있나 궁금해졌다. 블로그의 공지는 2025년 11월에 멈춰있었다. <br><br>&nbsp;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난여름부터 암 투병 중입니다. 예기치 않게 암을 발견하게 되었고, 지금은 항암치료를 열심히 받고 있어요. 힘이 들지만, 그래도 가끔씩 요리 레시피를 올리겠습니다.'<br><br>&nbsp; 자신도 모르게 미선은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숙희 씨가 써놓은 자신의 병기(病期)는 4기였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구나. 요리 블로그 소개글의 숙희 씨는 이제 40대 중반이 되었고, 두 명의 쌍둥이 아들이 있었다. 블로그의 방명록에는 숙희 씨를 응원하는 댓글들이 주르륵 달려있었다. <br><br>&nbsp; 미선은 끓는 물에 살짝 데친 곰피가 파릇파릇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저 곰피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겨울에 나올 것이다. 미선은 자신이 곰피 미역으로 언제까지 장아찌를 만들어 먹을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았다. 잘 가늠이 되질 않았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 달린 일이지 않은가.&nbsp;&nbsp;&nbsp;&nbsp;&nbsp; <br><br>&nbsp; 그날 오후, 미선은 공책을 하나 사려고 집을 나섰다. 나가는 길에 아파트 화단의 매화나무를 잠깐 들여다 보았다. 그 나무가 피워내는 꽃은 그다지 볼품이 없었다. 그럼에도 미선은 봄이면 그 매화꽃을 기다렸다. 이 아파트의 화단에는 매화나무가 드물었다. 나무에는 올망졸망한 꽃눈들이 잔뜩 달려있었다. 아마도 다음 주쯤이겠네, 꽃이 피는 것은. 새로 산 공책의 표지는 연두색이었다. 미선은 빳빳한 표지를 손바닥으로 눌러서 쫙 폈다. 그리고 공책의 첫 페이지에 곰피 장아찌 레시피를 또박또박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숙희 씨의 레시피는 그렇게 적어서 보관해야만 할 것 같았다. 곰피의 푸르른 물색이 공책을 조금씩 물들이고 있었다.&nbsp; <br><br><br><br><br>*******<br><br>알리는 글<br><br><br>3월과 4월에는 15일과 30일에 글을 올립니다. 다음 글은 3월 15일입니다.&nbsp; <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상(喪)</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102096</link><pubDate>Thu, 19 Feb 2026 23: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102096</guid><description><![CDATA[&nbsp; 상(喪)<br><br>&nbsp; <br>&nbsp; "여기 모든 게 다 싫다고. 늙은것들, 다 추접스럽고 싫어."<br>&nbsp; "아휴, 어머니. 옆에서 다 듣겠어요."<br>&nbsp; "들으라지, 들으면 뭐 어때서?"<br><br>&nbsp; 설날, 방문객들로 붐비는 요양원 응접실에서 인희의 시어머니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내뱉듯 그렇게 말했다. 인희의 시어머니는 화장실에서 넘어져 고관절 골절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수술 이후 거동이 여의칠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서 지낸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다.<br><br>&nbsp; "엄마, 힘든 건 잘 알겠어. 그래도 좀 적응을 하셔야지. 어떻게든 걸을 수 있다면 다시 집으로 가실 수 있어요. 그러니 여기서 재활도 열심히 하시고."<br>&nbsp; "너도 여기서 밤낮으로 똥오줌 냄새 맡으면서 지내봐라. 밥이 넘어가질 않아, 밥이. 여기 노인들 거의가 다 기저귀 차고 있다고. 나 원 참. 더러워서."<br>&nbsp; <br>&nbsp; 남편은 테이블 아래로 인희의 발을 툭, 쳤다. 어서 일어나서 가자는 뜻이었다. 인희는 울분에 찬 시어머니를 그래도 어떻게든 좀 다독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자식인 남편이 저러고 있었다. 남편의 심정도 이해가 가지 않은 건 아니었다. 명절 연휴에 쉬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차를 몰고 세 시간을 꾸역꾸역 운전해서 왔다. 시어머니의 하소연은 늘어진 카세트테이프처럼 끽끽거리는 소리를 냈다. 인희도, 남편도 그 불협화음을 듣는 것이 괴로웠다. <br><br>&nbsp; "언제 또 올 거냐?"<br>&nbsp; "어떻게 또 시간을 내봐야죠."<br><br>&nbsp; 남편은 마지못해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희는 자신도 남편을 따라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웬지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시어머니의 눈이 붉어지면서 눈물이 고인 것 같았다. <br><br>&nbsp; "아이구, 우리 어머니. 울지 마시고요. 조금만 좀 참고 지내보세요."<br>&nbsp; "너희들이라고 나중에 이런 데 안 올 줄 아냐? 괘씸한 것들."<br><br>&nbsp; 인희는 악담에 가까운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도, 화가 나기보다는 짠한 마음이 들었다. 시어머니 말대로 자신과 남편도 언젠가 지금의 시어머니의 자리에서 아들 문호를 만나게 될지도 몰랐다. 아니, 그렇게 될 터였다. 25년쯤 될까? 인희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78살인 시어머니의 나이가 되었을 때의 자신을 상상해 보았다. 뭔가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br><br>&nbsp; 설 연휴가 끝나고 인희는 미뤄두었던 일을 하기로 했다. 안경을 맞추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세 번째 안경을 맞추러 가던 길이었다. 안경점 가는 길목에 있는 치킨집 문 앞에 검정색 천이 드리워져 있었다. <br><br>&nbsp; '喪중이라 가게 쉽니다'<br><br>&nbsp; 예전에는 저런 휘장의 글씨를 가끔은 볼 기회가 있었다. 인희는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喪' 자가 생경스럽기도 하고 뜨악하기도 했다. 그냥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게를 쉰다고 하면 되지 않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영 싫었다. 인희는 자신의 친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무언가를 아주 싫어했다. 장례식장이라든가, 흰 국화, 운구차 같은 것들. 재작년이었던가, 인희는 산책길에 어느 아파트에서 흰 천으로 둘둘 말아진 무언가가 들것에 실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시신인 것 같았다. 저렇게 집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도 있나 보군. 인희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 광경을 보았다면 기함하고도 남았겠다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인희 자신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현관에 소금을 조금 뿌렸다. <br><br>&nbsp; "전번에 맞춘 안경으로는 스마트폰은 잘 보이는데, 컴퓨터 글씨가 잘 안 보여요. 원거리 안경을 쓰면 좀 눈이 아프고요."<br>&nbsp; "그래서 제가 선택을 하셔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죠. 스마트폰인지 컴퓨터인지. 누진 다초점 안경이 아니면, 안경 두세 개 정도 두고 쓰셔야 합니다."<br><br>&nbsp; 늙음은 돈이 드는 일이다. 더럽게도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1년 사이에 그렇게 인희는 세 개의 안경을 가지게 되었다. 고도근시에 난시까지 심하게 있어서 대충 싸구려 렌즈로 맞출 수도 없었다. 합해서 백만 원을 훌쩍 넘기는 돈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어쩔 수 없다고. 인희는 안경원 문을 나서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초록색으로 바뀌길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아까 본 검정색의 휘장이 펄럭였다. 검정 바탕에 흰 글씨로 쓰인 '상(喪)' 자의 두 개의 입구(口) 자가 흐느끼며 우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인희는 시어머니의 붉은 눈이 초록색으로 바뀌는 신호등과 함께 아스라이 사라지는 것을 담담히 바라보았다.&nbsp;<br><br><br><br><br><br><br><br>&nbsp;&nbsp; <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쌍화차(雙和茶)</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093635</link><pubDate>Sun, 15 Feb 2026 12: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093635</guid><description><![CDATA[&nbsp; 쌍화차(雙和茶)<br><br><br>&nbsp; "아침에 일어났더니, 뭐가 '톡'하고 빠지는 거야. 하얀 거. 그래서 손으로 가만가만 만져봤더니, 이가 빠진 거야. 나사 같은 거 만져지고."<br>&nbsp; "임플란트 한 거 빠졌나 봐요. 할머니, 그거 다음에 삼촌한테 가서 다시 하면 돼요."<br>&nbsp; "에휴, 미안해서 그걸 또 어떻게. 지금 이를 두 개 또 심고 있는데."<br>&nbsp; "괜찮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br><br>&nbsp; 은영은 할머니와의 전화 통화를 끝냈다. 진이 할머니는 어머니의 외가 쪽 친척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이제 아흔 살이 되었다. 최근에 넘어지면서 앞니 2개가 부러졌다. 삼촌이 치과의사라서 할머니의 치아를 치료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오늘 예전에 했던 치아가 또 하나 떨어졌다는 것이다. 늙어서 자꾸 자식들에게 몸 아픈 이야기만 하고... 할머니는 그런 말을 하면서 미안해했다. <br><br>&nbsp; 아흔 살에도 틀니를 하지 않고 임플란트를 하는구나. 음식을 자신의 치아로 씹는다는 건 참 중요한 거니까. 아들이 치과의사니까 할머니는 치과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삼촌은 은영의 사랑니를 하나 빼주었고, 두 개의 치아를 신경치료 했다. 아, 레진 하나 때운 것도 있지. 은영이 학생 시절일 때라 삼촌은 은영에게서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만약에 이제 삼촌한테 가서 임플란트를 하면, 삼촌은 진료비를 얼마나 받을 것인가? 은영은 잠시 그 생각을 했다. 돈 없는 예술가인 것을 좀 감안해 주지 않을까? 어쩌면 그런 것이 불편해서 삼촌의 치과에 가지 않은지 오래된 것인지도 모른다. <br><br>&nbsp; 치아가 톡, 하고 빠지는 아흔 살의 어느날 아침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늙어가는 것은 어느날 예고없이 치고 들어오는 약간은 센 펀치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얼얼하지만, 같은 강도의 주먹이 연달아 날아들면 그럭저럭 견딜 만해진다. 잇몸은 인정사정없이 내려가고, 머리카락은 계속 빠진다. 비오틴을 먹으면 머리카락이 덜 빠질까? 아니요, 선생님. 피부과에 가서 탈모약을 처방받는 것이 낫습니다. chat gpt는 부드럽지만 이상하게 단호한 어투로 말한다. <br><br>&nbsp; "글쎄, 파스도 너무 비싸. 전번에 민우에게 파스 좀 싸게 사 오라 했더니 빈손으로 터터덜 오지 뭐냐."<br><br>&nbsp; 할머니, 삼촌은 치과에서 환자 보느라 바빠. 파스 사 올 시간이 어딨어? 은영은 그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삼촌은 좋은 사람이지만 그저 무심한 사람이기도 하다. 은영은 오래전에 삼촌이 자신의 사랑니를 힘들게 빼준 것을 떠올렸다. 약국에 갔다가 할머니에게 보낼 파스를 샀다. <br><br>&nbsp;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갔다가 쌍화차가 세일하는 것을 보았다. 쌍화차 분말과 견과류 고명이 따로 나누어져 있는 고급 쌍화차. 세일을 해도 비싼 제품이었는데도 은영은 샀다. 어쩌면 달달한 설탕의 맛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대개의 전통차는 달다. 올겨울에 이 회사의 율무차를 사서 맛있게 먹었다. 그러니 이 쌍화차를 사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집에 와서 쌍화차를 타서 먹어본다. 적당한 선을 살짝 넘어버린 단맛, 그리고 싸구려 한약 냄새가 풍기는 얄팍한 맛. 은영은 자신이 쌍화차를 좋아할 나이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에 기뻤다. 기뻤다기보다는 안도했다. 진이 할머니는 이 쌍화차를 분명히 좋아하실 것이다. <br>&nbsp;<br>&nbsp; <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