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별이 보이는 창가 (푸른별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영화글은 구글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블로그 주소:https://sirius1001.blogspot.com/</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15 Jul 2026 17:41:21 +0900</lastBuildDate><image><title>푸른별</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4128919332979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푸른별</description></image><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7월의 난간(欄干) </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377564</link><pubDate>Mon, 06 Jul 2026 22: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377564</guid><description><![CDATA[&nbsp; 7월의 난간(欄干) <br><br><br>1.<br><br>&nbsp; 소년은 난간에 매달려 있다.<br>&nbsp; 자신의 발밑으로 떠내려가는 무언가를 본다.<br><br><br>2.<br><br>&nbsp; 학생 시절에 내가 쓴 시는 3.5인치 플로피 디스크(floppy disk) 안에 얌전히 잠들어 있다. 지금의 컴퓨터는 플로피 디스크를 인식하지 못하므로, 이제는 이 시를 읽어낼 방법이 없다. 아마도 그 시의 제목은 '난간(欄干)'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난간'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시 창작 워크숍을 강의하던 시인 선생은 내가 쓴 그 시를 칭찬했다. 그 학기 중에 내가 들은 드문 칭찬 가운데 하나였다. 나머지 나의 시에 대해서, 선생은 침묵했다.<br><br>&nbsp; 그 수업을 같이 들었던 A와 B는 이듬해 각각 시와 소설로 등단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이제 나는 그들의 이름이 가끔은 공모전의 심사위원 명단에 있는 것을 확인한다. 내가 왜 좀 더 젊었을 때 글쓰기에 매진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고는, 새삼 후회하는 마음이 든다. 늦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늦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말은 완벽하게 틀린 말이다. 늦은 것은 늦은 것이다. 돌이킬 수 없다.<br><br><br>3.<br><br>&nbsp; 눈의 알레르기가 심해져서 안과를 예약하려고 보니, 내 주치의가 병원 홈페이지에서 보이질 않는다. 그 의사는 눈을 참 잘 보았다. 내 생각에 그렇게 실력이 좋은 의사는 보통 그들 세계에서 로컬(local)이라고 부르는 개인 병원에 오래 있질 않았다. 이전의 주치의가 그곳에서 2년을 있다가 대학병원으로 갔듯이, 이 의사도 다른 도시의 대학병원으로 가버렸다. 나는 진료 예약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뭔가 약속 장소에 나갔다가 바람맞은 사람의 심정이 된다. 새로 온 의사는 어떤지 또 기대해 보고, 그 실력을 가늠해 보는 과정은 피곤하다.&nbsp;&nbsp;&nbsp; <br><br>&nbsp; 의사들의 경력을 보다 보면, 뭔가 나름의 정해진 경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로컬이든 대학병원이든, 자신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따라가는 트랙이 있다. 나는 그러한 명확한 경로, 트랙,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직업의 세계와 글쓰기를 비교해 본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무슨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길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변수가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에 진학하려고 다들 목을 매는 것처럼, 작가 지망생들은 '등단'에 필사적이다. 등단해야 그래도 '작가'라는 직업적 명함을 내밀 수 있으니까. 그 등단의 경로도 워낙 복마전(伏魔殿) 같은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br><br>&nbsp; 얼마 전에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그런 글을 읽었다. 가정주부인 여자가 자비 출판(自費出版)으로 책을 냈다. 수필집인지 시집인지 아무튼,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낸 여자는 그 이후로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작가'로 소개한다고 했다. 어떤 이는 여자에게 멋지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그건 좀 아니잖아, 라고 썼다. 와, 정말 뻔뻔한 사람이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우리가 '작가'라고 부르는 직업의 기준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br><br><br>4.<br><br>&nbsp; 그 본관 건물은 꽤 낡았다. 공간도 협소했다. 복도는 두 명 정도가 걸어 다니기에 적합한 너비였다. 그 좁고 불편한 건물에 예술학교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공부를 했다. 건물의 가장자리는 옆 건물과의 연결 통로로,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난간이라고 해도, 뭔가 위험해 보이고 그런 느낌이라기보다는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면 그곳에 쏟아져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에 대해 뒷담화를 했다. 말하자면, 만남의 광장 같은 그런 곳이었다. <br><br>&nbsp; 내가 그 당시에 쓴 시는 그 난간을 생각하면서 쓴 시였다. 그 비좁고 낡은 건물은 내가 재학 중에 버려졌다. 나중에 크고 멋진 신축 건물에서 수업을 들었지만, 나는 예전의 본관을 지나다니면서 가끔은 그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시일이 지나 건물은 폐쇄되었고, 결국 그 난간에도 다시는 가볼 수 없었다.<br><br>&nbsp; 덥고 축축한 7월의 대기가 흐르는 그 난간에 문득 다시 서보고 싶어졌다. 사실, 내가 쓴 시의 화자가 소년이었는지, 소녀였는지, 늙은이였는지, 청년이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누가 되었든, 그는 그 난간 아래로 무언가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가버린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슬프거나 괴롭지는 않다. 소망하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없이, 앞으로도 그냥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다.<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고양이의 행방</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360404</link><pubDate>Sun, 28 Jun 2026 20: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360404</guid><description><![CDATA[&nbsp; 고양이의 행방<br><br><br>1. <br><br>&nbsp; 고양이를 찾습니다. 12살. 복도에서 잃어버렸고, 이름은 ***. 사진 속의 고양이를 보신 분은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주세요. 소정의 사례금도 잊지 않겠습니다. <br><br>&nbsp; 엘리베이터 안쪽에 붙여진 전단은 한 달째 그대로다. 아직도 찾지 못했군. 고양이가 12살이면, 사람으로 치면 환갑쯤 되나. 죽기 전에 뭔가 자유를 찾아 떠난 것 같기도 하고. 고양이는 영역 동물인데, 저 늙은 회색 고양이가 이 근방 아파트의 고양이들과 어떻게 부대끼며 살 수 있을까? 밥은 굶지 않을 거야. 고양이 사료 챙겨주는 캣맘이 한둘이 아니니까. <br><br>&nbsp; 나는 고양이가 집이 답답한 나머지 가출을 한 것인지, 아니면 어쩌다가 열린 문틈으로 나가서 결국 돌아오지 못하는 것인지 생각을 해본다. 하긴, 내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가끔 인근 공원에서 목이 부러진 비둘기 사체를 볼 때가 있는데, 그곳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의 짓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나에게 그 공원의 고양이는 포악한 들짐승으로 생각될 뿐이다. 그런 고양이처럼 집을 나간 ***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12살이면 살 만큼 살았으니, 묘생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br><br>2.<br><br>&nbsp; "그러니까 이제는 말이야. 아저씨 죽을 날 받아놓고, 가족들 모두 기다리고 있는 거야. 남자 간병인 들여서 아저씨 돌보게 한 게 벌써 한 달이네. 매일 아침 큰딸이 가서 지 아버지 얼굴 보고 오기는 하지. 나도 기운이 너무 빠져서, 밥도 못 먹고 있어."<br><br>&nbsp; 팔순이 된 아주머니의 갈라진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아주머니는 어머니의 아주 오랜 친구이다. 아주머니의 남편은 뇌종양 말기로 임종을 앞두고 있다. 나는 생판 모르는 간병인과 하루를 보내는 그 아저씨의 마지막 날들에 대해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식들은 타지에 있고, 늙은 배우자는 간병을 할 여력이 없다. 문득, 9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그래도 잘 지내다 가셨구나 싶다. 그때는 어머니가 1년 가까이 간병하셨다. 어머니의 체력이 그나마 받쳐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생을 마감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가끔, 돌아가신 아버지는 어디에 계시는지 생각해 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디에 계시겠지. 어떤 한 자리.&nbsp;&nbsp; <br><br>3. <br><br>&nbsp; '새끼 참새를 집 앞에서 주웠어요. 자, 이것 보세요. 엄지손가락 2개 정도만 해요. 따뜻한 걸 보니 살아있어요. 근데, 내 아내는 새라면 질색해요. 집에 가져갈 수도 없고. 그래서 오다가 경비실에 들러서 그냥 주고 왔어요. 경비 아저씨가 황당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br><br>&nbsp; 남자는 커뮤니티의 자유게시판에 그런 글을 올렸다. 정말로 사진 속 새끼 참새는 밤톨만 했다. 나는 그 참새를 건네받은 경비가 어떻게 했을지를 생각해 본다. 무슨 야생동물 구조협회 같은 데다 신고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냥 근처 화단에 놓아두지 않았을까. 무슨 희귀종 새도 아니고, 참새는 아주 흔한 새다. 그러니 그런 참새 새끼 한 마리 죽는다고 해도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br><br>&nbsp; 살았을까, 죽었을까? 그래도 그 밤톨만한 새끼 참새가 이틀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눈을 감고,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는 새끼 참새. 그것은 마치 국민학교 6학년 때,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 2마리 가운데 죽어버린 한 마리와 닮았다. 나머지 한 마리는 붉은 볏이 선명해질 때까지 살아남았다. 할머니는 사료를 사다가 그 닭을 베란다에서 열심히 키우셨다. 그리고 나중에 어머니는 그 닭을 시장 닭집에서 손질해 오셨다. 닭백숙은 식탁에서 오랫동안 식은 채로 남아 있었다.<br><br>4. <br><br>&nbsp; 조그만 부엌 창문으로 보이는 오래된 벚나무가 있다. 이 아파트가 지어질 때 심은 35년 된 벚나무. 어제 저녁에 식탁에 앉아 있는데, 밖에서 이상한 기계 소리가 났다. 가만히 들어보니 매미 우는 소리였다. 올해 처음으로 듣는 매미 소리였다. 그렇군. 매미가 울 때가 되었나 보군. 나는 저 매미가 올여름 맹렬히 짝을 찾아 울고, 그렇게 짝을 찾고, 자기 후손을 남기고 죽는 그리 멀지 않은 여름의 마지막 날에 먼저 가본다. 그 매미의 새끼가 땅속에 있다가 다시 기어 나와 저 나무에서 울 때, 몇 년 뒤에 내가 이 집에서 계속 살고 있을지를 생각한다. 모를 일이다. 지겹고도 낡은 집. 깨끗하고 좋은 집은 비싸다. <br><br>&nbsp; 엊그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어느 증권사 트레이더가 자신의 투자 대박 이야기를 가만히 털어놓았다. 최근의 호황 장에서 큰 것 세 장을 벌었다고 했다. 나는 큰 것 세 장이 얼마인가 생각한다. 3억인가? 트레이더로 구를 만큼 굴렀다고 하니, 3억은 아닌가? 30억? 나는 매일 홈쇼핑 앱에 출석 도장을 찍는데, 찍을 때마다 3원이 찍힌다. 뭔가 매우 구차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걸 한 달 채우면 천 원이 주어진다. 돈 천 원이 어디야? 그것마저도 어쩌다 하루 빠져서 받지 못하게 될 때면, 잠깐이라도 자책하는 마음이 된다. 왜 그 하루를 빼먹은 거지?<br><br><br>5. <br><br>&nbsp;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종이는 붙어있다. 나는 고양이의 주인이 이제는 그 전단을 떼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볼 때마다 그 고양이의 행방이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그 고양이처럼 궁금해지는 것들이 나에게는 있다. 젊은 날에 불운하게 죽은 K가 만들지 못한 영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병고에 오래 시달리다 외롭게 세상을 뜬 H가 더 써내지 못한 글과 평론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들도 나의 아버지가 어딘가에 계시듯, 내가 알지 못한 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만들지 못했던 그 어떤 것들의 행방을 찾아 나서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에게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그 행방을 찾아 떠나는 여정과도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nbsp;&nbsp; <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공모전이 끝나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333808</link><pubDate>Sun, 14 Jun 2026 12: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333808</guid><description><![CDATA[&nbsp; 공모전이 끝나고<br><br><br>1. <br><br>&nbsp; 아침에 눈이 꺼끌거려서 거울로 들여다보니 눈썹 하나가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보였다 안 보였다 하니까 어떻게 뺄 방도가 없다. 사람의 안구 안쪽은 막혀있으니까, 이 눈썹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기분이 찝찝할 뿐이지. 이런 기분은 내가 공모전에 응모하고 난 뒤에 느끼는 기분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br><br>2. <br>&nbsp; <br>&nbsp; 작년부터 쓴 단편들을 공모전에 냈다. '당선'이란 로또 복권보다 더한 극강의 운이 작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본심에라도 올랐으면 이건 뭐 약간의 희망이라도 있겠다 싶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최근 연도의 단편 당선작들을 보면 내가 쓰는 글과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그건 어떤 면에서 스타일이나 소재의 차이가 아니라, 세대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그 단편들을 읽으면서, 그것들을 이해하기에는 내가 늙어버렸다고 생각했다. 2020년대 한국 단편의 주요한 경향으로 지적되는 미문(美文)과 지나친 묘사에 대한 집착, 그리고 안온하고 다정하며 무해한 이야기(속칭 안다무)는 나에게 낯설고 짜증스러운 것이다. <br><br>&nbsp; 나는 그런 글을 써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공모전의 심사 위원인 소설가와 평론가들이 그런 글들이 좋다고 뽑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이다. 그 스타일의 범주에 내 글을 욱여넣고 어떻게든 써내든가, 아니면 그냥 내 글을 써내는 것. 이건 시를 2년 동안 썼을 때의 좌절감과 당혹스러움과도 맞닿아 있다. 나는 지금의 현대 한국 시를 읽으면서 좋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시들이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시의 세계로 시 쓰기가 좋다고 무작정 직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취미로서의 시 쓰기는 가능하겠지만. <br><br>&nbsp; 단편 쓰기는 시 쓰기의 서사를 확장할 필요에서 시작되었다. 소설가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br><br>&nbsp; '좋은 소설에 대한 가장 명확한 진리는 그 누구도 그것을 쓰는 법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br><br>&nbsp; 내가 좋아하는 그런 뛰어난 작가도 좋은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알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말하자면 소설 쓰기는 그냥 맨땅에 부딪히며 구르면서 자기 스스로 배워가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누군가 깨달은 그 방법은 나의 것이 아니며, 어떻게 배운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다. 쓰다 보면 뭐가 보이는 것도 같은데, 조금 있으면 그게 뭐였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러니 그냥 써나가는 방법밖에는 달리 무슨 수가 없다. 이렇게 써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문체를 쓰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알게 된다. 길지 않은 9개월 습작 기간의 수확은 아마도 그런 것이다. <br><br>3. <br><br>&nbsp; 한국의 소설은 일반적으로 읽히는 대중 소설, 문예지와 문학상 위주로 돌아가는 순수 문학 소설, 그리고 압도적인 비중을 보여주는 웹소설로 대강 나눌 수 있다. 신춘문예와 유명 문학상은 순문 출판 시장의 토대가 된다. 그런데 이 출판 시장은 심각하게 쪼그라든 상태이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중환자인 한국 문학에 산소호흡기 겨우 달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회전문처럼 이 시장은 작가, 평론가, 교수, 작가 지망생, 문학 출판사, 국가 지원금을 관리하는 관련 단체들의 '그들만의 리그'에서 돌아갈 뿐이다. 분명하게도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더이상 한국 문학을 읽지 않는다. 이것은 스마트폰의 등장이라는 시대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유튜브와 쇼츠에 빠져있고, 책은 읽지 않는다. 근원적인 이유는 한국 문학에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 한국 문학은 그 어떤 감동과 재미를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흥미를 잃고 너무나 먼 곳으로 가버렸고 다시 돌아올 생각도 없다. <br><br>&nbsp; 웹툰과 웹소설로 대변되는 시장은 철저히 경제적인 관점으로 돌아간다. 그런 즉물적인 만족감을 주는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엄청난 시장을 창출해 낸다. 언젠가 웹소설 작가가 자신의 분기별 소득을 인증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억대의 금액이었다. 그걸 올린 이는 자신을 대단한 '작가'라는 이름으로 내세우기는 어렵지만, 자신의 글을 읽고 감동받고 응원해 주는 독자들이 있어서 힘이 난다고 썼다. <br><br>&nbsp; 그런 웹소 작가와는 달리 순문 작가가 자신의 글만으로 먹고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문학은 결코 돈이 되지 않는다. 잘나가는 작가라고 해도 인세 수입은 보잘것없어서, 이런 저런 강의와 기고를 하고 다른 부업을 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내 기억 속에 작가가 자신의 글로 먹고살았던 대표적 인물이라면 이문열이었다. 이문열의 책은 웬만한 집의 책장에 다 꽂혀 있었으니까. 이제 그런 시절은 오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은 더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아니, 주식 책은 불티나게 팔리지만 문학책은 더럽게도 팔리지 않는다. 시는 말할 것도 없고 소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1쇄는 1000부 정도였는데, 이제는 1쇄를 찍는다고 하면 200부에서 300부를 찍는다. <br><br>&nbsp; 문학 출판사들은 그래도 어떻게든 돈이 될만한 책을 펴내는 것에 대한 욕망이 없을 수가 없다. 출판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나마 한국 문학 시장을 지탱하는 것이 2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여성 독자들이다. 그 여성 독자들의 구매 잠재력을 보여준 것은 2016년에 발행된 '82년생 김지영'이었다. 한국 소설에서 남성의 목소리, 관점을 지워가기 시작한 분기점이 되는 소설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남성 작가들이 더이상 적극적으로 순수 문학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웹소설 시장을 대안적으로 선택하는 것에서도 입증된다. <br><br>&nbsp; 지난해 어느 문예지의 대담 글은 이제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을 장착하고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 말이 지닌 강압성이 심히 우려스럽다. 페미니즘을 기본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그 어떤 글은 도태되어 마땅하다는 뜻인가? 젊은 여성 독자들의 입맛에만 맞는 글만을 일방적으로 양산해 내는 문학적 생태계는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가? 한국 문학은 다양성 측면에서 터무니없을 정도로 허약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것은 한국의 추리 문학 시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추리 소설을 쓰는 작가가 거의 없다. 출판사는 일본의 추리 문학을 열심히 번역해다가 내다 팔 뿐이다. 그나마 요새 조금씩 시장이 커가는 SF 문학 시장이 희망의 빛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그것은 SF 소설 공모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모전과 출판사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서로 공명하는 관계이다. <br><br>4.<br><br>&nbsp; 이제 올해 내가 소설을 내려는 공모전은 하나가 남아 있다. 그것도 단편이다. 그 단편을 끝내고 나면, 장편을 쓸 생각이다. 그 장편도 공모전에 낼 것이고, 그것이 떨어진 다음에도 무언가를 쓰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작가 지망생이 자신의 글을 세상과 만나게 할 방법은 결국 공모전밖에 없다. 엄밀히 말해서 투고나 자비 출판은 대안이 되지 못한다. 그 방법으로 글이 독자를 만날 가능성은 영에 가깝다. 문학 커뮤니티의 누군가가 그렇게 한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공모전은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작가 지망생의 유일한, 그러나 절망적으로 막혀있는 출구로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nbsp; <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통증 너머의 것</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330538</link><pubDate>Fri, 12 Jun 2026 12: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330538</guid><description><![CDATA[&nbsp; 통증 너머의 것<br><br><br>&nbsp; 좀 오래전 TV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동물 관련 프로그램이었다. 특별 손님으로 나온 사람은 외국 여자였는데, 동물의 마음을 읽는다는 소개말이 붙었다. 그걸 동물 심리치료사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 여자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말 못 하는 동물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었다. 어린이 소설 '닥터 두리틀'의 주인공 박사를 생각하면 대충 맞다. 여자는 일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동물의 마음을 알아듣고 풀어서 말해주었다. 자신이 키우는 동물들이 왜 문제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했던 주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고 반성했다. <br><br>&nbsp; 동물들에게도 마음이란 것이 있는지는 철학에서도 주요한 주제이다. 생태 철학은 이제는 더 나아가 식물의 마음까지도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나의 모친은 덜덜거리면서 돌아가는 선풍기를 보면서 안타까운 듯 말씀하신다. <br><br>&nbsp; "쟤가 저렇게 열심히 바람을 만들려면 얼마나 힘들겠냐?"<br><br>&nbsp; 살아있는 것을 넘어서서 기계에까지 감정을 이입하는 어머니의 상상력은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애착을 갖는 물건을 때론 살아있는 것처럼 여기기도 하니까. 나는 10달째 아픈 오른쪽 팔에 감정을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날부터 팔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컵을 드는 것과 양치질 같은 일상도 아주 힘들게 되었다. 테니스 엘보(Tennis Elbow)였다. 손목에서 팔꿈치 바깥으로 이어지는 힘줄에 염증이 생겨서 아픈 병이었다. <br><br>&nbsp; 원인은 간단했다. 팔을 많이 써서 그런 것이다. 아무튼 팔을 많이 썼다. 그래서 아픈 팔이 견디다 못해 파업한 것이다. 문제는 이게 쉽게 낫는 병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은 휴식인데, 팔이란 것은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발도 마찬가지다. 재작년에는 족저근막염에 1년 넘게 시달렸다. 그냥 좀 쉬면 나을 거라 여기다가, 의사를 한번 만나보기는 하자 싶어서 대학병원의 족부 정형외과 전문의를 찾아갔다. 의사는 푹신한 신발을 신어야 하며 쉬는 것이 좋다고 말해주었다. <br><br>&nbsp; "낫기는 나아요. 그런데 시간이 좀 많이 걸립니다. 1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br><br>&nbsp; 언젠가는 낫는다. 이 말은 얼마나 좋은 말인가. 어쨌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나는 테니스 엘보에 걸린 내 팔도 그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버텼다. 그러면서 아픈 팔을 낫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했다. 통증을 덜하게 하려고 매일 압박붕대를 팔에다 감았고, 팔에 부하를 줄 수 있는 청소 방식도 바꿨다. 무거운 청소기 대신에 먼지 제거 부직포 밀대를 썼다. 물건은 무엇이든 두 손으로 잡았다. 가정용 저주파 치료기가 조금이나마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그것도 샀다. 그리고 매일 아픈 팔과 대화를 했다. <br><br>&nbsp; "그래, 내가 너를 너무 혹사시켰다. 미안하다. 나도 노력할 테니, 너도 조금씩 나아지면 좋겠다."<br><br>&nbsp; 그러거나 말거나 내 팔은 나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컵 하나 드는 것도 너무 아파서, 무거운 도자기 컵은 들여놓고 플라스틱 컵을 꺼내놓았다. 제일 힘든 것이 화장실 청소였다. 화장실 청소는 말 그대로 일하는 사람의 노동력을 순전하게 갈아 넣는 일이다. 구석구석 수세미와 솔로 힘을 주어 밀고 닦아야만 깨끗해진다. 팔이 아픈데, 화장실 청소를 하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대걸레에 전용 세제를 묻혀서 대충하곤 했다.<br><br>&nbsp; 그런데 지난주에 드디어 손으로 화장실 청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혹시라도 청소하고 나서 팔이 다시 아프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통증이 도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압박붕대로 팔을 감고 생활하고 있고, 청소기를 자주 돌리지는 못한다. 그래도 이제는 견딜만하다는 말이 나온다. <br><br>&nbsp; 나도 내 팔이 어떻게 극심한 통증에서 벗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무리가 가지 않게 덜 썼으니까, 팔은 쉴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번 것인지도 모른다. 10달 동안, 나는 이 아픈 팔과 씨름하면서 그 통증의 기원과 내가 팔을 쓰는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통증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성찰의 도구였던 셈이다. <br><br>&nbsp; 대개의 만성적인 통증에는 그것을 일으킨 원인이 있다. 그리고 아픈 사람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통증을 통해 삶의 방식을 돌아보는 작업이 내게는 나름대로 유용했다. 여전히 팔의 통증은 남아 있다. 조금만 많이 걸으면 발도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온다. 내가 무리했구나, 쉬어야지. 통증은 그렇게 몸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이다. 그 신호를 잘 알아채고, 통증과 그럭저럭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체득하는 것. 그렇게 나는 통증 너머의 것을 볼 수 있는 약간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12 - 완결</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327577</link><pubDate>Wed, 10 Jun 2026 20: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327577</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12<br><br>&nbsp; <br>&nbsp; "정말 이 결말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br>&nbsp; <br>&nbsp; 소설 쓰기 수업의 마지막 강의 시간, 소설가 선생이 중기에게 그렇게 물었다. 안경을 벗어놓은 선생의 무표정한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더 굳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건 어쩌면 실망했다는 표현일 수도 있겠군. 중기는 선생의 질문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br><br>&nbsp; "최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끝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요."<br>&nbsp; "인물들의 죽음에는 최소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해요. 왜냐하면, 죽음은 문자 그대로 삶을 끝내는 것이니까요. 물론 소설 속의 모든 설정은 우리가 만들어낸 가공의 현실이죠.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쉽게,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괜찮다는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그러니까 글을 쓰는 작가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 인물들 앞에 놓인 삶에 대한 책임감 말입니다."<br>&nbsp; "제가 구만과 경주의 삶을 쉽게, 아무렇게나 다루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br>&nbsp; "네, 알겠어요."<br><br>&nbsp; 선생과 중기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송파구 주민 미자 씨가 끼어들었다.<br><br>&nbsp; "오, 이건 뭐 인물들이 죽음을 향해 직진해 버리네요. 결말을 쥐어짜 내는 게 힘들었던 건지."<br><br>&nbsp; 중기는 얇은 입술로 이죽거리며 말하는 여자의 얼굴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참으로 밉상인 여편네야. 저 여자는 부모도 저런 인간일 테지. 생전 어디 가서 귀여움이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 핏줄이라는 것은 질기고도 정직한 것이다. 중기는 늙은 여자가 말할 때마다 도드라져 보이는 입가의 주름이 추하다고 느꼈다. 늙음과 악의, 무지가 겹친 여자의 얼굴을 보는 것이 중기는 그저 싫었다. <br><br>&nbsp; "경주가 노후 파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남편을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는 거잖아요. 아니, 그 소설 속의 강동구 아파트 모기지 신청만 해도 먹고 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좀 현실성이 떨어지지 않나? 뭐 강동구 아파트가 강남에 비하면 좀 떨어지기는 하죠. 좀 그런 게 아니라 한참이긴 하지만."<br>&nbsp; "그 아파트에는 대출이 5천만 원 남았으니까요. 모기지 신청할 수 있는 나이까지는 멀었죠. 서울 아파트 자가로 사는 게 어디 쉬운가요?"<br>&nbsp; "아니, 뭐 그래도 죽을 것까지야... 아무튼 이런 결말은 너무 우울해. 우울하잖아요. 즐거운 소설을 쓰기도 모자란 인생인데."<br><br>&nbsp; 중기는 솔직히 인정해야 했다. 송파구 여편네의 말마따나 구만과 경주를 죽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냥 대충, 적당히, 그들이 처한 현실의 창을 닫고 자신은 그냥 나오면 되었다. 하지만 중기는 아내를 죽이고도 평온한 얼굴을 한 박 차장의 모습에서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의 미래를 보았다. 그들은 비탈진 언덕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언제든 미끄러질 준비가 되어있는, 그리고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구만은 다시는 치열한 생계의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며, 경주는 그런 남편을 끝내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서있는 중산층이라는 얇은 얼음 강이 깨어질 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몰락과 죽음뿐이라고 생각했다.&nbsp; <br><br>&nbsp; 즐거운 소설이라... 중기는 송파구 주민 미자 씨가 말한 '즐거운 소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과연 자신은 즐거운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중기가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올해 마흔 살 생일날 아침의 결심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나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미래의 그 어떤 죽음의 날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소설이 몇 편 정도 있는 것은 꽤나 괜찮은 일 같았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만들어내는 고치에서 비단실을 뽑아내듯, 자신의 인생 그 어딘가에서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조각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런 결심으로 써낸 첫 단편 소설의 주인공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중기는 경주가 죽음을 위해 준비한 협죽도 잎사귀들을 묘사할 때, 마치 그 잎들을 자신이 질겅질겅 씹고 있는 것만 같았다.<br><br><br>&nbsp; "그 음반 구해왔어?"<br>&nbsp; "그래, 여기."<br>&nbsp; <br>&nbsp; 그날 오후, 중기는 동생을 보러 용인에 갔다. 동생이 부탁한 음반이 있었다. Bill Evans 트리오의 Waltz for Debby가 들어있는 음반이었다.<br><br>&nbsp; "나중에 내 장례식에 이걸 틀어줘. 난 오래 못 살 것 같아."<br>&nbsp; "인마, 그런 말 지껄일 거면 그거 나한테 도로 줘. 어떻게든 나을 생각을 해야지."<br>&nbsp; "글쎄. 내 정신은 어디론가 멀리 가버려서 말이지. 아주 멀리. 다시 돌아올 수 없어."<br><br>&nbsp; 문수는 자신의 오른쪽 머리를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중기는 저런 말을 할 때의 동생은 진짜 멀쩡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런 순간이 아주 짧은 것이 문제였다. 중기는 문수가 죽고 나면 자신의 삶이 좀 덜 무거워질까를 생각했다. 치매에 걸린 엄마는 오른쪽 어깨에, 정신병에 걸린 동생은 왼쪽 어깨에 있었다. 하나의 짐이 사라지면, 어쩌면 자신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릴 것만 같았다.&nbsp; <br><br>&nbsp; '배달 앱이 오후 9시로 자동 종료되어 배송 일정 안내 문자 드립니다. 고객님의 물품은 새벽 2시까지 순차적으로 배송됩니다.'<br><br>&nbsp; 아직도 배송 일에 익숙해지지 못한 건가? 새로운 여자 배송 기사로 바뀐 택배사의 물품은 늘 늦어졌다. 자정쯤에 받아보던 것이 오늘은 새벽 2시로 늦어졌다. 그때까지 배송하고 나면, 언제 집에 들어가나? 중기는 처음에는 그 배송 기사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약간 짜증이 치밀었다. 오늘 오기로 한 택배는 참외였다. 초여름 날씨에 문밖에 두면 아무래도 참외가 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기는 아무리 늦어도 그 택배를 받아서 들여놓기로 했다.<br><br>&nbsp; 현관문 앞을 쓱, 하고 택배 상자가 살짝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35분이었다. 조막만 한 못난이 참외가 올망졸망 박스에 담겨있었다. 참외를 주섬주섬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고는 냉장고에 넣었다. 박스의 테이프를 제거하고 그걸 베란다의 분리수거 상자에 넣었다. 베란다 창문이 좀 많이 열려 있어서 닫으려는데, 바깥의 불빛이 뭔가 이상했다. 내다보니 길가 가로등의 전구가 수명을 다하기 직전이었다. 번쩍번쩍, 광기를 내뿜는 사람처럼 창백한 불빛이 중기의 얼굴을 후려치는 것만 같았다. 중기는 가로등이 번쩍이며 보여주는 뜨악한 풍경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창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부엌 개수대에서 손을 씻었다. 목이 좀 말랐다. 물을 마시는데, 입 안에서 뭔가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br><br>&nbsp; "이게 뭐지?"<br><br>&nbsp; 중기는 입안에서 걸리는 것을 손바닥에다 뱉었다. 작은 치아 조각이었다. 급하게 화장실로 가서 거울로 입안을 살펴보았다. 왼쪽 어금니에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이가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마치 화산 폭발이 끝난 분화구처럼, 중기의 어금니는 시커먼 공동(空洞)처럼 보였다. 중기는 그 공동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늙음과 불운과 가난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먹는 것이 귀찮아서 끊어버린 탈모약 때문에 정수리는 휑해졌고, 동생과 모친의 병증은 심해져 갈 뿐이었다. 월세 60만 원을 달라고 말하는 주인 영감은 내년에 70만 원을 달라고 말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br><br>&nbsp; 중기는 구멍 난 어금니를 한번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아주 정교하게 난 작은 동그라미가 중기를 향해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월요일에 일찍 치과에 가봐야지. 어떻게든 이 어금니를 살릴 방법이 있을 거야. 중기는 화장실의 불을 끄고 나오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br><br><br><br><br>인두치 완결(完結)&nbsp; <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11</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318764</link><pubDate>Fri, 05 Jun 2026 18: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318764</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11<br><br><br>&nbsp; "오늘 구내식당 메뉴가 바지락 칼국수라는데, 갈 거예요?"<br><br>&nbsp; 월요일 오전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옆자리의 신 주무관이 중기에게 물었다. <br>&nbsp; <br>&nbsp; "아, 그거면 안 가는 게 낫겠네요. 전번에 해감이 덜 된 바지락 나와서 아주 고생했거든요."<br>&nbsp; "그럼, 밖에서?"<br>&nbsp; "시장 막국숫집 있잖아요. 거기서 그냥 먹을까 하구요."<br>&nbsp; "그럼, 나도 같이."<br>&nbsp; "그러죠, 뭐."<br><br>&nbsp; 점심시간까지는 15분 정도 남았지만, 구청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기는 공무원이란 사람들이 식당에서 줄 서는 것이 싫다고 저렇게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영 마뜩잖았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15분 일찍 오후 업무를 시작하는 것도 아니었다. 조직 사회의 관성이란 참으로도 무섭고도 기이한 것이다. 중기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들고서 동료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br><br>&nbsp; 시장의 막국숫집은 이미 만석이었다. 중기는 막국수집 옆의 순댓국집이 좀 나은가 해서 가게 안을 힐끔 들여다보았다. 그곳도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마침 막국수집에 두 자리가 났고, 중기는 동료와 함께 앉을 수 있었다. <br><br>&nbsp; "손님은 뭐로 하시게?"<br>&nbsp; "막국수 둘."<br><br>&nbsp; 서빙을 하는 사람은 외국인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인지 조지아인지 아무튼 그쪽 나라 사람처럼 보였다. 덩치가 좀 있는 외국인의 입에서 나오는 한국말은 그다지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br><br>&nbsp; "생각보다 한국말을 잘하네."<br><br>&nbsp; 신 주무관이 남자가 가고 난 뒤에 신기한 듯 말했다. 문득 중기는 아침의 일이 떠올랐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빌라 출입구에서 젊은 동남아시아 남자를 만났다. 빌라의 수다쟁이라고 할 수 있는 영천댁의 말에 의하면 이사간 박 차장네 집에 살게된 사람들은 베트남 사람들이라고 했다. 잠깐 살다 간다는데, 모르지 뭐. 영천댁은 못마땅하다는 듯 그렇게 심드렁하게 말했다. 주인 영감이 깔세로 얼마나 월세를 당겨서 받았는지 중기는 궁금해졌다. 분명 자신에게서 받는 월세보다 더 많은 돈을 불렀을 것이다.<br><br>&nbsp; "안녕!"<br><br>&nbsp; 중기는 이제 겨우 스물을 좀 넘겼을 법한 베트남 청년의 인사말에 기가 찼다. 우리말을 잘 몰라서 저러는 건가? 모른다고 해도 불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br><br>&nbsp; "이봐, '안녕'이 아니라 '안녕하세요'라고 해야지."<br>&nbsp; "알아. 그냥 친구 하고 싶어서."<br><br>&nbsp;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의 청년은 아무렇지 않은 듯 활짝 웃으며 중기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저렇게 허물없이 구는 것이 저 청년의 생존 방식인지도 몰랐다. <br><br>&nbsp; "난, 네 친구가 아냐. 앞으로도 아닐 거고. 그러니 말조심해."<br>&nbsp; "그래, 알았어. 잘 가."<br><br>&nbsp; 중기의 싸늘한 말을 청년은 씨익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겼다. 중기는 청년의 누렇게 때가 낀 흰색 티셔츠와 너덜거리는 운동화 밑창을 보고는 기겁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강서구의 그저그런 빌라가 갑자기 쪽방촌이 되어버린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돈에 환장한 빌어먹을 영감탱이 같으니. 중기는 빌라의 주인 영감을 향해 욕지기가 절로 나왔다. 방이 하루라도 비어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저런 놈들까지 살게 하다니. <br><br>&nbsp; "이모님, 3번 테이블 막국수 둘 빨리요!"<br>&nbsp; "좀 걸려. 기다리라고."<br><br>&nbsp; 서빙 보는 외국인이 주방과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3번 테이블의 중기는 하릴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가게의 구석진 곳 벽에 달린 TV에서는 뉴스 채널의 정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정치 뉴스와 교착 상태에 빠진 이란과 미국의 종전 협상에 대한 뉴스가 짧게 이어졌다. <br><br>&nbsp; "다음은 국내의 사건 사고 소식입니다. 식물인간으로 투병 중인 아내를 살해한 남자가 경찰에 긴급 체포되었습니다. 저희 취재 기자가 경찰청에 나가 있습니다. 민현수 기자, 자세한 소식 전해주시죠."&nbsp; <br><br>&nbsp; 중기는 '식물인간'이라는 단어에 자신도 모르게 휴대폰에서 고개를 들어 TV를 보았다. TV 화면 속에서는 검은색 야구 모자에 마스크를 쓴 중년의 남자가 막 경찰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br><br>&nbsp; "네, 체포된 43세의 박 모 씨는 식물인간 상태의 아내에게 독극물을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사망자 친족의 강력한 요청으로 부검이 이루어졌고, 경찰은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긴급 체포했습니다. 자, 그럼 용의자의 인터뷰 내용을 직접 들어보시죠."<br><br>&nbsp; 중기는 남자의 성씨가 박씨라는 사실에 조금은 소름이 끼쳤다. 혹시 저 사람이 자신이 아는 그 박 차장이 아닐지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사가던 날, 그가 보여주었던 그 평온한 얼굴 표정과 웃음이 이상하게도 잊혀지지 않았다. <br><br>&nbsp; "아내를 살해한 사실을 인정합니까?"<br>&nbsp; "난 아내를 죽이지 않았어요. 죽여달라고 한 건 아내였습니다. 아내의 소원을 들어준 것뿐입니다."<br>&nbsp; <br>&nbsp; 중기는 늘어지면서 뭉개지는 박 차장의 말투가 TV에서 그대로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br><br>&nbsp; "피해자는 식물인간 상태였다고 들었는데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말을 했다는 겁니까?"<br>&nbsp; "분명히 나는 아내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에 의식이 돌아왔겠지요."<br><br>&nbsp; TV 화면 속의 살인 용의자, 그러니까 중기가 알고 있는 그 박 차장은 아주 차분하게 기자들과의 문답을 이어갔다. 중기는 점심이고 뭐고 정신이 어디론가 달아나 버린 것만 같았다.&nbsp; <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10</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306433</link><pubDate>Sat, 30 May 2026 21: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306433</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10<br><br><br>&nbsp; "음, 그러니까 이건 실패한 소설 같아요."<br><br>&nbsp; 중기는 문득 오늘 소설 수업 시간의 합평을 생각하고는 울컥 짜증이 치밀었다. 중기의 소설에 대해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나는 송파가 좋아요'를 쓴 송파구 주민, 미자 씨였다. <br><br>&nbsp; "제 소설을 그렇게 읽으셨다니, 흥미롭네요. 어느 부분이 실패했다고 보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br><br>&nbsp; 송파구 주민 미자 씨는 톤 업 썬크림으로 희게 번들거리는 얼굴에 비해 목은 때가 낀 거 마냥 시커멓게 보였다. 거기에다 60대에 접어든 여자의 목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중기는 그 늙은 여자의 글만 아니라 외모까지도 아주 싫었다. 더더군다나 말도 안 되는 비평을 자신감 있게 늘어놓는 그 뻔뻔함은 더 싫었다.<br><br>&nbsp; "자, 봐봐요. 구만이나 경주나 그냥 가만히 있잖아요. 모름지기 소설의 주인공은 움직여야 한다구요.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언제쯤 뭘 하러 돌아다닐 거냔 말이죠."<br><br>&nbsp; 얇고 윤기 없는 입술을 움직이며 여자는 중기의 소설을 마구 깎아내리고 있었다. 아니, 아줌마 소설에서 집 나가버린 개연성은 어쩌구요. 댁이 쓰는 게 소설이야? 그냥 돈 있고 시간 남아도는 강남 아줌마의 우스꽝스러운 수필이지. 하지만 중기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에 어제저녁에 모기에게 물린 왼쪽 팔꿈치를 벅벅 긁고 있었다. <br><br>&nbsp; "그런데 이 소설, 결말 부분은 생각해 두었습니까?" <br><br>&nbsp; 소설가 선생이 중기의 프린트물을 책상에 천천히 내려놓으며, 중기에게 그렇게 물었다. 중기는 그 질문에 약간 당황했다. 뭔가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그래, 결말을 쓰기는 해야지. 그런데 그 결말은 아직 중기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br><br>&nbsp; "글쎄요, 그게 아직..."<br>&nbsp; "우선은 결말을 먼저 생각하고 써보세요. 그러면 지금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보일 겁니다."<br><br>&nbsp; 기성 작가의 눈이 다르긴 다르구나. 중기는 이제 더는 자신의 소설을 써내지 못하는 작가 선생을 새삼 다시 보게 되었다. 중기에게는 저 선생의 소설집이 있었다. 선생이 처음으로 써낸 장편소설이었다.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던 단편소설집에 비해, 선생의 장편소설은 솔직히 별로였다. 그냥 별로가 아니라, 아주 형편없었다. 이야기는 늘어지고, 별다른 주제 의식도 없었다. 그저 분량 채우기에 급급한 소설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중기는 선생의 수업을 들으려고 그 소설책을 샀다. 그리고 선생의 친필 사인을 받았다. 그러고는 그 소설책을 책장에 꽂아놓으며 다짐했다. 나는 저런 소설은 절대로 쓰지 말아야지. 저런 소설을 썼기 때문에 선생은 작가로서 실패했고 잊혀졌다. 그리고 이제는 문화센터 강의와 이런저런 강연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br>&nbsp; <br>&nbsp; "6월이면 이 강의도 끝나네요. 지금까지 써온 글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다들 궁리들 하세요."<br><br>&nbsp; 소설에는 끝이 있다. 중기는 이 소설을 끝낼 수 있을지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이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도 모호했다. 중년 남자에게 닥친 생의 위기에 매혹될 독자가 과연 있을까? 독자는 커녕 이런 소설을 공모전에 냈을 때, 이걸 끝까지 읽어줄 작가나 평론가도 없을 것 같았다. <br><br>&nbsp; "아무래도 동시대성이 중요한 거겠죠.&nbsp; 20대 젊은 여성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써내면 됩니다. 그런 게 어떻게든 팔리니까요. 그걸 못해서 나도 이 모양이지만."<br>&nbsp; "선생님, 그런데 지금도 소설을 쓰고 계십니까?"<br>&nbsp; "그럼요. 매일 밤 책상에 앉아있습니다. 나는 밤에 글을 쓰는 게 편해서. 물론 뭔가를 써내는 날은 드뭅니다만."<br><br>&nbsp; 중기가 공모전에 낼 소설을 고민한다는 말에 소설가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중기는 강의실 문을 나서는 선생의 굽은 등을 바라보았다. 중기는 선생이 왜 아직도 소설을 쓰는지 궁금했다. 선생이 소설을 완성한다고 해도 선생의 책을 내줄 출판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선생의 글이 빛나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 버렸다. 그럼에도 선생은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었다. 설마 선생이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닐 터였다. 어쩌면 저런 것이 작가의 숙명인지도 모르겠군. 중기는 혼자서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nbsp;&nbsp;&nbsp;&nbsp; <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9</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298658</link><pubDate>Tue, 26 May 2026 21: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298658</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9<br><br>&nbsp; &nbsp; 꿈을 꾸었다. 중기는 어른 둘이 겨우 탈 수 있는 경차 안에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아버지의 표정을 창백하고 침울해 보였다. 꿈속에서라도 중기는 아버지는 돌아가신 분이니 저런 얼굴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중기를 바라보는 대신에 그저 앞쪽의 어느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기도 아버지가 말을 거는 것이 무서웠다. 돌아가신 분이 꿈에 보이는 것은 어쨌든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중기는 그 말에 무어라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br>&nbsp;&nbsp; <br>&nbsp; 어머니와 동생은 손을 잡고서 어딘가를 가고 있었다. 중기는 자신도 차에서 내려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외로울 것 같았다. 그래서 중기는 차마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아버지, 저승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중기는 그렇게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저승은 마음에 들어서 사는 곳은 아닐 테지. 전화나 자주 하렴. 분명 아버지의 입은 닫혀 있었지만, 중기는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아버지는 그새 복화술이라도 배운 것일까? 아버지의 얼굴이 점차 희미해지면서 부서지는 하얀 가루처럼 조수석에 내려앉았다. 마침내 아버지가 앉았던 자리에는 빛바랜 은색의 작은 열쇠만 남았다. <br><br>&nbsp; 중기는 그 열쇠가 어디에 맞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 열쇠는 도무지 써먹을 수 없는 그런 열쇠일지도 모른다. 착하지만 무능하기 짝이 없었던 아버지가 남겨준 것이 거의 없었던 것처럼. 중기는 아버지의 장례 절차를 마치고 상속받을 재산이 있는지 행정 조회 서비스를 통해 샅샅이 살펴보았다. 본적지의 선산 골짜기에 쓸모없는 70평짜리 땅이 있었다. 이듬해에 나온 그 땅의 재산세 고지서 금액은 12만 8천 원이었다.&nbsp; <br><br>&nbsp; "수도회에서 이 요양원을 운영하는 것이 많이 어렵습니다."<br><br>&nbsp; 전번에 어머니를 보러 갔을 때, 중기는 원장 수녀의 면담 요청을 받았다. 수녀원에서 요양원을 건립할 때, 보증금 예치 방식으로 신청자를 받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저조한 금리 때문에 운영이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일부 보증금을 돌려줄 테니, 매월 이용료를 내는 방식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중기는 처음에 예치한 1억에서 돌려받는 5천만 원으로 매달 180만 원이나 되는 돈을 얼마나 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어머니는 얼마나 더 사실까? 주기적으로 기흉(氣胸)으로 고생하는 동생보다 어머니가 더 오래 살 것 같았다.&nbsp;&nbsp;&nbsp;&nbsp; <br><br>&nbsp; "사람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지만..."<br><br>&nbsp; 아버지의 꿈을 꾼 날 저녁에 중기가 분리수거하러 나갔을 때, 영천 아줌마가 중기를 보더니 그렇게 운을 떼었다. 중기는 수선스러운 그 아줌마가 영 마뜩잖았다. 원래대로라면 페트병과 일반 플라스틱을 정확히 구분해서 수거함에 넣었을 텐데, 그냥 얼른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대충 던져넣었다. 그런 중기를 보면서 영천댁은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br>&nbsp; <br>&nbsp; "글쎄 5년을 누워만 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숨이 넘어갔다지 뭐요. 그 양반 혼자서 애들 키우기 힘드니 뭐 나라에서 무슨 혜택이라도 받았나 봐. 시흥의 17평 임대 아파트가 거저 떨어진 거야. 죽은 마누라가 남편과 애들 살렸지."<br>&nbsp;<br>&nbsp; 중기는 방짜 유기를 들고 어두운 복도에 서 있었던 박 차장의 음울한 얼굴을 떠올렸다. <br><br>&nbsp; "방짜 유기인지 뭔지 팔러왔었는데, 공무원 선생네도 찾아갔을까?"<br><br>&nbsp; 영천댁이 중기의 얼굴을 힐끔 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중기는 눈을 마주치기 싫어서, 맥주캔을 손에 넣고 천천히 아귀힘을 주며 우그러뜨리고 있었다.&nbsp; <br><br>&nbsp; "딱 봐도 바가지 씌우는 게 분명해서 난 안 사줬거든. 그런데 이젠 뭐 그런 장사 안 해도 된다 그럽디다. 나라에서 뭔 계약직 일자리도 마련해줬다는 거야. 나 원 참. 그 뭐냐, 속담에도 있잖수.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어쨌든 팔리지도 않는 방짜 유기 장사도 끝이지."&nbsp; <br><br>&nbsp; 사람의 죽음을 유용함으로 평가하는 것은 뭔가 내키지 않지만, 분명 박 차장 아내의 죽음은 그 가족에게는 쓸모가 있었다. 일주일 후에 중기는 작은 용달차 인부들이 박 차장네의 빈한한 살림살이를 차에다 꽉꽉 욱여넣는 것을 보았다. 토요일 오후였다. 중기는 여느 토요일처럼 맥 빠지는 소설 창작 강의를 듣고 오던 길이었다. 박 차장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희어지고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아내의 죽음에 슬퍼하는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중기는 약간의 소름마저 돋았다. 중기는 아주 잠깐, 저 남자가 어쩌면 아내의 죽음을 너무나도 간절히 원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nbsp;&nbsp;&nbsp; <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8</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282733</link><pubDate>Sun, 17 May 2026 22: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282733</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8<br><br><br>&nbsp; '이것 좀 봐봐. 어제 보니까, 왼쪽 손목에 이게 생긴 거야. 수포처럼 오돌토돌한데, 좀 가렵기도 하고. 두 군데 생겼어. 그것도 왼쪽만.'<br>&nbsp; '올려주신 사진을 검토해 본 결과, 화폐상 습진으로 보입니다. 피부가 너무 건조하거나, 어떤 알레르기 유발 물질에 닿아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br>&nbsp; '아, 이게 청소일 하면서 락스를 좀 많이 써서 그런 것 같은데.'<br>&nbsp; '그럴 수도 있겠지만, 원인을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레스도 피부 질환의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br><br>&nbsp; 경주는 Gemini가 언급한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가시처럼 손톱에 콱, 하고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도무지 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처음에 남편을 보며 안쓰러웠던 감정이 조금씩 증오와 분노, 경멸이 뒤섞여 단단한 공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경주는 습진이 생긴 왼쪽 손등을 벅벅 긁다가, 자신도 모르게 울분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소파에서 졸고 있는 남편이 커다란 애벌레 같았다. 그 애벌레는 소파에서 집을 짓고서 먹고 잤다. 남편이 늘 보는 뉴스 채널의 소리도 아주 듣기 싫었다. 지루한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져있었다.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는 협상 소식을 경주는 날마다 들어야 했다.&nbsp; <br><br>&nbsp; 중기는 경주가 구만에게 언제쯤 화를 낼지 가늠해 보았다. 경주의 왼쪽 손등은 군데군데 터져있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일을 해도 물이 손에 닿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중기는 자신이라면 경주처럼 저렇게 몸을 써서 돈을 버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원체 약골인 중기는 자신이 그런 일을 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며칠만 해도 그냥 지쳐서 나가떨어질 것 같았다. 중기는 어젯밤 늦게 통조림 택배를 받았다. 배송 예정 시간은 오후 5시였지만, 중기가 문 앞에서 툭, 하며 상자가 던져지는 소리를 들은 것은 자정이 되기 5분 전이었다. 새로 바뀐 택배기사는 여자였는데, 아마도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그렇게 배송 시간이 늦어지곤 했다. 신소미. 배송 기사의 이름이 찍힌 운송장을 뜯어내며, 중기는 먹고 산다는 것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저 여자 택배기사는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갈 것이다.&nbsp;&nbsp; <br><br>&nbsp; 33%. 휴대폰의 배터리 잔량을 보고, 중기는 휴대폰을 충전기에 연결했다. 중기가 휴대폰을 충전하고 있을 때, 경주도 잔량이 25퍼센트인 휴대폰을 충전기에 연결했다. 낮에 일하는 동안에는 휴대폰을 들여다볼 시간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 이어폰으로 듣는 오디오북이 배터리를 빨리 닳게 만드는 것 같았다. 경주가 듣는 오디오북은 늘 추리 소설이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탐정은 범인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경주는 아파트 청소를 하는 동안에 범인이 과연 누구인가를 계속 생각해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아니, 재미라기 보다는 경주에게는 나름대로 노동의 시간을 견디는 방식이기도 했다. 경주는 매일 화단으로 서너 개씩 담배꽁초를 내던지는 입주민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오디오북 속의 살인범은 현실의 담배꽁초 투기범으로 변모했다.<br><br>&nbsp; 중기는 경주가 출퇴근 시간에 오디오북으로 추리소설을 듣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중기는 경주를 '아파트 청소일을 하게 되었다'까지만 설정해 놓았을 뿐, 경주의 하루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중기에게 이 소설은 방전된 상태에서 꾸역꾸역 써내는 일기 같았다. 구만은 애벌레처럼 소파에서 자신만의 집을 짓고 있었고, 경주는 무기력하게 그런 남편을 바라보았다. 물론 중기는 작가로서 자신이 과연 그들의 삶에 무슨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그들을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 계속 고민은 하고 있었다.&nbsp; <br><br>&nbsp; "그런 게 있잖아요. 소설을 쓰다 보면, 등장인물들이 막 살아서 움직인다니까요. 어느 순간에는 자기들이 혼자 말을 시작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해요. 그럼 또 나는 그걸 정신없이 받아서 써내고 있단 말이죠."<br><br>&nbsp; 그 말은 중기가 주말에 듣는 문화센터 소설 창작 강의 시간에 늙은 수강생 아줌마가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몇몇 수강생들이 짐짓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중기는 자신이 쓴 소설에서 인물들이 그런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해 보았다. 별로 기억나질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가만히 있을 때가 많아서, 중기는 그들을 끌고 이리저리 다녔다. 그런 때가 있기는 했다. 인물들이 하고 싶은 말을 듣기는 들었지만, 그게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빼버리고 자기 생각대로 썼다. <br><br>&nbsp; "그렇지요. 모름지기 좋은 작가란, 그런 인물의 목소리를 잘 듣고 써내는 사람입니다."<br><br>&nbsp; 소설가 선생은 그 수강생의 말에 그렇게 답했다. 그렇다면 난 좋은 작가는 아닌 모양이군. 중기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중년의 소설가 선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한때는 촉망받는 소설가였던 선생은 이제 더이상 소설을 쓰지 않았다. 과거에 그가 써냈던 소설은 이제 문화센터와 백화점, 도서관들을 돌면서 강의할 수 있는 생계의 밑천일 뿐이었다. 중기가 생각하기에 선생이 소설을 가르치는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선생은 수강생들이 써온 소설들에 웬만해서는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중기의 단편을 읽고 선생이 하는 소리는 매번 똑같았다. <br><br>&nbsp; "디테일이 부족해요, 디테일이."<br><br>&nbsp; 물론 수강생 중에서 디테일이 부족한 사람은 중기 혼자는 아니었다. 자신의 등장인물이 살아서 움직인다고 말했던 늙은 아줌마의 소설은 결국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였을 뿐이다. 1970년대 코딱지만 한 잠실 아파트를 분양받아 송파구의 주민으로 뿌리를 내리며 살아온 여자의 짧은 일대기. 그 소설의 제목은 '나는 송파가 좋아요'였다. 중기는 그 소설, 아니 자전적 이야기에 담긴 지독한 속물근성을 내심 비웃었다. 그럼에도 송파구의 38평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 수강생 아줌마와 강서구의 원룸 빌라에 거주하고 있는 자신의 계층적 간극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웃을 수 없었다.&nbsp;&nbsp;&nbsp; <br><br>&nbsp; <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7</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252584</link><pubDate>Fri, 01 May 2026 19: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252584</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7<br><br>&nbsp; <br>&nbsp; 중기가 구만의 푹 꺼진 소파에서 일어났을 때, 중기의 집 초인종이 짧게 2번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 밤 9시 10분이었다. 도대체 이 시간에 올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중기는 지직거리는 인터폰의 흑백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주인 영감은 20년도 더 지난 것 같은 낡은 인터폰도 교체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폰의 화면은 흑백이었다. 화면 속에는 둥근 얼굴에 M자 탈모가 오기 시작한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5층의 쌍둥이 아빠였다. <br><br>&nbsp; "주무관 선생,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br>&nbsp; "아니, 차장님이 웬일로 이 시간에..."<br>&nbsp; "저기, 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br>&nbsp; <br>&nbsp; 중기가 현관문을 열어주자, 쌍둥이 아빠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서있었다. 중기는 그를 차장님이라고 불렀는데, 그건 그가 전에 다녔던 마을금고에서의 직책이 차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차장이 아니었다. 횡령으로 잘렸기 때문이다. 금고 측에서 고발까지 하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기껏해야 몇천만 원 아닐까? 중기는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오죽 먹고 살기 힘들면 그랬겠어? 애들 엄마는 식물인간으로 누워있지, 애 둘은 어떻게든 키워야지. 2층의 수선스러운 영천 아줌마가 중기가 분리수거할 때, 옆에서 주절주절 쌍둥이 아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공금에 손을 대는 일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중기가 그 말을 들은 것도 벌써 석 달이나 지났다. <br><br>&nbsp; "이것 좀 하나 봐주구려."<br><br>&nbsp; 쌍둥이 아빠 박 차장은, 아니 차장이었던 남자는 흰색의 뻣뻣한 쇼핑백에서 기다란 직사각형 나무통을 꺼냈다. 통의 겉면에는 검정색 붓글씨로 '명품 방짜유기'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나무 상자의 위 뚜껑을 열어서 그 안에 든 반짝거리는 수저 한 벌을 보여주었다. <br><br>&nbsp; "이게 인간문화재 김선재 선생이 만든 유기인데, 정말 귀한 거라서. 주무관 선생이라면 이런 귀한 걸 알아봐 줄 것 같기도 하고."<br><br>&nbsp; 센서등이 나간 어두운 복도에 서 있는 남자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쌍둥이 아빠는 요새 방짜유기 그릇을 팔러 다니는 모양이었다. 중기는 일요일 저녁의 늦은 시간, 그걸 들고 벨을 누른 남자의 청을 내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br><br>&nbsp; "하나쯤 있어도 좋은 물건이네요. 얼마나 하는지..."<br>&nbsp; "이게 원래 50만 원 받는 건데, 내가 주무관 선생한테는 그리 받을 수는 없고..."<br><br>&nbsp; 쌍둥이 아빠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br><br>&nbsp; "30만 원에 해드리리다."<br><br>&nbsp; 중기는 수저 한 벌에 30만 원을 달라는 남자의 말에 기가 찼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문을 닫고 남자를 돌려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남자의 어깨에는 식물인간이 된 아내와 두 쌍둥이 딸이 있었다. 중기는 다음주에 있을 구청 직원의 결혼식 축의금으로 찾아놓은 현금을 떠올렸다.&nbsp; <br><br>&nbsp; "차장님, 나도 지금 가진 돈이 이것 뿐이라. 20만 원밖에 없는데, 괜찮겠어요?"<br><br>&nbsp; 중기의 말에 쌍둥이 아빠의 구겨진 얼굴이 살짝 펴졌다. 그는 상자의 뚜껑을 닫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성급히 쇼핑백에 나무상자를 넣었다. 그러고는 중기가 건넨 20만 원을 건네받고는 휘적휘적 어두운 복도를 걸어갔다. 쌍둥이 아빠가 가고 난 뒤에, 중기는 그가 건넨 방짜유기를 비로소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숟가락의 손잡이 뒷면에는 '선재 유기'라는 각인이 봉황새의 문양과 함께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봉황새라니, 임금이 쓰는 수저를 흉내라도 냈단 말인가? 중기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이런 건 별로 쓸모도 없는 장식품일 뿐이다. 중기는 자신이 건넨 그 20만 원이 병원에서 7년째 누워있다는 차장의 부인 병원비와 그 쌍둥이 딸의 간식값으로 흘러가는 상상을 했다. 오죽 먹고 살기 힘들면 그랬겠어? 2층 영천 아줌마의 말이 이상하게 중기의 귓가를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nbsp;&nbsp;&nbsp;&nbsp;&nbsp; <br><br>&nbsp; 중기는 문득 구만에게 방짜유기 영업을 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구만은 물건이란 걸 팔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인사팀에서 일했던 구만이 아는 건 인력 채용과 이동에 관한 제반 업무였다. 최근 몇 년 동안 구만을 힘들게 했던 것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과 관련된 크고 작은 소송이었다. 구만이 보기에는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직원 간에 물고 늘어지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났다. 구만은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이 자신의 수명을 갉아먹는 일 같다는 생각마저 할 정도였다. 그래서 구만은 회사를 나오게 되었을 때, 어떤 면에서 후련하기도 했다. 증거랍시고 제출된 시답잖은 녹취 파일과 이메일 내역을 매일 눈이 빠지게 검토하는 건 고역이나 다름없었다. <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6</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247413</link><pubDate>Wed, 29 Apr 2026 22: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247413</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6<br><br><br>&nbsp; "그러니까, 불친절한 글을 써야지."<br><br>&nbsp; 여주에서 돌아온 그날 저녁, 중기는 진이 빠진 상태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chat GPT의 말대로 자신의 소설은 설명이 많은, 친절한 글이었다. 친절한 글은 재미도 없고, 매력도 없다. 불친절하고 까칠해져야지. 그런 글을 써야지. 그런데 중기는 불친절한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대화를 짧게 줄일 것인지, 인물의 행동에 설명도 안 하고 그냥 그 행동들을 마구 늘어놓을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우선은 구만을 그대로 주저앉힐지, 아니면 일으켜 세울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심장의 혈관에 스텐트 2개를 넣은 이 중년의 남자는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br><br>&nbsp; 중기는 푹 꺼진 15년 된 물소 가죽 소파에 앉아있는 구만을 바라보았다. 여느 때처럼 점심을 라면으로 먹은 구만은 입을 벌리고 낮잠을 자는 중이었다. 중기가 보기에 구만은 한심하기도 했고, 불쌍하기도 했다. 가족을 위해 그저 열심히 일한 가장으로서의 구만은 참으로 안쓰러워 보였다. 하지만 퇴직 후에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그저 집에서만 지내는 이 구만이라는 인물은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마누라는 아파트 청소일까지 다니고 있는데, 중기는 어떤 단무지가 꼬들꼬들하게 맛있는지를 검색하고 있었다. <br><br>&nbsp; 중기는 구만의 등짝을 한 대 때려주고 싶다가도, 불안하게 뛰는 구만의 심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아픈 건 사실이잖아. 중기는 구만이 다시는 사회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에 휩싸였다. 작가로서 분명히 자신에게는 구만을 집 밖의 세상으로 밀어낼 힘이 있었다. 하지만 중기는 자신이 구만을 움직인다고 해도, 구만은 부메랑처럼 다시 푹 꺼진 소파의 자리로 돌아올 것 같았다. <br><br>&nbsp; 구만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중기는 구만이 앉았던 소파에 앉아 보았다. 검정색의 물소 가죽 소파는 군데군데 터진 자국이 보였다. 중기는 자신의 원룸에 있는 낡은 가죽 소파와 그 소파가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색깔이었다. 중기의 소파는 갈색이었다. 구만은 화장실에서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배경음악처럼 들리는 케이블 TV의 뉴스 채널에서는 전쟁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br><br>&nbsp; "이란과 미국의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란과 미국 모두 버티기 모드에 들어간 것이죠. 과연 이 치킨 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까요? 협상이 난항에 부딪힌 상황에서 유가는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br><br>&nbsp; 이제 구만이 전쟁과 별 상관없다고 생각한 라면값이 오르게 될 터였다. 석유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근원적인 동력이다. 그 동력의 흐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모든 것의 비용이 다 오를 것이다. 구만이 매일 먹는 라면, 단무지, 전기, 가스, 관리비, 구만을 둘러싼 세계의 모든 것이. 그런데도 구만은 다시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중기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구만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구만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도대체 어쩔 셈인가, 저 사람은. 중기는 구만의 좁은 어깨를 마구 흔들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다. 하지만 심장이 좋지 않은 구만에게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중기는 구만이 앉을 수 있도록 소파에서 일어났다.&nbsp;&nbsp;&nbsp;&nbsp;<br><br><br><br><br><br>&nbsp;&nbsp;&nbsp; <br>&nbsp;&nbsp;&nbsp;&nbsp;&nbsp; <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5</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239882</link><pubDate>Sun, 26 Apr 2026 19: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239882</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5<br><br><br>&nbsp; 화장실의 수전을 교체하고 나서, 중기는 미리 렌트한 차를 몰고 여주로 향했다. 여주의 요양원에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작은 요양원이다. 높은 산이 양옆으로 자리한 좁은 도로는 구불구불하게 끝도 없이 이어졌다. 육이오 전쟁 때, 여주에 피난민들이 많이 들어와서 살았다 하더군요. 이런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서, 군대가 쉽게 오지 못한다고 믿었대요. 작은 키에 꼬장꼬장한 얼굴을 한 수녀원장이 중기에게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br><br>&nbsp; 여주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이상한 약국이 하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약국이 아니라, 약방이었다. 약방의 유리창은 빛바랜 흰색의 코팅지가 추레하게 너덜거렸다. Rx 모양의 표시가 되어있는 것을 보면, 뭔가 약을 짓는 것 같기는 한데, 왜 약국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까? 칠십은 족히 넘은 영감은 늘 고정된 자세로 TV를 보고 있었다. 중기는 아무리 아파 죽을 것 같아도, 저 영감이 짓는 약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늘도 TV에 시선을 맞추고 카운터를 지키는 영감이 백미러를 천천히 지나갔다.&nbsp;&nbsp; <br><br>&nbsp; "이렇게 곰돌이를 씹어 먹으니, 얼마나 슬픈 일이냐. 곰돌이가 너무 불쌍해."<br><br>&nbsp; 어머니는 중기가 건넨 하리보 젤리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정말로 슬픈 것 같았다. 나이 들어서 꺼지는 눈꺼풀 때문에 더 작아진 어머니의 눈가는 늘 짓물러 있었다. 중기는 휴대용 티슈를 한 장 꺼내어 어머니의 눈가를 조심스럽게 닦았다. <br><br>&nbsp; "여기서 일하는 여자가 내 돈을 훔쳐갔어. 죄다 도둑년들이야."<br>&nbsp; <br>&nbsp; 어머니는 입을 조그맣게 오므리며 속삭이듯 중기에게 말했다. 중기는 그런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저 걱정하지 마시라고, 자신이 꼭 돈을 찾아서 받아내겠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중기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는 요양원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다. 원래 살이 쪘던 어머니는 제대로 걷질 못하자, 살이 더 찐 것 같았다. 휠체어에 커다란 짐을 욱여넣듯 힘겹게 어머니를 앉혔다. 요양원이 자리한 산자락에는 이제 벚꽃이 피고 있었다. 서울은 벚꽃이 다 져버린 지 오래인데, 산속의 계절은 그렇게 또 다른 모양이었다.<br><br>&nbsp; "문수는 잘 지내냐?"<br>&nbsp; "네. 잘 지내요."<br>&nbsp; "내가 걔 밥을 차려줘야 하는데. 걔가 미나리를 좋아해. 미나리나물 해주면 얼마나 잘 먹는지 몰라. 지금 미나리가 나오는데, 문수 생각이 나서. 우리 착한 아들 문수."<br><br>&nbsp; 2주 전에 중기는 문수를 보고 왔다. 문수는 용인의 정신병원에 있다. 중기는 새삼스럽게 문수가 그곳에서 지낸 햇수를 세어보았다. 그러니까 한 10년 되었나? 자신이 공무원으로 임용된 이듬해 봄이니까 아직 10년을 채우지 못한 9년이었다. 문수에게 정신병이 발병하지 않았다면, 문수는 의대를 졸업하고 지금쯤이면 의사가 되었을 것이다. 가끔 중기는 자신이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문수의 병이 나아서 문수가 다시 의대에 복학하는 것, 그 두 가지 가운데 무엇이 더 가능성이 있을지 생각해 보곤 했다. 둘 다 가망이 없는 일인 것 같았다.&nbsp; <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4</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218991</link><pubDate>Wed, 15 Apr 2026 20: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218991</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4<br><br><br>&nbsp; "아, 내가 아까 약을 먹었나?"<br><br>&nbsp; 소설 속의 구만이 항혈전제를 먹었는지 약통을 확인하는 것처럼, 중기도 TV 옆에 놓인 자신의 약통을 확인했다. 중기는 역류성 후두염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주 쉰 목소리가 났고, 가래와 기침도 잦았다. 근처 종합병원의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편도선이 부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약을 먹어보고, 정 힘들면 편도선 절제 수술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 약은 소용이 없었다. 어차피 수술할 생각도 없었으므로, 중기는 목이 아파도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4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서 증상이 더 심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대학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았더니, 역류성 후두염이었다. 의사는 중기에게 위산 억제제를 처방했다. 생활 습관을 바꾸고, 약은 최소한 3개월 이상은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중기는 속으로 이전에 본 돌팔이 의사를 욕했다. <br><br>&nbsp; 중기는 약통에 그대로 있는 약을 보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먹어야 하는 것인데, 깜빡하고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약을 안 먹어서 그랬는지, 저녁 내내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했다. 위산이 역류하면서 목이 아프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중기는 작은 흰색의 알약을 얼른 입안에 넣었다. 약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구만에게는 항혈전제가 꼭 필요하듯, 중기에게는 위산 억제제가 필요했다. <br><br>&nbsp; "이 선생, 다음 달부터 월세는 60만 원 보내주쇼."<br><br>&nbsp; "네? 아니, 그럼 10만 원씩이나 더요?"<br><br>&nbsp; "아, 나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빌라 관리며 이런저런 데 나가는 돈이 오죽 많아야 말이지. 나도 오래 생각한 거니까, 이 선생도 그리 알고."<br><br>&nbsp; 20세대가 사는 5층짜리 빌라 임대인은 60대 중반의 꼬장꼬장한 늙은이였다. 비쩍 마른 체구에 기다란 얼굴에는 기름기 하나 없었다. 지난달, 중기는 화장실 세면대 수전에 물이 조금씩 새니 수전을 교체해달라고 그 늙은이에게 전화했다. 늙은이는 화장실의 수도 레버를 들었다 놨다를 몇 번 해보더니, 아직 바꿀만한 때가 아니라고 했다. 중기는 물이 새면 수도 요금이 더 나가니까, 바꿔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하지만 늙은이는 손에 묻은 물기를 탁탁 털면서 화장실에서 나왔다. <br><br>&nbsp; "저런 인간이라서, 돈을 모을 수 있나 보군."<br><br>&nbsp; 중기는 3만 정도 하는 세면대 수전을 사다가 직접 교체했다. 아마도 주인 늙은이의 수법은 그런 식으로 세입자가 스스로 고치게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br><br>&nbsp; "수도꼭지 사다가 직접 한 거 맞죠? 우리도 부엌 수도가 물이 줄줄 새는데, 안 고쳐줘서 사다가 했거든요. 진짜 그 늙은이, 하여간 지독해."<br>&nbsp;<br>&nbsp; 중기가 뜯어낸 수도꼭지를 내다버리는 것을 보더니, 2층의 아주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그렇게 말했다. 정말로 그게 주인의 수법이었다. 중기는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빌라 말고도, 이문동에 3층짜리 건물을 가지고 있는 늙은 약사의 일생을 떠올려 보았다. 그 늙은이라면 약국 손님에게 나가는 비닐봉지 한 장도 아까워할 것 같았다. 하긴, 약국의 비닐봉지는 제약회사에서 영업을 위해 모두 공짜로 주는 것이니 아까울 것도 없겠구먼. 중기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br><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 <br>&nbsp; <br><br><br><br><br>]]></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