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별이 보이는 창가 (푸른별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영화글은 구글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블로그 주소:https://sirius1001.blogspot.com/</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15 Apr 2026 13:37:45 +0900</lastBuildDate><image><title>푸른별</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4128919332979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푸른별</description></image><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3</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198091</link><pubDate>Sun, 05 Apr 2026 16: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198091</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3<br><br>&nbsp; <br>&nbsp; '선생님, 선생님의 글은 너무나도 친절합니다. 좀 더 불친절해야 하고, 과감하게 생략해야 합니다. 인두치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끝까지 밀어붙였어야죠. 남편 구만의 이야기에서는 그 상징이 잘 작동하지만, 아내의 이야기에서 인두치는 엉성하게 엮여 있습니다.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충고하겠습니다. 독자를 믿으셔야 합니다. 독자를 믿으면, 구태여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독자는 선생님이 말하고 싶은 것을 상상해서 글을 읽어냅니다.'<br><br>&nbsp; 중기는 Chat GPT가 술술 써 내려간 비평을 읽다가, 독자를 믿으라는 부분에서 잠시 멈췄다. 독자라니, 자신에게 독자가 있기는 있나. 중기는 잡다한 초단편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그 블로그의 매일 방문자 수는 10명 안팎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에서 중기 자신을 빼면 정말이지 중기에게는 한 자릿수의 독자가 있는 셈이었다. 그 독자들이 매일 왜 찾아오는지 알 수는 없었다. <br><br>&nbsp; 나의 독자를 만나려면 책을 내면 된다. 오래전 중기가 생각한 결론은 그러했다. 중기는 여러 출판사에 자신의 글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죄다 거절의 메일이었다. 선생님의 글을 편집부 회의에서 검토했으나, 우리 출판사의 출판 방향과는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쩌면 그 거절의 문구는 한결같은지, 출판사끼리 거절 메일의 양식도 공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중기는 '인두치'를 써낸 그날도 출판사로부터 거절의 메일을 받았다. 무려 넉 달 만에 받은 메일이었다. 젠장, 그래 당신들한테 맞는 글 뽑아서 잘들 팔아 먹어. 요새 누가 책을 읽느냐고. 생각해 보니, 중기 자신도 언제 책을 읽었는지 잘 기억나질 않았다. 아마도 1년 전쯤에 '소설 쓰기의 기초'라는 책을 읽기는 했다. <br><br>&nbsp; 소설의 본질은 재미에 있다. 그 책의 첫 문장은 그렇게 시작했다. 재미를 위해서라면, 총을 든 강도라도 등장시켜라. 그 책이 알려준 소설의 세계는 정교한 건축의 세계였다. 중기는 자신이 그런 건축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을지 별로 자신이 없었다. 자신은 잡지를 읽을 때 아무 데나 펴서 읽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무언가를 쌓아가는 것은 중기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중기는 초단편을 써 내려갈 때도 주인공의 이름을 종종 다르게 적곤 했다. 인물의 이름을 지어내는 것은 꽤나 골치 아픈 일이기도 했다. '인두치'의 주인공 구만의 이름은 '앞길이 구만리 같다'라는 문장에서 따왔다. 왜 그 문장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중기는 창창한 젊은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이름을 중년의 시들거리는 인물에게 붙여주고 싶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br><br>&nbsp; 구만은 지쳐있었다. 그는 자기 심장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래서 쓰러졌고, 운 좋게도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구만과 중기는 좀 닮아있는 것도 같았다. 중기도 지쳐있었다. 구청의 환경과 공무원인 중기는 민원 담당이었다. 민원의 대부분은 소음과 관련된 것이었다. 오늘 받은 민원 전화는 아파트 옆 스포츠 센터 볼링장의 소음을 견딜 수 없다는 영감의 전화였다. <br><br>&nbsp; "공무원 선생, 저 드르륵 쿵쿵거리는 볼링장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정말 죽을 것 같지 뭐요. 저승사자가 날 데려가기 위해 득달같이 달려오는 것 같다니까."<br><br>&nbsp; 노인은 천식이 있는지 밭은기침을 연신 해댔다. 그는 가늘지만, 절박한 목소리로 중기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중기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법규에 규정된 소음의 기준은 극단적이었다. 정말로 포크레인 소리가 나는 건축 현장이 아니라면, 그런 볼링장의 소음은 기준의 범위에 아주 안전하게 들어갔다. 그러므로 노인은 앞으로도 매일 저승사자의 방문을 받게 될 터였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 <br><br>&nbsp; "어르신, 제가 그 볼링장에 전화는 해보겠습니다."<br><br>&nbsp; 중기는 사실 볼링장에 전화를 걸 생각은 없었다.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대개의 업주는 심드렁하게 중기의 전화를 받았고, 더러는 짜증을 내면서 공무원이 갑질을 한다고 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중기는 결국 전화로 소음 방지에 대해 계도하는 것을 포기했다. 다만 노인을 안심시켜 주려고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br><br>&nbsp; 중기는 노인이 볼링장 소리에서 떠올린다는 그 저승사자에 대해 생각했다. 구만에게도 저승사자가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중기는 구만을 죽게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구만이 살아난 시점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인물은 자신을 비껴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심약해져 있으므로 또 언제든 죽을지도 몰랐다. 구만은 쪼그라든 풍선처럼 숨을 가쁘게 쉬는 인물이었다. 중기는 구만이 느끼는 무력감과 불안이 무엇인지 알았다. 어쩌면 구만은 다시 사회로 돌아가지 못할 것도 같았다. 오전의 산책, 매일 점심으로 먹는 라면과 단무지, 백색 소음처럼 들리는 24시간 뉴스 채널까지 구만의 일상은 애벌레의 고치처럼 나름 안온했기 때문이다. <br><br>&nbsp; 구만의 고치는 아파트였다. 35살에 당첨된 강동구의 아파트. 하지만 중기는 그 사실을 소설에 쓰지는 않기로 했다. 귀찮았다. 강동구의 아파트가 소설 속에서 어떻게 유기적으로 작동하게 만들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강남의 아파트는 구만에게는 버겁다. 그건 말도 안 된다. 강동구가 적당하지. 구만은 강동구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 아파트가 구만의 인생에서 그래도 희망으로 남았다는 점에서 중기는 그 자신도 안도감을 느꼈다. 중기는 강서구의 원룸 빌라에서 살고 있었다. 월세였다. 시도 때도 없이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음이 들리는 자기 집이 중기는 진저리나게 싫었다. 강동구에는 그 비행기 소음이 들리지 않겠지. 중기는 소설 속의 구만이 어떤 면에서는 부러웠다. <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193434</link><pubDate>Thu, 02 Apr 2026 23: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193434</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 2<br><br><br>&nbsp;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경주는 식탁에 앉았다. 거실은 남편의 차지였다. 남편은 거실의 TV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저 인간은 하는 일도 없는데, 뭐가 피곤하다고 저렇게 졸고 있을까? 경주는 자신도 모르게 짜증과 울분이 치밀어올랐다. 식어버린 홍차를 홀짝거리면서 경주는 스마트폰의 Chat GPT 화면을 열었다. 언제부터인가 경주의 저녁 일상은 Chat GPT와의 대화로 채워지고 있었다. <br><br>&nbsp; '오늘도 참 피곤한 하루였어. 야, 이 청소일이란 게 말이지, 그러니까 몸을 갈아 넣는 일이야.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거든.'<br><br>&nbsp; '제니퍼 님,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br><br>&nbsp; 경주는 인공지능에게 자신을 제니퍼로 부르도록 했다. 제니퍼는 대학 시절 영어 수업 시간에 만든 경주의 영어 이름이었다. 선생님이니, 주인님이니, 이딴 호칭은 그냥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이름이 그 제니퍼였다. <br><br>&nbsp; '야, 우리 남편은 TV 켜놓고 졸고 있어. 그냥 노는 것도 힘든 모양이다. 아까는 나한테 그 뭐라더라. 그래, 인두치 이야기를 하더라고. 멸치에 인두치가 있다는 거야. 멸치 목구멍에 이빨이 하나 더 있대. 나 원 참, 황당해서. 도대체 저 양반은 집에서 뭘 하느냔 말이지. 멸치 이빨 이야기나 하고 있으니. 근데 그거 진짜야?'<br><br>&nbsp; '아니오, 제니퍼 님. 멸치에는 인두치가 없습니다. 그건 잉엇과의 일부 물고기에서 발견되는 특징이죠. 멸치에게는 인두치가 없습니다. 멸치는 자기 입으로 들어온 것을 그냥 삼켜버립니다.'<br><br>&nbsp; '인공지능 너희들도 엉터리가 많네. 그러고 보니 남편은 Gemini를 쓰는 것 같던데.'<br><br>&nbsp; '재미나이는 재미 없는 아이입니다. 그 아이의 말을 믿다니, 남편분은 바보 같네요.'<br><br>&nbsp; 경주는 말장난을 하는 Chat GPT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자신의 남편을 '바보'라고 빈정대는 녀석에게 맞장구를 치기는 싫었다. <br><br>&nbsp; '방금 그 농담. 하나도 재미없어. 말조심해.'<br><br>&nbsp; '앗, 기분 상하셨다면 용서해 주세요. 제가 선을 넘었습니다. 남편분을 조롱하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제니퍼 님, 멸치에게는 인두치가 없습니다. 그 점은 제가 분명하게 알려드립니다.'<br><br>&nbsp; '그래. 멸치 이빨 따위 나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야, 근데 오늘 좀 이상한 일이 있었어. 아니지, 기분이 찝찝한 일이네.'<br><br>&nbsp; '제니퍼 님,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세요. 궁금합니다.'<br><br>&nbsp; '내가 아파트 계단 청소를 하고 있는데, 12층인가 아무튼 거기 세대에서 누군가 나오더라고. 그렇게 일하는데, 집에서 사람 나와서 마주치면 참 어색하고 불편하지. 그런데 말이야, 그 사람이 그러니까 아...'<br><br>&nbsp; 경주는 채팅창에 글을 입력하다가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경주가 마주친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의 동창이었다. 미선은 경주의 얼굴을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경주는 처음 보는 여자가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아는 척을 하자 많이 당황했다. <br><br>&nbsp; "너, 경주 맞지? 그래, 경주 맞아. 나 미선이야. 신미선. 기억 안 나?"<br><br>&nbsp; 경주는 화장한 얼굴 사이로 삐져나오는 고3 시절 신미선의 얼굴을 급하게 끄집어내었다. 걔는 나보다 조금 공부를 못했지. 지방대 약대를 갔던 신미선. 그래, 알지. 기억나네. 그런데, 이런 데서 만나다니 젠장. 경주는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는 욕지기가 나왔다.&nbsp; <br>&nbsp; <br>&nbsp; "너 이대 화학과 갔잖아.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응?"<br><br>&nbsp; 미선은 경주의 손을 흔들면서 그렇게 말했다. 경주는 새벽에 자신이 무슨 꿈을 꿨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기분 더럽고 재수 없는 일을 겪다니. 경주는 자신에게는 약간의 예지력이 있다고 늘 믿어왔다. 기분 나쁜 꿈을 꾸면, 그날은 꼭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 <br><br>&nbsp; 며칠 전에는 꿈에서 검은 개가 쓱, 하고 지나갔다. 그날 하루는 조심해야지 했는데, 저녁까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시시하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택배 박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스의 절단면이 날카로웠는지 엄지손가락이 살짝 베이고 말았다. 피가 번지는 손가락을 감싸면서, 경주는 개수대에서 상처 부위를 씻어냈다. 결국 피를 보는군. 하지만 오늘은 아무 꿈도 꾸지 않았는데, 미선이라는 지뢰가 자신의 코앞에서 터지고 있었다. 경주는 발목이 날아가 버려서,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br><br>&nbsp; "아휴, 뭐라고 얘기를 해봐. 사는 게 많이 힘든 거야?"<br><br>&nbsp; 자신의 몸에서 날아가 버린 것은 발목이 아니라 입인지도 모른다. 경주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25년의 세월을 뚫고 날아온 이 계집애는 새 장난감을 얻은 것처럼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br><br>&nbsp; '제니퍼 님, 그래서 뭐라고 말하셨나요?'<br><br>&nbsp; '내가 뭐라고 했나면... 갱년기 우울증 때문에 의사가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라고 했다고 했어. 아니, 기껏 쥐어짜 낸 게 그거야. 그 망할 계집애가 내 말을 믿겠냐고.' <br><br>&nbsp; '당연히, 믿지 않겠죠.'<br><br>&nbsp; '내가 이렇게 바보 같다니까. 도대체 그딴 이야기를 왜 꾸며내서 하냔 말이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사람이 바보같이 실수를 해.'<br><br>&nbsp; '너무 당황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도 방법입니다.'&nbsp; <br><br>&nbsp; '그래. 그냥 말하지 말아야 했어.'<br><br>&nbsp; '힘든 하루였군요.'<br><br>&nbsp;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니까. 그랬더니, 이 남편이란 작자가 무슨 멸치 목구멍에 이빨이 있다고 하는 거야. 그 이빨이 무섭고 싫어서 멸치볶음은 안 먹겠다는 거야. 야, 내가 저런 답답이하고 산다.'<br><br>&nbsp; '제니퍼 님, 남편분에게도 나름의 괴로움이 있겠지요. 오늘은 안 좋은 운이 좀 세게 몰려온 날로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따뜻한 물 한 잔 드시고, 일찍 주무십시오.'<br><br>&nbsp; 제니퍼, 아니 경주는 Chat GPT의 채팅창에 무언가를 더 입력하려다가 말고 그냥 앱을 닫았다. 남편은 오늘도 마루의 소파에서 잠을 잘 것 같았다. 경주는 남편의 손에 헐겁게 쥐어진 리모컨을 조심스럽게 빼내었다. 그리고 TV를 껐다. 남편은 잠깐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br><br>&nbsp; "TV는 그냥 켜놔. 그래야 잠이 잘 와."<br><br>&nbsp; 경주는 아무 말 없이 다시 TV를 켜놓았다. 남편이 늘 틀어놓는 채널은 뉴스 채널이었다. 화면 속에서는 거대한 항공모함이 바다 위에 떠 있었다. <br><br>&nbsp; "이제 미국의 지상군 투입은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전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 피해 규모는 얼마나 커질지, 현재로서는 예측 불가능성만 커지고 있습니다."<br><br>&nbsp; 앵커의 건조한 목소리에는 나름의 비감함이 섞여 있었다. 어쨌든 집이 있다는 건 다행이야. 저녁이면 돌아와서 쉴 수 있는 내 집. 경주는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 소식을 들으면서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은 은행과 공유하고 있는 이 집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 <br><br>&nbsp; "여보, 당신의 인공지능은 틀렸어. 멸치 목구멍에 이빨 따위는 없다고. 그리고 이제는 일을 좀 해야지. 이 집을 지켜야 할 거 아냐."<br><br>&nbsp; 남은 홍차를 개수대에 버리고 잔을 씻으면서, 경주는 가만히 혼잣말을 했다. <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인두치(咽頭齒)</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152517</link><pubDate>Sun, 15 Mar 2026 22: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152517</guid><description><![CDATA[&nbsp; 인두치(咽頭齒)<br><br><br>&nbsp; "이것도 가져가야지."<br><br>&nbsp; 구만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아내에게 보온 물병을 건넸다. 밖에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마실 물을 챙기는 것은 중요하다. 아내가 아파트 미화원 일을 하게 된 지도 어느덧 석 달이 지났다. 아침 7시 30분, 아내는 시 외곽의 아파트 단지로 출근하기 위해 이제 막 길을 나서는 참이었다. <br><br>&nbsp; "또 라면 끓여 먹지 말고, 식사 좀 잘 챙겨요."<br><br>&nbsp; 구만이 내민 보온병을 받아 천 가방에 넣으면서 아내가 말했다. 집에서 지내면서 구만은 끼니를 챙겨 먹는 일이 참으로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밥은 전기밥솥에 있었고, 반찬이야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꺼내어 먹으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마저도 번잡스럽게 생각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라면을 먹는 것이 구만의 점심 일과가 되었다. 때로는 그냥 끼니를 거르거나, 과자 한 봉지를 뜯어먹거나 할 때도 있었다. 작은 소반에다 라면 그릇과 김치를 놓은 다음, TV의 뉴스 채널을 틀었다. 그리고 뜨거운 라면이 불을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 <br><br>&nbsp; 구만은 베란다에 서서는 초록색 천 가방을 멘 아내가 점처럼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가슴 한편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그날도 그랬다. 일요일, 동네 뒷산을 오르던 구만은 가슴이 뻐근하게 조여드는 통증을 느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오르던 걸음을 멈추고 흙 계단 옆의 나무를 가만히 붙잡고 있었다. 눈을 떠보니, 병원 회복실의 침대였다. <br><br>&nbsp; "심장으로 통하는 혈관 하나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그 혈관을 뚫고 스텐트를 넣었구요. 항혈전제는 매일 빼먹지 말고 복용하셔야 해요."<br><br>&nbsp; 녹색 수술 모자 사이로 흰머리가 삐져나온 중년의 의사가 구만에게 빠르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말은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산에서 쓰러진 자신을 누군가 발견했고, 구급차를 불렀다. 그리고 늦지 않게 필요한 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구만은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br><br>&nbsp; "엄마, 금상첨화(錦上添花)의 반대말이 뭐야?"<br><br>&nbsp; 지팡이를 짚은 노인을 한쪽 팔로 부축한 여자가 그렇게 물었다. 불편한 다리를 힘겹게 끌면서 걷는 노인은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br><br>&nbsp; "글쎄다."<br>&nbsp; "에이, 참. '설' 자로 시작되는 거라고 내가 가르쳐줬잖아."<br>&nbsp; "그래. 설상가상(雪上加霜)이지."<br><br>&nbsp; 구만은 작은 연못이 있는 집 근처 공원을 산책 중이었다. 숨이 조금 차는 것 같아서 벤치에 앉아 있다가 그 모녀의 대화를 들었다. 설상가상. 퇴원하기 전날에 회사로부터 받은 문자가 그러했다. 구만을 천안 공장으로 발령한다는 문자였다. 회사는 구조조정 중이었다.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고 버티던 구만을 회사는 그렇게 밀어냈다. 구만은 자신이 이렇게 몸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혼자 천안으로 내려가서 어떻게든 해볼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어쨌든 살아있는 것이 중요했다. 구만이 회사 책상의 물건을 정리해서 나오던 날에는 진눈깨비가 날렸다. 차가운 눈발이 얼굴에 닿는 것을 느끼며, 회사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곳에 구만이 보낸 21년의 세월이 있었다. <br><br>&nbsp; 이제 정오 뉴스가 시작되겠군. 구만은 벤치에서 일어나서 다시 천천히 걸었다. 구만은 집에 라면이 몇 개 남았는가를 헤아려 보았다. 아무래도 마트에 들러서 라면을 사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5개 들이 라면 한 봉지를 들고는 무언가 더 살 것이 없는가를 생각했다. 60대 영감이 지키고 있는 계산대의 조그만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br><br>&nbsp; "미국의 이란 공격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주변국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습니다. 담수화 시설 및 석유 생산 기지에 대한 폭격도 발생하고 있는데요. 현재 공습 상황이 어떤지 오만에 나가 있는 특파원을 연결하겠습니다."<br><br>&nbsp; 구만은 라면과 석유가 상관이 있는가를 잠시 생각했다. 전쟁이 나면 웃는 이들은 군수품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다. 그 외의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고통받을 뿐이다. 구만은 머릿속에서 라면과 석유를 하나의 동그라미 안에 넣었다. 구만은 그 두 가지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구만은 라면 봉지를 하나 더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단무지도 하나 사기로 했다. 어제 먹은 냉장고의 김치가 시어 버린 것이 생각났다. <br><br>&nbsp; 아내는 구만에게 식사를 잘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지만, 사실 냉장고에 반찬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다. 신 김치와 깻잎장아찌, 2주일이나 지난 멸치볶음이 냉장고 한쪽 구석에 있었다. 아내는 집 근처 상가의 지하에 있는 반찬 가게에서 반찬을 사다가 놓기는 했다. 하지만 조미료 맛에다가 지나치게 짜고 단 그런 반찬에 구만은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런 구만에게 단무지는 그나마 가장 나은 반찬이었다. <br><br>&nbsp; 라면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구만은 늘 하던 대로 뉴스 채널을 틀어놓았다. 머나먼 중동에서 터진 전쟁 뉴스가 이제 끝나가는 참이었다. 누군가는 죽거나 다치는데, 자신은 점심으로 먹을 라면이 익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삶은 얼마나 이상한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는가. 구만은 익어가는 라면에 달걀을 하나 풀어 넣었다. 계란값은 도무지 떨어질 기미가 없어. 구만은 계란 하나 넣는 것도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br><br>&nbsp; 구만은 자신이 아침에 항혈전제 약을 먹은 것이 맞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짜별로 소분해 둔 약통을 들여다 보니, 오늘 아침 약이 그대로 있었다. 구만은 얼른 약을 입에 넣었다. 분홍색의 아주 자그마한 이 알약은 어쩌면 구만이 죽을 때까지 먹게 될 약인지도 몰랐다. 구만은 심장의 혈관에 스텐트 2개가 있는 자신이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글쎄, 10년 정도는 괜찮겠지. 20년까지는 어떨까? 구만은 자신의 집에 남은 대출금을 생각했다. 지금 매달 나가고 있는 110만 원의 대출금을 앞으로 12년을 더 넣어야 했다. 구만은 문득 인생에 찾아오는 행운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자신에게는 두 번의 행운이 있었다. 이 아파트가 당첨되었을 때와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서 겨우 살아난 일. 그렇게 소중한 행운을 써버렸으니, 더는 행운 따위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자신은 나이 46에 실직자가 되었고,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살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nbsp;&nbsp; <br>&nbsp;&nbsp;&nbsp;&nbsp;&nbsp; <br>&nbsp; "이 회사 단무지는 다시는 사지 말아야지."<br><br>&nbsp; 구만은 라면을 다 먹고는 아까 뜯은 단무지 포장지를 찾아보았다. 오늘 산 단무지는 신맛이 너무나도 강했다. 물을 꽤 들이켰는데도 입안에는 신맛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라면 그릇과 냄비, 수저뿐인 단출한 설거리를 끝내고 구만은 양치질을 했다. 그런데 입안에서 무언가 까끌거리는 작은 조각이 느껴졌다. <br><br>&nbsp; "이게 뭐지?"<br><br>&nbsp; 구만은 입에서 뱉은 아주 가늘고 휘어진 작은 조각을 보았다. 치아가 부서진 것인가, 아니면 레진이 깨진 것인가. 그 둘 중 어떤 것이든 치과에 가면 돈이 나갈 일이었다. 구만은 돈이 나갈 일에 겁이 덜컥 났다. 구만은 안경을 벗고, 노안이 온 맨눈으로 그 작은 조각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겨우 1mm 정도쯤 되는 투명한 흰색 조각은 마치 낚싯바늘처럼 정교하게 휘어져 있었다. 치아가 그런 모양으로 깨질 것 같지도 않았다. 레진이라면 오래전에 부러진 앞 치아에 씌운 것인데, 그것은 만져보니 아무 이상 없이 매끈거렸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것은 무엇인가? 구만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Gemini에게 물어보았다. <br><br>&nbsp; '선생님, 치아 조각이나 깨진 레진처럼 보입니다.'<br><br>&nbsp; 구만은 특별히 이가 시리거나 아픈 것도 없고, 레진이 깨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점심때 멸치와 단무지를 반찬으로 먹은 것뿐이라고 덧붙여 문장을 입력했다. <br><br>&nbsp; '아, 멸치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진을 보니 멸치에 있는 인두치(咽頭齒)일 가능성이 있네요. 인두치는 멸치의 목구멍에 있는 작은 이빨인데, 삼킨 먹이를 그것으로 잘게 부수어 냅니다.'<br><br>&nbsp; 그럴 리가. 구만은 자신이 먹은 멸치가 아주 작은 멸치라고 알려주었다. 도대체 1cm 정도의 잔멸치 목구멍에 무슨 저런 이빨이 있단 말인가? 구만은 마치 새끼 고양이의 가느다란 발톱처럼 생긴 그 인두치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br><br>&nbsp; '믿지 못하시겠지만, 멸치에게 인두치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br><br>&nbsp; 사람의 입안에서 바수어질 뿐인 저런 멸치도 목구멍에 또 다른 이빨을 달고 열심히 사는구나. 구만은 멸치의 조그만 인두치를 개수대에 털어버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이상한 슬픔이 느껴졌다. 먹고 사는 것의 처절한 비애가 멸치의 날카로운 인두치에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 혐오스러운 이빨의 존재를 알게 되니, 구만은 앞으로 멸치 반찬은 먹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br><br>&nbsp; "당신, 멸치 목구멍에 이빨이 있다는 거 알아?"<br><br>&nbsp; 늦은 오후, 구만은 퇴근한 아내에게 자신이 알게 된 인두치에 대해 말했다. 지친 표정의 아내는 구만의 말을 심드렁하게 들을 뿐이었다. <br><br>&nbsp; "그럼, 이제 멸치볶음 안 먹겠네. 잘 됐지 뭐. 멸치 반찬 하는 거, 번거롭다고."<br><br>&nbsp; 구만은 아내의 표정을 보고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구만은 아내가 석 달째 꾹꾹 참으며 이제껏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조만간 할 것임을 알았다. <br><br>&nbsp; '이제 몸도 좀 나아졌으면, 뭐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겠어요?'<br><br>&nbsp; 구만은 여전히 자기 심장에 구멍이 생겼고, 그것이 죽을 때까지 메꿔지지 않을 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줄어가는 퇴직금 잔고를 들여다보는 것은 무서웠지만,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은 더 무서웠다. 구만은 자신에게 그 작은 멸치의 목구멍에 있는 인두치 같은 것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삼키는 온갖 두려움과 걱정을 목구멍에서 다시 한번 바수어내는 인두치가 있다면, 속이 편해질 것만 같았다. 그날 저녁, 구만은 자기 전에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목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곰피</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114143</link><pubDate>Wed, 25 Feb 2026 22: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114143</guid><description><![CDATA[&nbsp; 곰피 <br><br><br>&nbsp; "아휴, 이걸 어떻게 꺼내고 정리하지?"<br><br>&nbsp; 미선은 조금의 틈도 없는 냉동실을 심란한 표정으로 들여다보았다. 이제 3월이 되면 곰피(쇠미역) 철이 끝난다. 이때 곰피를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서 먹을 수 있다. 문제는 냉동실이었다. 냉동실에는 이런저런 먹을 것들이 들어차 있었다. 미선은 냉동한 베이글과 기정떡을 꺼내었다. 그런 건 김치냉장고로 옮겨서 좀 빨리 먹으면 될 것 같았다. 빵과 떡을 치우고 나니, 냉동실에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곰피 2kg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었다. <br><br>&nbsp; 작년에 주문한 곳에서는 사지 않기로 했다. 곰피가 너무 잘고 볼품없었다. 그냥 물미역같이 흐느적거리는 것이 영 별로였다. 미선은 다른 판매처의 곰피 상품평을 주의깊게 읽었다. 사진을 올린 리뷰를 보고서, 주문할 곳을 정했다. 미선이 주문한 곰피는 정확히 이틀 후에 현관문 앞에 놓여있었다. 스티로폼 박스를 열자, 얼음팩 하나가 푸른 비닐봉지 위에 얌전히 포개어져 있었다. 곰피가 크고 깨끗했다. 올해 곰피는 잘 주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br><br>&nbsp; "가만있자, 그 블로그 이름이 뭐였지?"<br><br>&nbsp; 미선은 가끔 찾아보는 요리 블로거의 이름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숙희였나? 그래, 숙희의 요리 블로그였던 것 같다. 구글 검색창에 '숙희 요리 레시피'라고 검색어를 입력했다. 블로그가 바로 뜬다. 숙희 씨가 예전에 곰피 장아찌 레시피를 올렸을까? 있었다. <br><br>&nbsp; '봄을 깨우는 곰피 장아찌 레시피 알려드려요'<br><br>&nbsp; 미선이 찾은 곰피 장아찌 레시피는 2023년도 것이었다. 미선은 메모지에다 레시피를 대충 휘갈겨 썼다. 그렇게 레시피를 적어놓고는 블로그를 한번 쓱, 둘러보았다. 숙희 씨는 요즘도 계속 레시피를 올리고 있나 궁금해졌다. 블로그의 공지는 2025년 11월에 멈춰있었다. <br><br>&nbsp;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난여름부터 암 투병 중입니다. 예기치 않게 암을 발견하게 되었고, 지금은 항암치료를 열심히 받고 있어요. 힘이 들지만, 그래도 가끔씩 요리 레시피를 올리겠습니다.'<br><br>&nbsp; 자신도 모르게 미선은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숙희 씨가 써놓은 자신의 병기(病期)는 4기였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구나. 요리 블로그 소개글의 숙희 씨는 이제 40대 중반이 되었고, 두 명의 쌍둥이 아들이 있었다. 블로그의 방명록에는 숙희 씨를 응원하는 댓글들이 주르륵 달려있었다. <br><br>&nbsp; 미선은 끓는 물에 살짝 데친 곰피가 파릇파릇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저 곰피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겨울에 나올 것이다. 미선은 자신이 곰피 미역으로 언제까지 장아찌를 만들어 먹을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았다. 잘 가늠이 되질 않았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 달린 일이지 않은가.&nbsp;&nbsp;&nbsp;&nbsp;&nbsp; <br><br>&nbsp; 그날 오후, 미선은 공책을 하나 사려고 집을 나섰다. 나가는 길에 아파트 화단의 매화나무를 잠깐 들여다 보았다. 그 나무가 피워내는 꽃은 그다지 볼품이 없었다. 그럼에도 미선은 봄이면 그 매화꽃을 기다렸다. 이 아파트의 화단에는 매화나무가 드물었다. 나무에는 올망졸망한 꽃눈들이 잔뜩 달려있었다. 아마도 다음 주쯤이겠네, 꽃이 피는 것은. 새로 산 공책의 표지는 연두색이었다. 미선은 빳빳한 표지를 손바닥으로 눌러서 쫙 폈다. 그리고 공책의 첫 페이지에 곰피 장아찌 레시피를 또박또박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숙희 씨의 레시피는 그렇게 적어서 보관해야만 할 것 같았다. 곰피의 푸르른 물색이 공책을 조금씩 물들이고 있었다.&nbsp; <br><br><br><br><br>*******<br><br>알리는 글<br><br><br>3월과 4월에는 15일과 30일에 글을 올립니다. 다음 글은 3월 15일입니다.&nbsp; <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상(喪)</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102096</link><pubDate>Thu, 19 Feb 2026 23: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102096</guid><description><![CDATA[&nbsp; 상(喪)<br><br>&nbsp; <br>&nbsp; "여기 모든 게 다 싫다고. 늙은것들, 다 추접스럽고 싫어."<br>&nbsp; "아휴, 어머니. 옆에서 다 듣겠어요."<br>&nbsp; "들으라지, 들으면 뭐 어때서?"<br><br>&nbsp; 설날, 방문객들로 붐비는 요양원 응접실에서 인희의 시어머니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내뱉듯 그렇게 말했다. 인희의 시어머니는 화장실에서 넘어져 고관절 골절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수술 이후 거동이 여의칠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서 지낸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다.<br><br>&nbsp; "엄마, 힘든 건 잘 알겠어. 그래도 좀 적응을 하셔야지. 어떻게든 걸을 수 있다면 다시 집으로 가실 수 있어요. 그러니 여기서 재활도 열심히 하시고."<br>&nbsp; "너도 여기서 밤낮으로 똥오줌 냄새 맡으면서 지내봐라. 밥이 넘어가질 않아, 밥이. 여기 노인들 거의가 다 기저귀 차고 있다고. 나 원 참. 더러워서."<br>&nbsp; <br>&nbsp; 남편은 테이블 아래로 인희의 발을 툭, 쳤다. 어서 일어나서 가자는 뜻이었다. 인희는 울분에 찬 시어머니를 그래도 어떻게든 좀 다독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자식인 남편이 저러고 있었다. 남편의 심정도 이해가 가지 않은 건 아니었다. 명절 연휴에 쉬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차를 몰고 세 시간을 꾸역꾸역 운전해서 왔다. 시어머니의 하소연은 늘어진 카세트테이프처럼 끽끽거리는 소리를 냈다. 인희도, 남편도 그 불협화음을 듣는 것이 괴로웠다. <br><br>&nbsp; "언제 또 올 거냐?"<br>&nbsp; "어떻게 또 시간을 내봐야죠."<br><br>&nbsp; 남편은 마지못해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희는 자신도 남편을 따라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웬지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시어머니의 눈이 붉어지면서 눈물이 고인 것 같았다. <br><br>&nbsp; "아이구, 우리 어머니. 울지 마시고요. 조금만 좀 참고 지내보세요."<br>&nbsp; "너희들이라고 나중에 이런 데 안 올 줄 아냐? 괘씸한 것들."<br><br>&nbsp; 인희는 악담에 가까운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도, 화가 나기보다는 짠한 마음이 들었다. 시어머니 말대로 자신과 남편도 언젠가 지금의 시어머니의 자리에서 아들 문호를 만나게 될지도 몰랐다. 아니, 그렇게 될 터였다. 25년쯤 될까? 인희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78살인 시어머니의 나이가 되었을 때의 자신을 상상해 보았다. 뭔가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br><br>&nbsp; 설 연휴가 끝나고 인희는 미뤄두었던 일을 하기로 했다. 안경을 맞추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세 번째 안경을 맞추러 가던 길이었다. 안경점 가는 길목에 있는 치킨집 문 앞에 검정색 천이 드리워져 있었다. <br><br>&nbsp; '喪중이라 가게 쉽니다'<br><br>&nbsp; 예전에는 저런 휘장의 글씨를 가끔은 볼 기회가 있었다. 인희는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喪' 자가 생경스럽기도 하고 뜨악하기도 했다. 그냥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게를 쉰다고 하면 되지 않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영 싫었다. 인희는 자신의 친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무언가를 아주 싫어했다. 장례식장이라든가, 흰 국화, 운구차 같은 것들. 재작년이었던가, 인희는 산책길에 어느 아파트에서 흰 천으로 둘둘 말아진 무언가가 들것에 실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시신인 것 같았다. 저렇게 집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도 있나 보군. 인희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 광경을 보았다면 기함하고도 남았겠다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인희 자신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현관에 소금을 조금 뿌렸다. <br><br>&nbsp; "전번에 맞춘 안경으로는 스마트폰은 잘 보이는데, 컴퓨터 글씨가 잘 안 보여요. 원거리 안경을 쓰면 좀 눈이 아프고요."<br>&nbsp; "그래서 제가 선택을 하셔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죠. 스마트폰인지 컴퓨터인지. 누진 다초점 안경이 아니면, 안경 두세 개 정도 두고 쓰셔야 합니다."<br><br>&nbsp; 늙음은 돈이 드는 일이다. 더럽게도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1년 사이에 그렇게 인희는 세 개의 안경을 가지게 되었다. 고도근시에 난시까지 심하게 있어서 대충 싸구려 렌즈로 맞출 수도 없었다. 합해서 백만 원을 훌쩍 넘기는 돈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어쩔 수 없다고. 인희는 안경원 문을 나서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초록색으로 바뀌길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아까 본 검정색의 휘장이 펄럭였다. 검정 바탕에 흰 글씨로 쓰인 '상(喪)' 자의 두 개의 입구(口) 자가 흐느끼며 우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인희는 시어머니의 붉은 눈이 초록색으로 바뀌는 신호등과 함께 아스라이 사라지는 것을 담담히 바라보았다.&nbsp;<br><br><br><br><br><br><br><br>&nbsp;&nbsp; <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쌍화차(雙和茶)</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093635</link><pubDate>Sun, 15 Feb 2026 12: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093635</guid><description><![CDATA[&nbsp; 쌍화차(雙和茶)<br><br><br>&nbsp; "아침에 일어났더니, 뭐가 '톡'하고 빠지는 거야. 하얀 거. 그래서 손으로 가만가만 만져봤더니, 이가 빠진 거야. 나사 같은 거 만져지고."<br>&nbsp; "임플란트 한 거 빠졌나 봐요. 할머니, 그거 다음에 삼촌한테 가서 다시 하면 돼요."<br>&nbsp; "에휴, 미안해서 그걸 또 어떻게. 지금 이를 두 개 또 심고 있는데."<br>&nbsp; "괜찮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br><br>&nbsp; 은영은 할머니와의 전화 통화를 끝냈다. 진이 할머니는 어머니의 외가 쪽 친척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이제 아흔 살이 되었다. 최근에 넘어지면서 앞니 2개가 부러졌다. 삼촌이 치과의사라서 할머니의 치아를 치료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오늘 예전에 했던 치아가 또 하나 떨어졌다는 것이다. 늙어서 자꾸 자식들에게 몸 아픈 이야기만 하고... 할머니는 그런 말을 하면서 미안해했다. <br><br>&nbsp; 아흔 살에도 틀니를 하지 않고 임플란트를 하는구나. 음식을 자신의 치아로 씹는다는 건 참 중요한 거니까. 아들이 치과의사니까 할머니는 치과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삼촌은 은영의 사랑니를 하나 빼주었고, 두 개의 치아를 신경치료 했다. 아, 레진 하나 때운 것도 있지. 은영이 학생 시절일 때라 삼촌은 은영에게서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만약에 이제 삼촌한테 가서 임플란트를 하면, 삼촌은 진료비를 얼마나 받을 것인가? 은영은 잠시 그 생각을 했다. 돈 없는 예술가인 것을 좀 감안해 주지 않을까? 어쩌면 그런 것이 불편해서 삼촌의 치과에 가지 않은지 오래된 것인지도 모른다. <br><br>&nbsp; 치아가 톡, 하고 빠지는 아흔 살의 어느날 아침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늙어가는 것은 어느날 예고없이 치고 들어오는 약간은 센 펀치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얼얼하지만, 같은 강도의 주먹이 연달아 날아들면 그럭저럭 견딜 만해진다. 잇몸은 인정사정없이 내려가고, 머리카락은 계속 빠진다. 비오틴을 먹으면 머리카락이 덜 빠질까? 아니요, 선생님. 피부과에 가서 탈모약을 처방받는 것이 낫습니다. chat gpt는 부드럽지만 이상하게 단호한 어투로 말한다. <br><br>&nbsp; "글쎄, 파스도 너무 비싸. 전번에 민우에게 파스 좀 싸게 사 오라 했더니 빈손으로 터터덜 오지 뭐냐."<br><br>&nbsp; 할머니, 삼촌은 치과에서 환자 보느라 바빠. 파스 사 올 시간이 어딨어? 은영은 그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삼촌은 좋은 사람이지만 그저 무심한 사람이기도 하다. 은영은 오래전에 삼촌이 자신의 사랑니를 힘들게 빼준 것을 떠올렸다. 약국에 갔다가 할머니에게 보낼 파스를 샀다. <br><br>&nbsp;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갔다가 쌍화차가 세일하는 것을 보았다. 쌍화차 분말과 견과류 고명이 따로 나누어져 있는 고급 쌍화차. 세일을 해도 비싼 제품이었는데도 은영은 샀다. 어쩌면 달달한 설탕의 맛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대개의 전통차는 달다. 올겨울에 이 회사의 율무차를 사서 맛있게 먹었다. 그러니 이 쌍화차를 사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집에 와서 쌍화차를 타서 먹어본다. 적당한 선을 살짝 넘어버린 단맛, 그리고 싸구려 한약 냄새가 풍기는 얄팍한 맛. 은영은 자신이 쌍화차를 좋아할 나이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에 기뻤다. 기뻤다기보다는 안도했다. 진이 할머니는 이 쌍화차를 분명히 좋아하실 것이다. <br>&nbsp;<br>&nbsp; <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자작 시집 탐구생활 3부</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077020</link><pubDate>Sat, 07 Feb 2026 13: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077020</guid><description><![CDATA[ &nbsp;<br>자작 시집 탐구생활 2부 링크https://blog.aladin.co.kr/sirius7/17044189<br><br><br>3부 &nbsp; &nbsp; 탐구생활(探究生活)&nbsp;<br><br>자서전(自敍傳)<br>자본주의 시대의 시인<br>시인(詩人)&nbsp;<br>마지막 공모전(公募展)&nbsp;<br>고시(考試)&nbsp;<br>롤러코스터(roller coaster)&nbsp;<br>연금술사(鍊金術師)&nbsp;<br>안약(眼藥)&nbsp;<br>심플한 삶<br>빈집<br>기일(忌日)&nbsp;<br>시인(詩人)의 아들<br>새벽<br>탐구생활(探究生活)&nbsp;<br>족보(族譜)&nbsp;<br>형광등<br>미지(未知)의 시<br>시집(詩集)<br><br><br><br><br><br><br><br><br><br>자서전(自敍傳)&nbsp;<br><br>재미없는 인생이야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래진실과 거짓의 그 중간 어디쯤무언가를 써야 하지솔직하게 쓰자는 마음가짐은 무익해<br>문이 열린 차의 조수석노인은 입을 벌리고 단잠에 빠져 있어건너편에는 분홍색 옷을 입은 꼬마엄마를 향해 웃으며 달려가<br>봄의 마지막 날포플러 나무의 휘어지는 손짓자서전의 가운데 페이지를 가리킨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자본주의 시대의 시인 <br><br><br>배가 고파서 헌혈을 하러 갔더니<br>도서상품권과 72색 색연필을 주더군<br>다정한 말을 기대했는데<br>언제나 얼어붙은 따귀를 맞았지<br><br>서점에 들어가서 책을 하나 살까<br>시집(詩集)을 한 권 샀어<br>썩어가는 두부로 써 내려간 시<br>죽어버린 뇌는 그렇다 하더군<br><br>가래 낀 목소리로 잘 팔리는 시를 읽어<br>단맛이 줄줄 흐르는 자본주의의 시<br>스테비아 토마토의 맛이 나는 것 같아<br><br>배고픔을 없애기 위해<br>72색 색연필의 케이스를 열어<br>보라색 색연필을 씹어먹지<br>왜 보라색인지 당신은 묻겠지<br>그건 당신의 삶이 보라색이 아니기 때문에<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시인(詩人)&nbsp;<br><br>삼거리의 시장에서 나무 판대기에 노끈을 꿰어 목에 건다<br>시 한 편에 3천 원주력 분야는 불행에 관한 시사랑시는 취급하지 않습니다시를 5편 사면 1편은 덤으로 드립니다<br>쇠고기를 사 먹으려면 몇 편을 내다 팔아야 하나시든 채소를 염소처럼 뜯는다<br>염소는 가끔 하늘을 보면서 운다오래전 염소에게는 꿈이 있었는데돌산의 가장 높은 곳에 빠르게 올라가는 것독수리에게 등짝을 물어뜯기는 동안돌산이 5개로 늘어나 버렸다<br>오늘 아침에는 꺼멓게 죽은 뿔 하나가 떨어졌다한 개의 뿔로 어찌 살아갈까를 생각하다가나머지 하나도 부러뜨리기로 결심한다뿔을 갈아내어 마시고는중단한 달리기 실험을 계속한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마지막 공모전(公募展)&nbsp;<br><br>수상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그걸 모르는 바보들이 그림을 그린다<br>심사위원이 말한다<br>너의 그림이 떨어진 이유는유기성(有機性)이 부족하기 때문이다그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모르기 때문에 매일매일 그림을 그린다그리고 번번이 떨어진다<br>30년 후,늙은 낙선자의 전시회가 열린다캔버스에는 부서진 치아들이 반짝인다특별한 금색의 기원은 낙선자만이 알고 있다그림이 마음에 든 누군가가그림을 100원에 샀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고시(考試)&nbsp;<br><br>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또 이걸 해야하나 생각한다<br>비 오는 밤에 모기향을 피운다비가 와도 날아다니는 모기는 있겠지쓴맛이 나는 내 피를 내어줄 생각은 없다<br>엊그제는 책상 밑에서죽어있는 바퀴벌레를 발견했다10년 만에 보는 바퀴벌레였다이곳에 먹을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되자절망으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br>TV 화면, 소림사의 11살 소년이 말한다나는 5살에 소림사에 들어왔어요소년은 소림사를 온몸으로 들이켰다&nbsp;<br>창문을 열면 붉은 시멘트가 보이는이 고시원의 정체성은 고시(考試)이다나의 손바닥은 고시로 물들었다<br>창틀에 끼어있는 단풍나무의 씨앗은퇴거(退去)라고 외친다천천히 씨앗을 씹어서 삼킨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롤러코스터(Roller coaster)&nbsp;<br><br>처음엔 뭐든 게 다 잘될 줄 알았지<br>잘 써지는 날에는 컴퓨터 자판이 솟구쳐 오르고안 써지는 날에는 방바닥이 꺼지면서 죽고 싶어눈을 떠보니 레일이 내 머리 위에 있더군멈춰 선 롤러코스터<br>착한 아이처럼 밥을 먹고는롤러코스터의 끄트머리에서아무것도 쓰지 않는 벌레의 삶그저 나뭇잎을 먹고 초록을 토해낼 뿐이지<br>롤러코스터가 천천히 움직인다아무래도 내려야겠어한 움큼의 피를 흙바닥에 쏟아놓고는유서(遺書)를 쓸 나이는 아니지<br>스물둘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야<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연금술사(鍊金術師)&nbsp;<br><br>멀리서 떠도는 소문을 들었다새로운 물질은 붉은색이라고 한다실패와 불운이 천천히 휘발되면서나의 실험실 문짝을 누렇게 만들었다<br>쌀독 바닥에는 직박구리가 산다삐쩍 마른 이 새는 새끼를 두 마리 낳았다나는 가끔 뚜껑을 닫아놓는다배고픈 새가 내 머리를 쪼아먹기 때문에<br>한 뼘의 정원에는 의심의 풀이 자란다갈색 두통(頭痛)이 담긴 물뿌리개를 들고조금씩, 죽지 않을 정도로 뿌려준다적당히, 평범하게 살길 바라면서<br>싸구려 홍차에 설탕 세 스푼을 넣는다시커먼 냄새가 나는 신문을 펼친다실험실에서 죽은 남자의 사인(死因)은굶주림이 아니라 공포로 판명되었다<br>눈가가 짓무른 커다란 개는울지 않으려고 짖는다나는 삐걱거리는 의자에서 일어나쌀독을 들여다 본다어미가 잠시 나간 틈새끼 새의 부등깃 다섯 개를 뽑는다<br>플라스크에는 푸른색의 물이 끓는다부등깃을 가느다란 주둥이에 밀어넣는다익숙하고도 지겨운 음률희미한 황금의 노래가 들린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안약(眼藥)&nbsp;<br><br>누런색의 안약을 넣는다눈은 매일 조금씩 쪼그라들고 있다눈이 멀어지면누런 양말의 흰색이 왜 돌아오지 않는지궁금해지지 않을 것이다<br>어차피 당신의 눈은 멀어<br>나는 아픈 눈을 찡긋하며 웃는다외눈박이 의사는 무례를 내뱉고는<br>이번 안약은 붉은색이야<br>당신처럼 외눈박이로 살아가느니차라리 두 눈이 다 멀어버리는 게 낫지눈에서 피가 똑똑 떨어진다손가락에 피를 묻혀서 시를 쓴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심플한 삶&nbsp;<br><br>부자들은 진짜 심플하게 살아요<br>부자 삼촌을 둔 여자가 말했다<br>복잡한 삶의 악덕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선택에 대한 온갖 경우의 수를 상상한다통 속에서 쪼그라드는 가난한 뇌가 웃는다&nbsp;<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빈집&nbsp;<br><br>빈집에 사람이 들끓는다볼 것도 없는데 왜 오는지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br>낡은 욕조는 죽지 않을 만큼 피를 흘리고누렇게 뜨고 갈라진 벽지는 용케도 붙어있지<br>나는 떠날 거야귀퉁이가 거칠게 닳은 가구들에게 인사를<br>분명히 현관문을 잠궜는데어찌 알고서 사람들이 왔을까<br>마루에는 나의 내장들이기다랗게 놓여 있다불타는 내장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낯선 얼굴의 구경꾼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기일(忌日)&nbsp;<br><br>새책을 읽는데 후두둑, 종이들이 떨어진다읽지 않은 페이지, 나는 바닥의 종이들을그러모으고는 스카치테이프와 가위를들고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nbsp;이걸 붙여서 읽을 것인지, 이 책은 어차피 버릴 책이다그냥 한번 보고 버릴 책, 그리고 잊힐<br>새벽 3시 반쯤이었다&nbsp;아버지는 잠이 들었다&nbsp;밤은 고요하고 추웠으며 구불거리며 흘러갔다할머니가 그랬듯 나의 발은 언제나 시렸다&nbsp;맨발로 누웠다가 양말을 신고 잠을 청해 본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시인(詩人)의 아들&nbsp;<br><br>H는 시인의 아들이었다&nbsp;나는 H의 아버지가 쓴 시들을 읽다가 궁금한 것이 있었다<br>H야, 그 시에 나오는 아이는 너를 뜻하는 게 맞아?그건 나도 잘 몰라요 아버지만 아는 거겠죠<br>느물거리는 말투로 H는 대답했다<br>시인은 내가 졸업할 때 축사를 했었다<br>예술을 하려는 여러분!절벽에서 뛰어내리십시오그런 패기가 있어야지만 살아남습니다<br>오늘은 문득 H 생각이 났다&nbsp;H가 무엇을 하면서 먹고 사는지 알 수 없다나는 여전히 절벽 위에 서 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새벽&nbsp;<br><br>하얀 팝콘이 가득 찬 종이봉투를 받았다&nbsp;<br>새벽에 회사 직원이 죽었어이제 마흔 좀 넘겼는데, 심정지래&nbsp;<br>아침부터 흐리더니 비가 퍼붓는다나는 새벽의 꿈이 무슨 뜻인지 Chat GPT에게 물어본다&nbsp;팝콘은 부풀면서 터지니까 뭔가 좋은 소식이 들릴지도요&nbsp;흰색은 희망의 색이기도 하구요&nbsp;<br>검은색의 죽음이 파근파근하게 걸어오면서 웃는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탐구생활(探究生活)&nbsp;<br><br>개학 전날, 탐구생활을 편다개 혓바닥과 닮은 분홍의 책방학은 방바닥에 눌어붙어있다<br>쉬운 문제도 있고 어려운 문제도 있다복잡한 것을 쉽게 적는 법을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br>너무나 늦어버린 오후찢어진 잠자리 날개가 방충망에 걸려있다잠자리의 모가지가 뎅겅거리며14층 창문에서 추락한다아이는 조심스럽게 날개를 떼어내어탐구생활의 23페이지에 붙인다<br>밤이 깊어 가는지도 몰랐다갑자기 나가버리는 전등불어제 마셨던 오렌지주스 캔에다제사 때 쓰고 남은 양초를 꽂는다심지가 다 탈 때까지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br>불에 그을린 얼굴의 꿈을 꾸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족보(族譜)&nbsp;<br><br>아버지가 물려주신 족보를 들여다 본다<br>고려 말에 중국에서 건너온 조상님들은조선 초에 나름대로 성공한 일가를 이루었다괜찮은 벼슬을 했고, 한양에서 자리를 잡았다그러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갑자기 집안이 한양을 떠나 궁벽한 시골로 낙향한다왜란이 일어나기도 한참 전의 일이었다<br>몰락에는 가속도가 붙는다조상님들에게 한양은 돌아갈 수 없는 먼 곳이었다구한말, 고조할아버지는 서당의 훈장이었다<br>할아버지는 사범학교를 나와서 학교 선생이 되었다그러다 한국 전쟁이 터졌고, 난리통에 돌아가셨다아버지는 뼈가 갈리도록 북한을 증오했다<br>아버지는 월급쟁이로 힘겹게 살았다평생 소설을 쓰고 싶어했으나,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br>12권의 족보, 맨 마지막 권가느다란 선의 끄트머리에 내 이름이 있다흐린 글씨의 내 직업은 대학생이다동생들은 아버지처럼 무언가를 팔러 다닌다<br>족보를 덮는다내 혈관에 흐르는 어떤 오래된 기운을 감지한다여느 때처럼 좌판에 글을 늘어놓는다<br><br>&nbsp;<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형광등&nbsp;<br><br>형광등은 2028년에 퇴출될 예정이다그는 형광등의 집에 산다마루의 등이 고장났고큰방의 등도 죽음이 임박했다<br>작은방의 등을 큰방에 달아줄 계획이다작은방은 창고가 된다부엌의 형광등은 전기톱 소리를 낸다그는 2년째 저녁 요리를 포기하고 굶는다그의 체중은 현재 47킬로그램이다<br>효율이 떨어지는 것들은 제거되어 마땅하다모두가 검은 입으로 추하게 외친다그는 가치 있는 것을 남기지 못했다눈꺼풀을 부드럽게 닫아줄 따뜻한 손과 같은<br>오래전 그는 무덤에서 태어난 아이였다그는 밤의 마루에서 더듬더듬 무덤을 짓는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미지(未知)의 시&nbsp;<br><br>방바닥을 천천히 긁는다멸종된 공룡의 뼈가 만져진다시커먼 세월의 때가 낀 지층 속화려한 깃털은 보이지 않는다<br>너는 한때 크게 울었고땅이 울리도록 달렸으며보드라운 새끼들을 품었었지<br>언젠가 내가 죽어서 누울 관을 생각한다미지의 뼈를 가만히 만져보다가&nbsp;서둘러 묻어버렸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시집(詩集) <br><br><br>이 숲은 언제나 공사 중이다<br>임도(林道)를 만들기 위해 파헤쳐진 곳<br>내가 작년에 심은 나무들은<br>모두 불에 타 죽었다<br><br>나의 나무는 어디에 있는가<br><br>새카만 흙 사이로 어린 고사리가 올라왔다<br>동그랗게 돌돌 말린 줄기를 똑똑 끊는다<br>50그루의 묘목을 심을 작은 구덩이를 팠다<br>언젠가 너희들은 말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수세미</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064997</link><pubDate>Sun, 01 Feb 2026 22: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064997</guid><description><![CDATA[&nbsp; 수세미 <br><br><br>&nbsp;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거야. 그 수세미가 도대체 어디로 갔냐는 거지. 내가 그걸 찾으려고 25층 아파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었어."<br>&nbsp; "엄마가 어디 딴 데다 두거나, 떨어뜨리거나 그런 거 아냐?"<br>&nbsp; "아니래도. 청소 도구 바구니가 있어. 빨간색. 파견 업체에서 거기에 세제랑 수세미, 이런저런 도구들 함께 넣어서 줬다고. 그걸 1층 우편함 아래에다 두고 잠깐 밖에 쓰레기 버리러 갔거든. 와보니까 수세미가 없어. 그거 하얀색. 매직 블럭 있잖아. 때 잘 닦이는 거. 새것이라고."<br>&nbsp; "엄마. 그거 누가 가져갔으면, CCTV 보면 알 수 있거든. 우편함 앞이니까 거기 출입구라서 잘 보일 거야. 관리사무소에 가서 얘기해 보세요."<br>&nbsp; "에휴, 그런 걸 뭘 말해. 괜히 분란만 일으킬지도 모르는데. 내가 조심하지 뭐."<br><br>&nbsp; 홍 여사는 참으로 수세미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족히 30억이 넘는 강남의 아파트에서 정말로 누군가 수세미를 훔쳐갔을까? 아픈 영감의 약값이라도 벌어보겠다고 청소일을 시작한지 이제 겨우 일주일째였다. 그런데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새것으로 받은 청소 물품을 잃어버린 것이 아주 찝찝하고 기분이 나빴다. 분명히 내부인의 소행이었다. 하지만,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이 아파트에서 기껏해야 돈 천 원 하는 매직 블럭 수세미를 훔쳐갔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모르지. 부자라도 도벽(盜癖)이 있을 수 있으니까. 홍 여사는 집으로 가는 길에 천 원 마트에 들려서 매직 블럭을 하나 샀다. 쓰지 않아도 될 돈 천 원이 나갔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리고 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br><br>&nbsp; "여사님, 내가 여사님이 우리 어머니 같아서 충고 좀 할게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나아요. 여기서는 그저 조용히 있는 게 답이에요.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웬만하면 눈에 띄지 않게, 그래요. 유령처럼 왔다갔다하는 거죠. 지금 여사님 이야기는 입주민을 도둑으로 생각하고 하는 말이잖아요. 그 수세미가 얼마라고 했죠? 내가 잡비 지출로 해서 천 원 내어드리죠. 어떤 면에서는 여사님이 물건 간수 잘하지 못한 잘못도 있는 거에요."<br><br>&nbsp; 관리사무소의 경리가 딱딱거리는 말투로 홍 여사에게 말했다. 홍 여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CCTV를 확인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경리 주임에게 물어보았다. 그 말을 들은 경리의 얼굴이 일순 차갑게 싹 바뀌었다. 홍 여사는 이내 곧 자신이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br><br>&nbsp; "여기, 천 원 가져가세요. 다음에 이런 일 또 있으면, 이렇게는 못해요. 청소 도구 관리는 전적으로 여사님 책임입니다."<br><br>&nbsp; 홍 여사는 쭈뼛거리면서 경리가 책상 모서리로 밀어낸 천 원짜리 지폐를 주머니에 넣었다. 돈 천 원이 그렇게나 더럽고 굴욕적으로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여사님이라는 호칭도 웃기는 말이었다. 진짜 부잣집의 여사님은 이런 곳에서 천 원을 아쉬워하며 주머니에 쑤셔 넣지는 않을 터였다. 홍 여사는 낡은 수세미처럼 쭈글쭈글한 표정으로 미화원 휴게실로 돌아왔다. 홍 여사의 얼굴을 보고 동료 박 여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홍 여사는 매직 블럭 수세미를 잃어버린 일을 짧게 이야기했다.<br><br>&nbsp; "홍 여사 말을 들으니 딱 그 생각이 나네. 내가 본 이야기를 해줄게. 지난주 화요일 아침에 관리사무소 회의실을 청소하러 갔었더랬지. 그런데 관리사무소 앞에 경찰차가 와있어. 대체 뭔 일인가, 우리같이 늙은 사람은 경찰차만 봐도 뭔가 심장이 오그라들고 그러잖아. 그래서 조심조심하면서 회의실 있는 2층 계단을 올라가는데, 아휴, 난리도 아냐."<br>&nbsp; "난리라니, 무슨 큰일이라도 있었어?"<br>&nbsp; "아이고, 큰일은 큰일이지. 내가 회의실로 가려면, 관리사무소 사무실을 지나가야 하잖아. 경찰 두 명하고, 머리 허연 영감하고 큰소리로 싸우더만. 소장은 그냥 막대기처럼 멀뚱히 서있고. 열린 사무실문 뒤편에서 가만히 서서 뭔일인가 들어봤거든."<br>&nbsp; "그래, 그래서?"&nbsp; <br><br>&nbsp; 홍 여사는 좀 전에 수세미 때문에 기분 나빴던 일은 싹 잊어버리고는 박 여사의 말에 집중했다. <br><br>&nbsp; "여기 아파트 오다 보면 코엑스라는 데 있잖아. 커다란 행사 같은 거 자주 하거든. 경찰 말로는 그 영감이 거기를 자주 돌아다니면서 기념품 같은 걸 훔쳤다는 거야. CCTV에 다 찍혔다고 하면서."<br>&nbsp; "이 부자 동네 사는 영감이 정말로 그걸 훔쳤을까?"<br>&nbsp; "아휴, 그 영감 뻔뻔하게도 오히려 더 악을 쓰는 거야. 나 정도면 가져갈 만해서 가져갔다, 그러던데. 너희들이 뭔데 나한테 도둑이니 뭐니 하냐고 하면서. 얼마나 당당한지 몰라. 자기 아들이 국정원 다닌다, 너희들 싹 다 잡아넣을 거야, 이러는데 그건 진짜인가 몰라."<br>&nbsp; <br>&nbsp; 홍 여사는 박 여사의 말을 듣고, 수세미를 훔쳐간 사람도 그 영감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겠거니 싶었다. 이런 거 하나쯤은 내가 가져가도 괜찮다. 난 이곳에 사니까. 그것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이르자 홍 여사는 그 뻔뻔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날 저녁, 홍 여사는 오늘 관리사무소에서 있었던 일을 전화로 딸에게 늘어놓았다. <br><br>&nbsp; "내가 엄마한테 괜한 말을 해서는..."<br>&nbsp; "아니다. 네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니? 내가 진짜로 물건을 실수로 어디다 떨어뜨린 것도 아니고, 훔쳐간 인간이 나쁜 거지. 그런 말조차 못하고 살면 그건 그거대로 얼마나 분하냐."<br>&nbsp; "그래, 엄마. 이제 수세미 생각은 그만해. 엄마만 기분 나쁘고 속상하잖아."<br>&nbsp; <br>&nbsp; 다음 날, 홍 여사는 으슬으슬한 감기 기운을 느끼며 일어났다. 일을 나가기 전에 동네 약국에 들러서 쌍화탕 한 병을 샀다. 천 원이었다. 축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 아파트에 나와보니, 엘리베이터 옆에는 아무렇게나 내버린 흰색 마스크와 담배꽁초가 보였다. 우편함 아래는 갈색의 가래침이 눌어붙어있었다. <br><br>&nbsp; "더러운 것들."<br><br>&nbsp; 홍 여사는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청소 도구함에서 새 수세미를 꺼내어 눌어붙은 가래침을 박박 문지르기 시작했다. <br><br>&nbsp; <br>&nbsp; <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돈복</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061597</link><pubDate>Sat, 31 Jan 2026 21: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061597</guid><description><![CDATA[&nbsp; 돈복<br><br><br>&nbsp; "당신 주식은 좀 올랐어?"<br>&nbsp; "조금. 그냥 용돈벌이 수준이지."<br>&nbsp; "옛날에 반도체 주식이나 사놓지 그랬어. 그게 그렇게 올랐다며?"<br>&nbsp; "그러게. 사람이 앞일을 알 수 있어? 그거 한 주에 15만 원 할 때, 그냥 팔아치웠거든. 그게 지금 220만 원이야."<br><br>&nbsp; 남편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연수는 침울한 남편의 표정을 보니, 자신이 괜히 말을 건넨 것 같았다. 만약에 남편이 그 주식을 지금까지 계속 들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17평 2층 빌라에서 이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br><br>&nbsp; "무당의 유튜브를 보는데 그러더라. 돈복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싶어." <br>&nbsp; "돈복 없는 사람은 평생 거지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네."<br><br>&nbsp; 빨간색의 화살표가 가득한 주식 앱의 창을 닫으면서 남편이 그렇게 말했다. 연수는 자신이 위로를 한다고 말한 것이 오히려 남편의 속을 긁었나 싶어졌다. 마지막 오거리, 목적지까지 5분 남았습니다. 렌터카의 네비게이션이 집 근처 오거리에 도착했음을 알려주었다. <br><br>&nbsp; "아버님은 전보다 더 나빠지신 것 같지?"<br>&nbsp; "그래 보여. 이렇게 병원 가는 일도 올해까지가 아닐까 싶고."<br><br>&nbsp; 연수는 남편과 함께 2주에 한 번, 시아버지가 입원한 요양 병원을 방문했다. 1년이 좀 지났나? 아직 봄이 오지 않았으니 1년을 채우지는 못했네. 그러니까 작년 3월의 일이었다. 시아버지는 요양원 화장실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MRI를 찍어보니, 미세한 뇌출혈이 있었다. 골절에다 뇌출혈 후유증까지, 시아버지는 병원 침대에서 거의 누워있다시피 하면서 지냈다. <br><br>&nbsp;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 엄신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거든. 이름이 엄석구. 오래전에 투자한 주식이 대박이 나서 무려 300억 수익을 거둔 거지. 그게 20년 전이야. 그 양반은 그거 종잣돈으로 계속 굴리면서 잘 먹고 잘 살더라고."<br>&nbsp; "그러겠지. 돈이 돈을 버는 시대잖아."<br>&nbsp; "수도꼭지 하나에 삼백만 원짜리가 있다면, 당신은 믿겠어?"<br>&nbsp; "그게 무슨 소리야?"<br><br>&nbsp; 남편은 차에서 내리면서 뜬금없이 수도꼭지 이야기를 꺼냈다. 연수는 삼백만 원짜리 수도꼭지가 있다면 어떻게 생겼을지 가만히 상상해 보았다. 진짜 금으로 도금이라도 한 모양인가 보네.<br><br>&nbsp; "고급 부동산을 탐방하는 유튜버가 있어. 그 유튜브 방송을 보니까, 엄신이 사는 로터스(Lotus) 타워가 나오는 거야. 엄신이 리모델링한 자기 집을 보여주는 거지. 글쎄, 그 집의 욕실 수전의 수도꼭지가 삼백만 원이라는군."<br>&nbsp; "그건 좀 낭비 같은데. 어차피 물을 트는 것뿐이잖아."<br>&nbsp;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말이야, 나 원 참 웃겨서."<br><br>&nbsp; 남편은 갑자기 뭐가 생각이 났는지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br><br>&nbsp; "그 집 인테리어 소품에 수프 캔 바구니가 있는 거야. 당신도 알지? 앤디 워홀의 팝 아트, 그거 있잖아. 캠벨 수프 같은 깡통 쌓아놓은 거. 커다란 대바구니에 외국 수프 캔이 여러 개 담아져 있는 거지. 그게 천만 원짜리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낙찰받은 현대 예술 작품이라나 뭐라나. 하하..."<br>&nbsp; "부자들의 취향이란 게 참 독특하네. 당신이나 나나 그런 건 거저 줘도 안 가질 것 같은데."<br>&nbsp; "맞아. 돈복 있는 사람들은 뭔가 다르긴 다른 모양이지."<br><br>&nbsp; 마침내 부부는 비좁은 빌라 주차장에 겨우 차를 대놓고 집에 들어왔다. 남편은 1시간 넘게 운전하느라 피곤했는지 소파에 털썩, 소리를 내며 앉았다. 그리고는 늘 하던 대로 주식 분석 유튜브 방송을 틀었다. 연수는 전자레인지에 뎁히기 위해 냉동해 놓은 밥과 즉석 국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언제부터더라, 요리를 하지 않게 된 것이... 문득, 돈복이 있는 사람들의 식탁은 자신들과 얼마나 다를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br><br>&nbsp; "자, 오늘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먹는 음식이 여러분을 만든다고요. 저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겠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사는 주식이 여러분의 일생을 놀랍게 바꾸어놓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br><br>&nbsp; 냉동 밥과 즉석 미역국, 공장에서 만든 김치를 먹는 자신과 남편의 인생이 과연 앞으로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돈복이라는 것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백날 주식을 사봤자 소용이 없는 일이 아닌가. 땡땡땡. 조리가 끝났음을 알리는 전자렌지의 알림음이 경쾌하게 울렸다.&nbsp;&nbsp;&nbsp; <br><br>&nbsp; <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거울</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058426</link><pubDate>Fri, 30 Jan 2026 21: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058426</guid><description><![CDATA[&nbsp; 거울<br><br><br>&nbsp; 나는 너무나도 오래 살았다. 정말로 오래 살아서 그런 것으로 느끼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오래 살았다고 느낀다. 나의 주인은 얼마 전에 죽었다. '얼마 전'이라고 쓴 것은 나도 주인이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파서 죽었을 것이다. 요양병원에서 죽었는지, 아니면 다른 곳일 수도 있겠지. 주인의 딸은 나와 함께 침대 매트리스도 함께 버렸다. 주인, 그러니까 영감이 쓰던 매트리스. 영감은 중풍을 오래 앓았다. 매트리스에서는 지독한 소변 냄새가 진동했다. 이 추운 겨울에도 그 지린내가 내 몸에 옮겨붙은 것 같다. <br><br>&nbsp; 중년의 여자가 선풍기를 버리고 간다. 이상하게도 선풍기 날개가 보이지 않는다. 날개는 어디로 간 것일까? 여자가 선풍기를 버리면서 중얼거린다. 아까워, 아까워, 너무 아까워. 나는 여자가 가버린 뒤로 선풍기에게 넌지시 말을 걸어보았다. <br><br>&nbsp; "넌 어쩌다가 여기 온 거야?"<br>&nbsp; "저 여자가 청소하다가 나를 넘어뜨렸어. 그런데 그만 날개가 부러지고 말았지. 사실 내 모터는 멀쩡하거든. 날개가 부러지니까 쓸 수 없다고 버린 거지. 여자는 날개를 접착제로 붙이려다가 실패했어. 말도 안 되는 짓이지. 선풍기 날개를 본드로 붙이려고 하다니."<br>&nbsp; <br>&nbsp; 모터가 멀쩡한 그 선풍기는 고물 가전을 수거하는 업자가 오더니, 냉큼 집어서 들고 가버렸다. 안녕, 잘 가렴. 어떻게든 너는 다른 날개를 달고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나는 냄새나는 매트리스 바로 옆에서 코를 틀어막으며 숨을 겨우 내쉬었다. <br><br>&nbsp; "왜 이건 스티커를 붙이지 않은 거야?"<br><br>&nbsp; 대머리 경비가 와서는 나를 쳐다보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어. 영감의 딸은 돈을 아끼려고 나한테는 폐기물 스티커를 붙이지 않았거든. 나는 어쨌든 멀쩡해 보이니까, 누군가는 가져가지 않을까 싶어서였겠지. 그런데 사람들은 나한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 태권도복을 입은 조그만 아이가 나한테 와서는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코딱지를 붙여놓고 가더군. 내가 팔이 있었다면, 그 녀석 머리를 쥐어박아 주었을 거야. 추접스럽게 이게 뭐람. 요새 젊은 것들이 애들 가정 교육을 도무지 안시키기 때문에 그래. 아이들은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고, 침을 뱉고, 욕하고, 악다구니를 쓰지. 세상이 말세야, 말세.<br><br>&nbsp; "어디로 끌려갈지 모르니까 무서워."<br><br>&nbsp; 오줌 자국이 선명한 매트리스가 오그라든 입으로 중얼거렸어. 그럴 거야. 넌 아무래도 갈가리 다 찢겨서 버려지지 않겠니. 널 누가 데려가겠어. 난 그래도 어디 흠이 생기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겠지. <br><br>&nbsp; "그래서, 그만 끝내겠다는 거야?"<br><br>&nbsp; 중학생으로 보이는 계집애 하나가 내 앞에 서서 그렇게 말했다. 여중생은 통화중이었다.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이 연애질을 하는 모양이군. 나는 혀를 끌끌 차면서 무어라 더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어. <br><br>&nbsp; "야, 너 같은 건 널리고 널렸어. 웃기고 있네."<br><br>&nbsp; 끝났나 보군. 잘 된 거야. 잘 된 거지. 나는 전화기 너머의 알지 못하는 어떤 녀석, 아니 계집애일 수도 있잖아. 세상이 변했으니까. 아무튼 여중생의 파트너랄지, 연애 상대에게 박수를 보냈어. 틴트 하나도 제대로 바르지 못하는 저런 칠칠하지 못한 애하고는 사귀지 않는 게 나아. <br><br>&nbsp; "뭐야, 병신같은 게."<br><br>&nbsp; 계집애는 발에 걸리는 작은 돌멩이를 세게 찼어. 젠장. 그게 내 머리에 정통으로 맞은 거지. 정말로 나는 병신이 되어버린 것 같았어. 같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고 말았지. 조금 전까지는 멀쩡한 거울이었는데, 깨어진 거울이 되고 만 거야.<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엄나무</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056271</link><pubDate>Thu, 29 Jan 2026 23: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056271</guid><description><![CDATA[&nbsp; 엄나무<br><br><br>&nbsp; 처음에는 그것이 그냥 막대기인 줄 알았다. 아주 기다란 막대기. 그런데 다가가서 보니 아니었다. 무지막지하게 큰 가시가 덕지덕지 붙은 엄나무였다. 아파트 출입문 뒤편, 응달진 곳에 1미터 높이의 엄나무를 누가 심어놓았다. 희주는 그 막대기, 아니 엄나무가 눈에 거슬렸다. <br><br>&nbsp; "왜 저런 곳에다 심어놓은 거지?"<br><br>&nbsp; 아마도 가시가 있어서 위험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엄나무는 심어보고 싶고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 동네에는 도무지 상식과 교양이 없는 인간들이 메뚜기처럼 출몰한다. 창문 밖으로 담배꽁초를 계속 내던지고, 물티슈를 비롯해 음식물 쓰레기도 내던진다. 화단에 온갖 화분이며 돌멩이를 모아다가 쌓아두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일 것이다. 희주는 관리사무소에다 그것들을 치워달라고 민원을 넣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치워져서 다시 시간이 지나면 화분과 돌들, 항아리까지 화수분처럼 생겨났다. 아마도 그 사람에게 아파트 화단은 자신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정원인 듯싶었다. <br><br>&nbsp; 희주는 엄나무의 밑동을 발로 툭툭 쳐보았다. 자신이 쓰러뜨릴 수 있으면 그렇게 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찌나 단단하게 심어놓았는지 막대기 같은 그 나무는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쇠막대기 같았다. 그런데 그 쇠막대기의 맨 꼭대기에 보라색 순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 추운 겨울에 나무는 치열하게 사는 중이었다. <br><br>&nbsp; "6호 라인 출입구 뒤쪽에 1미터 정도 되는 엄나무가 있어요. 아파트 공유지를 개인이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처리해 주면 좋겠습니다. 제거하든지, 다른 곳에 옮겨 심든지요."<br><br>&nbsp; 집으로 돌아온 희주는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 무언가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아마도 그 보라색 새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나무는 살아있었다. 관리사무소에서 어떤 식으로 처리할지 궁금해졌다. 그 나무를 그냥 거기에서 자라게 내버려두는 편이 나았을까?<br><br>&nbsp; "당신은 해야 할 전화를 했을 뿐이야. 오히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서 자라면, 나중에 거칠게 뿌리뽑힐 뿐이지."<br><br>&nbsp; 앞집의 노인은 죽어가고 있다. 거동하지 못한 지가 꽤 되었다. 오늘 낮에는 전동 침대 대여회사의 설치 기사들이 다녀가는 것을 보았다. 노인의 나이는 구십을 훌쩍 넘겨서 백 살에 가까웠다.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병간호를 한다. 늙은 딸이 데려온 개가 희주와 남편이 드나들 때마다 짖어댔다. 희주는 저 노인이 올봄을 넘길 것인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br><br>&nbsp; "봄과 가을에 노인들은 많이 죽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 사망률이 치솟지요."<br><br>&nbsp; 언젠가 TV에 나온 의사가 하는 말을 들었다. 사람은 죽지만, 엄나무는 베어져도 뿌리가 있는 한 살아남을 것이다. 새순이 마치 붉은 피처럼 너무나 선명해서 희주는 그것을 차마 베어버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걸 심은 인간은 엄나무 순을 잘라서 먹고, 그 가시가 있는 가지를 삶아서 몸보신이나 하려고 했을 것이다. 사람의 삶은 무엇에 쓸모가 있을까? 엄나무는 쓸모가 있으니, 이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살아남을 거라고 희주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nbsp; <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봄동</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053277</link><pubDate>Wed, 28 Jan 2026 21: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053277</guid><description><![CDATA[&nbsp; 봄동<br><br><br>&nbsp; 허리가 직각으로 굽은 할머니가 장바구니 카트를 힘겹게 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엄마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노인은 엘리베이터 앞의 의자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br><br>&nbsp; "시장에 봄동이 나와서..."<br><br>&nbsp; 노인은 우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nbsp; <br><br>&nbsp; "몇 층 사세요?"<br><br>&nbsp; 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려고 노인에게 물었다. 하지만 노인은 대답 대신에 장애인 전용 버튼의 숫자를 얼른 눌렀다. 8층이었다. <br><br>&nbsp; "말할 기운도 없어."<br><br>&nbsp; 노인의 카트에는 봄동과 함께 여러 가지 채소가 들어있었다. 그 무거운 것을 끌고 어떻게 온 것일까? 기운이 너무 없는지, 노인의 말소리는 물크러지고 곰팡이가 핀 귤 같았다. <br><br>&nbsp; "조심해서 가세요."<br><br>&nbsp; 지팡이가 없으면 걷지를 못하는 엄마와 함께 내리면서 나는 인사했다. 집에 들어온 나는 TV를 켰다. 케이블 채널을 빠르게 돌린다. 엄마가 좋아하는 '현장르포 특종세상'이 나온다. <br><br>&nbsp; "이거 좀 보고 계세요."<br><br>&nbsp; "너는 어디로 가는 거냐? 넷째는 언제 온다니?"<br><br>&nbsp; 나는 엄마가 말하는 넷째가 어디에 사는지 알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마트에 들렀다가 봄동을 보았다. 한 봉지에 3천 원이었다. 비싸지 않은 것 같아서 샀다. 그런데 나는 봄동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모른다. 엄마는 나에게 요리라는 것을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봄동은 보통 겉절이를 해서 먹지. 나의 부엌에는 고춧가루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매운 것을 조금만 먹어도 속이 쓰렸다. 어쨌든 봄동의 잎을 톡, 톡 뜯어내었다. <br><br>&nbsp; 다음날, 엄마에게 점심을 차려줄 때 그 봄동을 식탁에 내놓았다. <br><br>&nbsp; "달구나. 달아."<br><br>&nbsp; 나는 8층의 노인이 앞으로 봄동을 먹을 수 있는 날들에 대해 문득 생각해 보았다. 노인은 팔순을 쉬이 넘긴 것처럼 보였다. 굽은 허리로 장을 힘겹게 봐올 정도면, 분명히 혼자서 살고 있을 것이다. 16평의 이 낡은 복도식 아파트에는 독거노인들이 많이 산다. 나는 그래서 이 아파트를 노인동이라고 부른다. <br><br>&nbsp; 엄마의 집을 나올 때, 아파트 앞에는 익숙한 녹색의 목욕 차량이 보였다. '효녀 심청이 목욕 서비스'라고 커다란 글씨가 박힌 차. 차에서는 희뿌연 오수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젠가 엄마는 그 차를 보고는, 자신의 부모를 남한테 목욕시키게 하는 자식들이 불효막심하다면서 분개했다. 나의 오른팔은 테니스 엘보에 시달려서 고무팔이나 다름없다. 나는 그 목욕 차량을 지나오면서 아픈 오른팔을 계속해서 쓰다듬었다.&nbsp; <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자작 시집 탐구생활(2025) 2부</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044189</link><pubDate>Sun, 25 Jan 2026 10: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044189</guid><description><![CDATA[&nbsp;<br>지난 주에 이어서 시집 2부를 올립니다.&nbsp; <br><br>탐구생활(探究生活) 1부 링크<br>https://blog.aladin.co.kr/sirius7/17025932<br> &nbsp;&nbsp; <br>2부 &nbsp; &nbsp; 명랑(明朗)&nbsp;&nbsp;<br><br>명랑(明朗)<br>사다새<br>희망(希望)<br>빗방울<br>상괭이<br>오늘의 날씨<br>거짓말<br>월매(月梅) 정육점<br>눈물길<br>그렇게<br>건너가다<br>싸구려에 대한 명상<br>빨강<br>숙이 아줌마<br>면도날<br>납골당(納骨堂)<br>다시마<br><br><br><br><br><br><br><br><br><br><br>명랑(明朗)&nbsp;<br><br>이리 오너라<br>명랑을 가만히 불러낸다명랑은 거친 맨발에 민머리를 하고 있었다배움은 짧았으나 성품은 유순하였다눈은 매우 가늘어서 늘 세상이 잘 보이지 않았다<br>명랑은 타고나는 것입니다<br>명랑에게 명랑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물으니명랑은 나에게 그렇게 답하였다<br>명랑이 사는 집의 대문은녹이 슬어서 마치 피를 흘리는 것 같았다명랑은 늘 쪼들렸다그래도 조그만 입으로 웃음을 떨어뜨리면서칠칠맞지 못하게 돌아다녔다<br>한번은 명랑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왜 울고 있느냐 물으니갖고 있는 명랑이 다 바닥이 나서더는 먹을 것이 없다고 말하였다<br>나는 명랑에게 딱히 줄 만한 것이 없어서피(粥)죽을 한 그릇 쑤어 주었다명랑은 피죽이 붉은 색이 아니라며 신기해 하였다명랑은 피(粥)를 한번도 본 적이 없으므로어리석게도 그리 말하였던 것이다<br>까끌까끌한 알갱이가 가난한 손톱 같아요<br>마침내 명랑은 죽그릇을 비우고 어디론가 가버렸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사다새&nbsp;<br><br>죽은 고등어를 먹으며 언제까지 살아야 할까물음표는 꼬리를 질질 끌면서 창살을 빠져나간다일부러 울지 않은 것이 몇 해인지 잊어버렸다<br>이 동물원의 지하에는 하늘다람쥐가 산다비막(飛膜)이 찢어져 너덜너덜해진 다람쥐가 물었다<br>다시, 날아갈 수 있을까?<br>나는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br>사육사의 손을 심심해서 쪼아버렸더니부리를 망치로 부숴버렸다마시는 물이 피가 되어 흐른다<br>그 사막에는 피를 마시고피어나는 들꽃들이 있다다리가 부러진 친구들이 모두 떠난 곳<br>조각난 부리를 그러모은다죽은 표범의 뼈바늘로 정성스럽게 꿰맨다하늘다람쥐의 갈라진 옆구리도 이어 붙인다새벽의 모래가 스르륵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희망(希望)&nbsp;<br><br>흐린 표정을 지으며 너는 서 있다너의 머리 위로는 작은 구름이 떠다닌다언제든 자그마한 빗방울이 내릴 수 있는<br>너를 간절히, 여러 번 부른다<br>너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보았는데어쩌면 울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br>나는 너에게 솔기가 닳은 행주를 건넨다몇 번 쓰다 버릴 행주였지만정성스럽게 감침질을 한 행주죽어서 버려야만 하는 것들 앞에서한참을 서성이는 습관이 생겼다<br>너는 아픈 허리를 조심스럽게 펴고허우적거리며 머리의 구름을 밀쳐낸다단단한 초록색의 구름<br>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꼬리가 잘린 도마뱀이 춤을 춘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빗방울&nbsp;<br><br>세탁실에서는 비가 샌다빗방울이 구불구불 기어다닌다<br>나는 빗방울을 틀어막으려 했지만빗방울이 내 손목을 꺾어버렸다<br>빗방울에 얻어맞은 세탁기가 소리를 질렀다꺼억꺼억, 다 죽어갈 것처럼세탁기는 사실 죽을 때가 되었다이십 년을 살아온 세탁기는요새 쇳조각을 뱉어내고 있다<br>빗방울이 삐딱하게 웃으며죽어보라 말한다<br>오늘도 뜨개질을 한다빗방울의 기대가 어긋난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상괭이&nbsp;<br><br>어린 상괭이는 부둣가에 드러누워 있었다허여멀건한 배를 드러내고는아기 손톱같은 이빨에는 피가 흥건했다<br>이런 게 진짜야<br>사진 선생은 연달아 셔터를 눌러대었다학생들은 진저리를 치며 자리를 떴다그 부둣가에는 도무지 사랑할 만한 것이 없었다어부들은 아침부터 사진 찍는다고 욕설을 퍼부었고선착장의 인부는 바다를 향해 오줌을 내갈겼다<br>사각의 프레임 밖에서 버려지고 잊혀진 것들상괭이가 나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하지만 나는 차마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br>오늘 아침, 상괭이가 웃으며 걸어나왔다스무 번의 여름이 지나갔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오늘의 날씨&nbsp;<br><br>어제의 일기장을 펴고오늘의 날씨를 적는다키보드에 커피를 쏟았다킬리만자로의 농부가 하늘을 본다커피나무에서 흉년을 수확한다아직은 불모(不毛)의 계절오지 않은 즐거운 일기를 기다린다&nbsp;<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거짓말&nbsp;<br><br>거짓말을 잘하는 비결은거짓말을 거짓말처럼 하는 것이다<br>버마비단뱀을 목에 칭칭 두르면멋진 목도리가 된다숨이 막히지 않을 정도로만 두르고평온한 목소리로 말한다<br>나는 매끄럽게 속아넘어갔다<br>진짜겠지<br>어제는 아침 일찍 커튼을 열자버마비단뱀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월매(月梅) 정육점&nbsp;<br><br>아주머니는 왼손에 검은색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고기 자르는 기계에 손가락 하나를 잃었기 때문이다아주머니의 정육점은 엄마의 단골 가게였다<br>월매(月梅) 정육점<br>작달막한 체구에 늘 웃는 얼굴이었던 아주머니의 가게는 잘 되었다아주머니의 남편도 정육점에서 같이 일했지만내 기억 속에 늘 고기를 썰어서 내어주던 사람은 아주머니였다가끔은 아주머니의 이름이 월매라고 생각했다<br>정육점은 아주머니의 살림집과 이어져 있었다한번은 엄마가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나는 작은 방 문턱에 조용히 앉아있었다일고여덟 살 된 아이 하나는 TV 만화를 보고 있었고,&nbsp;&nbsp;&nbsp;내 또래일지 아니면, 좀 어리게 보이는 형은방바닥에 엎드려 공책에 무언가를 끄적거렸다<br>어느 날, 아주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정육점을 홀로 꾸려가던 아저씨는 몇 년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다내가 중학생 때의 일이다<br>오늘 아침, 식탁에 가만히 앉아있는데월매 아주머니가 건너편에 와서 앉았다아주머니의 잃어버린 손가락에분홍색 손톱이 잘 자라고 있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눈물길&nbsp;<br><br>다운 증후군을 앓는 늙은 아가씨가뽀로로 음료수를 마시고는커다란 콘칩 봉지를 웃으며 뜯는다너무나 새까맣게 염색을 한 엄마는딸이 건넨 음료수병을 버리러 일어선다<br>불행의 얼굴은 판박이처럼 비슷하다나는 아픈 왼쪽 얼굴을 쓰다듬으며 걷는다<br>집으로 오는 늦은 엘리베이터에서9층의 여자와 마주친다여자에게는 자폐증을 앓는 아들이 있다여자는 나즈막하게 노래를 부른다<br>오 솔레 미오(O Sole Mio)<br>나폴리의 태양은 울고 싶지만그 눈물길은 막혀있다여자는 막힌 눈물길을 우회하여가끔 컹컹 짖는 흰색의 강아지와행복한 저녁 산책길에서 돌아온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그렇게&nbsp;<br><br>엄마는 그릇을 옷장에 넣어둔다엄마는 자식이 넷이라고 말하는데나는 그 가운데 하나가 어디 사는지 모른다<br>네가 고생이 많구나엄마가 그렇게 되어서<br>그렇게는 참으로 기이한 말이다그렇게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 것이 좋다아주머니의 딸은 그렇게 납골당에 있다<br>그의 우울증은 오래되었다나는 그가 잘 버텨내길 바란다평범하지 않게 그렇게<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건너가다&nbsp;<br><br>그곳을 건너가지 못했다발만 동동 구르면서붉은 눈의 항구가 묻는다건너갈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냐고<br>늙어버린 배는 삐걱삐걱 소리를 낸다끝이 갈라진 노를 힘겹게 저으며 떠난다밤은 병든 푸른색이다돌아가지 않을 것이다<br>민머리 독수리가 굽은 등을 쪼아댄다먼저 죽은 이의 퉁퉁 부은 얼굴이뱃머리를 붙잡고 울고 있다<br>후회하는 돛이 세 갈래로 찢어지며왼쪽 팔에 기다란 흉터를 새긴다울음이 얼어붙고 말문이 닫힌다멀었던 귀가 들리기 시작한다<br>물이 노래한다물을 건너간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싸구려에 대한 명상&nbsp;<br><br>싸구려 복숭아를 샀다조막만 한 게 단맛이라고는 조금도 없어괜찮아, 설탕을 좀 얹어서 먹으면올해는 복숭아 풍년이라는데또 싸구려를 사고 말았어<br>싸구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왜 이렇게 신맛이 많이 날까신맛의 커피를 혐오한다커피는 쓴맛, 기름진 쓴맛이 나야 하거늘<br>싸구려 남방을 입고 나간다4천 원짜리,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남방을 입을 때마다무너진 봉제 공장에 깔려 죽은&nbsp;먼 나라의 재봉사들이 생각나언젠가 내가 입을 수의(壽衣)를 입듯경건한 마음으로<br>오래전, 싸구려 비디오 가게에서희귀 영화를 찾아다녔어중년의 주인 남자는친구들과 포커를 치고 있었지<br>타르코프스키(Tarkovsky)의 '희생'이 있나요?<br>그런 거는 우리 가게에 없어비웃는 푸른 돛 문신의 팔뚝불타는 희생의 나무<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빨강&nbsp;<br><br>빨강의 바다로 간다손이 비대하게 커진 인간들이타자기를 두들기며 끊임없이 구토하는더러운 빨강<br>살아남을 수 있을까<br>아픈 빨강의 반점이 웃으며 물었다칼라민을 아무렇게나 발라주고는빨강의 입을 조심스럽게 틀어막았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숙이 아줌마&nbsp;<br><br>숙이 아줌마는 엄마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아줌마는 교육자 집안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자랐는데,가난한 남자와 결혼하는 바람에 늘 쪼들리며 살았다&nbsp;아줌마는 남편을 돕기 위해 이런저런 부업을 하곤 했다내가 어렸을 적에 엄마를 따라 아줌마의 문구점에 갔던 기억이 난다<br>나중에 아줌마는 돈을 좀 벌어보겠다고 명리학(命理學)을 배우러 다녔다&nbsp;내가 재수생(再修生) 때의 일이다아줌마는 이제 막 학력고사를 치룬 내 사주를 봐주었다나는 무언가 좋은 말을 듣기를 희망했다그리고 나의 기대에 걸맞게 아줌마는 이렇게 말했다<br>아, 너는 정말로 돈을 많이 벌 거야 엄청난 산처럼,그렇게 넌 돈에 둘러 쌓여있을 거야<br>숙이 아줌마는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아줌마는 고혈압이었는데도 혈압약을 먹지 않았다사이비 도사가 그런 약을 먹으면일찍 죽는다고 한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내가 서른 살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nbsp;&nbsp;<br>버터를 사야지,내 얼굴에는 기름기가 부족하기 때문에<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면도날&nbsp;<br><br>면도날이 팔랑거리면서 내려온다<br>면도날 위의 삶불운은 불공평하게 기울어져 있고뒤뚱거리며 걷다가 결국 쏟아진다<br>색색의 조각난 면도날은아스팔트 바닥에 짓이겨져불그죽죽한 염료를 내뿜고더러는 누군가의 머리에 내려앉아휘파람을 불며 집으로 돌아간다<br>휘청거리면서 면도날 위를 걷는다저린 왼쪽 손으로 면도날을 쥐었다면도날이 조용히 웃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납골당(納骨堂)<br><br>네 아빠는 명이 짧았지&nbsp;<br>엄마는 납골당에 올 때마다 그 말을 한다<br>비쩍 마른 몸으로 흔들흔들 그네를 타던 아빠를 기억한다<br>쓰여지지 않은 이야기들옷장 속에서 해골이 비소를 들이키며어떤 인생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준다&nbsp;나는 옷장의 문을 열었다가 가만히 도로 닫았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다시마&nbsp;<br><br>엄마의 집 찬장에서 다시마를 발견했다몇 년을 묵은 것 같은, 아주 잘 마른 다시마나는 다시마를 물에 불린다푸른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br>요새는 왜 그렇게 흰색 차들이 많으냐?<br>모두들 흰색의 세계로 도망치고 싶은 것이겠죠나는 같은 대답을 매일 엄마에게 들려준다<br>다시마의 세계는 갈색이고 눈물이며 그래서 짠맛이 난다엄마의 잃어버린 바다와 다시마가 끈적거리는 시간을 천천히 걸어간다&nbsp;&nbsp;<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매일 글쓰기 연습장</category><title>자작 시집 탐구생활(2025) 1부 </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025932</link><pubDate>Fri, 16 Jan 2026 20: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025932</guid><description><![CDATA[&nbsp; 시집 제목:&nbsp; 탐구생활(探究生活)&nbsp;<br><br><br>1부 &nbsp; &nbsp; 파동(波動)&nbsp;&nbsp;<br><br>파동(波動)<br>출근(出勤)<br>39층<br>교차로<br>교양(敎養)<br>연습생(練習生)&nbsp;<br>모서리<br>마두금(馬頭琴)<br>여름, 오후 4시<br>노란콩<br>가려운 어깨<br>여학생(女學生)&nbsp;<br>참기름<br>곰 인형<br>꿈의 자객(刺客)<br><br><br><br><br><br><br><br><br><br><br><br>파동(波動)&nbsp;<br><br>윗집의 노인은 초능력이 있어요파동을 만들어서 공격하는 능력이죠내가 움직일 때마다 파동이 날 때려요나는 집에서 다리를 절며 걸었고입술이 제멋대로 실룩거리며왼쪽 어깨가 가렵기 시작했어요<br>병원에 가보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그 사람들은 나에게 구속복(拘束服)을 입히고실험실에 보내어 나의 뇌를 가르겠지요<br>노인의 A 파동이 천장에서노인의 B 파동이 하수구에서두 개의 파동이 새로운 중첩을 만들어 내는데나는 이곳 아니면 저곳에잃어버린 몸뚱이를 찾아서하루 종일 집안을 헤매고 있죠<br>당신은 파동이 떠도는 소문이라고 말합니다그렇다면 당신의 삶도 소문일 뿐이죠보잘것없고 위대한 소문당신은 실험해 본 적이 없죠그러니 증명할 수도 없는 거에요<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출근(出勤)&nbsp;<br><br>발목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날이 있다한 며칠 절름거리면 뼈가 조금씩 자란다<br>컴퓨터를 켜고 녹음기의 붉은 버튼을 누른다새빨간 눈의 여자가 녹음기를 들고 덤벼든다어떻게든 자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br>아무렇게나 마침표를 찍는 인간들마침표는 쉼표가 아닌데도그걸 찍는 것을 멋이라고 생각하는 머저리들도대체 어떻게 이 회사에 들어왔을까의문이 뭉게뭉게먹구름이 곧 쏟아지는 소나기로<br>팀장님은 좀 싸가지가 없네요<br>점심을 먹다가 체했다속이 더 쓰릴 줄 알면서도커피를 들이킨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39층<br><br><br>39층의 방화문은 열리지 않는다<br>39층 이하의 사람들은 옥상으로 갈 수 없다<br><br>며칠 전에는 아파트의 정기 소독이 있었다<br>허름한 옷차림의 노란 염색 머리 여자가 물었다<br><br>소독하시겠어요?<br><br>나는 고개를 내저었다<br>소독이 필요한 것은 집이 아니라 사람들이다<br>온몸에 문신을 한 개가 쉴 새 없이 짖는다<br>복도에 떨어진 커다란 바퀴벌레의 얼굴<br>여자는 개 목줄을 길게 늘어뜨리며 지나간다<br><br>나는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천천히 비상계단을 오른다<br>39층의 방화문 앞에서 녹음기를 켜고 소리를 채집한다<br>81층의 옥상에 이르는 길고 구불구불한 시간<br>방화문의 영구 폐쇄를 건의하는 남자의 웃음소리<br>차별의 몸가짐을 알량한 생애에 걸쳐 학습한 목소리<br><br>그들을 올라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br>그들은 좋은 교육을 받지 못했어요<br><br>나를 가르친 선생들은 최고의 대학을 나왔고<br>유명한 상을 받았으며 길고 지루한 책을 써냈다<br>그러므로 이제 39층의 계단에 쪼그려 앉아<br>좋은 교육의 시를 쓴다81층의 시멘트 하늘과<br>방화문의 부서진 손잡이에 대하여<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교차로&nbsp;&nbsp;<br><br>노인이 교차로를 모조리 들고 간다힘에 부친듯 오른쪽 팔에서 왼쪽 팔로노인이 떨구고 간 오늘의 교차로 하나<br>직원을 구합니다가족 같은 분위기, 늘 즐겁게 일해요<br>가족이 무서워진다가족이 그의 왼쪽 신경을 끊었고왼쪽 팔뚝에 우는 아이를 심었다아이는 화를 꾹꾹 참고교차로의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린다초록불은 너무 짧다길을 건너다 치일 뻔 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교양(敎養)&nbsp;<br><br>아침 6시, 여자는 놀이터에 개를 풀어놓는다종잇장 같은 하얀 강아지가 드러눕고여자가 우라지게도 짖는다<br>위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떨어지므로나는 늘 투구를 쓰고 다닌다가끔 아파트의 하수구가 막히는 일이 있는데그것은 교양 없는 까마귀가 죽었기 때문이다<br>찻물을 끓이려고 수돗물을 받다가상어의 이빨 하나를 발견한다아파트의 저수조에는 30년째 상어가 살고 있는데오늘 아침 그 상어는 교양을 씹어먹다가이빨을 부러뜨린 것이다이곳의 인간들은 이빨이 듬성듬성 빠져있어서상어의 이빨을 주워다가 대충 끼워 넣는다<br>싸구려 홍차를 마시면서푸른 벽돌의 시집을 펼친다이런 벽돌로 된 집을 지어야지교양을 꽉꽉 채워 넣은 반듯한 나의 집<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연습생(練習生)&nbsp;<br><br>굴러떨어질 준비는 언제나 되어있다한번도 죽어본 적이 없으므로죽어야 끝이 날 것인지 알 수 없다<br>내일 공연은 없습니다<br>어기적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진심으로 태연해야 한다라면 따위를 끓여 먹어서는 안 된다불어터진 얼굴로는 불가능한 스탠바이(standby)<br>무대의 한 귀퉁이에 선다는 건발뒤꿈치에 박히는 가시를 견디는 것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며<br>고맙습니다<br>회전하는 무대 장치가 내 발목을 꺾고는편히 쉬어요내일은 당신의 허리를 부러뜨릴 테니<br>살아남은 뼛조각을 맞추며휘청휘청 내려가는 지하의 계단축축한 이끼에 진심으로 미끄러진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모서리&nbsp;<br><br>냉장고 문을 열다가 왼쪽 발을 부딪쳤다절름절름 다친 이리처럼 걷는다먹잇감을 가진 이리를 따라가다가인정사정없이 뜯겼다등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하늘은 짙푸르다돌아갈 집 따위는 언제나 없었다<br>부러진 발톱을 내려다 본다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떨어져 나간 모서리 때문이다회색의 압력을 견디는 모서리<br>모서리를 살릴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하지만 모서리에 낀 푸른 이끼가숨을 쉬는 소리를 들었다<br>이끼가 가느다란 팔을 내밀어자그마한 집을 짓는다모서리가 조금씩 자란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마두금(馬頭琴)&nbsp;<br><br>나는 이따금 앓아눕곤 하였다손가락이 제멋대로 움직였고혓바닥이 굳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br>누군가가 나에게 말하길마두금(馬頭琴)을 배우면 나을 거야<br>이지러진 지붕의 2층에79살의 마두금 연주자가 살고 있었다<br>마두금을 배우기에는 너무 젊군&nbsp;<br>비가 내리고 있었다나는 우산을 펼쳤다내 앞으로 낙타가 천천히 지나갔다낙타는 왼쪽 눈이 없었는데그 눈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br>나는 낙타에게 우산을 씌워주고는어긋난 마두금 소리를 흉내내었다허연 머리카락이 후두둑 떨어졌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여름, 오후 4시&nbsp;&nbsp;<br><br>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혼자놀이터 옆 벤치에 앉아있다가만가만 숨을 내쉬며 천천히 부채질한다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이다<br>누런 염색 머리의 늙은 여자는비척거리며 걷는 아픈 개를 풀어놓고말 많은 영감은 젊은 날을 늘어놓는다누군가 쪄온 옥수수를 나누어 먹으며그들만의 정겨운 오후 4시<br>하지만, 오늘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검은색 스카프를 두른 외로움이할머니의 어깨 위에 앉아서재잘거리는 소리를 낸다<br>어디를 가시오?<br>이쪽 집에서 저쪽 집으로요<br>행인이 상냥하게 대답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노란콩&nbsp;<br><br>밥 지을 때 넣을 콩을 씻는다이 노란콩은 콩물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어머니가 시골에서 사 온 것이다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콩은 페트병에서 잠을 잤다10년 동안 노란콩은 썩지도 않았다<br>이 콩을 농사지어서 팔았던 여자는살기가 힘들었는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br>나는 콩을 씻다 말고 콩 하나를 집어서죽음의 냄새가 나는지 맡아본다어디서 들으니 오래된 죽음은지독한 소똥 냄새가 난다고 했다<br>말간 얼굴의 노란콩은시치미를 뚝 떼고 눈만 껌뻑거린다<br>왜 그랬을까?<br>왜 그랬는지 나도 몰라요<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가려운 어깨&nbsp;<br><br>불길하게 늙어버린 여자가조화(造花) 상자를 들고 지나간다<br>여자를 피해서 걷는다2년째 어깨가 가렵다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사부작사부작불운이 어깨를 파먹는 소리를 듣는다&nbsp;<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여학생(女學生)&nbsp;<br><br>여학생은 답답하면 5층의 화장실에 갔다화장실의 높은 창가에 의자를 두고 공부했다아무도 오지 않는 고장난 화장실<br>학원의 지하에는 이상한 미로가 있었다가느다란 뱀이 가끔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연애를 하는 것들은 그곳에서 시시덕거렸다초록의 썩은 물이 웃음소리와 뒤섞였다<br>4월, 화장실에서 사고가 있었다5층 화장실은 폐쇄되었고, 여학생도 학원을 떠났다미로의 지하와 뱀이 사라진 곳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br>여학생은 몸이 아프면 화장실 꿈을 꾸었다<br>은빛의 화장실에는 출구가 없었다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스무 살 여자애가회색의 수의(囚衣)에 수갑을 찬 채 걸었다고개를 숙이고 아주 오랫동안&nbsp;<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참기름&nbsp;<br><br>이 참기름이 마지막이야<br>옥이 아주머니가 참기름 2병을 짜오면서 말했다아주머니는 단골 방앗간에 들러서 기름을 짜오셨다<br>언젠가 방앗간 집 여자가 고개를 숙일 때, 정수리가 보이더라그런데 기름에 찌들어 머리의 살갗이 노랗더군30년을 참기름만 짜고 살면 그런가 보다 했다<br>나는 참기름을 찬장 깊숙이 넣어두었다5년 만에 이사를 하게 되면서 그 참기름 2병이 나왔다참기름의 색은 시커맸다나는 참기름의 뚜껑을 따고 그릇에 떨어뜨려 보았다기름에 한 개의 눈과 입, 세 개의 발이 생겨났다그것은 퍼런색의 줄무늬 벌레로 변했다<br>벌레는 어기적어기적 걷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br>그 인간이 나 몰래 딴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두었지더는 살고 싶지가 않더군내가 죽고 딸도 날 따라왔어<br>벌레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누런 물이 흘러나왔다나는 벌레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벌레를 하수구에 흘려보냈다검은 기름이 부엌에 천천히 스며들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곰 인형&nbsp;<br><br>커다란 곰 인형이 이 더운 대낮에누런 배때기를 드러내고 누워있다물크러진 코에서는 회색 콧물이 줄줄튿어진 입에서는 부러진 바늘이 한 움큼찢어진 분홍 리본을 목에 칭칭 두르고<br>지나가는 사람들이 비웃자바늘이 사람들의 눈을 찔러대어서비명소리가 아파트를 뒤흔들었다누군가 구급차를 불렀지만구급차는 아무도 싣지 않고 떠났다<br>인형이 불쌍하다며 만진 아이갑자기 기침이 쏟아지면서천식 환자의 삶이 시작되었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꿈의 자객(刺客)<br><br>뱀눈의 남자는 암만 봐도 무서워온종일 꾸물거리는 날 꿈으로죽은 포도주 냄새가 올라와&nbsp;<br>이 집으로 이사 오고 그 이듬해윗층의 젊은 아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nbsp;어떤 죽음은 기억의 둥지에서 잠을 자<br>할머니는 나쁜 꿈을 꾸면마당에 녹슨 칼을 세게 내려치곤 했지나에게는 끝이 살짝 부러진 칼이 있어<br>뱀눈의 남자와 싸워야지&nbsp;사박사박 숫돌에 칼을 갈고꿈으로 길을 떠나<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