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포스트모던적 모던 1 책세상총서 20
볼프강 벨쉬 지음, 박민수 옮김 / 책세상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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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류 담론이란 것이 사실은 학자들의 경쟁적인 이기심이 빚어낸 외국이론의 수입 전시장처럼 생각되는 때가 종종 있다. 이제 근대에 막 진입하고 있다고 보이는 우리 사회에서 포스트 모더니즘 논쟁이 일어나던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니 더욱 그러한 확신은 굳어진다. 이젠 포스트 모더니즘의 인기가 시들한 대신, 라깡을 비롯한 프랑스 철학이 큰 유행이 되어버린 것 같다.


  벨쉬의 “우리의 포스트모던적 모던”은 우리에게는 한물 가버린 것처럼 보이는 포스트 모더니즘 논의를 차근차근 명확하게 짚어가며 설명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포스트 모더니즘에 관해 이보다 더 잘 정리된 해설서를 찾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벨쉬의 학자적 안목은 빼어나다. 이 책에서 그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주요한 철학자들의 이론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해서 각 분야에 나타난 포스트 모던적 현상에 대해 꼼꼼히 분석하고 있다.


  벨쉬는 무엇보다도 포스트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불리는 리오타르와 그의 저작들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어떤 면에서 리오타르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입구이자 출구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리오타르가 그토록 옹호하고자 했던 가치, 즉 다양성에의 열망과 그것의 실현은 벨쉬의 의도와도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포스트 모더니즘에는 다양성의 무조건적인 추종으로 인한 혼란의 야기라는 측면이 내재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데카르트 이후 확립된 보편과학과 근대성에 대한 메타 담론의 해체 필요성이 존재하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모던의 실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할 때 포스트 모더니즘의 가치는 유효하다고 봐야할 것이다.


  벨쉬는 자신의 책을 통해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철학적 풍경을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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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발터 벤야민 지음, 김남시 옮김 / 그린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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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바 일기”는 도시에 대한 벤야민의 관점과 생각을 알 수 있는 단초들을 제공하기는 해도 무엇보다 그것이 일기임을 고려할 때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더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의 대부분은 아샤 라시스라는 여인과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가 누구인가? 벤야민에게 사회주의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이후 벤야민의 학문적 여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 아니던가?


  그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벤야민은 결혼을 한 유부남이었고, 아샤는 아이의 엄마였으며 동거하는 사람이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벤야민과 아샤, 아샤의 동거인 라이히, 이 세 사람이 만난다. 이쯤 되면 무슨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이 연상될 듯도 한데, 이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일상적이다. 그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사상적 입장을 공격하며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시쳇말로 ‘쿨’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아니면 그 시대 사람들의 교양이란 덕목이 그토록 내밀한 감정들을 표현하기 보다는 응시하고 성찰하게 만든 것일까? 솔직히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이들의 관계는 그리 잘 이해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일기에는 아샤를 비롯해 모스크바에서 만난 다양한 문화 예술인에 대한 단상, 모스크바라는 도시에 대한 관찰, 그곳에서의 예술적 체험도 기록되어있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은 부록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일기는 벤야민이 아샤 라시스라는 여인을 통해서 본 모스크바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 두 사람이 그곳에서 함께 한 순간에 대한 정밀한 기록인 것이다.


  누군가를 통해서만 어떤 장소, 도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벤야민에게 아샤와 모스크바라는 도시는 바로 그러한 것이었으리라. 번역에 있어서 다소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더러 발견되지만, 이십세기의 뛰어난 문예 이론가였던 벤야민의 인간적 면모를 궁금해하는 이들에게는 즐거운 책읽기의 경험을 제공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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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 베스트 오브 자클린느 뒤 프레
jacqueline du Pre (재클린 뒤 프레) 연주 / 워너뮤직(팔로폰)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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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사람들에게 외로울 땐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다양한 나름의 해결책을 들을 수 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답을 해준 이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대신에 헐리우드의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누군가 그 작가에게 외로울 땐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답했단다. “외로울 땐 시나리오를 쓰죠.”

 

 자끌린 뒤 프레의 음반을 들으면, 난 그가 외로울 때마다 첼로를 켰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불치병으로 고통받을 때, 사랑하던 사람이 곁을 떠났을 때, 이런저런 인생의 고비에서 어쩌면 그의 유일한 위로이며 희망은 첼로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외로움을 함께 할 무언가가 있는 사람은 그래도 고통스럽지만 행복하기도 할 것이다. 

 

  그가 연주하는 첼로는 편안하고 유려한 선율을 들려준다기 보다는 무언가에 호소하는 듯한 절절함이 느껴진다. 어떤 사람이든, 그의 굴곡어린 삶이든, 세상을 향해서든 자끌린은 첼로를 통해 외로움을 말해주려는 것 같다.

 

  자끌린은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세상을 떴다. 그러나 그의 연주는 세상에 남았고, 그것을 통해 나는 시간을 뛰어넘어 그의 외로움을 듣는다. 이 음반을 듣다보면 외로움이란 결코 나눌 수 없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벼랑 끝에 선 막막한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도 첼로를 통해 자신을 응시할 수 있었던 용기를 지닌 한 사람의 삶이 나의 외로움에게 말을 건네고 위로를 전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음반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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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즈 1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9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범우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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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의 문학 서가에서 늘 망설이게 했던 책들이 있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바로 그 책들이었다. 마치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거대한 산처럼 참으로 오래전부터 그 책들을 지나쳐왔다. 그러다 이번에 조이스의 “율리시즈”에 도전했다. 10권으로 번역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비하면 4권은 좀 수월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하니 소설의 본문과도 맞먹는 엄청난 주해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비로소 “율리시즈”가 단순한 책이 아니라 거대한 수수께끼이며 책 읽기의 모험 그 자체임을 실감했다.

 

  조이스는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책에 쏟아 부었다는 생각이 든다. 파격적이고 탁월한 문체와 수사학적 실험들, 치밀하고 섬세한 묘사와 놀라운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책이 20세기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불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율리시즈”는 그 책이 나온 이후의 문학 작품의 모든 것의 원형이 되는 요소들이 빠짐없이 들어있다. 내가 놀라고 열광해마지 않는 빼어난 현대 문학 작품들의 시작이 바로 그 책에서부터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학적 성취 이전에 “율리시즈”는 소설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독자가 난해하고 복잡한 글들 사이를 신나게 질주하게 만드는 이 책의 기이한 매혹이야말로 4권의 번역본을 전혀 긴 것이 아니라고 믿게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 번씩 읽으면 그 빼어난 문체의 아름다움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율리시즈”를 읽는 것이 좀 버겁게 생각되는 독자라면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더블린 사람들”을 먼저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두 작품 모두 “율리시즈”를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다’는 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은 직접 올라가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처럼 “율리시즈”도 읽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무수한 놀라움들이 감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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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 칸기 라시드 앗 딘의 집사 2
라시드 앗 딘 지음, 김호동 옮김 / 사계절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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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서 연장을 4번이나 하는 동안 한달이 지나가버렸다. 한 달 동안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고, 빌리고 보니 꽤 두터운 부피, 한도 끝도 없이 나오는 무수한 인명에 질려서 책 읽기를 미루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정작 이 책을 읽는데 걸린 시간은 단 하루였다. 마음먹고 최고의 집중력을 쏟은 것이다.

 

   칭기스칸의 조상과 그의 일대기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낸 이 책은 그렇게 쉽게 읽히는 책도, 아주 재미있다고 할 수 있는 책도 아니다. 부족의 통일을 이루고 더 나아가 중국과 중앙 아시아를 지배한 칭기스칸 일생에서 대단한 모험담이나 박진감 넘치는 전쟁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면 분명 실망할 것이다. 이 책에는 무자비한 살육, 피비린내나는 권력투쟁의 냉혹함이 무미건조한 문체로 담겨져 있다. 

 

  결국 이 책이 내게 던진 마지막 물음은 과연 무엇이 그로 하여금 죽는 날까지 말을 타고 전쟁터를 누비게 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피와 전쟁에 도취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원대한 세계 정복의 이상을 지닌 군주였을까? 어쩌면 그가 살았던 시대는 생존하기 위해서 폭력이 필수적인 야만의 시대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현대성이라는 세련된 의식을 지니며 살고 있다고 믿는 지금의 세기는 기이하게도 이 책이 묘사하는 시대의 그것과 닮아있다. 내게는 그 점이 더 놀랍게 생각될 뿐이다.

 

  때로 독서의 경험은 재미를 뛰어넘은 그 무언가에 도달하는 작업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명감과 열정이란 말이 어울리는 이 책을 낸 출판사와 역자의 노고가  읽는 내내 많은 힘을 주었다. 새로운 독서의 세계를 체험하게 해준 이 책을 보다 많은 이들이 알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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