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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색의 역사 - 성모마리아에서 리바이스까지
미셸 파스투로 지음, 고봉만.김연실 옮김 / 한길아트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중세시대의 이콘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성모의 모습은 대개 붉은 색의 평상복 위에 푸른색 겉옷을 두르고 있다. 내가 아는 미술사 지식에 따르면 붉은 색은 전통적으로 고대 팔레스타인에서 결혼한 여인들이 입는 옷 색깔이었으며, 겉옷의 푸른색은 성모 마리아가 평생 지킨 정결함에 대한 상징을 뜻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왜 푸른색이 성모를 상징하는 고유한 색이 되었던 것일까? 책의 저자가 던지는 질문의 출발점은 그곳에서부터이다.
푸른색이 성모의 색이 되기 이전에 그것이 악마의 사악함과 더러움을 상징하는 색으로 쓰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움을 안겨준다. 그런 색이 어떻게 가톨릭 교회에서 존경의 대상으로 여기는 성모 마리아의 겉옷에 덧입혀지게 되었을까?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 저자의 설명은 이러하다. 몇몇 사람에 의해 시도된 푸른색의 성모 그림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점차적으로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었고, 그것이 일반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관습적 기호로 굳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푸른색의 안료는 구하기 어렵다는 희소성 때문에 높은 가격에만 살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제한된 소재의 그림에만 사용될 수 있었다는 점은 청색이 어떻게 해서 색채의 제왕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가 된다. 이쯤 되면 색이란 것이 고정불변의 정해진 이미지가 아니라 종교, 사회, 문화, 경제와 같은 여러 요소들과 맞물려 형성되는 하나의 큰 신념체계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교회의 고위 관계자와 소수의 부자들을 위한 그림에만 쓰였던 푸른색이 어떻게 해서 오늘날에는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는 색으로 일반에게 인식되기 시작했을까? 사실 푸른색의 독점적이고 우월한 위치는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성취된 것이었다. 투쟁이라는 표현이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블루의 역사는 결코 안온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고결한 성모의 옷자락에서나 볼 수 있었던 중세에서 오늘날 누구나 입는 청바지의 색으로 일상에 자리 잡기까지의 짧지 않은 블루의 역사를 보고 있노라면 눈에 보이는 현상이면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물적, 사상적 토대가 있음을 떠올리게 된다.
“모든 견고한 것은 공기 속에서 사라져버리고, 모든 신성한 것들은 저속한 것이 되며...”
맑스와 엥겔스가 1848년에 발표한 “공산당 선언”에 들어있는 그 글귀가 블루가 이룩해낸 혁명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지 않은가. 어쩌면 그 혁명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