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치료 - 자아를 찾아가는 나만의 저널쓰기
Kathleen Adams 지음, 이봉희.강은주 옮김 / 학지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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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젠가 어떤 아이가 글쓰기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나는 글쓰기 숙제가 제일 싫어요.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고 밥도 제대로 못먹겠어요. 정말 너무 싫다고요. 글쓰기 말고 다른 거 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하겠다니까요."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누군가에게는 글쓰기가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 아이가 생각이 났다. 그 아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도구로 글쓰기를 제시한다면 분명 외면할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좋아하고, 또 서툴지만 그것을 시도해보려는 이들에게 글쓰기는 치료의 한 방법론으로 유용하다. 저널치료는 그러한 이들에게 유용한 도구상자일 수도 있다. 

  "치료"라는 딱딱한 용어를 내려놓고 본다면,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흥미로운 탐색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시된 여러가지 기법들은 결코 어렵지 않다.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고 시도해볼만한 것부터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작년 가을에 다친 다리가 내내 낫질 않아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책에 제시된 "대화"의 기법에는 아픈 자신의 몸과 대화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아픈 "다리"와 대화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각하면서도 그 대화를 써내려가면서 나름대로 얻은 수확이 있다. 통증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것을 견디는 것이 조금은 수월하게 된 것이다. 

  치료를 위한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노트와 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호기심과 열의, 그리고 시간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간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준비가 될 것이다. 저널쓰기에 들인 시간만큼, 스스로의 마음을 보는 눈도 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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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
브렌다 유랜드 지음, 이경숙 옮김 / 다른생각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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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창작 수업에 들어갔을 때, 아무렇지 않게 오가던 그 엄청난 독설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다들 돌아가면서 느낀 점을 한마디씩 하지."라는 선생님의 그 편안한 제의에 얼마나 혹독한 무거움이 들어있는가를 느끼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게 합평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보였다. 

  더러 보이는 근거없는 힐난과 객관을 가장한 지독히 주관적인 평들은 나에게도, 또 수업을 듣는 누군가에게도 결코 편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의 독기에는 좀 무뎌진 듯했지만, 스스로는 내 글에 대한 의구심과 진정성에 대한 회의가 갈수록 커지는 것처럼 보였다. 한학기 내내 글쓰는 동안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결국 그 학기가 끝날때쯤에서야 깨달은 것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평이 아니라, 자신의 글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라는 점이었다.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은 나에게 그때의 수업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분별력있는 이 책의 저자는 글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저자는 그것이 문체나 어휘 같은 외적인 요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이의 인격과 글을 쓰는 목적의 진정성에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좋은 글쓰기를 위해 제시한 가장 강력한 제안을 즉각적으로 실행에 옮겼는데, 그것은 바로 "일기쓰기"이다. 이 제안이 얼마나 매혹적이며 효과적인지, 오래전 그만 둔 일기쓰기를 시작한 뒤 하루도 거르지 않으려 노력한다. 

  투박한 편집이나, 몇몇 오자와 어색한 번역상의 문제가 있기는 해도 책에 담긴 빛나는 성찰들을 가릴 정도는 아니다. 최근 관심을 갖고 읽어본 얄팍한 글쓰기 책들에 정나미가 떨어진 나에게 이 책은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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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 -상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21
하야시 후미코 지음, 최연 옮김 / 소화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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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기는 일본의 근대를 대표하는 여류작가인 하야시 후미코의 자전적 일기체 소설이다. 나는 우연히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꺼내어 읽다가, 기억 속에서 책의 내용과 중첩되는 이미지들을 찾아냈다. 그것은 나루세 미키오가 만든 "방랑자의 수첩(1962)"이란 영화였다.

  영화 속의 여주인공은 술집의 종업원, 여관의 여급, 경리, 파출부 등, 생계를 위해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면서도 문학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시를 쓴다. 그리고 어려움 끝에 마침내 작가로 성공하게 되는데, 그 과정을 그려내는 감독 나루세 미키오의 시선이 참으로 기이했다. 감독은 이 영화를 여류작가의 눈부신 성공담처럼 그려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는 격동하는 근대 속에서 여성작가가가 자신의 길을 찾기까지 겪어야 했던 밑바닥 생활의 궁핍과 남자들과의 어긋난 연애담, 비루했던 일상을 가감없이 그려낸다. 나루세 미키오는 영화를 보는 이들이 작가, 시인, 예술가의 삶에 드리워진 보기좋은 허울과 치장을 걷어내고 그 이면의 삶에 대해 연민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그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하야시 후미코였다. "방랑기"는 나루세 미키오가 만든 "방랑자의 수첩"의 원작이 되는 작품이다. 영화는 연대기순으로 서사를 이어가지만, "방랑기"의 서사는 그렇지 않다. 후미코는 마치 일부러 시간을 섞어놓은 것처럼 일기와 시들이 정확히 언제 쓴 것인지 모르게 만들었다. 말 그대로 방랑생활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글인 것이다.

  그러한 연대기적 혼란 속에서 작가의 삶에 대한 진정성과 빼어난 문학성은 역설적으로 더욱 빛난다. 무엇보다 그녀가 쓴 시들이 너무도 훌륭해서 읽는 내내, 그 시집들을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는가를 궁리하게 만들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나온 것이 없고, 만약 구한다면 일본에서 나온 전집을 사와야할 판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내가 일본어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 정말이지 그녀의 시집을 꼭 구해서 읽고 싶다).

  혼란과 격동의 일본 근대를 살아갔던 한 여성이 있었다. 시인으로, 또 작가로서 그녀는 마치 피를 토해내듯 어렵게 글을 써가며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워갔다. "방랑기"는 그 시절에 대한 작가 하야시 후미코의 자전적 고백이자, 문학에 대한 연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작품이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좋은 역자를 만나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도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낌없이 별 다섯을 준다. 다섯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 "방랑기"는 상권과 하권, 그렇게 두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궁핍한 시대에 더 빛났던 한 여성 작가의 영혼을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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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미 문학과지성 시인선 320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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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작을 하는 이들에게 창작 수업의 합평 시간은 매번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나 또한 합평 시간마다 아무렇지 않게 오고 간 날이 선 비평의 말들에 익숙해지는 일은 쉽지가 않았었다. 괜찮다고 써간 글이 그 시간이 되면 너덜너덜한 글 조각이 되어 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시 창작 수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써간 시들은 그 순박한(!) 감상성이 문제였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시어들은 촌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나는 넘쳐나는 감정의 시어들을 과감하게 잘라내느라 힘이 들었다. 

  문태준의 "가재미"를 읽으면서 내가 나의 시에서 그토록 잘라내고 싶어했던 깊은 감성과 정서의 뿌리를 발견해냈다. 시 창작 수업 선생님이 질색을 하던 그 감정의 시어들이 문태준의 시 세계에서는 자유롭게 유영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모처럼의 평안함을 느끼면서 한때 내가 써낸 시들이 참으로 못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감정이 베어져 나오는 시는 촌스럽지 않다. 오히려 때론 눈이 시린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만든다.

   이제 나는 시를 쓰지 않는다. 시를 통해 정서를 드러내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태준의 시집을 읽고 잠깐 생각했다. 다시 시를 써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가재미"에는 시를 통해 내가 드러내고 싶어했던, 한때 열렬히 찾아 헤매었던 깊은 정서의 뿌리들이 가닥 가닥 살아있다.  

  시에서 베어져 나오는 눈부신 정서의 힘을 느껴보고 싶은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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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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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매혹적이다. 소설 작법에 있어서도 내적 변화가 드러나지 않는 평면적인 캐릭터는 이야기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주인공은 반드시 변화를 보여주어야 한다, 고 창작 강의 시간에 소설가 선생님은 강조하곤 했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는 법이다. 

  "완득이"는 성장 소설의 기본 문법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만의 세계에 스스로를 유폐시키며 세상과 사람에 대한 소통을 거부하던 완득이는 주변의 따뜻한 관심 속에서 조금씩 벽을 깨고 나오기 시작한다. 작가는 완득이의 개인적 성장을 그려내면서 거기에 가난한 사람들, 장애인,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래서 "완득이"는 한 청소년의 성장일기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약자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 나름의 의미있는 텍스트로 읽힌다.

  아동문학, 내지는 청소년 문학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제는 고인이 되신 권정생 선생의 "몽실언니"가 주는 따뜻하고도 가슴저린 느낌으로 남아있다. "완득이"를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마치 시간터널을 통해 다른 시간대로 순간이동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당혹감과 이질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인물과 상황에 대한 설정이라고는 해도 욕설과 비속어를 이야기 내내 반복해서 읽어내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또한 작가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시각은 어떤 면에서는 단선적이고 표피적인 것처럼 보인다.

  "몽실 언니"의 몽실이나 "완득이"의 주인공은 모두 상처를 지니고 있다. 시대가 바뀌고 사는 모습이 달라져도 아이들이 고민하고 꿈꾸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 상처를 보듬어가며 아이는 커나간다. 어쨌든, 완득이는, 소년은 성장한다.

  "완득이"를 덮으며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성장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가난한 애들일까 하는. 부잣집 애들의 성장 이야기는 별로 매혹적이지 못한가? 아마도 어려움과 결핍이 인생의 숨겨진 많은 면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싶은 생각이 문득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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