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베란다에 널어둔 빨래를 걷는데
얼굴에 눅진한 어떤 기운이 느껴진다
가느다란 실 같은 아, 유령거미가
그 조그만 몸뚱이로 그 넓은 공간을
횡단하면서 이리저리 너는 참,
열심히도 사는구나
결국 사람을 먹지도 못할 거면서
보잘것없는 입으로 끊임없이 실을 토해내고
결국 눈물을 써내지도 못할 거면서
어떻게든 글씨를 세상에 욱여넣으며
살아야지, 1, 2, 3, 4, 숫자대로 점을 이어서
그렇게 닿을 수 있는, 내가 알 수 없는,
아주 작고 또 거대한 사물들에게 살아있다고
슬픔은 너만의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하나의 실로
이어져 스러지는 우주의 가스 구름으로
흐를 거라고 밤새, 유령의 집을 지을
거미에게 자그맣게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