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쓰던 전기장판이 고장 났다. 전기장판이 고장 난 것인지, 아니면 온도조절기가 고장 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용한 지 1년이 지난 제품이라 무상으로 수리할 수도 없었다. 제조사 서비스 센터에 문의하니, 그걸 수리하려면 오직 본사로만 택배를 보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택배를 보내어서 수리를 맡기려다가, 귀찮아서 그만두었다. 대신에 외산 전기장판을 하나 샀다. 이전 전기장판 회사의 제품은 이미 2개나 고장이 난 상태였다.

  외산 전기장판은 그럭저럭 별문제 없이 쓰고 있기는 한데, 장판의 열이 너무 미적지근하게 들어온다. 서양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만들어진 제품이라 그런 모양이다. 서구인은 절절 끓는 온돌방에서 '시원하다'고 말하는 한국인의 언어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냉기만 겨우 피할 요량으로 만들어진 듯한 외산 전기요는 조절기의 제일 높은 온도인 6번으로 맞추어 놓아도 그다지 따뜻하지 않다. 적어도 이 전기장판을 깔고 자다가 화재가 일어날 일은 없을 것이다. 

  요즘 문득, 그 고장 난 전기요를 다시 고쳐서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어차피 제조사에 보내도 수리 비용과 택배비가 드니까, 동네 전파사 같은 데에 맡겨도 좋을 듯했다. 그런데 아무리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아도 내가 사는 동네 근방에 '전파사'는 없었다. 조명 가게는 몇 군데 있었다. 그런 곳에서는 조명 공사만 하지, 이런 소소한 전기 제품 수리를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고 보니, '전파사'라는 이름의 간판을 길 가다가 본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그 많은 전파사는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예전에는 유명 메이커의 대형 가전을 제외하고는 라디오나 커피포트, 전기밥솥 같은 제품은 동네 전파사에서 고쳐서 썼다. 수리 비용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전파사는 대부분 협소한 공간에, 수리할 수 있는 작은 책상이 가게 전면에 자리했다. 벽면과 가게 안쪽에는 마치 고물처럼 보이는 각양각색의 전자 제품과 그 부품들이 있었다. 고장 난 전기 제품을 가져다주면 주인아저씨는 대략 며칠이 걸릴 것이며, 수리비는 얼마가 될 거라고 알려주었다. 정해진 날짜가 되어서 가게를 찾아가면 잘 고쳐진 물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웬만한 소형 가전은 'Made in China' 제품으로, 단지 우리나라 가전회사의 이름으로만 판매될 뿐이다. 그 내구성이라는 것은 예전 국산 제조사들에 비한다면 한참 뒤떨어진다. 작년 겨울에 내가 구입한 석영관 히터가 그렇다. 사용한 지 3개월 만에 2단짜리 석영관 히터가 고장 나버렸다. 무상 수리 기간이 남아있어서 고쳐 쓰려고 알아보니, 그 회사의 서비스 센터는 평일에만 운영한다고 했다. 평일에 시간 내어 가기가 어려워서, 어쩌다 보니 어느새 무상 수리 기한을 넘겨버렸다. 나는 그 석영관 히터를 버릴 생각이다.

  대부분 중국산인 석영관 히터는 저렴한 가격만큼 수명이 매우 짧다. 그런 사실을 나는 이번에서야 알게 되었다. 고쳐 쓴다 해도 몇 달 만에 저가 석영관은 또다시 펑, 하는 소리와 고장이 날 것이다. 해마다 이렇게 버려지는 석영관 히터가 얼마나 많을까? 그야말로 그런 소형 가전 제품들은 전자 쓰레기를 양산하는 주범일 뿐이다. 소비자들도 그런 제품이 고장났을 때, 비용을 들여 고쳐서 쓰기보다는 버리고 새로 산다. 전파사가 사라진 데에는 그런 이유도 한몫할 것이다. 전파사 주인들의 일감이 되어야 할 전자 제품은 재활용품 수거업자의 야적장에 쌓여있다. 우리 삶의 풍경 속에는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내가 사는 동네의 재래시장 입구 건물 2층에는 '전당포' 간판이 아직도 걸려있다.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과연 저곳이 아직도 영업하는지 궁금해진다. 요새 사람들은 무얼 갖다 맡기고 그곳에서 돈을 꾸어갈까? 궁핍함은 언제나 사람들을 괴롭히니까 어쩌면 전당포는 전파사보다는 더 오래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엊그제는 책상 스탠드 전등이 고장 나서 버렸다. 무려 30년 전에 제조된 제품이다. 인버터 스탠드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만들어진 이 제품은 전등 부품이 일제였다. 스탠드의 몸체는 매우 견고한 철재로 제작되어 있어서 무게가 꽤 나갔다. 내가 그걸 재활용 분리수거함에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 그걸 가져갔다. 고철로 팔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2만 원짜리 LED 스탠드를 주문했다. 가벼운 알루미늄 몸체에 장착된 기다란 LED 전구는 교체가 되지 않는 제품이다. 그러니까 이 전기 스탠드는 쓰다가 전등이 나가면 버려야 한다. 지금의 시대에 물건을 고쳐쓰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소비하고, 고장 나면 빠르게 버려야만 하는 시대. 전파사는 이 시대 너머의 먼 곳에서 그렇게 잊혀진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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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왜 똑같은 옷을 두 벌이나 산 거야?"

  내가 등산용 재킷을, 그것도 똑같은 옷을 두 벌 샀다고 하자 동생은 그렇게 물었다. 글쎄, 왜 그랬을까? 나는 동생의 그 질문에 뭐라고 답을 하지 못했다. 이 글은 그 대답을 찾기 위한 나 자신의 자아성찰기가 될 것 같다.

  그 재킷은 검정색의 등산용 솜 잠바였다. 그 잠바의 원래 가격은 299,000원. 기껏해야 합성 솜이 누벼진 그 잠바가 비싼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그 합성솜의 이름이 '프리마로프트(PrimaLoft)'였기 때문이다. 프리마로프트는 미군의 재킷과 침낭에 쓰이는 특수 기능성 소재이다. 가볍고 따뜻한 데다가, 보관과 세탁도 용이하다. 고가의 등산 의류 브랜드에서는 프리마로프트로 된 의류들을 이전부터 내놓았다. 나는 무척 비싼 가격 때문에 그 잠바는 살 생각도 안 했다. 그렇다고 내가 등산을 다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잠바가 정말로 그렇게 좋은지 궁금하기는 했다.

  바로 그 프리마로프트 잠바가 얼마 전, 갑자기 할인에 들어가서 10만 원 이하로 떨어졌다. 이건 사야 해. 나는 이번이 아니면 저 잠바는 살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했다. 색상은 검정색과 노랑색, 흰색이 있었다. 언제나 검정색은 진리이다. 품절이 뜨기 전에 내가 사려는 사이즈를 선점해야지. 그때, 등산 관련 사이트에서는 이 프리마로프트 잠바 대란이 일어났었다. 다행히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검정색의 그 솜 잠바를 받을 수 있었다.

  택배 박스를 여는 순간, 나는 이 잠바가 정말이지 마음에 무척 들었다. 이 옷은 등산복 같지 않았다. 그냥 어디 나갈 때 가볍게 입고 나가도 괜찮은 옷처럼 보였다. 거기에다 검은색이라 튀지도 않는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날, 나는 이 옷을 입고 산책을 나갔다. 세상에, 바람이 옷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 옷은 냉기를 아주 효과적으로 차단해 주었다. 거기에다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아서 아주 편했다. 나는 이 옷이 너무나도 좋았다. 이걸 하나 더 사면 어떨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그냥 한 벌을 더 샀다. 색깔과 사이즈는 동일했다. 노란색과 흰색이라는 옵션이 있었지만, 나는 도저히 그 색깔의 옷을 입고 밖을 돌아다닐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그 색깔의 옷들이 필요하다. 등산복의 색상이 화려한 이유는 조난이나 위기 상황 시에 눈에 잘 뜨여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동네 공원에 산책이나 다닐 뿐이었다. 검정색 말고는 다른 색의 옷은 필요 없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솜 잠바'를, 그것도 똑같은 것으로 두 벌을 샀다.

  막상 그렇게 잠바를 받아놓고 보니 한숨이 나왔다. 아니, 아무리 이 잠바가 좋아도 그렇지, 같은 옷을 또 사다니...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나는 '프리마로프트'에 홀린 것 같았다. 이 좋은 솜 잠바를, 다시는 이 가격에 살 수 없다는 나름의 절박함이었을까?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입어도, 이 솜 잠바가 닳아서 새옷을 살 일이 없을듯 하다. 

  '그저 이 잠바가 좋았을 뿐'이라고 하면, 내가 이 잠바를 똑같은 것으로 한 벌 더 산 이유가 될까? 여전히 나는 동생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느낌이다. 옷장에 잘 포장해서 넣어둔 또 한 벌의 잠바를 볼 때마다 내 기분은 이상하게 착잡해진다. 그렇다. 질문을 바꾸어 보자. 왜 한 벌로는 만족할 수 없었을까?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기 위해 나는 나름의 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을 잘 지키는 편이다. 그런데 이 솜 잠바만큼은 그 원칙을 지킬 수가 없었다. 스스로 깨버린 원칙에 대해 나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고 싶었다.

  "옷은 갑옷 같은 겁니다. 매일 우리는 삶이라는 전쟁터로 나갑니다. 그럴 때, 자신을 지켜주는 갑옷을 잘 챙기는 건 중요하죠."

  빌 커닝햄(Bill Cunningham, 1929-2016)은 뉴욕의 거리 패션을 담은 유명한 사진작가이다. 문득, 나는 그가 한 말을 떠올렸다. 나는 이 하잘것없는 솜 잠바를 그 갑옷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좋은 갑옷을 구했는데, 똑같은 것으로 하나 더 있으면 든든할 것 같았는지도.


*빌 커닝햄의 삶을 담은 다큐
'Bill Cunningham New York(2010)' 리뷰
https://blog.aladin.co.kr/sirius7/12168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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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임영웅은 정말 자기 객관화를 못 하나 봐요. 아니, 콘서트를 열려면 드넓은 평야에서 하든가 해야지. 그런 작은 콘서트장이 웬 말이랍니까." 

  누군가 임영웅 콘서트 티켓 예매에 실패하고는, 그렇게 인터넷 댓글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기 객관화를 못 한다라는 말은, 자신의 공연을 보려는 관객 수를 너무 적게 가늠했다는 뜻이다. 전 국민 효도 테스트. 임영웅 티켓 예매와 관련된 글을 읽다 보면 이 가수의 팬덤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솔직히 나는 트로트에 그렇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가수가 어떻게 해서 지금의 엄청난 인기-그것이 중장년층에 한정된다 해도-를 얻게 되었는지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임영웅은 단순히 노래 잘하는 트로트 가수를 넘어서 어르신들의 아이돌이 되어버렸다. 가수로서 노래를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호감이 가는 외모도 임영웅의 인기에 한몫한다. 하지만 이 가수가 구축한 견고한 팬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거기에는 기존 가수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가수로서 성공하기까지의 '서사'이다. '영웅'이라는 이름부터가 남다르다. 그 이름은 예명이 아닌 본명이다. 어떤 면에서 이 가수의 성공 신화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이 말한 '영웅의 서사'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임영웅은 아주 어린 시절에 부친을 사고로 잃었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성장한 그에게 세상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가수의 꿈을 가지고, 무명 가수로서 지낸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온다. 그는 케이블 TV 방송국의 트로트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매주 펼쳐지는 노래 경연에서 시청자들은 가수 개개인들이 살아온 삶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어째 쟤들은 하나같이 다 힘들게 살았나 모르겠다. 저런 데라도 나와서 정말 다 잘되었으면 싶어."

  임영웅이 나온 '내일은 미스터 트롯' 경연을 보고, 나의 모친은 그런 말을 하셨다. 임영웅뿐만 아니라 최종 경연에 오른 다른 참가자들 모두에게는 고난과 역경을 견디어 낸 과거가 있었다. 그 프로그램 제작진은 그런 참가자들의 개인사를 감동적인 이야기로 잘 포장할 줄 알았다. '내일은 미스터 트롯'이 기존의 노래 경연 대회와 달랐던 점은 거기에 있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로 잘 다듬어진 참가자들 각각의 서사는 경연이 진행될수록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팬덤으로 이어졌다. 그 가수들의 과거는 참으로 불운했지만, 이제는 그 어려움을 딛고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는 팬들의 간절한 소망 말이다.

  그러한 팬덤의 이면에는 한국 사회에 내재된 계층적 단절과 소외에 대한 은유도 자리한다. 트로트 장르를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세대는 대부분 해방 이후에 나고 자란 중장년층 사람들이다. 그 세대의 젊은 날은 모두가 가진 것 없이 힘들게 견뎌낸 가난, 번듯한 삶에 대한 성공의 열망으로 채워져 있었다. 과연 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중산층에 진입했을까? 1970년대의 개발독재, 1980년대의 부동산 투기 열풍을 지나면서 그 과실을 수확한 사람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에서 계층 상승의 욕망을 실현하기는 어려워졌다. 1990년대 IMF 사태를 지나면서 한국 사회의 계층적 유동성은 점점 더 작아졌다.

  이제 그 시대를 거쳐온 세대는 자신들이 살아온 삶과 좌절된 계층적 욕망을 새로운 세대의 가수들에게 투사한다. 그 가수들 가운데 중산층 출신이라고 볼 수 있는 이는 없다. 편모슬하, 조실부모, 가난, 오랜 무명 시절... 이러한 굴곡진 개인사는 가수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은 재능이 있음에도 단지 '불운'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 내가 이 가수들의 노래를 열심히 듣고 응원한다면 이들에게는 새로운 앞날이 펼쳐질 것이다...

  이제 트로트 경연 대회 참가 가수는 인기 가수 ***가 아닌 우리 ***가 된다. 임영웅의 어르신 팬들은 그를 '우리 영웅이'라고 지칭한다. 그들에게 있어 임영웅의 노래는 힘들었던 삶에 대한 위로이자, 팍팍한 현실에서의 활력소가 된다. 어쩌면 임영웅의 팬들은 트로트 경연대회의 시청을 시작으로 임영웅의 '영웅 서사'를 함께 만들어 온 공동의 창작자일지도 모른다. 조지프 캠벨은 자신의 저서에서 신화 속 영웅이 마주하게 되는 고난과 시련, 조력자의 등장, 귀환에 이르는 일련의 여정을 형상화했다. 그 신화 속의 영웅과 가수 임영웅이 다른 점이 있다면, 임영웅은 친근한 이웃집 청년, 집안의 막내아들과도 같은 평범함을 획득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평범함은 역설적으로 임영웅에 대한 거대한 팬덤과 직결된다. 이 가수에게 있어 팬들은 무수한 어머니, 아버지가 된다. 확장된 가족 공동체로서 임영웅의 팬덤에 내재된 연대감, 소속감은 매우 끈끈하다.

  한편으로 이러한 임영웅의 '영웅 서사'적 팬덤과는 별개로, 나는 그가 가수로서 성취한 대중음악적 성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을 품는다. 분명, 임영웅이 가진 세련된 창법은 트로트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손쉽게 해체해 버린다. 다양한 장르의 곡을 선곡하고, 그 노래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 낸다는 점도 가수 임영웅이 가진 장점이다. 어쩌면 임영웅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음악과, 자신에게 안정적인 수입원이 될 트로트 사이에서 그럭저럭 줄타기를 잘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흘러간 가수들의 트로트 노래를 재발견해서 자신의 목소리로 새롭게 들려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직 그의 노래에는 확실한 '빛깔'이 없다. 트로트 경연 대회 우승자로서의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그가 '돈 잘 버는 성공한 트로트 가수'에서 '독창적인 자신의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가수'로 나아가는 것. 어떤 의미에서 그 길이 가수 임영웅이 진정한 '영웅 서사'를 완성하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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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전, 어느 해였던가? 신춘문예 당선자의 소감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당선자는 기차를 타고 여행 중에 당선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홀로 떠나는 여행길에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듣는 건 참 좋겠구나. 혼자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오늘, 나는 우체국에서 어느 신문사에 보내는 신춘문예 원고를 등기로 부쳤다. 이십 대의 어느 날이었던가, 그때 보내고는 나는 신춘문예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랬다가 어제 문득, 올해 신춘문예 일정을 확인해 보고는 응모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어떻게 될까? 에이, 거긴 문예창작과 애들이 목숨 걸고 글 써서 달려드는 전쟁터인데 내가 뭘... 그래도 내가 써놓은 글을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세상에 내보내는 일은 나름 뿌듯하다.

  영상원에서 공부할 때, 나는 연극원 수업을 좋아해서 그쪽 수업을 꽤 많이 들었다. 내가 들은 수업 가운데에는 서사창작과 수업도 있었다. 수업 과제 때문에 동물원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법원 재판을 방청한 기억도 난다. 소설가 천운영 씨가 강의했던 수업이었다. 천운영 씨는 소설 쓰기의 기본을 '취재'로 생각했다. 그 수업의 말미에 내가 무슨 소설을 써서 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소설은 현실에 천착한 글쓰기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내가 그 수업에서 얻은 나름의 수확이었다. 

  서사창작과 수업에서는 극작과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기억나는 것이 시 창작 수업이었는데, 매주 시를 한 편씩 써와서 발표했다. 그렇게 시를 써서 발표하면 수강생들은 돌아가면서 그 시에 대해 평을 한다. 그것을 '합평'이라고 하는데, 그 시간이 수강생 각자에게 절대로 평온한 시간은 아니었다. 다들 자기 글에 나름의 자부심이 있는 애들이, 남이 자기 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 내가 그 수업 시간에 확인한 것은 나에게는 시에 대한 재능은 없다, 는 사실이었다. 그 수업 시간에 만났던 두 사람은 이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시인과 소설가가 되었다. 세월은 그렇게 빨리 흘러가 버렸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이 사자성어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은 언젠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어있다는 뜻이다. 나는 기억이 사라져가는 엄마에게 매일 사자성어를 외우게 하는 공부를 시킨다. 아직 언어에 대한 인지능력만은 손상되지 않고 온전한 우리 엄마는 대략 서른 개의 사자성어를 틀리지 않고 다 맞춘다. 거기에는 '낭중지추'도 있다. 나는 엄마에게 그 사자성어의 뜻을 말할 때마다 기묘한 서글픔을 느낀다. 과연 세상이 재능을 가진 사람을 다 알아주는가? 재능이 있다고 해서 모두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만이 아니다. 문운(文運)도 따라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자신의 글쓰기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그저 버겁고 괴로운 과업이 될 뿐이다. 아마도 신춘문예 당선도 그 '문운'이라 부르는 것에 들어갈 것이다. 나는 우체국에서 받은 등기우편물 영수증의 번호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내게 그건 마치 로또 복권의 번호 같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등단'이라는 장밋빛 꿈에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들이붓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네 글은 말이다. 디테일이 좀 부족해."

  시나리오 창작 수업을 강의하셨던 칠순의 소설가 선생님은 나에게 딱 그 한마디만 하셨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노작가 선생님의 그 말을 목에 걸린 가시처럼 되새긴다. 아마도 내가 받은 창작 수업은 그 짧은 조언만으로도 족한지도 모른다. 오늘 쓰는 이 글에는 디테일이 살아있을까? 이런 평범한 수필을 써 내려가는 일도 늘 그리 쉽지는 않다. 나에게 글쓰기는 언제나 바닷가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는 숙제 같다. 때론 힘들고 지루하지만, 재미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좀 어떤가. 오늘도 나는 이렇게 글 한 편을 써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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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지 2023-11-28 06:49   좋아요 0 | URL
신춘문예는 작가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등용문으로 여겨집니다. 수차례 도전하여 당선되는 작가들의 당선 소감을 보면 작가 지망생들의 치열한 경쟁을 바탕으로 신춘문예의 명맥을 잇는 듯합니다. 희소식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푸른별 2023-11-28 17:10   좋아요 0 | URL
요즘같이 다양한 매체를 통한 등단의 기회가 있는 시대에, 신춘문예의 의미가 무얼까 생각하게 되네요. 순수문학 등단의 최후의 보루, 같은 느낌도 들고요. 재능이 있는 소수의 사람만이 그 바늘귀 같은 문을 통과하는 것이겠지요. 자성지 님의 좋은 댓글, 잘 읽었습니다.
 

 

  "홍삼은 먹어도 되나요?"

  의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 그것이라고 한다. 나는 의사가 쓴 수필집을 읽다가 그 부분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진료를 봐야 할 환자는 밀려있는데, 기껏해야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시간을 빼앗다니. 의사 입장에서는 꽤나 짜증스러운 질문인 모양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그렇다. 그 질문이 환자가 정말로 의사한테 하지 말아야 할 무의미한 질문인가? 일전에 안과 진료를 받는데 그런 비슷한 질문을 한 환자를 보았다. 진료실 문이 열린 상태여서 의사와 환자가 나누는 대화가 대기실까지 다 들렸다.

  "환자분, 잘 들으세요. 백내장은 영양제 먹는다고 해결이 안 된단 말입니다."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환자는 아마 루테인이나 뭐 그런 영양제 이야기를 하면서 의사에게 질문을 했을 것이다. 그 안과 의사는 기본적으로 환자를 응대하는 태도가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질문을 할 수도 있지. 뭘 그렇게 큰 소리로 무안을 주는 걸까, 대기실에서 그 대화를 듣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 대부분의 의사는 환자가 말을 좀 길게 하거나, 질문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일까? 비단 홍삼이나 영양제 질문 같은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나는 지난여름부터 몸이 좋지 않아서 종합병원에 다니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약을 처방받기 위해 의사를 만난다. 그런데, 이 의사 선생도 뭔가 내 말이 길어지면 초조한 기색을 내비친다. 그럴 때 이 의사가 주로 하는 행동은 자신의 머리를 감싸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일종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아,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얼른 진료실을 나가야겠구나.

  특별히 내 주치의가 불친절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 선생은 자신이 보기에 환자가 불필요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면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듯 하다. 그렇다고 내가 진료실에서 말을 길게 하지도 않는다. 나는 병원 가기 전에 미리 할 말을 정리해서 타이머 켜놓고 연습한다.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딱 5분으로 정해놓고 말이다. 그 의사 덕분에, 이제 나는 진료실에서 아주 간결하게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기술을 터득하게 된 것도 같다.

  유튜브에서 그런 동영상을 보았다. '대형병원에서 의사 진료를 잘 받는 방법'이라는 동영상에는 서울 대학 병원 의사가 나와서 그 비법을 알려준다. 10분 남짓한 그 짧은 동영상은 환자들이 진료실에서 지켜야 할 매뉴얼 북 같은 인상을 준다. 대형병원에서 의사가 환자 1명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5분 정도이며, 그 이상을 쓰려면 의료 수가를 올려야 한다고 그 의사는 강조한다. 그러니까 저렴한 의료 수가만큼 의사가 환자한테 쓸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런 현실에서 환자는 진료실에서 자신에게 배분된 그 '5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 진료받을 때는, 증상을 객관적 수치로 구체적으로 진술할 것. 예를 들면 언제부터 아팠는지, 통증의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 그 양상은 어떠한지 의사에게 말한다. 의사는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환자가 받을 검사를 지시한다. 이 때 환자는 자신이 받는 검사가 무엇인지 확인한다. 그렇게 해서 치료가 진행중일 때, 추가적으로 처방되는 약이나 검사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환자가 의사에게 다른 대안은 없는지 물어볼 수 있다.

  '아니, 이 양반은 철저히 의사인 자기 입장에서만 말하는구먼. 이건 뭐 환자가 의사한테 다 맞춰줘야 하네.' 

  누군가 그 동영상에 그런 댓글을 달아놓았다. 그 댓글을 읽고 나도 모르게 큭,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환자분들 잘 들으세요. 진료실에서는 의사한테 딱 필요한 말만 하라, 이 말입니다. 그리고 의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종이에다 쫙 질문 써서 물어보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홍삼 먹어도 되나요, 그딴 질문은 하지 마시고요. 내가 그 동영상을 아주 거칠게 해석해 본다면 그러하다. 몸이 아파서 의사를 찾아가는 건데, 환자 노릇 하기도 참 더럽게 힘드네...

  진료실에서 의사 붙잡고 자기 몸 아픈 이야기를 한없이 늘어놓는 환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환자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끊어내는 것도 의사의 진료 비법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환자는 자신의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또한 많은 의사가 성토하는 현재의 의료 수가 체계에서, 의사가 진료 시간 잡아먹는 환자를 '극혐'한다는 것도 이젠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버렸다. 그 사실을 모르는 환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자, 그러면 다음 예약은 3개월 뒤로 하겠습니다. 환자분, 더 물어보실 것은 없나요?"

  열린 안과 진료실 문 사이로 의사의 말소리가 들린다. 환자가 무슨 말을 하자, 의사는 다시 한번 세극등 현미경을 들여다보았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사의 말과 함께 중년 남자 환자의 진료가 끝났다. 그 의사 선생은 올해 내가 만난 의사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다.

  이제 삼십 대 중반의 젊은 그 의사는 의사가 지녀야 할 가장 좋은 덕성(德性)을 지니고 있었다. 그건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재능이다. 안과 의사로서 눈을 잘 보는 것은 기본이다. 이 선생이라면 '루테인 먹어도 되나요?' 같은 질문에도 웃으면서 말해줄 것 같다. 환자가 의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그 직업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내포되어 있다. 올해 내가 만난 여러 의사 가운데,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걸맞은 좋은 의사는 그 안과 의사 단 한 사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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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11-25 22:38   좋아요 0 | URL
환자는 환자인거지
좋은 환자노릇도 해야하다니..
거참 알고 있던 사실인데도
씁쓸하네요.
따지고보면 의료수가가 낮다고
그들이 받는 급여수준이 일반직장인에 비할바가 아니지 않나요? 요즘 동네의원 의사들도 불친절한 분이 어찌나 많은지 기분이 나빠 병원가기를 자꾸 미루게 되거든요.
다른 병원가자니 또 다시 시작해야하고 다시 설명해야하고
좀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푸른별 2023-11-25 22:46   좋아요 1 | URL
은하수님도 그런 경험이 있군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다들 한번쯤 겪지 않았을까요? 좋은 의사 선생님 만나는 것도 운이 따라야 하는 것 같아요. 아픈 건 참지 말고 병원에 가세요. 은하수님의 병을 잘 치료해줄 좋은 의사 선생님을 꼭 만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