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3),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Christopher Nolan)
바비(Barbie, 2023), 감독 그레타 거윅(Greta Gerwig)
마에스트로 번스타인(Maestro, 2023), 감독 브래들리 쿠퍼(Bradley Cooper)



  영화 '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3)'는 러닝타임이 3시간이다. 그렇게 긴 영화가 지루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영화는 그럴 틈을 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오펜하이머( J. Robert Oppenheimer, 1904-1967)의 일대기를 다룬다.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은 정교하게 배치된 3개의 시간 축을 중심으로 영화를 짜나간다. 오펜하이머가 대학생 시절이었던 때부터 원자 폭탄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그리고 오펜하이머에게 오욕과 수치를 안겨준 1954년의 청문회, 오펜하이머의 반대자 루이스 스트로스(Lewis Lichtenstein Strauss)의 1959년 청문회가 그것이다. 놀런은 이렇게 시간대를 교차시켜 보여주는 데에 재미를 붙인 것 같기도 하다. '덩케르크(Dunkirk, 2017)'에서도 그런 걸 써먹은 적이 있다.

  그런 내러티브적 변형이 효과적이었는지 내게는 물음표로 남는다. 덧붙여 말하자면 '덩케르크'는 참으로 별로였고, 그나마 '오펜하이머'는 볼만 했다. '오펜하이머'는 실존 인물인 오펜하이머의 인생을 매우 효과적인 방식으로 축약해서 보여준다. 놀런은 그의 인생이 격변의 시대와 교차하는 지점을 통찰력 있게 포착한다. 원자폭탄 개발의 주도적 과학자로서 오펜하이머에게 영광의 월계관만 씌워진 것은 아니었다. 내연녀의 비극적 죽음,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견뎌야 했던 사상 검증, 원폭 투하가 가져온 엄청난 살상에 대한 죄책감이 오펜하이머의 삶에 포개어져 있었다.

  영화는 뛰어난 과학자가 겪어야 했던 인간적 불행이 '국가'가 수행한 거대한 전쟁 프로젝트와 긴밀히 맞물려 있음을 부각시킨다. 아무리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라고 해도 그것이 국가,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는 순간에 과학자는 하나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다. 오펜하이머의 삶은 그것을 통렬하게 입증한다. 결국 소모되어 버려지는 삶. 영화 '오펜하이머'는 그 비참함과 서글픔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오펜하이머'와 함께 2023년의 미국 영화계의 화제가 되었던 작품은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의 바비(Barbie, 2023)이다. 완벽한 바비 인형의 삶에서 벗어나게 된 주인공 바비가 한 여성, 인간으로서 눈뜨게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전형적인 페미니즘 영화를 표방하면서도, 감독 그레타 거윅은 매우 영리하게 그 전형성에서 벗어난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바비 인형 회사 마텔(Mattel)과 긴밀히 협조한 자본주의적 영악성은 영화 속에서 매끄럽게 포장되어 있다. 그럼에도 영화 '바비'의 세계관은 진부함의 범주에 머물러 있다. 새로운 것이 없다는 뜻이다.

  2024년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선정에서 '바비'가 철저히 외면당한 것을 두고 말이 많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바비'는 그런 대접을 받아도 별로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이건 페미니즘에 대한 박대가 아니다. 그레타 거윅의 빈곤한 영화적 상상력과 놀라운 정치적 능력의 합작품 '바비'를 누구나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영화 나는 반대일세', 미국 아카데미 협회 회원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나도 그렇다.

  헐리우드의 또 다른 화제의 영화로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Maestro, 2023)'이 있다. 브래들리 쿠퍼(Bradley Cooper)는 이 영화의 감독으로, 그리고 주인공 번스타인역으로 북 치고 장구 치는 놀라운 원맨쇼를 보여준다. 최근 몇 년 동안 할리우드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파는 데에 열심인듯 하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은 유럽 출신의 지휘자가 주류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미국의 자존심을 세워준 인물이다. 영화는 그러한 번스타인의 음악적 성취 이면에 자리한 개인사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동성애자인 번스타인의 삶은 '결혼'과 '출세'라는 세속적 틀과 맞물리며 지속적인 파열음을 낸다. 영화 속 번스타인은 뛰어난 지휘자 이전에 기만적인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온다. 번스타인은 끊임없이 남자 연인들과 바람을 피우는 자기 삶의 방식에 한없이 관대하다. 결별을 요구하는 아내에게는 질투심에 눈이 멀었다고 비난하고, 딸에게도 진실을 숨기며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이 남자는 외적으로는 위대한 지휘자(Maestro)라는 광휘에 휩싸여 있지만, 그 뒤에는 일그러진 인간적 면모가 숨겨져 있다.

  영화 속에서 번스타인은 동료 음악가를 비롯해 자신이 가르치는 남학생과도 연인 사이가 된다. 명백하게도 그러한 번스타인의 행동은 자신의 직업 영역에서의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을 예상하게 만든다. 번스타인의 모습은 영화 '타르(Tár, 2022)'에서 여성 지휘자 타르의 거울 이미지처럼 보인다. 물론 타르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감독 토드 필드(Todd Field)가 만들어낸 가상의 지휘자이다. 그 영화에서 타르는 음악적 권력을 남용하다 파국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단초는 타르가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성적인 착취의 도구로 사용한 데에서 기인한다.

  영화 '마에스트로'를 보면서 나에게 든 의문은 이런 것이다. 왜 타르를 몰락하게 만들었던 성적 취향과 권력의 속성이 번스타인에게는 그 어떤 손상도 끼치지 않았는가? 번스타인은 죽을 때까지 남자들과 자유롭게 연애하고 동거했다. 그의 그런 사생활은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았고, 음악계에서도 암묵적인 비밀로 유지되었다. 브래들리 쿠퍼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을 둘러싼 번지르르한 신화에 균열을 가한다. 문제는 그 균열이 번스타인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근원적 탐구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영화 '마에스트로'는 젠더와 예술 권력, 결혼제도와 성소수자인 LGBT에 관해 그럴싸한 변죽만 울리다 끝내버린다. 브래들리 쿠퍼는 감독으로서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 듣기 좋은 노래와 볼거리만 있는 음악 영화는 한번 보고 잊혀질 뿐이다. 결국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진정성 있는 이야기이다.


*토드 필즈의 영화 '타르(Tár, 2022)'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12/todd-field-tar2022.html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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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용직 노동자 Ray Salyer는 이제 막 Bowery에 도착했다. 뉴욕의 맨해튼 Lower East Side에 자리한 그 거리는 술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이다. 샐리어는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술꾼 Gorman Hendricks와 술집으로 들어선다. 술에 취한 샐리어는 그날 밤에 거리에서 쓰러져 잠든다. 헨드릭스는 샐리어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헌옷이 든 가방을 몰래 훔친다. 돈 한 푼 없는 샐리어, 그는 막노동해서 번 돈을 또다시 술집에서 탕진한다. 그들의 삶은 Bowery라는 거리와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Lionel Rogosin(1924-2000) 감독의 다큐멘터리 'On the Bowery(1956)'는 알콜 중독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술꾼들은 끊임없이 지껄이며, 계속해서 술을 들이킨다. 술집 안에서 그들은 나름대로 즐겁게 지낸다. 때로 술기운에 예기치 못한 주먹다짐이 이어지기도 한다. 술꾼들 가운데에는 여자들도 있다. 잘 곳이 마땅치 않은 많은 술꾼의 숙소는 당연히 길바닥이다. 노숙의 삶. 길에서 자고 일어난 이들은 눈을 뜨자마자 해장술을 들이킨다. 로고신의 카메라는 매우 건조하게 그들의 모습을 담는다. 그가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길거리 술꾼들의 얼굴은 가난과 무기력으로 채워져 있다.

  로고신은 뉴욕의 대표적 빈민가 Bowery에 사는 사람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곳의 삶을 카메라로 담아내기로 결심했다. 사실 'On the Bowery'를 순전한 다큐로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다큐 속에서 나오는 주요 인물인 샐리어와 헨드릭스는 로고신이 다큐 제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진짜 알코올 중독자들이다. 로고신은 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Bowery 거리의 삶을 그려낸다. 돈이 떨어진 샐리어가 끼니와 잠자리를 의탁하게 되는 교회는 실제 Bowery에 자리한 곳이다. 역설적이게도 술집과 알코올 중독자들이 넘쳐나는 Bowery에는 교회와 자선단체도 굳건히 뿌리를 내렸다.
 
  "누군가 커다란 포부를 안고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술꾼들의 무덤인 이곳에서 삶을 마감합니다(...who started out with a life ambition
to end up in a drunkard's grave)."

  목사는 술꾼들을 앞에 두고 그렇게 뼈아픈 일장 연설을 한다. 그 말을 귀에 담는 이들은 거의 없다. 교회에서 나눠주는 따뜻한 수프 한 그릇, 신문지로 깔아놓은 콘크리트 바닥의 잠자리가 간절할 뿐이다. 그곳에서 잠을 청하던 샐리어는 술 생각이 간절해져서 다시 거리로 나선다. 중독된 삶. 그가 아침에 앉아있는 곳도 술집이다. 샐리어는 헨드릭스가 권하는 술을 힘겹게 거절한다. 그러면서 시카고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고 한다. 헨드릭스는 샐리어에게 여비에 보태쓰라며 돈 몇 푼을 건넨다. 과연 샐리어는 그 거리를 떠날 수 있을까?

  "내가 자네에게 한마디 하지. 그는 꼭 다시 돌아올 거야(Let me tell you something... He'll be back)."

  헨드릭스가 동료 술꾼들에게 샐리어의 행운을 바란다고 말하자, 술꾼 하나가 헨드릭스에게 그렇게 말한다. 다큐는 샐리어가 Bowery 거리에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는 모습으로 끝난다. 샐리어는 다큐 개봉 후, 멀끔한 외모의 그를 눈여겨본 할리우드 제작사의 권유도 뿌리쳤다. 그리고 결국 그가 죽게 된 곳은 거리였다. 술꾼의 예언대로 샐리어는 1963년에 알코올 중독으로 삶을 마감했다. 헨드릭스는 그보다 더 빨리, 'On the Bowery'가 개봉하기 직전에 죽었다. 로고신은 그의 장례식을 직접 챙겼다(출처: en.wikipedia.org).

  'On the Bowery'는 로고신이 만든 통렬한 영상사회학적 보고서이다. Bowery는 남북 전쟁 이후, 주점과 매음굴이 자리한 하층민들의 주거지가 되었다. 거리를 좀 더 나은 곳으로 개조하려는 사회적인 압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로고신이 다큐를 찍을 무렵에 그곳은 알코올 중독자들과 노숙자들의 성지였다. 오늘날, Bowery는 고급 화랑과 고급 주거지가 자리한 거리로 탈바꿈했다. 그 거리를 채웠던 술꾼들과 빈민들, 노숙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1950년대 뉴욕의 Bowery는 미국 사회의 수치였다. 한편으로 그곳은 냉혹한 자본주의의 이면이기도 하다. 로고신은 가난한 이들이 왜 빈곤과 중독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그 악순환의 뿌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감독 라이오넬 로고신은 자신의 영화로 당대의 불의에 저항하고자 했다. 로고신은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이었다. 그는 자기 재산을 다큐 제작에 쏟아부었다. 극영화인 'Come Back, Africa(1959)'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촬영했다. 영화는 아파르트헤이트로 고통받는 남아공 흑인들의 삶을 담았다. 'Good Times, Wonderful Times(1965)'에서 로고신은 제국주의와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한다. 로고신은 런던의 칵테일파티에서 노닥거리는 부유층의 행태를 자신이 직접 수집한 전쟁과 학살의 기록과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Black Roots(1970)'는 재즈 음악 속에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녹여냈다. 로고신의 'On the Bowery'는 행동하는 지식인, 영화인으로 살아가고자 한 감독 자신의 출사표인 셈이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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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영화를 공부할 때의 일이다. 강의를 듣고 있는데, 어디선가 신경을 긁는듯한 소음이 계속 들려왔다. 나는 조용히 강의실 뒷문으로 나와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나섰다. 영상원 본관 3층의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마침내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아냈다. 열린 교수 연구실 안쪽에, 희끗희끗한 머리의 한 남자가 이상한 악기를 천천히 두드리고 있었다. 홍상수였다. 그는 매우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악기를 두들기던 그가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약간 당황했는지, 잠시 연주를 멈추었다. 나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동남아시아인지, 아프리카인지 원산지를 알 수 없는 악기 소리는 내가 다시 강의실에 도착할 무렵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해 가을, 홍상수가 영상원 교수직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홍상수의 강의는 영화과 학생들에게 악명이 자자했다. 거의 강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상수가 영상원을 떠날 무렵에는, 자신의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당위성과 교수직 사이에서의 줄타기가 형편없이 어그러졌다. 나는 홍상수의 그 지치고 지루했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결국 떠날만한 때에 떠났다. 그건 학생들에게도, 그에게도 좋은 결정이었다.  

  어제, 홍상수의 2023년 작 영화 '물안에서'를 보았다. 러닝타임 61분의 이 영화는 대부분의 화면이 초점이 나간 상태(ouf of focus)로 흐릿하게 나온다. 처음에는 또렷했던 화면이 인물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로 나오니, 관객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등장인물은 세 명. 배우로 활동하던 승모는 자신의 단편 영화를 찍겠다며 섬에 왔다. 승모와 동행한 사람은 촬영을 맡은 친구 상국, 연기를 할 여배우 남희이다. 승모는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모은 돈 300만 원을 들고 왔다. 그런데 정작 그는 시나리오조차 쓰지 않았다. 상국과 남희는 승모가 찍을 영화가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과연 승모는 자신의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영화 속 승모는 어떤 면에서 홍상수의 영화적 자아이기도 하다. 승모는 자신이 찍고 싶은 영화가 뭔지 모른다. 승모의 모습은 창작자가 늘 맞닥뜨리는 괴로움의 근원과 맞닿아 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하지? 물론 그 누구도 그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한다. 그 답을 찾는 것은 온전히 작가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홍상수에게 있어 영화를 만드는 행위도 그러하다.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서 영화의 소재를 찾아낸다. 영화 속 승모도 그냥 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러다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줍는 젊은 여자를 만난다. 여자와 나눈 짧은 대화를 가지고 승모는 마침내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 낸다.

  더듬더듬, 마치 어둠 속에서 헤매듯 작가는 그렇게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그것은 포커스가 나간 화면의 비가시적인 불투명성과도 일치한다. 그리고 마침내 승모는 배우로서 자신의 영화에서 연기하면서 바다로 걸어 들어간다. 그가 화면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다 깊이 들어갔을 때, 승모가 마주하게 되는 물속의 알지 못하는 세계는 창작자의 내면 그 자체가 된다. 작가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작가 자신도 알지 못한다. 승모는 우연히 쓰레기를 줍는 섬 주민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의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우연(偶然)과 영감(靈感). 그것이야말로 승모에게, 감독 홍상수에게 영화를 만드는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사실 홍상수의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 우연과 영감의 기이한 태피스트리(tapestry)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드는 의문이 있다. 왜 배우로 연기만 하던 승모는 자신의 영화를 찍을 생각을 한 걸까? 상국이 그 이유를 묻자, 승모는 대답한다. 영화를 찍어서 돈을 벌 것도 아니고, 자신이 얻고 싶은 것은 결국 '명예'라고. 그것에 대한 열망이 승모를 미지의 세계로 이끈다. 승모에게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하지만 그저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는 시작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무모한 열정이고 용기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승모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삼백만 원을 섬 주민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영화적 세계로 치환한다.

  승모라는 캐릭터를 통해 홍상수는 자신의 영화적 작업 과정을 반추한다. 그런데 그것은 홍상수 개인만의 특화된 방식이 아니다. 뿌연 물속에 있는듯한 불확실성 속에서 우연과 영감에 기대어 새로운 예술적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일. 창작자, 예술가가 성취해 내는 예술 작업의 본질은 거기에 있다.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걸어가야 한다. 그리고 해야 할 이야기를 발견해 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작가의 숙명이고 명예가 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도 모르게 '아, 홍상수!'하고 탄성이 나왔다. 홍상수는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 그가 작가로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결코 질리지 않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다음에 들려줄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무기력한 표정으로 이국의 악기를 두드리던 중년의 남자는 20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의 영화 속에서 일상성과 영화적 세계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준다. '물안에서'는 홍상수가 사생활 논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가적 명예를 지켜내고 있음을 여실히 입증한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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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시 창작 수업을 들었을 때의 일이다. 권혁웅 시인의 수업이었다. 극작과에서 개설한 수업이었는데, 다른원 학생도 수강 신청이 가능해서 나도 들을 수 있었다. 수강생은 한 열 명 남짓 되었나. 서사창작과와 극작과 학생에다 연극학과 학생도 있었다. 영상원 학생은 나하고 같은 과 동기, 이렇게 2명이었다. 수강생들은 수업시간마다 시를 한 편씩 써내야 했다. 그리고 각자 써온 시를 낭독한 후에, 무지막지한 합평이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 봐도 좀 긴장되고, 기분 잡치고, 그렇지만 재미도 있던 그런 수업이었다.

  나는 남의 시에다 대놓고 싫은 소리를 하지는 못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좀 독특하네요, 그 정도로 말하고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쪽 애들은 달랐다. 내가 생각하기엔 좀 심하다 싶은 비난도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곤 했다. 내 동기는 아마도 시를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그 수업을 들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합평'을 가장한 인신공격(특히 김사과가 그랬다)에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다. 나의 경우는 지나친 서정성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확실히 그건 내가 쓴 시의 약점이기도 했다. 나는 사실 시를 써내는 것 보다, 거기에 있는 수강생들을 관찰하는 일이 나름 재미있었다.

  극작과의 유희경은 자신이 써내는 시에 대한 도저한 자부심을 내보였다. 그 시들은 내가 보기에 별로였지만, 권혁웅 선생의 평가는 달랐다. 선생은 유희경이 1, 2년 이내에 등단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써내라고 당부했다. 유희경에 대한 선생의 호평과는 달리 그 반대 지점에 서 있던 학생은 서사창작과의 김사과였다. 김사과의 경우는 출석부에는 '방실'이라고 쓰여 있어서, 출석을 부를 때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시를 써낼 때의 이름은 김사과였다. 아무튼 김사과가 써내는 시들은 진짜 이해 불가에다 기괴하고 음울하기 짝이 없었다. 주로 죽음의 이미지가 많았다. 권혁웅 선생은 웬만해서는 수강생의 시에 혹평하지는 않았는데, 학기의 중간쯤 가니 김사과의 시에 대한 인내심이 바닥난 모양이었다.

  "이런 시를 뭐라고 하냐면, 요설(妖說)이라고 해. 요설. 별 의미도 없고, 해악이나 끼칠 뿐이지."

나는 선생이 그 말을 할 때의 냉랭한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사과는 자신의 시 창작 스타일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모두들 자신이 써낸 시를 낭독하는데, 극작과 학생 가운데 한 명은 읽을 수 없다고 하고는 한 학기 내내 자신의 시를 읽지 않았다. 목소리가 이상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쉬는 시간에 유희경과 신나게 잡담하는 것을 나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 학생의 시도 참 특이하기는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시어가 있기는 하다. 에콰도르의 초석. 무슨 행성에 대한 시였던 것 같다. 나는 그 시가 참 재미있어서 그날은 좋은 평가를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유희경은 권혁웅 선생의 예언대로 2년 뒤에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김사과의 경우는 좀 의외였다. 나는 김사과가 소설로 등단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요설이라며 내팽개쳐짐을 당하던 그 언어들이 소설 속에서는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 책들은 읽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읽을 일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내가 싫어하는 글이라고 해도, 시대나 사람들의 요구가 있으면 그렇게 작가가 된다.

  올해 들어서 나는 다시 시를 쓰고 있다. 무슨 시를 써서 등단할 것도 아니다. 그냥 다시 시를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를 써내면서, 이게 생각보다 아주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작업이 힘들고 피폐해진 마음을 치유하는 면도 있다. 실제로 심리학의 예술 치료에는 문학 치료도 있다. 이렇게 긴 글로 써내는 것보다, 내면의 심상을 짧게 압축해서 시로 만들어내고 나면 뭔가 마음이 편안해진다. 새삼 그 시 창작 수업을 떠올려 본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지 못해도 상관없다. 시를 즐겁게 써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이미 시인이다. 문학이 가진 치유의 힘을, 나는 이 늦은 나이에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랍고 기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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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참새는 2023년 11월에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박참새의 시집 제목은 '정신머리'이다. 박참새는 욕설과 비어를 쓰는 데에 주저함이 없고, 문자를 이미지로 구현해 내는 기상천외한 발상도 시에 써먹는다. 20대 젊은 여성 시인은 유명 연예인 못지않은 인스타 팔로워가 있다. 평론가들은 박참새의 시에 상찬(賞讚)을 쏟아낸다. 새해 벽두부터 신문의 문화면 기사를 장식한 박참새의 인터뷰는 놀랍다 못해 웃음마저 나온다. 깡패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깡패'의 뜻은 독자마다 해석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무덤에 누워있던 김수영 시인이 놀라서 관짝 뜯고 나오겠네.'

  문학 관련 커뮤니티에 누군가 그런 댓글을 썼다. 박참새를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무슨 저게 시야, 저걸 과연 시라고 할 수 있냐... 박참새의 시를 읽은 이들의 혹평과 한숨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한국의 시문학계는 너무나도 정체된 나머지, 기괴한 변종 창작자를 '혁신'이라는 미명하에 자가수혈 하기에 이른 것이 아닌가하는.

  박참새 말고 요즘 새롭게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시인도 있다. 예능인 '양세형'이다. 양세형이 쓴 시집 '별의 길'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그걸 보고 개탄을 금치 못하는 문학 지망생들도 있다. 누구는 등단하려고 그렇게 애를 쓰며 시를 쓰는데, 연예인은 다 알아서 책 펴내주는 출판사도 있고 참 팔자 좋다고. 나는 양세형의 시집은 읽지 못했으므로 그 시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다.

  결국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일반적으로 시인이 자기 이름을 내건 시집을 내려면 등단해야 하고, 조금씩 청탁을 받아 글을 써서 이름을 알려야 한다. 그런 후에 출판사 편집자의 마음에 들면, 그제야 겨우 어렵게 시집을 펴낼 수 있다. 그런데 양세형에게는 그런 과정이 생략되었다. 이건 불평등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 출판사는 팔릴 가능성이 있는 책을 낸다. 그러므로 '양세형'이라는 브랜드를 내건 시집이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팔릴 수 있는 걸 써내는 것은 시장의 기대에 부응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시장에 내놓으려면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한 포장지를 둘러야 한다. 우리는 그걸 '브랜드'라고 부른다. 어제 EBS의 '위대한 수업 Great Minds'에는 태양의 서커스 CEO 다니엘 라마르가 나왔다. 라마르는 태양의 서커스가 팬데믹 시기에 파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브랜드'가 가진 힘 때문이라고 했다. '태양의 서커스'라는 브랜드를 신뢰한 투자자들이 돈을 댔고, 그 돈으로 태양의 서커스 공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박참새의 그 경박스럽고 너절한 시들에 대한 내 평가는 논외로 하고, 이 시인이 내세운 브랜드는 충분히 시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많이 팔리면 문학도 돈이 되고, 그것이 작가의 브랜드가 된다. 물론 박참새가 그 브랜드의 효용성을 얼마나 유지할지 궁금하기는 하다. 한 3년, 어쩌면 그보다 더 길게 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양세형의 시집도 대중의 관심사에 부합하기 때문에,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그 사실이 시집의 문학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난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데,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참, 세상 불공평하네. 골방에서 죽으라고 글 쓰는 작가 지망생이 백날 이렇게 한탄해 봐야 바뀌는 것은 없다. 원래 세상이, 인생이란 것이 그렇게 더럽게 불공평하다. 냉정하게 말하면, 자신이 내세울 '브랜드'가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든 자신을 뭔가로 두를 포장지,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문학계에서는 등단이고, 유력 문인의 추천이고, 인맥이고, 정치력이다. 그런 브랜드도 없는데 누가 생초짜 신인을 알아주느냔 말이다. 브랜드 없는 사람의 글을 기꺼이 펴내 주는 출판사는 없다. 그런 사람의 유일한 대안이라면 자비(自費) 출판이 있기는 하다.

  당신의 브랜드는 무엇입니까? 누군가 그렇게 나에게 묻는다면 어떨까?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나는 평론가도, 작가도 되지 못했다. 그런 브랜드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구석진 블로그에서 내가 쓰는 글은 그저 끄적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 끄적거림이 그래도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글로 스며들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오늘도 글을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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