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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방송(NATV)에서 방영되는 "세계의 극한직업"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주로 개발도상국의 힘든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극한의 기후와 빈곤, 위험한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고단한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먹고 산다는 것의 무거움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그 가운데에는 볼리비아의 브라질 너트 이야기도 있었다.


  브라질 너트는 최근 몇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견과류의 일종이다. 셀레늄이라는 항산화 물질이 함유되어 있는 이 견과류는 주로 남미 열대 우림의 숲속에서 채취된다. 볼리비아, 페루와 같은 나라가 주요 산지이다. 내가 본 "세계의 극한직업- 남미의 보석"편에서는 20대 초반의 젊은 가장이 나온다.


  일찍 결혼해서 아이들이 있는 그는 부인, 남동생과 함께 집근처 숲속에서 하루종일 브라질 너트를 딴다. 마체테(machete) 한 자루, 등에 짊어진 커다란 바구니가 작업도구의 전부이다. 우기의 숲바닥은 진창으로 제대로 걷기도 힘든데 그가 신은 것은 낡은 슬리퍼다. 마구 자란 나무와 풀들을 잘라내어 길을 만들어 가며, 지천에 열려있는 브라질 너트를 따서 담는다.


  "어렸을 적부터 브라질 너트를 땄어요. 이젠 숲이라면 아주 지긋지긋해요."


  생계를 유지하게 만드는 브라질 너트가 있는 숲속은 그에게 애증의 장소였다. 그렇게 하루종일 죽기살기로 일해서 서너포대의 브라질 너트를 동네 수매상에게 건네고 받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브라질 너트로 버는 돈은 그저 입에 풀칠을 할 정도의 돈이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고등학교는 다니다 말았다. 그럼에도 동생만큼은 대학교육을 받게 하려고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애를 쓴다.


  수매상에게 헐값에 넘어간 브라질 너트는 트럭에 실려 가공공장이 있는 대도시로 향한다. 도로가 제대로 닦이지 않은 곳이 많은 볼리비아에서 우기는 트럭 기사들에게 악몽의 시간들을 선사한다. 진창길에 빠지고 지체하는 사이 브라질 너트는 조금씩 상해간다. 가공공장에 도착해서 그렇게 상한 브라질 너트는 버려진다. 환기나 온도 조절이 안되는 영세한 공장 창고에서 또 한번 상당량의 브라질 너트가 폐기된다.


  두껍고 단단한 껍질에 쌓인 브라질 너트를 꺼내는 탈각기는 각각 주인이 있다. 할머니의 기계로 일을 하고 있다는 여학생은 아침나절에는 할머니가 하던 일을 오후에 학교마치고 이어서 한다. 수백대의 탈각기가 놓인 작업장에서 여학생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브라질 너트를 까고 있다. 그렇게 최종 가공된 브라질 너트는 전세계 상점에서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


  브라질 너트를 한 알씩 먹을 때마다, 숲속이 지겹고 신물난다는 젊은 청년가장과 학교를 계속 다니고 싶다는 여학생을 떠올리게된다. 그것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니, 작은 견과류 한 알도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을 본 후에는 남미의 소중한 자연자원인 브라질 너트가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약속해줄 수 있는 것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된다. "세계의 극한직업"은 토요일 오후 4시에 국회방송에서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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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이맘때쯤으로 기억한다. 뉴스 부고란에서 성우 이완호 씨 별세 소식을 읽었다. 그는 한시대를 풍미한 뛰어난 성우였다. 무엇보다 그는 KBS '동물의 왕국' 성우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나는 오랫동안 '동물의 왕국'의 열렬한 시청자였다. 지금이야 케이블 TV에서 해외의 유명한 동물 다큐 프로그램을 쉽게 볼 수 있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그런 동물 다큐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나에게 오후 5시 30분은 '동물의 왕국'을 보아야하는, 놓칠 수 없는 매일의 일과였다.


  이완호 씨의 내레이션은 명료한 발성과 함께 때론 유머러스하면서도 정감이 있었다. 사실 전달이라는 다큐멘터리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마치 하나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끌어내곤 했다. 그는 외화 더빙에서도 성격파 배우 역할을 많이 맡은 성우이기도 했다. 나에게 가장 기억이 나는 그의 출연작은 재난 영화의 걸작인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였다. 진 해크만이 분한 주인공 목사 역 더빙을 그가 맡았는데, 나중에 자막 버전으로 보고나서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진 해크만이 우리말로 연기했다면 저렇게 했겠구나 싶은 그런 대단한 목소리 연기였다.

    

  어렸을 적에 본 '동물의 왕국'에서 야생동물들이 있는 케냐의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 탄자니아의 세렝게티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곳에 살고 있는 동물들을 언젠가는 진짜로 꼭 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했었다. 그리고 그런 꿈을 꾸게 만든 목소리의 주인공은 성우 이완호 씨였다. 그의 별세 소식을 듣고 나는 '동물의 왕국'과 함께 했던 내 인생의 작은 페이지가 접히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주말에 오랜만에 '동물의 왕국'을 보았다. 이제는 동물 관련 다큐를 보게 되면 신기하고 재밌는 것이 아니라 저 동물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 변화와 무차별적인 개발은 동물들의 서식지 파괴로 이어지고 있고, 이미 많은 생물종들이 멸종했거나 멸종으로 향해 가는 중이다.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은 벌목과 금채취로 인해 매일같이 불타서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고 있다. 오늘날 내가 보고 있는 동물과 자연 다큐멘터리는 언젠가 멸종될 동식물들의 공식적인 기록영화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지구와 멸종해가는 다른 생물종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페트병의 라벨을 잘 뜯어내어 분리수거하고, 1회용품을 가급적 쓰지 않으며,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과 같은 이런 아주 작은 행동들을 꾸준히 하기. 이것이 '동물의 왕국'의 오랜 시청자인 내가 현실에서 찾은 나름의 대안들이다.


  '동물의 왕국'이 앞으로도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의 위대함을 일깨워주는 프로그램으로 우리곁에 함께 해주길 바란다. 오랫동안 그 프로그램과 함께 했던 성우 이완호 씨(1938-2019)를 기억하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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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루존 증후군(Crouzon's disease)이라는 병이 있다. 안면기형을 유발하는 희귀한 유전병이다. 이 병을 가진 아이는 성장과정에서 여러번의 두개골 수술을 받아야 한다. 머리뼈의 성장에 문제가 있어서 얼굴이 커가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부친께서 병환으로 큰 대학병원에 입원하셨을 때였다. 병간호에 지친 어머니를 모시고 늘 가던 곳은 병동의 휴게실이었다. 그곳에서 크루존 증후군을 가진 여자 아이를 처음으로 보았다. 그 아이를 돌보는 부부의 표정은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고,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아픈 아이를 두었으니 참 힘들고 괴로울 때도 많을 텐데, 그런 표정을 항상 지을 수 있다는 것이 남다르게 보이기는 했다. 한편으로는 그 아이를 오래 돌보려면 저렇게라도 마음을 내어서 긍정적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저 여자는 아마도 아이의 엄마가 아닌 것 같구나."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셔서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느냐고 했다.


  "정말로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면,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그렇게 항상 웃는 얼굴로 있기는 어려울 게다."


  나중에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를 돌보는 그 부부는 아이의 임시 보호자인 목사 부부였다. 나는 어머니의 통찰력에 새삼 놀랐다.


  누군가의 고통을 보고 들을 때마다 나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곤 한다. 타인의 고통은 잠시 내 곁에 머물다 지나갈 뿐이다. 마치 물수제비 자국처럼 순식간에 왔다가 사라지는 것 같다. 물론 가까운 이들의 고통은 오래 머물기는 한다. 그래도 한 인간에게 있어 고통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고, 설령 그것이 조금은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스스로 견뎌야할 절대치의 양이 있음을 나이가 들수록 인정하게 된다.


  최근에 EBS 클래스e에서 이집트 학자 곽민수의 강의를 아주 즐겁게 들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고대 이집트의 이모저모를 재미있게 풀어낸 좋은 강의였다. 그는 강의 마지막을 고대 이집트인의 인사로 끝맺었다. "당신을 위해 신께 기도하겠소." 그 말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서로의 안부를 나눌 때 하는 '안녕하세요'에 해당하는 인사라고 했다.


  전염병으로 전례없이 힘든 시절이다. 가족을 포함해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비록 잠시 내 곁에 머물다 지나가는 타인의 고통이지만, 그들을 위해 고대 이집트인들이 주고받았던 그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싶다.


  "당신을 위해 신께 기도하겠습니다."


  혼자 견뎌야하는 고통의 시간이 덜 외롭고, 춥지 않게 느껴지길, 그렇게 이 힘든 시기가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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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느끼게 되니, 옷장의 가을옷들에 생각이 미친다. 그래, 바람막이를 꺼내야지.


  여러벌의 바람막이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옷은 노스페이스의 바람막이인데, 소위 '13바막'이라고 하는 옷이다. 노스페이스의 13번째 바람막이 디자인이라는 말도 있던데,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이 옷이 그렇게 유명해진 것은 2000년대 초중반에 강남 중고등학생의 교복으로 상당한 유행을 탔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는 이런 유형의 옷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나는 왜 애들이 등산복 외투를 저렇게나 입고 다니나 궁금하기는 했었다.


  그러다 몇년 전쯤에 노스페이스의 13바막의 재고정리 행사에서 이 옷을 사게 되었다. 정말로 마지막 판매였던 것 같다. 이 옷은 그 이후로 온/오프 매장에서 사려고 해도 살 수가 없다. 입어보니 정말 편하고 좋았다. 왜 그렇게들 13바막을 찾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순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좋은 원단, 도무지 흠을 찾을 수 없는 옷이었다. 원단은 Supplex라는 나일론 원단에 듀폰사의 Teflon가공이 들어간 것인데, 내구성이 정말 좋고 약간의 발수기능도 있다. 노스페이스는 이제는 이 원단 대신에 Ventrix라고 자체 개발 원단을 쓰는데, 그 원단으로 만든 바람막이가 내게는 13바막에 못미치는 느낌이다.


  이 13바막은 바람막이 수집에 대한 뭔가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바람막이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는데, 대개는 등산용 전문 브랜드의 옷들이었다. 나는 등산은 하지도 않고, 매일 나가는 산책을 운동의 전부로 여기는데도 그랬다. 등산 전문 카페에 가입해서 온갖 등산복 브랜드에 대한 품평이며, 원단에 대한 각종 글들을 읽었다. 나중에는 계절에 따른 등산복 레이어링에 대해 줄줄 말하게 될 정도였다. 


  2000년대는 등산복 브랜드의 전성기였다. 오죽하면 해외여행에서 등산복 입은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러던 것이 여가를 보내는 사람들의 추세가 캠핑이나 다른 분야로 바뀌자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등산복 브랜드들이 하나둘씩 시장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해당 브랜드의 최종적인 재고정리 행사가 시작되면 등산 관련 카페에서는 브랜드 명이 앞에 붙은 '***대란'이 일어나고, 엄청난 할인율에 이끌린 사람들은 등산복들을 꽤 많이 사들였다. 적게는 몇 벌, 많게는 수십 벌을 사들인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대란이 끝나고 나면 중고 장터에는 상표도 떼지 않은 새옷들이 매물로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그쪽 사람들은 우스갯 소리로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누구나 옷장 안에 한번도 안입은 새 등산복 한두벌은 있기 마련이잖아요."


  나는 오로지 바람막이만에만 관심이 있어서 사두었는데, 몇년 동안 그렇게 산 것들이 8벌이나 되었다. 그 가운데에는 우중 산행을 위한 방수 재킷도 4벌이나 있었다. 사실 그 재킷들은 그다지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비 오는 날에는 산책을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들인 바람막이들을 늘어놓고 진지하게 반성을 한 적이 있다. 그 결과, 더이상의 바람막이는 필요하지 않고, 앞으로 그것을 사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을 스쳤던 질문은 그런 것이었다. 왜 나는 바람막이를 그토록 좋아했던 것일까?


  완벽한 방풍, 방수가 가능한 바람막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성능이 좋다하더라도 혹한의 칼바람은 옷안으로 비집고 들어오게 되어있으며, 폭우 속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방수성능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아주 좋은 옷 한벌로 거칠고 예측할 수 없는 자연 앞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적인 바람막이를 찾아 헤매었던 몇년간의 내 여정은 결국 끝이 났다. 어쩌면 나는 '진짜 자연' 속에서 입을 수 있는 바람막이가 아니라, 뜻대로 풀리지 않고 힘들고 괴로웠던 시기를 견딜 수 있는 '인생' 바람막이 같은 그 무언가를 찾아다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옷장에서 바람막이를 찾아 꺼내두었다.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람막이는 노스페이스 13바막이다. 적당히 바람을 막아주고, 가벼운 빗물도 튕겨내는 발수기능이 있는 이 옷으로 족하다. 이제 더이상 바람막이는 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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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이는 글: 노스페이스와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고, 내 돈 주고 내가 사입은 바람막이에 대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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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비가 연이어 내리면 평소에는 실개천이던 집근처의 천변은 삽시간에 불어나곤 했다. 그렇게 비가 많이 온 뒤끝이면 천변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서 물구경을 하는 것을 본다. 심지어는 비가 오는 와중에도 우산을 쓰고 나와서 구경을 하는 것도 보았다. 나도 가끔은 산책나가는 길에 궁금해서 먼발치에서 천변의 물이 얼마나 불었는지 보곤 했다.


  물구경을 하러 나온 사람들은 대개 나이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느해에는 비가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그해에 그 물에 휩쓸린 사람이 몇명이었는지, 자신이 살면서 본 큰 홍수는 어떤것이었는지, 그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읊어대며 흐르는 물을 보고 있었다. 올해처럼 긴 장마가 이어져서 천변이 범람 위기에 갔을 때도 그러했다. 도로 밑까지 천변 물이 불어났는데도, 사람들이 떼를 지어 물구경을 하러 나와 있었다. 아, 대체 물구경이란 것이 무엇이길래 저러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하면 불구경이라는 것도 있다. 어렸을 적 기억이 난다. 지금의 잠실이 재개발되기 이전의 5층짜리 아파트 단지였던 시절, 그곳에서 어느 아파트에서 불이 났다 하면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은 그곳에 몰려가서 불구경을 했었다. 불자동차라고 하는 소방차 구경을 하려고 아이들도 달려갔다. 사람들은 불난 집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별별 이야기를 하면서 화재가 다 진압된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것을 누군가의 불행을 단순히 어떤 즐거운 구경거리로 여긴다고 보기만은 어렵다. 어떤 이들에게 이 도시의 삶은 너무나 무료하고 삭막하기 짝이 없어서, 큰 비가 와서 천변이 불어나는 것이나 주변의 화재 사건은 지루한 일상을 뒤엎는 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구경꾼의 역할을 기꺼이 자청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싸움구경이 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인상적인 일이 있다. 몇년 전의 일로 기억되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늦여름 저녁이었다. 건너편 아파트에서 뭔가 깨부수고 악다구니를 쓰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후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가 나와서 피를 토해내듯 울음을 쏟아내었다. 뭔가를 큰소리로 말했는데, 자세히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자신의 남편과 가족을 향한 원망이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었다.


  거의 난동에 가까운 수준이어서 그 누구도 여자를 말릴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경비조차도 가까이 가질 못하고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었다. 아파트에서 젊은 남자 둘이 나왔다. 처음에는 그 두 사람이 여자의 가족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아주머니 왜 그러세요, 진정하세요,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울면서 악을 썼다. 그러다 나중에는 분을 못이겨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짓찧고 자신의 몸을 마구 때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위험하다 싶었는지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여자를 감싸안았다. 여자의 울음소리는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는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그 모든 소동은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베란다에서 그 모든 것을 보고 있던 나는 뭔가 기이한 감동을 느꼈다. 한 인간이 고통스러워하는 다른 인간에게 건네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따뜻한 위로를 본 느낌이었다. 그것은 분명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와 함께 분별력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성별과 연령을 떠나 그런 순수한 위로를 생판 모르는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일은 무척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다. 섣불리 그런 시도를 하다가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오고 불유쾌한 일을 겪을 수 있다. 오늘날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관심'과 '외면'이라고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물구경, 불구경, 싸움구경, 그리고 도시의 구경꾼들. 나도 그 구경꾼들 가운데 한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삭막하고 거대한 도시의 어떤 사람들은 그 구경꾼의 역할 대신에 사건 속으로 직접 들어간다. 그들의 온기가 있기에 이 세상은 더 차가워지지 않는 것이란 생각이 문득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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