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 카우보이의 시조는 백인이 아니다? 흑인 카우보이에 대한 새로운 가설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america-s-first-cowboys-were-enslaved-africans-ancient-cow-dna-suggests


  미 대륙에서 카우보이가 나타난 시기는 16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자들은 미국 소의 DNA 분석을 통해 미국 소의 조상이 스페인에서 건너온 것임을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아프리카의 노예 무역과 함께 들여온 아프리카 소도 오늘날 미국 소의 유전자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노예 무역 상인들은 소만 들여오지 않았다. 그 소들을 잘 다루고 몰 수 있는 소몰이꾼도 데려왔다. 학자들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 카우보이가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미 대륙에 전파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나의 comment:
  과학은 우리가 흔히 가진 고정 관념과 편견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물론 그 기반은 어디까지나 과학적 사실에 입각한 증거와 연구 결과이다. 미국의 서부 개척사와 함께 시작된 인디언 박해와 버팔로 멸절로 미 평원에는 소떼와 카우보이들이 등장했다. 그 시기에 흑인 카우보이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최근의 연구는 카우보이의 시조로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지목한다. 역사와 과학의 흥미로운 조합을 보게되는 기사.
 

2. 강황(tumeric)과 납중독(lead poisoning)의 미스터리

https://www.vox.com/future-perfect/2023/9/20/23881981/bangladesh-tumeric-lead-poisoning-contamination-public-health

  강황(tumeric)은 카레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잘 알고 있는 향신료이다. 방글라데시는 강황의 주요 산지이며 수출국이다. 그런데 이 강황이 은밀한 납중독의 주범으로 과학 기사에 등장했다. 강황을 밝은 노란색으로 만들기 위해서 가공업자들은 유해한 도구와 첨가물을 사용했다. 미국 정부의 지원과 방글라데시 정부의 과감한 단속으로 강황에서 검출되는 납은 현저히 낮아졌다. 강황이 다양한 식품과 화장품의 원료로 사용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러한 조치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의 comment:
  이 뉴스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미국의 역학자(epidemiologist)들은 방글라데시의 특정 지역에서 관찰되는 여성과 아동의 납중독을 연구하다가 이러한 사실을 발견했다(기사 출처: https://stanmed.stanford.edu/turmeric-lead-risk-detect/). 납중독을 연구하던 과학자는 몇 년에 걸쳐서 강황이 납중독 연결고리의 마지막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열정과 신념을 가진 과학자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기여한다.


*사진 출처: https://stanmed.stanford.edu

Stephen Luby, MD,(left) and Jenna Forsyth, Ph.D



3. Science지 뉴스의 한 꼭지를 차지한 우리나라 소식: 과학 연구 예산의 무자비한 삭감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south-korea-science-spending-champion-proposes-cutbacks

나의 comment: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암울한 뉴스이다. 이 기사에 실린 인터뷰에서 학자들은 기존의 연구들이 위축되고 중단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토로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삭감인가? 이런 뉴스로 한국이 세계 과학계의 이목을 받는 일은 괴롭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4. 우울증 치료의 새로운 지견: 뇌에 DBS를 심는다고?

https://www.sciencenews.org/article/dbs-deep-brain-stimulation-depression


  DBS(deep brain stimulation, 뇌 심부 자극술)는 뇌 기저부에 전극을 삽입하고, 전류를 주어 이상 신경 신호를 바꾸어주는 술식이다. 이것은 만성화된 파킨슨병 환자에게 좋은 효과를 입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DBS가 중증 우울증 환자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존의 약물 요법이 잘 듣지 않는 중증 우울증 환자들은 반복적인 자살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런 환자들 가운데 DBS를 받은 사람이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현재로서는 후속 연구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나의 comment:
  DBS가 우울증 치료의 새로운 game changer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DBS는 뇌에 직접 전극을 삽입하는 침습적 술식으로 나름의 위험이 따른다. 그럼에도 최근의 연구는 기존의 치료 방법으로 차도를 보이지 않는 중증 우울증 환자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준다.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선택 보다는 새로운 의학 기술의 힘으로 삶을 이어가는 것은 누군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일 수 있다.  


5. 미국 영화계가 멈췄다! 피켓 들고 거리로 나선 배우와 영화 산업 노동자들

https://www.vox.com/culture/2023/9/18/23878883/sag-wga-strike-maher-barrymore-amptp

  미국 영화와 방송계에는 양대 노조가 있다. WGA(Writers Guild of America, 미국 작가 조합)와 SAG-AFTRA(Screen Actors Guild and the American Federation of Television and Radio Artists, 미국의 배우 방송인 연합 노조)가 그것이다. WGA는 지난 5월부터, SAG-AFTRA는 7월부터 파업중이다. 그들이 내건 파업 조건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역시 핵심은 '돈'이다.

  거리로 나선 노조원들은 제작사가 막대한 이익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의 고용주인 제작사와 제작자들은 발전하는 영화 기술과 설비를 통해 인력을 감축하고 원가를 절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물론 여기에 AI(인공지능)도 등장한다. 일례로 제작사는 영화의 스토리를 만드는 일에 AI를 내세워 작가들을 보조 인력으로 쓰고 싶어한다. 말 그대로 영화 산업계의 노동자들은 밥그릇이 날아갈 지경에 처했다. 현재 제작사는 노조와 협상을 시작했다. 이 협상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결국 누가 돈을 더 가질 것인가? 지난하고 고통스런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지켜볼 일이다.

나의 comment:
  내가 읽은 이 파업의 다른 기사에서 헐리우드의 유명 제작자는 이 파업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을 퍼붓는다. 말하자면 영화계 노동자들이 시대의 변화인 AI에 적응하지 못하고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헐리우드 제작사의 입장은 매우 분명하고 단호하다. 거리로 나선 노조원들에게 이전보다 높은 임금을 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제작자들에게 AI와 같은 새로운 과학 기술은 적은 자본으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 파업은 영화라는 매체가 직면한 산업 혁명(Industrial Revolution)을 연상케 한다. 이 위기를 창작자들과 영화 산업 종사자들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협상은 어떤 식으로든 타결될 것이다. 영화계 인력들은 지금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생존을 해나갈 수 밖에 없을듯 하다.



**사진 출처: vo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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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다니는 산책길에는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오늘 아침에 거길 지나가면서 보니, 가을 운동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문득 내 어린 시절의 국민학교 운동회가 떠올랐다. 운동이라면 지금도 몹시 싫어하는 나에게 운동회는 지겨운 연례 행사였다. 그럼에도 생각나는 것들이 있기는 하다.

  나는 달리기를 잘하는 애들이 몹시 부러웠었다. 달리기에서 등수에 들면 심판을 보는 선생들은 그 아이들의 팔목에 보라색 스탬프 잉크로 등수를 찍어주었다. 나중에 그 아이들은 본부석에 가서 자신의 팔에 찍힌 도장을 보여주고 이런저런 상품들을 받아갔다. 상품이라고 해봐야 연필과 공책, 필통, 크레파스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단 한 번도 받아볼 수 없었던 그 달리기 상품들이 너무나도 갖고 싶었더랬다. 어린 마음에도 어떤 일에 재능이 없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 괴로움을 얼핏 느꼈다. 이제 이 나이에 생각해 보니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 달리기 경품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간절히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들 말이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천천히 지나고 나면 큰 사거리의 횡단보도가 나온다. 거길 건너면 작은 시민 공원으로 길이 이어진다. 사실 공원이라고 말하기도 무색한 동네 자투리땅에 불과한 곳이기는 하다. 별 거 없는 운동기구와 앉을 만한 벤치가 드문드문 놓여있는 공원. 오전 시간에 이 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가 나이가 있는 중장년층의 사람들, 노인들이다. 그들은 결코 뛰거나 과격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 설렁설렁 걷거나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한번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기는 했다. 족히 60은 넘어보이는 아줌마가 훌라후프를 돌리는데 어찌나 잘하는지,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저 아줌마는 나름대로 운동신경이 있는 사람이구나. 자전거 타기는 물론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저질 운동신경을 가진 나로서는 그런 사람을 보는 것이 신기하다.

  그렇게 손바닥만한 작은 공원을 지나면 인근의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요새 들어서 느끼는 점은 개 짖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는 것이다. 어느 집에서 개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인접한 아파트 이곳저곳에서 그 소리에 응수하듯 개들이 짖어댄다. 컹컹, 왈왈, 으르렁... 마치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여러 마리의 개들이 일시에 짖어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환장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절로 알게 된다. 개들은 볼 수도 없는 저 건너편 아파트의 개들을 물어뜯어버릴 것처럼 짖는다. 그 개들은 주인이 있어도 그 말귀를 들어처먹지 않거나, 아니면 주인이 집에 없으니 더 제멋대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전에는 그렇게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아주 듣기 싫어했다. 그러나 요새는 그 개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된다. 쟤들도 여북하면 저럴까...

  '여북하다'는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상황이 좋지 않음을 뜻하는 형용사이다. 잠깐 산책하는 시간을 빼놓고는 하루종일 집에서 지내는 개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마당이 있는 주택도 아닌 아파트는 개들에게 좋은 환경도 아니다. 가끔 공원에서 대형견들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을 본다. 내가 본 대형견의 견주들은 의외로 매너가 좋았다. 그들은 개에게 목줄은 물론 입마개를 씌우고서 산책을 나왔다. 그리고 그 개들은 꽤나 훈련이 잘 되어있어서 사람을 보고 짖거나 위협한 적도 드물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과는 별개로 과연 그런 큰 개들이 아파트라는 곳에서 잘 지내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탁 트인 들판에서 사냥감을 쫓아가야할 셰퍼드나 하운드, 산에서 양떼 무리를 보살피며 기세등등하게 뛰어다녀야 할 커다란 털복숭이 양치기 개들이 콘크리트 보도 블럭을 천천히 걷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뭔가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이 키우는 개와 보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주인이 없는 시간 동안 개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 개들은 신경이 곤두서서 작은 자극에도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는 것이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으로서 나는 미친듯이 짖는 개들의 마음을 달래 줄 방법이 없다. 아이구, 너희들도 참 안되었다. 참으로 사람들이 못할 짓을 하고 있구나...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할 뿐이다.

  문득, EBS의 클래스e에서 법의학자 유성호의 강의를 들었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는 고독사한 노인들의 시신을 부검할 때 보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시신들 가운데에는 연조직(그는 '얼굴'이라는 단어를 차마 쓸 수 없었던듯 하다)이 사라지거나 심하게 훼손된 경우가 있다고 했다. 나중에 그 원인을 찾아보면 노인들이 키우던 반려 동물에게 있었다. 죽어버린 주인 옆에 남은 동물들이 대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너무 연로하거나 죽음을 앞둔 이들은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일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법의학자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울분에 찬 개들의 아파트 숲을 지나면 소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진 조그만 오솔길이 나온다. 조금 떨어진 내 앞쪽에서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맨발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아줌마 뒤로 보이는 할머니 둘도 맨발이다. 어제 내린 비 때문에 그 오솔길은 꽤나 질척거리는 진창길로 변해 있었다. 당연히 그들의 발은 진흙으로 뒤범벅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맨발로 걷기'로구나... 도대체 맨발로 걷는 열풍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어떤 말기암 환자가 '맨발로 걷기'를 하고나서 몸이 다 나았다는 체험담에서부터인듯 했다.

  내 생각에 저렇게 맨발로 걸으려면 최소한 파상풍 주사는 맞아야 한다. 그리고 당뇨병이 있는 이들은 절대로 저런 걷기를 하면 안된다. 당뇨족을 앓는 이들에게 작은 모래나 이물질은 염증이나 궤양, 최악의 경우 다리 절단에 이르게도 만든다. 산책길에서 진흙발로 걸어나오는 이들을 보면서, 나는 '맨발로 걷기'라는 이 광풍에 누군가 불운하게 다치거나 더 아픈 경우가 없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된다.

  나는 소나무 오솔길을 나와서 다시 아파트 단지로 들어선다. 집을 나올 때 보니 하늘빛이 많이 흐렸다. 후두둑, 흐린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져온 3단 우산을 천천히 폈다. 올해는 늦더위가 유독 질기게도 쉬이 물러가질 않았다. 하지만 이 비가 내리고 나면 그 길었던 여름도 진짜 작별을 고할 것이다. 이제 매미 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아파트 화단에 누군가 심어놓은 분꽃과 사루비아는 거의 다 졌다. 국화는 작은 꽃망울이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어느새 빗줄기가 세어지고 있다. 나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흐린 가을날의 산책은 그렇게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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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청 사람들'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범죄 수사 재연 프로그램이었다. 1993년에 첫 방송을 탄 이 프로그램은 방영 시간이 수요일 저녁 8시였다. 실제 수사 기록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한 경찰들과 보조 출연자들이 극을 재연했다. 뭔가 어설픈 구석이 있었음에도, '경찰청 사람들'이 가진 리얼리티는 독보적이었다. 수요일 저녁이면 나도 모르게 TV 앞에 앉아 있곤 했다. 일반인 경찰들이 하는 연기를 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그저 국어책 따라 읽는 정도의 연기에서부터 전문 조연 배우 뺨치는 연기력을 보여주는 이들도 있었다. 그 형사 반장은 후자에 속하는 이였다.

  한 번은 그가 팀원들과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더랬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불렀는데, 정말이지 조용필도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듣다가 울 것만 같은 감성을 보여주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로 시작되는 독백 부분이 이 노래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형사 반장이 읊조리는 그 가사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아마도 노래가 표현하는 '고독한 사냥꾼'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범죄자를 찾아 헤매는 그 자신의 상황이 감정이입이 되어서 그러했으리라.

  작년인가, 영화 검색을 하다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H의 소식을 아주 철 지난 기사로 읽었다. 같이 수업 듣고 공부했던 이들, 스쳐지나가면서 얼굴을 알았던 이들의 소식을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듣게 되는 때가 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이들도 있고, 정말로 반가운 이들의 소식도 있다. 상업 장편 영화를 찍었다는 H의 소식은 무척 반가웠다. 나에게는 영화 제목도 생소하지만, 그래도 늦은 나이에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찍었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 내가 보았던 H는 인간적으로도 꽤 괜찮은 친구였다. 기사의 사진 속 H의 얼굴이 편안해 보이는 것이 참 좋았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영화를 공부한 건 그것을 하지 않으면 남은 생애 동안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그 후회는 '한(恨)'과는 좀 다른 정서이다. 사실 '한'의 정서는 나의 세대에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정서가 아니다. 좀 더 윗세대의 사람들에게는 그 정서가 익숙할 것이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던가, 시대적 상황 때문에 개인적으로 심한 좌절을 겪었다던가 하는 경우... 정말로 간절히 바라고 원했지만 강력한 외부적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아쉬움은 '한'으로 남는다. 어떤 면에서 '한'의 감정은 한국 사회에서 사회 체제적 압박감이 개인의 삶에 남긴 흔적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내가 영화를 공부하지 않았다고 해도 좀 후회로 남을 수는 있어도, 결코 한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끔씩 영화가 삼켜버린 무수한 이들의 청춘의 시간들과 인생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영화로 행복한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H도 길고 힘든 시간을 견딘 끝에 겨우 자신의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사실 슬프고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아주 이른 나이에 불운하게 세상을 뜬 C가 그러했다. 미국 영화사를 강의했던 평론가 선생은 오랜 병고로 한창때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누구보다도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넘쳤던 이였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중략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그렇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들으면 뭔가 마음 속 밑바닥에서 묵직하게 올라오는 감정들이 있다. 오늘도 '괜찮은 영화'를 찾아나서는 늙은 영화광의 하루가 천천히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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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헤르만 헤세는 '가을날'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는다고. 이 가을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보다는 해왔던 것을 마무리해야한다는 뜻이야. 여러분에게 이 시의 뜻이 잘 새겨지길 바란다."

  스무 살, 내가 재수생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학원의 담임 선생은 9월인지 10월인지 가을의 어느 날, 아침 조례 시간에 시 한 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 그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인데요."

  담임 선생은 나름 무안해하면서도 시인의 이름을 정정해준 나를 칭찬했던 것 같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릴케의 시집은 중학생 때부터인가, 내 책장에 꽂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을날'이라는 시가 릴케의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일 이후로,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을만 되면 릴케의 시를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그 시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싯귀를 꼽으라면 그 부분일 것이다. 집이 없는 사람이라... 청춘의 날들을 지나 이제는 그 시간들로부터 한참이나 멀어진 지금까지 그 싯귀는 내 머릿속에 선문답처럼 남아있다. 집이 없는 사람, 방랑하는 고독한 예술가에 대한 묘사는 어떤 면에서 시인 자신에 대한 고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과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온전한 나만의 것, 안락한 처소, 완벽하게 성취된 꿈이란 것이 존재할까? 그 질문에 그렇다, 라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 몇이나 될까? 아마도 그런 이유로 이 시에서 '집'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안한 울림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휘젓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가지고 있는 릴케의 시집은 혜원 출판사에서 펴낸 '영원한 릴케의 명시'이다. 나는 오랜 세월에 누렇게 갱지처럼 떠버린 책장을 조심스럽게 넘겨본다. 책이 인쇄된 날짜를 보니 1985년 5월 10일이다. 무려 38년이나 된 책, 이 시집의 역자는 송영택(宋永擇)씨이다. 내 나이 세대의 사람들이 헤세의 소설을 읽었다면 대부분 이 분의 번역본으로 읽었을 것이다.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 지와 사랑, 유리알 유희, 싯다르타... 웬만한 헤세의 소설책 표지에서 송영택 씨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릴케의 소설 '말테의 수기'도 송영택 씨의 번역본으로 읽었다. 참으로 오래전의 일이다.

  '나이 50이 되고 보니, 이젠 대충대충 살고 싶어집니다.'

  내가 들르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누군가 그렇게 글을 써놓았다. 나는 무심한듯 써놓은 그 글에서 문득 릴케의 '가을날'을 떠올렸다. 중년의 나이는 한 사람의 삶을 계절로 본다면 가을날에 해당할 것이다. 나는 새삼 글쓴이의 마음이 되어본다. 대충대충 살고 싶어지는 마음은 어쩌면 더이상 그 무언가에 애착을 두고 싶지 않다는 뜻일 수도 있다. 아등바등하며 힘겹게 살아왔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다 별 거 아니었네,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쉰다.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을 꿈꾸고,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아직 겨울은 오지 않았지만, 스산한 바람이 부는 가을날에 중년의 누군가는 릴케의 시에서처럼 이리저리 헤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을날(Herbsttag)

                            번역: 송영택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도 오래 고독하게 살며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길을 헤맬 것입니다.



*사진 출처: 직접 찍은 사진


**번역본의 '-읍니다'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책이 출판된 1985년에는 아직 표준어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이다. 오늘날 '-습니다'로 쓰는 표준어 개정이 이루어진 것은 1988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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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알고 지내는 수녀님이 나를 수녀원의 '성소자(聖召者)의 날' 행사에 초대하셨다. 그 행사는 수녀원의 성소 모임을 위한 후원 바자회였다. 수녀님들은 직접 만든 음식과 물품들을 바자회에 내놓았다. 물론 수도회의 성소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높이기 위한 행사였으므로 특별한 순서도 있었다. 수도회에 입회한 어느 지원자 자매의 아버지가 간증을 하기 위해 연단에 섰다.

  "저의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딸이 수도회에 입회하고 나서, 저는 치유의 은사를 체험했습니다. 오랫동안 앓고 있던 병이 나은 것입니다. 그토록 저를 괴롭히던 안구건조증이 말끔하게 사라졌습니다. 안과의사들은 이 병을 불치병이라고 부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불치병을 치유해주셨습니다."

  청중석의 맨 뒷줄에서 그 간증을 듣고 있던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소리내어 웃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자그맣게 큭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이 '의사'임을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직업 자부심부터 시작해서 지루한 장광설까지 그 사람은 참으로 밉상이었다. 내 옆에 앉아있던 수녀님까지 '아이고, 저분은 좀 너무하시네' 했을 정도였다. 뭐 안구건조증이 나았다고? 그게 불치병이라고?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안구건조증'이란 질병이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눈이 좀 마르는 게 뭐 어떻다는 건가 했었다.

  그랬던 내가 안구건조증을 앓아온지 어느덧 20년이 되어간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눈안에 모래알이 굴러다니는듯한 뻑뻑함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안과에서 처방받은 눈물약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같았다. 그렇게 한 10년 동안 눈물약을 달고 살았다. 나는 눈물약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이 눈물약은 치료약이 아니며, 내가 이 눈물약에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눈물약을 끊어버렸다. 대신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눈 청결제로 눈을 닦는 것이었다. 알레르기성 결막염까지 겹쳐서 내 눈에는 늘 눈곱이 끼고 가려웠다. 눈 청결제로 그걸 닦아내면 뭔가 눈이 시원해지고 맑아졌다. 그런데 이것도 쓰다보니 눈물약처럼 하루에 여러 번 닦아내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눈물약을 안쓴다고요? 이건 아무리 많이 써도 눈에 아무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중독이 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안과의사는 나를 무식한 환자 보듯 바라보며 약간의 조소를 보냈다. 환자에게 말하는 본새하고는... 권위의식과 재수없음이 겹친 의사를 만나는 일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결막낭이 뭔지도 몰라서 대학병원에 가보라며 진료의뢰서를 써준 그 안과의사를 나는 더이상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눈이 붓고 아파서 안과에 갈 일이 생겼다. 염증 때문에 처방받은 안약에는 스테로이드와 항생제가 들어있었다. 안약을 넣으니 염증은 곧 가라앉았다. 신기하게도 안구건조증도 나은 것처럼 느껴졌다. 내 눈은 더이상 뻑뻑하거나 아프지 않았다. 나는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건조증이 심해지면 그 안약을 조금씩 넣었다. 그렇게 해서 항염증 성분의 안약과 눈 청결제, 거기에다 눈에 윤활제 역할을 하는 리포직 점안겔을 함께 쓰게 되었다. 뭔가 그런 조합이 건조증이 악화되는 것을 막아주는듯 했다.

  물론 스테로이드 안약의 장기간 사용이 안압을 높인다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나는 한편으로는 어떻게 스테로이드 성분의 안약이 안구건조증에 작용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거기에는 나름 근거가 있었다. 이제 안과에서 안구건조증은 단순한 눈물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염증성 질환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심한 안구건조증에 쓰이던 기존의 면역억제제 성분의 안약은 효과가 나타나려면 1달에서 2달이 걸린다. 스테로이드 성분의 안약을 단기간 쓰면서 눈의 염증을 완화시키고, 거기에 면역억제제 성분의 안약을 쓰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가천대 길병원 안과 김동현·백혜정 교수팀의 논문, 출처: 의협신문 2022년 4월 http://www.doctorsnews.co.kr).

  그래서 그랬던 것이구나... 뭔가 작은 의문이 풀린 기분이었다. 그래도 스테로이드 성분의 안약을 남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요새는 안구건조증에 IPL을 이용한 레이저 치료도 하고 있다는데, 그 치료의 효과가 사람마다 다 제각각인 모양이다. 나는 눈에다 레이저를 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무서워서 앞으로도 해볼 생각이 전혀 없다.

  가끔 그 지원자 부친의 간증을 떠올려 본다. 그의 안구건조증은 정말로 완전히 나았을까? 나는 그때 비웃었던 나 자신에 대해 살짝 반성하는 마음도 된다. 그렇다. 나는 이제 안구건조증이 '불치병'이라는 것을 잘 안다. 안구건조증에 효과가 있는지 애매한 오메가 3와 루테인을 나는 끊을 수가 없다. 다음번 안과 정기 검진 때에는 새로운 의사 선생님에게 내 오랜 안구건조증이 좀 나아질 수 있는지 물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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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9-08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막염으로...대학병원이라니! 전혀 이 분야 모르는 제가 들었을 때도, 신뢰가 안 가네요. 안구건조증에서 자유로워지시기를...

푸른별 2023-09-08 00:33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 님, 그 의사를 내가 나름 이해해보면 이래요. 그 의사 양반은 망막 전문의거든요. 자신은 외안부인 결막에 생긴 질환은 잘 모른다는 거죠. 그래서 대학병원의 외안부 전문의한테 가보라고 말한 거구요. 환자인 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결막의 그 사소한 질환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싶죠. 망막만 열심히 봐와서 모른다, 그럴 수 있다 쳐요. 내가 화가 치밀었던 건 환자를 대하는 태도였어요. 뒤에 환자 밀려서 더 말할 시간 없다고 말하는데 참... 환자를 존중하지 않는 의사 만나는 일은 참 견디기 힘들죠. 그래도 그 이후에 갔던 안과에서 정말로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래서인지 나는 그 의사 양반이 밉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