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산책을 다녀오고 나서 발바닥에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족저근막염이 도진 것이다. 얼마 전부터 그 병이 도지는 조짐이 있기는 했다. 그럴 땐 좀 쉬어야 하는데, 그걸 그냥 무시하고 산책을 나갔다 왔다. 가을 날씨가 좋았기 때문이다. 산책이라고 해봐야 아파트 근처 공원을 1시간 남짓 걷는 것이 전부이다. 무슨 무리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매일 하루종일 서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족저근막염이 생기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족저근막염의 원인을 살펴보니 익숙한 단어가 눈에 띈다. 노화(老化). 나이가 들면서 몸 이곳저곳이 아픈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단어 하나면 충분하다.

  정형외과 의사의 유튜브를 찾아서 보니, 족저근막염에는 휴식이 답이란다. 의사는 그 병엔 소염진통제도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늘 하던대로 발바닥에 파스를 붙이고, 신발장에서 비치 샌들을 꺼내어 신었다. 이 샌들은 10년 전인가, 인터넷에서 5천원을 주고 산 것이다. 족저근막염이 도졌을 때마다 나는 이 샌들을 꺼내어 집안에서 신고 다녔다. 한 며칠, 그 샌들을 신고 집에서 걷다 보면 통증이 좀 잦아들곤 했다. 내일은 산책을 나가지 말고 쉬어야지. 생각은 그렇게 해도 한편으로는 걸으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또 나가게 된다. 

  올해는 이래저래 몸이 아파서 고생을 하고 있다. 봄에는 오십견이 생겨서 팔을 드는 것이 꽤나 고통스러웠다. 매일 억지로 스트레칭 체조를 해가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가을에 접어드니 이제서야 어깨를 좀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 늙어서 그래. 혼잣말을 하면서 거울을 보니, 앞머리 사이로 뭉텅이진 흰머리가 보인다. 올해 들어서 흰머리가 더 많이 나고 있다. 그동안 염색을 하기 싫어서 안하고 살았다. 귀찮기도 하고, 염색약 알레르기도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염색을 해야한다면 뭘로 해야하나... 알아보니 염색이 되는 샴푸도 있었다. 그 샴푸는 가격도 꽤나 비쌌다. 이걸 써보면 어떨까? 

  '회사의 부장님이 이 샴푸를 쓴다 하더라구요. 염색은 자연스럽게 잘 된대요.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써볼까 싶었죠. 그런데 부장님 손톱이 눈에 띄는 거에요. 손톱 밑이 거무스름하게 물이 들어있어요. 아, 저 샴푸를 쓰면 손톱도 저렇게 색이 변하는구나... 그걸 보니 쓰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던데요.'

  누군가 그런 글을 써놓았다. 그렇구나. 그 샴푸는 염색의 귀찮음을 상쇄하는 대신에 손톱에도 검은 물을 들이는 모양이었다. 문득 오래전, 엄마의 흰머리를 뽑을 때가 생각났다. 내 모친은 일찍부터 머리가 세었다. 엄마에게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때가 30대 후반부터였을 것이다. 그 즈음에 엄마는 나에게 흰머리 하나에 10원을 주겠노라며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하셨다. 나는 흰머리를 뽑다가 더이상 흰머리가 보이지 않으면 검은 머리카락을 뽑고는 엄마를 살짝 속이곤 했다. 엄마는 알면서도 속아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이제 팔순이 가까운 엄마의 휑한 정수리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낀다.

  늙음이 주는 좋은 점이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머릿속에는 떠오르는 게 없다. 나이가 들면 인생의 지혜가 생긴다느니 하는 말은 내게는 그저 개 풀 뜯어먹는 소리처럼 들릴 뿐이다. 체력은 떨어지고, 몸 여기저기가 아프니 병원 갈 일이 자꾸 생긴다. 기억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 읽으니 장년의 나이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 때 배웠던 중국어를 독학으로 다시 시작한 것이 한 2년쯤 되었다. 의외로 뭔가를 새롭게 배운다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이걸 써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중국에는 가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가게 되면 그곳 현지인에게 가벼운 인사말을 건넬 수는 있을 것이다.     

  어제, 매일 확인하는 Merriam-Webster 홈페이지의 'word of the day'는 'foliage'였다. '잎사귀'를 뜻하는 이 단어는 중세 프랑스어의 'foille(잎)'에서 유래했다. 생각해 보니 나무의 생장은 사람의 일생과 비슷한 면이 있다. 봄이 되면 작은 새잎들이 돋고, 여름에는 푸르름이 무성해지며, 가을에는 그 잎들이 모두 떨어진다. Merriam-Webster는 'foliage'의 연관 단어로 'deciduous'를 알려준다. 그 단어는 '잎이 떨어지는'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잎이 떨어져도 봄에 다시 녹색의 잎을 틔우는 나무와는 달리 사람의 인생은 점차적으로 노쇠해질 뿐이다. 늦은 밤, 나는 발바닥에 붙인 파스를 떼어내며 자그맣게 한숨을 내쉰다. 어쩌겠는가, 늙어감을 그저 견디며 살아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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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란타나(학명 Lantana)

  작은 꽃이지만 매우 오밀조밀하면서도 예쁘게 생겼다. 나름대로 색감도 화려하다. 그런데 이 예쁘장한 꽃은 독으로 무장하고 있다. 함부로 만지거나 손대지 않는 것이 나을듯 하다.





2. 일일초(학명 Catharanthus roseus)

  분홍색의 화사한 이 꽃은 '일일초'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꽃이 지더라도 이어서 새 꽃이 피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꽃의 잎사귀는 가늘고 날렵하게 생겼다. 그 모양새를 보고 나는 이 꽃이 협죽도과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맞았다. 협죽도과의 꽃들은 대체로 곱고 아름다운 모양을 지녔다.





3. 천수국(학명 Tagetes erecta)

  'Mexican marigold'라고 불리는 이 꽃은 뾰족뾰족 가시 모양의 잎사귀가 인상적이다. 멕시코에서 자생하는 꽃이라고 하니, 멕시코에 여행갈 일이 있다면 그곳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4. 우단동자(학명 Silene Coronaria)

  이 꽃은 모양새로만 본다면 그렇게 눈길을 끄는 꽃은 아니다. 꽃이름을 찾아보니 '우단동자'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우단(羽緞)'은 우리가 흔히 아는 '벨벳', '비로드'라고 불리는 그 옷감이다. 이 꽃의 줄기와 잎에는 작은 솜털이 나있는데, 그것이 부드러운 우단 옷감을 연상하게 만든다. 꽃 보다도 '우단동자'라는 이름이 인상적인 꽃.





5. 천일홍(학명 Gomphrena globosa)

  천일홍은 흰 토끼풀 꽃에 보라색을 물들인 것 같다. 뭔가 볼품없어 보이는 꽃이지만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만든다. 진보라의 화려한 색감이 눈길을 끈다.





6. 체리 세이지(학명 Salvia Microphylla)

  손톱만한 작은 이 꽃은 꿀풀과에 속하는 세이지 꽃이다. 워낙 아종이 많아서 꽃의 색에 따라 세이지 앞에 다양한 이름이 붙는다. 이 세이지 꽃은 붉은색이라 '체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7. 백일홍(학명 Zinnia elegans)

  나는 이 꽃을 보고 처음에는 과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구글의 '렌즈' 기능을 써서 확인해 보니 과꽃(Callistephus chinensis)이 아니라 백일홍이다. 두 꽃의 차이는 잎사귀에 있다. 백일홍은 가는 타원형의 잎인데, 과꽃은 잎사귀가 갈퀴 모양으로 생겼다. 백일홍은 관상용으로 심기에 정말 좋은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 꽃은 배롱나무(학명 Lagerstroemia indica)의 다른 이름에도 들어있다. '목백일홍(나무 백일홍)'으로 불리는 배롱나무의 분홍색 꽃은 백일홍의 화사함을 떠올리게 만든 데에서 유래했다.  





8. 피튜니아(Petunia)
 
  피튜니아는 길가 화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자주색, 푸른색, 흰색, 붉은색의 피튜니아는 흔하다. 그런데 처음 본 이 분홍색의 피튜니아는 나팔꽃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박함과 청초함이 느껴진다.



 

9. 송엽국(학명 Lampranthus spectabilis)

  이 꽃을 처음 보고서 뭔가 알 것 같은 꽃인데, 하고서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꽃의 잎이 채송화와 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꽃의 또 다른 이름이 '사철 채송화'이다. 사람들은 이 꽃의 잎이 소나무의 잎을 떠올리게 만든다고 해서 '송엽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송엽국은 학명에서 따온 '람프란서스'로도 불린다. 




 
  예전에는 잘 모르는 꽃의 이름을 찾는 일이 꽤 번거롭고 힘들었다. 그런데 구글 포토에서 '렌즈' 기능을 사용하니 꽃 이름 찾는 일이 참으로 수월했다. 아, 구글은 한 3년 동안 아무것도 안해도 망하지는 않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이 회사는 사용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그것을 상품화시키는 데에는 아주 귀신같은 재능을 지녔다.

  문득 2004년에 지메일이 처음 나왔을 때 생각이 난다. 그때는 지메일 계정을 가진 사람이 초청장을 보내야만 지메일에 가입할 수 있었다. 지들이 뭔데, 참 치사하고 더럽다는 생각을 했었던... 그랬던 내가 결국 지메일에 가입하고 이제는 구글 생태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구글 렌즈에 감탄하다가, 이 기업의 편의성에 너무나 손쉽게 중독되어 사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편리함에 익숙해지면 아주 자연스럽게 구글의 충성스런 고객이 되고 거기에 따른 돈을 지불해야겠지. 오늘, 꽃 이름을 찾다가 이상하게도 마음이 씁쓸해짐을 느꼈다.



*본문의 사진들은 모두 내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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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구, 청하가 여기 있네."

  머리가 허연 노인이 아파트 분리수거함에서 능숙하게 술병을 꺼낸다. 나는 산책 나가는 길에 그 할머니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가만 보니 노인은 공병 보증금이 있는 술병이 눈에 띄면 가져가는 모양이었다. 청하 300ml 작은 병의 공병 보증금은 100원. 그 보다 훨씬 큰 700ml 용량의 백화수복은 130원이다. 그 할머니가 작은 청하병을 보고 반가움의 탄성을 질렀을 법도 하다.

  사실 청주는 집안 제사를 지낼 때 빼고는 따로 구매할 일이 없는 물품이기는 하다. 그 청주를 요리에 좀 쓰고 나면 병이 나온다. 술병 한 귀퉁이에 빨간 테두리로 인쇄된 부분에는 공병 보증금이 적혀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마트에 가져가기 귀찮아서 아파트 분리수거함에 내놓는다. 유리병으로 표기된 분리수거함에는 그렇게 공병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술병이 쌓인다. 대개는 그 병들은 경비들의 가외 수입으로 쓰이는 모양이다. 분리수거함에는 경고문까지 붙여져 있다.

  "공병을 함부로 가져가지 마십시오. CC TV 확인 후 도난 행위에 대해 조치할 것입니다."

  그런데 분리수거함에서 공병을 가져가는 것이 과연 절도에 해당하는가? 나는 그 경고문을 볼 때마다 쓴웃음을 짓게 된다. 어쨌든 경비들 입장에서는 입주민이 버린 공병은 자신들의 수입에 해당하는데, 그걸 빼앗기는 형국이라 저런 말도 안되는 글을 써붙였을 것이다. 그런 경비들에게 '청하 할머니' 같은 이들은 공공의 적임이 분명하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나는 산책을 가던 도중에 그 할머니의 공병 수거 현장을 목격했다. 마치 맨손으로 물고기를 날렵하게 잡아내듯, 노인은 순식간에 청하 병을 일별해내어 건졌다. 할머니에게 각 아파트 동마다 놓여있는 분리수거함은 자신만의 사업장과도 같았다. 노인은 불룩해진 비닐 봉투를 손에 들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는 친구 노인과 분리수거함 앞에서 만나서 병을 몇 개 주웠나에 대해 떠들어댔다. 나는 머릿속으로 저 할머니가 하루에 수확(?)하는 공병이 과연 얼마나 될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각 단지의 아파트마다 있는 분리수거함에서 하루에 100원짜리 공병을 10개 주으면 1000원, 한 달이면 3만원이 된다. 노인에게는 나름대로 솔찮은 용돈벌이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경비의 눈을 피해서 조심스럽게 해야겠지만 말이다.

  반드시 공병을 줍고 말겠다는 의지. 나는 그 '청하 할머니'의 말과 행동거지에서 그 결연함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궁상맞음과 맞닿아 있음에도 노인이 청하 병을 발견했을 때 내지르는 감탄사는 행복감 그 자체의 표현이었다. 저렇게 적은 액수라도 공짜로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은 소시민적인 행복에 해당하는가? 나는 비로소 노인이 보여주는 그 억척스러움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사진 출처: 내가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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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목이 붓고 아픈 것이 한 달 정도 되었다. 이비인후과에 가보았더니 별 이상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고 지내는 중이다. 동생은 내 이야기를 듣고는 도라지청을 주문해서 보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걸 바로 다음날에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나는 이 연휴에 무슨 택배 배송이 되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새벽, 문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길래 나가보니 그 택배가 바로 현관문 옆에 놓여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반이었다. 아,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새벽 배송이란 거구나... 나는 이제까지 쿠*을 이용해본 적이 없다. 그런 나에게 주문한지 하루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바로 오는 배송은 참으로 놀라웠다. 하지만 놀라움은 잠시, 마음속에서는 불편한 어떤 무언가가 천천히 올라왔다.

  동생이 보낸 도라지청은 반드시 급하게 받아야만 하는 물품은 아니었다. 나는 그 새벽 시간에 배송을 하는 이들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프로그램이 있기는 했다. KBS의 다큐 인사이트에서 제작한 '별점 인생(2020년 4월 30일 방영)'. 거기에는 다양한 플랫폼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플랫폼 노동(Platform work)은 작업자, 온라인 플랫폼(해외의 Uber는 대표적인 공유 운송 플랫폼이다), 고객으로 구성된다. 작업자는 온라인 플랫폼과 계약하고, 플랫폼은 고객의 서비스 요청을 작업자에게 중개한다. 이제 이러한 플랫폼 노동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공기처럼 스며들었다.

  내가 본 '별점 인생'에는 택배 운송 플랫폼 노동자로 새벽 배송에 나서는 이들의 모습도 나온다. 그들 중에는 그 일을 부업으로 하는 이도 있었지만 전업으로 하는 이도 있었다. 카메라는 그들의 고단한 야간 노동을 묵묵히 기록한다. 남들은 다 자고 있는 한밤중에 작업자들은 택배 상자를 들고 나르며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TV 화면 밖으로 강도 높은 노동의 피곤함이 전해지는듯 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 나서 받는 수당이 꽤 이문이 남으면 좋으련만, 차의 유류비며 이런저런 것들을 빼고 나면 그들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나마 그렇게 벌 수 있는 일거리도 불규칙하게 주어졌다. 너도나도 그 일을 하겠다는 이들이 많아서 운송 플랫폼 회사에서 작업자에게 주는 택배 운송비는 몇 년째 인상이 정체되고 있었다.

  고객은 자기 전에 쇼핑 앱으로 물품을 주문한다. 그 물건이 든 상자는 이른 새벽에 고객의 집 문 앞에 놓인다. 기업은 고객의 필요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상품을 계발하고 판매한다. 그런 면에서 '새벽 배송'은 끊임없는 매출과 이윤을 보장하는 유용한 사업 아이템이다. 이러한 극강의 신속함과 편리함 뒤에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고가 자리하고 있다. 물론 그들에게 그것은 일이며 계약된 보수가 지급된다. 기업은 성장하고, 플랫폼 노동자는 돈을 벌고, 고객은 배송 서비스에 만족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결국 이 일 밖에 남는 게 없더라구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배송 기사는 그런 말을 했다. 그는 언제까지 운송 플랫폼에 자신의 건강과 젊음을 갈아넣어가며 일을 할 수 있을까? 야간 노동이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만약에 그가 몸이 좀 아프거나 그 일을 하기에 어려운 상황이 된다면 빠듯하게 유지되는 생계는 어려워질 것이다. 다큐는 플랫폼 노동자가 '불안정성'이라는 리스크를 껴안고 일하는 이들임을 명확하게 부각시킨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 일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지."

  전화기 너머, 동생은 건조한 말투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새벽 1시 반에 택배 비닐 봉투를 뜯으며, 나는 그 안에 든 도라지청 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걸 먹을 때마다 새벽의 거리를 누비며 생계 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누군가를 생각하게 될 것만 같았다.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법적, 제도적 보호 장치가 마련될 수 있을까?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의 냉혹한 얼굴을 생각해 보니 그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할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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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요새 꽂힌 공부는 바로 '점잇기'이다. 이 교재는 번호 순서대로 점과 점 사이에 선을 그어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도록 되어있다. 흩어져 있던 점들을 다 이으면 다양한 동물, 식물을 비롯해 세계 각지의 흥미로운 풍물이 마침내 나타난다. 원래 내 계획은 엄마가 점잇기 교재를 하루에 2페이지씩만 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잠깐 다른 일을 하는 동안 혼자서 6페이지를 다 해놓는다. 엄마가 재미를 붙이는 것은 좋은데, 얇은 두께의 그 교재를 다 해버리고 나면 다음 교재로 쓸만한 것이 없다. 2세에서 4세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이 점잇기 교재는 의외로 출판된 책이 얼마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전번에 구매했던 책을 다시 사야겠다고 나는 생각해 본다.

  서점에서 치매 환자를 위한 인지 학습 교재를 찾아보면 그것이 얼마나 빈곤한 출판 콘텐츠인가를 금새 알아차리게 된다. 환자마다 가진 교육적 배경과 인지 수준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학습을 위해 그걸 표준화 시키는 것도 어려울듯 하다. 그러다 보니 그 교재의 내용과 질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것은 일반인들이 심심풀이로 하는 퍼즐 책 같고, 또 어떤 책은 초등 저학년 수준의 매우 기초적인 학습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내가 엄마의 인지 학습을 도우면서 본 책들만 해도 꽤나 많다. 나는 엄마에게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하곤 한다.

  "엄마, 그동안 엄마가 책 보고 공부한 시간만큼 고시 공부를 했으면 진작에 고시 패스했어야 해."

  이런 저런 노인용 인지 학습 교재에 실망한 나는 의외의 황금광맥을 발견했다. 그것은 아동용 서적이었다. 유아와 초등생을 위한 숨은 그림 찾기 책, 그리기와 오리기, 산수책과 십자말풀이, 고사성어와 속담 책... 점잇기 교재는 거기에서 어쩌다 얻은 행운의 아이템과도 같았다. 엄마는 점잇기가 너무나도 재미있다고 했다.

  그 점잇기와 함께 엄마가 좋아하는 건 '오리기'이다. 인지 학습에 손가락을 많이 쓰는 것이 좋다고 해서 나는 종이접기 교재도 몇 권 샀었다. 그런데 이 종이접기라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안하다 보니 나중에는 매번 하던 쉬운 접기만 하게 된다. 그래서 대안으로 찾은 교재가 오리기 교재였다. 음식과 생활용품이 인쇄된 것을 오리는 것부터 종이의 절반을 접어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오려내는 것까지, 오리기는 의외로 유용한 인지 학습 아이템이었다.

  나는 색종이에다 나름의 도안을 그려서 엄마가 오리도록 했다. 그런데 그림 솜씨가 별로 없는 내가 그리는 도안은 원래 그리려는 그림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곤 했다. 예를 들면 나비를 그리려는데 나중에 보면 나방이 되어버린다. 코끼리 도안은 코와 다리 각 부분의 비율이 영 맞지 않아서 어색하다. 그래도 엄마는 나의 오리기 도안을 즐겁게 오렸다.

  "엄마, 나방이한테 눈이라도 좀 그려줘봐. 여기 양쪽에 하나씩."

  엄마는 싸인펜으로 노란색 나방에 눈과 입을 그렸다. 아, 결국 뭔가 이상한 나방이 되고야 말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 나방이 꽤나 귀엽다. 엄마는 나방이 웃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코끼리 도안에도 눈과 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가 오린 회색 코끼리에도 눈과 입이 생겼다. 이 코끼리도 어째 웃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엄마가 그렇게 오리고 그린 나방과 코끼리를 다 끝내버린 교재에다 풀로 붙여놓는다. 엄마는 매일 하는 공부가 재미있다고 일기에 써놓았다. 이렇게 나는 내 시간과 노력을 갈아넣어가면서 엄마의 달아나는 기억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다.

  엄마는 이제 자식들의 생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전에는 아무 문제없이 해내던 단순한 숫자 계산도 틀리는 때가 있다. 엄마는 당신의 뇌에 저장해놓은 많은 기억과 지식을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아웃소싱해버리고 있다. 그렇게 엄마의 머리는 고요하고 가벼워지는 중이다. 언젠가 엄마가 나를 알아볼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엄마와 함께 했던 지금의 이 시간들을, 그리고 엄마의 작은 코끼리와 나방을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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