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별이 보이는 창가 (푸른별 서재) &gt; Essay</title><link>http://blog.aladin.co.kr/sirius7/category/7428938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영화글은 구글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블로그 주소:https://sirius1001.blogspot.com/</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un, 06 Sep 2026 03:11:04 +0900</lastBuildDate><image><title>푸른별</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41289193329790.jpg</url><link>http://blog.aladin.co.kr/sirius7/category/7428938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푸른별</description></image><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흐르는 시간 속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481241</link><pubDate>Sun, 30 Aug 2026 20: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481241</guid><description><![CDATA[<br>흐르는 시간 속에서<br><br><br>1.<br><br>&nbsp; "오늘 이를 다섯 개나 뺐어. 지금 얼굴 모양새가 말이 아냐. 내가 밖에 다닐 수가 없다고."<br><br>&nbsp; 전화기 너머, 할머니의 목소리는 슬프고 기운이 없게 들렸다. 이제 구십이 다 된 친척 할머니의 치아는 수명이 다한 모양이다. 늙음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틀니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나이에도, 할머니는 자신의 치아를 보내버린 것이 서러울 따름이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그 나이가 된다면 남아 있을 치아는 몇 개가 될까를 가만히 가늠해 본다.<br><br>&nbsp; "어머니는 암 투병을 열심히 하시다가, 지난달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br><br>&nbsp; 그렇게 세상을 뜬 이는 솜씨가 좋은 요리 블로거였다. 나는 가끔 들러서 그의 레시피를 메모하곤 했다. 블로그의 주인이 암이 발병한 것을 알아챈 것은 작년 여름, 병기(病期)가 말기에 가까워서 항암 치료가 힘들 거라고 생각은 했다. 그랬는데 결국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궂긴 소식을 듣고 말았다. 내 나이와 비슷한 또래라서 뭔가 더 마음이 쓰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요절(夭折)이라는 말을 쓸 수 없는 나이. 이르게 가긴 했지만, 절절히 안타깝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나이. 뭔가 어정쩡한 나이. 나는 다른 이의 죽음에서 내가 서있는 삶의 자리를 바라본다.<br><br><br>2. <br><br>&nbsp; 작년 이맘때에 무얼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니, 김수영 문학상에 응모할 시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공모전이라는 게, 한 명만 뽑히고 나머지는 버려지는 것이니까 어떤 면에서 내가 쓴 시들은 실패한 것일지도 모른다. 시를 쓴다고 매달린 시간이 2년이었다. 김수영 문학상의 작년 응모자 수는 역대 최대인 359명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나라에서 시집으로 시를 묶어 응모한 그 359명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게 하나의 시집을 완결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제 시는 그만 써야지.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br><br>&nbsp; 그러던 것이 요즘은 동시를 쓰고 있다. 올해 단편 소설을 낼 수 있는 공모전은 끝났고, 어떻게 찾다 보니 남은 것이 아동문학 공모전이었다. 아이들은 미래에 내 글의 독자가 될 수도 있다. 뭔가를 쓰지 않고, 손을 놓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 그래서 조금씩 써 내려가는 작업이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써내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다시 아이였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동시를 쓰는 건,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에게 말을 건다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동시든 동화든, 아동문학을 하는 이들은 그런 느낌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작업 자체가 일종의 해방감, 치유의 느낌을 주었다.<br><br>&nbsp; 결국 문학 치료라는 심리학적 치료 방법도 문학의 그런 기능에 기대어 나온 것이다. 문맹인 할머니들이 글을 배워서 자기 삶을 시나 산문으로 풀어서 써내는 것. 트라우마를 가진 개인이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다 그러한 범주에 속해 있다.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새삼 생각을 해보니, 마음이 고요해지기 위해서 쓴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머릿속이 이런저런 생각으로 헝클어져 있을 때, 일기를 쓰다 보면 정리가 되곤 했다. 시를 쓰는 것, 소설을 쓰는 것도 다 그 고요해지는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br><br>&nbsp; 그러니 작년에 뽑히지 못한 50편의 내 시들이 실패한 시들이라고만 할 수 없다. 2년 동안 그 시들을 써내는 과정 자체가 내게는 충분히 의미 있었다. 언어와 감정을 응축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소설로 서사를 확장할 필요성도 절실히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일을 실패한 작업, 쓸모없는 일로 단정하는 건 매우 쉽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러한 일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건 나름의 통찰력이 필요하다. <br><br>&nbsp; "우리 인생에 있었던 과거의 일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늘 움직이는 것이죠."<br><br>&nbsp; 주역을 연구하는 역학자 강기진의 유튜브 강의를 보다가 그런 말을 들었다. 그는 우리가 과거의 자신을 늘 새롭게 바라보는 역동성을 지녀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면, 현재가 지닌 의미도 바뀔 수 있다. <br><br><br>3. <br><br>&nbsp; 어린 시절의 책장에는 계몽사의 10권짜리 백과사전이 있었다. 붉은색의 두꺼운 장정(裝幀)으로 된 그 백과사전은 꽤 비싼 물건이었다. 그 시절의 아이에게 백과사전이란 첨단의 지식과 만나는 어찌 보면 유일한 통로였다. '브리태니커'라는 이름의 백과사전을 들었던 것은 아주 한참 뒤, 나의 유년 시절이 이미 오래전에 끝났을 때였다. 나는 부들부들한 고급 종이로 된 백과사전을 심심하면 들춰보곤 했다. 거기에는 '지구의 최후'였나, 우주와 관련된 항목도 있었다. <br><br>&nbsp; '수명이 다해서 백색왜성으로 변한 태양은 지구를 삼켜버릴 것입니다.'<br><br>&nbsp; 아직도 그 부분의 삽화가 기억이 난다. 허여멀겋게 변한 태양이 흰색의 팔과 같은 띠로 지구를 휘감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나는 지구의 운명이 참으로 가엾다고 생각했다. 뭔가 비감한 느낌에 약간의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정말로 지구가 사라질까? 정말로? 아이는 스스로에게 혼자 그렇게 물었다.<br><br>&nbsp; 언젠가 소멸하게 될 지구처럼,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사라질 운명이다. 언젠가 나도 수명이 다한 치아를 생각하며 서글퍼할 것이고, 그러다가 눈이 떠지지 않는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어쨌든 오늘도 마음에 떠도는 시를 붙잡는다. 흐르는 시간 속, 스러지는 모든 것들이 내쉬는 숨을 그렇게 글 속에 담는다.&nbsp;&nbsp;&nbsp;&nbsp;&nbsp;&nbsp; <br><br><br>&nbsp;<br><br><br><br><br><br><br>&nbsp;&nbsp; <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무엇을 쓸 것인가 - 어떤 독서의 시대와 글쓰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464291</link><pubDate>Fri, 21 Aug 2026 20: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464291</guid><description><![CDATA[ &nbsp;무엇을 쓸 것인가 - 어떤 독서의 시대와 글쓰기<br><br><br>1.<br><br>&nbsp; 올해 초, 중앙일간지의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들을 읽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대화가 분명한 문장에 그 어디에서도 큰따옴표(" ")를 볼 수가 없었다. 그냥 나열된 문장 속에서 이것이 대화이겠거니 하면서 소설들을 읽어 내려갔다. 도무지 읽히지 않는 소설들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다. 요새는 이렇게 소설을 쓰나 보군. 인물들의 말과 생각은 문장들 속에서 정처 없이 떠내려가며 유랑하고 있었다. 그걸 제대로 정렬해 내는 것은 오직 독자의 몫이었다. <br><br>&nbsp; 불친절하군, 참으로 불친절해.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말을 자꾸만 되뇌었다. 도대체 이딴 유행은 누가 만든 것이며, 왜 그런 소설들을 써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을까? 나는 그것이 독자에 대한 철저한 기만과 무시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따옴표의 사용은 독자의 이해와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걸 없애고 그냥 평서문으로 기술된 문장들 속에서 독자에게 인물들의 대화와 생각, 묘사를 온전히 구분해 내라고? 왜 독자가 그래야만 하는가? 우린 이렇게 쓸 거야. 그러니까 당신들은 어떻게든 읽으라고. 나에게 따옴표 없는 그 소설들은 거만한 선언처럼 들렸다.<br><br>&nbsp; 불친절한 것은 삭제된 따옴표뿐만이 아니었다. 서사가 실종된 소설에는 미문과 분위기만이 남아 있었다. 주인공인 젊은 여성은 원룸에서 고양이를 키우고, 이웃집 할머니와 소통하며 코코아나 마시는 소설들. 이제까지 내가 아는 소설이란 인물과 사건, 주제가 있는 명확한 세계였다. 그런데 이제 그 세계는 흐릿해져서 알아볼 수 없는 이상한 물체로 변해있었다. 아마도 작금의 소설에서 내가 느끼는 그러한 혼란스러움은 내가 살아온 시대와 문학적 경험과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br><br><br>2. <br><br>&nbsp; 1980년대의 문학이란 사회변혁과 함께 굴러가는 수레바퀴와도 같았다. 강석경의 '숲속의 방(1985)'은 그 당시의 나에게 약간은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독서 체험으로 남아 있다. 그만큼 그 시대의 분위기가 무거웠다는 뜻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는 운동권의 후일담 문학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시기의 소설들이 보여주는 개인성에 대한 자각은 분명 이전 시대의 거대 담론에 포획된 개인과는 달랐다. 정치적 민주화는 사회와 대결했던 개인이 비로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br><br>&nbsp; 개인의 부상(浮上). 내가 생각하기에 그 결정적인 계기는 1997년의 IMF 외환위기였다. 외세에 떠밀려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구조조정과 경기침체의 후폭풍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신경숙의 '외딴방(1995)'을 흔들리는 좌석버스 맨 뒷좌석에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일이 기억난다. 그 소설에는 상처받은 개인이 과거를 반추하며 만들어내는 나름의 울림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 신경숙은 그 시대를 통과하는 문학적 티켓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 티켓은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고 버려졌다. 신경숙이 다시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표절'이라는 치명적 오점보다도, 지금의 독자들이 더는 그의 소설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br><br>&nbsp; 그 독자들이란 다름 아닌 20대와 30대의 여성 독자들이다. 쪼그라든 순문학 시장에서 여성 독자들은 쓰러진 집의 유일한 버팀목처럼 남아 있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소설을 써내는 것은 잘 알려진 생존의 비결이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2016)'이 보여준 성공은 얄팍한 문학적 성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 면에서 나의 눈길을 끄는 소설이 있는데, 양귀자의 '모순(1998)'이다. 양귀자는 대표작인 '원미동 사람들(1987)'을 통해 자신이 그려낸 주변부 세계에서 탈출했다. 작가는 이제 부촌인 평창동의 주민이 되었다. 그런 양귀자의 소설 '모순'이 보여주는 저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그리고 그 책은 2000년대의 여성 독자들을 지나, 지금은 책이 출간된 시기에 태어난 여성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모순'은 젊은 여성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사랑과 연애, 결혼을 이야기한다. <br><br>&nbsp; 양귀자에게는 먼 훗날 자신의 독자를 예견하는 선구안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모순'을 읽는 젊은 여성의 책상 위에는 요새 잘 나간다는 시인 고선경의 '샤워젤과 소다수(2023)'도 있을 것이다. 2026년에도 1955년생 작가의 책은 1997년생 시인의 시집에 밀리지 않는다. 내게는 이 기묘한 조화가 꽤나 경박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읽은 한국 문학은 이제 우리 사회의 부조리, 계층적 불평등을 말하는 대신에 페미니즘과 젠더 갈등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앞세우고 그것에 함입(陷入)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빠져나올 출구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nbsp;&nbsp;&nbsp; <br><br>&nbsp; 물론 그러한 흐름에서 비켜선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편혜영의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2007)'가 보여준 중산층의 서늘하고도 허무한 초상을 기억한다. 편혜영은 매우 영리하게 계층적 서사와 여성의 이야기를 직조해 나갔다. 편혜영이라고 그늘이 없지는 않다.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몬순(2014)'의 표절 의혹은 아직도 해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편혜영은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공모전의 심사 위원으로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내게는 그것이 고갈된 창작력의 대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br><br>&nbsp; 김애란을 빼놓는 것은 매우 서운한 일이 될 것이다. 김애란은 소설집 '비행운(2012)'을 통해 동시대를 통과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채롭고 폭넓은 서사로 풀어낸다. 그 이야기들은 유쾌하지만 부박(浮薄)하지 않고, 때론 서글프게 떠돈다. 어떤 면에서 김애란은 한국의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1938-1988, 미국의 단편 소설 작가)로 불리어도 손색이 없다. 나에게 김애란은 단편에 최적화된 작가이다. 이 작가에게 장편은 어쩐지 잘 맞지 않는 어색한 옷 같다.<br><br>&nbsp;&nbsp;&nbsp;&nbsp; <br>3. <br><br>&nbsp; 결국 내게 남는 의문은 이런 것이다. 이 시대에 한국에서 소설을 쓴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주류 서사는 여성 서사, 주변부의 서사는 성 소수자와 외국인 이야기가 자리 잡았다. 최근에 내가 흥미 있게 들은 단편 소설의 아이디어는 이주 여성(移住女性)의 서사였다. 글을 쓴 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에서 그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소재를 그러모았다. 그저 그런 일상적 이야기, 주제와는 확연히 다른 결의 이야기였다. <br><br>&nbsp; 내가 아는 그들의 이야기는 기껏해야 EBS의 프로그램 '다문화 고부 열전'에서 본 것이 전부이다. 그런 나와는 달리, 글을 쓴 이는 진짜 현실에서 이주 여성의 이야기를 보고 들었다. 그러한 현실성은 그저 이야기로 들었을 뿐인 관찰자의 시점에서는 결코 획득할 수 없는 것이다. 작가가 자신이 쓰는 이야기의 핍진성(逼眞性)을 획득하려면, 기자 출신의 작가 장강명처럼 취재를 열심히 하든가 아니면 자료 조사를 치밀하게 해야 한다. 이야기는 단순히 방구석의 모니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하고 나서도 남는 문제는 있다. 나는 어떤 관점으로 쓸 것인가. 바로 그것이다. <br><br>&nbsp; 그 관점이란 어떤 면에서 글을 쓰는 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인생관, 살아온 인생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시대를 견디었고, 살아내었다. 그리고 지금도 통과하고 있다. 나만이 들려줄 수 있는 그 관점, 가치관, 인생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써내려고 하고, 써내는 중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단편 소설을, 지난 한 달 동안에는 SF 단편과 동시, 동화를 써서 공모전에 냈다. 그 이야기가 언젠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꼭 보고 싶다.<br><br><br><br><br><br><br><br> <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까다로운 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451078</link><pubDate>Fri, 14 Aug 2026 20: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451078</guid><description><![CDATA[<br>까다로운 일<br><br>&nbsp; 1. <br><br>&nbsp; "정말로 종양을 이해하려면, 나 자신이 종양이 되어야 해요."<br><br>&nbsp; 바바라 매클린톡(Barbara McClintock, 1902-1992): 미국의 유전학자로 1983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br><br><br>2. <br><br>&nbsp; 8살 아이는 5살 때 엄마를 암으로 잃었다. 3년 동안, 기억 도서관에서 대출한 엄마의 기억 칩이 아이의 로봇에 장착된다. 마침내 기억 칩의 대출 기간이 끝난다. 기억 칩은 반드시 반납해야만 한다. 아이는 엄마의 기억 칩을 반납하러 기억 도서관으로 떠난다. 아빠와 함께 떠난 짧은 하루의 여행. 아이는 엄마와 두 번째 이별을 하고 돌아온다.<br><br>&nbsp; 어제, 동화 공모전에 내기로 한 동화를 온라인으로 접수했다. SF로 써내느라 좀 골머리를 앓았다. 일반 단편 소설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에 어떻게든 세계관을 욱여넣으려니, 퇴고하는 내내 삐걱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동화를 쓰는 것이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주인공인 8살 어린아이의 심정을 이해해 보는 것은 여느 단편 소설의 주인공을 만들어 내는 것과는 또 달랐다.<br><br>&nbsp; "그게 쉽지가 않아. 까다롭다고. 아주 까다로워."<br><br>&nbsp; 오래전, 다큐멘터리 감독님을 인터뷰할 일이 있었다. 나는 다큐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물었다. 감독님은 촬영 대상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일, 그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었다고 답했다. 영화는 시나리오에 적합한 배우를 캐스팅하면 되지만, 다큐는 다르다. 찍으려는 대상, 그것이 사람이든 자연 다큐멘터리의 동물이든 그 대상과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 시간이 걸린다. 언젠가 북극곰에 대한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촬영 감독은 곰들을 찍기 위해 3개월이었나, 아무튼 몇 개월 동안 카메라를 세워두고 바라보기만 했다고 메이킹 필름에서 말했다.&nbsp;&nbsp;&nbsp; <br><br>&nbsp; 나는 8살 아이가 주인공인 동화를 쓰기 위해 8살 아이가 되어야만 했다. 그 아이는 이렇게 말하고 행동할 것이다, 라는 정도로는 글을 써낼 수가 없었다. 바바라 매클린톡의 말처럼, 종양을 이해하려면 종양이 되어야 하듯 나도 8살 아이가 되고자 했다. 그게 쉬웠을 리가 없다. 나는 내가 8살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떠올려 보았다.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날, 엄마는 다홍색의 재킷 윗주머니에 콧물을 닦으라고 손수건을 달아주었다. 입학 첫날의 수업도 생각이 난다. 흰색의 도화지 연습장에다 색연필로 구불구불한 곡선과 뾰족뾰족한 직선을 그렸었다. 참으로 8살 아이에게는 빡센 입학식 날이었다.<br><br>&nbsp; 그런데 그것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것이 없다. 심지어 담임 선생이 여자였는지 남자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성인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매우 파편적으로 남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장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뇌의 가용 능력을 높이기 위해, 뇌는 아주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별로 필요하지 않은 유년의 기억을 과감히 삭제한다. 그러니 어른이 되어서 어린아이의 생각과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린다.<br><br>&nbsp; 아마도 많은 동화들이 실패하는 지점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른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라는 존재. 몸만 아이인 주인공이 어른의 말과 생각을 구태의연하게 늘어놓는 그런 동화들. 내가 쓴 동화도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무당은 동자신(童子神)이 실리면 철부지 아이 목소리를 낸다. 어떤 면에서 작가는 세상 속 다양한 인물들의 목소리를 그런 식으로 변환해서 글로 구현하는 구술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작업이 쉽지 않으니까, 무척 까다로우니까 어설픈 자기 서사의 반복 내지는 확장이 되어버리고 만다.&nbsp;&nbsp; <br><br>&nbsp; <br>3.<br><br>&nbsp; 이블린 폭스 켈러는 자신의 안식년에 바바라 매클린톡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매클린톡을 직접 인터뷰하고, 자료를 모아서 매클린톡의 전기를 썼다. 그 책이 '생명의 느낌(1996, 도서 출판 양문)'이다. 이 책에는 유전학자 매클린톡의 일생이 담겨있다. 학자의 일대기이니만큼 뭐 그리 신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지지는 않는다. 연구, 세미나, 동료 연구자들과의 교류, 이런 이야기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계속 이어진다. 오래전에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은 이러하다. 매클린톡은 그렇게 길고 지난한 학문적 여정을 도대체 어떻게 이어갈 수 있었을까...<br><br>&nbsp; 매클린톡은 옥수수에 매혹되어서 자신의 유전학 연구 대상으로 옥수수를 택했다. 한마디로 매클린톡은 옥수수에 미쳐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 열정이란 한순간에 타오르고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매클린톡을 추동(推動)하게 만드는 근원으로서 인내심과 기다림을 내포하고 있었다. 열정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한다는 건, 그저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고 매일 일어나는 일상의 어려움을 견디는 것이기도 하다.<br><br>&nbsp; 나는 글쓰기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 8살 아이가 주인공인 동화를 쓰기 위해 그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여전히 까다롭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 까다롭고 어려운 작업을 그래도 계속 해보고 싶다.<br><br><br><br>***바바라 매클린톡의 전기 '생명의 느낌'은 현재 절판되어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다. 관심 있는 이라면 도서관에서 그 책을 찾아 읽어보길 바란다.&nbsp; <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물속의 소설</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438887</link><pubDate>Sat, 08 Aug 2026 11: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438887</guid><description><![CDATA[&nbsp; 물속의 소설<br><br><br>1. <br><br>&nbsp; 툭, 툭, 툭.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해진 하늘에는 마치 가느다란 붉은 실을 토해내듯 노을이 걸려있었다. 저건 노을이란다. 루미는 자신에게 노을을 알려준 이강에 대해 생각했다. 노, 을. 루미는 이강의 약간 느리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를 다시금 떠올렸다. 이강의 목소리는 어떠했지? 루미는 기억저장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이강의 목소리를 꺼내 왔다. <br><br>&nbsp; "루미야, 이건 노을이야. 노, 을. 하늘이 흘리는 눈물 같은 것이지. 난 그렇게 생각하거든."<br><br>&nbsp; 눈물. 루미는 눈물이라는 단어를 알고는 있지만, 자신은 그것을 흘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K-Centennial No.1657. 구산 센테니얼 공장에서 찍어낸 1657 모델의 안구(眼球). 그것이 루미였다. 이강은 공장에서 직배송된 인공 안구에 기꺼이 이름을 붙여주었다. <br><br><br>2. <br><br>&nbsp; 새벽에 꿈을 꾸었다.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잃어버린 꿈. 열쇠는 팔찌 모양의 것이었는데, 칩이 들어있어서 그걸 현관문에다 대면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런데 그 팔찌를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건물 안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가 문이 열려진 어떤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에서 열쇠를 찾아볼 셈이었다. 왜 알지도 못하는 남의 집에서 열쇠를 찾으려고 했는지는 모른다. 꿈이란 원래 말이 되지 않는 그런 것이니까. 그렇게 남의 집에 들어간 지 5분이나 되었나, 현관문이 열리고 그 집의 식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놀라서 얼어버린 나는 집주인에게 내가 도둑이 아니며, 단지 열쇠를 찾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주인이 나를 신고했는지는 모른다. 그때쯤 꿈에서 깼다.&nbsp; <br><br>&nbsp; 기분 나쁜 꿈이다. 열쇠를 잃어버린 데다가, 도둑으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하루 종일 그 꿈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가 문득 언젠가 들은 신화학자의 꿈 강의가 생각났다. 그는 자신이 들었던 어떤 꿈 이야기를 했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아주 늙은 할머니가 그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신발을 잃고 맨발로 거리를 떠돈다는 꿈이었다. <br><br>&nbsp; "그 꿈 이야기를 듣고, 나는 너무나 슬펐어요. 정말 슬픈 꿈이기 때문이죠. 신발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신발을 잃어버리고 헤맨다는 건, 자신이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모른 채 그 나이까지 살아왔다는 것이니까요."<br><br>&nbsp; 노인의 꿈속 신발이 나에게는 열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열쇠를 잃어버리고 어떻게든 찾으려는 그 꿈의 의미는 너무나도 명백해서 오히려 시시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그대로 그 꿈에 들어있었다. 어떤 면에서 이제 글쓰기는 미로이며, 혼란과 괴로움의 여정 같기도 하다. 이미 머릿속에서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SF 단편은 놀랍게도 한 단락만 써진 채로, 한 달째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에서 잠들어 있다. 인공 안구(眼球) 루미의 여행은 시작도 전에 멈춰버렸다. <br><br><br>3. <br><br>&nbsp; 홍상수의 영화 '물안에서(In Water, 2023)'의 주인공은 배우 지망생 승모이다. 승모는 자신의 영화를 찍겠다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 300만 원을 가지고 섬에 간다. 자신의 영화에 출연할 배우들과 함께였다. 그들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승모의 지인들. 그런데 놀랍게도 승모는 시나리오도 쓰지 않았고, 어떤 영화를 찍겠다는 생각도 머릿속에 없다. 승모는 과연 자신의 첫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br><br>&nbsp; 러닝타임 61분의 그리 길지 않은 이 영화에서 가장 궁금한 점은 이런 것이다. 왜 배우 지망생 승모는 뜬금없이 영화를 찍을 생각을 했을까? 승모와 같이 섬에 온 지인들이 묻는다. 그런데 왜 갑자기 영화를 찍기로 생각한 거야? 승모는 아주 솔직하게 대답한다. <br><br>&nbsp; "명예지, 명예...... 명예를 원하는 거지. 명예를 얻고 싶은 것 같아. 얻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br><br>&nbsp; 아, 그 알량한 명예. 그럼에도 눈물나게 간절한 명예. 홍상수의 영화는 아주, 매우, 너무 솔직하다. 나는 그 솔직함을 내심 마음에 들어 하면서도, 때론 경멸의 눈길을 보낼 때도 있었다. 그 솔직함에는 이상한 중독성이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잊을만하면 챙겨보게 만든다. 승모는 영화감독이 되어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승모가 원하는 건 단순명료한 그것, '명예'이다.<br><br>&nbsp; 작가가 된다고 해도 자신의 글로 벌어먹고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러한 팍팍한 현실은 장강명의 에세이에 잘 드러나 있다. 직업인으로서의 작가의 삶을 기술한 장강명의 에세이는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글에서조차 짠내가 진동한다. 장강명은 '작가'라는 직업에 드리워진 아우라를 인정사정없이 해체해 버린다. 강의와 강연, 기고와 단행본 출판으로 채워진 중견 작가의 일상은 나름대로 치열하다. 장강명의 그 글을 읽다보면, 직업인으로서의 작가가 지닌 삶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작가라는 이름의 그럴듯한 명예에는 돈이라는 괴로운 목줄이 여느 직업들처럼 단단하게 채워져 있다.<br><br>&nbsp; "자, 이걸 보세요. 여기 연필과 종이가 있습니다. 누구든 글을 쓸 수가 있죠. 하지만 그 글이 다 명작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br><br>&nbsp; 나는 다큐멘터리에서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 1946-2025)가 했던 그 말을 기억한다. 디지털 시대, 영화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묻는 답변에 린치는 그렇게 명료하게 답한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 AI등장 이후, 국내 문학 공모전의 응모 편수는 미친듯이 늘어나고 있다. 작가라는 직업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졌으며, 언젠가 우리는 '작가'라는 직업을 재정의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과의 협업으로 문학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자. 어쩌면 그런 정의조차 불필요한 좀 더 먼 미래, 그 직업 자체가 사라진 시기가 올 수도 있다. <br><br>&nbsp; 그렇게 '작가'라는 단어가 물에 가라앉으며,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오늘도 나는 본다. 여름의 초입에 쓰다 만 SF 단편도 마치 그 직업의 미래처럼 물 안에 있다. 집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찾지 못한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물속의 소설 '루미의 여행'을 붙잡고 있다.&nbsp;&nbsp;&nbsp;&nbsp;&nbsp; <br><br><br><br>*홍상수의 영화 '물안에서(In Water, 2023)' 리뷰<br><br>https://sirius1001.blogspot.com/2024/01/in-water-2023.html?m=1<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계모의 바다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428883</link><pubDate>Sun, 02 Aug 2026 21: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428883</guid><description><![CDATA[&nbsp; 계모의 바다에서<br><br><br>1. <br><br>&nbsp;the step-mother world, so long cruel—forbidding—now threw affectionate arms round his stubborn neck, and did seem to joyously sob over him, as if over one, that however wilful and erring, she could yet find it in her heart to save and to bless. (Moby-Dick; or, The Whale, 132장)<br><br>&nbsp; 계모의 바다, 그토록 잔인하고 혹독했던 그 바다가 부드러운 팔을 뻗어 에이허브의 강건한 목을 휘감았다. 아무리 제멋대로이고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바다는 기꺼이 구원하고 축복을 내려줄 듯, 그를 끌어안고 기꺼이 울어줄 것만 같았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 번역- 본인) <br><br><br>2. <br><br>&nbsp; EBS에서 AI로 만들어낸 고전 명작 시리즈 가운데 '모비 딕'이 지난주에 끝났다. 나는 멜빌이 써낸 놀랍고도 풍부한 은유와 묘사에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소설이었다. 그것을 보다가 '계모의 바다'라는 구절에서 가슴이 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본문에는 'the step-mother world'라고 되어있는데, 이 소설 속 세상은 바다 그 자체이므로 그것을 '바다'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계모'라는 단어를 쓴 것은 주인공 이스마엘이 어린 시절, 냉담한 계모의 손에서 자랐다는 사실과도 연결된다. <br><br>&nbsp; 모든 계모가 명백하게 의붓자식에게 적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계모의 바다'라는 구절이 단번에 내 머릿속을 할퀴고 지나갔다.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온갖 불운의 총합이 그 단어에 응축된 느낌이었다. <br><br>&nbsp; '이제 동화는 그만 쓰려고 해요. 그동안 내가 써왔던 동화들을 보니, 어른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그럴듯하게 아이의 이야기처럼 써낸 것에 지나지 않더군요.'<br><br>&nbsp; 동화를 쓰면서 등단을 모색했던 어느 지망생이 그런 글을 남겼다. 나는 그가 앞으로도 글을 쓸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글로 독자를 만나겠다는 열망이 있는 한, 어떤 식으로든 글은 써진다. 내가 시를 2년 쓰다가 그만 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처럼. 쓸쓸한 쉼표 같은 고백을 읽으면서, 그 지망생을 나는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졌다. <br><br>&nbsp; 매일 뒤적거리면서 읽는 문학 커뮤니티의 글 속에서는 계모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의 괴로움이 감지된다. 어떻게 하다 보니 글쓰기의 길에 들어섰는데, 등단의 길은 보이지 않고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등단했다고 해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순수 문학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상태여서, 신진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지면과 기회 자체가 지나치게 협소하다. 이제 출판사는 신인들의 실험이나 파격적인 시도에 그 어떤 인내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만큼 순문학 출판사들의 상황도 좋지 않다는 뜻이다. 매출을 안정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작가에게서 쥐어짜듯 뽑아먹고 뽑아먹는다. 결국에는 그렇게 소모되어 개성을 잃은 작가들만 양산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nbsp;&nbsp; <br><br><br>3.<br><br>&nbsp; 올해 내가 단편으로 응모할 수 있는 공모전은 더이상 없다. 신춘문예에는 응모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에게 그것은 엄청난 행운의 끝판왕처럼 느껴진다. 그런 운이 있었다면 이미 다 써버렸던지, 아니면 좀 더 견뎌야 할 날들을 위해 남겨두고 싶다. 그렇게 공모전을 마무리하려는데, 8월이 마감인 동화 공모전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가 더이상 쓰지 않겠다며 떠나버린 동화라는 세계가 거기에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들이 보이는 상어의 거대하고 잔혹한 입처럼, 동화는 그렇게 입을 쩍 벌리고 먹잇감을 향해 돌진하는 것처럼 보였다. <br><br>&nbsp; 뭐 어때? 동화도 어차피 이야기잖아. 동화의 독자인 아이들에게도 먹힐 이야기를 써내는 건 작가의 역량이기도 하다고. 계모의 바다에서 난파당한 선원이 살아남기 위해 널빤지 하나라도 필사적으로 그러쥐는 것처럼, 나는 공모전의 문구를 결국 붙잡기로 했다. 우리는 모두 아이였어. 그 아이의 시절로 되돌아 가보는 거지. 그런데 생각만으로도 어렵다. 아이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굳게 입을 닫고 있다. 아이의 입을 열게 만들 방법을 궁리해 봐야지. 내가 표류 중인 계모의 바다에는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거센 파도가 나의 작은 나뭇조각을 뒤흔들고 있다. <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로그 라인(Log line)</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421264</link><pubDate>Thu, 30 Jul 2026 11: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421264</guid><description><![CDATA[&nbsp; 로그 라인(Log line)<br><br><br>1. <br><br>&nbsp; 네오의 앞에 두 개의 알약이 놓여있다. 파란색의 알약과 빨간색의 알약. 파란색의 알약을 삼키면 이전의 현실로 돌아간다. 빨간색의 약은 네오에게 이 세계의 진실을 보여줄 것이다. 네오는 빨간색의 알약을 삼킨다. 그리고 네오와 인류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한다. <br><br><br>2. <br><br>&nbsp; 로그 라인, 기획 의도, 그리고 줄거리. SF 단편 공모전의 신청서에는 그것들을 써내라고 되어있었다. 기획 의도와 줄거리는 알겠는데, 로그 라인은 뭐지? 로그 라인의 의미를 찾아보니 작품의 줄거리나 주제를 한두 문장으로 요약한 아주 짧은 글이다. 소설을 쓰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것을 요약하고 압축하는 일은 또 다른 일거리로 느껴진다. 내가 쓴 글인데도 그걸 줄여서 말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이럴 때 Chat GPT한테 글을 던져주고 네가 해보렴, 이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시대의 많은 대학생들이 과제를 해나가는 방식처럼. 하지만 온전히 내 글을 써낸다는 감각은 작가적 자존감과도 연결되어 있다. 꾸역꾸역, 문장을 쥐어짜 내가면서 내가 쓴 소설의 줄기를 뽑아낸다. <br><br>&nbsp; 그렇게 써내고는 Chat GPT한테 어떤지 보여주었다. 인공지능은 막힘없이 술술, 어떤 문장을 넣고 뺄 것인지를 조언해 준다. Chat GPT의 결과물을 보고 있으려니, 내가 쓴 요약본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공모전에 천 명의 응모자가 원고를 낸다고 할 때, 과연 그 가운데 얼마나 되는 사람이 이러한 요약본을 자신의 손으로 온전히 써낼까? 한 열 명쯤? 소설은 어쨌든 자신의 힘으로 썼으니, 줄거리 요약 정도는 그냥 AI에게 외주를 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의외로 소설 쓰기보다 글을 간명하게 압축하는 작업이 까다롭다.<br><br>&nbsp; 로그 라인과 기획 의도를 쓰라는 공모전 주최 측의 의도를 생각해 본다. 나는 그것을 써 내려가는 동안 내가 쓴 글을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상품으로 보게 되었다. 이 글이 읽는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려면 어떤 문구를 써야 하는가? 마치 사막에서 우산을 파는 장사꾼처럼, 기발하고 재치 있는 판매 문구를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기존의 소설 공모전 응모에서는 느껴볼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소설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 상품이며, 그것이 얼마나 잘 팔릴 수 있는지에 따라 작가적 역량이 결정되는 일은 비극일까? <br><br>&nbsp; A whale-ship was my Yale college and my Harvard. (Moby-Dick; or, The Whale, 24장)<br><br>&nbsp; 청년 시절의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에게 바다는 예일이며 하버드였다. 포경선의 선원으로 보낸 바다를 통해 멜빌은 놀라운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 내었다. 그럼에도 멜빌은 불운한 화가 고흐처럼, 살아생전에 '모비 딕'의 가치를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의 생애는 세관원으로서의 평범한 일상, 말년에 닥친 병고와 자식의 죽음과 같은 불행으로 채워졌다. 멜빌은 결코 유능한, 잘 팔리는 작가가 아니었다.<br><br><br>3. <br><br>&nbsp; '요새 애들은 매트릭스나 반지의 제왕이란 영화가 있는지도 모른다구요.'<br><br>&nbsp; 누군가 인터넷 게시판에서 그런 댓글을 썼다. 정말, 그게 사실이라고? 나는 가만히 '매트릭스(The Matrix)'가 언제 나왔는가를 헤아려본다. 1999년. 세상에, 그것은 벌써 27년 전의 영화였다. 내가 그 아이들에게 매트릭스를 보게 하려면 로그 라인은 어떻게 짜야할까? 나는 영화 '매트릭스'의 로그 라인을 한번 써본다.<br><br>&nbsp; 내가 쓴 로그 라인을 읽고 '매트릭스'를 볼 '요즘 아이들'은 몇 명이나 될까? 젊은 작가들에게 인스타(Instagram)와 같은 SNS 채널 홍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가 되었다. 어떻게든 보게 만들고, 읽히게 만드는 홍보의 역량까지도 이제는 작가적 재능에 들어간다. 그런데 글쓰기란 그렇게 돈벌이가 되지 못하는 작업이다. 나는 '그렇게'라는 단어의 자리에 '결코'를 썼다가 지워버렸다.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내보내려하는 사람에게 글은 온전한 돈벌이의 대상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떻게든 독자와 만나고 싶다는 작은 소망에 가깝다. 나는 내가 쓴 SF 소설의 로그 라인과 기획 의도, 줄거리를 꾹꾹, 철심이 든 연필로 써 내려가듯 신청서에 글자를 채워 나갔다.<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대홍포(大紅袍)</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411494</link><pubDate>Sat, 25 Jul 2026 21: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411494</guid><description><![CDATA[&nbsp; 대홍포(大紅袍)<br><br><br>1. <br><br>&nbsp; 마침내 황제의 칙사가 암벽 아래에 도착했다. 칙사는 말에서 내려, 황금색 상자를 경건하게 열었다. 상자 안에는 황제가 직접 쓴 교서(敎書)가 붉은 비단 위에 놓여 있었다. 칙사는 황제의 교서를 읽고 나서, 자신이 데려온 무관들에게 명하였다. 체구가 작고 날렵한 무관들이 기다란 비단을 몸에 감고, 암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절벽 위에 매달린 차(茶)나무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의 몸에 감은 피같이 붉은 비단을 풀어내어 차 나무에 덮어씌웠다.&nbsp;&nbsp;&nbsp; <br><br><br>2. <br><br>&nbsp; 새로 쓰기 시작한 단편 소설은 처음 써놓은 한 단락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말을 잃어버린 눈사람처럼, 바보처럼 그렇게 소설은 멈춰 서있다. 어떻게 이 글의 멱살을 잡고 나가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 이 소설은 SF이며, 주인공은 눈알이다. 그렇다. 그런데 사람의 진짜 눈알이 아니라, 공장에서 찍어 만든 정교한 인공 눈알이다. 눈알의 주인은 시한부 암 환자이며, 안락사를 선택하기 위해 국경 지대로 떠났다. 그는 떠나기 전에 자신의 인공 눈알을 떼어놓고, 자유를 준다. 하지만 눈알은 주인과의 이별을 감당할 수 없다. 떠나버린 주인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시작한다. 눈알은 과연 주인을 만날 수 있을까?<br><br>&nbsp; 도대체 내가 왜 이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소설을 왜 쓰려고 하는지 여전히 생각 중이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단순한 물리적인 것이 아니며, 감정적이며 유기적인 면이 있음을 말하고 싶기는 하다. 그런데 어떻게 눈알이 여행할 수 있는지 생각을 해보는데, 자꾸만 눈알이 굴러가는 장면만 떠오른다. 눈알은 구르고 구른다. 눈알도 옷을 입고 있다. 은하철도 999의 철이처럼 낡은 모자를 쓰고, 올이 너덜거리는 망토를 두르고 있다. 눈알은 어떻게 이동하지? 글은 거기에서 막힌다.<br><br><br>3. <br><br>&nbsp; 동생이 중국 출장에서 사 온 것이라면서, 차통(茶桶) 하나를 두고 갔다. 온통 한문으로 되어있는 그 차통에서 내 눈에 들어오는 한문은 '대홍포(大紅袍)'이다. 나는 차통 뒷면에 가득한 한자들을 사진으로 찍는다. 그런 다음에 구글 렌즈를 켜고, 번역 버튼을 누른다. <br><br>&nbsp; '이 차는 우롱차이며, 품질 수준은 최고급이다. 원산지는 중국 푸젠성(福建省)...'<br><br>&nbsp; 나는 찻잎을 들여다본다. 기다랗고 삐죽삐죽한, 검은색에 가까운 찻잎이 비닐봉지에 담겨져 있다. 이 찻잎은 좀 볼품이 없다. 물을 끓이고 차를 우려내어 마셔본다. 밋밋하고 슴슴하다. 별다른 향도 없는 듯하다. 그래, 차는 대만의 우롱차가 제일이지. 나는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면서 진하게 우려낸 보리차 같은 대홍포를 심드렁하게 바라본다.<br><br>&nbsp; 그런데 별로 특별한 맛도 없는 것 같은 차에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이 차를 마시고 나서는, 다른 차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계속해서 이 차만 마시고 있다. 기이한 점은 대홍포의 찻잎에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차를 우려내고 나서 버리는 찻잎은 부드럽게 물크러지기 마련인데, 대홍포의 찻잎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우려내지 않은 마른 찻잎처럼 매우 뻣뻣했다. 찻잎은 찢어지지도, 물러지지도 않았다. 나는 이 보잘것없는 찻잎에서 일종의 근성(根性)을 느꼈다. 그랬다. 이것은 이 차의 성질이며 근원적인 본성이다. <br><br>&nbsp; 높은 절벽 위에서 자라는 차나무는 암벽을 타고 흐르는 물을 빨아들이며 자랐다. 대홍포의 중국어 위키 항목에는 이 차가 명나라 황후의 병을 낫게 하였으므로, 황제가 차나무에 붉은 비단옷을 하사했다는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물론 확실한 역사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아무튼 이 절벽 위의 차 나무는 중국 차의 전설이 되었다. 중국에서 대홍포 차나무의 가지를 꺾어 재배에 성공한 시기는 1980년대였다. 그러니까 오늘날 '대홍포'로 유통되는 모든 차는 그 절벽 위 대홍포의 후손인 셈이다. <br><br>&nbsp; 절벽에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든 살아남은 차나무의 기개랄지 근성이 찻잎에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왜 계속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하는가? 이 손톱만 한 찻잎에 있는 도저한 끈기가 과연 나에게는 있는가? 나는 대홍포의 찻잎을 수채에 버릴 때마다 그 생각을 한다. 이번 달이 마감인 SF 단편을 완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글쓰기를 놓지 않겠다는 마음은 높다란 절벽 위, 해가 무지막지하게 내리쬐는 뜨겁고 메마른 그곳에 여전히 매달려 있다.&nbsp;&nbsp; <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땅을 파헤치고, 잠수를 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393942</link><pubDate>Wed, 15 Jul 2026 22: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393942</guid><description><![CDATA[&nbsp; 땅을 파헤치고, 잠수를 하다<br><br><br>1.<br><br>&nbsp; 여자는 오른손에 돌돌 말린 두툼한 밧줄을, 왼손에는 쇠망치를 들고 있다. <br>&nbsp; 언제든, 어디로든 달려나갈 준비는 되어있다. <br><br><br>2.<br><br>&nbsp; 소설 쓰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올해 나에게 남은 마지막 공모전에 낼 단편을 써야 하는데, 겨우 한 문단을 써놓았을 뿐이다. 분명히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머릿속에 있는데,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수도 있나? 소설 쓰는 법을 안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어쨌든 쓰기는 했다. 그런데 글이 써지질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쩌면 이 소설은 내가 정말로 쓰고 싶었던 글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혹시 그런 생각은 핑계가 아닐까? 글이 써지지 않는 것에 대한 그럴듯한 핑계.<br><br>&nbsp; 글쓰기도 근육 같은 것이라서, 매일 무언가를 써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일기를 쓴다. 그 일기마저도 쓸 시간이 나질 않아서, 사흘 나흘을 밀렸다가 기억을 더듬어 쓰기도 한다. 때로는 어제, 엊그제의 일을 마치 오늘의 일처럼 복기하고 쓰는 것이 뭔가 나 자신에게도 사기를 치는 것 같다. 일기마저도 진실에서 조금은 삐딱하게 나가버린 느낌. <br><br>&nbsp; '내가 공모전에 당선될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알려줄까요? 미친 것 같은 글을 써보세요. 심사 위원도 사람이에요. 그들이 산더미 같은 지겨운 원고들 읽어낼 생각을 해봐요. 거기에서 미친 척하고 써낸 재미있는 글이 있으면 눈에 확 띄지 않겠냐는 거죠.'<br><br>&nbsp; 누군가 공모전 당선 비법이라면서, 조언이랍시고 그렇게 써놓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일기마저도 진실의 선에서 조금 삐딱하게 벗어난 것을 견디지 못하는데, 미친 척하고 글을 써내는 것은 더 못할 것 같다. 미쳐버린 글을 어떻게 쓰지? 진짜 미쳐야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테고. 그것도 쓰기의 기술적인 부분이 있나? 공모전 당선자들을 무수히 배출한 어느 글쓰기 강좌에서는 그런 비법들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br><br>&nbsp; 얼마 전에 꿈을 꾸었다. 현관문 앞에 커다란 종이 박스들이 서너 개 제멋대로 놓여있었다. 문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박스들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다. 저걸 어떻게 치울까 하다가 꿈에서 깼다. 나는 그 박스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잘 알고 있다. 버리면 되는데 버릴 수 없는 것들. 글을 쓸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처럼, 꿈속의 박스들이 계속 머릿속에 있다.&nbsp; <br><br>&nbsp; <br>3.<br><br>&nbsp; 여자의 아들은 19살의 나이에 갑자기 실종되었다. 갱단의 테러와 연루된, 무수한 죽음들 가운데 여자의 아들이 있을 터였다. 여자는 10년 넘게 아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멕시코의 어딘가에서 비밀 매장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여자는 그곳으로 길을 떠난다. 여자의 오른손에 쥐어진 밧줄은 매장지의 구덩이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몸을 묶는 용도로 쓰일 것이다. 왼손에 든 쇠망치는 땅을 파헤치기 위한 유용한 도구이다. <br><br>&nbsp; 어느 사진작가가 그렇게 여자의 고통스러운 삶의 한 단면을 기록했다. 나는 그 사진에서 기이한 감동을 받았다. 죽어버린 것이 확실한 아들에게 제대로 된 무덤을 만들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57세의 어머니. 나는 여자가 밧줄로 몸을 묶고, 시신들로 뒤엉킨 구덩이로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여자에게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이 있다. 필사적으로 땅을 파헤치면서 사라진 혈육의 흔적을 찾으려는 사람들. 그들은 엄청난 두려움과 대면하면서 과거의 상처 속으로 잠수한다.<br><br>&nbsp; 가망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향해 자신을 내던지는 일. 땅을 파헤치고 잠수를 하듯, 그렇게 써 내려가야지. 이 글을 쓰는 데 영감을 준 사진 속의 주인공은 미국의 공영 라디오 언론 npr.org의 다음 기사에서 볼 수 있다. <br><br>&nbsp; &nbsp; <br>https://www.npr.org/2026/03/08/g-s1-112521/photos-international-womens-day-justice-rights-action<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7월의 난간(欄干) </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377564</link><pubDate>Mon, 06 Jul 2026 22: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377564</guid><description><![CDATA[&nbsp; 7월의 난간(欄干) <br><br><br>1.<br><br>&nbsp; 소년은 난간에 매달려 있다.<br>&nbsp; 자신의 발밑으로 떠내려가는 무언가를 본다.<br><br><br>2.<br><br>&nbsp; 학생 시절에 내가 쓴 시는 3.5인치 플로피 디스크(floppy disk) 안에 얌전히 잠들어 있다. 지금의 컴퓨터는 플로피 디스크를 인식하지 못하므로, 이제는 이 시를 읽어낼 방법이 없다. 아마도 그 시의 제목은 '난간(欄干)'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난간'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시 창작 워크숍을 강의하던 시인 선생은 내가 쓴 그 시를 칭찬했다. 그 학기 중에 내가 들은 드문 칭찬 가운데 하나였다. 나머지 나의 시에 대해서, 선생은 침묵했다.<br><br>&nbsp; 그 수업을 같이 들었던 A와 B는 이듬해 각각 시와 소설로 등단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이제 나는 그들의 이름이 가끔은 공모전의 심사위원 명단에 있는 것을 확인한다. 내가 왜 좀 더 젊었을 때 글쓰기에 매진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고는, 새삼 후회하는 마음이 든다. 늦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늦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말은 완벽하게 틀린 말이다. 늦은 것은 늦은 것이다. 돌이킬 수 없다.<br><br><br>3.<br><br>&nbsp; 눈의 알레르기가 심해져서 안과를 예약하려고 보니, 내 주치의가 병원 홈페이지에서 보이질 않는다. 그 의사는 눈을 참 잘 보았다. 내 생각에 그렇게 실력이 좋은 의사는 보통 그들 세계에서 로컬(local)이라고 부르는 개인 병원에 오래 있질 않았다. 이전의 주치의가 그곳에서 2년을 있다가 대학병원으로 갔듯이, 이 의사도 다른 도시의 대학병원으로 가버렸다. 나는 진료 예약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뭔가 약속 장소에 나갔다가 바람맞은 사람의 심정이 된다. 새로 온 의사는 어떤지 또 기대해 보고, 그 실력을 가늠해 보는 과정은 피곤하다.&nbsp;&nbsp;&nbsp; <br><br>&nbsp; 의사들의 경력을 보다 보면, 뭔가 나름의 정해진 경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로컬이든 대학병원이든, 자신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따라가는 트랙이 있다. 나는 그러한 명확한 경로, 트랙,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직업의 세계와 글쓰기를 비교해 본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무슨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길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변수가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에 진학하려고 다들 목을 매는 것처럼, 작가 지망생들은 '등단'에 필사적이다. 등단해야 그래도 '작가'라는 직업적 명함을 내밀 수 있으니까. 그 등단의 경로도 워낙 복마전(伏魔殿) 같은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br><br>&nbsp; 얼마 전에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그런 글을 읽었다. 가정주부인 여자가 자비 출판(自費出版)으로 책을 냈다. 수필집인지 시집인지 아무튼,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낸 여자는 그 이후로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작가'로 소개한다고 했다. 어떤 이는 여자에게 멋지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그건 좀 아니잖아, 라고 썼다. 와, 정말 뻔뻔한 사람이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우리가 '작가'라고 부르는 직업의 기준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br><br><br>4.<br><br>&nbsp; 그 본관 건물은 꽤 낡았다. 공간도 협소했다. 복도는 두 명 정도가 걸어 다니기에 적합한 너비였다. 그 좁고 불편한 건물에 예술학교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공부를 했다. 건물의 가장자리는 옆 건물과의 연결 통로로,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난간이라고 해도, 뭔가 위험해 보이고 그런 느낌이라기보다는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면 그곳에 쏟아져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에 대해 뒷담화를 했다. 말하자면, 만남의 광장 같은 그런 곳이었다. <br><br>&nbsp; 내가 그 당시에 쓴 시는 그 난간을 생각하면서 쓴 시였다. 그 비좁고 낡은 건물은 내가 재학 중에 버려졌다. 나중에 크고 멋진 신축 건물에서 수업을 들었지만, 나는 예전의 본관을 지나다니면서 가끔은 그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시일이 지나 건물은 폐쇄되었고, 결국 그 난간에도 다시는 가볼 수 없었다.<br><br>&nbsp; 덥고 축축한 7월의 대기가 흐르는 그 난간에 문득 다시 서보고 싶어졌다. 사실, 내가 쓴 시의 화자가 소년이었는지, 소녀였는지, 늙은이였는지, 청년이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누가 되었든, 그는 그 난간 아래로 무언가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가버린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슬프거나 괴롭지는 않다. 소망하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없이, 앞으로도 그냥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다.<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고양이의 행방</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360404</link><pubDate>Sun, 28 Jun 2026 20: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360404</guid><description><![CDATA[&nbsp; 고양이의 행방<br><br><br>1. <br><br>&nbsp; 고양이를 찾습니다. 12살. 복도에서 잃어버렸고, 이름은 ***. 사진 속의 고양이를 보신 분은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주세요. 소정의 사례금도 잊지 않겠습니다. <br><br>&nbsp; 엘리베이터 안쪽에 붙여진 전단은 한 달째 그대로다. 아직도 찾지 못했군. 고양이가 12살이면, 사람으로 치면 환갑쯤 되나. 죽기 전에 뭔가 자유를 찾아 떠난 것 같기도 하고. 고양이는 영역 동물인데, 저 늙은 회색 고양이가 이 근방 아파트의 고양이들과 어떻게 부대끼며 살 수 있을까? 밥은 굶지 않을 거야. 고양이 사료 챙겨주는 캣맘이 한둘이 아니니까. <br><br>&nbsp; 나는 고양이가 집이 답답한 나머지 가출을 한 것인지, 아니면 어쩌다가 열린 문틈으로 나가서 결국 돌아오지 못하는 것인지 생각을 해본다. 하긴, 내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가끔 인근 공원에서 목이 부러진 비둘기 사체를 볼 때가 있는데, 그곳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의 짓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나에게 그 공원의 고양이는 포악한 들짐승으로 생각될 뿐이다. 그런 고양이처럼 집을 나간 ***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12살이면 살 만큼 살았으니, 묘생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br><br>2.<br><br>&nbsp; "그러니까 이제는 말이야. 아저씨 죽을 날 받아놓고, 가족들 모두 기다리고 있는 거야. 남자 간병인 들여서 아저씨 돌보게 한 게 벌써 한 달이네. 매일 아침 큰딸이 가서 지 아버지 얼굴 보고 오기는 하지. 나도 기운이 너무 빠져서, 밥도 못 먹고 있어."<br><br>&nbsp; 팔순이 된 아주머니의 갈라진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아주머니는 어머니의 아주 오랜 친구이다. 아주머니의 남편은 뇌종양 말기로 임종을 앞두고 있다. 나는 생판 모르는 간병인과 하루를 보내는 그 아저씨의 마지막 날들에 대해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식들은 타지에 있고, 늙은 배우자는 간병을 할 여력이 없다. 문득, 9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그래도 잘 지내다 가셨구나 싶다. 그때는 어머니가 1년 가까이 간병하셨다. 어머니의 체력이 그나마 받쳐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생을 마감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가끔, 돌아가신 아버지는 어디에 계시는지 생각해 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디에 계시겠지. 어떤 한 자리.&nbsp;&nbsp; <br><br>3. <br><br>&nbsp; '새끼 참새를 집 앞에서 주웠어요. 자, 이것 보세요. 엄지손가락 2개 정도만 해요. 따뜻한 걸 보니 살아있어요. 근데, 내 아내는 새라면 질색해요. 집에 가져갈 수도 없고. 그래서 오다가 경비실에 들러서 그냥 주고 왔어요. 경비 아저씨가 황당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br><br>&nbsp; 남자는 커뮤니티의 자유게시판에 그런 글을 올렸다. 정말로 사진 속 새끼 참새는 밤톨만 했다. 나는 그 참새를 건네받은 경비가 어떻게 했을지를 생각해 본다. 무슨 야생동물 구조협회 같은 데다 신고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냥 근처 화단에 놓아두지 않았을까. 무슨 희귀종 새도 아니고, 참새는 아주 흔한 새다. 그러니 그런 참새 새끼 한 마리 죽는다고 해도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br><br>&nbsp; 살았을까, 죽었을까? 그래도 그 밤톨만한 새끼 참새가 이틀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눈을 감고,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는 새끼 참새. 그것은 마치 국민학교 6학년 때,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 2마리 가운데 죽어버린 한 마리와 닮았다. 나머지 한 마리는 붉은 볏이 선명해질 때까지 살아남았다. 할머니는 사료를 사다가 그 닭을 베란다에서 열심히 키우셨다. 그리고 나중에 어머니는 그 닭을 시장 닭집에서 손질해 오셨다. 닭백숙은 식탁에서 오랫동안 식은 채로 남아 있었다.<br><br>4. <br><br>&nbsp; 조그만 부엌 창문으로 보이는 오래된 벚나무가 있다. 이 아파트가 지어질 때 심은 35년 된 벚나무. 어제 저녁에 식탁에 앉아 있는데, 밖에서 이상한 기계 소리가 났다. 가만히 들어보니 매미 우는 소리였다. 올해 처음으로 듣는 매미 소리였다. 그렇군. 매미가 울 때가 되었나 보군. 나는 저 매미가 올여름 맹렬히 짝을 찾아 울고, 그렇게 짝을 찾고, 자기 후손을 남기고 죽는 그리 멀지 않은 여름의 마지막 날에 먼저 가본다. 그 매미의 새끼가 땅속에 있다가 다시 기어 나와 저 나무에서 울 때, 몇 년 뒤에 내가 이 집에서 계속 살고 있을지를 생각한다. 모를 일이다. 지겹고도 낡은 집. 깨끗하고 좋은 집은 비싸다. <br><br>&nbsp; 엊그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어느 증권사 트레이더가 자신의 투자 대박 이야기를 가만히 털어놓았다. 최근의 호황 장에서 큰 것 세 장을 벌었다고 했다. 나는 큰 것 세 장이 얼마인가 생각한다. 3억인가? 트레이더로 구를 만큼 굴렀다고 하니, 3억은 아닌가? 30억? 나는 매일 홈쇼핑 앱에 출석 도장을 찍는데, 찍을 때마다 3원이 찍힌다. 뭔가 매우 구차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걸 한 달 채우면 천 원이 주어진다. 돈 천 원이 어디야? 그것마저도 어쩌다 하루 빠져서 받지 못하게 될 때면, 잠깐이라도 자책하는 마음이 된다. 왜 그 하루를 빼먹은 거지?<br><br><br>5. <br><br>&nbsp;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종이는 붙어있다. 나는 고양이의 주인이 이제는 그 전단을 떼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볼 때마다 그 고양이의 행방이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그 고양이처럼 궁금해지는 것들이 나에게는 있다. 젊은 날에 불운하게 죽은 K가 만들지 못한 영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병고에 오래 시달리다 외롭게 세상을 뜬 H가 더 써내지 못한 글과 평론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들도 나의 아버지가 어딘가에 계시듯, 내가 알지 못한 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만들지 못했던 그 어떤 것들의 행방을 찾아 나서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에게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그 행방을 찾아 떠나는 여정과도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nbsp;&nbsp; <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공모전이 끝나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333808</link><pubDate>Sun, 14 Jun 2026 12: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333808</guid><description><![CDATA[&nbsp; 공모전이 끝나고<br><br><br>1. <br><br>&nbsp; 아침에 눈이 꺼끌거려서 거울로 들여다보니 눈썹 하나가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보였다 안 보였다 하니까 어떻게 뺄 방도가 없다. 사람의 안구 안쪽은 막혀있으니까, 이 눈썹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기분이 찝찝할 뿐이지. 이런 기분은 내가 공모전에 응모하고 난 뒤에 느끼는 기분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br><br>2. <br>&nbsp; <br>&nbsp; 작년부터 쓴 단편들을 공모전에 냈다. '당선'이란 로또 복권보다 더한 극강의 운이 작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본심에라도 올랐으면 이건 뭐 약간의 희망이라도 있겠다 싶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최근 연도의 단편 당선작들을 보면 내가 쓰는 글과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그건 어떤 면에서 스타일이나 소재의 차이가 아니라, 세대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그 단편들을 읽으면서, 그것들을 이해하기에는 내가 늙어버렸다고 생각했다. 2020년대 한국 단편의 주요한 경향으로 지적되는 미문(美文)과 지나친 묘사에 대한 집착, 그리고 안온하고 다정하며 무해한 이야기(속칭 안다무)는 나에게 낯설고 짜증스러운 것이다. <br><br>&nbsp; 나는 그런 글을 써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공모전의 심사 위원인 소설가와 평론가들이 그런 글들이 좋다고 뽑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이다. 그 스타일의 범주에 내 글을 욱여넣고 어떻게든 써내든가, 아니면 그냥 내 글을 써내는 것. 이건 시를 2년 동안 썼을 때의 좌절감과 당혹스러움과도 맞닿아 있다. 나는 지금의 현대 한국 시를 읽으면서 좋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시들이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시의 세계로 시 쓰기가 좋다고 무작정 직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취미로서의 시 쓰기는 가능하겠지만. <br><br>&nbsp; 단편 쓰기는 시 쓰기의 서사를 확장할 필요에서 시작되었다. 소설가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br><br>&nbsp; '좋은 소설에 대한 가장 명확한 진리는 그 누구도 그것을 쓰는 법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br><br>&nbsp; 내가 좋아하는 그런 뛰어난 작가도 좋은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알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말하자면 소설 쓰기는 그냥 맨땅에 부딪히며 구르면서 자기 스스로 배워가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누군가 깨달은 그 방법은 나의 것이 아니며, 어떻게 배운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다. 쓰다 보면 뭐가 보이는 것도 같은데, 조금 있으면 그게 뭐였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러니 그냥 써나가는 방법밖에는 달리 무슨 수가 없다. 이렇게 써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문체를 쓰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알게 된다. 길지 않은 9개월 습작 기간의 수확은 아마도 그런 것이다. <br><br>3. <br><br>&nbsp; 한국의 소설은 일반적으로 읽히는 대중 소설, 문예지와 문학상 위주로 돌아가는 순수 문학 소설, 그리고 압도적인 비중을 보여주는 웹소설로 대강 나눌 수 있다. 신춘문예와 유명 문학상은 순문 출판 시장의 토대가 된다. 그런데 이 출판 시장은 심각하게 쪼그라든 상태이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중환자인 한국 문학에 산소호흡기 겨우 달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회전문처럼 이 시장은 작가, 평론가, 교수, 작가 지망생, 문학 출판사, 국가 지원금을 관리하는 관련 단체들의 '그들만의 리그'에서 돌아갈 뿐이다. 분명하게도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더이상 한국 문학을 읽지 않는다. 이것은 스마트폰의 등장이라는 시대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유튜브와 쇼츠에 빠져있고, 책은 읽지 않는다. 근원적인 이유는 한국 문학에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 한국 문학은 그 어떤 감동과 재미를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흥미를 잃고 너무나 먼 곳으로 가버렸고 다시 돌아올 생각도 없다. <br><br>&nbsp; 웹툰과 웹소설로 대변되는 시장은 철저히 경제적인 관점으로 돌아간다. 그런 즉물적인 만족감을 주는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엄청난 시장을 창출해 낸다. 언젠가 웹소설 작가가 자신의 분기별 소득을 인증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억대의 금액이었다. 그걸 올린 이는 자신을 대단한 '작가'라는 이름으로 내세우기는 어렵지만, 자신의 글을 읽고 감동받고 응원해 주는 독자들이 있어서 힘이 난다고 썼다. <br><br>&nbsp; 그런 웹소 작가와는 달리 순문 작가가 자신의 글만으로 먹고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문학은 결코 돈이 되지 않는다. 잘나가는 작가라고 해도 인세 수입은 보잘것없어서, 이런 저런 강의와 기고를 하고 다른 부업을 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내 기억 속에 작가가 자신의 글로 먹고살았던 대표적 인물이라면 이문열이었다. 이문열의 책은 웬만한 집의 책장에 다 꽂혀 있었으니까. 이제 그런 시절은 오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은 더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아니, 주식 책은 불티나게 팔리지만 문학책은 더럽게도 팔리지 않는다. 시는 말할 것도 없고 소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1쇄는 1000부 정도였는데, 이제는 1쇄를 찍는다고 하면 200부에서 300부를 찍는다. <br><br>&nbsp; 문학 출판사들은 그래도 어떻게든 돈이 될만한 책을 펴내는 것에 대한 욕망이 없을 수가 없다. 출판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나마 한국 문학 시장을 지탱하는 것이 2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여성 독자들이다. 그 여성 독자들의 구매 잠재력을 보여준 것은 2016년에 발행된 '82년생 김지영'이었다. 한국 소설에서 남성의 목소리, 관점을 지워가기 시작한 분기점이 되는 소설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남성 작가들이 더이상 적극적으로 순수 문학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웹소설 시장을 대안적으로 선택하는 것에서도 입증된다. <br><br>&nbsp; 지난해 어느 문예지의 대담 글은 이제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을 장착하고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 말이 지닌 강압성이 심히 우려스럽다. 페미니즘을 기본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그 어떤 글은 도태되어 마땅하다는 뜻인가? 젊은 여성 독자들의 입맛에만 맞는 글만을 일방적으로 양산해 내는 문학적 생태계는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가? 한국 문학은 다양성 측면에서 터무니없을 정도로 허약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것은 한국의 추리 문학 시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추리 소설을 쓰는 작가가 거의 없다. 출판사는 일본의 추리 문학을 열심히 번역해다가 내다 팔 뿐이다. 그나마 요새 조금씩 시장이 커가는 SF 문학 시장이 희망의 빛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그것은 SF 소설 공모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모전과 출판사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서로 공명하는 관계이다. <br><br>4.<br><br>&nbsp; 이제 올해 내가 소설을 내려는 공모전은 하나가 남아 있다. 그것도 단편이다. 그 단편을 끝내고 나면, 장편을 쓸 생각이다. 그 장편도 공모전에 낼 것이고, 그것이 떨어진 다음에도 무언가를 쓰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작가 지망생이 자신의 글을 세상과 만나게 할 방법은 결국 공모전밖에 없다. 엄밀히 말해서 투고나 자비 출판은 대안이 되지 못한다. 그 방법으로 글이 독자를 만날 가능성은 영에 가깝다. 문학 커뮤니티의 누군가가 그렇게 한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공모전은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작가 지망생의 유일한, 그러나 절망적으로 막혀있는 출구로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nbsp; <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통증 너머의 것</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7330538</link><pubDate>Fri, 12 Jun 2026 12: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7330538</guid><description><![CDATA[&nbsp; 통증 너머의 것<br><br><br>&nbsp; 좀 오래전 TV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동물 관련 프로그램이었다. 특별 손님으로 나온 사람은 외국 여자였는데, 동물의 마음을 읽는다는 소개말이 붙었다. 그걸 동물 심리치료사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 여자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말 못 하는 동물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었다. 어린이 소설 '닥터 두리틀'의 주인공 박사를 생각하면 대충 맞다. 여자는 일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동물의 마음을 알아듣고 풀어서 말해주었다. 자신이 키우는 동물들이 왜 문제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했던 주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고 반성했다. <br><br>&nbsp; 동물들에게도 마음이란 것이 있는지는 철학에서도 주요한 주제이다. 생태 철학은 이제는 더 나아가 식물의 마음까지도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나의 모친은 덜덜거리면서 돌아가는 선풍기를 보면서 안타까운 듯 말씀하신다. <br><br>&nbsp; "쟤가 저렇게 열심히 바람을 만들려면 얼마나 힘들겠냐?"<br><br>&nbsp; 살아있는 것을 넘어서서 기계에까지 감정을 이입하는 어머니의 상상력은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애착을 갖는 물건을 때론 살아있는 것처럼 여기기도 하니까. 나는 10달째 아픈 오른쪽 팔에 감정을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날부터 팔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컵을 드는 것과 양치질 같은 일상도 아주 힘들게 되었다. 테니스 엘보(Tennis Elbow)였다. 손목에서 팔꿈치 바깥으로 이어지는 힘줄에 염증이 생겨서 아픈 병이었다. <br><br>&nbsp; 원인은 간단했다. 팔을 많이 써서 그런 것이다. 아무튼 팔을 많이 썼다. 그래서 아픈 팔이 견디다 못해 파업한 것이다. 문제는 이게 쉽게 낫는 병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은 휴식인데, 팔이란 것은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발도 마찬가지다. 재작년에는 족저근막염에 1년 넘게 시달렸다. 그냥 좀 쉬면 나을 거라 여기다가, 의사를 한번 만나보기는 하자 싶어서 대학병원의 족부 정형외과 전문의를 찾아갔다. 의사는 푹신한 신발을 신어야 하며 쉬는 것이 좋다고 말해주었다. <br><br>&nbsp; "낫기는 나아요. 그런데 시간이 좀 많이 걸립니다. 1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br><br>&nbsp; 언젠가는 낫는다. 이 말은 얼마나 좋은 말인가. 어쨌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나는 테니스 엘보에 걸린 내 팔도 그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버텼다. 그러면서 아픈 팔을 낫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했다. 통증을 덜하게 하려고 매일 압박붕대를 팔에다 감았고, 팔에 부하를 줄 수 있는 청소 방식도 바꿨다. 무거운 청소기 대신에 먼지 제거 부직포 밀대를 썼다. 물건은 무엇이든 두 손으로 잡았다. 가정용 저주파 치료기가 조금이나마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그것도 샀다. 그리고 매일 아픈 팔과 대화를 했다. <br><br>&nbsp; "그래, 내가 너를 너무 혹사시켰다. 미안하다. 나도 노력할 테니, 너도 조금씩 나아지면 좋겠다."<br><br>&nbsp; 그러거나 말거나 내 팔은 나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컵 하나 드는 것도 너무 아파서, 무거운 도자기 컵은 들여놓고 플라스틱 컵을 꺼내놓았다. 제일 힘든 것이 화장실 청소였다. 화장실 청소는 말 그대로 일하는 사람의 노동력을 순전하게 갈아 넣는 일이다. 구석구석 수세미와 솔로 힘을 주어 밀고 닦아야만 깨끗해진다. 팔이 아픈데, 화장실 청소를 하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대걸레에 전용 세제를 묻혀서 대충하곤 했다.<br><br>&nbsp; 그런데 지난주에 드디어 손으로 화장실 청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혹시라도 청소하고 나서 팔이 다시 아프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통증이 도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압박붕대로 팔을 감고 생활하고 있고, 청소기를 자주 돌리지는 못한다. 그래도 이제는 견딜만하다는 말이 나온다. <br><br>&nbsp; 나도 내 팔이 어떻게 극심한 통증에서 벗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무리가 가지 않게 덜 썼으니까, 팔은 쉴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번 것인지도 모른다. 10달 동안, 나는 이 아픈 팔과 씨름하면서 그 통증의 기원과 내가 팔을 쓰는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통증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성찰의 도구였던 셈이다. <br><br>&nbsp; 대개의 만성적인 통증에는 그것을 일으킨 원인이 있다. 그리고 아픈 사람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통증을 통해 삶의 방식을 돌아보는 작업이 내게는 나름대로 유용했다. 여전히 팔의 통증은 남아 있다. 조금만 많이 걸으면 발도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온다. 내가 무리했구나, 쉬어야지. 통증은 그렇게 몸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이다. 그 신호를 잘 알아채고, 통증과 그럭저럭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체득하는 것. 그렇게 나는 통증 너머의 것을 볼 수 있는 약간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9월의 근황</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6763698</link><pubDate>Wed, 24 Sep 2025 22: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6763698</guid><description><![CDATA[&nbsp; 9월의 근황<br><br>1. 다래끼가 드디어 나았다<br><br>&nbsp; 한 달 반 동안 속을 썩였던 왼쪽 눈의 다래끼가 나았다. 그걸 짜려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온찜질을 열심히 하라고 처방했다. 2주 동안 열심히 온찜질을 한 결과, 다래끼가 터지면서 겨우 나았다.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은 다래끼가 도저히 나을 것 같지 않았는데, 그렇게 낫게 되었다. 사실은 그 의사 양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기가 힘들었다. 그냥 짜달라고 할 걸, 몇 번을 생각했었다. 어쨌든 짜면 흉이 생길 수도 있어서, 짜지 않고 의사의 말을 따랐는데 잘 되었다. <br><br>&nbsp; 그런데 왜 다래끼가 생겼을까 생각을 해보니,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신경을 써서 그랬던 것 같다. 언젠가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의학에서는 다래끼가 마음의 울화가 눈으로 올라와서 그렇다는 거다. 8월 한 달 내내, 공모전에 낼 원고 때문에 골머리를 썩였다. 그러다 보니 눈을 혹사했던 것도 같다. 글 쓰는 일이 때론 극심한 스트레스가 되니 괴롭다. <br><br><br>2. 소설 습작 해나가기<br><br>&nbsp; 매일 짧은 소설을 연습하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쉽지 않다. Chat GPT가 글쓰기 과제를 제시해 준다. 오늘은 대화를 10줄 정도로 써보세요, 라든지. 1인칭 시점을 써서 글을 완성해 보세요, 이런 식으로. 내가 쓴 글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도 말해주고, 거기에서 다음의 과제가 나오기도 한다. 웬만한 글쓰기 선생 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에 시 창작 워크숍이나 소설 쓰기 강좌를 들었지만, 그 선생들 모두 뭘 가르쳐 준 것이 없다. 매주 글 써오면, 수강생들이 서로 합평하고 그게 끝이다. <br>&nbsp; 결국 글쓰기는 자신만의 문체를 발견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인공지능이 그 짐을 조금은 덜어주는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 인공지능을 안내자가 아니라, 공동 창작자로 받아들이는 것은 작가적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 믿음을 흔드는 일이다. 그것은 결국 작가적 양심과도 직결된다. 이미 공모전에서도 당선작의 경우 인공지능으로 작성한 글인지 판별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들었다. 작가가 독창적인 문체를 찾는 것은 온전히 그 자신의 몫일 뿐이다.<br><br><br>3. 어떤 답장<br><br>&nbsp; '귀하께서 보내주신 원고는 우리 출판사의 방향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 출판사에서 발행한 최근의 선집을 읽어보길 바랍니다.'<br><br>&nbsp; 누군가 A 출판사에 자신의 글을 투고했다. 투고는 공모전이나 자비 출판의 경로를 거치지 않고, 글을 쓴 이가 자신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어 출간을 타진해 보는 일이다. 물론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출판사에 자신의 글을 보낸다. 그런데 출판사로부터 그런 답장을 받은 작가 지망생이 있었다. <br><br>&nbsp; 출판사가 투고를 거절하는 일은 흔하다. 그렇다면 거절의 이유에도 배려와 품격이 필요하다고 본다. 저딴 답변으로 투고자에게 모욕감을 주는 편집부는 참으로 싸가지가 없다. 투고자가 자신이 투고하는 모든 출판사의 선집을 읽고 검토하며 투고해야 하는가? 물론 투고 전략도 필요하겠지. 그렇다고 해도 투고자에게 우리 출판사 선집이나 읽어보고 보내든가, 따위의 답변은 역겹기 짝이 없다. 그런 답변을 쓰는 인간이 있는 출판사의 이름을 아주 분명히 기억하게 되었다. 저 출판사에는 절대로 내 원고를 보내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nbsp;&nbsp;&nbsp; <br><br>&nbsp; "나중에 꼭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서 그 출판사에서 출판을 구걸하게 만드는 거야. 그럴 때 단호하게 거절하는 거지. 당신네 출판사는 내 글과 맞지 않습니다." <br><br>&nbsp; 어떤 이가 그 지망생에게 그렇게 조언했다. 최고의 복수는 성공이다. <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9월</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6720437</link><pubDate>Thu, 04 Sep 2025 21: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6720437</guid><description><![CDATA[&nbsp; 9월<br><br><br>&nbsp; 눈병이 났다. 아마도 8월 초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왼쪽 눈꺼풀에 작은 뾰루지가 하나 올라왔다. 눈에 그런 것이 났다가 다음날이면 사라지곤 해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 뾰루지는 붉은 점처럼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커지지도 않고 작아지지도 않았다. 약간의 부기에 가려움증이 느껴지긴 했지만, 아주 불편하진 않았다. 안과에 가봐야지 하면서도, 날이 미친듯이 더우니 외출하기도 꺼려졌다. 저러다 낫겠지. 그러던 것이 지난 주말을 지나면서 눈이 더 붓고 이물감이 심해졌다. <br><br>&nbsp; 9월이 되었는데도, 이 더위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안과 병원은 버스에서 내려서 15분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땡볕을 걷는 것이 아주 고역이었다. 병원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었다. 여느 때라면 1층의 검사실에는 사람들이 미어터질 텐데, 뭔가 비수기의 해변가처럼 병원은 한가했다. 나는 5분 정도 기다렸다가 담당 주치의를 만날 수 있었다.<br><br>&nbsp; "이 정도로는 짜도 나올 수 있는 게 없어요. 흉이 질 수도 있구요. 온찜질을 열심히 하세요."<br><br>&nbsp; 나는 좀 당황했다. 거의 한 달 동안 눈이 그런 상태라, 다래끼를 좀 짜면 나을 줄 알았다. 이 의사 양반은 매우 신중하다. 이전에 결막 결석 때문에 찾아갔을 때에도, 결석이 아직 튀어나오지 않았다면서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로서 나는 선택을 해야한다. 의사의 말을 들을 것인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우길 것인지. 만약에 내가 말하는 상대가 인테리어 업자이고, 현관을 원하는 타일 색으로 바꾸고 싶다면 그렇게 요구하면 된다. 하지만 내 앞에서 말하는 이는 의사이다. 짜서 나을 것 같으니 짜달라, 고 말하는 일은 어쩐지 할 수가 없다. 어떤 면에서 내가 이 의사 선생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br><br>&nbsp; 온찜질을 해서 이게 나을 것인지, 솔직히 나는 확신이 가질 않았다. 개 혓바닥처럼 더위에 늘어진 보도블록을 있는 힘을 다해 걸어갔다. 덥다. 너무 덥다. 길가의 슈퍼에서는 중년의 여자가 한 무더기의 옥수수를 쌓아놓고 열심히 껍질을 까고 있었다. 아직도 옥수수를 팔고 있나? 인터넷에서 옥수수는 판매 종료된 지 오래고, 이제는 삶은 옥수수를 냉동한 것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저 여자는 어디서 옥수수를 떼어왔을까? 나는 냉동실에 쟁여놓은 올해의 마지막 옥수수를 떠올렸다.<br><br>&nbsp; 3개의 횡단보도를 건너고서야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에는 뻥튀기 같은 싸구려 과자와 주전부리를 파는 여자가 있었다. 그 옆에는 야쿠르트 카트도 보였다. 머리가 아주 하얗게 센 호리호리한 여자가 야쿠르트 하나를 들이키고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는 그 늙은 여자가 야쿠르트를 사 먹은 손님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야쿠르트 여사였다. 내가 본 야쿠르트 여사들은 보통 3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 여사는 적어도 60 중반은 되어보였다. 정류장에는 햇빛이 인정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어디 하나 피할 데가 없었다. 주전부리를 파는 장사꾼 여자는 더위를 이기려는 듯 혼자서 팔다리를 움직이며 체조를 했다. 그 모습이 마치 가게 앞에서 하릴없이 춤추는 풍선 인형처럼 보였다. 나는 설핏 웃음이 나오려다가, 먹고 산다는 것의 그 무게가 느껴져 서글픈 느낌마저 들었다. <br><br>&nbsp; 전광판을 보니 버스는 10분 뒤에 오기로 되어있었다. 그 10분을 견디기 위해 나는 정류장 옆 건물의 광고판을 하릴없이 들여다보았다.<br><br>&nbsp; '우리 직원 일동은 부킹을 목숨처럼 생각합니다'<br><br>&nbsp; 유흥 주점, 이라는 문구 옆에는 '***나이트클럽'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br><br>&nbsp; '33세 이하는 절대 출입 금지'<br><br>&nbsp; 처음에는 '이하'를 '이상'으로 내가 잘못 읽은 것인가 해서 다시 읽어보았다. 아니었다. 그 나이트클럽은 33세 이하의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중년 남녀 만남의 천국. 최고의 만남을 위해 수질을 보장한다는 문구가 이어졌다.<br><br>&nbsp;이 정류장을 여러 번 오가면서도 여기에 이 나이트클럽이 있었는지는 처음 알았다. 그 빌딩은 금융 기관이 자리하고 있어서 외관이 무척 번듯했다. 금융 기관과 중년 전용 나이트클럽의 기묘한 동거를 나는 여지껏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사는 이 도시에 절실한 만남을 원하는 중년의 남녀들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일까? 나는 부킹을 생명처럼 여기는 그 나이트 클럽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어떠한 것인가도 궁금해졌다.<br><br>&nbsp; 버스가 왔다. 알지 못하는 중년의 남녀들과 나이트 클럽이 스르륵 사라졌다. <br><br>&nbsp; "아이고, 언니들. 너무 반갑네."<br><br>&nbsp; 세 정거장을 지났을 무렵, 나이 든 여자가 버스에 탔다. 쪼리를 신은 맨발의 엄지발톱에는 빨강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볼품없는 작은 발이었다. 버스 뒷편에 여자의 지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늙은 할머니들이었다. 여자의 활기찬 인사에 노인들은 대꾸할 기력도 없는듯 했다. 여자는 창밖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계속 늘어놓았다. <br><br>&nbsp; "아, 저기 좀 봐바. 바람 한 점 안 불어. 너무 더워. 언제까지 더울까, 언제까지? 아마도 9월은 지나야겠지. 그래 9월이 지나야 할 거야. 집안을 다 뒤집어서 청소하고 왔더니 땀이 줄줄 흐르네."<br><br>&nbsp; 여자는 내 뒷자리에 앉았다가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반대편 자리로 옮겼다. 나는 여자의 주절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자리를 옮기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여자가 먼저 자리를 떠서 내심 반가웠다. 여자는 자리를 옮겨 앉더니,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활기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상한 그 활기가 부럽게 느껴졌다. 여자와 그 일행인 늙은 언니들은 나와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다. 아마도 그들은 정류장 옆에 있는 스포츠 센터의 수영장을 다니는 이들 같았다. 수영장의 아쿠아로빅 수업은 언제나 중년의 여자, 노인들로 늘 북적거렸기 때문이다. <br><br>&nbsp; 나는 원시시대에 채집을 하러 갔다가 아무런 소득이 없이 돌아오는 사람처럼 걸었다. 9월이 지나는 동안 다래끼가 낫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 의사를 보게 되면 미워질 것 같았다.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훔쳤다. 개같이 더운 날이었다. <br><br><br><br><br><br>&nbsp;<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완성의 감각</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6714997</link><pubDate>Tue, 02 Sep 2025 20: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6714997</guid><description><![CDATA[<br>완성의 감각&nbsp; <br><br>&nbsp; 아주 짧은 꿈을 꾸었다. 커다란 검은 점이 있었다. 그걸 손으로 잡으려고 하니까, 그 점은 살아 움직이는 벌레로 변했다. 그것이 파리였는지, 아니면 나방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비는 아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꿈에서 깼다. <br><br>&nbsp; 시집을 한 권 완성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모전에 낼 시집이다. 공모전의 요강에 나온 최소 응모 편수는 50편. 당선이 되면 그 시들은 시집으로 묶여서 나온다.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이 되는 것이다. 한 달 동안 블로그를 쉬는 동안, 시 50편을 정리했다. 그 이상한 꿈을 꾼 날은 시집의 구성이 마무리되던 날이었다. 나는 50편의 시들에다 한 편을 더 쓰려다가 그만두었다. 검은 점은 마침표다. 거기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보다는 시를 더 써낼 여력이 없기도 했다.<br><br>&nbsp; 작년에도 김수영 문학상에 응모는 했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시집(詩集)의 시들을 하나의 주제로 유기성 있게 묶기 위해 무척 고심했다는 것이다. 기존에 써놓은 시들 가운데에서 추려서 낼 수 있는 것도 있었고, 이번에 새로 써낸 시들도 있었다. 퇴고는 진저리나게 힘들었다. 이것밖에 쓰질 못하나, 더 나은 시는 써낼 수 없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옥죄었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거, 응모는 하면 뭐하나 싶은 생각도 계속 들었다. <br><br>&nbsp; 응모 편수 50편에 대한 압박은 상당한 것이었다. 어떻게 대충 써서 끼워 맞출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 허점이 보이는 시는 남이 보아도 똑같다. 누군가 좋은 문학적 안목을 지닌 사람이 내 시를 읽어보고 조언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람은 없었다. Chat Gpt는 나름의 어설픈 비평 능력을 보여주며, 일관성도 별로 없다. 나는 어둠 속에서 출구를 찾는 사람처럼 내가 썼던 시들을 읽고 또 고치고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br><br>&nbsp; 시를 썼던 지난 1년 8개월 동안, 나는 응모했던 모든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시인이 되려고 그 공모전들에 응모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써낸 시가 이런 블로그가 아니라, 확장성 있는 지면에서 더 많은 독자와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다. 등단은 그걸 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관문이었다. 그것은 출판사에 투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입장권 같은 것이기도 했다. 매일 쌓이는 출판사 편집장의 이메일에 등단도 하지 않은 지망생의 투고 원고는 휴지통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크다.<br><br>&nbsp; 나는 내가 떨어졌던 공모전의 당선작들을 읽으면서, 이 시대의 시들과 내가 써내는 시들 사이의 어떤 커다란 간극을 확인했다. 좋게 말하면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나만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유행과는 동떨어진 주변부의 지망생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한다. 트렌드를 따라가서 그들의 시작법을 습득해서 써내던가, 아니면 나의 시를 그냥 계속 써내던가. 사설 학원에서 시를 가르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유행을 따라가는 것도 나름의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셈이다. <br><br>&nbsp; 오래전, 시 창작 수업을 들을 때가 떠올랐다. 시인 선생이 무언가를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자, 매주 한 편의 시를 써오도록 하지. 그것으로 끝이었다. 10명 안팎의 수강생들은 한 학기 동안 서로의 시들을 인정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선생은 수업이 끝날 무렵에 무심한 듯 한마디를 보탤 뿐이었다. 선생이 내가 써낸 시에 대해서 무언가를 말했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선생이 등단에 근접했다고 말한 수강생은 그 이듬해에 등단했다. 뭔가 그 세계는 내가 알지못하는 나름의 틀이 있었고, 규칙이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여적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br><br>&nbsp;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거야. 초심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한 편의 글을 완성해 내는 거야. 소설 속 한 장면에 대한 묘사만 기깔나게 써내는 계획은 누구나 갖고 있어. 하지만 기승전결을 갖추어 글을 끝마치는 일은 대다수 초보자에게 무척 힘들어. 그걸 해내는 것, 그래서 완성의 감각을 자꾸 느껴보는 것이 작가로서 진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나는 생각해."<br><br>&nbsp; 이 말을 해준 A는 SF 소설을 쓴다. A는 몇몇 소설 공모전에 입상했고, 최근에는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A의 그 말에 진심으로 공감했다. 하나의 과정을 끝마치는 것. 무언가를 완성해 내는 일은 정말로 힘들다. 글쓰기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어쩌면 글쓰기는 여타 예술 분야와 다르게 진입 장벽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 종이와 펜으로 하나의 완결된 작품을 내놓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 글이 사람들에게 읽히느냐, 읽히지 않느냐는 나중의 문제다. 어떻게든 끝을 내어 써내는 사람 자체가 적다는 뜻이다. <br><br>&nbsp; 나는 내가 시집을 완성하면 도대체 무엇에 쓸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이걸 국으로 끓여 먹을 수도 없고, 어찌 보면 시를 쓴다고 아등바등했던 1년 8개월의 시간들은 그냥 낭비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 낭비의 느낌, 버려진다는 무의미의 느낌이 나는 아주 싫었다. 역설적으로 그 느낌을 떨치기 위해 한 권의 시집을 써내겠다는 나름의 오기같은 것이 생겼다. 그리하여 50편의 시들을 꾸역꾸역 짜맞추어, 하나의 제목이 있는 시집으로 만들었다. A가 말한 그 '완성의 감각'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br><br>&nbsp; 앞으로 내가 시를 계속 쓸지는 모르겠다. 이만큼 써보았으면 되었다 싶은 생각도 든다. 공모전에 시를 보내는 것도 더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시를 쓰면서 느꼈던 답답함을 더 긴 호흡의 소설로 가져가야겠다는 필요성이 생기기도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글쓰기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nbsp;&nbsp; <br><br><br><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알리는 글</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6650147</link><pubDate>Thu, 07 Aug 2025 08: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6650147</guid><description><![CDATA[ &nbsp; 한 달(8월 7일-9월 6일) 동안 블로그는 쉽니다.독자 여러분들이 무더운 여름을 무탈히 보내길 바랍니다.<br>&nbsp; <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개별난방 공사에 대해 생각함 4: 살살 녹는 장기수선충당금</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647274</link><pubDate>Thu, 27 Jun 2024 18: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5647274</guid><description><![CDATA[&nbsp; 지난 글 링크: 개별난방 공사에 대해 생각함 3&nbsp; <br>https://blog.aladin.co.kr/sirius7/15607635<br><br><br>&nbsp; 며칠 전, 아파트 입구 게시판에 입주자대표회의 결과 공지문이 붙어있었다. 늙다리 거수기들의 그렇고 그런 회의록. 그런데 눈길을 끄는 항목이 있었다. 보일러 기사의 계약만료에 관한 것이었다. 계약만료, 해고, 잘리는 것, 뭐 다 똑같은 이야기다. 이제 아파트의 중앙난방 보일러를 담당하는 기사는 더는 필요 없다. 그 직원은 이 더운 여름에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러 나가야 할 것이다. <br><br>&nbsp; 지난 2주 동안은 새 가스관을 매립하는 공사가 있었다. 개별난방을 하게 되면 이전보다 가스 용량의 수요가 엄청나게 커지기 때문에 대용량의 가스관 매설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아파트 주변 도로를 죄다 파헤치고 새로 가스관을 매립해야만 한다. 포크레인이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지막지하게 도로를 깨부수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렇게 파헤치는 도로는 2년 전에 새로 포장한 것이다. 도로포장 사업은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기도 했다. 그동안 낡은 보도블록은 걸을 때마다 패이고 부서져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장기수선충당금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서 마침내 도로 공사를 했다. 그 공사 대금이 내 기억으로는 대략 1억 5천인지, 아무튼 2억 좀 못되는 금액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도로가 파헤쳐지고 있었다. <br><br>&nbsp; 공사업체에서 가스관 매설을 끝내고 다시 포장해 놓은 도로 상태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상태가 좋았던 아스팔트는 중장비로 죄다 긁혀있었고, 보도블록은 너덜더덜한 상태였다. 이 꼬라지가 보기가 그랬던지, 입주자대표회의에서도 말이 나왔던 모양이다. 재포장 공사 입찰을 해서 다시 공사를 하겠다는 거다. 미친 거냐? 장기수선충당금이 지들 돈 아니라고 그렇게 마구 써재끼고 있었다. 웃긴 건, 이 아파트 단지에서 거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집값 오르고, 자기 집 관리비 조금 아끼면 그만인 것이겠지. <br><br>&nbsp; 개별난방 전환공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던 몇몇 사람들의 목소리도 잠잠해졌다. 구청 담당자가 현장 실사를 나왔는지도 알 수 없다. 그 결과에 대해 알려주기로 했는데, 입주자대표회의의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는 아무런 공지문을 내지 않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문제를 제기하려면, 개별난방 전환 안건 상정과 주민 투표 과정에서 했었어야 맞다. 그때는 죄다 쌍수 들고 찬성하더니, 공사 시작하고 다 헤집어 놓는 단계에 와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다니. 그냥 등신인 거겠지. <br><br>&nbsp; 관리사무소에서 게시한 공용부분 개별난방 공사대금은 5억 원이 넘는다. 아마 이번 공사로 장기수선충당금은 바닥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 이 아파트 단지의 필요한 공사 따위는 생각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2년 전에 도로 포장에 쓰여진 억대의 돈은 이번에 길바닥에서 녹아버렸다. 입주자대표회의의 머저리들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었다면 이런 식의 근시안적이고 퇴행적인 사업 추진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걸 보면, 남의 돈 쓰는 일은 참 우스울 정도로 쉽다.<br><br>&nbsp; 요새 아파트 재활용품 분리수거장을 지나가다 보면 오만가지 물품들이 다 나온다. 아마도 다용도실에 보일러를 설치하면서, 다들 그곳에 되는대로 쌓아두었던 살림살이들을 이번 기회에 정리하는 모양새다. 나도 커다란 화분 5개와 오래전에 비싼 돈 주고 산 김치통을 버렸다. 쓰지도 않은 새 김치통은 너무 컸다. 내가 버린 것들은 내놓자마자 누군가 다 가져가 버렸다. 그렇게 이 아파트 사람들은 헌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대신에 새 가전제품과 가구를 들여놓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가전제품 회사와 가구 배달점의 큰 트럭이 드나든다. <br><br>&nbsp; 어제는 엘리베이터에 공사업체의 새 공지문이 나붙었다. 공사대금 마감일을 알리는 종이였다. '공사대금을 마감일까지 납부해주지 않으면, 난방이 개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딜 가나 돈을 늦게 내는 사람들은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그 공지문의 문구는 기묘한 협박조로 들렸다. 저런 업체에서는 돈을 못 받으면 어떤 방식으로 돈을 받아낼까? 미수금을 받기 위해 해당 세대의 문을 두드리나? 아니면 용역 깡패? 설마, 그건 아니겠지. 나는 엘리베이터가 집에 도착하기까지 그렇게 그냥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nbsp;&nbsp; <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개별난방 공사에 대해 생각함 3: 일머리와 곤조</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607635</link><pubDate>Tue, 11 Jun 2024 19: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5607635</guid><description><![CDATA[&nbsp; 지난 글 링크: 개별난방 공사에 대해 생각함 2&nbsp; <br>https://blog.aladin.co.kr/sirius7/15597949<br><br><br>&nbsp; "에이씨, 나 안할 거야!"<br><br>&nbsp; 한 인부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계단에 울려 퍼졌다. 열린 우리집 현관문 사이로 화가 잔뜩 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가 잘 안되어서 저러나 보네... 현장 인부들 가운데 지 성질 못 이기고 저러는 건 그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br><br>&nbsp; "형님, 진짜 힘들어 죽겠어. 뭐가 이렇게 일이 많아."<br>&nbsp; "야, 나도 힘들다."<br>&nbsp; "아, 그럼 나하고 형님하고 일 바꿔서 할까. 바꿔! 바꾸자고."<br><br>&nbsp; 퉁퉁한 남자는 일도 안 하면서, 우리집에서 작업하는 늙은 인부에게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는 잘 알지 못하는 '노가다의 세계'를 TV로 시청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토요일에는 우리 라인의 보일러 공사가 있었다. 공사는 아침 7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졌다. 온갖 소음과 먼지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br><br>&nbsp; 내가 보니까, 이 공사팀은 대략 7명에서 8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서 일을 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부분의 공사를 했다. 대략 정해진 순서에 따라, 앞 공정이 끝나면 다음 공정을 맡은 인부가 그 일을 했다. 하루 종일 대문은 열어놓아야 했는데, 낯선 외부인이 내 집에 그 어떤 예의도 차리지 않고 마구 드나드는 것도 참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그들은 결코 집주인에게 인사를 하지도 않았고, 예의도 없었다. 아침에 제일 먼저 보일러 포장 뜯으러 온 인간은 전등을 켜놓지 않았다면서 큰 소리로 불평했다. <br><br>&nbsp; 내가 이제까지 보아온 그런 현장직 노동자들은 대개 '밝기'에 민감했다. 작업 현장은 무조건 환하게 밝아야만 한다. 이건 아주 환한 대낮에도 적용된다. 낮에도 전등을 켜놓아야만 한다. 나는 아침까지도 집안의 짐을 치우느라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침의 그 노가다는 아주 무례한 인간이어서, 전등불이 안 켜져 있다며 대놓고 성질을 부렸다. 그 더러운 성질머리는 공사로 드나들 때마다 신발을 내팽개치는 소리에서도 드러났다. <br><br>&nbsp; 이런 공사를 하게 되면 용역을 주는, 그러니까 공사비를 지불하는 집주인은 '갑'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을'이 되어버린다. 보일러 시공은 일반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다. 대개 '노가다'로 불리는 사람들은 이제 현장의 전권을 쥐고 있는 전문가 '갑'이 된다. 집주인이 시공이 잘 되어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저, 계약한 대로 공사가 무사히 잘 끝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러니 인부들이 성깔을 부리는 것도 좀 너그럽게 보아야 한다. <br><br>&nbsp; 그런데 중간중간 인부들이 일해놓은 것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수도 배관을 연결할 때는 테플론 테이프로 감아서 연결을 하는데, 그 테이프 감아놓은 꼬라지가 정말 웃겼기 때문이다. 테플론 테이프는 마감이 잘 안되어서 깃발처럼 너덜거리고 있었다. 야, 내가 감아도 저거보다는 더 잘 감겠다. 정말이지 물이나 새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난방 분배기를 교체하느라 깨어놓은 시멘트 덩어리는 분배기함 안쪽에 대충 쌓아두었다. 내가 그걸 치워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곧 그 일을 맡은 인부가 와서 철판으로 그냥 덮어버렸다. 언젠가 TV 뉴스에 나온 인테리어 괴담이 떠올랐다.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고 입주한 집주인이 1년 뒤에 베란다 누수로 바닥을 뜯었더니, 거기엔 온갖 건축 쓰레기가 다 있었다는. 그렇게 분배기함에는 지저분한 시멘트 조각들이 그대로 매장되었다.&nbsp;&nbsp;&nbsp;&nbsp;&nbsp; <br><br>&nbsp; 마침내 작업이 끝났다. 나는 마지막 현장 인부가 내민 작업 확인서에 서명을 해주고 문을 닫았다.&nbsp; <br><br>&nbsp; "일도 못 하면서 곤조는 오지게도 부리네."<br><br>&nbsp; 곤조. 근성(根性, こんじょう)이라는 뜻의 이 일본어는 영화 현장에서도 많이 쓰인다. 오래전의 일이다. 후배의 졸업 작품 상영회에 갔었다. 후배의 작품은 20여분 가량의 단편으로 장르는 드라마였다. 그런데 촬영이 좀 이상했다. 핸드헬드(Hand-held)로 촬영된 화면은 내내 정신 사납게 흔들렸다. 아니, 왜 저걸 저렇게 찍었지? 나는 중간 휴식 시간에 그 후배를 만났다. <br><br>&nbsp; "근데 말이야, 왜 촬영을 그렇게 한 거야?"<br>&nbsp; "아, 그게요. J가 촬영 감독이었는데, 핸드헬드로 하겠다고 빡빡 우겨서... 내가 끝까지 그건 아니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냥 걔한테 밀린 거죠."<br><br>&nbsp; 후배는 아쉬움으로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J는 잘 알고 있었다. J는 자기주장이 강한 편에 속했다. 그게 좀 웃긴 게, 뭔가 대단한 전문가적 능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쓰잘데기 없는 자부심에서 오는 거였다. 아마도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 과정에서 후배와 제작팀은 대략의 작업 과정을 합의했을 것이다. 그런데, J가 정작 로케이션 현장에 가서는 핸드헬드로 찍어야겠다고 곤조를 부렸던 모양이다. 어쩌겠는가. 후배의 졸업작품은 어쩔 수 없이 J의 뜻대로 촬영되었다. <br><br>&nbsp; 1) 일머리도 없으면서 곤조를 부리는 것<br>&nbsp; 2) 맡은 일을 잘하면서 곤조를 부리는 것<br><br>&nbsp; 2번의 경우는 그나마 봐줄 만하지만, 1번을 인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떻게든 1번과 엮이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사람 사는 일이 꼭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보일러 시공 인부들의 곤조 부리기. 나는 그런 것을 관찰하는 것도 작가로서 나름대로 흥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br><br>&nbsp;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다. 전문가는 큰 그림을 생각하고, 책임감 있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 인부들은 보일러 설치를 누군가의 집에 온기와 편안함을 더하는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 대충대충 해버려도 괜찮은 일이었을 뿐이다. 노가다와 전문가의 그 머나먼 간극은 거기에서 발생한다. 나는 수도 배관의 나풀거리는 테플론 테이프를 조심스럽게 감싸주었다. 테프론 테이프도 제대로 감을 줄 모르는 이들에게 '전문가'의 칭호는 결코 합당하지 않다.<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개별난방 공사에 대해 생각함 2: 물욕과 불합리성의 혼란 속으로</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597949</link><pubDate>Fri, 07 Jun 2024 19: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5597949</guid><description><![CDATA[&nbsp; 지난번의 글: 개별난방 공사에 대해 생각함 1편 링크<br>https://blog.aladin.co.kr/sirius7/15583628<br><br><br>&nbsp; 폭풍 전야. 드디어 내일은 대망의, 아니 그 빌어먹을 보일러 공사가 있다. 오늘은 바로 옆라인 공사였는데, 하루 종일 들리는 공사 소음에 귀가 먹먹해졌다. 이번 기회에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보일러'라는 기계는 전자레인지나 세탁기와 같은 가전제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일러는 가스와 냉온수 배관, 난방 분배기와 연결을 해야 하는 복잡한 기계이다. 당연히 보일러의 설치 과정은 까다롭다. 집안에 그런 기계가 들어온다는 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골칫덩이를 장만하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내 생각에는 개별난방이 기존의 중앙난방보다 더 좋은 점은 약간의 난방비 절약밖에 없을 것 같다. <br><br>&nbsp; 내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 단지의 90퍼센트의 입주민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개별난방 전환을 찬성했을까? 물론 기존 중앙난방으로 부과되는 난방비에 대한 불만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보다 아파트 소유주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였을 것이다. 아파트 인근의 2개 단지는 여전히 중앙난방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개별난방 방식으로의 전환은 매매(賣買) 시, 그 아파트 단지 대비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br><br>&nbsp; 그렇다면 이 아파트 단지 보다 더 오래된 그 아파트는 왜 개별난방 전환을 고려하지 않는가? 그곳은 그런 공사 따위에 관심이 없다. 그 아파트 단지에서는 '재건축'을 밀어붙이는 중이다. 어차피 재건축할 거, 개별난방 공사를 해서 뭐하겠는가? 거긴 재건축 추진 위원회가 열심히 활동 중이다. 어떻게든 집값을 올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단순히 먹고 자고 쉬는 곳이 아니라, 거대한 물질적 욕망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br><br>&nbsp; 나처럼 공사 소음과 먼지가 귀찮아서 개별난방 전환에 '반대' 표를 던진 사람은 어떤 면에서 참으로 나이브한 것일지도 모른다. 중앙난방의 비효율성이 정말로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면 우선은 주민들의  전반적인 양해를 얻어서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동대표 회장의 독단적인 안건 상정에 이어 단 한 번의 설명회, 주민 투표, 공사 착수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한마디로 총체적인 불합리성을 내포하고 있다. <br><br>&nbsp; 개별난방 전환 공사는 전체 입주민의 80퍼센트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투표가 부결되면 공사가 이루어지지 않는가?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입주자 대표 회의는 반대표 세대를 설득해서 정족수에 필요한 찬성표를 받아내면 된다. 기존의 찬성표는 그대로 유효표 수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건 최근의 법원 판례를 근거로 한다. 법원은 입주자 대표 회의의 신속한 사업 추진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사에 반대하는 개별 세대의 선택권은 없다고 봐야 한다.<br><br>&nbsp; 지난번 글에서 이제 개별난방 공사에 불만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가칭 '개별난방 공사를 우려하는 입주민 모임'이 실제적인 행동에 나섰다.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그들은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들이 오늘 엘리베이터에 붙인 종이 쪼가리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1) 다음 주에는 담당 주무관이 아파트로 현장 실사를 나오기로 예정되어 있다. 2) 보일러 공사 대금을 업체에 납부하는 일을 유예해달라. 그들이 부과한 보일러 가격과 공사비는 공동구매임에도 별로 저렴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청의 현장 실사가 끝난 후에 납부해도 늦지 않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다. <br><br>&nbsp; 그런데 담당 공무원이 나와서 점검한다 한들 뭐가 달라질까? 시공 과정에서 행정 절차상의 심각한 문제가 없는 이상 공사가 중단되기도 어렵고, 이제는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구청 공무원이 가진 권한은 아주 제한적이다. 그들은 관련 법 규정에 근거한 위법적인 사항만을 지적하고 행정적인 조치만을 부과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그런 부분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면, 시장이 온다고 해도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의 결정을 바꿀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그 기구가 가진 권한은 막강하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는 아파트 단지의 최종 의사 결정 기구로, 입주민은 자신들의 권리를 각 동의 입주자 대표들에게 양도한 것으로 간주된다. 아마도 그 담당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이야기란, '어떻게 싸우지 말고 잘 알아서 하세요', 정도일 것이다.<br><br>&nbsp; 오늘 엘리베이터에는 새로운 공사 일정이 나붙었다. 아파트 단지의 주변 도로를 다 파헤쳐서 새롭게 도시가스 배관을 설치할 거라는 공사 공지였다. 이 작은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의 전망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재건축에 필요한 용적률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재건축 가능성은 별로 없으니, 개별난방 전환으로 집값이나 올리자, 이런 생각으로 90퍼센트의 주민들은 기꺼이 찬성표를 던졌다. 집안 곳곳을 죄다 들쑤시고 뒤집어엎으면서, 거대한 흰 벌레 같은 보일러 호스가 덕지덕지 연결된 거실의 정경은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감격스러울 것이다. 그것이 과연 입주민들의 기대대로 집값 천만 원의 상승을 가져다주겠는가? 내가 살고 있는 이 낡은 집은 그렇게 엄청난 물욕과 총체적인 불합리성이 조우하는 장소가 되어버렸다.&nbsp; <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구글이라는 정보 권력의 성(城) 앞에서(부제: 구글 서치 콘솔에 색인 생성 요청하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590353</link><pubDate>Tue, 04 Jun 2024 20: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5590353</guid><description><![CDATA[<br>&nbsp; 내가 요새 틈이 날 때마다 하는 일이 있다. 구글 서치 콘솔(Google Search Console)에 들어가서 내 블로그 글들의 색인 생성을 요청하는 일이다. 이제까지 써온 영화 글들이 대략 500편 정도이다. 이 글들이 구글 검색 결과에 나오게 하려면, 구글에다가 직접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이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려 500편의 글의 URL을 일일이 클릭해야만 한다. 클릭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구글에다가 '요청'하는 것이지, 그걸 들어주는 건 구글 마음이다.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대로인 셈. 구글이 보기에 내 글이 지들의 검색 결과에 나올 만큼 영양가 없다고 생각하면, 퇴짜를 놓을 수도 있다. <br><br>&nbsp; 아이구, 구글 행님요. 좀 잘 봐주이소. 겉으로는 이렇게 말을 해도, 속으로는 더럽고 치사하다는 생각만 든다. 내 머릿속에는 문득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1980년대와 90년대, 미국 대사관의 비자 신청은 꽤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구불구불, 마치 전국구 맛집의 대기 줄처럼 미국 대사관 앞에서 비자 신청을 하려고 기다리는 이들은 무작정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 신청을 하기 위해 기나긴 줄을 선 이들의 사진은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대국이 가지는 힘을 상징했다. 구글 서치 콘솔을 드나들면서 내 많은 글의 URL을 일일이 찍는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딱, 그 사진 생각이 났다. 천조국 미국은 구글이며, 나는 그 구글 왕국의 방문 비자를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br><br>&nbsp; 사실 나는 최근까지도 '구글 서치 콘솔'이 뭔지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자신의 블로그 개설기에 대해 쓴 글을 읽었다. '블로그의 글이 구글 검색에 나오게 하려면, 구글에 직접 글의 색인 생성을 요청해야 합니다'는 구절에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내가 글을 쫙 쓰면 구글 갸들이 다 알아서 검색하도록 해주는 거 아니었어? 정말로 나는 그렇게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내 구글 블로그는 원래 알라딘 서재의 영화 글 백업 창고 개념의 블로그였다. 그런데 그쪽 블로그의 방문자 유입은 아주 적었다. 나는 그 블로거의 글을 읽고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건 내 블로그 글이 구글 검색 결과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면, '내 글이 검색 결과에 나오게 해주십사' 나는 구글에 정중하게 요청해야 하는 거였다.<br><br>&nbsp; 나처럼 구글 왕국 행 방문 티켓을 얻으려는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블로그로 금전적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더욱더 열심히 구글의 대문을 두드리고 두드릴 것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글, 콘텐츠가 구글 검색 결과에 나와야지 사람들이 와서 볼 테니까. 구글은 그런 많은 사람들의 요청에 즉시 응답하지 않는다. 아니, 하기 어렵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구글의 입장은 이러하다. <br><br>&nbsp; "우리 시스템에는 매일 엄청난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 우리가 그걸 다 들어주려면 시스템에 부하가 걸려. 그러니 시간이 걸린다고. 기다리던가, 아니면 당신이 직접 우리에게 당신 글이 인터넷의 어디쯤에 있는지 찾아서 알려줘. 물론 그렇게 알려줘도 언제 등록이 될지 확답은 줄 수 없어."<br><br>&nbsp; 산더미처럼 쌓인 곰 인형의 눈알 붙이기 부업. 구글 서치 콘솔에다가 500편이 넘는 글의 URL을 찍고 있는 내 모양새가 그러하다.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을까? 그건 내 새끼들, 내 피와 시간과 정신이 들어간 그 글들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는 속담. 여기에서 '함함하다'는 말은 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는 뜻이다. 나에게는 함함하기 그지없는 그 글이 구글의 이름표를 달고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딱, 그것뿐이다. <br><br>&nbsp; 나에게는 아직도 인터넷으로 눈알을 붙여주어야 할 곰인형이 300개나 남아있다. 구글은 하루에 기껏해야 10여 개 안팎의 색인 생성 요청을 받아들인다. 나는 새삼 새로운 시대의 정보 권력자 구글의 위엄을 실감한다. 그것은 나에게 카프카가 쓴 '성(城)'의 거대한 성문 벽 앞의 한 인간을 떠올리게 만든다.&nbsp;&nbsp; &nbsp; <br>&nbsp; <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개별난방 전환 공사에 대해 생각함 1: 이 공사, 난 반대일세!</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583628</link><pubDate>Sat, 01 Jun 2024 20: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5583628</guid><description><![CDATA[<br>&nbsp; 주방 가위를 찾기 위해 나는 방 2개를 왔다 갔다 했다. 이곳저곳을 훑어보고 나서야 가위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내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는가? 아니다. 지금 집안은 난민 캠프를 방불케 한다. 작은 방에는 생수가 쌓여있고, 다른 방에는 세탁 세제와 항아리며 잡다한 살림살이가 자리하고 있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바로 '개별난방 전환 공사'이다. 내가 살고 있는 32년 된 이 구축 아파트는 중앙난방에서 개별난방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400 세대가 못 되는 이 작은 아파트 단지는 거대한 공사판으로 변했고, 하루 종일 공사 소음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끔찍하다. <br><br>&nbsp; 작년 겨울의 일이었다. 동대표 영감탱이가 어디서 무슨 소리를 주워듣고는 귀가 펄럭였던 모양이다. 갑자기 '개별난방 전환 공사'를 입주자 대표 회의 안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더니 입주민을 위한 설명회가 얼마 지나지 않아 열렸다. 그 설명회에 주민 몇 명이 참석했는지는 모른다. 관리사무소에서는 방송으로 내보내길, 많은 입주민이 개별난방 전환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곧 개별난방 전환 찬반 투표가 실시되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나는 그냥 부결되려니 했다. 공사가 시작되려면, 전체 입주민의 80퍼센트 이상이 찬성을 해야 한다. 나는 반대 입장이었다. 그 지난한 공사는 생각만 해도 귀찮았다. <br><br>&nbsp; 물론 겨울이면 난방비가 많이 나오기는 했다. 특히 가스 요금 인상률이 무척 높았던 작년 겨울은 난방비만 30만 원 가까이 나왔다. 주민들 사이에서 난방과 관련한 이런 저런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난방을 넣는 날씨와 시간대로 인한 민원도 매해 반복되는 문제였다. 그런 불편함이 있기는 해도, 중앙난방에 익숙해진 나는 구태여 개별난방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겨울만 그럭저럭 넘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다수 주민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무려 90퍼센트가 넘는 압도적 찬성률로 개별난방 전환이 결정되었다. 그 결정에는 공사가 완료되면 '집값이 오른다'는 장밋빛 전망도 깔려있었다. 우리집 포함, '반대' 표는 겨우 20세대 정도였다. <br><br>&nbsp; 그래서 오늘, 1차 공사로 가스계량기 교체와 가스관 연결 공사가 이루어졌다. 관리사무소의 공지문에는 다용도실을 치워달라고 적혀 있었다. 공사 1주일 전부터 나는 다용도실의 짐을 빼내었다. 무슨 화수분처럼 살림살이가 나왔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그릇과 화분도 있었다. 그것들을 내다 버리는 것도 일이었다. 공사를 하게 되면 먼지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그 먼지들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부엌의 잡다한 물건들도 치워놓아야 했다. 내가 오늘 주방 가위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br><br>&nbsp; 입주민 찬반 투표에서부터 시공사와 보일러 선정, 이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과연 그 세부적인 결정이 얼마나 투명한 걸까? 겨우 몇 명의 입주자 대표라는 사람들이 거수기처럼 참석하는 회의와 회장 주도의 사업 추진은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찬성표를 던진 90퍼센트의 주민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불만과 균열의 지점은 엊그제 엘리베이터에 붙은 종이 쪼가리 하나에서 드러난다. <br><br>&nbsp; 자칭 '개별난방 공사를 우려하는 모임'이라는 사람들이 글을 써 붙여놓았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사 내용과 상황이 주민들에게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있다. 공사 업체에 입주민의 불만을 전달하고 시정을 요청하려고 한다. 뜻이 있는 입주민분들은 일요일 저녁 8시에 주민회관에 모여달라.<br><br>&nbsp; "웃기고 자빠졌네."<br><br>&nbsp; 그걸 읽자마자 그 말이 나왔다. 아니, 그럴 거면 공사 전에 입주자 대표회의 방청 신청을 하고 발언을 하던가,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넣던가 해야지. 이제 와서 도대체 뭘 하자는 건가. 이미 아파트 전체가 공사판으로 변한 마당에. 머저리들. 버스 떠난 다음에 등신처럼 손 흔드는 격이다. 공사 업체에 뭔 요구를 한다는 건가? 공사 완료 기념 열쇠고리라도 받아내겠다는 건가? 그 거지같은 종이 쪼가리는 멸시 받아 마땅하다.<br><br>&nbsp; 일주일 뒤에는 보일러 설치 공사가 있다. 또 한 번 이 집은 먼지와 소음에 휩싸일 것이다. 이 공사를 해서 얼마나 세대 난방비가 절약될지는 나도 모른다. 나는 원치 않는 공사를 다수결이라는 다수의 횡포로 한 달 넘게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사는 8월 말이 되어서야 끝날 예정이다. 개별난방 전환 공사는 아파트라는 애증의 주거공간과 입주자 대표회의라는 불투명한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불신만을 나에게 각인시키고 있다.&nbsp;&nbsp;&nbsp; <br><br>&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영화 시크릿 네임(La Place d‘une autre, 2021)의 숨겨진 이야기 </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556763</link><pubDate>Wed, 22 May 2024 22: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5556763</guid><description><![CDATA[&nbsp; *이 글에는 영화 '비밀과 거짓말: 시크릿 네임(2021)'의 결말이 들어있습니다. <br><br><br>1. 밑바닥 인생 넬리의 선택<br><br>&nbsp; 케이블 방송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채널은 국회방송(NATV)입니다. 외국의 다양한 다큐는 물론 괜찮은 영화도 방영합니다. 특히 '다양성 영화관'이라는 프로그램이 눈길을 끕니다. 주로 제 3세계 영화들, 아시아권을 비롯해 유럽 변방 국가의 영화들을 선정해서 틀어주거든요. 그 영화들의 작품성이 균일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일반 시청자들이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특색있는 영화들을 틀어준다는 데에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국회방송에서 방영한 프랑스 영화 '시크릿 네임(La Place d'une autre, 2021)'도 흥미로웠습니다.<br><br>&nbsp; 이 영화의 한국어 제목은 좀 길어요. '비밀과 거짓말: 시크릿 네임'이 한국어 제목이고, 영어 제목은 'Secret Name'이죠. 프랑스어 제목 'La Place d'une autre'은 번역을 해보면 '타인의 장소'가 되더군요. 제목부터 번잡스럽고 뭔가 의문을 품게 만드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다른 사람 행세를 하거든요. 영화의 초반부만 보면, 약간의 스릴러 느낌도 있구요. 자, 그럼 영화 '시크릿 네임'의 주인공은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죠.<br><br>&nbsp;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910년대, 여자 주인공 넬리는 고아입니다. 하녀 생활을 하던 넬리는 주인집 남자의 추근거림을 견디지 못하고 나옵니다. 하층민 고아 여성의 삶은 고단할 수 밖에 없지요. 별다른 일자리를 얻지 못한 넬리는 길바닥에서 구걸하는 신세가 됩니다. 그런 넬리에게 적십자사의 여성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요. 넬리는 간호사의 일을 배우고, 전장에 파견됩니다. 1차 세계 대전이 터졌거든요. <br><br>&nbsp; 전쟁터는 매우 참혹한 곳이지요. 그렇지만 넬리는 놀라운 적응력과 활달한 성품으로 간호사 일을 잘 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즈'라는 이름의 스위스 여성이 프랑스군 막사에 머물게 됩니다. 로즈는 프랑스로 가야하는데, 전쟁통에 길을 잃었어요. 로즈는 넬리에게 프랑스에 있는 엘레노어 부인이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로즈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지인인 엘레노어 부인이 후견인이 되어줄 수 있다고 믿죠. 상류층 여성이기는 해도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를 잃은 로즈 앞에 놓인 삶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군요. 그렇게 넬리와 로즈, 두 여성이 잠깐 통성명하는 사이에 폭탄이 떨어집니다. 쾅, 로즈는 죽고 넬리는 겨우 목숨을 건지죠. <br><br>&nbsp; 넬리는 무척 영리한 여성이에요. 넬리는 재빨리 로즈의 소지품을 챙기고, 로즈의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네, 넬리는 로즈의 삶을 살아보려는 겁니다. 어렵사리 전쟁터를 빠져나온 넬리는 엘레노어 부인이 있는 낭시로 향합니다. 그리고 곧 부인을 만나죠. 부유한 사교계 인물인 엘레노어 부인은 로즈를, 아니 로즈 행세를 하는 넬리를 환대합니다. 특유의 붙임성과 신실한 태도로 넬리는 부인이 신뢰하는 손님이 되죠. 손님이라기보다는, 우리말의 '수양딸'이 더 어울리는 단어겠군요. <br><br>&nbsp; 넬리는 자신의 신분이 탄로날까봐 좀 불안하기는 하죠. 그건 영화를 보는 관객도 마찬가지구요. 넬리는 충분히 불우한 삶을 살았거든요. 넬리가 로즈에게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로즈는 전쟁통에 불운하게 죽었으니까요. 부인에게는 목사인 조카 줄리앙이 있는데, 그도 넬리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엘레노어 부인은 넬리를 더 아끼게 되고, 사교계에도 소개하려고 하죠. 이제 넬리에게 꽃길만 펼쳐지는 걸까요? 그런데, 운명의 검은 그림자가 넬리에게 다가옵니다. 죽은 줄 알았던 로즈가 짠, 하고 나타나는 거죠. 넬리는 자신의 사교계 데뷔 파티에 나타난 로즈를 보고 기절해 버립니다. <br><br>&nbsp; 오, 영화가 꽤나 흥미진진해집니다. 과연 넬리는 어떻게 될까요? 넬리의 정체를 알게 된 엘레노어 부인은 어떻게 할까요? 로즈는 길길이 날뛰면서 넬리가 자신의 행세를 하는 가짜라고 외치죠. 그런데 거렁뱅이같은 행색의 로즈의 말을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부인은 넬리를 철썩같이 믿습니다. 넬리는 로즈만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면 자신의 평화로운 삶이 이어질 수 있다고 믿죠. <br><br>&nbsp; 이후 넬리와 로즈의 대결은 스릴러물의 경로를 따라갑니다. 관객들도 손에 땀을 쥐게 되죠. 줄리앙은 넬리가 진짜 로즈인지 적십자사의 기록이며 전쟁 때 로즈와 함께 일했던 군의관까지 만나봅니다. 로즈는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며 정신병원에 갇히고요. 와우, 이 영화 어떻게 되어가는 걸까요?<br><br>&nbsp; 그런데 영화 '시크릿 네임'은 중반부가 지나면서 이야기의 힘을 잃어갑니다. 넬리는 로즈가 겪는 고초를 외면하질 못해요. 넬리는 결국 자신이 로즈 행세를 했다는 걸 부인과 줄리앙에게 고백합니다. 그러고 나서 길거리 여성들이 머무는 구빈원으로 가버리죠. 엘레노어 부인은 그런 넬리를 찾아와서 같이 살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넬리는 미국행을 결심합니다. 영화는 거기에서 딱, 끝나버립니다. 대체 이 허망한 결말은 뭔가요? 스릴러물도 아니고, 로맨스도 아니고, 뭔가 감동이 있는 드라마도 아닌 '시크릿 네임'은 너무나도 아쉬움이 남는 영화에요.<br><br>&nbsp; <br>2. 소설 'The New Magdalen(1873)'과 Wilkie Collins(1824-1889)<br><br>&nbsp; 나는 영화 '시크릿 네임'이 뭔가 더 말해주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찬찬히 읽어봤죠. 영화의 시나리오는 원작이 되는 소설을 바탕으로 쓰여졌어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작가인 Wilkie Collins(1824-1889)가 쓴 'The New Magdalen(1873)'이라는 소설이었죠. 제목의 '막달레나'는 신약 성서 속의 창녀 막달레나가 맞아요. 소설은 중편 소설의 분량입니다. 오래전에 저작권이 풀린 작품이라 인터넷으로 원본을 구해서 읽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Project Gutenberg: Free eBooks www.gutenberg.org). 나는 원작 소설이 궁금해서 한번 읽어보았어요. <br><br>&nbsp; 거리의 밑바닥 생활을 전전한 여자 주인공 Mercy Merrick이 영화의 넬리입니다. 로즈는 'Grace Roseberry'라는 이름으로 나오고요. 성씨의 로즈베리에서 로즈의 이름을 따온 것이 재밌군요. 엘레노어 부인은 Lady Janet으로 나옵니다. 재닛 부인의 조카 줄리앙은 영화와 이름이 같습니다. 주요 등장 인물이 하나 더 있죠. 재닛 부인의 지인으로 중산층 남성인 Horace입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영화와 거의 비슷합니다. 시대적 배경은 영화 속 1차 대전이 아닌 '프랑스 프로이센 전쟁(Franco-Prussian War, 1870-1871)'이구요. <br><br>&nbsp; 원작 소설에서 호레이스는 머시(영화의 넬리)와 사랑에 빠집니다. 줄리앙도 넬리를 사랑하게 되죠. 좀 통속적인 삼각관계 로맨스군요. 이 로맨스는 그레이스의 등장으로 와장창, 깨져버립니다. 그레이스는 머시를 사기꾼 범죄자로 비난하며, 머시의 천한 신분을 비웃습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고아 출신의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머시에게 온정을 느끼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는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소설 속 머시의 과거에는 매춘부로 살았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화의 넬리가 그냥 거지로 살았던 것과는 좀 다르죠. 말하자면 소설 '새로운 막달레나'의 머시는 진짜 영락한 하층민 여성의 전형적인 인물인 셈입니다.<br><br>&nbsp; 작가 윌키 콜린스는 최하층민 출신인 머시를 인간적인 품격이 있는 여성으로 그려냅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묘사되는 인물은 그레이스입니다. 이 상류층 출신의 여성은 오만하며 이기적인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재닛 부인이 그레이스의 신분을 알고 나서도 머시에게 마음을 거두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 소설이 쓰여진 시대가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결한 여왕이 다스리는 영국에서 '가정'은 도덕적 가치를 대표하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죠. 그런데 소설 '새로운 막달레나'는 그 가정에 매춘부 출신의 여성이 중심인물로 자리합니다. 작가 윌키 콜린스는 그런 면에서 아주 남다른 시대적 감수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어요. <br><br>&nbsp; 나는 작가 '윌키 콜린스'의 이름은 진짜 처음으로 들어봤습니다. 영화 '시크릿 네임'을 보고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영문 위키에 나온 작가의 이력을 읽어보니, 동시대 영국의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와 교류도 했을 만큼 이름있는 작가였습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분야는 주로 추리소설이었어요. 소설 'The New Magdalen'은 콜린스에게 약간 막간극 같은 느낌을 주죠. 이 소설은 그의 주요 작품 목록에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막달레나'는 그의 당대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오죽 인기가 있었으면 연극으로까지 상연되었을까요. 콜린스는 소설을 희곡으로 직접 각색도 했습니다. 나는 희곡도 읽어보려다가 그만두었어요. 뭐 소설하고 같은 내용일 테니까요. <br><br>&nbsp; 소설의 인기는 콜린스 사후에 무성 영화 시절로도 이어집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무성 영화가 여러 편 있는 걸 보고 좀 놀랐습니다. 그걸 구해서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검색되는 자료가 없어서 아쉽더군요. 결국 그 무성영화 시절의 유산이 프랑스 영화 '시크릿 네임(La Place d'une autre, 2021)'로 이어진 것이지요. 참으로 놀라운 생명력입니다. <br><br>&nbsp; 그렇다면 왜 그렇게 이 소설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을까요? 그건 '새로운 막달레나'에 내포된 사회비판적 메시지 때문일 겁니다. 소설에서 머시의 신분이 탄로 나면서 호레이스는 머시에게서 등을 돌립니다. 매춘부 여성은 신성한 가정의 여주인이 될 수 없었으니까요. 목사인 줄리앙만이 머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함께 합니다. 재닛 부인은 둘의 사랑을 묵인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줄리앙과 머시는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지요. 신대륙 미국만이 신분과 과거를 뛰어넘은 사랑을 포용할 수 있으니까요. 윌키 콜린스는 불행한 매춘부에게 자비(여주인공 Mercy의 이름 그대로)를 베풀지 않는 당시 영국 사회의 폐쇄성과 이중성을 에둘러 비판합니다.&nbsp;&nbsp; <br><br>&nbsp; 한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윌키 콜린스 자신의 경험이 어느 정도 소설에 투영되었다는 겁니다. 콜린스는 이른바 '두 집 살림'을 하면서 살았거든요. 그는 애 딸린 과부와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그 두 여자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살았어요. 그런 콜린스에게 동시대 사람들이 큰 돌맹이는 아니더라도 작은 돌맹이라도 던졌겠지요. 그의 행실은 분명히 비도덕적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콜린스는 '두 집 살림'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아마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고수하며 살았던 모양입니다. 콜린스는 자신에게 비난을 퍼붓는 이들이 가식적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러는 너희들은 뭐 얼마나 깨끗하냐, 이렇게 소리 지르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빅토리아 시대라는 번지르르한 도덕 우위의 시대에 위선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br><br>&nbsp; 결국 영화 '시크릿 네임'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여정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나에게는 즐거운 여정이었어요. 한 편의 영화는 그렇게 접혀진 새로운 길을 보여줍니다. 거기에는 인간과 시대, 놀라운 이야기들이 들어있어요. 독자 여러분들에게 나의 이 글도 그러한 것이 되길 바랍니다.<br><br><br>*사진 출처: themoviedb.org<br><br><br>**사진 출처: en.wikipedia.org&nbsp; 작가 Wilkie Collins(1824-1889)<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522/pimg_741289193430187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556763</link></image></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클레어의 카메라(2018): 홍상수의 진심, 혹은 내밀한 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542873</link><pubDate>Thu, 16 May 2024 22: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5542873</guid><description><![CDATA[&nbsp; &nbsp; 만희(김민희 분)는 영화사 직원입니다. 만희는 지금 칸(Cannes)에 머물고 있어요. 영화사의 일 때문에 출장을 온 거죠. 한창 바쁘게 일하던 만희는 상사인 양혜의 호출을 받습니다. 카페에서 만희와 마주앉은 양혜는 만희의 해고를 통보합니다. 양혜는 만희가 정직하지 않기 때문에 함께 일할 수 없다고 말하지요. 만희는 자신의 어떤 점이 정직하지 않은 것이냐고 묻지만, 양혜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만희는 상사의 말대로 정말 정직하지 못한 사람일까요? 도대체 상사 양혜는 무슨 이유로 5년 동안 함께 일해온 부하 직원 만희를 해고한 것일까요?<br><br>&nbsp; 홍상수의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Claire's Camera, 2018)'는 낯선 타국의 휴양지에서 그렇게 해고 통보를 받은 만희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만희의 이야기라고 하기도 그렇군요. 만희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해두죠.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클레어(이자벨 위페르 분)의 카메라를 통해 전달됩니다. 클레어는 칸에 온 관광객인데 우연히 만희와 만나게 됩니다. 클레어의 우연한 만남은 만희의 상사 양혜, 영화감독 소완수와도 이어지고요. 홍상수의 영화에서 '우연'이 이야기에 색을 입히고, 그 얼개를 짜임새 있게 만드는 건 하나의 공식 같아요. '클레어의 카메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br><br>&nbsp; 과연 만희가 해고당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양혜가 만희를 해고한 다음의 시퀀스에 그 답이 들어있습니다. 양혜와 영화감독 소완수는 칸의 해변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죠. 양혜는 만희가 소완수와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소완수는 양혜가 영화사 대표로서 후원하는 감독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두 사람은 연인 사이입니다. 소완수는 양혜에게 만희와의 일이 술에 취해서 저지른 실수라고 말해요. 그는 앞으로 그런 실수는 없을 거라는 다짐도 합니다.<br><br>&nbsp;클레어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입니다. 곧 칸의 관광객 클레어의 카메라는 만희, 양혜, 소 감독의 얼굴을 담아냅니다. 양혜와 소 감독은 클레어가 찍은 만희의 사진을 보게 되지요. 만희는 클레어가 보여준 사진에서 양혜와 소 감독을 발견하구요. 클레어의 사진은 잃어버린 조각 퍼즐의 일부분 같아요. 그 사진은 거기에 찍힌 사람들이 말하지 않은 진실을 담고 있어요. 양혜는 사진 속 만희의 화장한 모습에 놀랍니다. 양혜는 5년 동안 만희가 그렇게 화장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만희도 클레어가 찍은 소 감독의 사진을 봅니다. 클레어는 술에 취한 소감독이 어떤 여자와 함께 있었다고 말하죠. 만희는 클레어가 묘사한 여자의 모습을 듣고 양혜일 거라 짐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해고된 진짜 이유가 양혜의 질투였음을 알게 되지요.<br><br>&nbsp;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의 한국어 wikipedia에서 아주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어요. 영화에서는 배우 정진영이 소완수 감독 역을 연기하는데, wikipedia의 정진영의 캐스팅 항목에 소완수가 아닌 '홍상수 감독' 역이라고 되어있는 거예요. 아마 누군가 살짝 장난을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떤 면으로는 그 삐딱한 장난이 진실을 담고 있기도 해요. 누가 보더라도 영화 속 소완수는 홍상수, 라는 사람 그 자체에요. <br><br>&nbsp; 만희는 소 감독의 옛 제자와 우연히(역시, 우연이군요) 마주칩니다. 그 제자는 소 감독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술 마시며 보냈다고 말하죠. 네, 그건 홍상수의 이야기입니다. 영상원 영화과 교수로 있던 시절의 홍상수가 그랬으니까요. 나는 홍상수가 학생들과 워크숍이나 영화 촬영 나갔을 때, 현장에는 늘 소주가 상자째 산처럼 쌓여있었다는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듣곤 했습니다. 홍상수의 영화는 진짜 술에 취해서, 술의 힘으로 만들어진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죠. 배우들은 술에 취한 척하는 게 아니고, 진짜 술을 마시고 연기하니까요. 영화 속 소완수 역을 연기한 정진영도 진짜 소주를 마시고 그렇게 연기했을 겁니다. 진정한 '소주 무비(soju movie, 해외 평론가들이 홍상수의 영화를 일컫는 말)'의 완성이죠. 그리하여 소완수는 클레어가 찍은 만희 사진을 보고 마음이 괴로워져서 진창 술을 마시고 취합니다.<br><br>&nbsp; 클레어의 카메라, 참 제목은 그럴듯해요. 그렇다면 클레어는 왜 그렇게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의 얼굴을 마구(!) 사진 찍는 걸까요? 만희는 클레어에게 사진을 찍는 이유를 묻습니다. 클레어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br><br>&nbsp; "Because the only way to change things is to look at everything again very slowly."<br>&nbsp;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걸 매우 찬찬히, 다시 잘 살펴보는 것이라서 그래요)<br><br>&nbsp; 클레어에게 사진은 단지 과거의 멈춰진 순간이 담긴 것이 아닙니다. 그건 찍힌 순간부터 계속 변화하고 있는 거예요. 클레어는 소완수에게 사진 속 인물이 사진에 찍히기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찍은 소완수의 사진도 그렇다고 말하면서요. 이 무슨 알쏭달쏭한 수수께끼 같은 말인가요? 클레어의 사진은 그것을 보는 사람이 그 사진을 보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그 경험 자체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그 당시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 미처 깨닫지 못한 진실이 사진을 통해 흘러나오는 거죠. 홍상수에게 '영화'는 클레어의 '카메라'로 치환될 수 있는 거겠죠. <br><br>&nbsp; 영화 속 만희가 만난 소 감독의 제자는 '영화는 솔직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잠깐만요, 이건 '동어 반복(tautology)'이군요. 홍상수의 영화 '우리의 하루(In Our Day, 2023)'에서 배우 상원이 하는 말과 똑같거든요. 영화 속에서 전직 배우 상원(김민희 분)은 배우가 되려면 '솔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영화감독, 작가로서 홍상수는 자신이 만드는 영화에 진심을 담아서, 진짜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클레어의 카메라'는 그런 면에서 솔직한, 너무나도 솔직한 영화입니다. 어떤 부분이 그렇게 솔직할까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배우 김민희에 대한 진심이죠, 뭐.<br><br>&nbsp; '클레어의 카메라'에서 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던 부분이 있어요. 소완수는 리셉션 파티에서 만희와 마주칩니다. 만희는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죠. 소완수는 만희가 남들의 눈요깃감이나 되는, 형편없는 옷차림을 하고 있다면서 비난을 퍼붓습니다. 아니, 자기가 대체 만희한테 뭔데요. 애인도 남편도 아니면서, 겨우 하룻밤 같이 잤을 뿐이잖아요. 소완수의 그런 질타를 받고는 만희가 보여주는 태도도 웃깁니다. 만희는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요. 감독님 말이 다 맞다면서 고개를 떨구죠. 아, 이건 사랑에 빠진 남녀의 모습 아니던가요? 물론 클레어의 카메라는 그 순간의 만희도 담아냅니다. <br><br>&nbsp; 내게는 클레어의 직업이 '교사'라는 점이 나름대로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카메라를 든 클레어는 만희가 스스로의 마음을 살펴보게 만드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중요한 쇼트가 있어요. 클레어가 해변가 도로 아래의 지하로 들어가는 장면이죠. 글쎄, 관객은 그게 정확히 지하보도인지 동굴인지 잘 알 수는 없어요. 인터뷰(씨네 21, 2018년 홍상수와의 인터뷰 기사 참조)에서 홍상수는 '동굴'이라고 말하더군요. 해변으로 연결된 계단을 내려오던 클레어는 그 동굴로 쓱, 들어가서는 갑자기 사라집니다. 다른 시각, 같은 장소를 만희도 지나가는데 만희는 그곳을 그냥 지나쳐 버리죠. 홍상수는 그 장면을 꽤나 공들여 찍었어요. 거기가 어디인지 알고서 들어가는 사람, 모르니까 그냥 지나치는 사람의 차이일까요? 만희는 클레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이 미처 몰랐던 마음속 진실을 들여다 보게 되는 거죠. 짧은 바지를 입은 자신을 향해 길길이 날뛰는 술고래 감독에 대한 '사랑' 말입니다. <br><br>&nbsp; '우린 사랑하고 있어요.' 홍상수는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를 통해 솔직하게 그렇게 말하죠. 아주, 매우, 너무 솔직합니다. 홍상수는 작가로서 진실된 사람이에요. 그의 진실이 반드시 세상의 도덕과는 일치하지 않지만요. 배우 김민희와의 관계를 공식화한 이 영화를 기점으로 홍상수는 한국 영화 평단에서 차츰 지워지기 시작해요. 그에게 덕지덕지 붙여졌던 온갖 상찬(賞讚)은 가을 낙엽이 되어 우수수 떨어지더군요. 어쩌겠어요. 그건 그의 선택이고, 그 선택에 따른 대가도 치루어야 하는 거겠죠. '클레어의 카메라'에 담긴 홍상수의 솔직함, 진심이 불쾌하다고 느낄 관객들도 많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 영화는 홍상수의 아주 내밀한 일기의 한 부분처럼 다가옵니다. 남에게 자신의 일기를 보여주는 일도 때론 용기가 필요해요. 그 용기 하나만은 칭찬해 주고 싶더군요.&nbsp;&nbsp; <br><br><br>*사진 출처: themoviedb.org&nbsp; <br><br><br><br>**홍상수의 영화 '우리의 하루(In Our Day, 2023)' 리뷰<br>https://sirius1001.blogspot.com/2024/04/in-our-day-2023.html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516/pimg_741289193429595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542873</link></image></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영화 &amp;lt;팔도강산&amp;gt; 연작: 개발독재 시대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영화 </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528757</link><pubDate>Fri, 10 May 2024 19: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5528757</guid><description><![CDATA[&nbsp; 영화 &lt;팔도강산&gt; 연작: 개발독재 시대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영화 <br><br><br><br>팔도강산(Paldogangsan, 1967)<br><br>속 팔도강산(The Land of Korea, 1968) <br><br>내일의 팔도강산(Tomorrow's Scenery of Korea, 1971)<br><br><br>1.<br>&nbsp; 유선방송의 'KTV 국민방송'은 국정홍보 채널입니다. 그 채널의 대부분을 채우는 프로그램은 '우리 정부는 아주 잘 해내고 있다'를 선전하고 있죠. 그렇다고 정권 홍보물만 만들어 방영하는 건 아닙니다. 흘러간 옛날 드라마나 한국 영화도 틀어줍니다. 얼마 전에 KTV에서 한국 영화 '팔도강산' 시리즈를 방영하더군요. 영화 '팔도강산' 연작은 박정희 정권의 국정 홍보 영화로 시작되었는데, 의외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시리즈물로 나오게 되었죠. 이후에 '팔도'라는 제목이 들어간 한국 영화 제작 붐을 일으킬 정도였으니까요. 자, 그렇다면 그 원조 격인 영화 '팔도강산' 초창기 3부작에 어떤 재미가 있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br><br>&nbsp; '팔도강산' 3부작의 주인공은 김희갑, 황정순 부부와 그 자녀들입니다. 노부부의 자식들은 모두 결혼해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어요. 부부는 자식들이 사는 모습을 살피려 여행을 떠납니다. 1편에 해당하는 1967년의 '팔도강산'은 부부의 국내 유람 편을 담고 있구요. 부부의 자식들은 각자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이 사는 모습은 모두 한국의 산업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요. 말하자면 그들은 경제발전에 일조하는 충실한 산업 역군인 셈입니다. 그 모습은 당시 박정희 정권이 추진하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도 맞물려 있죠. 이 영화의 제작사가 '국립영화제작소'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br><br>&nbsp; '팔도강산(1967)'은 나름 유쾌한 프로파간다 영화입니다. 그것이 그 이듬해에 제작된 '속 팔도강산(The Land of Korea, 1968)'에 이르러서는 좀 더 노골적으로 나타납니다. '속 팔도강산'은 부제가 '세계를 간다'입니다. 김희갑은 서독에 있는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길에 해외 유람을 하게 되죠. 그의 자녀들이 해외 각지에 살고 있거든요. 김희갑이 미국에 들렀을 때, 그는 '한국 가발'의 우수성을 알게 됩니다. '가발'은 당시 우리나라의 주요한 수출 품목 가운데 하나였으니까요. 자랑할 것이 얼마나 없으면 '가발'을 홍보했을까 싶어서, 웃음이 나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br><br>&nbsp; 그 영화가 제작될 당시에, 박정희 정권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아직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한국은 경공업 제품 수출에 머물러 있을 때였으니까요. 뭔가 '뽀대나는' 수출 품목을 보여줄 수 있었다면 그걸 보여줬겠죠.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보여줄 건 '한국 사람'과 '개척 정신'입니다. 미국을 떠난 김희갑은 브라질 이민을 떠난 사위 박노식을 만나러 가요. 그는 사위가 대농장을 일구는 농장주가 되었음을 알고 뿌듯해하죠.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니었어요. 경험 부족으로 농장 개척에 실패한 사위는 주정뱅이가 되어버렸거든요. 그걸 알게 된 손아랫동서 신영균은 자신의 사업자금을 털어서 박노식에게 도움을 줍니다.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면 된다'의 정신으로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것. 그것이야말로 개발도상국 한국의 국민에게 필요한 도전 정신이 아닌가요? <br><br>&nbsp; 김희갑은 해외 여행길에 네덜란드의 헤이그에도 들릅니다. 구한말, 망국의 비탄을 끌어안고 타국에서 생을 마감한 이준(李儁, 1859-1907) 열사의 기념비를 참배하기 위해서이죠. 당신께서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고국이 이렇게 발전했습니다, 를 고하는 후손의 묵념이 이어집니다. 그쯤 되면 후대의 한국 관객 또한 비감함에 젖을 수밖에 없겠지요. 서독에서 김희갑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 그리고 태권도 사범으로 활약하고 있는 일가족을 만나고요. 중간에 프랑스 파리도 경유합니다. 이 영화의 해외 촬영분을 살펴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어요. 아무리 국책 영화라고 해도 그 엄청난 제작비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싶죠. 그건 그만큼 당시의 정권이 영화를 정권 홍보의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했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br><br>&nbsp;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프로파간다' 영화가 오락적인 면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속 팔도강산(1968)'에서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 이미자가 노래 부르는 모습이 나옵니다. '내일의 팔도강산(Tomorrow's Scenery of Korea, 1971)'에서는 패티김을 비롯해 김추자와 나훈아가 나와서 노래를 불러요. 특히 패티김이 '서울의 찬가'를 부르는 모습은 서울시 홍보 영상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영화 '팔도강산' 시리즈는 프로파간다의 틀에 코미디 장르와 뮤지컬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했다고 할 수 있어요.&nbsp;&nbsp; <br><br>&nbsp; '속 팔도강산'에서 해외 유람은 실컷 했으니, 3편에서는 한국으로 돌아와야죠. '내일의 팔도강산(1971)'에서 김희갑, 황정순 부부의 국내 유람은 발전하는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죠. 사위 김진규는 시멘트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의 부하직원으로 나오는 구봉서가 시멘트 공장의 운영 현황을 청산유수로 읊습니다. 국가 기간 산업에 있어서 원자재인 시멘트의 중요성은 달리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이 영화에는 중공업 홍보만 나오지는 않아요. 작은 사위 신영균은 수산업에 종사하면서 번듯한 사업체를 일구어 냅니다. <br><br>&nbsp; 물론 약간의 실패도 필요합니다. 맏사위 허장강이 무리하게 부동산 투자를 했다가 망하거든요.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아직은 시작되지 않았던 때였던가 봅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웃음이 터지기도 했어요. 아무튼 허장강은 가족들의 도움으로 다시 정신을 차리고 원래 사업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되죠. '내일의 팔도강산'은 수출 주도 산업과 함께 내수 진작의 토대를 놓는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開發獨裁)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김희갑이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과를 줄줄 읊어대는 모습은 이 프로파간다 영화의 씁쓸한 일면이기도 해요.&nbsp;&nbsp;&nbsp;&nbsp;&nbsp;<br><br>2.&nbsp;&nbsp;&nbsp; <br>&nbsp;&nbsp;&nbsp;&nbsp;&nbsp; <br>&nbsp; '내일의 팔도강산(1971)'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북한 영화 '꽃파는 처녀(The Flower Girl, 1972)'는 그런 면에서 조금은 다른 결의 프로파간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동명의 혁명가극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김정일의 주도로 만들어진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죠. 이 영화의 엄청난 성공으로 북한 당국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선전 효과를 실감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꽃파는 처녀'는 북한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 수출되어서 크게 흥행했으니까요. 공산국가인 중국에서의 흥행 대성공은 물론, 당시 동유럽 40개국에서 거둔 흥행 성과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br><br>&nbsp; 영화 '꽃파는 처녀'는 시대적 배경이 일제 강점기입니다. 주인공 꽃분이의 집안은 친일파 지주의 강탈에 풍비박산이 나버립니다. 악독한 지주 때문에 꽃분이의 오빠는 감옥에 갇히고, 꽃분이의 어린 여동생은 눈이 멀죠. 그리고 어머니마저 고된 종살이 끝에 숨을 거두지요. 꽃분이와 그 가족이 겪는 수난과 고통의 서사는 관객의 정서에 강하게 호소합니다. 이 영화에서 사회주의 이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은 영화의 끝 무렵에 이르러서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볼셰비키' 소책자를 나누어 읽으면서, 마침내 사회주의 혁명에의 길로 들어서게 되지요. <br><br>&nbsp; '꽃파는 처녀'를 보고 있노라면, 프로파간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상이 아니라 '정서'에의 호소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지요. 이 분야 원조 맛집 주인으로는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 1902-2003)이 있지요. 네, 히틀러 정권의 프로파간다 영화를 찍었던 그 여성 감독 말입니다.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 1935)'와 '올림피아(Olympia, 1938)'에서 리펜슈탈이 보여준 미학적 성취가 어떻게 나치 파시즘 정권을 홍보했는지 떠올려 보세요. 관객의 눈과 마음을 움직이고, 급기야 홀리게 만드는 것. 프로파간다 영화의 심연에는 그렇게 인간 심리에 대한 기본적 원리가 깔려있습니다. <br><br>&nbsp; 다시 영화 '팔도강산' 시리즈로 돌아갑니다. '팔도강산' 연작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를 아우르며 박정희 정권의 프로파간다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그 영화들이 보여주는 정권 홍보는 낯간지러울 정도로 뻔하고 밋밋하기 짝이 없어요. 그럼에도 이 영화 시리즈가 당시의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전쟁의 폐허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도약하는 한국 국민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흰쌀밥과 고깃굿' 보다도 '자신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해낼 수 있다, 는 희망 말입니다. KTV에서 영화 '팔도강산' 시리즈가 방영된 시각은 늦은 새벽이었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나는 그 격동의 시대를 묵묵히 살아온 나의 부모 세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꿈이 있었어요. 잘 사는 나라, 에 대한 꿈 말입니다. 영화 '팔도강산' 연작은 그 희망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구현해 냅니다.&nbsp;&nbsp;&nbsp;&nbsp;&nbsp; <br><br><br>*사진 출처: kmdb.or.kr<br><br><br><br>**사진 출처: themoviedb.org<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510/pimg_741289193428941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528757</link></image></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성혜의 나라(2020): MZ세대의 좌절감과 불편한 진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526352</link><pubDate>Thu, 09 May 2024 19: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5526352</guid><description><![CDATA[&nbsp; *이 글에는 '성혜의 나라(2020)'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br><br><br>&nbsp; 29살, 아직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성혜의 삶은 무척 고달픕니다. 신문 배달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죠. 성혜의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 중이고,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합니다. 얼마 안 되는 수입에서 부모님께 용돈도 보내드리는 착한 딸이 성혜입니다. 성혜에게는 오래 사귄 남자 친구 승환도 있습니다. 승환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죠. 남자 친구가 좀 의지할만한 사람이면 좋겠는데, 승환이 가난한 부모 탓이나 하는 말을 들으면 좀 철딱서니가 없어요. 자, 어떤가요? 이 두 연인의 앞날이 그려지나요? 정형석 감독의 '성혜의 나라(The Land of Seonghye, 2020)'는 소위 가진 것 없는 흙수저 MZ세대의 우울한 초상을 보여줍니다. <br><br>&nbsp; 흑백 화면으로 펼쳐지는 성혜의 일상은 숨돌릴 틈도 없이 팍팍합니다. 신문 배달을 하러 나가서는, 원치 않는 신문을 넣었다고 주민의 항의를 받습니다. 신문 보급소에서 준 스쿠터는 고장 나기 일쑤죠. 편의점에서는 어떤가요? 매번 라면 먹고 그릇을 치우지도 않고 나가는 고등학생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합니다. 그런 성혜의 끼니는 삼각김밥입니다. 편의점에서 폐기해야 하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죠. 성혜는 남자친구와 모텔에 가서도, 무료로 제공되는 세면도구를 알뜰하게 챙겨서 남자친구에게 줍니다. 그런 성혜에게 유일한 위로가 있다면 가끔 지나치는 애견 가게의 진열장에서 귀여운 강아지를 보는 것입니다. 성혜는 휴대전화로 강아지가 노는 것을 찍습니다. <br><br>&nbsp; 성혜의 삶이 이렇게 고달파진 건 과거의 그 사건에서부터였습니다. 성혜는 틈틈이 입사 원서를 넣으며 취직하려고 애를 쓰죠. 그런데 전의 직장에서 인턴을 하다 그만 둔 이력이 발목을 붙잡습니다. 면접관은 성혜에게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죠. 성혜는 인턴 때 회식 자리에서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그 일을 고발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가해자가 처벌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 일 이후로 성혜의 삶은 말 그대로 꼬여버립니다. 취직은 쉽지 않고, 힘겨운 서울살이에다, 부모님의 어려운 처지도 모른 척할 수 없죠.<br><br>&nbsp; 대학은 나왔지만,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삶.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옵니다. 성혜의 친구는 빈곤에 시달리다 스스로 삶을 마감합니다. 한국 청년 세대의 높은 자살률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관객은 성혜 친구의 죽음에서, 그것이 성혜가 겨우 버텨내고 있는 이 삶의 어그러진 결말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죠. 그런 와중에 성혜가 살고 있는 월세방의 집주인은 보증금을 올리겠다고 말합니다. 집값이 높은 서울에서 성혜가 구할 수 있는 괜찮은 단칸방이 있을까요? 사면초가(四面楚歌)란 이런 성혜의 처지를 두고 하는 말 같아요. <br><br>&nbsp; 성혜가 느끼는 삶에 대한 막막함은 '미래가 없다'는 침울한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성혜는 승환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승환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다고 해도, 어려운 집안 형편의 승환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습니다. 성혜는 승환과 결혼해서 낳을 아이의 미래를 생각했을 거예요. 그 아이에게 자신보다 못한 삶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겠죠. 현재 우리나라의 저조한 출산율은 성혜와 같은 생각을 하는 젊은 세대가 많기 때문입니다. <br><br>&nbsp; 참 우울한 영화입니다. 정형석 감독은 젊은 여성 성혜의 삶을 통해 한국 청년 세대가 직면한 어려움을 다큐처럼 담아냅니다. 출구가 없어요, 성혜에게는. 꽉 막혀있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이런 성혜에게 갑자기 5억이 생깁니다. 자,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성혜라면 그 5억을 가지고 무얼 할 생각인가요? 5억, 크다면 큰돈인데, 어찌 보면 좀 애매한 액수 같기도 하고요. 서울에서 괜찮은 월세방 보증금으로 좀 쓰고, 나머지 돈은 은행에 넣어둘까요? 아니면 그동안 못 해봤던 여행도 하고, 사고 싶은 걸 맘껏 사볼까요? 그런데 정기적인 소득이 없다면, 그 돈은 언젠가 바닥이 날 게 뻔하잖아요. 성혜도 고민합니다.&nbsp;&nbsp;&nbsp; <br><br>&nbsp; 이 영화의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 나는 내가 감독이라면 성혜에게 어떤 삶을 선물해 주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글쎄요, 잘 떠오르지 않더군요. '성혜의 나라'에서 성혜는 5억을 신탁 연금으로 넣고, 매달 140만 원씩 받기로 결정합니다.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 삶. 그것이 성혜가 꿈꾸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성혜에게 5억이 생긴 것은 과연 행운이기만 할까요? 그 무해하고도 안온한 삶은 변화도 없고, 꿈도 없는 삶이에요. 그런 면에서 '성혜의 나라'는 젊은 청년들이 희망을 꿈꿀 수 없게 만드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대해 강렬한 펀치를 날려버리죠. <br><br>&nbsp;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그래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성혜만큼이나 힘든 세대는 빈곤한 노년 세대입니다. 청년 자살만큼이나 노인의 자살률도 높습니다. 그 원인은 당연히 '가난'이고요. 그런데 왜 힘들고 가난한 노인에 대한 영화나 이야기는 보기가 어려운 걸까요? 쪽방촌에 살면서 폐지 줍는 70대 독거노인 춘삼 씨가 있다고 합시다. '춘삼의 나라'라는 영화를 찍는다면, '성혜의 나라'를 보고 공감했던 젊은 관객이 공감해 줄 수 있을까요? <br><br>&nbsp; 영화 '성혜의 나라'는 기묘하게도 MZ세대가 기성세대에게 느끼는 분노와 박탈감을 떠올리게 만들어요. 그것은 성혜가 아무 것도 꿈꾸지 않는, 어쨌든 현상 유지라도 할 수 있게 만드는 5억이란 돈이 성혜의 부모가 사고로 죽음으로써 주어지는 돈이라는 점에서 뜨악하기도 하고요. 물론 이 영화가 명백한 '부친살해(Patricide)'의 코드를 보여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주인공 성혜에게 있어 부모는 부담스러운 짐짝처럼 느껴지기까지 하거든요. 돈에 쪼들리는 성혜의 엄마는 딸이 조금이나마 돈을 보내주기를 바라죠. 인터넷에서 젊은 세대에게 통용되는 밈(meme) 가운데에는 '틀딱(노인)들이 빨리 죽어야 젊은 사람이 산다'는 말도 있죠. '틀딱'으로 대변되는 노년 세대에 대한 불신과 증오는 결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br><br>&nbsp; 영화의 마지막, 성혜는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달려 나갑니다. 성혜의 앞에는 느리고, 안온한, 하지만 가슴 뛰게 만드는 희망과 새로움은 없는 삶이 놓여 있습니다. 성혜는 나름 괜찮은 월세방을 구합니다. 월세가 저렴한 성혜의 집은 경사가 심하고, 높은 지대에 있습니다. 다닥다닥 모여있는 다세대 주택의 방 한 칸, 거기에서 성혜는 예쁜 강아지를 키우게 됩니다. 나는 왜 성혜가 서울을 떠나지 않는지 궁금해지더군요. 모두가 알다시피, 지방은 서울에 비해 집값이 싸잖아요. 그런데 성혜는 서울에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거든요. 성혜에게는 서울에서의 버거운 삶이 주는 긴장감이 지방에서의 따분한 삶보다 나은 것일지도요.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지방 소멸'이라는 개발 불균형의 사회 문제도 갖고 있지요. 여러모로 영화 '성혜의 나라'는 현재의 우리나라가 처한 불편한 진실과 직면하게 만듭니다. 그런 면에서 나름의 시의성(時宜性)을 지닌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nbsp;&nbsp;&nbsp;&nbsp;&nbsp;&nbsp; <br><br><br>*사진 출처: themoviedb.org<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509/pimg_741289193428792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526352</link></image></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우리의 하루(In Our Day, 2023): 예술가의 삶과 부서진 기타</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498972</link><pubDate>Mon, 29 Apr 2024 19: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5498972</guid><description><![CDATA[&nbsp; *이 글에는 영화 '우리의 하루'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br><br><br>&nbsp; 상원은 전직 배우입니다. '전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현재는 배우 일을 그만둔 상태입니다. 해외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한 상원은 선배 정수의 집에 잠시 머물고 있어요. 이 집에는 '우리'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있습니다. 먹는 걸 좋아하는, 아주 통통하고 귀여운 고양이예요. 홍상수의 영화 '우리의 하루(In Our Day, 2023)'에는 고양이 '우리'의 하루가 살포시 들어가 있어요. 고양이 집사들을 위한 영화냐구요? 그건 아닙니다. 그럼, 영화 '우리의 하루'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죠. <br><br>&nbsp; 영화에는 2명의 중심인물이 등장합니다. 전직 배우 '상원(김민희 분)'과 시인 '홍의주(기주봉 분)'가 그들입니다. 영화는 두 인물이 각자 보내는 하루의 일상을 대비시켜서 보여줍니다. 딱히 할 일이 없는 상원은 낮잠을 청하고, 나중에 조카 지수의 방문을 받습니다. 나이든 시인 홍의주도 아침나절에 잠을 좀 잤다가 일어납니다. 그런 그에게 배우 지망생 재원이 찾아오지요. 상원의 조카 지수도 배우 지망생입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지수는 유명 배우였던 상원에게 배우의 길에 대한 조언을 청합니다. 재원은 시인 홍의주에게 인생의 지혜를 듣고 싶어하구요. 그리하여 상원은 지수에게, 홍의주는 재원에게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 어떻습니까? 두 사람의 하루는 다른듯 하지만 비슷하게 보이지 않은가요? 초심자(novice)는 권위자(expert)를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하루'는 각각 배우와 시인이라는 예술가가 들려주는 마스터 클래스(Master class) 같은 인상을 줍니다. <br><br>&nbsp; 이 영화에서 상원의 캐릭터에는 그 역을 연기하는 배우 김민희의 이야기가, 시인 홍의주의 모습에는 감독인 홍상수가 겹쳐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홍상수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이전의 작품들과는 좀 다르게,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적극적으로 집어넣습니다. 그런 데에는 아마도 감독 자신의 매끄럽지 못한 사생활이 포개어져 있기 때문이겠죠. 홍상수가 영화를 통해 자기 삶과 사랑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것을 보면 아주 흥미로워요. <br><br>&nbsp; "그냥 입 좀 조용히 하세요! 다 자격 없어요! 다 비겁하고, 다 가짜에 만족하고 살고, 다 추한 짓 하면서, 그게 좋다고 그러구 살고 있어. 다 사랑받을 자격 없어요!"<br><br>&nbsp; '밤의 해변에서 혼자(On the Beach at Night Alone, 2017)'에서 여배우 영희를 연기한 김민희의 대사를 나는 기억합니다. 그 영화는 명백하게 홍상수의 자기 변명과 연민이 범벅이 된 영화에요. '당신들이 뭔데, 우리의 사랑에 왈가왈부 하는 거냐?' 네, 그렇습니다. 그게 홍상수의 본심인 거죠. 좀 뻔뻔하지 않은가요?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그런 뻔뻔함에도 불구하고, 홍상수가 영화를 통해 구현해 내는 영화적 세계에는 기이한 매력이 있거든요. 그 영화는 배우 김민희에게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이라는 명예를 안겨주기도 했구요. <br><br>&nbsp; 자, 다시 '우리의 하루'로 돌아갑니다. 상원은 지수에게 자신의 배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상업 영화가 배우의 내면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드는지, 진정한 배우로 연기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죠. 상원은 배우란 직업은 '솔직해야 한다'고 말하지요. 글쎄요, 그게 어떤 걸까요? 배우라는 직업도 멀게 느껴지는데, 상원이 말하는 '솔직함'이 무엇인지 일반인이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영화 속 초심자 지수에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상원은 지수에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냐고 확인하듯 묻습니다. <br><br>&nbsp; 지수가 상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끼는 막막함을 시인을 찾아간 재원도 느낍니다. 재원은 존경하는 시인 홍의주를 만나서 삶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삶과 사랑의 의미를 아는 것이 배우를 꿈꾸는 재원에게 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걸까요? 시인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온 자신의 삶에서 건져낸 지혜들을 풀어놓습니다. 인생은 짧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진짜' 삶을 살아라. 그런데 그 '진짜 삶'이 뭘까요? 의외로 홍의주가 격정적으로 토로하는 이 인생철학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건 홍상수 자신의 인생 철학이기도 할 테니까요. 상원이 조카 지수에게 했듯, 역시 시인 홍의주도 재원에게 자신이 한 말을 알아듣냐고 묻습니다. <br><br>&nbsp; 영화감독으로서 홍상수는 예술가적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술가는 오롯이 예술가가 성취해 낸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예술지상주의인 낭만주의적 관점이지요. 그런 그에게, 자신의 사생활이 논란이 되는 것은 참기 힘든 역경일 거예요. 작가로서 그는 영화로 자신의 입장을 항변합니다. '우리의 하루'에서 홍상수는 연인 김민희를,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입니다. 영화 속에서 상원이 말하는 배우의 '솔직함'과도 일맥상통하는군요. 예술가로서 그들 자신은 쉽지 않은 삶을 살아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홍상수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과 김민희가 '결코 헤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강변합니다. 그건 영화 속에서 정수와 고양이 '우리'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nbsp; <br><br>&nbsp; 정수는 '우리'를 잃어버린 걸 알고서는 실신해 버립니다. 정수는 현관문 앞에서 쓰러져서는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하죠. 겨우 정신을 찾은 정수는 고양이를 찾기 위해 현상금 '천만 원'을 내 건 전단지를 만듭니다. 물론 고양이는 나중에 정수의 품 안으로 다시 돌아오기는 하지요. 고양이의 이름 '우리(We)'는 어쩌면 뻔한 클리셰(cliche) 같기도 해요. 홍상수는 자신과 김민희를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뿐인가요? 상원은 홍의주가 라면에 고추장을 풀어서 먹는 것과 똑같이 그렇게 라면을 먹습니다. 라면에 고추장을 풀어 먹는 사람이 흔하지는 않죠. 물론 영화 속에서 상원과 홍의주가 서로 아는 사이라는 명백한 암시는 없어요. 관객은 그냥 그럴 것이다, 라고만 추측할 뿐이죠.&nbsp;&nbsp; <br><br>&nbsp; 영화 '우리의 하루'는 홍상수가 써낸 어느 하루의 일기 같은 인상을 줍니다. 무겁지도 않고 담담한 이 일기에는 뚜렷한 감독 자신의 각인이 찍혀 있어요. 예술가의 삶은 자신의 작품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홍상수는 자신이 바라보는 인생과 예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놓습니다. 거기엔 가식이 없어요. 영화 속에서 시인 홍의주는 심장이 좋지 않아서 술과 담배를 끊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술을 마시는 대신에 무알콜 맥주를 마시면서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아요. 영화의 마지막, 시인은 담배를 피우면서 양주를 한 잔 들이키죠. 그것이 자신의 남은 삶을 재촉할 거라는 걸 잘 알면서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두 가지가 그에게는 시인으로서의 '진짜 삶'을 살아가게 만드니까요. 영화 속 시인 홍의주의 '술과 담배'는 홍상수에게는 '영화'임이 자명하죠. <br><br>&nbsp; 홍상수의 삶에서 '영화'는 시인 홍의주의 '부서진 기타'와도 겹칩니다. 홍의주에게는 기타가 있었는데, 후배가 술 마시다 실수로 부수어 버렸죠. 후배는 홍의주에게 멋진 새 기타를 선물해 주지만, 홍의주는 그 기타를 자신의 다큐를 찍는 대학생 기주에게 선물해 버립니다. 시인은 기주에게 새 기타는 연주하기도 어렵고 익숙하지도 않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전직 배우 상원에게도 누군가 선물해 준 작은 기타가 있어요. 상원은 그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시인의 '부서진 기타'는 상원의 작은 기타를 통해서 노래를 이어가는 거죠. 그건 감독의 영화와 삶을 함께하는 배우 김민희의 관계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고요.<br><br>&nbsp; 영화 '우리의 하루'는 이제 노년에 접어든 감독 자신의 영화적 선언문 같아요. 홍상수는 자신과 김민희가 잘 견뎌왔고,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세간의 비난이야 어찌 되었든, 그들에게는 버팀목과 같은 예술, 그러니까 '영화'가 있어요. '우리의 하루'를 통해 관객은 작가 홍상수의 진솔한 내면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가 영화를 통해 들려줄 부서진 기타의 노래는 앞으로도 이어질 겁니다.<br><br><br>*사진 출처: themoviedb.org<br><br><br><br><br><br>**홍상수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On the Beach at Night Alone, 2017)' 리뷰<br>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0/on-beach-at-night-alone-2017.html&nbsp; <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429/pimg_741289193427677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498972</link></image></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인트로덕션(Introduction, 2021): 홍상수의 흥미로운 MZ 세대 탐구</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466293</link><pubDate>Tue, 16 Apr 2024 20: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5466293</guid><description><![CDATA[&nbsp; <br>&nbsp; 영화가 시작되면 중년의 한 남자가 모니터 앞에서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신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고아원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나름 숭고한 봉헌의 기도인데, 첫 장면에서부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래요. 홍상수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스스로를 진실하다고 생각하고, 삶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관객은 주인공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게 되지요. 그 균열의 지점이 나에게는 늘 흥미롭습니다. 홍상수가 '인트로덕션(Introduction, 2021)'에서 보여줄 등장인물들의 삶 속 균열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br><br>&nbsp; 영화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영화의 제목 'Introduction'처럼 앞으로 등장할 인물들에 대한 '도입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자신의 전 재산을 고아원에게 기부하겠다고 기도한 중년의 남자는 한의사입니다. 그에게는 청년이 된 아들 영호가 있지요. 영호는 아주 오랜만에 아버지를 찾은 것처럼 보입니다. 영호는 여자 친구 주원에게 잠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한의원에 왔습니다. 영호는 별로 내키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지요. 따로 떨어져 사는 아들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호출을 받고 한의원에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 좀 이상합니다. 그는 급한 환자도 아닌 지인을 먼저 만나고 아들에게는 그냥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지인은 유명한 배우(기주봉 분)입니다. 아버지는 지인에게 침을 놓아주고는, 영호를 만나는 대신에 자신의 방으로 가버립니다. 그렇게 1부는 영호가 아버지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끝납니다.<br><br>&nbsp; 2부에서는 영호의 여자 친구 주원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주원은 패션 공부를 하겠다면서 이제 막 독일로 유학을 왔죠. 지원은 엄마에게 껌딱지처럼 붙어있습니다. 엄마는 딸에게 자신의 화가 친구(김민희 분)를 소개해 주려고 합니다. 화가 친구가 당분간 딸의 숙소를 제공해 주기로 했거든요. 영화의 제목 'Introduction'의 뜻인 '소개'에 걸맞는 부분이군요. 엄마와 딸, 엄마의 화가 친구가 한자리에서 만나서 짧은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데 여기에 영호가 등장합니다. 유학을 떠난 여자 친구가 보고 싶다며 갑작스럽게 독일로 찾아온 거죠. 엄마가 주원에게 그런 영호를 '황당하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어쨌든 주원은 영호를 잠깐 만납니다. 영호는 주원과 거리에서 기쁨의 포옹을 나누며, 자신도 주원처럼 유학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죠. 연인들의 대화는 거기에서 끝납니다. 둘 사이의 미래는 불확실해 보여요. <br><br>&nbsp; 3부는 다시 영호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영호의 엄마는 지인과 강원도 바닷가의 음식점에 앉아있습니다. 그 지인은 1부에서 영호 아버지의 한의원을 찾았던 유명한 배우입니다. 영호의 엄마는 영호를 배우에게 소개시킬 생각이죠. 영호는 친구 정수와 함께 그곳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왜 영호의 엄마는 그런 자리를 마련한 것일까요?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사연인즉 이렇습니다. 1부에서 영호는 한의원에서 그 배우를 만났고, 그걸 계기로 영호는 연기자의 길에 들어섭니다. 그런데 지금 영호는 연기를 그만둔 상태에요. 엄마는 그런 아들이 안타까워서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는 거죠. 이 어색한 만남은 과연 어떻게 끝날까요?<br><br>&nbsp; 홍상수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대부분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인트로덕션'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연령대가 아래로 내려옵니다. 그의 영화 '물안에서(In Water, 2023)'에서도 등장인물들은 아주 젊은 친구들이죠. 홍상수의 영화적 관심사가 이제 젊은 세대로 이동한 것일까요? 관객은 '인트로덕션'에서 소위 MZ 세대라고 하는 요즘의 청년 세대들에 대한 홍상수 나름의 관찰과 탐구를 볼 수 있어요. 홍상수는 그들을 매우 냉소적으로 바라봅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은 2부에서 영호와 주원이 나누는 대화에서 드러나죠. <br><br>&nbsp; 영호는 주원을 따라서 유학이나 올까, 하고 즉흥적으로 말하죠. 주원이 학비 이야기를 하자, 영호는 아버지에게 돈이 많다고 말합니다. 영호의 부모는 일찍 이혼했고, 영호는 엄마와 함께 살았죠. 그런 면에서 1부에서 영호와 아버지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영호는 주원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돈 욕심이 더럽게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자식인 자기가 유학 가는데 아버지가 돈을 대주지 않으면 '사람 새끼가 아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하죠. 왜 영호는 아버지를 그렇게 경멸하면서도, 그 아버지의 돈을 받는 건 당연하게 생각할까요? 좀 웃기지 않나요? 청년 영호는 그렇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은 아닌듯 싶어요.<br><br>&nbsp; 그건 주원도 마찬가지죠. 주원과 엄마의 사이는 따뜻한 모녀 사이 같지는 않아요. 주원은 엄마의 권위에 주눅든 어린 아이처럼 보여요. 주원이 유학을 온 이유도 무슨 대단한 결심을 하고 온 것도 아니고요. 엄마의 화가 친구가 주원에게 왜 의상 공부를 하려고 물으니, 그냥 어렸을 때부터 옷에 관심이 있었다고만 말하죠. 그러자 화가 친구는 자신이 아는 사람이 그쪽 일을 하고 있어서 잘 안다고 말하죠. 그러면서 주원에게 '그거 너무 힘든데 할 수 있겠냐'고 묻죠. <br><br>&nbsp; '너무 힘들다'는 이 문장은 영화에서 기이하게 반복됩니다. 3부에서 주원은 영호와 우연히 만나지요. 주원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눈병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 병 때문에 공부도 그만 두었고, 독일인 남편과도 헤어졌죠. 과거 연인이었던 두 사람의 서글픈 만남이로군요. 주원은 영호에게 자신의 삶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주원이 처한 상황이 힘든 것처럼 보이기는 하네요. 그런데 그 힘듦을 표현하는 부사 '너무'는 과도한 주관적 해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단어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자기중심적으로 받아들이는 MZ 세대의 어법에 어울린다고나 할까요? <br><br>&nbsp; 영호에게도 삶은 '너무' 힘듭니다. 영호의 삶도 방향성이란 게 없어요. 영호가 연기를 시작한 건 아버지의 한의원에서 만난 유명 배우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어요. 그는 영호에게 얼굴이 잘생겼으니 배우 해도 좋겠다, 라고만 말했을 뿐이에요. 영호는 생판 모르는 남이 한 말 한마디에 기대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죠. 그렇게 들어선 연기자의 길에서 영호는 여배우와의 포옹 연기를 할 수 없다며 때려칩니다. 영호가 생각하기에 그건 진짜가 아닌 가짜의 감정으로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그건 영호가 진실한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요? 정작 영호가 연기자가 되는 데에 일조한 유명 배우는 그런 영호를 한심하다며 크게 면박을 줍니다. 기성 세대가 보기에 영호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는 즉흥적이고 유약하며, 끈기라고는 없는 애송이죠.&nbsp;&nbsp;&nbsp; <br>&nbsp;&nbsp; <br>&nbsp; 하지만 영호와 친구 정수가 바라보는 기성세대는 속물적이고 비합리적이에요. 영호의 엄마가 마련한 술자리에서, 배우는 영호와 친구 정수에게 술은 마시되 절대로 취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라며 다그치죠. 술을 마시는데 취하지 않는 것이 어디 마음대로 되나요? 그게 가능한 일도 아니구요. 영호와 정수의 눈에 유명 배우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다지 존경할만하지 않습니다. 진정성도 없는 그냥 우스꽝스러운 술꼬장일 뿐이죠. 그렇게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는 소통하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유리됩니다.&nbsp; <br><br>&nbsp; 영화의 마지막, 영호는 갑자기 겨울 바다에 뛰어듭니다. 죽으려고 그러는 건 아니구요. 차디찬 바닷물에 흠뻑 젖은 속옷 차림으로 '너무 춥다'고 계속 말하는 영호에게 청춘의 현실은, 진짜 춥기는 할 겁니다. 영호는 연인과는 진작에 헤어졌고, 직업도 없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릅니다. 홍상수의 영화 'Introduction'은 그가 바라본 MZ 세대에 대한 삐딱한 미소처럼 보여요. 나는 이 영화를 아주 즐겁게 보았습니다. 홍상수는 자신의 과거 영화들을 끊임없이 갱신하며 나아가고 있어요. 작가로서 현실을 주의깊게 관찰하며, 그것을 영화적인 세계로 엮는 솜씨도 여전하고요. <br><br>&nbsp; 아, 이 영화에서 또 하나 흥미있는 점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네요. '담배'에 관한 것입니다. 해외의 평론가들에게 홍상수의 영화는 흔히 '소주 영화(soju movie)'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소주'는 홍상수의 영화를 흘러가게 만드니까요. 그런데 '인트로덕션'에서는 '담배'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합니다. 주인공 영호를 비롯해 주원의 엄마, 그 엄마의 친구 화가는 담배를 아주 길게, 맛깔나게 피웁니다. 물론 '소주'도 나옵니다. 홍상수는 여전히 '소주'를 사랑하니까요. 담배와 소주가 배경음악처럼 흐르는 영화 'Introduction'은 좁혀질 수 없는 세대 간의 간극을 흥미 있게 드러냅니다.&nbsp;&nbsp;&nbsp;&nbsp;&nbsp; <br><br><br>*사진 출처: themoviedb.org<br><br><br><br>**홍상수의 영화 '물안에서(In Water, 2023)' 리뷰<br>https://sirius1001.blogspot.com/2024/01/in-water-2023.html<br><br>***담배가 주요한 내러티브적 요소로 나오는 중국 영화 리뷰<br>중국 현대 여성의 서사와 담배, The Cloud in Her Room(2021) <br>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4/cloud-in-her-room2021.html<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416/pimg_741289193426207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466293</link></image></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족저근막염, 그리고 시</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406775</link><pubDate>Sun, 24 Mar 2024 22: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5406775</guid><description><![CDATA[&nbsp; <br>&nbsp; 오른쪽 발뒤꿈치가 아픈지 6개월이 지났다. 나는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발이 아프기는 했는데, 그래도 집 안에서 걸어 다닐 정도는 되었다. 아마도 '족저근막염'이겠거니, 하는 생각은 했다. 그건 별다른 치료법도 없고, 좀 쉬면 낫는다고 알고 있었다. 산책하러 나가는 것도 그만두고, 집에서 편한 비치 샌들을 신으면서 나아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발은 계속 아프기만 할 뿐이었다. 최근에는 맨발로는 발을 제대로 디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br><br>&nbsp; 제대로 된 진단이라도 받아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합 병원 정형외과의 족부 전문의를 찾아갔다. 그게 지난주의 일이다. 의사 선생은 40대 초반의 차분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얼마 동안 아팠는지, 어떻게 아픈지, 하루 얼마나 걷는지, 의사는 병력 청취를 꼼꼼히 했다. 발이 아파서 의사를 찾아갈 때는 평소 자신이 얼마나 걷는지 알려주는 것이 좋다. 그럴 땐 만보계가 도움이 된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의사는 발을 좀 보겠다고 했다. 나한테 아픈 부위를 눌러 보라고 하고는, 내가 아프다고 말한 뒤꿈치를 살짝 만져보았다. <br><br>&nbsp; "족저근막염입니다. 근막의 두께도 괜찮아 보이니까, 일단 약을 좀 써보죠."<br><br>&nbsp; 이 의사 선생은 분명 명의가 틀림없다. 엑스레이도, 초음파도 찍지 않았다. 진단을 위해 추가적인 검사는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족저근막염은 낫는 데에 1년까지도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좀 심하면 체외충격파 치료를 하기도 하지만, 비급여 치료이고 환자마다 효과가 달라서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발 마사지와 족욕을 하고, 쿠션이 있는 편한 운동화를 신으면서 지내보라고 당부했다. 나는 좋은 의사 선생이 처방해 준 소염진통제를 2주분 받아왔다.<br><br>&nbsp; 약을 먹어서 그런가, 발의 통증이 빠르게 나아진 듯 했다. 어제는 모처럼 날이 좋아서 정말 오랜만에 산책하러 나갔다 왔다. 그런데 웬걸, 귀신같이 발이 다시 아프다. 결국 족저근막염은 쉬는 게 답이구나 싶었다. 발이 아파서 걷질 못하니까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은 이루헤아릴 수가 없다.&nbsp; <br><br>&nbsp; 생각해 보니, 그동안 발이 아프다고 하면서 나는 낫기 위해서 뭔가를 꾸준히 하지는 않았다. 족저근막염이 나으려면 아킬레스건 스트레칭을 하고, 발 마사지도 해줘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귀찮아서 안 했다. 글을 쓸 때,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발에다 테니스공을 놓고 굴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랬다. 나는 아픈 발을 위해서 '격렬하게'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발이 저절로 낫기를 기다렸다. <br><br>&nbsp; 뭔가가 되게 하기 위해서, 어렵지만 시작하고 계속 해 보는 일은 얼마나 힘든가. 인생에서 그저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픈 발이 낫는 일도, 이렇게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든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쥐어짜 내는 것, 글을 써 내려가는 것. 몸은 피곤하고, 도무지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해보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다. <br><br>&nbsp; 시를 쓰기 시작한 지 이제 석 달이 되었다. 나는 내가 시 습작을 계속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쓰다 보니 시 쓰기가 나름 재미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힘든 일상의 숨구멍 같기도 했다. 나는 '시'가 가진 근원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일상과 사물,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을 '시'를 통해 해나가면서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어디에다가 응모하려고 쓴 시도 아니었다. 다만 삶을 더 잘 견디는 방편으로서 '시'를 쓰는 것이 좋았다. 아이쿠, 족저근막염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렇게 시로 마무리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이러하다. 마음이 괴롭고 힘들 때, 시를 한번 써보라는 것이다. 내가 시를 쓰면서 느낀 평온함을 이 글의 독자들도 느꼈으면 좋겠다.&nbsp;&nbsp; <br><br>&nbsp; <br><br>&nbsp;&nbsp;&nbsp;&nbsp;&nbsp; <br>]]></description></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동심초(Dongsimcho,1959): 사랑과 돈 </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399196</link><pubDate>Thu, 21 Mar 2024 20: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5399196</guid><description><![CDATA[&nbsp; &nbsp; 전쟁미망인 숙희(최은희 분)에게는 대학생 딸 경희(엄앵란 분)가 있습니다. 둘은 얼핏 보기엔 엄마와 딸 사이라기 보다는, 자매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세상의 풍파가 비껴간 것처럼 보이는 고운 외모의 미망인에게는 고민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괴로운 것이 무엇일까요? 네, '돈'입니다. 숙희는 양장점을 하다가 큰 빚을 지고 가게를 정리한 상태이지요. 그런 숙희에게 출판사 전무 상규(김진규 분)는 숙희의 빚을 청산할 수 있게 돈을 빌려줍니다. 어려운 때에 자신을 도와준 상규에게 숙희는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사랑의 감정이겠지요. 그건 상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규도 숙희를 나름 연모하는 것처럼 보여요. 상규와 숙희,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br><br>&nbsp; 영화 '동심초(Dongsimcho, 1959)'는 신상옥 감독의 대표작에는 잘 언급되지 않는듯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 관한 자료를 검색해 보니, 1959년에 개봉된 한국 영화 흥행 2위를 기록했더군요(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or.kr).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럴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동심초'에는 결코 낡지 않은 주제가 관통하고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말입니다. <br><br>&nbsp; 그렇다면 숙희와 상규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숙희의 처지를 좀 살펴보죠. 숙희의 큰 문제는 '돈'이에요. 숙희는 상규에게 빚을 지고 있어요. 그 돈은 그냥 받은 돈이 아닙니다. 갚아야 할 돈이지요. 물론 숙희의 어려운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상규는 숙희에게 빚 독촉 같은 것은 하지 않아요. 숙희가 상규에게 느끼는 고마움은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어찌 보면 좀 통속적이지 않나요? 사랑이란 감정이 '돈'이 가진 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 말이에요. 이 영화에서 '돈'은 중요한 내러티브적 요소임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거든요.<br><br>&nbsp; 상규가 숙희에게 빌려준 그 돈은 그의 사업자금입니다. 그는 이 사장과 함께 투자해서 출판사를 세웠습니다. 이 사장은 상규를 사윗감으로 보고 투자한 거예요. 상규는 사장 딸 옥주와 약혼한 사이입니다. 사장과 상규가 그런 사이라 해도 상규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숙희에게서 돈을 받아내야 합니다. 하지만 상규의 마음은 옥주 보다는 숙희에게로 향해있습니다. 그런 상규는 숙희에게 빚 갚으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br><br>&nbsp; 그런 상황에서 상규의 누나(주증녀 분) 김 여사는 속이 타들어 갑니다. 김 여사는 독신으로 남동생 하나 바라보며 열심히 뒷바라지하면서 살아왔거든요. 어떤 면에서 김 여사에게 있어 상규는 아들과 같은 존재일 겁니다. 그런 남동생이 애 딸린 과부에게 눈이 돌아갔으니, 그 누나 심정이 어쩌겠어요? 더군다나 김 여사와 숙희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사이에요. 김 여사는 숙희의 어려운 처지를 동정하면서도, 동생의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든 동생과 숙희를 떼어놓고 싶죠. 남동생은 번듯한 집안의 사위가 되어야만 하니까요. 김 여사는 숙희에게 빚 독촉을 하면서 에둘러 숙희가 상규의 앞길을 막고 있다며 비난합니다. <br><br>&nbsp; 그럼, 상규의 약혼녀 옥주(도금봉 분)의 입장을 살펴볼까요? 옥주는 가질 수 있는 건 다 가졌습니다. 부잣집 딸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고, 이제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죠. 그런데 옥주는 그 남자의 마음이 다른 여자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그 여자는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과년한 딸이 있는 미망인이에요.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도대체 저런 여자를 왜 좋아하나 생각하면 속도 상하고 분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옥주가 상규의 마음을 되돌릴 방법이 없어 보여요. 사랑이 어디 마음대로 되냔 말이죠. 상규는 집안의 재력으로 자신에게 어설프게 묶어놓은 상태일 뿐입니다. 옥주는 궁리 끝에 숙희를 찾아가지만, 별 말도 못 하고 돌아오지요. 옥주는 돈으로도 안되는 게 있다는 것, 그게 사랑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br><br>&nbsp; 숙희의 딸 경희도 '돈' 때문에 고민합니다. 엄마의 양장점이 망하면서 경희의 미래에도 먹구름이 드리웁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경희가 학교를 제대로 졸업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어요. 엄마는 살고 있는 집을 팔아서 빚을 갚으려고 하지요. 그러면 경희는 딱히 머물 곳도 없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경희는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으로 위기를 타개하려는 생각도 해봅니다. 자신이 결혼한 남자가 돈이 많다면 엄마의 빚도 갚아주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경희가 그런 기대를 하고 만난 남자는 겉멋 든 바람둥이일 뿐입니다. 경희는 '돈'만 보고 남자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깨닫게 되죠. <br>&nbsp;&nbsp;&nbsp; <br>&nbsp; 이 영화에서 돈의 위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부산의 종이 무역상으로 나오는 김 사장(김승호 분)일 수도 있겠군요. 그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숙희에게 반합니다. 김 사장은 숙희를 아는 상규에게 숙희와 잘 이어질 수 있게 해달라며 부탁하죠. 상규에게 김 사장은 사업상 중요한 고객입니다. 애 딸린 홀아비이기는 하지만 김 사장에게는 숙희와 잘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뿜어져 나옵니다. 숙희는 그렇게 돈의 힘을 앞세우는 김 사장을 역겹게 생각합니다. 숙희에게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의 감정이니까요. <br><br>&nbsp; 이렇게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돈에 얽혀 이리저리 힘겨운 줄타기를 하는 것을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돈'을 빌려주는 일에서부터 시작된 숙희와 상규의 사랑은 결국 '돈'을 갚으면서 끝나버립니다. 상규는 숙희를 간절히 원하지만, 숙희는 상규의 앞날을 위해 마음을 접습니다. 그리고 살던 집을 팔아 상규에게 빚을 갚고, 시골 친정집으로 떠나버리죠. 영화 '동심초'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해 비탄을 쏟아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흐르는 사회 경제적 배경을 곰곰이 톺아보면, 그것이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죠. '사랑'이란 감정은 현실이 배제된 진공의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br><br>&nbsp; 물론 영화 속 두 주인공 숙희와 상규의 감정은 순수하고 진실된 것이기는 해요.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듯, 사랑도 인생의 많은 것들처럼 진정으로 원한다고 이루어지지 않죠. 거기에는 돈과 계층, 사회적 관습이라는 중요한 요인이 작동하고 있어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두 연인은 결국 이별을 택합니다. 영화의 도입부에 숙희는 부산 출장을 가는 상규를 배웅하기 위해 서울역에 나갑니다. 하지만 숙희는 역사(驛舍)의 쇠창살 옆을 서성이다 그냥 돌아오지요. 영화의 마지막, 상규는 시골로 떠나는 숙희를 보고자 서울역에 가지만 만나지 못합니다. 상규 또한 숙희가 예전에 머물렀던 쇠창살에 고통스럽게 매달립니다. 이 기이한 수미상관(首尾相關)은 두 사람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사랑은 둘의 인생에서 오래도록 화려한 비탄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nbsp;&nbsp; <br><br>&nbsp;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내게 흥미 있게 느껴지는 부분은 숙희의 딸 경희의 미래입니다. 숙희는 친정집으로 내려가면서 딸 경희에게 후견인을 지정해 줍니다. 예전 경희의 과외 교사 기철에게 딸을 보살펴 달라고 부탁한 것이지요. 삼종지도(三從之道)는 전통적 유교 사회에서 여성이 따라야 할 윤리적 규범이었습니다.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식(아들)을 따라야 했지요. 숙희에게는 아들이 없으니 따라야할 자식이 없는 셈입니다. 숙희는 다시 아버지에게 돌아가면서, 딸에게는 미래의 사윗감을 정해준 것처럼 보이지요.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뿌리가 여성들을 옥죄고 있던 전후의 한국 사회에서 경희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그로부터 60년의 세월이 더 지난 오늘날의 여성들에게도 사랑과 결혼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인지도 모르겠네요.<br><br><br>*사진 출처: kmdb.or.kr<br><br><br>**사진 출처: themoviedb.org<br><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321/pimg_741289193423001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399196</link></image></item><item><author>푸른별</author><category>Essay</category><title>여사장(A Female Boss, 1959): 로맨틱 코미디에 반영된 퇴행적 가부장제 </title><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355720</link><pubDate>Mon, 04 Mar 2024 20: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sirius7/15355720</guid><description><![CDATA[&nbsp; &nbsp;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서 TV를 틀었습니다. 오래된 한국 영화가 나오네요. 한형모 감독의 영화 '여사장(A Female Boss, 1959)'입니다. 한형모 감독은 전후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의 대표작 '운명의 손(1954)'과 '자유부인(1956)'에는 해방 이후의 정치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풍부한 묘사로 가득 차 있어요. '여사장(1959)'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겠군요. <br><br>&nbsp; 이 영화는 원작 희곡이 있습니다. 원작자 김영수(1911-1977)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 희곡과 시나리오, TV 드라마까지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김영수는 해방 직후에 자신이 쓴 희곡을 공연할 극단을 만들었습니다. '여사장 요안나(1948)'도 그 시절에 쓴 희곡이지요. 이 희곡은 '김영수 희곡·시나리오 선집 2(출판사 연극과 인간)'에 실려있습니다. 나는 '여사장' 영화를 보고, 원작이 궁금해서 책을 주문해 보았습니다. 2007년에 펴낸 책이라 혹시 절판되지 않았을까 걱정했지요. 그런데 아주 멀쩡한 새책으로 잘 받을 수 있었어요. 아마 잘 안팔렸을 거에요. 이런 책은 관련 전공자들이나 볼 법한 책이지요. 그래도 사명감을 가지고 책을 펴낸 출판사가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작에 대한 설명은 이쯤 해두지요. <br><br>&nbsp; 영화는 여사장 요안나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용호와 우연히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화려한 양장 차림의 요안나(조미령 분)는 기다리는 뒷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길게 통화 중이지요. 짜증을 내던 뒷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용호만 남습니다. 용호는 요안나의 면전에 대고 싫은 소리를 하지요. 요안나가 용호를 무시하자, 용호는 요안나가 애지중지하는 강아지 마리오를 냅다 발로 차버립니다. 아주 고약한 첫 만남이지요? 대개의 로맨틱 코미디의 도입부가 그렇잖아요. 기분 나쁜 첫인상을 갖게된 남녀가 결국은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요안나와 용호도 이후에 다시 만나게 됩니다. <br><br>&nbsp; 요안나는 '신여성사'라는 잡지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어엿한 여사장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사장이면 사장이지, 여사장이라는 단어는 뭐냐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건 영화가 나온 그 시대가 1950년대라 그렇지요. 여성의 사회적 위상은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으니까요. 요안나는 그런 시대에 자기 회사를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사장만 여자가 아니라, 잡지사 편집국도 여인천하입니다. 허 주임(김희갑 분)은 여자 편집국장을 비롯해 여직원들에게 늘 구박당하는 신세에요. 그는 툭하면 잡지 기사 고쳐 쓰라고, 냄새 나는 반찬 좀 먹지 말라는 말을 듣고 살지요.&nbsp;&nbsp;&nbsp;&nbsp;&nbsp;&nbsp; <br><br>&nbsp; 요안나는 자신이 펴내는 잡지 이름대로 '신여성(新女性)'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눈으로 본다면 과격한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요안나는 회사의 여직원들에게 '연애 금지령'을 내립니다. 요안나에게 연애는 독립적인 여성의 자존감을 꺾는 일입니다. 여자가 사랑에 빠지면 그 시대의 봉건적 남자들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요안나는 당당하고 독립적인 여성의 삶을 살고 싶어하죠. 하지만 요안나의 현실은 그런 바람과는 좀 거리가 있어요. <br><br>&nbsp; 요안나의 잡지사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거든요. 그런 요안나에게 돈 많은 오 사장(주선태 분)은 후원자를 자처합니다. 영화 속에서 오 사장이 독신으로 나오는 것과는 달리, 희곡에서 오 사장은 유부남으로 나옵니다. 오 사장은 어떻게든 돈으로 요안나를 얽어매려는 흑심을 지닌 사람이에요. 자신이 원하는 잡지를 펴내기 위해 요안나는 고군분투합니다. 그즈음, 용호가 요안나의 잡지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옵니다.<br><br>&nbsp; 요안나는 용호에게 '두꺼비'라는 별명을 붙여줍니다. 그리고 맘놓고 그 별명을 불러대지요. '용호'라는 이름 대신에 '두꺼비'라고 불리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좀 안쓰럽기까지 해요. 어쨌든 용호에게 요안나는 '사장님'입니다. 용호는 요안나를 상사로 깍듯이 대합니다. 요안나는 그런 용호의 순수함과 우직스러움에 조금씩 빠져들게 됩니다.<br><br>&nbsp; 여기까지만 보면 '여사장'은 오늘날의 여느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별로 다를 게 없어요. 하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신여성, 페미니스트인 요안나가 자가당착에 빠지는 모습을 희화화해서 보여줍니다. 요안나는 자기 회사에 필요한 돈을 스스로 마련하지 못해요. 요안나는 오 사장의 호의에 기대어 편하게 돈을 빌리려고 하죠. 결국 요안나가 도움을 청하는 사람은 돈 많은 숙부입니다. 멋진 옷차림을 하고, 독립적인 여성의 삶을 외치지만 그건 다 껍데기처럼 보여요. 이점은 원작 희곡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요안나는 그 누구보다도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는 외로운 여자입니다. 연애를 거부하고 남자를 적대시하는 요안나는 미성숙한 인간으로 묘사됩니다. 그런 면에서 원작자 김영수의 관점은 매우 전근대적이기도 하고요.<br><br>&nbsp; 영화는 여사장 요안나가 현모양처의 행복을 찾는 것으로 끝납니다. 요안나의 잡지사는 두꺼비에서 남편이 된 용호가 사장이지요. 이제 요안나는 양장이 아닌 한복을 입고서, 남편이 좋아하는 생선찌개를 끓여놓고 집에서 기다립니다. 그 전화를 받는 용호의 뒤편에는 '남존여비(男尊女卑)' 액자가 걸려있습니다. 여사장 요안나가 있을 때는 분명 그 액자에 '여존남비(女尊男卑)'가 박혀있었는데 말이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뒷방 늙은이 취급이나 받던 허 주임은 편집국장 자리에 앉아 여직원에게 호통을 치지요. 영화의 이런 묘사는 일견 우스워 보이지만, 오늘날의 관객에게는 퇴행적인 가부장제의 반영일 뿐이죠.<br><br>&nbsp;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원작 희곡이 영화의 결말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희곡은 요안나와 용호가 함께 잡지사를 꾸려나가자는 상호 합의의 다짐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영화 '여사장'은 그런 희곡의 결말을 사정없이 비틀어 버립니다. 거기엔 일말의 융통성도 없어요. 영화 '여사장'이 보여주는 제대로 된 여성은 남자의 사랑을 받는 여성이고, 집에서 살림을 하면서 행복을 찾는 여성이지요. 영화 속 여사장, 아니 이제는 평범한 주부가 되어버린 요안나는 정말 행복을 찾았을까요? <br><br>&nbsp;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영화가 상영된 1959년에 '여사장'을 본 여성 관객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졌거든요. 그들은 진심으로 영화의 결말에 만족하며 집에 돌아갔을까요? 아니면, 여사장 요안나의 선택을 못마땅하게 여겼을까요? 분명한 건, 2024년의 여성 관객은 이 영화를 웃으면서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건 음, 그러니까 아주 흥미 있는 영화거든요. 영화 속 시대를 성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이기도 합니다.&nbsp;&nbsp; <br><br><br>*사진 출처: kmdb.or.kr <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304/pimg_741289193421030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sirius7/15355720</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