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考試)
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이걸 해야하나 생각한다
비 오는 밤에 모기향을 피운다
비가 와도 날아다니는 모기는 있겠지
쓴맛이 나는 내 피를 내어줄 생각은 없다
엊그제는 책상 밑에서
죽어있는 바퀴벌레를 발견했다
10년 만에 보는 바퀴벌레였다
이곳에 먹을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되자
절망으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TV에서는 소림사 다큐가 나온다
11살 소년은 5살에 소림사에 들어왔다
소년의 정체성은 소림사이다
창문을 열면 붉은 시멘트가 보이는
이 고시원의 정체성은 고시(考試)이다
고시를 갈아서 들이마시면
내 정체성은 고시가 된다
인생은 운빨이라는데
운(運)은 나에게 빚진 것이 없으므로
앞으로도 내게 올 생각이 영영 없다
창틀에 끼어있는 단풍나무의 씨앗에는
퇴거(退去)라고 쓰여있다
천천히 씨앗을 씹어서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