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審査評)
내가 응모하지 않은 공모전의 심사평을 읽는다
이 심사평은 참으로 길다
삐딱한 웃음을 지으며 무관심을 곤두세우고
5페이지의 오돌토돌한 검은 먼지들을
이리저리 훑어나가며
비로소 안도한다
2500편을 써낸 250명에 내가 있지 않음을
늘어진 엿가락처럼 흐물거리며
알아먹지도 못하는 말들을 주절주절
그런 걸 무슨 심사평이라고
우리 아파트의 경리(經理)가 쓴 안내문이
심사평보다 더 간결하고 명징하다
나는 경리한테 글쓰기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당신은 시를 잘 씁니다
계속 쓰세요
chat GPT에게 내가 쓴 시를 보여주고는
이 인공지능 사기꾼의 말에
홀딱 속아넘어갈 뻔 했다
울지 말아야지
앞으로 나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