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버스는 4분 후에 오기로 되어있다 정류장 건너편 스타벅스에는
항상 사람이 많다 지구가 망하기 전날까지도 스타벅스는 영업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나보다 늦게 온 젊은 여자가 냉큼 먼저 버스에
탄다 망할 년, 한 자리 남은 버스의 자리를 의기양양하게 나꿔챈다
나는 의자의 손잡이를 힘겹게 잡고 서 있다 그런데 예쁜 아가씨가
자리를 양보한다 나더러 앉으라는 것이다 처음으로 자리를 양보받았다
나는 폭삭 늙어버린 느낌이 든다 고마워요 진심으로 나는 아가씨가
복을 받기를 바란다 늙은 여자 하나가 들어가는 가게는 복권방이다
인생 대박의 꿈은 너무나도 멀다 나는 오래전 시 창작 수업을 떠올린다
심술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독설로 남을 깔아뭉개던 A는 이듬해 등단했고
몇 권이 팔렸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한심한 소설을 써재껴 나갔다
앞날이 촉망된다던 B도 재빨리 등단했다 그리고 지금은 책을 팔고 있다
나는 그 두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도, 눈꼽만치도 부럽지 않다 예술가의
호칭은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툭, 던져지는 것이다
예술가는 돈과 명예를 티끌처럼 여겨야 하거늘, 나는 명성을 바라는
은근한 속물근성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치과에는 환자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나는 잘 맞지 않는 치아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가 맞물리면서 찌그덕, 하는 소리가 들려요 좀 예민한 사람들이 있죠
친절하게 대답하는 의사의 앞머리에서 흰머리를 찾아내려고 하지만
흰머리는 보이지 않는다 내 눈이 나빠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안경이
부서져서 안경을 새로 맞추었지만, 새 안경을 찾아가지 않은지가
한 달이 되었다 안경 도수를 너무 올렸다 TV의 자막이 보이질 않으니
별 도리가 없다 나는 그 안경을 쓰기가 싫어서, 나의 흐려진 눈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나의 새 안경이 있는 안경원을 매일
지나쳐 간다 버스가 오거리를 지날 때, 안경원이 손짓한다 오늘도
안경을 찾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늙었어요 돌아갈 수 없어요 살짝 졸음이
쏟아진다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고는 화들짝 놀란다 이 버스 기사의
운전은 고약스럽다 트렌치코트 자락이 엉키면서 까악까악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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