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창고


얼마 전부터 식탁에 반창고를 놔두었습니다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찾기가 편해서입니다 계속 다치는 일이
일어나더군요 상처에 바르는 연고는 TV 옆에 있습니다 TV 옆으로
가서 연고를 꾹, 짜고는 식탁으로 갑니다 그리고 반창고를 뜯어서
상처에 돌돌, 감아줍니다 이상한 치유의 동선(動線), 좀 우스운가요?
네, 살아보니 그렇더군요 인생이 제멋대로 흘러가는데 그걸 바로잡을
방법이, 정확하고 마땅한 방법이 없단 말이지요 어제는 식탁에 잘라놓은
작은 반창고 조각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나는 식탁 위를 손바닥으로 훑어봅니다 식탁 아래도 찬찬히 살펴봅니다
눈이 너무나도 나빠졌음을 느낍니다 늙음은 참으로 저주스러운 것입니다
어디에도 반창고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오후, 청소기를 돌리다가
청소기의 먼지 통을 들여다봅니다 작은 네모 조각이 보이는군요 그래요,
먼지를 좀 뒤집어쓰기는 했죠 그건 잃어버린 반창고였어요 나는 먼지 통에서
반창고를 끄집어내었습니다 너무 반가웠죠 손톱만 한 살구색의 반창고,
먼지를 털어주었습니다 물론 이걸 쓸 수는 없어요 나는 반창고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달력의 가장자리에다 붙여놓았습니다 잘 어울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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