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나물
인터넷으로 시금치 1kg을 샀다 주문한지 하루만에
박스에 담긴 싱싱한 시금치가 배송되었다 시금치가
깨끗해서 뿌리만 조금씩 다듬었다 커다란 스텐 냄비에
소금을 조금 넣고 물을 끓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다듬어 놓은 시금치를 넣는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오래 삶으면 물크러진다 시간을 재보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손으로 시금치 잎을 만져보며 감을 잡는다
됐어, 이 정도면, 재빨리 시금치를 건져낸다
그릇에 받아놓은 찬물에 얼른 시금치를 넣는다
다시 또 한 무더기의 시금치를 냄비에 넣고는,
데친 시금치를 헹구어 낸다 그 사이에 시금치가
얼마쯤 물러지는지 살펴본다 냄비에서 시금치를
건져낸다 깨끗이 바락바락 주물러 헹구어 낸다
잎 사이에 모래나 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씻은 시금치를 있는 힘을 주어 물기를 꽉 짜낸다
대략 밥그릇 정도 크기의 덩어리 3개가 나온다
시금치를 무칠 양념을 준비한다 참기름병을 꺼낸다
나물은 참기름 맛으로 먹는 거지 참기름을 들이붓는다
진간장을 조금 넣는다 간은 소금으로 해야 깔끔하다
매실 엑기스를 조금 넣는다 간이 맞는가 본다 조금
싱겁다 집간장을 아주 조금 넣는다 대충 괜찮다
그런데 볶은 깨가 없구나 깨를 볶았어야 했는데,
그걸 볶으려면 깨를 씻어서 물기를 빼고, 두꺼운
팬에다가 볶아야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깨 좀 없으면 어때, 밀폐 용기를 꺼낸다 시금치나물을
두 개의 그릇에 나누어 담는다 무치지 않은 한 덩어리는
김치냉장고에 넣는다 이런저런 그릇 설거지가 기다린다
시금치를 나물로 먹으려면 이 번잡스러움을 감수해야 한다
나물이란 얼마나 비효율적이며 노동집약적인 음식인가
나는 한식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생각했다 갈수록
사람들은 반찬 만드는 데에 시간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온갖 종류의 즉석 국과 반찬이 쏟아져 나오지만
나물은 어떻게 대체할 수가 없다 이것은 아주 순전한
노동의 결정체이다 나는 식탁에 앉아서 방금 무친
시금치나물을 밥도 없이 몇 젓가락이고 먹었다
달큰한 맛이 나는 시금치나물,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나는 맛, 하지만 이걸 또 해 먹으려면 결심을 해야하는
귀찮고도 번거로운 맛, 그냥 안 해 먹고 말지 하는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