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복도식 아파트가 있다
엊그제, 그곳을 지나가다가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
1층에 사는 어느 주민이 빨래 건조대에다 시래기를
잔뜩 널어놓았다 아니, 저걸, 왜, 저기에다가, 저럴까?
아마 베란다는 빨래를 말려야 하니까 시래기가 복도로
밀려난 것일지도 모른다 복도가 공용 공간이라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1층은 바로 흡연자들의 담배 연기가
직접적으로 흘러드는 곳이라는 점에서 시래기를 말리기에
매우 부적합한 곳이다 마침 젊은 남자가 담배를 꺼내어 물고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남자의 팔뚝에는 알아볼 수 없는 한문(漢文)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담배 연기에 한자들이 천천히
분해되며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마침내 시래기는 거무튀튀한 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