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
올해는 감이 풍년이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곶감을 만들겠다고 베란다에 감을 깎아 걸어
두었다 70개의 감이 옷걸이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곶감은 바람이 불고 서늘한 날씨에
잘 마른다 그런데 올가을은 늦더위가 이어졌고
습도가 높았다 감에는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고
날벌레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재앙이었다
단맛에 환장한 날벌레들이 쉴 새 없이 몰려들어
미친듯이 곶감에 들러붙었다 날벌레를 내쫓으려
선풍기를 틀고, 계핏가루를 뿌려 보아도 별 소용이
없었다 모기장조차 날벌레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베란다는 날벌레의 만찬장이었다 갑작스러운 한파
주의보에 날벌레들이 좀 얼어죽기는 했다 하지만
벌레들의 끈질긴 생존력은 놀라웠다 그들은 다시
풀린 날씨에 생기를 되찾고 마음껏 단맛을 빨아들였다
곶감은 단맛을 수탈당하면서 어설프게 말라갔다
나는 날벌레들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너희들도
먹고 살려고 그러는 거겠지 나는 문득 지나온 인생에서
단맛이란 것이 있었던가를 생각했다 단맛의 기억은
희미하고, 나이가 들수록 단맛이란 만병의 근원이
될 뿐이다 곶감 만들기는 실패했다 베란다의 곶감은
모두 냉동실에서 잠들어 있다 단맛을 잊지 못한
날벌레들은 곶감이 사라진 베란다를 일주일 넘게
떠나지 못했다 나는 벌레들의 마지막 만찬을 준비했다
식초와 설탕, 그리고 주방세제를 풀어서 그릇에 담아
내놓았다 단맛을 잊지 못한 날벌레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눈이 내렸고, 가을이 서둘러 지나가는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