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보(placebo)
올해는 가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간다
나무들은 단풍이 채 들기도 전에 나뭇잎을 떨군다
시간이 없는 것이다 얼른 살 궁리를 해야지
나는 외풍이 심한 집 창문에다 뽁뽁이를 겹겹이
이어서 붙인다 겨울이면 집안은 바람으로 꽉 들어찬다
나는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닌다 이깟 뽁뽁이 따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붙인다
이건 마치 생강차가 목감기에 좋다는 민간요법을 믿는 것과도 같다
만성편도선염에 시달리는 나의 목은 늘 부어있다
항생제도 소용이 없다 배즙도 소용이 없다 생강차도 소용이 없다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어디서 들으니 개량종 생강은 별 효과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시중에 파는 생강은 죄다 개량종 생강이다 사람들이 매운 것을
싫어하므로 생강은 매운맛을 버렸고, 크기만 커졌다 토종 생강,
그러니까 조선 생강이 효과가 있다는데, 그걸 파는 데가 없다
그 조그맣고 진짜 매운 조선 생강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나는 머릿속으로는 조선 생강을 상상하면서, 개량종 생강으로
우려낸 차를 마신다 조선 생강차를 먹으면 나아질 거라는 믿음,
그렇다, 믿음은 중요하다 매우 중요하다 플라시보(placebo) 효과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나는 믿는다 나의 목은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