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일(忌日)
새책을 읽는데 후두둑, 종이들이 떨어진다
읽지 않은 페이지, 나는 바닥의 종이들을
그러모으고는 스카치테이프와 가위를
들고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이걸 붙여서
읽을 것인지, 이 책은 어차피 버릴 책이다
그냥 한번 보고 버릴 책, 어차피 죽어버릴 인생,
그리고 잊힐, 하지만 잠시동안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늘어진 카세트테이프처럼 재생되는
새벽 3시 반쯤이었다 아버지는 잠이 들었다
밤은 고요하고 추웠으며 구불거리며 흘러갔다
나의 발은 언제나 시렸다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맨발로 자다가 양말을 신고 잠을 청해 본다
가을이다 그리고 오늘은 아버지의 기일(忌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