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하늘이 눅눅하다
비가 올 것 같다
현관에 촛불을 켜둔다
국군의 날, 억울하게 죽은 군인들 생각이 나서
그리고 10월에는 아버지 기일(忌日)이 있으니까
촛불은 차분하게 타오른다

어느 무당의 말을 들으니
촛불이 타는 모양새에도
뜻이 있다고 하더군
흔들리는 촛불은 불길하다지
벌써 지 몸뚱이의 절반을 태운
싸구려 양초는 상자곽에 쓰여 있는
제사용 고급 양초의 명성을 배반한다

고급의 인생은 어떤 것인지
잠깐 생각을 해본다
좋은 차, 좋은 집, 잘 먹고 잘사는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되는 결국은
고급의 그 어떤 중심의 삶

촛불이 잠시 흔들린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어린 시절, 나의 피아노 가방에는
기도하는 소녀가 그려져 있었는데
소녀는 한쪽 눈을 살짝 찡그렸다
아마도 촛불의 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만히 고요하게 타는 촛불
불쌍한 영혼들, 이 세상 어디에서
헤매지 말고 잘들 가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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