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쏟아지는 졸음에
잠시 눈을 붙였더니
미용실 아줌마는
내 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놓았다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났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거울을 보니
중세의 수도사가
서 있다 그는 수도원의
삶에 지쳤다 어떻게든
여길 떠나야겠다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오래전
세상에 두고 온 연인이
있었다 이제 머리를 기르고
그 사람을 만나러 가야지

하지만 회색의 빛나는 좀벌레가
둥지를 튼 머리에서는
좀처럼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다

눈에는 정체 모를 가루들이
발에는 커다란 티눈이 박혀서
그는 수도원 밖으로는
한발자국도 움질일 수가 없다

눈부신 너는 잘살고 있겠지

잘 면도된 맨질맨질한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거울 앞에서
가만히 뒤돌아섰다
수도사의 머리카락은
이후로도 자라지 않을 것이며
멀어버린 눈과
걸을 수 없는 발로
그대로 잠들기를 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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