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


그 방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어 멀리서 은빛 물결이
반짝이고 청새치가 첨벙
바다오리가 철썩거리며 지나가
단풍나무였던가 날개를 가진
푸르고 붉은 잎들에는 작은
씨앗이 있었는데 그게
방 안으로 들어오곤 했지
청소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밟고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조용히 바람에 날려서 보낸
그 씨앗들의 행방이 궁금해

너는 창가에 작은 꽃나무를 하나
두었는데, 옅은 자주색 꽃에는
흰색 점들이 푸른 애벌레의
눈처럼 콕콕 박혀 있었어
그때가 쥐똥나무꽃의 달큰한 향이
퍼질 무렵이었었지 아마
이제 그 화분은 버려지고
희디흰 폴리에스터 커튼은
영영 누렇게 떠버렸지
고양이들은 더이상 말하지 않아
모든 것이 완벽한 방이었는데
너는 떠났지 아직 그 방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군데군데 금이 가버린
칠보 장식의 열쇠고리도 함께
아픈 창문으로 검은 물이 들어와
이제 빈방을 잠그려고 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