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토마 형제의 소식을 들은지도 어느덧 8년이 지났다. 나는 박사 학위를 받고 몇몇 대학에 시간 강사로 나가고 있었다. 내가 교수 채용 공고를 안본 것은 꽤 오래 되었다. 대학의 교수 자리는 인맥으로 얼키고 설켜 있었다. 친화력도 정치력도 없는 나는 그런 자리와 동떨어져 있었다. 나는 강의 외에 이런저런 잡지에 글을 썼다. 그렇게 나오는 돈으로 겨우 생활비를 메꾸어 나가고 있었다. 공부가 좋아서 여기까지 오기는 했다. 하지만 때로는 나 자신이 책 보따리 들고 지식을 파는 떠돌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은 전주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가 있었다. 오후 3시로 예정된 강의 시간에 맞추려면 용산역에 12시 전에는 도착해야만 했다. 어제는 새벽 4시에 잠이 들었던가? 떠지지 않는 눈을 부비며 시계를 보니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충 뭐라도 먹고 나가야만 했다. 나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낸 후, 식탁의 씨리얼 상자에서 씨리얼을 덜어내 그릇에 조금 담았다. 그리고는 TV  리모컨을 찾아서 전원 버튼을 눌렀다. 채널은 늘 케이블 방송의 뉴스 채널에 맞추어져 있었다. 뉴스 채널에서 나오는 소리는 나에게는 일종의 배경음이었다. 나는 그 채널의 뉴스나 정치 토론을 주의깊게 들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밥을 먹거나 설거지를 할 때, 그리고 빨래를 개킬 때 아무 생각없이 틀어놓는 백색 소음과도 같은 방송이었다.

  TV 화면 속에서는 최근에 개정된 정치 자금법에 대한 시사 토론이 한창이었다. 여자 앵커는 패널들에게 발언 기회를 배분하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보수와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 평론가들, 그리고 변호사가 나와서 이런저런 소리를 쏟아내었다. 입맛도 없는데다 버석버석한 씨리얼은 목으로 잘 넘어가지도 않았다. 나는 저렇게 TV 패널로 나오면 회당 출연료가 얼마나 될지를 생각했다. 내가 진이 빠지게 강의하고 나서 받는 돈 보다는 많을 것 같았다. 정치 평론가 둘이서 말로써 치고박는 동안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변호사는 여유있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두 분 평론가님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제 이번 법안에 대해 박 변호사님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데요."

  그 변호사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개정안과 이전 법안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잘 정돈된 외모에 부드러운 목소리까지 가지고 있었다. 방송이 체질에 맞는 사람이군. 나는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은색 무광테 안경을 쓴 그 변호사의 얼굴이 웬지 친숙하게 느껴졌다. 내가 전에 저 사람을 본 적이 있었나?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법조계 사람이나 변호사를 만나본 적은 없었다. 이상한 기시감(旣視感)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나는 식탁에서 일어섰다. 반쯤 먹다말은 씨리얼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부어 넣었을 때, 마침내 내 머릿속에 전등불이 켜지듯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내가 수도원에서 만났던 지원자 요한 형제였다.

  요한 형제는 사법 고시를 패스하고 수도원에 들어왔다고 했었다. 그로부터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는 가끔 그 형제가 수도원에서 계속 살고 있을까 궁금했었다. 이제 TV 화면에서 변호사란 직함을 달고 나온 그의 모습은 내 궁금증에 답을 주었다. 마침내 TV 토론이 끝났다. 패널들의 이름이 화면의 하단 자막에 뜰 때 나는 그 형제의 이름을 눈여겨 보았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요한 형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로펌의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래, 그랬던 거구나. 결국 저렇게 수도원 밖에서 살아갈 거면서 그는 왜 수도원에 들어간 것일까? 그에게 수도 성소란 한때의 바람, 객기 같은 것이었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강의 자료를 챙겨서 집에서 나오는 동안 나는 요한 형제의 과거와 현재를 냉소적으로 가늠해 보았다.      

  목요일, 한낮의 용산역은 한산했다. 탑승 시간까지는 아직 15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책을 꺼내어 읽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나는 담배라도 피우고 오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어디에다 두고 챙겨오지 못한 것인지 담배는 외투 주머니에도, 가방에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내 앞에 있는 대형 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대의 TV에서 한쪽은 뉴스가, 다른 한쪽에서는 의학 정보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의학 정보 프로그램이 나오는 채널 쪽에 귀를 기울였다. 정형외과 전문의로 소개된 이는 오십견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나는 오른쪽 어깨가 자꾸 뻑뻑하고 아팠다. 그 의사가 나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줄 것도 같았다.

  "오십견은 노화로 인한 관절의 퇴행성 변화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오십견에 여러가지 원인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무엇보다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하지요."

  노화라... 참으로 서글프게 들리는 단어였다. 쑤시고 아픈 어깨만 나의 나이들어감을 증명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희끗희끗해지는 앞머리를 어찌해야 하나 난감해하는 중이었다. 염색은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TV 속 의사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내 나이 또래의 그는 선명한 화질의 TV 화면 속에서 매꼬롬한 얼굴로 비춰졌다. 주름살도, 흰머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태도와 목소리에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베어있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오십견은 노화에 따른 자연적 증상이 아니라 질환입니다. 그 점을 시청자 여러분께서 명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형외과 전문의를 찾아가서 치료를 잘 받으시면 괜찮아질 겁니다."   

  저 의사의 말투는... 분명 언젠가 내가 들어본 적이 있는 말투였다. 뭐였지?

  "특이체질이 아니라면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내가 수도원에서 벌에 쏘였을 때, 그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참으로 이상한 날이었다. 나는 놀람상자에서 튀어나온 스프링 글러브에 연타를 맞은 사람 같았다. TV 화면의 정형외과 의사는 지원자 아오스딩 형제였다. 그가 수도회에 입회하던 날에 그의 부친은 수도원 정문에 드러누웠다고 했었다. 오래전, 아오스딩 형제의 부친은 그런 쇼를 할 필요가 없었다. 병원장집 아들은 부친의 뜻을 잘 이어받았다.

  "12시 3분에 출발하는 전주행 ktx 열차에 탑승하실 승객께서는 5번, 5번 승강장으로 나와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타야할 기차의 안내 방송이 두어 번 나간 후 나는 대합실의 의자에서 일어났다. 객차 안에서 내 자리를 찾아서 앉고나서야 멍해진 머리가 좀 나아진 것 같았다. 때로 아주 오래된 일기장을 들여다 보노라면 나는 얼른 덮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곤 했다. 서른 살, 겨울 수도원에서의 기억은 나에게 그런 일기장의 이야기로 남았던 것인지도 몰랐다. 열차 안에서는 연착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하릴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벽 늦게 잠이 들어서였는지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형제님!"

  나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다 보았다. 갈색의 수도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서있었다. 그의 팔목에는 어린 아기 콘도르가 얌전히 앉아있었다. 형형색색의 실들로 뿔을 장식한 알파카와 라마 무리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는 토마 형제였다. 토마 형제는 나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토마 형제에게 서둘러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토마 형제는 나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빠앙, 짧은 기적 소리가 들리고 마침내 열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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