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수사님이 성소자 담당이셨을 때 알고 지내셨다구요. 수사님이 그 사도직을 7년인가 하셨을 겁니다. 저는 작년부터 수사님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요. 형제님은 성소자 시절에 수도원에 와본 적이 있던가요?"
  "네, 베드로 수사님이 저를 여기서 열흘 동안 머물도록 해주셨습니다. 벌써 5년 전이네요."
  "열흘 동안이나요? 보통 입회를 앞둔 성소자들은 수도원에서 사나흘 머물도록 허락하기는 합니다. 길어야 일주일이지요. 그런데 열흘이라니, 좀 놀랍네요. 아마도 베드로 수사님이 형제를 각별하게 생각했던 것 같군요."

  그런 것이었나? 나는 수도원에 머물렀던 마지막날 아침, 입회 제의를 거절하는 나를 바라보던 수사님의 표정을 떠올렸다. 수사님은 겉으로는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당황스러움과 실망이 미묘하게 포개어져 있음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제가... 베드로 수사님의 기대를 저버린 셈이지요."
  "수도 성소는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무수한 소명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베드로 수사님도 형제님의 선택을 기꺼이 축복하셨을 겁니다. 그래, 지금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대학원에서 종교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5년 만이라... 모처럼 찾아오셨는데 수사님이 부산에 계셔서... 사실, 수사님은 지금 건강이 많이 안좋으십니다." 
  "수사님께 무슨 문제라도..."
  "베드로 수사님은 암투병 중이세요. 말기암이라 호스피스 병동에 계십니다."

  베드로 수사님은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나이에 좀 마르기는 했어도 강건한 인상으로 기억되는 분이다. 갑작스런 병마에 수사님이 그리되었다는 이야기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수사님께는 제가 나중에 형제님 이야기를 전하지요. 소식 들으면 분명히 반가워하실 겁니다."

  마르코 수사님은 당혹스러워하는 나를 보더니 제안을 하나 했다.

  "형제님, 오랜만에 왔으니 수도원이라도 좀 둘러보고 가는 건 어때요? 새로 들어온 지원자 중에 조경을 전공한 형제가 있습니다. 그 형제가 수도원 정원을 열심히 가꿔놓은 덕분에 그곳이 아주 보기좋아졌어요. 오늘 날씨도 좋고, 형제님이 괜찮다면 함께 나갑시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접견실을 나오면서 나는 비오 수사에게 커피 잘 마셨다고 인사를 했다. 비오 수사가 앉아있던 안내실의 책상에는 묵주알과 매듭실이 놓여있었다.

  "손님들에게 선물로 드리려고 틈날 때마다 조금씩 만들고 있습니다. 5단 미니 묵주를 하나 드릴게요. 여기 오신 기념으로 가져가세요."

  푸른색의 묵주알로 엮은 작은 묵주가 수사의 손에서 나에게 건네졌다. 나는 비오 수사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마르코 수사님을 따라 수도원의 정원을 향해 걸어갔다.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곳의 풍경은 나에게 낯설지 않았다. 나는 토마 형제의 이야기를 듣던 그 겨울의 풍경을 떠올렸다. 토마 형제는 이곳 수도원에 있을까? 아니면 첫 서원 후 새로운 사도직을 받고 다른 분원으로 떠났을까? 토마 형제를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그것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수사님, 수도원에서 지낼 때 기억나는 지원자 형제가 있었습니다. 토마 형제라고. 참 마음씨가 따뜻했던 형제였어요. 그 형제는 잘 지내고 있나요?"

  나보다 서너 발자국 앞서서 걷던 마르코 수사님이 걸음을 멈추었다. 수사님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말했다.  

  "토마 수사를 아시는군요. 토마 형제는 작년 봄에 첫 서원을 했습니다. 선교 사도직을 받고 페루로 떠났지요."
  "페루요?"
  "그렇습니다. 우리 수도회의 가장 큰 사명은 선교에 있습니다. 리마에 관구 수도회가 있는데, 토마 형제는 그곳에서 수련을 이어가는 걸로 결정이 났어요."

  나에게 '페루'는 거친 암벽 너머 드높이 날아다니는 콘도르와 털이 보글보글한 알파카가 있는 풍경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토마 형제는 지금 그 먼 곳에 있다. 나는 그가 유기서원자로 무사히 첫 서원을 한 것에 안도했다.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토마 형제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 반가웠다. 그렇게 마르코 수사님과 정원으로 향하는 길에는 복순이가 지내던 우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텅 비어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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