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도원으로 향하는 숲길을 걸으면서 수도원에서 보냈던 열흘 동안의 기억을 떠올렸다. 마치 바둑기사가 자신의 시합을 복기하듯 나는 기억의 조각을 찬찬히 맞추어 보았다. 산 중턱의 양봉장에서 벌에 쏘였던 일, 주일 청원자 식당의 삼겹살 파티, 토마 형제가 들려준 성소 이야기, 그리고 성소자 담당 베드로 수사님이 입회를 권유한 일까지. 그렇게 머릿속에서 짧은 단편 영화 한편이 상영되고 있었다. 수도원 체험의 마지막 날, 베드로 수사님이 내 방에 왔다. 수사님은 내가 만약에 들어올 생각이 있다면 수도회에 입회해도 좋다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수도원에 있는 동안 내가 다른 윗분 수사님들을 만난 적은 없었다. 공동체 회원들이 참석하는 미사와 기도 시간에 나가서 얼굴을 비춘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알음알음 그곳의 수사님들은 나를 보고 어떤 무언가를 판단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수도회의 결정에는 나에 대한 베드로 수사님의 의견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내가 입회 제의를 받기를 정말로 원했던가? 막상 수사님으로부터 그 말을 듣고 보니 머릿속이 갑자기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수사님, 이곳에서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지내면서 생각해 보니... 저는 수도 성소에 맞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베드로 수사님의 얼굴에 순간 아쉬운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그렇군요. 어떤 길을 택하든 주님은 형제님과 함께 하실 겁니다. 밖에서도 기쁘게 잘 살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연락도 해요."

  그것이 벌써 5년 전의 일이었다. 나는 그 선택에 대해 후회도 아쉬움도 갖지 않았다. 운전을 하다가 어쩌다 들어선 우회로를 돌아서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할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수도 성소에 중간이란 없었다. '네'와 '아니오'라는 두 가지 대답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아니, 그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런 나와는 달리, 토마 형제에게는 '네'라고 대답하도록 모든 상황이 다 맞춰져 있었다. 나는 토마 형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묘한 열패감마저 느꼈다. 수도자의 길을 가도록 하느님께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건, 한편으로는 대단한 특권이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서는 그런 건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그렇게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삶의 전부를 내어걸 수 있는 결단의 시간이기도 했다.

  어느새 수도원의 정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도원의 정문에는 인터폰이 있었다. 인터폰에 있는 초인종을 누르면 안내실과 통화할 수 있었다.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찬미 예수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저기... 베드로 수사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약속을 하고 온 건 아닙니다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문을 열어드리죠."

  몇 분이나 지났을까? 짧은 머리의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 젊은 수사가 정문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티아라고 합니다. 예전에 성소자였고, 베드로 수사님을 오랜만에 뵙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형제님, 베드로 수사님은 부산의 분원에 계십니다. 먼길을 오셨을 텐데... 괜찮으시다면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시지요."

  사실 베드로 수사님을 꼭 만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토마 형제를 만나고 싶었다. 그 형제가 정말로 수도자로서 기쁘게 잘 살아가고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원자 형제들 소식도 궁금했다. 병원장집 아들인 의사 아오스딩 형제도, 법조인이 될 기회를 내던지고 온 요한 형제도 첫 서원을 하고 정식으로 수도회의 회원이 되었을까? 그것은 어떤 면에서 약간은 심술궃은 관심이기도 했다. 세속에서 무언가를 많이 가진 사람이 그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갈색의 수도복 속에 자신의 삶을 가둔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젊은 수사가 나를 접견실로 안내했다.

  "저는 비오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을 하지요. 형제님, 커피하고 녹차가 있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그러시군요. 전 커피가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베드로 수사님은 안계시지만 성소자 담당 수사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시면 어떨까요? 제가 연락을 하면 내려오실 겁니다."
  "그럼,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미리 전화를 해보고 왔어야 했는데... 내 불찰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합하여 선을 이룹니다. 제가 좋아하는 로마서의 말씀입니다. 형제님이 이렇게 오시게 된 것도 다 그분의 뜻이겠지요."

  그렇게 말하고는 비오 수사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접견실에 앉아서 약간은 긴장한 상태로 성소자 담당 수사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 수사님을 만나서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그때 지원자들 근황을 캐묻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내 밖에서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리더니 접견실의 문이 열렸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안경을 쓰고 머리숱이 거의 없는 수사님이 들어왔다.

  "형제님, 반갑습니다. 베드로 수사님을 만나러 오셨다구요. 꿩 대신 닭이라고 저하고 이야기하는 건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는 성소자 담당 사도직을 맡은 마르코 수사입니다."

  격의없이 나를 대하는 수사님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곧이어 비오 수사가 커피를 내왔다. 나는 마르코 수사님이 보여준 유쾌함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수사님이라면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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