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8 

 "가족이니까 그런 거야. 넌 우리 가족이 아니니까 잘모르겠지."

 가족이 아니니까.

 요즘도 나는 문득 한밤중에 잠에서 깰 때가 있다. 더 이상 어둠을 무서워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이렇게 생각할 때는 있다. 여기가 어디지? 시간이 좀 지나면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차리게 된다. 어둠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나 후회를 떠올릴 때도 있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그런 것들은 깡그리 잊어버리게 되리라. 마치 어떤 잘못이나 실수도 저지른 적이 없다는 듯이. 뻔뻔하게.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약간 참담한 기분이 든다. 내가 그 시절의 일에 대해 그녀의 입장에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길을 떠났던 날 밤. 그녀 역시 갈팡질팡했고 두려웠지만 자존심을 세우고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 그녀 역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을 가능성에 대해. 아, 하지만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그런 식으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엄마와 아빠에게 내가 납치'당했었다'고 말한 후, 나는 내가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느낄 때면 언제 어디서든 그리고 누구에게든 거리낌없이 그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부모님에게 말한 버전대로. 그러면 얼마간은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돌아갔다.

p130

...때때로 삶에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건, 바로 그런 착각과 기만, 허상에 기꺼이 몸을 내주는 일이라고. 착각과 기만, 허상을 디뎌야지만 도약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존재한다고. 언젠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보는 눈 속에서 어떤 사실들은 재배열되고 새롭게 의미를 획득할 것이다. 불가피하게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며, 허구가 사실이 되고. 사실이 허구가 되는 그런 순간들! 그러므로 이 여정 자체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보는 눈의 진짜 효용이 될 것이다.

p198

...나는 나중에서야,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 내 외부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일도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의 핵심에는 허영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p237

 "그렇게 무례한 사람들은 만날 필요가 없어요. 정말 그럴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일깨워주곤 하죠."

p306

 아니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그 이야기 속 사실들을 될 수 있는 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늘어놓고 싶었다. 그 사실들로 지어진 작은 집에 창문을 내고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그 안을 체계적으로 구조화한 후 진정한 의미를 건져올리고 싶었다.

 .....

 ... 시간이 지나고 내가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때때로 진실은 아무도 원하지 않아서 있는 힘을 다해 손에서 탈탈 털어내지만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입안으로 가져가고야 마는 과자 부스러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된 또다른 사실은, 나를 도움닫기 하게 만들어준 것이 바로 그런 무능함과 열없음, 그 자체라는 점이었다.

p366

...삼인칭시점으로 전개되던 서사에서 서술자가 문득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지만 무언가가 영원히 변해버리고 말았다고 고백할 때,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만하고 맹목을 연기한다는 진실이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니 가정의 모습이 모두가 동경하는 완벽에 가까울수록 비극은 더욱 깊어졌다. 이번 소설집에서 그 부르주아 가정의 세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부모가 소유한 막대한 재산은 여전히 건재한 영향력을 암시하고, 고층 아파트로 이사할 예정인 사람들은 선망을 받으며, 부부 동반 모임에서는 섬세한 역할극이 우아함을 지태이킨다. 하지만 이제 그 세계는 갈망되기보다 배면으로 물러나 있다. 그 세계에 대한 어떤 미련도 없이 바깥으로 성큼 발을 디디고 있는 것은 소녀들이다.

p369

...사회의 틀을 민감하게 의식하는 가운데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여성은 끝없는 상상과 소문의 대상이 되지만, 이 틀에 들어맞는다고 해도 여자들 사이의 복잡한 선망과 질시의 눈길을 피할 길은 없다. 사회적 자원을 직접 쟁취하기봗 다른 가족을 경유해 점유하는 여성들은 승리감과 박탈감 역시 은밀하게 느낀다. 그래서 여자들의 세계는 비밀스러운 속삭임과 낮은 웃음소리로 둘러싸여 있다. 그에 반해 남자들은 "한 번도 어리둥절해하지 않"(81쪽) 거나." "자신은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었다는 자신감, 그리고 최종 선택에 대한 은근한 만족감"(67쪽)에 차 있다. 사회적 자원을 풍부하게 공유하며 굳이 자신의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는 이들에게는 허위의식이나 가식을 발휘할 때에도 "매너"9같은 쪽)라는 그럴듯한 가림막이 드리워진다. '소문'과 '비밀'과 '눈치'와 '질시' 등의 단어가 여성 쪽으로 기울어져 젠더화되어 있듯, '자신감'과 '매너' 등의 단어 역시 남성 쪽으로 젠더화되어 있는 것이다. 기존 사회의 언어와 규범에 처음부터 잘 들어맞는 남자들은 이를 체득하며 매너를 갖추게 되지만, 사회에 맞춰 자신의 기준과 위치를 변용시킬 필요가 있는 여자들은 연기를 하며 이중의 겹을 가지게 된다.

 소녀들은 자신 역시 여자들의 복잡미묘한 세계 속으로 편입해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여자이기 때문에 금기시되는 것들이 더 많이 있음을 예민하게 인식한다....이 금기들은 기본적으로 소녀들에게 혼란스럽게 다가오고 수치심의 근원이 된다....소외감과 열망 속에 잇는 이 소녀들에게 어느 날 금기 위반의 죄책감을 기꺼이 무릅쓰게 만드는 존재가 나타난다....이들은 자신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평가에 일절 개의치 않으며, 도리어 사회적인 위계를 거스르는 말과 행동을 하는 데 거침이 없다....소녀들의 시선 속에서 이들의 대범함과 자신만만함은 '위엄'과 '권위'로 넘쳐흐르며, 실제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매혹하는 데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연기자다.

p376

...여자는 이성의 속박에 맞서는 저항적 존재가 아니며, 쾌락원칙의 유혹을 대변하는 리비도적 존재도 아니다. 근대 질서에 손상되지 않은 무시간적 진정성을 드러내는 존재나 표현 불가능한 비의적인 존재 역시 아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연출을 감행해야 하는 영악하고 위태로운 존재일 뿐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소녀는 "의지해야 하는 단 한 사람을 그토록 순식간에 미우할 수 있게 된다는 것"948쪽)에 체머리를 떨며 증오와 맞붙은 채로만 체감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사랑의 영역에 몸을 담든다....소스라치듯 한순간에 소녀는 성장한다.

p379

...자신에게 고유하고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착오였다는 것, 거기에서 비롯되는 무력감과 패배감은 여섯 편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모티프다. 이런 결정적인 환상의 무너짐이 있기에 앞서 소녀들은 먼저 환상을 구성하는 법을 익힌다.

p583

...할머니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자신처럼 취약한 존재의 불안과 상처를 정확히 이해하는 순간이자, 성장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p391

...밤을 또렷하게 응시하는 이 소녀들은 여성의 성장이 더이상 결핍과 상실을 담보로 하는 파멸적인 자기완성이 아니라, 현실의 권력과 질서를 재배치하는 정치학일 수 잇음을 보여준다. 초월적인 광기와 공포에 집어 삼켜지는 대신, 광기와 공포로부터 거짓말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상속받는 이 영민한 소녀들을 보라. 이번 소설집에서 손보미는 이전 자신의 모든 작품을 갱신했을뿐더러, 한국문학사가 보여준 성장의 순간들을 다시 썼다. 소녀들의 에너지 속에서 사랑은 소용돌이치며 거듭 탄생하고, 투명해진 밤은 환하게 빛난다. 우리 시대 가장 섬세하게 세공된 단편 미학의 경이로운 성취가 여기에 있다.

p393

...내게 주어진 것이 다른 누군가의 변덕스러운 선택에 의해 가능했다는 낭패감과 그러므로 내가 받은 무언가를 마땅히 내줘야 한다는 세상의 비정한 이치였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건대, <사랑의 꿈>에 실린 ㅅ설들은 바로 그때 느꼈던 낭패감과 비정함을 바탕으로 쓰인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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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꿈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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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랑한 소녀들이 화자. 이런이런...하면서 읽게 된다. 왜 사랑의 꿈인가 하면서

1. 밤이 지나면.

외삼촌 집에 맡겨졋을 때 만난 그녀. 그녀만이 화자가 사랑했을 사람인가? 가족이라서 그런. 가족은 뭘까?

2. 불장난

평정심을 유지할 줄 아는 5학년 여자애 양우정.

옥상에서 하는 불장난. 이런 것이 성장인가?

3. 사랑의 꿈

어려서 인정받지 못한 결혼에서 낳은 딸. 헤어진 남편. 남편이 죽은 후 본가와의 관계.

아이를 버리고 싶은 마음.

지나간 시간들의 기록 같은 글.

아무것도 아닌데...

4. 해변의 피크닉

<사랑의 꿈>의 딸이 하는 이야기.

여름에 머물던 할머니집. 삼촌 몸에 맞는 옷. 키에 맞는 옷.

5. 첫사랑.

이야기하기.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 첫사랑 과외선생님.

내가 첫사랑인 턱남. 남학생.

6. 이사

정우맨션이 계속 등장하는구나.

상상.

<해설- 소녀들의 사랑과 위대한 유산. 강지희(문학평론가)

1. 소녀의 출현.

믿을 수 없는 화자. 순진무구함이나 명랑함이 없는 소녀.

2. 금기를 넘어서는 점액질의 시간

소녀. 여성. 사랑. 금기.

3. 환상의 파열과 사랑의 발발

자신의 특별하다는 환상

환상이 붕괴된 후 등장하는 사랑.

4. 거짓말이라는 위대한 유산

<작가의 말>

낭패감. 비정함.

때로는 비틀리고 철없고 섣분 소녀들이 하는 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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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8

...존엄성이란 값으로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조금씩 양보하기 시작하면, 결국 인생이 모든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자 의사는 그들 모두가 굶주리고, 오물에 뒤덮이고, 이에 시달리고, 빈대에 물리고, 벼룩에 뜯기는 상황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 역시 내 아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나도 압니다. 남자다운 자존심, 아닌 이건 남성의 자존심이라고 해야겠죠. 어쨌든 지금까지 많은 수모를 겪은 뒤에도 우리가 여전히 그런 이름을 붙일 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 자존심이 고통을 겪으리라는 것, 이미 겪기도 했지만, 다시 겪으리라는 것, 이미 겪기도 했지만, 다시 겪으리라는 것,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싶다면, 이것이 어쩌면 유일한 해결책인지도 모릅니다.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윤리에 따라 행동하는 거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p241

...사실 우리가 이기주의라고 부르는 그 제 이의 살갗 없이 태어난 인간은 없으며, 제 이의 살갗은 너무 쉽게 피를 흘리는 원래의 살갗보다도 훨씬 오래 지속되기 마련이다. 그 여자들은 순서가 늦어졌다는 것 말고도 또 한 가지 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이야기해두어야겠는데, 이것 역시 인간 영혼의 신비라고 할 수 있겠다...

p258

...늘 남들이 먹는 빵이 더 무거운 법입니다. 나에게는 불평할 권리가 없소. 남들이 감당하는 무게 때문에 내가 먹고 사는 거니까. 대화는 이미 다 끝났으니까. 대화가 아니라 대화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상상해 보도록 하자. 그들은 마주보고 있다. 마치 서로를 볼 수 있는 것처럼. 물론 이 경에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들 각자의 기억이 눈부신 백색의 세상으로부터 말하는 상대의 입을 건져올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어 이 입이라는 중심에서 천천히 빛이 발산되는 것처럼, 얼굴의 나머지 부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나는 늙은 남자의 얼굴이고, 또 하나는 그렇게 늙지 않은 남자의 얼굴이다. 이런 식으로라도 볼 수 있는 사람을 정말로 눈이 멀었다고 할 수 있을까...

p275

...우리는 우리 분수에 맞지 않은 마지막 한 조각의 존엄성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소. 이제 우리에게도 마땅히 우리 것이어야 하는 것을 찾기 위해 싸울 능력 정도는 있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 우리는 마치 비열한 기둥서방들처럼 여자들을 깡패 소굴로 들여보냈고, 그 대가로 배를 채웠소. 이제 그곳으로 남자들을 들여보낼 때가 왔소. 여기 남자들이 있다면 말이오...

p319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상황의 힘과 특성이 사람의 언어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항복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제기랄, 하고 내뱉는 군인을 생각해 보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그후로 내뱉는 욕설들은 무례하다는 지탄을 면제받게 된다....

p330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인내심을 가져라. 시간이 제 갈 길을 다 가도록 해주어라. 운명은 많은 우회로를 거치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아직도 확실히 깨닫지 못했는가. 여기에 이 지도를 세우기 위해. 그리하여 이 여자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도록 해주기 위해. 운명이 얼마나 많은 길을 돌아왔는지는 운명 자신밖에 모를 것이다. 그녀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 다른 방향으로 약간 우회한 것뿐이었다....

p354

...우리가 전에 지니고 살았던 감정, 과거에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은 우리가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눈이 없으면 감정도 다른 것이 되어버려. 어떻게 그렇게 될지는 모르고, 다른 무엇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가씨는 우리가 눈이 멀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바로 그게 그 얘기야. 선생님을 사랑하시나요. 응,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하지만 만에 하나 내가 눈이 먼다면, 내가 눈이 먼 다음에 다른 사람이 된다면, 내가 어떻게 그이를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무슨 감정으로 사랑을 할까.전에 우리가 볼 수 잇었을 때도 눈이 먼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지금과 비교하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지. 일반적인 감정은 볼 수 있는 사람의 감정이었고, 따라서 눈먼 사람들도 눈먼 사람들의 감정이 아니라 성한 사람들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이제 눈먼 사람들의 진짜 감정들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어. 아직도 시작일 뿐이야. 지금은 그래도 우리가 가졌던 감정에 대한 기억에 의존해 살고 있잖아. 지금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는 데는 눈이 필요 없어. ...

p367

...답이란 필요하다고 해서 꼭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유일한 답을 기다려보는 것일 경우가 많다.

p387

...우리는 모욕의 모든 단계를 내려갔죠. 그걸 다 내려가서 마침내 완전한 타락에 이르렀어요. 방식은 다를지라도 여기서도 똑같은 일이 생길 수 있어요. 그래도 그곳에서는 그런 타락이 다른 사람들 탓이라고 핑계댈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게 안 돼요. 이제는 선과 악에 관한 한 우리 모두 평등해요.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이냐고는 묻지 말아주세요. 눈먼 것이 드문 일이었을 때 우리는 늘 선과 악을 알고 행동했어요.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에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아니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말아야 해요. 이런 도덕적인 설교를 해서 미안해요. 다른 모든 사람이 눈먼 세상에서 눈을 가진다는 것이 어떤의미인지 여러분은 몰라요. 알 수가 없어요. 나는 장님 나라의 여왕이 아니에요. 나는 이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려고 태어난 사람일 뿐이에요. 여러분은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죠. 나는 느낄 수도 있고 볼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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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

...우리는 눈은 내부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버렷다. 그래서 우리 눈은 우리가 입으로는 부정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적인 관찰에 덧붙여 특수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그 특수한 상황이란, 단순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어떤 악한 행동을 저질렀을 때 생기는 가책이라는 것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온갖 종류의 공포와 뒤섞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의 잘못을 얼버룸리려 하는 사람은 결국, 가혹하게도 자신이 받아 마땅한 벌의 두 배를 받게 된다. 이 경우, 차의 시동을 걸고 떠나는 순간 그 도둑을 괴롭혔던 것 가운데 몇 퍼센트가 공포이고 또 몇 퍼센트가 양심의 가책인지 해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조금 전까지 다름 사람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아 있는 도둑이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사람은 똑같은 운전대를 잡고 있다가 갑자기 눈이 멀었으며, 똑같은 유리로 앞을 내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들이 이 더럽고 음흉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이미 고개를 쳐들고 있던 공포심을 부채질했을 것임을 짐작하는 데는 그리 대단한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앞서 말한 대로, 가책, 즉 고통을 느낀 양심의 자기 표현이기도 했다. 비유적인 말을 사용하자면, 그것은 물어뜯는 이빨을 가진 양심이었다. 그것 때문에 도둑의 눈앞에 눈이 먼 남자의 비참한 모습이 어른거리게 되었다. 눈이 먼 남자는 문을 닫으면서, 그러실 필요없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때부터는 도움의 손길이 없어. 아마 한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했을 것이다.

p33

...그게 뭐 감기처럼 옮는 것도 아니고, 동네나 한 바퀴 돌면 괜찮아지겠지. 도둑은 차에서 내렸다. 차 문은 잠그지 않았다. 곧 돌아올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서른 걸음도 못 가서 눈이 멀고 말았다.

p52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거야. 반은 무관심으로, 반은 악의로, 의사는 불신감에 젖어, 이제 어떻게 한담, 하고 말하려다가, 자신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가진 정보를 안전한 통로로 적당한 장소까지 들어가게 하는 유일한 길은 공무원을 중간에 끼우지 않고, 자기가 근무하는 병원의 원장과 의사 대 의사로서 이야기하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관료 체계를 움직이는 것은 원장이 책임지면 될 일이야....

p70

...그 사람들이 자기들이 직접 택하지도 않은 사람의 권위를 인정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야. 게다가 나는 존중해 주는 대가로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잖아. 새로 오는 사람들이 내 권위와 규칙을 기꺼이 받아들여줄 거라는 가정에서 출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살기가 어려워질 거예요. 단순히 어렵기만 하다면 아주 운이 좋은 거라고 할 수 있지. ...나는 좋은 뜻을 가지고 한 말이지만, 솔직히, 선생님 말씀이 옳네요. 모든 사람이 다 저 잘났다고 하는 상황이 될 거예요.

p129

...책임자가 선출돼도, 그 책임자의 권위는 약할 수밖에 없고, 불확실할 수밖에 없고, 매순간 문제 제기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책임자는 공명정대하게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권위를 행사하고, 다수는 그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어야 했다. 그런 권위가 생기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이 안에서 서로를 다 죽이고 말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이 민감한 문제를 남편과 이야기하겠다고 다짐하고, 계속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p163

...지금까지 새로 도착하는 사람들이 계속 방해하고 개입함으로써 늘 새로운 의사 소통 통로를 마련해야 했다. 두 번째 이점은 현실적이고,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것으로, 민간인지 군부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바깥의 당국이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것과 온갖 유형, 배경, 기질을 가진 이백사십 명을 먹이는 갑작스럽고 복잡한 책임을 감당하는 일은 다르다는 것을 이해했다는 점이다....

p177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이런 식으로 진실이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으로 위장을 하기도 하는 법이다. 대중에게 사고의 진상을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불신의 결과는 곧 분명하게 나타났다. 사람들이 갑자기 버스를 이용하지 않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눈이 머는 바람에 죽느니, 차라리 스스로 장님이 되는 게 낫다고 이야기했다....

p203

...사람이란 어떻게든 자기 감정을 분출해야 하는 법이니까. 특히 눈이 멀었을 경우에는....

p204

...우린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 같군요. 처음 이곳에 왓을 때부터 그런 상황이었죠. 하지만 우리는 계속 견뎌낼 겁니다. 선생님은 낙관주의자시로군요. 아니, 나는 낙관주의자가 아닙니다. 단지 현재의 우리 모습보다 더 나쁜 건 상상할 수 없을 뿐이죠. 글쎄요. 나는 불행이나 악에 한계라는 게 있는지 잘 모르겠씁니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릅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을 받더니, 마치 혼자말을 하듯 중얼거렷다. 이러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야 말지. 그것은 모순을 내포한 결론이다. 결국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잇을 것이라는 말이거나, 아니면, 비록 모든 증거는 반대를 가리키고 있지만, 이제부터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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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탄생 10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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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리얼리즘.

눈이 보이면, 보라.

볼 수 있으면, 관찰하라.

모든게 하얗게 보이는 눈 멈.

갑지기 눈 먼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

눈에 이상이 없는데 앞이 보이지 않아.

눈이 먼 남자를 도운 남자, 차를 훔쳐가다 눈이 멀어버렸다.

관용과 이타심의 문제.

안과의사, 환자들. 자동차 도둑을 도와준 경찰.

병리적 증상 없이 바로 나타나는 전염병으로서의 실명.

보건 당국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무관심, 악의, 불신감 깨달은 의사.

- 격리가 시작된 지점에서 깨달았다. 1995년에 발표된 소설인데, 전염병으로서의 실명보다 인간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구나 하고.

- 권위와 규칙, 존중해주는 대가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나?

- 의사의 아내가 하는 관찰의 결과?를 나는 읽고 있구나.

- 다친 도둑의 다리.

격리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그냥 죽여버리고 사람들은 지저분해지고.

인간일 수 있을까. 정치이야기일 수도 있는 분배와 공정 생각.

자존심을 잃지 않고 군인들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국방부, 보건부. 죽으면 눈이 먼다는 보건부. 

먹는것만큼 치우는 것도 중요하구나.

안과의사부인이 있는 병실, 타인의 요구와 조건을 우호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정신상태가 있는 곳?

-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한 일들

- 불신과 소문

두려움때문에 눈이 먼건가.

안과의사와 그 아내의 대화. 영혼이 남아있는 눈.

인간의 예의를 잃어버리는 사람들. 지저분해진다는 말로 표현이 안되겠지.

와중에 음식에 돈을 내라는 무리가 생겼다.

매번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없겠지 싶은 상황.

원래 눈이 멀어있던 사람이 포함된 악당 무리.

검은 안대 노인의 라디오. 뉴스의 왜곡. 결국은 뉴스도 끊김.

전혀 인도주의적이지 않은 당국의 백색 실명자 격리.

먹고 사는 일, 먹는 일이 최우선이 되는. 그 다음은 성?(도둑들은 금품 다음에 여성을 요구)

작가가 제 이의 살갗이라고 표현할 이기주의.

남편이 검은색 안경을 낀 여자와 자는 걸 보는 아내. 모인다는 것이 ....둘은 어떤 마음일까.

검은 색 안경을 낀 여자가 안대한 노인과 자는 건 또 어떤 마음인가.

먹을 것을 담보로 유린 당하는 여자들.

혼인의 명예라...

결국 의사의 아내는 살인을 한다. 도둑 두목을 죽였어. 

두려움.수치심도 없이 먹을 것을 찾는 이들.

결국 죽고, 나름 전쟁, 불지르고. 나왔는데 모두가 눈이 먼 세상. 사람이길 포기한다는 것.

상황의 힘과 특성이 사람의 언어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감정, 눈이 멀고 상황이 이리 되면 인간으로서의 감정도 사라지나 모두 눈이 멀고, 물 전기 물자도 없는 혼돈.

경험은 삶의 애인.

격리되어 있던 사람들의 생활도 끔찍했지만 눈이 멀어가던 바깥세상도 엉망이었구나.

빗물에 씻고 행복해(?) 진다. 이들은 눈이 멀고 한 번도 씻지 못했었지.

세상이 이렇게 더러우면 실명말고 진짜 감염성 전염병이 생길 것 같다.

역시 빗속에서 세 여자가 목욕하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검은 안대의 노인 목욕장면도.

첫번째 눈이 먼 남자 집에 사는 작가.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 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다는 의사 아내의 말.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나가는게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

눈이 가려진 성상들이 있는 성당 거짓말처럼 시력이 회복되길 시작한다.

-해설

환상적 리얼리즘.

유럽에서의 포르투갈. 포르투갈 국민의 정체성.

가상적 설정에서 출발한 이야기.

현대 사회에 만연한 무책임한 윤리 의식과 이에 대한 무지의 고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에야 가지고 있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솔직히 읽기 힘들었는데...그 리얼리즘 때문이겠지...너무 끔찍해서.

뒷부분 제일 끔찍했던 수용소에서의 성상납이후엔 오히려 울컥했던 부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인생. 삶에 대한 희망?이...

나눔.

<사라마구는 "눈먼 자들의 도시"는 단지 촛불에 비친 일시적인, 그것도 희미한 환영에 불과하기 때문에.

'보고 있다'는 허상에서 벗어나 서로 베풀고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눈먼자들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일상에 대해 좀더 주의깊은 시선 돌리도록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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