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의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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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道는 藝道의 長葉을 뻗는 深根인 것을...

藝道는 人道의 大河로 향하는 시내인 것을

최고의 예술작품은 결국 '훌륭한 인간', '훌륭한 역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76.7.5)

 

신영복 선생의 교도소내 편지들을 영인본으로 읽는다.

이 묵직한 책을 끌어안듯 부여안아 읽으면서

그이의 이십 년을 상상한다.

아, 어찌 살아왔을까.

 

무기징역이라는 길고도 어두운 좌절 속에는

괭잇날을 기다리는 무진장한 사색의 鑛床이 원시로 묻혀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우선 제 사고의 서랍을 엎어 전부 쏟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까울 정도로 과감히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지독한 지식의 사유욕에

설픈 관념의 야적에 놀랐습니다.

그것은 늦게 깨달은 저의 치부였습니다.

사물이나 인식을 더 복잡하게 하는 지식, 실천의 지침도,

실천과 더불어 발전하지도 않는 이론은 분명

질곡이었습니다.

이 모든 질곡을 버려야 했습니다.

簦(섭교담등 - 짚신을 신고 우산을 멤, 먼 길 떠날 채비 함)

언제 어디로든 가뜬히 떠날 수 있는 최소한의 소지품만 남기기로 하였습니다.(1977. 6. 8)

 

징역살이 속에서

특히 계수님께 쓴 엽서들은

그의 감성이 두드러진다.

 

이 아픈 현대사를

엽서로 읽는 일은,

고통스러운 쾌락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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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귀 모:든시 시인선 1
정진규 지음 / 세상의모든시집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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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그의 시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는 말이 울림이 크다.

 

작년 9월에 돌아가셨다.

 

시는 番外의 꽃입니다.

서로의 속 상처를 꽃으로,

꽃의 향기로 어루만져야 합니다.(시인의 말 중)

 

번외라는 말은 '계획에 들어있지 않은 예외적 사례'라는 의미인데,

인간 존재 자체가 번외의 그것이고 보면,

무엇 하나 번외 아닌 것이 없다.

그렇지만, 시에는 '번외의 꽃'이라는 수식을 했다.

화엄이다.

 

심검당이여

가지와 허공의 향방을 애초대로 짚고 지나갔다

바람불고 지나간 자리마저 다듬었다.

웃자란 자리만 잘라내었다

분별이여.

그대 아득히 떠나간 자리,

심검당이여(그릇과 가지치기, 부분)

 

아내가 그릇을 싹 바꾸듯,

나무의 가지를 쳐내듯,

'분별'을 잘라내는 일이,

필요하다.

날카롭게 벼린 칼로, 싹둑.

심검당이여...

 

서글펐다

- 환멸의 습지에서 가끔 헤어나게 되면은 남다른 햇볕과 푸름이

자라나고 있으므로 서글펐다(김종삼, 평범한 이야기)

 

  이렇게 기인 머리 인용문을 달고 있는 것을 내 시에서

본 적이 있는가 <서글펐다>가 사무치게 좋았기 때문이

다 환멸의 습지가 내 시의 자양으로 늘 거기 있었으므로

그걸 헤어나는 게 내 시였으므로 사랑을 해도 늘 그와

같았으므로 그게 늘 햇볕 공터와의 만남이었으르모 왈

칵 쏟아지는 눈물이었으므로 번외 番外로 오는 남다른 것

이었으므로 푸르다기보다는 늘 초록으로 거기 깔려 있

던 것이었으므로 그날 이후 꾸역꾸역 몰려오는 충만이

었으므로 <서글펐다>가 사무치게 차올랐기 때문이다 황

홀과 서글픔은 한몸이다 눈물이 났다 너와 나만의 보석

이었다 <가시내야 가시내야 무슨 슬픈 일 좀, 일 좀 있어

야겠다> 미당은 그걸 벌써 아득히 매만지고 있었다 겨

우 더듬거려 말하고 아련히 떠나는 그의 뒷등에 부는 가

을바람이었다 아득한 배고픔이 나를 먹여 살렸다

 

그의 시는 시와 산문을 넘나든다.

김종삼과 고은의 번외편이다.

읽는 이가 감동의 물결을 함께 번질 수 있다면 시고,

아니면 산문이다.

 

연꽃의 상처는 순번이 다르다

그래서 번외다

속상처가 가장자리에서 시작된다(연꽃, 부분)

 

범종에 유곽이란 부분이 있다.

번외의 자리다.

아, 삶의 번외성을 바라본 그의 나이든 날들은 어떠했을라나...

 

비가

 

헤밍웨이가 쓴 가장 짧은 소설 ;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신겨 보지 못한

정진규가 쓴 가장 짧은 시 ;

팝니다, 아기 배냇저고리, 한 번도 입혀 보지 못한

 

제목 그대로 비가다.

김종삼의 '민간인'이 주는 아픔이 저릿흐다.

 

번외의 맛

그게 과자의 맛이야

율려 과자야

우유 맛이야

드디어 번외까지 내달았군

그러고 보니 화엄까지 넘보았군

한바탕 잘 놀았어

그만하지(과자 만들기, 부분)

 

한바탕 잘 놀았으니, 그만하지...

어둠에 별의 존재를 그려준 시인의 이야기는

투박하지만, 직지 直指한다.

인생, 번외의 꽃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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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아케이드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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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질의 낭독회'에서 잔잔한 감동을 읽은 뒤라,

오가와 요코의 이름을 만나 반갑게 빌려왔다.

 

sai hate arcade...

 

작고 시시해 보이는 아케이드에서 배달 담당 소녀인 주인공과 얽히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유쾌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한 울림을 준다.

 

어찌 보면 우리의 하루하루가

짠한 순간과 시들한 순간을 합하면서

유쾌한 민트 향이 가미된 기억으로 남는 것처럼...

 

백과사전을 읽는 소녀와 아피아 가도를 잊을 수 없고,

고리집 결혼 사기범인 도넛 자세를 보여준 체조 선수도 기억에 남는다.

 

오가와 요코의 세계는 다정하다.

두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 시간,

두번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

인간이 근원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슬픔을 살며시 보듬어 준다.

그것을 해소해주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해소가 가능하지 않은 인간의 근원적 조건이기에...(238, 옮긴이의 말 중)

 

인간은 아무도 발을 들여놓은 적 없는 캄캄하고 습한 동굴에 사는 황갈색 과일박쥐를 생각하는 인생.(208)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그만큼 더 매력적이다.

흔히들 가치를 매기는 숫자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유발 레이스는 쉽사리 풀고 다시 뜰 수 없다.

한번 뜨고 나면 머리카락에 자국이 남는 탓에

다시 떠도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185)

 

망자가 남긴 모발...

그걸 기억하기 위해 레이스를 뜬다.

이 소설에서 가장 오래 남는 여운이 그런 것이다.

유발 레이스라는 상관물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 같은 것...

그래선지, 일본 출판물에서는 커다란 유발을 보고 있는 소녀를 담았다.

 

세계의 우묵한 구멍같은 아케이드에 숨겨진

또 하나의 나의 우묵한 구멍.(136)

 

손잡이 가게 안의 우묵한 구멍은

이 소설이 겨냥하는 목적지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어느날 문득 참가한 모임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을 그린 '인질의 낭독회'처럼,

작은 세상 가장자리의 우묵한 아케이드에서,

사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오늘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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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교육과정-수업-평가를 응원합니다 - 학교 혁신을 위한 교사들의 입문서
천정은 지음 / 맘에드림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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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학생이 입장에서 존경하는 직업인의 상이라면,

교사...는 객관적인 일상적 직업인이고,

스승...은 도제식의 수련 과정에서 얻게 되는 명예 정도일 터인데,

교육자...는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추구해야 할 어떤 상을 가진 인물이라 생각해 본다.

 

내년 3월이면 발령받은 것이 30년이 된다.

30년간 얻은 것도 적지 않지만,

타성에 따라 또는 부끄럽게도 이전의 교사들이 하던 행동을 따라 했다.

나의 철학이 없는 수업과 업무에 열심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반성할 점이 많다.

 

아이들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명강의를 펼친다 해도,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자는 아니다.

아이들을 성장하도록 이끄는 것이,

부족하지만, 동료 교사와 함께 그 과정을 설계하고, 진행하고,

또 돌아보면서 설계하는 살아있는 교사가 진정한 교육자의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일 것이다.

 

지난 여름, 수원에서 만난 독서교육 선생님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교육자의 삶을 살려고 서로 배우고 있었다.

다시 돌아봐도 참 존경스러운 분들이었다.

 

이 책을 진작 사두고 이제서야 펼친 것은, 나의 부끄러움에 직면하기 힘들어서였다.

역시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이제 정년까지 남은 11년을 반성하며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갖도록 했다.

동료 교사와 함께할 여력은 없다.

그래서 혁신학교같이 일 많은 데로 갈까도 생각을 하고 있다.

씨앗을 심지 않으면 수확할 수 없을 것이므로...

수업을 나누는 씨앗을 심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278, 조동화, 나 하나 꽃피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곧 꼰대가 되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

육신의 나이는 어쩔 수 없지만,

나이들어 단단해지는 부분도 있고, 부드러워야 할 때도 알아야 하는 부분도 있다.

 

동료와 함께 교육철학과 교육과정을 고민하면서

내가 더 이상 수업기술자로 살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는 수업기술자가 아니라 교육자여야 한다.(80)

 

교육자로서 아이들의 교실에 활기를 넣으려 이런저런 방법을 쓰기도 했다.

공동 일기를 쓰고 생각을 나누기도 했고, 그걸로 문집을 엮기도 했고,

아침마다 영어 속담이나 격언 발표하기 등의 조회로 격려하기도 했다.

교육자의 행동은 어떤 결과를 불러올 지 예측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철학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하는데,

학교가 쓸데없는 행정적 업무 중심으로 짜여져 있어서

나이들수록 업무 담당 부장이 되는 일은 피곤하다.

교육철학이 없는 교장과 함께 하는 부장은 지옥이다.

어제 동료들이랑 한잔 하면서 다들 부장은 못하겠다 한다.

 

교사가 잘 해내는 교실, 혹은 교사가 멋지게 보이는 교실이 아니라

학생들이 잘 배우는 교실이 목표라면 강의식 수업은 주된 교수학습법이 될 수 없다.(122)

 

나는 학생들의 협동학습에 익숙하지 않고,

강의식 수업을 유창하게 해도 잠들고 마는 아이들 앞에서 늘 좌절해 왔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실, 을 목표로 한다면,

협동학습으로 성장하는 수업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한국 교사의 특성도 있어

매년 다른 과목 수업을 해야하는 것이 힘들다.

깊어지기 보다는, 얕게 피상적으로 스치는 시간이 많아서 힘들다.

 

학점제처럼 변화될 필요가 그래서 있다.

언젠가는 대학과 비슷하게, 쓰기에 10년이고 20년이고 몰두한 교사들이,

독서지도에 몰두한 교사들이 연구회를 만드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래서 나는 남은 10년을 독서지도에 몰두하는 교육자가 될 것을 꿈꾸고 있어

이런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그림처럼 앉아서

정숙하게 교사의 말을 듣고 있는 모습은

교사들에게 너무나 달콤한 광경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정숙함이 배우고 있는 증거가 아니라면

과감히 포기해야...(130)

 

가능하다면 당장 신가중학교에서 동료들과 함께하고 싶지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 씨앗을 심지 않고서는 꿈은 헛된 것이다.

성장이 일어나는 교실을 보면서 퇴직하고 싶다.

아이들이 책에 대해 물어보고 이야기하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기록하는 여생을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다.

이 더운 여름을 지나면서, 내 마음에 씨앗이 하나 여물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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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난폭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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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작위적이기도 하지만,

모모코의 남편이 바람이 났다.

모모코의 일기와 바람녀의 일기가 재미있다.

역시, 남의 일기를 보는 일은 재미있다.

작가는 그걸 안다. ^^

 

요시다슈이치의 글은

빠져들며 읽게되는 특징이 있다.

 

아이를 유산하게 되는 일에 대하여

모모코와 바람녀가 공감하고 있어 마음 아팠다.

 

남편 마모루의 책임감 없음이 한심하지만,

그는 중심 인물이 아니어서 화가 날 정도는 아니다.

 

모모코와 시어머니의 보이지않는 전쟁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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