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몸값 1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그의 소설에서 웃기는 이야기를 주라고 생각했는데,

남쪽으로 튀어!에 이어 '올림픽의 몸값'에서는

사회에 대한 애정과 고뇌가 듬뿍 담긴 것을 볼 수 있다.

 

패전의 책임도 지지 않고,

반성도 하지 않는 일본,

 

패전의 슬픔만 기억하는 나라.

가해자로서의 잔인함은 편리하게 잊는 나라.

 

그러면서 한국전쟁을 기회로 재기를 꿈꾸며

1964,10.10 도쿄 올림픽을 기획하던 시기의 일본에 오쿠다 히데오가 한방 먹인다.

 

천황제는 이런 때 참 편리하구나.

완전하신 공인이 정점에 있어주는 덕분에 이 나라 지배층은 언제라도 봉공인이라는 입장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가혹함과 맞서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천황제는 일본인의 영원한 모라토리엄인 것이다.(4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하루 - 이현주의 생각 나눔
이현주 지음 / 삼인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르치려고 하지 마!”
권정생 선생이 이현주 목사에게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해준 말이다. 선생이 타계하기 한 달쯤 전이었다고 한다. 권정생 선생이 좁은 방에 옆구리를 마주대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뜬금없이 불쑥 하신 말씀이 이현주 목사의 가슴에 박혀들었다.
어느 날이었던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노자 이야기를 하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노자의 스승은 자연이었네. 예수님도 자연한테서 배우셨고. 사람에게 자연보다 높은 스승이 없지. (180)

 

이름 그대로 바른 삶이셨던 선생님.

가르치려 하지 않고

강아지똥같은 삶을 살아가신 선생님.

호 같은 건 지니지 않고 살아가신 선생님...

그 마음이 자연이었구나... 싶다.

 

권정생 선생 빈소에 진열된 거창한 화환들을 보는 순간 마음이 언짢았어요.

저기에 자기 이름과 화사 이름을 큰 글씨로 박아놓은 이들이

권 선생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더라면,

과연 저럴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이 일면서 괘씸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그런데요, 돌아와서 우연히 카페에 들러보니,

다만 사랑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네 방식이 그릇된 건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그들의 방식도 그릇된 게 아니라고,

문제는 그들의 방식이 그릇되었다는 너의 판단과 견해에 네 언짢음의 뿌리가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일찍이 너에게

오직 견해를 멈추라(唯須息見)고 일러주지 않았느냐고...(339)

 

이건 지나친 생각 아닌가 하다가도,

보잘것 없는 존재 주제에 지나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 작아지고, 견해를 멈춰야 조금이라도 보일 것이고 배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영복의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人道는 藝道의 長葉을 뻗는 深根인 것을...

藝道는 人道의 大河로 향하는 시내인 것을

최고의 예술작품은 결국 '훌륭한 인간', '훌륭한 역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76.7.5)

 

신영복 선생의 교도소내 편지들을 영인본으로 읽는다.

이 묵직한 책을 끌어안듯 부여안아 읽으면서

그이의 이십 년을 상상한다.

아, 어찌 살아왔을까.

 

무기징역이라는 길고도 어두운 좌절 속에는

괭잇날을 기다리는 무진장한 사색의 鑛床이 원시로 묻혀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우선 제 사고의 서랍을 엎어 전부 쏟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까울 정도로 과감히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지독한 지식의 사유욕에

설픈 관념의 야적에 놀랐습니다.

그것은 늦게 깨달은 저의 치부였습니다.

사물이나 인식을 더 복잡하게 하는 지식, 실천의 지침도,

실천과 더불어 발전하지도 않는 이론은 분명

질곡이었습니다.

이 모든 질곡을 버려야 했습니다.

簦(섭교담등 - 짚신을 신고 우산을 멤, 먼 길 떠날 채비 함)

언제 어디로든 가뜬히 떠날 수 있는 최소한의 소지품만 남기기로 하였습니다.(1977. 6. 8)

 

징역살이 속에서

특히 계수님께 쓴 엽서들은

그의 감성이 두드러진다.

 

이 아픈 현대사를

엽서로 읽는 일은,

고통스러운 쾌락을 안겨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르는 귀 모:든시 시인선 1
정진규 지음 / 세상의모든시집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아이들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그의 시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는 말이 울림이 크다.

 

작년 9월에 돌아가셨다.

 

시는 番外의 꽃입니다.

서로의 속 상처를 꽃으로,

꽃의 향기로 어루만져야 합니다.(시인의 말 중)

 

번외라는 말은 '계획에 들어있지 않은 예외적 사례'라는 의미인데,

인간 존재 자체가 번외의 그것이고 보면,

무엇 하나 번외 아닌 것이 없다.

그렇지만, 시에는 '번외의 꽃'이라는 수식을 했다.

화엄이다.

 

심검당이여

가지와 허공의 향방을 애초대로 짚고 지나갔다

바람불고 지나간 자리마저 다듬었다.

웃자란 자리만 잘라내었다

분별이여.

그대 아득히 떠나간 자리,

심검당이여(그릇과 가지치기, 부분)

 

아내가 그릇을 싹 바꾸듯,

나무의 가지를 쳐내듯,

'분별'을 잘라내는 일이,

필요하다.

날카롭게 벼린 칼로, 싹둑.

심검당이여...

 

서글펐다

- 환멸의 습지에서 가끔 헤어나게 되면은 남다른 햇볕과 푸름이

자라나고 있으므로 서글펐다(김종삼, 평범한 이야기)

 

  이렇게 기인 머리 인용문을 달고 있는 것을 내 시에서

본 적이 있는가 <서글펐다>가 사무치게 좋았기 때문이

다 환멸의 습지가 내 시의 자양으로 늘 거기 있었으므로

그걸 헤어나는 게 내 시였으므로 사랑을 해도 늘 그와

같았으므로 그게 늘 햇볕 공터와의 만남이었으르모 왈

칵 쏟아지는 눈물이었으므로 번외 番外로 오는 남다른 것

이었으므로 푸르다기보다는 늘 초록으로 거기 깔려 있

던 것이었으므로 그날 이후 꾸역꾸역 몰려오는 충만이

었으므로 <서글펐다>가 사무치게 차올랐기 때문이다 황

홀과 서글픔은 한몸이다 눈물이 났다 너와 나만의 보석

이었다 <가시내야 가시내야 무슨 슬픈 일 좀, 일 좀 있어

야겠다> 미당은 그걸 벌써 아득히 매만지고 있었다 겨

우 더듬거려 말하고 아련히 떠나는 그의 뒷등에 부는 가

을바람이었다 아득한 배고픔이 나를 먹여 살렸다

 

그의 시는 시와 산문을 넘나든다.

김종삼과 고은의 번외편이다.

읽는 이가 감동의 물결을 함께 번질 수 있다면 시고,

아니면 산문이다.

 

연꽃의 상처는 순번이 다르다

그래서 번외다

속상처가 가장자리에서 시작된다(연꽃, 부분)

 

범종에 유곽이란 부분이 있다.

번외의 자리다.

아, 삶의 번외성을 바라본 그의 나이든 날들은 어떠했을라나...

 

비가

 

헤밍웨이가 쓴 가장 짧은 소설 ;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신겨 보지 못한

정진규가 쓴 가장 짧은 시 ;

팝니다, 아기 배냇저고리, 한 번도 입혀 보지 못한

 

제목 그대로 비가다.

김종삼의 '민간인'이 주는 아픔이 저릿흐다.

 

번외의 맛

그게 과자의 맛이야

율려 과자야

우유 맛이야

드디어 번외까지 내달았군

그러고 보니 화엄까지 넘보았군

한바탕 잘 놀았어

그만하지(과자 만들기, 부분)

 

한바탕 잘 놀았으니, 그만하지...

어둠에 별의 존재를 그려준 시인의 이야기는

투박하지만, 직지 直指한다.

인생, 번외의 꽃이란 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 끝 아케이드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인질의 낭독회'에서 잔잔한 감동을 읽은 뒤라,

오가와 요코의 이름을 만나 반갑게 빌려왔다.

 

sai hate arcade...

 

작고 시시해 보이는 아케이드에서 배달 담당 소녀인 주인공과 얽히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유쾌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한 울림을 준다.

 

어찌 보면 우리의 하루하루가

짠한 순간과 시들한 순간을 합하면서

유쾌한 민트 향이 가미된 기억으로 남는 것처럼...

 

백과사전을 읽는 소녀와 아피아 가도를 잊을 수 없고,

고리집 결혼 사기범인 도넛 자세를 보여준 체조 선수도 기억에 남는다.

 

오가와 요코의 세계는 다정하다.

두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 시간,

두번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

인간이 근원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슬픔을 살며시 보듬어 준다.

그것을 해소해주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해소가 가능하지 않은 인간의 근원적 조건이기에...(238, 옮긴이의 말 중)

 

인간은 아무도 발을 들여놓은 적 없는 캄캄하고 습한 동굴에 사는 황갈색 과일박쥐를 생각하는 인생.(208)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그만큼 더 매력적이다.

흔히들 가치를 매기는 숫자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유발 레이스는 쉽사리 풀고 다시 뜰 수 없다.

한번 뜨고 나면 머리카락에 자국이 남는 탓에

다시 떠도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185)

 

망자가 남긴 모발...

그걸 기억하기 위해 레이스를 뜬다.

이 소설에서 가장 오래 남는 여운이 그런 것이다.

유발 레이스라는 상관물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 같은 것...

그래선지, 일본 출판물에서는 커다란 유발을 보고 있는 소녀를 담았다.

 

세계의 우묵한 구멍같은 아케이드에 숨겨진

또 하나의 나의 우묵한 구멍.(136)

 

손잡이 가게 안의 우묵한 구멍은

이 소설이 겨냥하는 목적지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어느날 문득 참가한 모임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을 그린 '인질의 낭독회'처럼,

작은 세상 가장자리의 우묵한 아케이드에서,

사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오늘의 과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