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 자본주의와 분열증 2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지음, 김재인 옮김 / 새물결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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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쓸 때는 그 책을 최소한 절반 이상은 읽어야 할 듯 싶지만...
이 책은 1장. 리좀과 마지막 부분의 우노 쿠니이치의 해설만 읽었다.

서론과 부록만 읽었기 때문에 내용을 모두 알진 못한다.
겨울방학이 되면 본격적으로 시간을 낼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이 책으로 들뢰즈와 가타리를 시작하는 건 아니다 싶어서 책을 접었지만,
그의 개념들을 만난 기념으로 리뷰를 몇 자 끄적인다.

세상을 단선적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는 '유목민'의 탈영토화를 이야기하는 책들을 많이 읽어왔는데, 고미숙 같이 연구공간 수유+너머... 같은 사람들 이야기에는 들뢰즈와 가타리 이야기가 끝도 없이 나온다.

그 배경이 어떠했던 것인지를 알고 싶었던 건데,

고정되지 않고 '생성'되는 세계를 그들은 '-되기'라는 말로 부른다.
새로운 세계관이 아니라, 기존의 획일적 고정관념을 약간 비튼 부정이다.

그러나, 이것의 부정은 저것이 아니라 이것 아님을 밝히는 그들의 논리는 너무도 불확정적이어서 논리적이지 않아보일 때도 있었다. 명쾌하지 않은 논리. 그들의 속으로 들어가려면 우선 무장해제부터 해야할 터인데, 이 1000페이지짜리 책 앞에서 나는 그냥 무장해제 당했다. 1장을 읽는 일도 힘든 일이었다.

질서, 규칙, 대칭, ... 이런 것을 부정하고, 정확한 언표 행위를 부정하고...
정확한 표현에 비근한 '比 정확한 표현'이 필요하다는 그들의 논리에는 수긍이 간다.
세상에는 남성성과 여성성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던가.
고정된 본질과 구분되는 질료적이고 모호한, 유동적이고 비정확하지만 분명히 엄밀한 본질의 영역에 있는 것들...

사본이 아니라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들의 논리를 '학교'에도 집어넣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국어, 도덕, 사회, 수학, 과학... 이런 것은 사본이다.
학교에서는 사본을 가르친다.
그렇지만, 수능은 '지도'다. 국어가 아니라 언어 영역을 치르기 때문에...
수능 시험은 상당히 진화된 시험이다. 문제는 그것이 사람을 평가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이지, 수능 시험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수능 시험을 잘 보도록 하려면, 다양하게 가르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다양체로서의 언어영역.
아이들에게 그 언어영역을 헤치고 나아갈 길을, <지도>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 교사다.
그렇지만... 어떤 네비게이션으로도 찾지 못할 곳들은 세상에 많다.
세상엔 고원이 천 개 이상이기 때문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를 읽으려면... 어떤 책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까?
한번 찾아봐야겠다.(이번 겨울 방학엔 아무래도 서양 고전을 두루 섭렵해야할 것 같은 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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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사회평론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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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윤리...를 가라타니 고진이 들고 나온 것은... 20세기가 너무도 큰 전쟁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동감하는 부분도 많지만, 나는 자본주의의 생리가 전쟁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새로운 윤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진을 잘못 읽은 탓이리라...

원인을 밝히는 일은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한국 사회에서 과거사 규명은 원인을 밝히는 문제다. 아직도 원인을 밝히는 문제는 요원하기만 한데, 국립 현충원에 모신 두 전직 대통령들에 얽힌 사건들도 그렇고, 숱한 학살들과 사법 살인, 국가의 폭력으로 죽은 의문사와 광주들이 그렇다. 책임의 문제가 아니다. 책임만을 물으면 마녀 사냥이 되기 쉽다.

사물의 본질을 바라보는 데에는 (괄호)치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샘'이란 제목으로 제출했을 때, '더럽게 변기를?'하고 보면 더럽지만, 거기 볼일보는 일을 괄호치고 보는 눈이 필요하다는 것. 누드화도 마찬가진데... 벗은 여자를 보고 흥분하면 안 된다. 그럼 예술이 아니고 외설이 되고 만다. 벗은 여자는 괄호치고, 그 그림을 보아야 예술미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예술의 형식을 통해서 윤리의 본질을 유추하는 방식도 재미있다.
우리는 사물을 판단할 때 인식적(참,거짓), 도덕적(선악), 미적(쾌,불쾌) 판단을 동시에 행한다. 그것들은 혼합되어있어 확연히 구별되진 않는다. 과학자는 도덕적, 미적 판단을 괄호에 넣어서 인식의 대상을 판단한다. 미적 판단에선 사물의 허구, 악은 괄호에 넣어진다. ...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괄호에 넣도록 '명령'을 받고, 그것에 익숙해지면 괄호에 넣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다...(197)

자유도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에 의하여 존재한다...

생각할 것을 많이 던져주는 이야기다.

일본의 패전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천황을 처벌하지 않은 것, 원인을 제대로 캐어 책임을 묻지 못한 것이 결정적으로 일본인들을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게 한 것이라는... 그 책임은 동아시아의 공산주의 확산을 방어하기 위하여 천황을 명책하기로 한 미국 정부에게 있겠지.

책과는 상관없이 가라타니 고진...이란 이름을 들으면 柄谷行人 무늬진 골짜기를 걷는 나그네... 가을이라 단풍이 붉게 퍼진 숲길을 고요히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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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7-11-10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소세키의 <行人>이 너무 좋아 개명했다고 해요.
고진 책들 중에 제일 먼저 읽은 것인데
윤리21을 젊은 윤리학이라고 부르고 싶더군요.

글샘 2007-11-12 08:52   좋아요 0 | URL
그렇더군요. 보통 윤리학이라면 고리타분하기 쉬운데... 이 책은 신선한 바람으로 화~ 했어요. 젊은 윤리학... 좋은데요^^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파우스트>에서 <당신들의 천국>까지, 철학, 세기의 문학을 읽다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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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는 '바 bar 안에서 만드는 사람 bar + ista'이란 뜻이란다.
소믈리에게 포도주 전문가라면, 바리스타는 보통 커피 전문가라고 알려져 있다.
최근에 유행한 드라마 덕에 널리 알려진 말이라고 한다.

이 책은 대단한 바리스타의 수다다.
이 바리스타의 전공은 철학이고, 수다 거리는 문학의 고전들이다.

보통 고전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읽어본 적이 없는 책들이 많을 것이다.
나처럼 읽었다 한들, 그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읽었을 따름인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읽는 순간에는 주제가 이런 거겠지? 했던 것들이 십몇 년 지나고 나면 다 잊혀져 버리게 마련일 것이다. 그래서 순간을 회상하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리뷰를 남긴다.

쟁그랑~ 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은은한 촛불들이 반겨주는 카페에 들어가면...
온 몸을 감싸도는 커피향 또는 옅은 계피향이 섞여 있고,
제법 큼직한 커피잔에 든 커피들을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곳.
거기서 만난 바리스타는 우리에게 날마다 다른 차를 한 잔씩 권한다.

좀 흐릿한 날엔 캬라멜 향이 그득한 마끼아또를 권해주기도 하고,
각막에 생채기라도 낼 듯 날카로운 햇살을 등진 날엔 진한 에스프레소를 내놓기도 한다.
비가 추절추절 내려서 금세 기침이라도 날 듯한 날엔 따끈한 잔에 든 코코아를 내밀기도 하고,
우연히 시간을 내서 일찍 들른 아침 나절엔 거품 가득한 카푸치노를 자랑하기도 하는 그...

그는 입으로 말하지 않지만, 찻잔 속의 차 안에 갖가지 의미를 담기도 한다.
이 바리스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유명한 이야기들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로 시작해서 헤세의 데미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세익스피어의 오셀로, 카프카의 변신, 샤르트르의 구토,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카뮈의 페스트, 최인훈의 광장,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오웰의 1984,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이야깃거리다.

왜 파우스트로 시작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마쳤을까?를 생각해 본다.

파우스트는 '자기'를 이야기한다. 개인의 탄생이라고 할까?
프루스트의 이야기는 '회상'에 대한 이야기다.

이 나이든 바리스타는 자기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철학과 문학에 빗대어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기는 점점 성장한다. 성장 소설의 백미는 역시 데미안이다.
이 자기는 사랑과 질투에 대해 고민한다. 사랑하는 이들이 읽을 책 어린 왕자와 질투의 녹색 눈동자, 오셀로...

이제 구역질나는 일터에서 의미없는 일을 하는 톱니바퀴같은 존재로 전락한다.
구토와 변신의 바퀴벌레,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부조리한 시간들처럼... 그는 어쩔 수 없는 시지프스가 아닐까?

그는 저항함으로써 존재 이유를 찾기도 한다. 그 마음 속에선 유토피아를 꿈꾸기도 하지만, 세상은 이미 디스토피아로 전락한 듯 하다.

이런 일련의 철학적 심상들을 회상하는 일,
우연히 폐부를 파고 드는 시나몬 향(계피)으로 떠오르는 옛 애인의 얼굴과,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애인의 옷, 그 때 흐르던 음악의 데시벨과 그 날의 햇살의 룩스까지가 기억나는 회상의 추억으로 이 바리스타의 수다는 멈춘다.

인생을 훑어 보는 것이 곧 철학이고,
우리가 별 것도 아닌 사실들을 경험하는 개인의 역사가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걸 구체화시켜 형상있는 존재로 만든 것들이 문학이기 때문에...
문학은 '사실'보다 더욱 '진실'한 존재의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바리스타는 오늘도 에스프레소의 새초롬한 잔에서 진한 인생의 향기를 우리에게 들이미는 것이다.

사실은 구수한 원두 커피를 아주 엷게 마시고 싶지만,
그가 진한 에스프레소를 내민다고 해도, 오래 머금고 있으면서 나를 내세우지 않는 오늘...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마치 그런 것처럼...> 하루를 이겨낼 힘을 그에게서 얻을 수도 있고,
페스트가 창궐한 오랑에서 <버티고 앉았어야> 내일을 볼 힘을 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시 쨍그랑 * *  * ** 하고 문이 열렸다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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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07-10-10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리스타, 옆지기가 자칭하기도 하고 제가 가끔 불러주는 이름이기도 해요.
그래야 만들어주는 커피 한 잔 마시죠.^^ 이 책 담아갑니다. 에스프레소 향이
은은히 느껴질 것 같아요. 글샘님 글도 참 좋습니다.^^

글샘 2007-10-10 12:01   좋아요 0 | URL
가을을 타는지... 글이 좀 제멋대로죠~~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리라이팅 클래식 7
진은영 지음 / 그린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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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 책으로 칸트를 들여다보려한 내가 잘못이었는지 모른다.

칸트의 개념들을 방학을 이용해서 오랜만에 한번 보려도 들었던 책인데,
저자는 의외로 시인이고,
툭하면 푸코와 들뢰즈이야기를 들먹이며,
니체도 끄집어온다.

칸트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도 아니겠으나, 이물감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칭찬 하나 하자면, 고딩용 누드 교과서처럼 개념을 박스에 넣어서 설명하려한 점은 가상하다만...

계몽의 시대 18세기의 한복판에서 청교도부모의 영향을 받은 칸트는 고전문학, 물리학, 철학을 대학에서 공부했다. 뉴턴 물리학의 성공은 기존의 형이상학적 사유를 반성할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감히 알려고 하라, 너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렇게...

경험 속에 들어있는 '인식 능력'을 '경험 자체'보다 더 사랑한 칸트.

물자체를 상정하고 그것이 우리의 인식 능력에 따라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우리 이성은 그걸 갖고 논다.

칸트를 엿보면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제일 유명할 법한 구절 : 내용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는 말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내가 하는 교육이, 이 땅에서 교육이란 이름으로 저지르고 있는 온갖 양태가 바로 내용이 없는 사고에 불과하단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행태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에는 개념이 없는 맹목적 직관들의 '군림'이 근본적으로 깔린 것이 아닐까 하는...
게다가, 실천적 도덕률이라고는 듣도 보도 못한 지경의...
그리고 판단을 내일 수 있는 '교육, 독서,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문외한들의 맹목을...

칸트를 처음 만난 것은 당연히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였지만, 그건 암기용이었고, 다음엔 대학 시절, 온갖 변증법 철학서에서 곁다리로 꼬여있는 칸트를 경험한 것이 내 공부의 전부였다. 그의 순수이성비판을 사두긴 했지만, 지금도 서재어딘가에 쳐박혀 있겠지만, 좀 가벼운 필체로, 손쉽게 칸트를 만나려 했던 내가 잘못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학시절 읽던 철학서 공부의 오류(비판을 위한 책이다 보니 내용이 깊지 않고 산만한)를 이 책에서도 읽는 느낌이어서 불편했다.

그리고... 숱한 철학적 개념을 만들어낸 칸트를 쳐다보면서, '번역'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생각한다. 일본을 통해서 들어왔을 것이 뻔한 그런 개념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철학으로 머리가 가득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숱한 개념을 나타내는 단어들의 범주에서 내 머리가 멀어지는 느낌이랄까... 다음 방학을 이용해서 칸트를 제대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해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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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9-05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 하면 아직도 "윽~ 머리야" 소리가 먼저 나와요. 요즘 "열하일기"를 리라이팅한 책을 재미있게 읽어서 '리라이팅' 이라는 단어가 붙은 책은 좀 쉬울까 했는데 그게 또 아니군요. 음~. 언제쯤 "철학"이 쉽게 다가올까요?

글샘 2007-09-06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히나 칸트는 머리아픈 사람이죠.
철학이 쉽게 다가올 나이쯤 되면, 저 세상이 더 가깝지 않으려나? ㅋㅋ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 대담 시리즈 2
김용석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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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리'란 단어가 있다. '문+열다'에서 파생된 말인데, 한 배에서 나온 여러 마리의 새끼 중 첫번째 놈을 뜻하는 말이다. 무녀리는 많이 부족하게 된다는데...

서양 철학을 전공한 김용석과 동양 철학을 전공한 이승환이 좌충우돌 폭풍우 속의 키잡이처럼 철학에 대한 이야기들로부터 시작하여 현대 문화를 바라보는 이야기까지를 자유롭게 나눈 책이다. 현대의 학문이 통합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철학도 서양과 동양의 대화를 통하여 이해의 폭을 넓힌다는 의도처럼 두 분의 대화가 신선하기 그지없다.

매끄러운 학자들의 겉핥기가 아니라, 서로 쿡쿡 쑤시고 생채기를 낼지도 모를 말들을 주고받는 모습이 꼭 무녀리 그대로다. 그렇지만, 그런 대화의 분위기가 이 책의 신뢰도를 뒷받침해 줄 수도 있으리라.

대학을 사회에 나가서 필요한 것을 무엇이든지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곳이라는 정의가 새롭다. (46) 총체적 사회적응 능력을 길러주는 곳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영어나 자격증을 따고,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되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대학에서는 논리적 사고, 치밀함, 감수성을 집중적으로 학습할 수 있어야 하는 소양이라고 했다.(49) 옳다.

한국의 풍토는 '교수'를 놀고 먹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승환 교수는 <자식에겐 절대로 교수라는 직업을 권하지 않겠다>고 한다. 살인적인 직업이기 때문이란다. (57) 옳은 교수라면 이런 소리가 나와야 한다. 내가 다닌 대학원의 한 교수는 노래방 아가씨가 못생겼다고 투덜대기나 하는 인간이었다. 퉷, 이다. 우리나라의 교수는 수평적 유대보다는 수직적 유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단다. 그래서 이런 솔직한 논쟁이 긍정적인 효과를 낳게 될 것이란 김용석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77)

철학이란 '지'에 대한 '사랑'인데, 그 '지'에 대한 개념이 동서양이 상당히 다르다. 동양의 실천적 지와는 달리 인식론의 발전이 서양의 특징.(91) 이렇게 두 개념은 부딪힌다.

서양 문명의 오만함을 이승환 교수가 지적한다. "어디 자연을 인간이 제 맘대로 보호하거나 보존할 수 있는 겁니까? 자연은 스스로 자기의 길을 따라 운행하고 있는데..."(138) 무엇이든 서양이 보편이고 동양은 종속적이란 생각을 질타하며 내뱉는 말이다. 동양의 의학을 '대체 의학'이라 하듯, 동양의 철학도 '대안'은 아니란다. "동양학이 서양학에 대한 대안은 아닙니다. 대안이란 현대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것들을 내다버리고 전통 동양의 것으로 바꿔치기해야 한다는 뜻. 저는 서로의 보완이라는 개념을 쓰고 싶습니다. 근대와 유학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주고, 비판해 주며, 서로를 풍부하게 해 주는 것."(144) 역시 낱말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 사람들이 철학자다. 그런데, 사진들은 참 촌스럽고 편안하게 찍혔다. 필름 많이 날렸겠다. ㅋㅋ

억압된 동양(오리엔탈리즘)과 왜곡된 서양(옥시덴탈리즘)을 다루면서 "열린 시대일수록 자아가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열림이 아니라 <엶>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뇌수를 둥~~ 울린다. 열린은 열다의 피동형, 수동태가 아닌가 말이다. 능동적인 자주적인 <엶>이라야 주체적인 철학이란 뜻이겠다. 낱말 하나라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고수들의 스파크가 감지된다.

E.H.카나 움베르토 에코처럼 한국에서 스타가 된 학자들에 대한 편식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기독교의 편향에 대해서는 두려움에 지나치고 만다. 하긴, 한국의 독특한 크리스차니즘은 둘이서 죽을 때까지 떠들어도 결론내기 어려우리라. 불신지옥이라니깐.

동양이란 것의 정체성을 논하기 전에,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기억'이라는 말에 소름이 돋았다. 한국인에게 남은 '기억'은 어떤 것일까? 빨갱이 사냥의 매커시즘의 추억, 살인적 이승만의 반공에 대한 추억, 4.19가 피에 물든 5.16 쿠데타의 기억, 박정희의 핏빛 기억의 시대, 광주의 봄과 피의 80년대의 기억, 문민정부의 혼란과 미국의 경제적 침탈에 대한 기억...(마치 남미에 개입한 미국처럼...) 이런 비겁한 것들이 들쥐와 같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만들게 된 것들이 아닐까... 생각하면 두렵고 무섭다. 그저 동양이 아닌 한국은 동양 속에서도 극히 한정된 일부분이 아닌가 해서...

미지의 세계를 향한 두 철학자의 논쟁은 <열린> 구조로 막을 내리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1막이 내렸을 뿐이다. 서양에 대하여 더욱 탐착하고, 동양에 대하여 더욱 집중하여 대화를 나누고 이해를 구하는 인문학의 토론의 장이 앞으로 넓적한 판 위에서 푸지게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

무녀리는 부족하지만, 똘똘한 뒷놈들을 기대하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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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28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역시. 저도 별다섯 아깝지 않은 책입니다. 김용석 교수와 이승환 교수 두 분 다 만만치 않은 분이죠. :)

글샘 2007-05-29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책으로나마 읽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