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게 길을 묻다 - 인물로 읽는 주역
맹난자 지음 / 연암서가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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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취소할 수 없다.

무표정한 어제가 그런 것처럼

시간이란 책, 거기에 쓰인

해독할 수 없는 영원한 글

사물치고 그 글의 철자 아닌 게 없다

집을 떠난 사람은 이미 돌아와 있다.

우리의 삶은 걸어본 미래의 오솔길

어떤 엄밀함이 실타래를 잣고 있다

주춤거리지 마시라

감옥은 어둡고

견고한 플롯은 간단없는 쇠로 되었지

하지만 당신의 우리 한 구석엔

어떤 빛, 어떤 균열이 있을 거야.

길은 화살처럼 피할 수 없지만

틈틈이 절대가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보르헤스 주역 서문)

 

주역.

변화의 책이다.

 

낙천지명 고불우...

하늘을 즐기고 명을 알아 근심하지 않는다...

 

근심하지 않는다...는 말은, 근심할 일이 많다는 이야기다.

삶은 고해다.

누구에게나 삶은 팍팍하다.

그러면 근심하지 않으려면? 명을 알도록 공부해야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삶이 팍팍하다.

자식을 앞세우고, 심지어 토정 선생처럼 자식이 문둥병에 걸리기도 한다.

그런 운명을 읽고 하늘을 즐기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주역은 '점서'이기도 하다.

점을 쳐서 어떤 괘의 어느 효를 뽑아 내서, 그 효사를 참고로 삶을 풀어낸다.

그런데 그 효사가 참으로 함축적이어서...

<근심하는 이>에게는 당연히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실이 힘드냐? 그러 것이다... 이래도 위로가 될 것이고,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위로가 될 것이니까.

모든 것은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럼으로써 우린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이 책은 주역의 괘사를 자세히 풀지 않는다.

그저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줌으로써 주역에 가까이 다가서게 한다.

낯선 괴물로 여기던 것을 가까이 여길 수 있게 만드는 묘법을 쓴다.

신영복의 <강의>에 실린 간단한 해설과 함께 읽으면 좋다.

 

현상저명... 懸象著明

상의 계시를 철저히 꿰뚫어 봄으로써 미래를 아는 경지...

 

주역은 그런 바를 추구한다.

 

하늘과 땅이 어긋나고 시운이 막혀 곤궁할 때,

군자는 이를 본받아 검덕으로써 어려움을 피할지언정,

녹으로써 영화로움을 누리지 말라.(315)

 

곤궁하고 곤궁할 때, 검소한 덕으로... 어려움을 정면으로 맞아야지,

그럴 때 영화로움을 취하지 말라는 말...

 

쉬울 이 易... 라지만, 쉽지 않다.

 

머리가 세어 백발이 되는 한이 있어도

돌아올 수 만 있다면,

목숨은 다시 주운 것과 같은 것.(287)

 

산다는 것은,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서 목숨을 줍는 일.

삶에 감사하고 천명을 알려고 마음 조아리며 살아야 되는 일.

 

주역은,

미숙하고 유치하며 장난기 있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주지적이며 합리적인 성격의 사람에게도 어울리지 않는다.

반면 무엇을 그들이 하고 있으며, 무엇이 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가를 돌이켜 생각하기 좋아하는

명상적이고 반성적인 사람에게 진정 알맞은 방법이다.(249)

 

주역은 상징이니 이현령비현령, 대충 꿰어 맞춰도 되지 않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음이 극에 달하면 변하여 양이 되고, 양이 극에 달하면 화하여 음이 되는 이런 이치를

이렇게 도상으로 기호화하려 한 시도는 의미가 깊다.

 

역학은 단순히 점술의 차원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밝히고 자신을 성찰하는 학문의 하나.(115)

 

이렇게 작용하도록 공부가 필요한 게다.

격물치지하기로는,

관조의 공부로는,

정혜쌍수를 깨우치기에는 주역이 좋은 책일테니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치를 성찰하기 위하여,

번히 보이는 '상'을 들어 보이니...

 

요즘엔 주역에 관하여 읽기 쉬운 책들도 많다.

차근차근 공부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 봐야겠다.

 

이제 곧 '지천명'의 나이인데,

주역을 좀 읽어도 될 나이가 아닐까 한다.

끈이 세 번 끊어지진 못해도, 열 권 이상은 읽어 봐야, 조금은 감을 잡지 않을까.

 

읽고 나서 궁금한 점은...

정약용도 주역에 대하여 몰두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왜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는지... 모르겠다.

 

 

 

 

<한자어를 틀린 곳이 몇 군데 있다. 요즘 젊은 편집자들이 약점인가 싶다.>

 

58. 이 책의 비중을 반증하는 것... 반증은 반대되는 증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는 '방증' - 주변의 사례로 증명을 대신.

 

80. 7정에서... 희노애락애오욕...의 욕은, 명사로 慾 이 가깝지 싶다.

 

98. 주희의 우성시...階前梧葉 已秋聲을 '이미 기 旣'로 썼다.

 

134. 하지(夏괘)...는 오류다. 하지의 괘는 '천풍구 姤' 로 써야 옳다.

 

158. 진술(鎭戌)은 진수(鎭戍)로 고쳐야 한다. 수자리를 지킨다...는 뜻이다. 앞의 말은.. 개를 지킨다는 뜻이다. ㅋㅋ

 

290. 물소리...의 일본어는 미즈노 をと가 아닌 미즈노 おと가 옳지 싶다.

 

338. 漁夫四時詞... 어부는 직업인이 아니니 漁父로 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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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다상담 3 - 소비·가면·늙음·꿈·종교와 죽음 편 강신주의 다상담 3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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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다상담'을 읽거나 들으면,

그의 인문학적 통찰과 철학자의 현실 인식이 정말 뜨겁게 다가선다.

철학자연 하는 자들의 글들의 많은 것들은,

오해를 부르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일반인들이 사회에서 쓰지도 않는 언어를 가지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읽히지도 않는 책들을 마구 쓰면서, 자신들의 성채 안에서 서로 자뻑에 빠진다.

 

마르크스가 위대한 이유는,

당신이 가난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자본이란 이런 생리를 가지고 있어서, 당신은 필연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당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입니다.

이런 사회적 설명을 붙여준 데 있었다.

 

고민은 개인의 것 같지만,

사실 혼자서 디오게네스처럼 살 수 있다면, 고민이 생길 구석이 없다.

타인은 지옥이라던 실존주의 철학자의 말처럼,

고민은 모두 타인과의 관계, 사회에서 나오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사회는 개인을 가난하게, 왜소하게 비교 대상으로 만든다.

땅에서 나는 곡식은 얼마를 수확하여 얼마를 지주에게 바치고 남는 것이 얼마인지 눈에 보이지만,

자본의 나사를 돌리는 노동자는 자본이 얼마나 투여되어서, 얼마나 사용자에게 가고, 얼마가 노동자에게 돌아오는지 볼 수 없다. 자본이 더 큰 자본으로 뻥튀기 되는 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멋진 상담은 <소비>편과 <종교와 죽음>편이다.

<소비>에서는 자본주의의 생리와 우리의 삶을 정말 쉬운 말로 풀어 준다.

 

그의 말버릇, '다 아시죠? 아시겠죠?' 같은 것들은,

자신이 '보통 사람들도 알아먹는 말로 인문학을 풀어주는 무당'을 자처한 사람이어서,

알아 들으시겠지요? 이런 확인임을 이제 알겠다.

 

삶은 돌아보면 70퍼센트 정도는 우리가 어찌하지 못해요.

이 70퍼센트를 계속 끌고 갈 것인지 말 것인지가 여러분의 숙제예요.

노력으로 안 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남은 30퍼센트에 우린 힘을 쓰지만 이미 주어진 것은 엄연히 나의 현실로 존재해요.

이걸 어떻게 재배치 할 것인지만 주어지는 거거든요.

머릿속에 항상 넣어 놓으셔야 돼요.

그 70퍼센트는 숨길 필요 없어요.

하지만 30퍼센트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책임을 져야 돼요.(166)

 

무려 철학 박사 강신주는 70%라고 했지만,

나는 그 부분이 더 크다고 본다.

한국 사회처럼, 불안정하고 궁핍과 핍박의 역사로 점철된 사회에서,

빈익빈부익부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 지표로 보아(자살률 1위, 출산저하 1위, 노인사회 1위, 학생 과외 1위, 노동 시간 1위)

이 사회에 태어난 사람들은 95% 정도를 이미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채우고 나오는 것이나 아니까?

 

그래서 박민규 말마따나 <한국인에게 청춘은 없다>는 위로도 있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배부른 교수의 떠드는 소리는 공허하다.

 

그래서...

힘든 사람들에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 주기 위해,

강신주는 길거리 철학가가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혹여 이 책을 통해 절망에서 희망을 보신 분이 있다면,

제게 절대로 고마워하지는 마세요.

사실 여러분을 통해 저는 제 존재 이유를 발견했으니까요.

여러분이 저를 진짜 철학자로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여러분 때문에 철학, 즉 필로소피라는 학문이 '앎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사랑해야 그것에 대해 아는 학문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람을 사랑해야 사람을 알게 되지,

그 역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 겁니다.(들어가는 말)

 

많은 상담에서, 내담자들은 고백한다.

선생님은 '이혼해.'라든지, '사랑을 하세요'라고 하시겠지요... 라고.

그들은 답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놓여진 좌표가,

세상의 극한,

시련의 절정에 서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놓인 그것임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철학>은 <인문학>이며, <인간 사이의 사회학>일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성리학적 질서>의 수직 관념이 아직도 지배하는 사회이고,(돈에 순 '이 씨'왕조의 유물이 그득한 나라)

그리고 빈익빈부익부의 <소외>가 극대화되고 있는 사회이고,

식민지-전쟁-독재 사회를 거치면서 <어리석은 대중>의 양산에 성공한 사회이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잘못을 <나의 잘못>이라고 여기기 쉽다.

종교가 만연한 것 역시 사회의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오로지 <공부 또 공부>가 강조되는 것 같지만,

사실 학교에서 학생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 오로지 <경쟁 또 경쟁>만 있을 따름이다.

 

강신주가 전하는 진한 위로...

그건 당신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이 사회가 그렇게 생겨 먹어서, 당신은 그 굴레 속에서

조금의 결정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마흔이 넘었다고, 당신 얼굴에 전적으로 책임을 질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고민을 제대로 인식하고,

세상과 맞서 싸울 철학으로 무기한다면,

그리고 제대로 사랑하는 일이, 그래서 내가 행복한 것이 삶의 존재 이유라면,

세상은 슬프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위로를 듣는다면,

강신주 역시 안도할 것이다.

 

강신주의 건강을 정말 진심으로 빌게 만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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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웃음과 망치와 열정의 책 책 읽는 고래 : 고전 5
진은영 글, 김정진 그림 / 웅진주니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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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

영원 회귀

 

이런 말들로 참 많은 오해를 받는 니체.

신이라는 <매트릭스>에 갇힌 지 오래면서도 인간은 이제 <자본>이라는 매트릭스에 스스로 편입되었다.

 

니체가 살아 돌아온다면, 이럴지 모른다.

신은 죽었고 돈은 살아 있다. 간혹 돈이 신을 살려서, 신팔아 돈 벌기도 한다.

 

니체의 철학은 <인간 존재>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이 책은 어린이용으로 만들어 졌지만,

그래서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니체를 풀고 있다.

그의 사상을 이처럼 쉬운 말로 풀어 쓴 책을 찾을 필요는 더이상 없다.

 

니체의 낙타, 사자, 어린아이 이야기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으며,

아이처럼 <잘 잊기>와 <스스로 구르는 바퀴>가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네 발을 꽃가루처럼 내려 놓아라.

네 손을 꽃가루처럼 내려 놓아라.

네 머리를 꽃가루처럼 내려 놓아라.

그럼 네 발은 꽃가루, 네 손은 꽃가루, 네 몸은 꽃가루.

네 마음은 꽃가루, 네 음성도 꽃가루.

길이 참 아름답기도 하고, 잠잠하여라.(111)

 

인간이 신처럼 떠받들고 있는 다른 어떤 것은 없는지

의심해 볼 것을 촉구하는 말.(124)

 

신은 죽었다는 말의 의미는 이런 것이라 한다.

 

영원 회귀의 선택은

"지금 나의 선택이 영원히 되풀이된다고 해도 나는 이렇게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할 정도로 무거운 무게를 지닌 순간의 선택임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한다.(150)

 

시간을 장난처럼 되돌릴 수는 없다.

운명을 사랑하는 길은,

자신의 삶을 명쾌하게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평생 약한 몸과 질병으로 죽음 앞에 섰던 한 철학자의 '생의 철학'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다.

누구나 죽도록 예정되어 있으므로...

 

 

 

66쪽. 대상(大商)은... 대상(隊商)으로 고쳐 써야 한다. 캐러밴은... 이슬람 세계에서 여럿이 모여 순례와 상업을 겸한 상인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떼 대' 자를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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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어바웃 러브
벨 훅스 지음, 이영기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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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대학시절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의 '소유냐 존재냐'도 읽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인생의 행로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 삶의 전체를 생각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에 읽고 만 것이다.

 

스무살 정도의 나이에 '사랑의 기술'은 '여자 꾀는 법'의 술수가 적힌줄 알았던 것이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고, 자본의 사회는 인간 존재를 소유의 노예로 만들기 십상이라는 맥락을 읽진 못한 것이다.

 

이제 벨 훅스의 <올 어바웃 러브>라는 거창한 제목의 책을 읽노라니,

다시금 에리히 프롬이 떠오르고, 강신주의 '소비'와 '삶'등에 대한 설명들이 맥락을 같이 한다.

 

남자들은 사랑을 이론화하지만 여자들은 사랑을 직접 실천하는 데에 더 관심을 쏟는다.(19)

여성과 남성이 사랑에 관해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질 수도 있겠다.(23)

 

남성과 여성은 '마르스'의 화신이나 '비너스'의 화신처럼 화성이나 금성에서 온 것은 아니겠지만,

사회적 입지가 다르며, 사고 방식도 차이가 있을 것이므로 여성의 관점에서 쓴 사랑 이야기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데, 아쉬움이 남는 것은,

작가가 미국 사회에서 살았던 사람이어서, 더 가난하고 낙후된 사회,

특히나 여성이 아직도 부차적 존재로 지위지어진 세계에서는 그야말로 '도무지' 통하지 않을 말도 많다.

 

인간의 해방, 평등화와 사랑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랑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35)

 

이렇게 규정한다.

영적인 성장과 자아 확장.

이것은 그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이라야 가능하다.

1970년대의 가난한 노동자, 겨우 벌어먹는 신세, 회사에서 노조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삶.

이런 조건에서 사랑이란 영적 성장과 자아 확장보다는 성적 호기심조차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다.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정의로움이 없는 곳에서는 결코 사랑이 싹틀 수 없다.(64)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쓰인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상호 존중이 싹튼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92)

 

사랑하는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 서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달라 보인다.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이런 것이 사랑의 힘이다.

나를 으쓱으쓱하게 만들고,

네 어깨 위에서 나는 강하다. '

내가 존재해왔던 어떤 상태보다 더 상승된 존재감을 느끼게 해준다. 사랑하는 너는...

 

영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영원 불변의 법칙 - 즉, 사랑이 모든 것이고 사랑만이 우리의 진정한 운명이라는 것- 을 받아들이는 것.(116)

 

강신주의 다상담을 읽노라면,

자본의 세계에서 소비의 존재로 살아가는 존재들의 비루함을 깨닫게 된다.

거기서 사랑만이 인간의 존재감을 고양시켜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끝없이 하는데,

사람들이 처한 위기를 상담해 주는 그의 인문학적 노력이 참 눈물겹다.

 

자본의 세계에서 자칫 사랑은 서로에게 무한한 상처를 남긴다.

소비의 환상을 키우는 꿈과 욕망의 전차는 어린 아이들부터 괴롭혀서,

청춘 남녀를 제대로 사랑하도록 하지 못하도록 가두는 역할도 한다.

그게 다상담의 존재 이유이며, 그 강의의 존재 가치다.

 

사랑의 결핍으로 초래된 극심한 공허감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새롭게 배울 때 완전히 채워질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이 중력처럼 실재하는 힘이며,

매 순간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결코 환상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어야 한다.(201)

 

하지만 인간은 종이 조각에 불과한 <자본>또는 <지폐>를 믿는 매직의 세계에 살고 있다.

두려운 미래는 '울면 안돼, 선물을 안 주신대' 하며 꾀는 <종교>의 매직에 맡기고 생각을 놓는다.

 

영혼으로 연결된 커플은 어떤 이야기든 허심탄회하게 함께 나누고

가장 깊은 차원에서 서로 교류하려고 한다.

이처럼 깊이 있고 통찰력 넘치는 대화는 서로에게 완전히 솔직하고 마음을 열어놓아야만 가능하다.(235)

 

며칠 전, 어떤 연예인의 아버지가 자신의 부모의 생명을 멈추게 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여느 연예인의 방황과 자살과는 다른 충격을 준다.

인간의 존엄성을 정면에서 바라보게 한다는 면에서, 이 사건은 사회 문제와 결부하여

인간은 어떨 때 존재하는 것이고, 어떨 때 존재감이 없는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영혼으로 연결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공동체를 이루려는 많은 노력들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다.

이처럼 통찰력 넘치는 사람들끼리 수많은 접촉을 통하여 마음을 열고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 속에서 참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게 되면, 이미 익숙해진 친밀한 세계로부터

소원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혼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과 교류하기보다는

차라리 고독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바빌론 같은 향락과 악덕의 도시에서는 아무도 외롭지 않은 법이다.(237)

 

사랑하지 않을 때,

모두 앓고 있지만 누구도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사랑은 남녀간의 애정에서 시작해서, 인간 공동체에 대한 문제까지를 포괄한다.

그런데, 진정한 사랑 속에 있다면,

이미 자기가 침윤되어 고독과 고통을 느끼는 가족, 친지, 친구, 동창, 직능 모임 등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정리가 돼야 해요. 쓰레기 같은 관계들이 정리되고 빈손이 되어야 다른 걸 잡는 거예요.

 

강신주는 쓰레기 같은 관계들이라고 파괴적으로 말했지만,

클럽에서 흔들면서 외롭지 않다고 외칠 수 있는 나이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사랑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

라는 쉽지만 실천이 어려운 이야기는

진정 좋은 사람과 함께할 때 온몸에서 느낄 수 있는 자기장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 '의지'는 의도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란 '의지'는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희생하고 싶은,

그야말로 다 주고도 아직 주지 못한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일 때,

영적인 성장과 자아의 확장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이성에 대한 성적인 관심이었던 미성숙한 시절에 에리히 프롬을 읽는 일은 하나의 씁쓸한 추억일 따름이다.

세상을 좀 살고 보니,

사랑이란 것은 삶의 의지이며,

우리를 흔드는 세상에 대한 의지를 가진 저항일 수도 있음을,

그래서 하이데거가 이야기한 것처럼,

'불안'의 존재가 '기획투사'하며 노력하여 살아가는 '의지적 힘'이 되는 것이 사랑임을 조금은 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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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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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동양 철학을 내다가, 당당한 인문학을 내고, 다상담을 내면서

자꾸 제자리를 벗어나는 강신주가 웬 '감정 수업'? 이랬다.

그래서 곰곰 생각했다.

 

아마도...

그가 '철학자의 연구실' 속의 철학을 벗어던지고,

길거리의 철학자, 무려 철학 박사가 되고자 했을 때,

이 나라 백성들의 꼬라지를 무츠름히 바라보았을 터,

아직도 이 나라 백성들은 조선의 '성리학'과 근대의 '노동자' 사이에서

자신의 청춘을 꽃답게 죽이고 사는 것을 발견하고,

그 삶에 불을 지피기 위해서는,

감정의 소중함을, 그 가치를 깨닫게 하고,

그러려면 강의가 필요하다. 이런 생각을 했을 거라고 예상하면서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우와, 이 남자, 뭔 소설을 이렇게 많이 읽었냐?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소설들을 끌어들일 수가 있었나? 를 궁금해했는데, 그건 에필로그에서 밝혀진다. ㅋ~

 

이 책을 읽고 나서,

강신주가 더~더~~ 더~~~ 사랑스러워진다.

정말 우리 곁에 있어야 하는 무려 철학 박사이자 인문학자다.

 

'화'가 가장 많은 나라인 이유는,

아직도 '노동시간 최장국'과 상통한다.

그리고 노사 관계 역시 조선 시대의 성리학적 수직질서에 버금간다.

군사부일체란 말이 있었다면, 요즘엔 '스승 사 師'를 버리고 '사장님 사 社'인 모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강신주에게 사랑을 보내며,

스피노자에게 경탄과 시기심을 느꼈다.

그리고 도대체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을 나눈 기준이 무엇일는지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내가 그의 에티카~를 읽을 일은 별로 없을 듯 하고 ㅋ~

이 책에 나오는 소설들을 통독할 시간도 별로~이고,

그치만, 그의 48가지 감정들을 어떤 기준으로 나누고 싶은 욕망은 든다.

 

그의 감정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도

마치 주역의 괘가 벌여지듯이,

펼쳐지는 사고의 풍요로움에 감탄하면서도,

주역을 공부하고 그 펼쳐짐의 유사함을 찾고 싶어진다.

 

이 책의 주제는 한 마디로 이것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마시멜로의 교훈)이 과연 행복할까?

아니다.

그 종착역은 죽음.

그러니,

현재 누려야 할 행복과 기쁨을 미래로 미루지 말라.(511)

 

감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닥쳐온 감정을 고이 떠받들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지금 사랑에 빠졌구나, 내가 지금 분노를 느끼는구나...

그럴 때, 에티카의 정의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수두룩빽빽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자연스럽게~

부끄러워하지 말게~

조선의 성리학은 지나치게 <슈퍼 에고>가 <에고>를 억압하도록 만든 기제였다.

<슈퍼 에고>를 좀 쉬게 하고, <이드>가 자연스럽게 표출되도록 해야한다.

 

스스로의 감정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일.

이 나라의 대통령은 감정이 전혀 없는 마스크를 하고 있다.

그러니 분노하는 사람들에 대하여도 '마리 앙토와네트'같은 표정으로 대할 뿐이다.

 

한국인들이 '감정을 감추고' 살아온 것은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식민지, 전쟁, 독재 시대를 거치며 익숙하게 입어온 옷과 같은 사고 방식.

자신을 감추어야 산다.

 

불행한 과거는 과거지사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와 미래의 삶에도 질식할 것 같은 무게를 가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꿈꾸는 동물이다.

그러니 과거가 행복한 사람은 미래를 장밋빛으로,

과거가 불행한 사람은 미래를 잿빛으로 꿈꾸게 된다.(354, 두려움 중)

 

강신주가 불행한 과거를 지닌 한국인들에게 말한다.

과거의 무게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재를 살라고.

미래에 투자하기 위해 현재를 죽이지 말라고.

 

그것이 이 수업의 존재 이유다.

 

 

 

 

85. '대지'의 주인공은 '왕중'이 아니라 '왕룽'이다.

231. 광대평가... ㅋ~ 과대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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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12-27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강신주의 책을 구해보지는 못했지만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한 5년만 일찍 이 분을 알았더라면, 강의를 들었더라면 아마도 제가 겪은 일들 중 일부는 겪지 않았거나 덜 겪었을지도 모르겠더라구요. 언제해도 늦는것이 후회라지만, 아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글샘 2013-12-27 23:11   좋아요 0 | URL
철학은 어디나 철학이죠. 현실은 철학과 늘 다를 거구요.
그렇지만, 우리가 얽매이는 작은 일들은 늘 줏대가 없어서 흔들리기 쉬운 거 같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는 일은, 작은 일들에 흔들리는 자신을 예방하는 주사 같은 것일듯~
새해 복 많이 짓고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