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13가지 질문 - 둥근 사각형을 믿는 사람들에게
잭 보웬 지음, 하정임 옮김, 박이문 감수 / 다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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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금긋는 일이다.

이쪽과 저쪽을 나누고, 내편과 네편을 가르는 일.

 

좋은 철학은 소수자를 갈라서 보호하는 철학일 것이고,

나쁜 철학은 극소수 권력층을 갈라서 보호하고, 나머지는 이리저리 갈라서 억압하는 기제가 된다.

 

한국의 철학은 '부재'가 아니라, '봉건 철학'이 지배해 왔다.

그 증거는 지폐에 그려진 '위인들'이 '봉건 왕조시대'에 기여한 인물들임을 생각하면 쉽다.

 

대학의 철학 개론 시간에 철학의 흐름 정도를 훑는 일은

삶의 철학과 너무도 간격이 크다.

 

이 책의 부제인 '둥근 사각형을 믿는 사람들에게'라는 말은 참 재미있다.

사각형은 선분 네 개가 만든 각도형이고,

둥근은 선분이 없는 곡선으로 만든 도형이기 때문에

모순된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너무도 많다.

 

현실에서 지각변동 심한 네팔 사람들은 신 앞에서 가장 겸손한데, 또 그들에겐 가장 큰 시련이 닥친다.

현실에서 권력자들은 늘 가난한 사람들을 '이기주의자'라며 몰아붙인다.

 

이 소설은 철학에 대하여 설명하는 재수없는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의 이야기들은 '우리는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1. 지식... 내가 보는 것은 실제인가? 9시 뉴스의 거짓말들, 왜곡된 뉴스들을 실제라고 믿고 살던 나는 무언가...

 

2. 자아, 이성, 정신... '나'는 언제부터 '나'일까? 치매에 걸려도 '나'인가? 변해도 '나'인가?

 

3. 참과 거짓... '여기'있는 나는 '거기' 갈 수 있을까? '여기'는 내가 있는 곳이란 뜻인데도...

 

4. 신.... 과학... 내일도 태양은 떠오르며, 신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신의 목적이 있다면, 네팔은 왜 힘들고, 미국은 왜 번영하는가...

 

5. 동양사상 ... 생각으로 고통을 지울 수 있을까... 현실 회피 아닌가. 그렇지만, 또한... 정신적인 훈련이 도움되기도 하지 않는가...

 

6. 자유의지... 한국, 서민, 교사, 50대, 1966년생... 이런 정해진 것들 사이에서 태어난 내게 자유로운 것은 무엇일까?

 

7. 논리... 믿음에도 올바름, 정도는 있을까? 조선일보의 논리는... 믿음일까? 의도적 거짓말일까?

 

8. 사회, 정치, 돈... 나는 계약한 적 없는데, 왜 국가는 나를 지배하고, 돈이란 종이조각(천 조각)은 가치를 인정받는지... 왜 지들이 지랄을 떨면 내 연금을 줄일 수 있는 건지...

 

9. 윤리, 도덕... 꼭 올바르게 살아야 하나... 도덕이나 윤리는 '지배적 집단'의 생각일 뿐이다. 올바른 게 있긴 한가...

 

그러다가... 마지막 여행에 가서는... 더 깊은 생각거리들을 던져 놓는다.

 

인간은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부조리하게 살다

부조리하게 간다.

 

누구는 전쟁터에서 비참 그 자체를 살다 가고,

누구는 평생 행복한 환경에 싸여 부귀영화만을 누리다 간다.

비참도 제잘못이 아니고, 부귀도 제 능력이 아니다.

 

과연 이 속에 살면서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할 것인지,

북극을 가리키는 자침처럼

끊임없이 흔들리기를 요구하는 철학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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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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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생과 89년생 연예인들의 사소한 말다툼이 생중계되고,

거기 잇따른 패러디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대부분 직장 상사가

어디서 반마리니?(이건 치킨 반마리로 패러디된 게 더 웃긴다.)

부장님, 저 맘에 안 들죠... 류로 흐르거나,

군대에서 병장님, 저 맘에 안 들죠... 등으로 해학을 분출해 냈다.

 

이태임이나 예원이 얼마나 인지도 높은 연예인인지는 모르겠으나(내가 모르는 걸로 보아 아주 출세한 부류는 아님. ㅋ)

그들의 대화야 사소한 사생활이고,

세 살 차이면 뭐 얼마나 선후배도 아니지만,

그것을 들은 한국인들은 자기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하관계로 인식했을 수 있다.

그러니 그런 패러디가 해학을 넘어 통쾌함으로 지속되는 효과를 유발했을 게다.

 

최진석의 '노자 인문학'은 여느 '노자 강의'와 다르다.

그래서 그의 '노자 인문학'의 가치가 돋보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강의'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듯 하다.

강의와 책은 다르다.

 

우선 강의는 강의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고,

어조의 강세나 액센트, 동작 같은 것이 청자를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책에서는 챕터 하나에 어떤 비중의 이야기를 담을 것인지를 균질하게 분배하지 않으면

독자는 쉬 피로해지기 쉽다.

이 책은 초반에 너무 지루한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은 감이 든다.

물론 강의와 책의 간격을 고려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느 노자 강의는 '이전의 주석', 곧 '왕필'이나 '도올'이나 등등을 인용해가면서

노자의 한문 구절을 풀이하고, 그것의 의미를 현대인의 삶과 연결짓는 일에 몰두하는 식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의 장점은,

노자라는 책이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다소 장황할 정도로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가장 높이 여겨지는 '공자'의 생각과 노자를 대비하면서, 노자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노자의 구절 풀이보다는,

노자의 핵심 구절을 통하여 현대인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식이다.

 

전체적으로 작가의 의견이 생각하는 방향은 아주 좋다.

노자라는 책을 '양생'을 돕는 웰빙-자기계발서로 전락시키지도 않았고,

무위자연...의 단순한 '명사'로 한정시키지도 않았다.

노자의 핵심 구절인 '도'를 논어의 첫 글자 '학'과 대비시켜

공자의 사상이 '본질주의적'이고 '핵심적 과제'에 몰입하는데 상반되는 사상으로서 노자의 입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도'는 주어진 본질의 목적어로서의 삶보다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동사의 형식임을 놓치지 않는다.

 

'반말'한다고 짜증내고 '눈깔'을 깔라고 윽박지르는 웃사람이나,

'언니, 저 맘에 안 들죠' 하고 웃사람을 무시하는 아랫사람이나,

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현실에서 숱하게 투영되는 삶의 고정된 틀들을 느끼는 네티즌들이나,

고참, 선배, 상사는 '이러이러하다'는 '본질주의적' 사고에 대하 비판과 풍자를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노자'라는 캐릭터가, 텍스트가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는 강의를 책으로 접하는 일은 즐겁다.

그러나 책을 만들 때, 열 개의 챕터가 좀더 명확한 주제를 드러내며 달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높음은 낮음을 기초로 한다.

현재 가진 고귀함이 낮은것, 천한것을 기초로 이뤄졌음을 끊임없이 자각하고자 합니다.

통치를 잘하고 싶다면 이 세계가 대립면의 긴장으로 서 있다는 점,

반대되는 것들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을 철저히 자각하라고 주문합니다.(204)

 

이 책은 노자를 통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지 않는다.

통치 철학으로 시작된 노자임을 명확히 하고 있고,

생활 속에서도 '위 아래'의 관계를 생각할 때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를 사고하게 한다.

 

본질론자나 실체론자가 말하는 '관계'란 실체끼리의 관계를 말하는 것.

반면 불교나 주역, 노자의 관계는,

존재하는 '그것 자체'가 관계로 되어있음을 뜻해요.(157)

 

아랫사람이 '반말'을 하면

그가 나와의 관계를 무시하는 듯 느껴지고,

윗사람이 잔소리하면 그가 나를 '맘에 안 들어' 하는 것으로 여기는 세상.

그것이 우리 사는 세상이다.

아랫사람과 윗사람이 모두 혼재하는 곳이 세상인데, 불필요할 정도로 성리학적 질서는 수직 질서를 강조했던 듯.

 

우리는 지나치게 '보고' '지혜롭'고자 하고, '뛰어나'고자 한다.

그래서 지나치게, 스스로를 자학한다.

그래서 노자에서는 지혜로운자를 높이지도 말고, <눈을 위하지 말고 배를 위하라>고 했다.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해 주면, 많은 부분이 저절로 다스려지지라는 것은,

춘추전국 시대 당시만의 과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무위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치부하는데,

노자의 무위는 수단이거나 과정 혹은 태도의 방식입니다.

그런 태도를 통해서 도달하고 싶은 곳이 분명하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이루어진 지경, 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는 지경'이라 말합니다.(254)

 

그렇다면 현대 한국에 '노자'의 가치는?

 

노자가 한국의 높은 자살률을 본다면

이곳은 가치 기준이 대단히 분명한 사회로구나.

가치 기준이 획일화되어 있구나. 할 것이다.

사람의 가치와 이유가 스스로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판단 기준이 자신이 아닌 자신의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284)

 

이 책은 별로 책을 많이 접하지 않은 직장인이 출퇴근길에 가볍게 읽도록 서술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젊은이들에게 친절하게 쓰여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

나처럼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사람이 느릿느릿 읽기에는 제법이지만,

노자를 읽어야 할 사람은, 사실 제 인생을 다스리는 고민으로 충만한 젊은 넋들이 아닐까?

작가가 좀더 정진하여 고딩이나 대딩 수준에 맞는 책을 써주면 어떨까?

 

신의 시대가 아닌 '사람의 시대'임을 공언한 '공자'와 '노자'는 선각자였다.

그런 선각자들의 외침을 듣는 우리는,

말을 듣고 귀를 열고,

진실을 보고 눈을 열어야 할 일인데...

눈을 감고도 느끼는 황홀을 겪어야 할 일인데...

 

무에서 유가 나온다는 기존의 입장을 '무와 유'로 병치시키는 등

다른 책들과는 상당히 새로운 입장의 풀이를 하는 작가의

사유의 깊이를 곱씹을 만한 좋은 책이다.

 

진실을 본다는 것은,

말하는 것과도 다르고, 읽는 것과도 다르다.

학생운동을 했던 혁명가들도

기실 자신의 삶을 혁명하지 못하고 허덕거림과 같다.

 

입맞춤에서 진실을 찾는

이런 시가 '시론'을 대신하듯

노자의 81장을 대신하는 것은,

장황한 해설서가 아니라

핵심을 짚어주는 안내서일 수 있듯...

최진석의 용맹정진과 건필을 빈다.

 

 

 

詩論, 입맞춤 / 이화은

 

여자는 키스할 때마다 그것이 이 生의 마지막 입맞춤인 듯

눈을 꼭 감고, 애인의 입 속으로 죽음처럼 미끄러져 들어간다는데

 

남자는 군데군데 눈을 떠

속눈썹의 떨림이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이며

풍경의 변화와 춤추는 체온의 곡선까지 꼼꼼히 체크한다고 하니

 

누가 시인일까

 

독자는 여자 편에 설 것이고

시인은 당연히 남자 편에 설 것이다

몰입의 바닥에는 시가 없다

불타는 장작을 뒤집어 불길의 이면을 읽어야 하는 남자여

불쌍한 시인이여

 

키스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은 시인이거든

그대 당장 독자의 자리로 옮겨 앉아야 하리

그러나 시인의 발바닥은 완전 연소의 재 한 줌도 함부로 밟지 않는다

 

- 《현대시학》2008.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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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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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표지가 이 책의 내용을 충분히 상징하고 있다.

일단, 액자.

액자에 들었으므로, 이것은 현실이 아님이 분명하다. 하나의 매트릭스다.

그런데, ㅋㅋ 가장 전경화되어있는 여성의 꼰 다리...

어휴~ 저 꼰 다리를 풀고 가랑이를 벌려보고 싶은 욕망이 든다.

밤과 낮이 구별없는 불야성의 마천루들과 무지개,

그리고 달러들은 바비 인형의 '어서오십시오'와 함께

속된 우리들을 주사위의 6을 기대하는 속물로 전락시킨다.

 

그러나, 현실은, 액자 밖의 현실은... 튿어진 베개 하나 주워서 잠시 몸을 눕힌 노숙자.

 

인간으로 살면서,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상처받지 않을 본연의 권리를 가지고 태어나건만, 그걸 천부인권이라 하거늘,

자본주의 시대 이후,

우리는 자본의 매트릭스에 사로잡힌다.

 

5만원권에 불을 붙이면... 아마 미칠 것이다.

5만원권 몇 장이면, 못 사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여자도 사고, 집도 사고, 행복도 살 것 같이 보이니 말이다.

 

왜 이렇게 '욕망'에 사로잡혀,

미래를 담보로 맡긴 채, 상처받으며 불행하게 살고 있는가...

가면 갈수록 그 자본의 덫은 인간 생활의 작은 부분까지,

그리고 지구촌의 오지까지, 어린 아이의 삶까지 지배하고 있는가...

 

이런 것을 이상, 보들레르, 투르니에 등의 작가와 짐멜, 벤야민, 부르디외 등의 철학가를 엮어 이야기한다.

그런데, 한 마디로, 재미없다. 지나치게 전문적이다.

이 부분을 우리가 알아먹기 쉬운 말로 대중적 강연으로 풀어낸 것이

'다상담'의 '소비'편이나 그 외의 부분에서 녹아 있다.

몇 년 사이에 강신주의 관점이 많이 대중 곁으로 내려왔다 싶다.

 

짐멜은 기독교의 신에 대한 인간의 감정이

자본주의에서 돈에 대한 인간의 감정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51)

 

며칠 전 본 영화의 한 장면,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주인공이 '끝까지 간다'에서

차지한 것은 바로 금고 속에 가득한 현찰이었던 것.

 

부동산은 어디서 났는지, 그 소유를 이전하기가 쉽지 않다.

허나, 현금은(요즘 5만원권의 3/4이 지하로 숨었다고 한다.) 증여해도 전혀 세금이 없다.

하느님께서 아무리 감사해도 자본주의의 돈처럼 황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욕망은 돈을 버는 데 자신의 시간과 육신을 소모하게 하고,

그 돈을 쓰는 데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게 한다.

 

인간은 구별짓기에 대한 욕망이 있다.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구별지으려는 인간의 허영심과 그것을 이용한 산업자본주의 소비사회의 논리가 결합된 현상(99)

 

당신이 어디 사는가가 당신이 누구인가를 말해준다던 재벌 아파트의 광고처럼,

참으로 천박한 저 상징체계 속으로 침잠해도 깊이 침잠해 버린 것이다.

 

금지된 것은 인간에게 강력한 욕망을 부여한다.(154)

 

바타유의 이 생각은

인간의 에로티시즘, 사랑에 편승하여 온갖 패션의 아이콘이 되어버린다.

무엇을 입느냐의 문제는 '금지'와 결합되어,

얼마나 보여주느냐의 문제로 변하는 것이다.

몸매를 잘 드러내 보여주게 만들고,

변화에 잘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그런 욕망의 현신이 패션이다.

 

1960년대 알제리의 사회구조와 아비투스를 탐구한 뒤,

부르디외는 자신의 연구 시선을

알제리 입장에서 보면 식민 본국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의 조국 프랑스로 돌립니다.

교육, 예술, 경제 등 모든 측면에서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근저에 있는 자본가 계급의 지배전략들을 폭로.(238)

 

아비투스란 문화적으로 물려받게 되는 유산같은 것이다.

귀족 부모에게서 우아한 문화 유산을 이어받고, 가난한 부모에게서 욕을 들으며 크는 그런 것.

식민지와 식민 본국의 아비투스는 자본의 전략이다.

 

일제 강점기에 '태평천하'를 외쳤던 사람들이 나라를 세운 것이 대한민국이다.

그 국부가 이승만이고, 그들은 일제 강점기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아비투스는 민주공화국보다는 귀족의, 가진자들의 권력을 당연시하는 듯 싶다.

그 아비투스의 현현이 문창극 사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곳에 갔을 때 자신의 아비투스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아비투스가 그곳에서 별다른 문제없이 작동하기 때문.(254)

 

'방드르디'를 통하여 로빈슨이 무인도의 '아무 것도 없음'의 아비투스를 견디지 못하고

온갖 격식을 만들려 함을 들어 설명한다.

반면, 프라이디(방드르디)는 자신의 아비투스에서 로빈슨을 비웃는다.

 

방드르디는 마치 현재라는 순간에 갇힌 인간처럼 보였다.

그가 자본주의와 기독교 원리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잘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약속하는 미래에 이룰 노동의 대가나

기독교가 경고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301)

 

아무리 '카르페 디엠'을 외쳐도, 인간은 이미 미래에 옭죈 죄수와 같다.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유하, 오징어)

 

오징어가 집어등을 의심하지 못하고,

그 빛의 세계로 뛰어들었다가 처참하게 살육당하듯,

우리도 모오든 광명을 의심하라는 시.

 

다음 시는 더 처절하지 않은가.

제목까지, '체제에 관하여'다.

이 시집 제목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다.

 

횟집 수족관 속 우글거리는 산낙지

푸른 바다 누비던 완강한 접착력의 빨판도

유리벽의 두루뭉술함에 부딪혀

전투력을 잊은 채 퍼질러앉은 지 오래

가쁜 호흡의 나날을 흐물흐물 살아가는 산낙지

주인은 부지런히 고무 호스로 뽀글뽀글

하루분의 산소를 불어넣어 준다

산낙지를 찾는 손님들이 들이닥칠 때

여기 쌩쌩한 놈들이 있는뎁쇼

히히 제발 그때까지만 살아 있어 달라고

살아 있어 달라고

그러나, 헉헉대는 그대들의 숨통 속으로

단비처럼 달콤히 스며드는 저 산소 방울들은

진정 생명을 구원하는 손길인가

투명한 수족관을 바라보며 나는

투명하게 깨닫는다

산소라고 다 산소는 아니구나

저 수족관이라는 틀의 공간 속에서는

생명의 산소도

아우슈비츠의 독가스보다

더 잔인하고 음흉한 의미로

뽀글거리고 있는 것 아니냐(유하, 체제에 관하여)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강신주처럼 똑똑한 사람이 있어, 참 다행이다 싶다.

 

멍청한 사람들은,

독자들이 알아먹지도 못할 책을 내는 일을 자랑스레 여긴다.

그래놓고 독자를 욕하고, 인문학적 토양을 욕한다.

 

다행이다.

욕들어도 쌀 독자들을 위하여,

알아먹는 말로 쓰는 강신주가 있어서...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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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
하세가와 히로시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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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쯤 전.

철학 고전을 20권쯤 고르고,

그 책이 왜 재미있는지 알기 쉽게 설명하는 교양서를 써보자는 제안을 받았다.(서문)

 

철학 고전으로 고른 책 중에서 재미난 것도 있고, 별로 읽고싶지 않은 것도 당연히 있다. ^^

그렇지만, 이 책의 장점은, '왜 재미있는지'를 나름으로 설명해 보자는 의도가 강해서

철학을 설명하려드는 책들의 딱딱함에 비하면, 부드러운 크림맛으로 그 이물감을 둔화시킨 느낌이 든다.

 

학문의 세계에서 경의를 품고 싶지 않고, 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나에게도 경의를 품는 철학서가 있고 존경하는 철학자가 있지만,

그것은 비판과 대결, 격투를 거쳐 자라난 경의이고 존경이지,

그 앞에서 감히 몸을 굽히지 않을 수 없는 경의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게 '논어'는 경의를 강요하는 성가신 책이다.

설교하기를 좋아하는 주제넘은 책이라 생각한다.

모처럼 명구나 금언을 만나도 설교투가 흠집을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78)

 

하~ 철학자들도 이러하구나.

이런 솔직한 실토가 아마추어에게는 덩달아 반갑다.

그러나 이런 불평으로 가득하다면, 그것은 책으로서의 가치는 누리지 못할 터.

 

간결한 표현 속에 깊은 생각이 담긴 말을 읽으면,

공자의 많은 말도 '독백 혹은 자기와의 대화'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가슴 한구석을 스치지만,

단언할 자신은 없다.

그렇게 단언하려면, 전통적 논어 독법에서 해방되는 것이 필수조건이라는 것은 알겠지만.(88)

 

안연의 죽음에,

"선생님은 아까 몸부림치며 울다 쓰러지셨습니다."

"그랬느냐, 그 사내를 위해 몸부림치며 울다 쓰러지지 않는다면,

대체 누구를 위해 몸부림치며 울다 쓰러지겠느냐.(87)

이렇게 말하는 공자를 대하고 나서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어주는 부분은 쉽게 이해를 도와준다.

 

칼뱅은 신에게 예속, 굴종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한다.

이런 마음을 가진 성도가 자기 경제활동을 '현실 생활'로 파악했을 때,

거기에서 자본주의 정신이 탄생했다.

그것은 자기가 종사하는 직업을 '천직'이라 여기고,

직업을 합리적으로 영위하여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신의 영광을 드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한 정신이다.

인간의 다양한 활동에서 특별히 고귀하고 고상하다고 여겨지지 않던 영리활동이

신의 영광과 결부됨으로써 신성한 의무의 차원으로 격상되었던 것.(98)

 

막스 베버의 철저한 연구 태도 역시 경의를 보내고 있다.

 

소란과 내란은 지배자들에게 커다란 위협이겠지만

인민의 참된 불행은 아니다.

모든 것이 자유를 제한하는 멍에를 짊어진 채 억눌렸을 때, 바로 그때 모든 것이 쇠퇴한다.

인류를 번영하게 하는 것은 평화보다는 자유다.(113, 사회계약론)

 

이런 이야기는 아직도 이땅에서는 요원한 무지개일 따름인데,

프랑스 혁명보다 이전에 이런 논의가 오갔다는 것에 놀랄 따름이다.

평화는 보수주의자들의 로망이다.

세상이 조용하게, '이대로' 유지되길 바라는 것이 '보수'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게 마련. 자유의 물결이 물을 살린다.

 

다른 사상과 공존하며 서로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근본적인 힘(129)

 

밀의 '자유론'에서 말하는 이 비판과 공존은

기독교를 유일한 원천으로 삼았던 시절에 대한 비판이고,

기독교 아닌 사상에 대한 공존을 주장하는 것이다.

아직도 기독교라는 맹신의 틀에 갇혀 '백정'들과 어울리기 싫고, '좌빨'들을 '미개'하다고 여기는

시대착오적 인사들이야말로, 300년 전의 책을 읽히고 싶은 노릇이다.

 

아니다.

이 책의 원 제목은 '이마코소 요미타이 테츠가쿠노 메이초~'다.

'지금 당장' 읽고 싶은 것이라기보다,

<지금이야말로>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다.

 

그래.

<지금이야말로> 철학이 필요한 시대다.

자본주의에 나름대로 저항하며 느리게 가더라도 사람 생각하며 가자던 공산주의가 무너진 현실에서,

이전에는 수정되고 개선되어 사회적 복지 개념과 소수자, 약자를 고려하던 정의를 고려하던 자본주의는

화로에 떨어진 눈 녹듯 스러지고,

이젠 온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어, 가진자는 못 가진자를 더욱더 철저하게 착취하는 구조인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몰아치는 현실.

 

그래. <지금이야말로> 이런 철학서들을 다시 한번 펼치고 싶고,

강론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라틴어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에,

프랑스어로 썼던 <방법 서설>의 의미처럼,

세상을 지배하는 힘에 맞서는 '소수자, 약자'의 목소리가 '인간'을 담아낼 때,

'신자유주의'라는 십자군의 폭력에 맞서 '신르네상스'를 만나게 될는지도 모를 노릇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살 수 있는 법이다.

인간은 어떤 것에든 익숙해질 수 있는 존재다.

나는 이것이 인간에 대한 가장 적절한 정의라고 생각한다.(131, 도스토옙스키, '죽음의 집의 기록' 중)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피의 냄새가 흐르는 곳에 자유가 흘러드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역사의 진보를 믿으며, 살아내다 보면, 지금보다는 더 자유~

조금 더 자유~ 이런 세상을 만나게 되지도 않을까...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팡세에서 파스칼이 일컬었든,

인간은 나약한 갈대지만, 생각하는 갈대여서, 존귀한 존재가 된다.

 

우주가 그를 파괴했다 하더라도 인간은 그를 죽인 자보다 존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과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170)

 

인간이 존귀하게 대접받지 못하던 시절, 얼마나 처절한 자기애에 넘친 발언인지...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은 종교비판서라기보다

종교를 인간의 유적 의식에 바싹 끌어당겨 다시 읽으려 한 책이다.

신을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지닌 무한성, 완전성의 상징으로 파악하여,

종교를 새롭게 살리는 시도라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186)

 

사랑은 대등한 관계 아래에서 성립하는 것.

신앙은 하위에 있는 존재가 상위에 있는 존재에 대해 품는 것.

포이어바흐는

사랑이야말로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묶기에 어울리는 심성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이 깊어지고 확산되면

저절로 신앙을 슬데없는 심성으로 여겨 파기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사랑 안에 신앙이 용해되는 것이다.(187)

 

세계를 뒤덮고, 온갖 전쟁을 불러온 '권력'의 신앙과 교회에 대하여,

시민사회와 자본주의, 새로운 사회 제도의 대두에 따른 논의의 시점에 등장한

포이어바흐의 고민들 역시,

<지금이야말로> 진지하게 돌아봐야할 것들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 신이 아닌 '신-자유주의' 물결 아래,

세계화와 지구촌이라는 그물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이 시대에,

왜 이딴 철학 책을 뒤적거리는 리뷰집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

지금이야말로, 철학이 없다면... 삶의 가치를 논하기가 너무도 어려운 시대가 아닌가 싶어,

자세를 가다듬고,

옷깃을 여미고,

책을 잡게 한다.

 

그래.

지금이야말로, 철학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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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은 어떤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유명한 철학자 탈레스가 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진다.

그것을 본 하녀가 그를 비웃는다. "탈레스는 하늘의 별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발치 앞의 것은 알지 못한다."

 

이 책은 고추장이 어떤 사보에 다달이 적어두었던 꼭지들을 모은 책이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철학자들에게 이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소재의 제공처일는지 모르겠다.

어찌 그 지나간 사건 사고들에서 얻은 깨달음들이,

구태의연하고 옛스럽지 않고, 마치 오늘에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새로운 것인지...

 

그리하여, 이 책의 철학은 '가난한 자, 낮은 자'들이 '깨달음'을 얻는 철학에 대하여 쓴다.

현학적이고 박식해 보이는 철학이 아닌 것이다.

'하녀'의 철학에 대하여 쓴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블리주(책무)는 한번도 가져본 적 없이 사회의 권력층에 앉은 노블하지 않은 노블리스들이...

요즘 '하녀'들을 <백정> 내지는 <미개한 백성> 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참 잘 지은 제목이다.

 

요즘은 뉴스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도를 닦에 만든다.

이것이 나라입니까? 물을 것도 없다.

이것은 나라도 아니다.

저것이 정부입니까? ㅋㅋ 슬프면서도 웃긴다. 하는 짓거리가...

역사는 되풀이 된댔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유신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 애비는 비극으로, 딸은 희극으로...

 

철학은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단 하나의 지식이나 정보도 달리 보게 만드는 일깨움(9)

 

이 말은 철학을 정의하는 훌륭한 말인듯 싶어 적어 둔다.

흔히 철학은 세상을 보는 시선, 시각으로 정의하기 쉽지만,

그것은 학문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나 정보의 늪에서 나름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필터링이 철학인 셈이다.

 

철학은 한마디로 초조해하지 않는 것.(30)

 

조선의 권력자들은 탐관오리들에 있었고,

일제 강점기엔 친일파에 있었고,

군사 독재 시기엔 정경유착의 재벌에 있었고,

이제 국가독점 자본이 세계 경제에 재편되는 시기엔 국가와 재벌의 유착이 고착되는 데 있다.

(국가 조직이 선거를 조작하고, 교회는 자본의 힘으로 선거를 획책하고, 자본은 언론까지 장악하는 복합체)

 

한 번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경험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지나면서 처절한 배신감을,

전쟁시기 이승만의 만행으로 죽어간 수십만을 보면서 생존의 처절함을 몸소 겪어온 사람들에게는

세포 알알이 들어찬 두려움의 유전자가 불안감에 떨게 만든다.

 

절대로 '빨갱이', '종북', '좌빨'에 들면 안 된다는 초조함을 조장하는 사회인 것이다.

국가의 예산으로 있지도 않은 '보수' 알바들을 동원하여 '맞불집회'라는 쑈를 벌인다.

어떤 조직의 힘이 뒷받침 된 것인지 '보수논객'이란 이름으로 트위터에서 막말을 한다.

아직도 여전히 불안감으로 초조한 나날을 살아가기를 권력은 바라는 것.

 

초조해하지 않아야 한다.

쉽지 않은 말이다.


요즘들어 '외부세력'이란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왜 이해당사자도 아닌데 끼어드느냐고 말한다.

칸트 식으로 말하자면, 구경꾼들의 맘속에 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개인을 넘어 인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일이 아닌데도 아파하고 고통을 무릅쓰는 그것 때문이다.(76)

 

청와대 뺀질이가 그랬다.

'순수 유가족'이 아니면 나대지 말라고...

그 뺀질이는 모르는 것이다.

내 일이 아닌데도 이렇게 아프고,

그래서 고통을 무릅쓰고라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어깨를 겯는 사람의 마음을...

 

신자유주의 정부는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이때 정부가 표방하는 것이 법치주의다.

정부가 법을 지키자는 강조는

<시장 자체의 실패(사회적 양극화, 빈곤층의 확대)에서 파생하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공안의 시각에서 해결하려고 한다는 데 있다.(181)

 

미국의 월 스트리트에서, 한국의 광화문에서,

영국의 런던 한복판에서,

아주 사소한 법을 어겼다고 경찰들은 몽둥이를 들고 채증을 하고 '법치'를 떠들어 댄다.

그 이유가 참 명확하게 적혀있다.

 

그런데, 법을 지키려면 좀 제대로 지킬 일이지,

겁을 주려고 해산하는 시민들을 연행해서 불편하게 만들고,

카메라 수십 대로 불법 채증을 하고, 심지어 유가족을 미행하는 사찰을 하고,

(하긴, 국가의 사찰이란 불법을 저지르고는 내부고발자를 아주 비참하게 만든 역사가 3년 전에 있었지)

자기들은 명찰을 반드시 달아야 한다는 법을 어긴다.

 

소수자들은 많은 경우

사회에서 식별되지 않도록 자신을 스스로 말소한다.

그리고 다수자들의 목소리를 제 것인 양 그 누구보다 열심히 내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 말소는 정반대의 사실을 덮고 있다.

다수자가 자행하는 말소의 폭력 아래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역으로 자신을 말소하는 것이다.(206)

 

한국에서 '빨갱이'가 된다는 것은 26년 감옥생활을 해서 나름 장기수라고 뻐기던 만델라가,

한국 감옥에 와 보고 자기는 얼마나 잔챙이인지를 깨닫게 할 정도로 무서운 일이다.

3,40년 정도 돼야 장기수인 나라가 이 나라이니, 만델라는 한국에서는 장기수 축에도 못 드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빨갱이가 아니다... 는 증명으로 교회를 그토록 열심히 다녔나보다.

헌금을 내고, 군경가족이 아니면 '골'로 가서 학살을 당했던 역사를 떠올리며,

아직도 '좌빨', '종북'이라고 손가락질하면 가슴 한켠이 먹먹하고 서늘하다.

 

'전라도 홍어'라는 비아냥을 일삼는 인간 말종들을 사회가 정화하기는커녕,

아직도 광주는 '폭도'와 '사태'의 어느 지점에서 머물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 금지와 행사에 대통령이 불참하는 날들은,

다시 세상을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도'들로 몰아 소수자로 지목하려 드는 셈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소수자 아님을 증명하려 애쓸 것을 바라는 의도가 다분하다.

 

인문학 강연도 많고 책도 많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말들은 모두가 쓰고 버리는,

심지어 써보지도 못하고 버리는 상품처럼 되었다.

"높이 오를 생각이라면 그대들 자신의 발로 오르도록 하라!"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을 구원해달라며 찾아온 이들에게 던진 말이다.(252)

 

결국 말은 힘이 없다는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단결된 힘만이 힘겹게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자유를 말하는 것은 피의 냄새를 맡는 일이며,

고독한 혁명을 견디는 일이라고 김수영이 말했다.

 

이 책은 생활 속에서

도대체 세상이 왜 이따위인지 날마다 투덜대며 신경질이 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물론, 이 책을 읽는 일보다는,

길가에서 서명이라도 한 번 더 하고,

광장에 나가서 노란 팻말이라도 한 번 더 드는 일이, 더 철학적인 일임은 자명하다.

그런 것을 이 책은 일러준다.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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