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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냐 추녀냐 - 문화 마찰의 최전선인 통역 현장 이야기 ㅣ 지식여행자 3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일본어 부분을 옮겨 보면,
<부실한 미녀일까, 정숙한 추녀일까> - 일본사상 최강의 러시아어 통역자, 요네하라 마리가 동시통역의 내막을 처음 공개!
일본어 원본의 그림을 보면, 미녀와 추녀를 비유한 것과도 같아보이는 어딘가 오며한 매력을 가지고 요염한 자세로 두툼한 허벅지를 자랑하는 여인이 앉았다.
반면, 한국어 판의 그림은 어딘가 어색하다. 옷을 갈아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번역'의 이미지를 나타내려 한 것 같은데, 아직 태그도 떼어내지 않은 것으로 봐서, 탈의실 비슷하다.
이런 표지의 '번역'조차도 직역이냐, 의역이냐의 차이를 보여준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와 함께 이해한다는 것은 참 부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번역'하는 과정을 겪어 보면, 두 문화의 차이가 보여주는 거리감과 두 언어의 다름에서 드러나는 차이가 적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한술 더 떠, '통역'의 과정은 '즉시성' 내지 '동시성'이란 시간의 압박이 있기때문에,
특히 통역사로 고용된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거래> 또는 <정치적 입장>이 원만하게 성사되도록 도와줘야 하는 입장이므로 정확한 통역이냐, 원만한 통역이냐를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통역가의 애로사항을 역시 마리여사의 톡톡튀는 입담으로 들려주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한 러시아 문호 개방이 아니었다면 마리 여사가 이렇게 유명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역시 시대를 만나야 훌륭한 사람도 빛을 발한다.
마리 여사의 입담은 통역의 어려움을 '부실한 미녀'와 '정숙한 추녀' 사이의 갈등에 비유한다.
통역가를 매춘부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뭐, 일회용으로 쓰이며, 잘하든 못하든 끝나면 버려진다든가... 과감한 비유다.
그런데, 이 비유가 거칠어 보이지만,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그대로 직역하는 것보다 분위기를 뭉뚱그려 통역하는 편이 훨씬 좋을 때도 있다는데, 그래서 정숙한 추녀보다는 부실한 미녀가 나을 때도 있다는 재미를 느끼게도 한다.
한국 외대에 통,번역 대학원이 생긴지도 오래 되었지만, 아직 한국의 통번역 문화는 저급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영어 쪽은 그나마 사정이 낫겠지만, 러시아어나 아랍어, 그 외의 약소 언어들에 대한 통번역은 아직 미미하기 그지없다.
일본 정도의 대국과 약소국의 규모의 차이가 뼈저리게 느껴진다.
외교관의 yes는 maybe이고,
외교관의 maybe는 no이고,
외교관이 no라고 하면 그 사람은 이미 외교관으로서 실격이다.
여자가 no라고 하면 maybe 이고,
여자가 maybe라고 하면 yes의 의미고,
여자가 yes라고 하면 이미 여자로서 실격.
그런데 최근 여자 외교관이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자 외교관이 yes나 no라고 하면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50)
이런 우스개는 이 글에 가득하다.
화자의 원 발언이
통역가의 인지(알아 듣는)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 실종되고,
이해 과정에서 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놓치고,
기억했다가 재생하는 과정에서 또 빼먹고,
자기네 말로 코드화하는 과정에서 코드 전환을 하고,
적당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만 번역해 주는 통역가의 말을,
또 청자는 알아들은 부분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72)
아, 통역의 과정은 이렇게 오해의 과정이 연속되는 것이다.
멋진 통역을 하고 나면 최고의 찬사를 듣기도 한단다.
"정말이지, 저 연사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는데, 당신 통역을 들으니 알겠습니다."
일본어의 '리듬감'을 이야기하면서 이해하기 힘든 구절이 있었는데, 어디 물어보고 알아둬야겠다.
<일본인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하쿠닌잇슈(100인 1수, 100인의 와카를 한 수씩 골라 모은 것)을 게임으로 즐길 만큼 외우고 있어서 일상 생활에 우연히 잇사의 한 구나 다쿠보쿠의 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하쿠닌 잇슈를 찾아봐야겠다.
정보의 전달은 귀로 들은 것은 10% 남고, 눈으로 들어온 것은 30% 남고, 직접 체험한 것은 80% 남는다고 한다.
통역에서도 그래서 현장에서 겪은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백견이 불여일체다.
마리 여사의 섬세함은 그가 8의 통역을 할 때, 2의 번역에 힘쓴다는 점에 있다.
통역이라는 시간 제약의 환경상, 핑계를 대고 끊임없이 타협하는 행위가 조잡하고 허술해질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의 범위 내일지라도 최고의 최상의 번역을 목표로 하는 번역가적 성향을 배우기 위해서란다.
벼락치기와 임시방편이 번갈아 계속되는 인생에 잠시 쉼표를 찍고 조금 더 차분하고 심오한 표현에 빠지는 일.(136)
자기를 다스리지 않는 자, 약해질 수밖에 없다.
앞문의 호랑이, 뒷문의 이리, 에 비유되는 통역가.
문화의 틈을 최대한 메우고 문맥을 첨가하라는 지엄한 호랑이의 명령과,
최개한 단축된 시간에 통역하르는 이리의 독촉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통역가의 좌충우돌 진퇴양난의 상황이 리얼하게 그려지고 있다.
최근 마리 여사의 '빤쓰 인문학'도 출간되어 읽기를 기다리고 있다.
마리 여사의 책을 읽는 동안에는 풍부한 샘물이 펑펑 솟구치는 노천욕탕에라도 앉아 느긋하게 쉬는 듯한 느낌이어서 독서의 즐거움을 빠듯하지 않고 느긋하게 즐길 수 있어 좋다.
마리 여사의 매력은 그런 곳에서 솟아난다.
그래서 나는 독서의 계절 가을에 기꺼이 마리 여사의 팬이 되는 것이다. 롯데 야구가 올라가든 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