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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고병권 지음 / 그린비 / 2007년 1월
평점 :
아침 직원회의 시간에 행정실장 왈, 행정실장 모임에서 행정과장과 행정실장의 호칭을 행정실장으로 통일했단다. 그리고 계장으로 부르던 이를 행정과장으로 부르고... 학교도 주임 선생님을 부장 선생님으로 바꾼 것이 제법 되었다. 처음 그 소리를 듣고 내 뇌리를 파팟~~ 스쳤던 생각은 '제길~ 염병하고 있네...' 뭐, 이런 것이었다. 회의가 마치고 다시 든 생각은 그것이 그냥 염병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칭이야 어쨌든 괜찮은 것 같지만, 사실 아다르고 어다른 것이 말 아닌가? 과장은 그저 부서장이란 느낌이 들지만 실장이야 관리자같은 느낌의 포스가 팍팍 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영어의 포스는 남을 괴롭힐 수도 있는 힘을 뜻한다. 좋은 의미의 힘은 파워라고 하겠지...
고추장이란 이름을 듣고는 별명 참 희한하네... 하고 말았는데, 추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일리가 있다.
임원진들의 이름은 획일적이다. 무슨 위원장, 회장 이런 거... 요즘은 빠다를 발라서 팀장님...
추장은 상당히 친근하면서도 권위적이지 않은 좋은 이름이다. 그 성씨가 고씨라서 더재미있는 이름이 되었고.
이 책은 <독>과 <론>의 두 부분으로 되었다. 독은 리뷰의 일종이고, 론은 논설의 하나다.
각종 매체에 올렸다고는 해도 한겨레와 프레시안 같은 곳이 대부분이다.
리뷰의 화두들은 역사적으로 참으로 지랄같던 <추상명사>들이다.
자유, 행복, 도덕, 기억, 역사, 사실, 여성, 기술, 화폐, 선물, 사회, 인권, 국가, 혁명... 일반명사로 보이는 것들도 골똘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 부분은 충분히 추상적이다.
사랑, 혁명... 이런 것들만 정말 추상 명사일까? 국가... 이것도 완전히 날조된 환상 속의 악마 아니던가... 화폐에 까지 건너가면 더욱 심하고... 고추장의 전공이 화폐라고 하니, 그 글도 읽고 싶어 진다만, 드팀전님이 요즘 낚시질하는 페이퍼들처럼 읽고는 싶으나 능력 부족이어서...
현대는 충분히 문제적이다. 그렇지만 고추장의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라...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주장은 정답에서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다른 방향을 발명해 내는 것이 그들 연구 공간의 목적이란다.
자동차를 버리고, 아파트를 버리고... 살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일은 기계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기계에게 부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새롭기도 하지만, 근본에서 출발을 달리하는 좋은 뜻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코뮨을 지향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같이 밥비벼먹는 일이든 화폐를 우습게 보는 일이든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여차하면 코뮨 운운하는 연구자들은 국보법 위반으로 잡아들이기 딱 좋은 사람들 아닐까 싶어서... 아직은 국보법이 거들떠도 보지않는 미약한 단체겠지만, 일이십 년이 지나고, 서울대 출신 미국 유학자 출신 박사들에 맞설 지적 재산권을 운운한다면 국보법이 충분히 덮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홉스가 국가를 리바이어던이란 괴물로 비유했지만, 지금은 지구가 글로벌이란 괴물이 되었다.
쇠파이프를 들고 싸우던 시대도 있었지만, 아직도 죽봉이든 짱돌이든 시위현장에선 이런저런 폭력이 오가기도 하는데, 권력자를 가장 곤란스럽게 하는 것이 운동이 휘드르는 폭력이 아니라, 폭력의 결여라는 말에 섬뜩하다. 문부식의 동의대 사태 반성 같은 것이야말로 권력자들이 두려워하는 자기 반성이 되기도 할 것 같다. 지금 시대의 무기는 화염병을 뛰어넘는 막강 화력이나 대포가 아닌 대중을 엮고 소통시키고 전염시키는 무기여야 한다는 그의 말은 일견 진보한 논리지만, 현실은 거리가 많이 있어 보인다.
사회와 국가는 그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그의 글들은 상당히 어렵기도 하다. 특히 그의 독후감은 철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읽어내기 쉽지 않은 주제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의 논점은 명확하다.
사회와 국가는 그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 장애인을 차별하고, 농민을 고사시키며,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비정규직을 대량양산하며, 이주노동자를 가두고 태워죽이고, 새만금의 조개들을 뒤집어지게 하는 것이 사회와 국가의 존재 목적이라면... 과연 시민, 국민의 자격을 갖는 것이 인간으로서 정당한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한미FTA를 체결하지 못하면 지옥이 온다지만, 체결 후 오는 천국은 <전적으로 당신들의 것>이고 90% 이상의 우리들에겐 이러나 저러나 <지옥>만이 강화될 따름인 미래를 볼 때, IMF이후 강화되는 <추방>의 역사와 계층 구조의 분화가 가속되는 체제를 고착시킬 따름인 고급직업, 정보, 의료, 서비스, 교육의 삶과 저급한 그것들의 삶의 투쟁은 글로벌리제이션의 본색을 점차 드러낼 것으로 분석한다.
시골 국도를 운전하다 보면 농민들이 걸을 만한 갓길이 없다. 농번기가 되면 차에 치어 죽는 농부가 숱하게 나오는 것은 다만 갓길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농약음독 자살률이 세계 3위인 것은 그라목손이 폐부종을 일으켜 멀쩡한 정신으로 호흡을 못하게 만드는 제초제인 것처럼 멀쩡한 농부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것이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본모습이었던 거다.
학문의 폐쇄성은 학문의 죽음을 뜻한다고 한다. 우리 학문은 이미 충분히 미국식으로 폐쇄되었다고 한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일제에게서 얻은 한반도에서 미군정이 처음으로 강하게 밀어붙여 강한 반발을 얻었던 <국립종합대학교안>의 실시 목적을 이제서야 한국에서 거두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나는 요즘 협상장에서 웃으며 대화하는 웬디 케틀러와 한국측 협상단의 얼굴이 같은 나라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렇다. 그들은 결국 겉으론 노랗지만 머릿속은 완전한 백인인 바나나 협상단이었던 것이다.
파병에 대해서는 이틀간 연장같은 건 없었지만, 협상은 이틀 연장했다. 철저하게 빼앗아 가야겠다는 거겠지.
악마성은 악한 판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생각하지 않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세상의 모든 파시스트들은 겁쟁이란다. 그런데 그들은 겁쟁이들 속에서 자란다.
조선일보가 왜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길로 몰아넣는지, 왜 젊은이들이 좌파라고 스스로를 생각하지 않는지... 요즘 대학생들이 토익과 해외 연수와 공무원 시험에만 몰입되는 <생각하지 않음>의 현상은 파시즘적 FTA, 그리고 악마의 세상을 불러올 것이라는 것이 고추장의 생각이다.
그는 정말 꼬추장처럼 고추장답게 빨갛다. 빨갱이는 사과가 아니고 간첩이고 국보법의 세례를 받아야 할 대상이겠지. 민주주의의 데모크라시에서 기술자, 전문가의 테크노크라시로 옮아가는 세상.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대선 후보 운운할때 나는 소름이 끼친다. 아무리 정치가들이 전문가가 아니라지만 교수들이 권력과 부에 적응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 무서운 일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지식 기반 사회라고 할 때, 나는 발전을 생각했더랬는데, 그게 착각이었다.
지식 기반 사회가 교수같은 넘들이 권력과 부에 기생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거머쥐고 사회 구조를 재생산해내는 지랄같은 사회가 지식 기반 사회의 본색이었던 것 같다. 아카데믹 캐피탈리즘은 더이상 아카데믹하지 않다. 그것은 충분히 이미 자본주의적인 것이다. 김태희가 다니면 서울대도 <상표>가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