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주역 공부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김승호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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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주역은 어떤 식으로 공부해야 합니까?

답 : 주역은 제일 먼저 괘상에 왜 그 이름이 붙어있는지 이유를 알아야 한다.(233)

 

맞다.

나도 주역에 관한 책들을 몇 권 들추어 보다가,

내 깜냥으로는 주역의 핵심에 들어갈 실력이 안 되는구나...를 느끼고 말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시작은 이렇게 해야하는 것이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물론 주역에 대한 일반론을 설파하는 책들도 많다.

그리고 각 괘의 설명과 효의 설명에 집중하는 책들도 있다.

나름의 이해로 주역을 푸는 책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괘상의 이름에 이렇게 몰두하게 하는 책은 드물었다.

각 괘의 상징과 역할에 대하여 이렇게 명쾌하게 설명한 책은 처음이어서 정말 반가웠다.

 

그러나,

책이 주는 한계는 어디에나 있는 법.

8괘를 설명하고, 다시 상괘와 하괘가 엮여 64괘가 되는 과정에서,

상괘와 하괘의 관계와 역할에 대하여 그가 풀이하는 설명은 일목요연하지 못하다.

 

공자가 주역을 크게 좋아했던 이유는

주역이 만물의 유형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260)

 

그렇다.

주역을 과학이라고 떠받들 필요도, 그것만이 올바른 패러다임이라고 떠들 필요도 없다.

다만, 세상을 만물의 변화를 토대로 설명하려 했던

선조들의 <관조>의 시선에 주역은 하나의 '필터'로 작용했을 것이다.

 

저자가 풀이하는 괘상처럼,

화천대유 인간상을 이루기 위하여

천화동인... 최고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꿈꾸는 것은 과한 일일까?

공자도 조문도면 석사가의라 하였으니...

 

나이가 들어 불안해하는 나에게

풍산점...을 들어 보인다.

큰 산도 바람이 점차 풍식할 수 있다.

시나브로 큰 산을 옮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공부는 지택림... 그릇을 땅덩이만큼 크게 만들어야 할 노릇이다.

깊이있는 공부.

 

그는 마지막을 화풍정을 들어보인다.

부처가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일 때 가섭만이 빙긋이 웃었다고 하듯,

한 송이 꽃과 같은 결실을 상징한다 한다.

꽃은 존재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

 

인간은 누구나 같은 삶을 살 필요는 없다.

똑같은 삶을 살 수도 없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은 모두 다르다.

그 삶을 바라보는 필터로 활용된 주역을 이렇게 재미있게 푸는 작가가 있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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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굵은 고전 읽기 - "고전 읽어 주는 남자" 명로진의
명로진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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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책을 읽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저 삼국지를 몇 번 읽고, 삼국지를 ~번 읽지 않은 사람들과는 말도 섞지 마라~는 등의 헛소리를 한다.

예전부터 어른들은 책읽으란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다.

막상, 좋은 책이 뭔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그런데, ebs에 기가 막힌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매일 오후 4시 '고전읽기'를 모토로,

온갖 고전을 일주일에 5차례,

읽어주고 풀어주면서 재미나게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생긴 것이다.

다만, 그 프로그램은 세월호 사건 이후 몇 달 뒤 폐지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팟캐스트에 방송을 올린다.

그 방송은 이 책보다도 훨씬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방송을 들으면서 출퇴근하는 길이 짧아서 아쉬울 지경이다.

집에 가서도 혼자 한참을 더 듣기도 한다.

 

방송은 작가의 몫이 크다.

이 책은 명로진 혼자만의 책이라기보다는 김희영 작가와 함께했던 시간들의 몫이리라.

 

맹자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왕께서 군대를 일으켜 병사와 신하를 위태롭게 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원한을 맺는 것은 무엇때문입니까?

왕께서 원하는 것은 중국의 중심에 자리 잡고 사방의 이민족을 제압하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힘을 쓰는 방식으로 천하를 다스리려 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72)

 

연목구어의 고사가 나온 양혜왕편이다.

엊그제 서울에서 온통 난리가 났다.

바로 힘을 쓰는 방식으로 천하를 다스리려한 연목구어의 추종자들 때문이다.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를 읽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고전읽기 방송을 먼저 듣고 읽어야 할 일이다.

 

또 열국지나 사기 등을 읽을 때에도 방송을 먼저 들으면 큰 도움이 된다.

 

 

간혹, 그리스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는 실망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런 것은 작가의 글보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편견의 탓이 큰 듯 싶다. 남성간의 '우애'나 '동지애', '우정' 등으로 보거나 전장에서의 '전우애' 등으로 본다면 낫지 않을까?

 

그리고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방송의 삼국유사에서 원효의 시를 일연이 폄하한 그대로 여성의 거시기로 해석한 것은 아쉬움이 있었다. 김선우의 '발원'에서 쓴 강신주의 설명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틀린 한자...

82. 유향의 전국책... 유향의 한자는 乳香(으~~ 젖향기)이 아니라 劉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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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도 - 농사짓는 이와 돌보는 이를 위한 노자의 도덕경
파멜라 메츠 지음, 이현주 옮김 / 민들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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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없이 책을 읽다가, 마지막 페이지가 81장으로 끝나는 걸 보고,

다시 제 8장을 펴보았다.

81장은 노자 도덕경의 장절 수라는데 생각이 미쳤던 것인데,

역시나... 상선약수의 8장은 '물의 소중함'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노자를 농사짓는 일과 비유하여 나름의 논리를 펼쳐본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동양의 '노자' 사상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듯 싶기도 하다.

 

노자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노자한비열전'에 묶였듯, 정치 사상의 하나이다.

노자의 반대편에 선 주장은 '억지로 다스리는 법치'였던 셈이다.

노자는 '억지로 다스리지 않아도 다스려지도록 하는 무위지치'를 역설한 셈이다.

 

서양의 어휘 '자연'은 '명사적'이다.

서양의 자연은 '극복'의 대상이고, '정복'의 대상으로 보기 쉽다.

인간은 그 '자연'에 가장 해로운 존재인 셈이다.

그러나 동양의 문맥에서 '자연'은 '부사적'이다.

'자연히', '저절로', '억지로 하지 않아도 스스로' 같은 의미다.

그것은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경지를 드러내는 말이지 정복이나 분투의 대상은 아닌 셈이다.

 

노자의 '무위자연의 다스림'을 굳이 풀이하자면,

억지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스스로 따르게 하는 다스림으로 풀어야 한다.

 

서문에서 무위당 선생과의 대화 중, '도법자연'을 '도는 자연을 배운다...'로 풀었다.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도법자연...이란, 자연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진리란 스스로 그러게 되는 현상...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라 생각한다.

'자연'이 스승이라고 하고 있다.

'자연'이라는 대상이 배울점이 아니라,

세상 만물의 이치는 억지로 애쓴다고 되거나 안 되지 않으니, 저절로 이뤄지도록 그렇게 살라는 말이렷다.

 

1장, 도가도비가도... 구절을

농사의 도는 드러나 보이는 어떤 것이 아니다...라는 말과 연결지어 놓았다.

농사는 '곡식을 기르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식 농사는 '자식을 기르는 일'이기도 하고,

나처럼 학생 농사 짓는 사람은 '아이들을 기르는 일'이기도 하다.

 

유치원 어린 아이들은 말귀를 잘 못 알아듣기도 하고, 상황 판단이 느리기도 하다.

그러니 아이인 것이다. 그런 어린 아이를 혼내는 일이야 당연지사지만,

귀싸대기를 올려붙여 아이가 날아가게 하는 일은 참 무서운 일이다.

나도 경력이 늘수록 가르치는 일은 <명시적 교육과정>처럼 드러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실하다.

수업을 똑부러지게 잘 하고, 아이들의 잘못을 명확하게 지적하는 교사도 물론 필요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데는 <암시적 교육과정>이 큰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공론을 하는 속에서 자란다.

 

노자 17장은 太上 下知有之 태상 하지유지  其次 親而譽之 기차 친이예지  其次 畏之 기차 외지  其次 侮之 기차 모지 이다.

가장 높은 것... 정치 철학이니 '임금'쯤 되겠다. 지도자로 치환해도 무방하고,

이 책에서는 농사꾼으로 비유했다.

 

제일은 아랫사람이 그 있다는 걸 아는 정도...

다음은 아랫사람이 친하고 높이는 존재. 그보다 못한 건 공포의 존재... 박정희 같은...

마지막은 업수이여기는 모멸스런 존재다. 이명박근혜 시대가 그렇지 안을까?

이 책에서는

지혜로운 농부는 논밭에 자라는 것들을 억지로 키우지 않는다.

때로는 사람들이 그가 있는 줄도 모른다.

지나치게 열심히 농사에 억지를 부리는 농부는

논밭을 망칠 수 있다.

일할 때 일하다가, 물러설 때 물러서는 농부는

논밭으로 하여금 스스로 논밭이 되게 한다.

이렇게 갖다 붙인다.

앞부분은 수긍이 가지만, 뒷부분은 좀 억지다 싶기도 하다.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지나치게 '열심히' 일해온 경향이 있는 나로서는, 많이 돌아볼 일이다.

 

농사의 도에서는 '놓아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것들을 놓아버림으로써 우리는 더욱 맑아진다.

만물이 저마다 제 길을 가고 있다는 진실을 깨달음으로써

도를 깨우치게 된다.

너무 많이 간섭하면, 논밭에 장애물을 늘어놓는 것이다.

 

경험상, 아이들도 그렇다.

냅둬도 잘 자란다.

선행 학습을 시키고 어쩌고... 들들 볶는 것은, '알묘조장'의 우를 범하게 된다.

싹을 쏘옥~쏘옥~ 뽑아 올려주는 일은,

그 싹의 뿌리를 흔들어놓아서 시들어 죽게 만든다.

 

52장. 근본은 언제나 분명치 않다.

열매를 맛볼 때, 네가 경험하는 것은 열매의 맛, 색깔, 크기, 감촉 따위들이다.

 

사과를 맛있게 베어 먹어도, 사과 고갱이의 씨앗이 번식의 기틀이 된다.

우리가 즐기고 경험하는 것은 핵심 고갱이가 아닌 주변의 것들이다.

우리를 즐겁게하는 경험들은 모두 삶의 고갱이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고갱이는 무엇인가... 그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한다.

 

농사를 짓자면 기다리고 지켜보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어떨 때는 그냥 놔 버리는 것이 더 낫다.

그것은,

자연으로 하여금 제 길을 가게 하고

자연스런 방식으로 논밭을 일구는 것이기도 하다.

 

두 해동안 고락을 같이 하던 아이들이 졸업반이 되었다.

이제 스물이라고 술집에서 민증을 검사해도 내쫓기지 않는다.

맥주라도 한 잔 놓고 애들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아이들이 자란 것은, 부모의 관심도 아니고, 학교의 교육과정도 아니다.

아이들을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다.

저절로 자기들끼리 비비적대면서,

상처를 입고 치유를 받으면서 그렇게 자란 것을 알게 된다.

부모나 학교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덜주는 방향으로 바뀌려 노력해야 한다.

 

더 많은 것을 주려고 고민하지 말고,

아이들이 저절로 얻어가는 과정에 더 많은 것들이 녹아들도록...

아주 자연스럽게 교육과정을 덧대는일이 어른이 할 일이다.

 

불현듯, 노자를 열 권쯤 쌓아 두고 노닥거리고 싶다.

당연히 그러면 졸릴 것이다만... 그냥, 희망 사항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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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1 한길그레이트북스 54
한비자 지음, 이운구 옮김 / 한길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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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온갖 더러운

오물을 가득 뒤집어쓴 채로...

 

오욕의 시간을,

캄캄한 암흑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살고 있다.

 

용산에서,

쌍용자동차 옥상에서,

천안함 캄캄한 해저에서,

사대강의 녹조 라떼와 이끼벌레의 썩은내와

온갖 자원외교란 이름의 국비유출로 복지는 짓밟힌채

다시 부정선거와 밀실정치 속에서

세월호의 참담한 침몰을 바라보면서...

통합진보당의 해산까지...

 

곰곰생각해보면, 이정희의 '민주주의는 죽었다'는 말은 오류다.

태어난 적이 없는 존재가 죽을 수는 없는 법.

 

그러고 보면 정치라는 것은 태생적으로 '드러운 시대'를 통과하는 법이다.

어느 시대 한 순간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낙원이었던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국민이라는 것이 이렇게 모멸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녹이 슬어서 그럴 게다.

 

조금만 더 쳐다오,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전대협 진군가)

 

이런 결기서린 노래가 불리던 시절도 있었건만...

 

중국의 이름 '차이나'는 최초의 통일국가 '친 秦 Chin'에서 왔다고 할 정도로 진시황의 영향은 컸다.

진시황이 통일국가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이사와 상앙의 국가정책 수립의 기반이 된 책, 한비자.

그렇지만 '한비'는 순자의 제자로서, 동창생 '이사'의 음모로 죽고 만다.

서양의 마키아벨리즘의 할아버지뻘 되는 책.

 

사마천이 <사기>에서 '노자한비열전'이라고 분류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노자와 한비의 사상을 '정치 철학 계열'이라고 분류한 셈이다.

노자가 '정치가는 냅두는 무위를 실행해야한다'고 했다면,

한비는 '정치가가 신상필벌의 냉정한 법치를 실시해야한다'는 주장이다.

노자를 '무위자연'의 도피사상으로 보는 자들과는 딴판의 해석인 셈.

그러자면 강신주의 '노장은 상반된 생각'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신하를 귀하게 하지 말라.

그러면 군주와 맞먹으려고 할 것이다.

장딴지가 허벅다리보다 굵으면 빨리 달리기가 어렵다.

군주가 신같은 권위를 잃으면 호랑이 같은 악신이 그 뒤를 노린다.

군주가 알아차리지 못하면 호랑이는 장차 소신인 개들을 모아들일 것이다.

군주가 빨리 그것을 막지 못하면 개의 수가 점점 늘어 끝이 없을 것이다.

호랑이가 한 무리를 이루게 되면 그 어미인 군주를 죽일 것이다.

군주가 법을 시행하면 큰 호랑이는 겁을 먹고,

군주가 법을 집행하면 큰 호랑이도 스스로 온순해질 것이다.

법과 형이 신실하게 실행되면 호랑이도 교화되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123)

 

군주는 신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신하에게 모든 권한을 주면 군주는 무너진다.

작금의 한국 정치가 보여주는 면모가 이것 아닌가 싶다.

호랑이와 개의 뉴스를 덮기 위하여 '땅콩 여사'가 열심히 눈물을 짜내고, 토막사체 사건으로 덮으려 하지만,

호랑이와 개의 뉴스는 하늘이고, 땅콩 여사는 손바닥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요즘 '사법기관'들은 '성범죄자'를 특별 우대하는 법을 시행하는 모양이다.

제주지검장의 '음란행위'를 '성선호성 장애'라는 특수 명칭을 사용해 주시는 고귀한 법원은,

자기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단호하게 처단한다. 오늘의 판결 역시 호랑이를 키우는 '법 결정'이다.

 

듣기로는 옛날에 사람을 잘 부리는 자는 반드시 하늘을 따르고

사람에 맞추어 상과 벌을 명확히 하였다고 한다.

하늘을 따르면 힘을 적게 들이더라도 공이 서고

사람에 맞추면 형벌을 줄이더라도 법령이 행해지며

상과 벌을 명확히 하면 백이와 도척의 구별이 혼란해질 일이 없을 것이다.(용인, 419)

 

신상필벌.

이 단어는 법가의 금과옥조다.

잘못에는 반드시 엄한 벌을 내려야 하는 것.

땅콩으로 청와대 진돗개를 가리려는 일은 '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따름이다.

 

동물 가운데 훼라는 뱀이 있다.

한 몸에 입이 두 개 있어 먹이를 다투다가 서로 물어 뜯어 끝내 죽고 만다.

신하들이 권력을 다투어 나라를 망치는 것도 모두 똑같은 유이다.(설림 하, 387)

 

동물에 빗대어 세상 이치를 설명하는 설림.

이 '수풀 림'은 '정글'의 법칙이 횡행하는 곳이다. 정글 이야기~로 정치를 비유하는 멋진 대목이다.

한국의 정치가들은 훼와 같은 넘들이다. 상생을 모른다.

먹이를 다투는 데는 타협이 없다. 필연, 죽을 것이다.

 

군주가 일을 하고 싶은데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면

의욕만을 미리 밝혀 그것을 하는 경우 그 하는 일이 이익을 얻지 못하고

반드시 손해로 돌아오게 된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자는 일의 원칙에 맡기고 욕심을 버린다.(256)

 

의욕만을 미리 밝혀,

적폐를 해소하고 계통을 세우겠다고 했지만,

인사 참극을 낳고 만 사실을 지난 봄 여실히 보았다.

일에 원칙이 없고,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자가 정치를 할 때의 폐해다.

 

한비자라는 책은 참 많은 이야기를 자분자분 들려준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나는 그 속에서 '분노'를 느낀다.

무능력한 군주가 제대로 정치를 못해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작금의 현실이 개탄스럽기 그지없어,

이 두꺼운 글들을 피눈물에 먹을 찍어 기록했을 것이다.

 

나라를 다스릴 적에는 명확한 법을 설정하고 엄격한 형벌을 제시하여

장차 그것으로 모든 사람의 혼란을 구하고 천하의 재앙을 물리쳐야 한다.

그래야 강자가 약자를 침해하지 않고

다수가 소수를 학대하지 않고...(215)

 

정규직이 너무 많아 경제 발전이 안 된다는 '강자'의 논리는 약자를 침해한다.

국비로 운영되는 온갖 '보수단체'라는 이름의 테러집단은 떼를 지어 울부짖으며,

'소수를 학대'하는 데 참여한다.

비극이다.

 

무릇 용이란 짐승은 길들여서 탈 수 있다

그런데 그 턱 밑에 직경 한 자 정도의 거꾸로 박힌 비늘이 있다.

만일 사람이 그것을 저촉하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

군주에게도 마찬가지로 역린이라는 것이 있다.

설득하는 자가 능히 군주의 역린을 저촉하지 않으면 그 설득을 기대할 만 하다.(197)

 

역린.

지도자에게 자존심이기도 하고, 권위이기도 한 것.

이 두꺼운 책을 통해 한비자가 바랐던 세상은 무엇일까?

<법치>를 통해서라도 좀 '질서'잡힌 세상을 꿈꾸지 않았으려나?

<공자>처럼 말로만 '착하게 살자'는 문구는 '현학'으로 치부하던 시대.

사람들이 알아주면 뭐하나, 현실에 쓸모가 없는 것을... 이런 기분으로,

눈물을 참으며 이 책을 썼던 한비자...

그는 결국 어눌하여 진시황을 설득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고 만다.

 

성인이 정치수단으로 삼는 것은

이, 위, 명이다.

利란 민심을 얻기 위한 것이고,

威란 법령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며

名은 위와 아래가 함께 의존하는 것이다.(830)

 

이는 '복지'라는 말이 되겠고,

위는 '법치'라는 말이 되겠고,

명은 '명분'이란 말이 되겠다.

백성을 '이용후생'하여 잘살도록 도모하고,

법령을 엄하게 적용하여 휠체어타고 헌법위에 사는 넘이 없게 하고,

도덕적 명분 없이 치사한 정치놀음에 빠지지 말라는 말.

 

어린아이가 서로 장난치며 놀 적에

흙을 밥이라 하고 진흙을 국이라 하며 나무를 고기라 한다.

그러나 저녁때가 되면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 밥먹는 것은

흙밥과 진흙국을 가지고 놀 수는 있어도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저 오랜 옛날의 전설과 기리는 말을 외는 것은 말뿐으로 정성이 담기지 않았으며,

선왕의 인의를 말하더라도 나라를 바로잡지 못하는 것은 이 또한 놀이가 될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 통치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571)

 

노친네들은 박근혜가 '어려서 부모 잃고, 그 불쌍한 것이...' 이러면서 찍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흙국에 흙밥'인 셈이다.

박정희 시대에 이루어진 경제 발전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높이 살 만 하지만,

지금 '새마을 노래'를 소리높여 부르는 일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아,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 금할 수 없으나,

한비자를 읽노라면,

그런 시대는 지금만이 아니었고,

그런 마음은 오늘만이 아니었음을 생각하면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던 어느 시인을 떠올려 본다.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어쩌겠나.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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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샘 2014-12-22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비교되서 골라잡은 책이었는데 한권짜리로 살껄 그랬나 싶군요;;

글샘 2014-12-22 21:21   좋아요 0 | URL
네. 정말 두껍고 긴 책이지요.
그렇지만 부분부분 다양한 이야길 인용하는 부분도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수도 있습니다.
 
왕멍의 쾌활한 장자 읽기
왕멍 지음, 허유영 옮김 / 들녘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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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옛 문헌을 옛 사람들의 발자국에 비유한 장자의 주장을 매우 좋아한다.

발자국은 신발은 아니고 발은 더더욱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과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자의 가장 큰 매력은 시대를 초월한 유연성에 있다.

나는 그의 발자국을 더듬어 따라가면서 장자라는

지금 살아있는 우리보다 훨씬 더 지혜로운 사상가를 부활시키고자 했다.

그를 부활시켜 그의 맥박소리를 듣고, 그와 함께 논쟁을 벌이고,

그에게 갈채를 보내고, 또 그와 얼싸안고 춤을 추고자 했다.

장자와 함께 춤을 추다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후기)

 

이 책의 제목은 '쾌활한 장자'이다.

중국어의 쾌활~은 '즐거운, 유쾌한'이란 뜻이니까,

    快活 [kuàihuo] [형용사] 즐겁다. 유쾌하다.

한국어의 쾌활( : 명랑하고 활발하다.)과는 조금 뉘앙스가 다르다.

 

천지는 만물의 여관,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이백, 춘야연도리원서)

 

이런 이백의 시와,

장자의 '지북유' 편과,

스메타나의 교향시 '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를 같이 읽을 수 있는 것은,

이런 학자들의 덕을 보는 셈이다.

 

숲이나 들판에서 노니는 것은 모두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즐거움이 끝나기도 전에 슬픔이 뒤따라온다.

슬픔과 즐거움이 찾아오는 것을 우리는 막을 수가 없고,

그것드링 떠나는 것도 붙잡을 수 없다.

슬프도다. 세상 사람들이란 외물이 임시로 머므르는 여관일 뿐.(560)

 

이 얼마나 자유로운 숲과 초원인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새들이 노래하고

새들이 춤을 추네

소녀여, 무엇을 고민하고 슬퍼하는가?(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 중)

 

노자가 하나의 뛰어난 '정치사상'이라면,

장자는 '양생'을 위한 삶의 지침이 되는 우화집이라 볼 수 있다.

노자를 읽을 때는 항상 '나라를 다스리려는 자는~'이라는 입장에서 읽으면 이해가 쉽고,

장자를 읽을 때는 '삶에 끄달려 사는 일반 인간 존재는~' 이라는 입장에서 읽으면 좋다.

 

노자가 세상을 구하는 데 주력했다면

장자는 개인을 구하는 데 치중했다.

이것이 노장의 차이점이다. 다시말해,

노자는 득보다는 실이 많은 상쟁과 잔꾀, 모함 등을 대신할 수 있는 무위이치라는

가장 높은 경지의 철학 사상을 만들어 냄으로써 제왕들에게 기여한 반면,

장자는 선비들에게 소요와 제물을 동경하고 세속을 떠나 홀로 노닐며

진인과 지인의 경지에 올라 무핞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97)

 

이전이라면, 제왕보다는 선비쪽인 우리는 장자를 읽는 게 좋겠으나,

현대 민주주의 사회라면, 국민이 곧 주권자이므로 노자의 뜻도 공부할 수밖에...

 

세상은 참으로 고단하다.

외부적으로 먹고살기 힘든 세상임을 느끼고는,

변혁 세력조차도 앞장서서 제자식을 경쟁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 승자로 만들려 든다.

 

갈수록 혼란이 깊어진다.

대통령 선거의 부정을 뛰어넘는 '정윤회' 어쩌고 뉴스는 참 어둡다.

역사 발전은 방향이 있는가, 인간 세상은 진보하는가, 악은 서서히 약해지는가...

이런 의문에 힘이 빠진다.

 

지금처럼 국경이 반듯하게 나눠진 시대도 그럼에랴,

중국의 고대는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혼란기에 나왔던 책이니 읽을수록 뜻이 깊다.

왕멍이 풀어주는 말도 많은 부분은 군더더기지만, 그래도 부분부분 수긍하며 보게 된다.

 

장자의 '허주'를 이야기하면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들먹이는 창의성을 읽을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저번에는 화를 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화를 내는 것은

저번에는 빈배였지만,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자신을 비우고 세상에서 자유롭게 노닐 수 있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습니까.(441)

 

공산당 선언도 무산계급이 혁명을 통해 '잃는 것은 쇠사슬이며 얻는 것은 전 세계다'라는 말로 맺었다.

반갑고 기쁘다.(441)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많은 부분 잘못 이해되어 전해오기도 한다.

강신주판 해석에 따르면 '조삼모사'역시 그러한데,

이 책에서는 '태약목계'를 든다.

 

태약목계만 하더라도 장자의 본래 뜻과는 달리 우스꽝스럽고 부정적인 뉘앙스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은 이 성어가 괜스레 놀라 두려워하고 바보처럼 넋을 잃고 우두커니 있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이지만,

본래 '목계'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속이 깊고 침착하며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413)

 

공수는 손을 움직이면 그림쇠와 곱자를 씌운 듯 딱 맞았다.(420)

 

이런 구절에 덧붙인 말은 멋지다.

 

좋은 신발은 발의 느낌을 생각할 필요가 없고,

몸이 건강하면 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잊는 법이다.(421)

 

자연스럽게...는 '양생'의 근본인데,

자칫 잘못하면, 구차하게 살면서도 오래만 살고 싶다는 속물처럼 들리기 쉽다.

하지만, 구차하다고 여긴다면, 웰빙이 아닌 것이다.

좋은 신발이 발의 느낌을 잊게 하듯,

좋은 교사는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준다는 사실을 잊어야 하는 듯 싶다.

날이갈수록, 열심히 열성을 다한다기보다는,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양생은 양을 치는 것과 같아서,

뒤처지는 놈을 보고 채찍질을 한다.(400)

 

사람들은 가장 앞에 서있는 양에게만 시선을 빼앗긴다.

앞에서 달려가는 양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기쁨에 도취되어버리면,

뒤에 있는 양에게 채찍질하는 것을 잊기 쉽다.(401)

 

외편은 내편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를 조곤조곤 전하지는 않는다.

좀 뻣뻣한 언어로 첨언을 덧붙인 느낌이랄까.

거기에 다시 곁다리를 설명하는 책이 이 책이다.

그렇지만, 외편만을 읽는 것보다는 이처럼 '내편'과 연관성을 짚어가면서,

현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우리에게 고전을 훨씬 친근하게 다가서게 한다.

 

성인의 말씀을 읽고 있다고 하니 윤편이라는 목수가 '옛사람의 찌꺼기'를 읽고 있다고 비평한 이야기가 있다.

 

장자는 우리가 지혜를 얻기까지의 과정이 '문자-책-지식-의의-지혜'의 순서로 이어지는 가정이,

반드시 성립되는지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형페와 색깔, 이름, 소리를 가지고 있는 문자를 통해

얼마나 많은 의미와 지식, 지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장자는 2300년 전에 이미 이런 심오한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색했던 것이다.(228)

 

그렇다.

장자의 의미는 다양하지만, 현대에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론이 현실에서 멀어지고 도덕과 이익이 별개가 되면

세상은 점점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

장자는 적어도 자신의 관점에서 이미 유학의 설교가 현실적으로 큰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이를 경고했던 것이다.(23)

 

이렇게 장자의 위치를 명쾌하게 짚어주는 책도 드물다.

이 책은 '외편'이라는 딱딱한 어려움.

또, 내편에 대한 첨언에 대한 해설서인 격이므로 큰 재미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또한 이렇게 제자리에서 소소한 재미를 주는 책을 쓰는 학자가 있다는 것은,

찌꺼기 언어를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지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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