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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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를 받을 수 있는 날은 스승의 날 정도였는데,

요즈음엔 그나마도 주고받는 일이 드물다.

워낙 카카오톡이니 페이스북이니 이런 도구가 발달하여 쉽게 인사를 나눌 수 있고,

긴하면 메일로 주고받을 수 있으니,

시공간을 떨어져 격절한 기다림을 간절히 쓴 편지를 읽는 일은 새삼스레 감동적이기도 하다.

 

이오덕 선생님과 1973년 처음 만나

마치 형제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는 권정생 선생님과,

권정생의 동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쓴 이오덕 선생님,

그리고 뜻을 나누는 전우익, 이철수 등도 정겹다.

 

솔직히 저는 사람이 싫었습니다.

더욱이 거짓말 잘 하는 어른은 보기도 싫었습니다.

나 자신이 어린이가 되어 어린이와 함게 살다 죽겠습니다.(13)

 

권정생의 편지들에서 가장 간절한 기도는 아픔에 대한 좌절이다.

아픔은 삶을 일깨우는 유일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마음은 짓무르고 만다.

어린이로 살다 죽겠다는 그에게 동화는 희망을 쓰는 도구다.

 

동화란 것을 심심풀이 오락물로 읽는 백만 명의 독자보다

단 백명의 가난한, 그러나 슬기로운 어린이들과 진실한 삶을 찾는 젊은이들이 읽어주는 일이

더욱 기쁘고 보람있는 것.(58)

 

어떻게 해서라도 일본인 작가들의 작품을 능가할 수 있는 동화를 한 편이라도 쓰고 싶어요.(60)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보자면,

또 일본에서 태어나 넘어온 재일조선인 출신인 그의 삶을 보자면,

일인 작가들의 작품 만한 한국 동화가 없는 것이 한스러웠던 것이다.

이현주에 대한 걱정도 등장한다.

 

서울 가서 현주 못 만나셨나요.

그동안 머리가 엉망진창이었을텐데 걱정입니다.

지하철 레일 위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순간마다 일어난다는 말을 전에 들어서 그래요.

충분히 그럴 만한 소질을 가진 사람입니다.

싯타르타 왕자님처럼 돌이 되는 게 제일 편할 거 같습니다.(110)

 

시대는 바야흐로 박정희의 철권 통치시대 1974년이었다. 유신 이후 긴급조치 시대

가난과 아픈 몸에 대한 이야기는 삶에 대한 성찰이자, 고통의 기록이다.

 

한 끼만으로 살 수 있게, 그리고는 잠들지 말고 눈을 감은 채 오래오래 앉아있고 싶습니다.(126)

자꾸 귀찮아지고,소극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 되고 있습니다. 한없이 달아나고 싶은 충동 같은...(176)

 

소수의 집권자가 휘두르는 채찍 속에 수많은 인간은 노예가 되어 가면서

참담한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이 역사가 그래도 유유히 흘러온 엄청난 비극을 바라보노라면

쓰러질 듯한 현기증을 느낍니다.(194)

 

그러나 정신은 한없이 날카로워진다.

1979년이라는 시대가 가만두지 않는다.

 

장자같이 살아가는 것은 결과적으로 도피입니다.

우리는 루쉰을 배워야 합니다.(189)

 

두려운 시대. 장자는 살아 남는 것만을 목표로 보신주의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계한다.

루쉰처럼 어두운 상하이 뒷골목에서 고뇌하던 지식인을 떠올리며 살아가던 시절.

이오덕은 권정생을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하다.

애인이나 어린 자식 걱정하듯 한다.

 

여기는 낮이면 아이들이 오고 남쪽 창밑이 따뜻합니다만,

거기 일직 교회는 햇볕이 앉을 곳도 없었던 것 같은데 얼마나 추울까요.

약을 계속해서 잡수셔야 할 터인데 걱정입니다.

어디 돈을 빌려서라도 약을 잡수시면 제가 가서 갚겠습니다.(198)

 

그러나 결핵, 신장 질환 등으로 망가진 권정생은 많이 아프다.

이오덕은 같이 아파할 뿐...

 

책상 앞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쓰러지면 몇 시간 되에 깨어납니다.

1년에 한두 번은 그런 경험을 합니다.

차라리 끝까지 깨나지 않았으면 싶을 때도 있습니다.(199)

 

저는 아직 기운을 차리지 못할 만큼 몸이 괴롭습니다.

달력에 동그라미로 표시된 대로 꼭 16일 동안 밤낮을 고통스럽게 지냈습니다.

얼마나 그 아픔이 심했는지 정말 삶이 두려워집니다.(231)

 

그런 힘든 몸이지만 또렷한 정신은 온전하다.

아니 오히려 아픈 몸이 또렷한 정신을 차갑게 곧추세운다.

 

결국 인간은 최악의 고통에서만이 진실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배고픈 사람이, 추운 사람이, 질병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결코 점잖을 수도 없고 성스러울 수도 없고, 거룩할 수도 인자할 수도 위엄이나 용기를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배고프고 얼어죽어가는, 병으로 괴로워 몸부림치고 있는,

온갖 괴로움 속에 허덕이는 사람만이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233)

 

요사이 라디오 듣고 있으면 사회적으로 어지러운 것 같아요.

조용한 것보다는 좋다고 봅니다.

과감하게 행동하고 문제를 계속 일으키고 그래서 많이 자라면 눈은 뜨여지기 마련입니다.

젊은 학생들의 저항의식이 계속 살아 움직여야만 국가는 병들지 않을 것입니다.(204)

 

80년 광주 나흘 전이다. 5월 13일 일기.

어느 예배당 강론 자료에서 '하나되는 것'에 대하여 읽고는 반발한다.

 

하느님 나라는 절대 하나 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일만 송이의 꽃이 각각 그 빛깔과 모양이 다른 꽃들이 만발하여 조화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꽃의 크기도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빛깔이 달라도 그 가치만은 우열이 없는 나라입니다.(207)

 

우리가 추구해야할 나라가 그런 나라다.

나와 다르면 '용공'이고 '종북'인 나라는 박정희 시절과 다를 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어두운 시대, 지식인은 침묵했다.

 

어두운 시대엔 비굴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자가 바로 한국의 글쟁이들일 것입니다.(210)

 

어찌 보면 별로 읽을 것도 없는

두 사람의 동화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어린이 문학의 향방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권정생의 건강을 염려하는 편지글들이지만,

시대의 아픔과 현실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여 가슴이 따스해지는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다.

 

바를 정, 살 생... 이름조차 '바르게 살자'였던 권정생.

그는 곧 예수와 같은 삶을 살다 갔다.

 

다만 내가 있을 장소는 분명히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둡고 춥고 누추하고 배고픈 곳, 그런 곳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곁에 있을 땐 외롭지 않으니까요.(212)

 

가파른 수직 상승의 경제 성장률을 자랑하던 대한민국의 이면의 고통을 그의 글은 오롯이 증명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저는 인간학을 공부하겠습니다.

한 인간의 선행이나 악행은 모두 그 역사와 사회의 소산물이지

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171)

 

그래서 그의 동화는 아픔의 동화이자, 인간 교육의 동화가 되는 것이다.

 

농부 피서방의 신세 타령은 그대로 민요다.

 

권 집사님,

새벽종 칠 때 나는 일어나 쇠죽 끼리고 마당 씰고 밥 먹고 들에 가마

캄캄하두룩 일해야 사니다.

내보고 예수 믿으라 카지 마이소.

나는 믿을 끼 없니더.

하나님도 못 믿고 예수님도 못 믿고, 목사님도 장로님도 못 믿니더.

나는 배묵에 일나서 점두룩 삐빠지게 일해야 먹고 사니더.

내가 하리만 놀아도 우리 아들은 굶어 죽니더.

주일도 일해야 되고 놀아서는 못 사니더.

누가 내 대신 꼬치밭 한 고랑 매줄 이가 있니꺼.

기도를 백분천분 해도 하나님은 안 들어 주니더.

속이 상하만 술 먹고 고래고래 소리 질르고 나면 쪼매는 풀리니더.

우리긑은 거 이루구루 살다가 죽는 거지 어야니꺼.(220)

 

민중의 고통을 곁에서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의 글은 따스하고 훈훈하지만 정직하고 꼿꼿하다.

하지만 세상은 늘 그를 고독하게 한 것.

 

외로운 건, 사람 때문이 결코 아닌데,

사람 때문에 외로우니 어떡합니까.(222)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건 어린 애들 이야기다.

오히려 친구라는 녀석 때문에 더 씁쓸해지는 것이 인생 아닌가.

육신의 아픔이라는 고독과 친구하며 살아온 차라투스트라의 철학자 니체처럼,

권정생의 생각은 인간을 탐구한다.

 

장애인 아이에게,

괜히 자신을 낳았다는 푸념 앞에서

부모가 태왕이를 낳은 게 아니라,

수억의 정자 가운데, 태왕이의 정자가 다른 모든 정자를 물리치고 <자신이 태어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태왕이는 <사는 데까지 사는 거지 뭐>하면서 돌아간다.(288)

 

타고난 운명을 탓할 수만은 없다.

운명은 운명일 뿐. 내가 할 일은 사는 것이다.

 

오늘 새벽에 문득 환상처럼 눈앞에 나타난 모습인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휘두르는 굵은 채찍에 수많은 사람들이 쫓겨가고 있었어요.

쫓겨 가면서 서로 밀치고 당기고, 빼앗고 빼앗기며 가는 모습이 너무도 비참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바로 이런 모습 아니겠어요.(296)

 

내가 밑줄한 글들은 거의 권정생 선생의 그것이다.

아픈 글, 꼿꼿한 생각과 동화에 대한 일념.

아픈 몸과 아픈 시대를 오롯이 살린 편지글이어서 감동을 주는 모양이다.

 

세상이 하도 험하니...

제 밥벌이로 전락한 공부가 무슨 필요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정말 인간에게 고등교육이 필요한지 교육에 대한 회의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실천문학에서 국졸, 중졸의 노동자들 작품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놀랐습니다.(306)

 

아픈 시대를 그린 <레 미제라블>에 대한 칭찬은 나를 그 책으로 이끈다.

 

그늘에 가리었던 참다운 인간이 드러납니다.

이름도 없이 너무도 착하게 살다가 죽어간 참인간으로 또렷이 가슴에 남습니다.

열 번을 더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조그맣게 참되게 살아가는 인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312)

 

결국 <불쌍한 사람들> 레 미제라불은

작지만 참되게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바치는 서사시였던 것이다.

권정생 선생님과 이오덕 선생님의 삶 역시,

이런 편지로 느낄 수 있는

어둡고 캄캄한 시대를 건너오신 큰 어른 두 분의 서사시적 서간문이 아닐까 한다.

 

 

고칠 곳

134. 니이미 난키치의 동화 <곤 기츠네>의 일본어 표기가 잘못되어 있다. ぎつね로 적어야 할 것을 ぎっね로 적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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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땅이 될 것이다 - 한 권으로 읽는 이오덕 일기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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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의 일기가 5권으로 나오고,

그런데 그 책을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반성이 있었나보다.

한 권으로 엮인 책을 만나니 또 반갑다.

 

이오덕 선생님이 교사하던 시절은 박정희 집권기이다.

가난한 시골에서 교사를 했다.

보릿고개가 있는 세상이었다.

 

너희들이 방에서 아침밥을 먹을 때,

어머니는 정지에서 밥을 잡수신다.(30)

 

이런 훈화까지 해야하던 시절이다.

그래서 '삶의 글 쓰기'를 강조하신 것이다.

삶 속에는 모든 전통과 인습과 사고방식이 녹아들어 있으니깐.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삶이 없어져 버렸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놀고 싸우고 토라지는 모든 것이 삶인데,

아이들도 학원을 다니는 일터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어른들의 연애놀음을 흉내낸다.

그러니 삶의 글이라고는 쓰기가 힘들다.

 

 

 

이 시를 잔혹 동시라고 몰아붙이면서 폐기시킬 만큼 어른들은 떳떳한가?

 

어쩌면 아이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할 만한 시가 아닐까?

아이들의 마음 속이 이렇게 썩어문드러져 가는 걸, 그저 모른 체 고개돌리고 있지나 않았나?

 

이오덕 선생님의 일기를 읽으면서 부끄러워한다.

선생은 그 어둡던 시절 부끄러워하며 일기로 남겼는데,

난 이 부끄러운 세상에... 뻔뻔스럽게도 잘 산다.

 

선생이 교류하던 권정생, 전우익 선생들 역시 세상을 뜬 분들인데,

어둡던 세상에서 스스로 빛이 되어 살아가신 분들이다.

 

찍는 모양이 온 교실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보이도록 되어있다.

게다가 총을 멘 경비원이 교실 바로 앞에서 어정거리고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니 참 가관이다.

나도 0표에 아무 주저 없이 찍을 수밖에 없었다.(73)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들던 현장이다.

투표소에 총을 멘 경비원이라니...

정보부에서 온갖 사찰을 다 일삼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던 날들...

 

현대 회화라는 것도 추상화는 물론 주로 색채를 중심으로 표현한 것인데,

이것이 생활이라든가 사상 같은 것을 죽여버리고 있다.(100)

 

그렇다. 삶이 없는 추상은, 휘발된 세상이다.

사상의 자유가 없기에, 사상을 휘발시킨 색채만의 세상을 그렸을 터.

 

1980년 6월 1일 일기에는 욕이 적혀있다.

5월 27일 도청에서 학살을 벌인 직후다.

 

이런 시간에 문인협회에서는 무슨 시 낭독회를 한다고 신문에 나 있었다.

개새끼 같은 연놈들이다.(131)

 

아이들에게 반공 포스터, 표어, 글짓기를 숙제로 내 놓았단다.

이게 무슨 놈의 교육인가.

망하는 것밖에는 아무 도리가 없을 것 같다.(135)

 

그 시절이면 내 중학 시절이다.

나도 반공... 많이 적었더랬다. 6월이면 으레 하던 미친 짓...

 

올해 이렇게 역사에도 없는 흉년이 들었는데

쌀 3800만 석이 생산된다는 공보실장은 어떤 낯가죽의 사람인가.(140)

 

광주학살이 있던 그해에는... 여름내 냉해로, 유례가 없는 흉년이 들었다.

어린 내 기억에도 그 여름은 추웠다.

 

사람이 살다 보면

때로는 일신의 안위를 걸고 중대한 결정을 해야하는 일이 생긴다.

이제 나는 그런 때를 맞은 것이라 깨닫는다.(172)

 

더럽게 선생일을 하다, 교장까지 했지만,

교육청의 말도 안 되는 탄압은 치사하기 짝이 없다.

 

제가 봐도 학교 관리며 정리 정돈이 너무 안 되고 있었어요.

오늘 장학사를 장학지도 보내겠습니다.(178)

 

이게 교육청이 하는 일이었다.

눈에 난 교장은 '직무감사' 하듯 탈탈 털던 시절.

교사를 털려면 무조건 근무 태도가 불량하다고 했다.

 

87년 6월 항쟁도 적혀있다.

 

학생들은 애국가를 부르기도 하고 '우리의 소원'도 불렀다.

아, 이럴 때 한번 힘차게 불러볼 애국가는 없는가.

온 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감격의 노래를 왜 우리는 갖지 못했는가.

애국가는 그걸 부르기만 하면 그만 용기도 상기도 푹 죽고 주저앉아 버리고 싶어지는 노래다.

통일의 노래란 것도 눈물 짜는 노래밖에 안 된다.(214)

 

그 뜨거운 현장에서 울리던 애국가, 통일의 노래가 구슬프고 한심하기만 하다.

누군가가 보면 이런 것이 빨갱이로 보이려나.

 

조선일보에 김지하가 '죽음의 굿판' 운운한 것에 격분한다.

 

그 젊은이들의 자살은 포악한 정치권력이 죽인 것이다.

운동권 사람들이 죽음을 부추겼기에 죽었는가?

정치권력의 포악에 항거하고 항의한 행동으로 죽었는가.

어느 쪽인가는 너무나 명백하다.

그 억울하고 기막힌 분신자살 학생을,

남의 선동으로 죽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매장하다니...

조선일보는, 이 김지하의 글 옆에 또 운동권 학생들과 인사들을 비판하는 사설과 글을 실어 놓았다.

더러운 신문이다.(250)

 

이제 무슨 커다란 비극 같은 사건이 갑자기 일어나

이 사회가 엄청난 지각 변동을 하게 되는 일이라도 생겨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정신이 돌고 마취가 되고,

그래서 괴상한 동물로 상태가 변해서 차츰 시들고 망해갈 것이다.

그 길이 너무나 훤하게 보인다.(257)

 

전두환의 민정당으로 기어들어간 김영삼이 당선되어 쓴 글이다.

그나마, 비극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지각 변동이 생길 것을 기대했나본데,

작년, 그 커다란 비극이 일어났다.

모두 돌고 괴물로 변했다.

시들어가고 망하고 있다.

 

선생의 수십 년 일기를 이렇게 묶어서 날짜가 훌쩍 건너뛰는 것을 보니,

세상이 조금은 나아졌음을 알겠다.

허나... 미래가 캄캄한 것은 여지껏 마찬가지다.

 

생활을 말한 글이나 노랫말이 없음을 한탄하던 선생.

아이들의 삶이 사립대학의 노예가 되어 학원가기 싫은 날...

엄마를 잡아먹는 괴물로 변해버린 그 심성을 생각하면... 세상 살기 두렵다.

 

나는 분노하는 데서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어쩌면 분노 때문에 살아가는 것 아닌가 싶다.

이게 잘못인가.

그러나 비뚤어진 것, 악한 것에 대한 분노가 없으면 죽은 목숨 아닌가.

분노야말로 살아 있다는 표현이고 생명의 표적이다.(327)

 

세상은 잠시 밝아지는 날도 있지만,

캄캄한 어둠 속을 걸을 때가 더 많다.

밝아보일 때도 구석구석 보면 어두운 곳투성이다.

분노야말로 삶의 힘인지도 모른다.

 

저를 묻는 날은 모두 즐겁게 찬송가나 부르면서 웃어 주세요.

즐거운 잔치판이 되도록 해주세요.

이 세상 온갖 얽매인 사슬에서 다 풀려나 즐거운 저세상으로 가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412)

 

이 일기를 쓰고 나흘 뒤

2003년 8월 25일 돌아가셨다.

 

칼칼한 그의 의식을 느낄 수 있고,

캄캄한 시대 정신을 더듬을 수 있다.

시간이 나면 일기 다섯 권을 찬찬히 읽고 싶다.

 

 

 

 

94. <에세닌 시집>을 <에세느 시집>이라고 잘못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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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배신 -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
윌리엄 데레저위츠 지음, 김선희 옮김 / 다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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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사립대의 비율이 기형적으로 높은 나라다.

초라한 국립대는 10% 남짓이고, 날로 기승을 부리는 사립대는 80%를 훌쩍 넘는다.

유럽의 모형이 아니라 미국 모형을 본따 그렇다는데...

사립대를 손대려 했더니 촛불 집회를 열었던 부자들이 연달아 대통령의 자리에 앉았다.

욕망의, 욕망을 위한, 욕망에 의한 그것.

 

왜 대학생들은 같은 직업에 열광하는가.

수가 많은 게 안전했다.

누군가 그것을 하는 걸 보고, 그것이 가치있는 게 틀림없다고 추정하고, 결국 그거을 원하는 것이다.

마치 연어의 회귀나 컨베이어 벨트처럼...(40)

 

연어의 회귀나 컨베이어 벨트의 공통점은... 사고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다수가 움직이는 쪽으로 사고하지 않고 따라가는 것.

이런 것들이 한국의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위험에 대한 격려한 반감으로 나타난다.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은 아예 회피하기 때문에 실패할 일이 전혀 없다.

이것이 엘리트 교육의 폐해다.(41)

 

인문계열의 회피, 로스쿨의 인기, 의대의 인기 이면에는 이런 욕망으로 부글거린다.

그 욕망을 더 부추긴 것이 대통령들인데,

자립형 사립고들의 바람을 불러 왔고, 각종 특목고가 양적으로 팽창했다.

 

이 책의 제목은 엑셀런트 십(뛰어난 양)이다.

양떼는 아무리 뛰어나도 혼자서 독창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저 맹목적으로 다수의 행동을 따른다. 안전을 위해 획득한 형질일 게다.

 

이 책을 보니 <스펙 중심의 입시>를 만든 것은 미국 사립대의 꼼수였다.

<스펙>은 우수한 학생이 획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체육 특기생 같은 경우 승마, 골프 같은 종목은 정윤회 딸처럼

몇 억 짜리 말을 몇 마리는 가지고 있어야 <스펙>이 되는 셈인 것이었다.

 

아이는 칭찬받기 이해 끝없이 추구한다.

그런데 칭찬이란 사랑과 동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는 충분히 칭찬받을 수 없다.(84)

 

작년부터 고등학생도 성취평가제라는 것을 적용했다.

그런데 성적이 2원화되어 처리된다.

상대평가인 등급제와 절대평가인 성취평가가 병기되는 것.

문제는, 절대평가인 성취평가 등급은 학교마다 다를 수 있어 신뢰도가 없다는 것.

한국처럼 서열화된 사립대 중심의 입시가 임금 설정의 기준이 되는 나라에서는

상위권 대학에서 '성취평가 등급'을 쓸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

그리고, 하위권 대학은 어쨌든 학생만 모집하면 되므로, 성취평가 등급을 활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

 

유럽형 학교라고 모두 학생의 성취 수준에 도달하도록 지도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그랑제꼴 같은 정치, 외교 전문 학교에 진하하기 위해서는 죽도록 공부해야 한다.

그렇지만 일반인의 경우 죽도록 공부하는 지옥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핀란드의 경우 성취수준에 도달하도록 가르치는 대표적인 국가라 할 수 있다.

 

내가 미국 대학에서 긍정적으로 읽었던

콜롬비아 대학의 '그레이트 북스 프로그램'은 실패로 돌아갔다 한다.

고전을 통해 철학, 과학 등의 역사를 배우고, 필수 교과의 의무화가 좋다 싶었는데, 역시 인기가 없었나보다.

 

문제는, 하면할수록 점점 더 못하게 되고 모든 면에서 점점 더 부족해진다는 데 있다.

소용돌이 요인.

너무 잘하려고 노력한 탓에

결국 모든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현상.(103)

 

완벽하게 모든 일을 해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경험담을 듣는다.

결국 <스펙>이란 무한 경쟁에서 승리하여야 하는 뺑뺑이다.

군대에서 가장 고달픈 체벌이 '선착순'인데,

선착순 몇 명 안에 드는 사람은 죽으라고 달리지만, 그걸 포기한 사람은 쉬면서 달린다.

어차피 그 안에 들지 못한다면 죽자고 달릴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한국의 학교 역시 그런 형국이다.

지옥이 따로 없다.

 

고등교육의 상업화가 가져온 최악의 결과는

교육기관이 학생을 바라보는 방식이 '소비자'로 바뀐 것.

지금의 학생들은 A 학점을 받기 위해 돈을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107)

 

재벌 중심 교육과정을 좋아라하는 정권 이래,

대학의 기업화, 상업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이전에도 각 기업이 대학에 번드르르한 건물, 도서관 기증하고 기업의 이름을 붙이곤 했었는데,

이제 아예 성대는 삼성대로, 중대는 두산대로 바뀔 판국이다.

 

투자수익률,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느냐...(119)

 

대학을 가는 이유는 투자수익률 때문이다.

한국은 4년제와 2년제의 월급 차이가 크다.

오히려 2년제와 고졸의 임금 수준이 비슷한 정도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대학이 받는 고액의 등록금은 투자수익률을 담보하는 것일까?

 

대학은 그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필요한 기관인가?

교육의 유일한 목표는 일자리를 얻게 하는 것인가?

각설하고, 대학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119)

 

그 답은 위에서 말한 것이다. 대학은 <상업적 이윤 추구 기관>이 되어버린 셈.

불안한 아이들을 획책하여 말 잘 듣는 양으로 만든 것.

이런 원칙적인 질문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제도가 재갈을 물린 셈.

 

1971년 의미있는 인생철학을 배우러 오는 신입생이 73%, 부유함을 위함이 37%였으나,

2011년 이 수는 47%, 80%로 역전되었다.(121)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그물'의 비유가 있다.

 

이 나라에서는 영혼을 가진 인간이 태어나면 그가 날아가지 못하도록 그물이 던져진다.

너는 내게 민족과 언어 그리고 종교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이 그물을 뚫고 날아갈 것이다.(145)

 

일자리, 실용적 학과, 대학의 레벨... 모든 것이 그물이다.

한때 삶의 안목을 넓히려 배낭여행을 다니던 젊은이들의 패기는 사라지고,

이제 어학 연수라는 그물 안에서 아이들은 '소비자'로 기능한다.

드디어 '인천 송도'에는 글로벌 빌리지가 생겼으며,

조만간 미국의 한 스테이트로서 영광스런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3월 학기제도 9월 학기제로 바꿔 주시려고 노력 중이시다.

아, 찬란한 어메리칸 코리아의 미래여~!

 

자신의 삶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이 주입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실패를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실패를 장점이 아닌 허약함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마라.

두려움은 우리가 앞으로 해야할 일, 되어야 할 무언가를 방해한다.

차라리 실패가 낫다. - 사뮈엘 베케트"(163)

 

쉽지 않다. '시스템'과 '프로그램'은 다르다.

'프로그램'은 실패했을 경우 바꿔볼 수 있는 것이지만,

'시스템'은 무지무지하게 많은 것들이 엮여서 작동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났을 경우 받게될 불편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학적 명제는 '이것이 진리인가?'를 묻지만,

인문학적 명제는 '이것이 내게 진리인가?'를 묻는다.

이것에 내게 맞는 것인가.

이 역할은 대학이 할 일이기도 하다.

고전을 읽는 궁극적 이유는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고전 속 사람들이 나를 더 잘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220)

 

현실 분석이 날카로움에 비하자면,

대안 내지 대책은 무디다.

날카로운 현실의 공격적 진행에 맞서기에는 주장이 너무 구태의연하다.

아니 고색창연할 지경이다. 슬픈 현실이다.

 

위대한 스승 역시 삶을 사유할 힘을 준다.

경계는 무너지고

우리는 어찌된 영문인지 자신과 세상을 생각하며 느끼게 된다.

사물을 개별적이 아닌 유기적인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262)

 

위대한 예술, 스승... 이들은 삶을 사유하게 한다.

사유하면서 산다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훌륭하게 사유한다고 극구 칭찬받은 그 학생이 양이라면...

다른 이의 사유를 따라할 뿐이라면... 자기 삶을 살기는 힘들다.

 

교육은 토론을 통해서만 일어날수 있는 교환과 자극 같은 것이다.(274)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토론을 조금 시도하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도 작년에 이어 두 번째 토론대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올해는 주제를 '일베 사이트를 폐쇄해야 한다.'로 잡을까 싶다.

아이들이 '과학 중점' 친구들이 많아서 인문과정 아이들과 공통으로 다룰 만한 사회적 소재를 잡아야 한다.

 

토론의 장점은 많다.

그러나, 토론의 한계는 그것이 언어라는 것이다.

토론이 아무리 치열하더라도, 그 토론의 배경에서 다양한 삶의 양식들이 존재함을 인정하게 되고,

왜 그러한 양식을 살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되다 보면,

결국 양시론에 빠지기 쉬운 것이 토론의 함정이다.

전두환도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이다... 같이 되기 십상인 것이다.

 

역사란 계급의 무덤으로

리더십보다 세습 특권층을 더 선호한다.(1964, 발첼의 신교도 기득권층)

 

WASP(화이트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라는 개념이 나온 책이라는데,

상식적으로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보다 세습 특권층이 역사의 승자가 되는 일이 잦다는 이야기다.

대학은 학문의 요람이라는 멋진 직함을 단 사기꾼이자 장사꾼으로서,

이제 세습 특권층을 위한 사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영리단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최고의 무상 고등교육 이상을 제공해야 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불가피하다.

불평등의 대물림을 방지하는 게 핵심이다.

모든 아이가 충분히 기회를 갖도록...교육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339)

 

글쎄.

참 좋은 말인데...

이 말이 왜 이렇게 공허하게 들리는지...

 

승리하기 전에는 '반값 등록금'을 약속한 것처럼 하더니,

이제 그런 적 없다는 오리발을 고발한 소비자 단체 하나 없는 시스템에서

어찌 평등을 이야기할까...

 

다만 내가 있는 교실에서라도

한 명이라도 더 따뜻한 경험을 가지고 졸업하기를,

그리고 단식하는 유가족 앞에서 폭식하는 돼지새끼는 나오지 않기를...

예수님조차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라고 하셨듯,

내 욕심도 너무 크지 않게 살 수 있기를...

세상이 너무 극단적으로 불행해지지는 않기를...

다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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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1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럭키1123 2015-05-21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10 8081 2709 입니다. 연락부탁드립니다.
 
학교는 시끄러워야 한다 - 아이들 곁에서 함께한 35년의 기록
김명길 지음 / 양철북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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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참 많은 종류의 교사가 있다.

승진에 올인하는 교사도 있는가 하면, 그 중에도 실력있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도무지 뇌가 발견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건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열정적이면서도 감성도 풍부한 사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열정도 감성도 없는 사람도 많다.

 

교사들은 순진한 면도 있고 순수한 면도 있다.

때묻기 힘든 면은 늘 아이들과 생활하노라니 순수한 삶을 지향하기 쉽지만,

또 어른으로서 갖추어야할 종합적 판단력이 부족하게 되기도 쉽다.

평생 살아온 삶이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해서이다.

 

김명길 선생님의 이야기는

가난하던 시절, 힘겹게 살아온 아이들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 시대엔 누구나 힘겹게 살아 왔다.

 

하지만, 등록금을 못 낸다고 내는 그날까지 손바닥을 엉덩이를, 심한 날은 뺨도 맞아가며

사립 중학교를 다닌 나로서는 이런 선생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따스한 마음이 들던 것은

더 못난 아이들의 힘겨운 삶들 곁에서 늘 함께 계셨던 이야기들로 가득해서이다.

가진 것 없고, 부모조차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사람들이어서

아이들이 갈등의 나날을 살아가는 모습을, 어찌할 수 없어 그저 바라만 보는 교사.

 

그리고 또 학교에서 학생들을 맵차게 지도하는 교사들의 모습에 문제를 제기하는 교사.

이런 선생님 한 분쯤 계시다면, 학생들도 간혹 의지할 맘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나는 과연 얼마나 아이들에게 친절했던지를 돌아보게 했던 책이다.

스스로 잘 알아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는 교사가 별로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허나 열 몇살의 나이에 잠잘 곳이 제대로 없어 가출을 일삼던, 그 90년대...

나는 그 아이들 엉덩이에 매를 퍼붓기나 하던 생각없는 교사가 아니었던가 반성한다.

 

학생부라는 악역을 맡았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폭력을 퍼붓던 나를 기억하는 아이가 있다면, 이제라도 깊이 미안했다고 사죄의 말을 해주고 싶다.

 

입학사정관제 때문에 생활기록부 길게 쓰기 열풍이 불어... 전문가라는 교사에게 두 번이나 연수를...(95)

 

이 나라의 꼬락서니가 이렇다.

그걸 교사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교사는 입시제도라는 교육과정의 정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이 85%가 사립인 비정상인 나라.

그 사립의 이사장이 최고 권력자인 나라.

그래서 입시제도가 교과서가 한해 걸러 한 번씩 뒤집어지는 희한한 나라.

거기서 교육을 한다는 일은

마치 아이들을 가득 업고서 외줄을 타는 삐에로나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어른이라고 나를 믿고 의지하지만,

나조차도 한치 앞을 모르는 주제에 아이들을 독려하는 꼴이란...

 

교사는 인간의 영혼과 만나는 직업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이 다 바라보는 아이들보다는

남들이 쳐다보지 않는 아이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마음을 써야 해요.

그 아이들의 벗이 되면더 좋고요.

그리하여 단 한 명이라도 나로 인해 위로받는 아이가 있다면 교사라는 일은 보람있는 것 아닐까요.

이 일은 분명히 인생을 걸고 할 만한 일입니다.(224)

 

교생을 담당하여 교생들 앞에서 들려준 이야기라는데,

스무 나믄 해를 이 일에 종사한 나도 부끄럽게 하는 말들이다.

 

아이들은 아프다.

아픈 아이들 곁에서 다독거려주는 일이야말로

교사의 존재 이유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하는 좋은 책.

 

교사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둬야 할 책.

이론적인 교육 철학보다는, 가슴으로 다가가는 철학으로 가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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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하게 살기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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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 겐지로가 40대에 쓴 글들을 모은 것.

1970년대라면 아직 컴퓨터가 보급되진 않았을 터이니, 손으로 원고를 쓰던 시절이었을 터이다.

시골로 가서 육신을 움직여 일하며 살때여서 재미있는 글들이 많다.

 

맷돌에는 소박하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조형미가 있다.

옛사람들의 미의식이 존경스러울 따름(39)

 

생활 속에서 묻어나오는 글이다.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올 때면 꽤 긴장이 된다.

율모기나 구렁이가 아무 예고도 없이 남의 집 현관 앞에 달구경을 나와 있기 때문이다.

재빨리 판단해서 독사가 아니면 놀라게 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42)

 

참 상냥하다. ^^

자연을 바라보는 상냥한 시선.

하이타니 선생님이 특히 좋은 것은, 어린이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런 관점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고생과 통찰의 소산이다.

 

나는 청춘 시절을 밑바닥 노동자로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육체노동은 참고 견디는 일임을 잘 알고 있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할 때까지 자신의 육체를 괴롭힌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오감이 깨어난다.

인생을 되돌아보면, 내가 나라는 인간에 대해 가장 깊이 생각했던 것은 그시절이었다.(69)

 

농사를 지어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낫다.

농산물 값이 너무 싸다는 것. 농민들은 바라지 않는데도 농업 자체가 너무나 투기적이라는 사실...(57)

일본은 국토가 좁아도 잘만 궁리하면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지만,

농지를 갈아 엎고 공해물질을 내뿜는 공업을 발달시켜 외국에서 사들인 원료를 가공하여 수출한다.

그리고 거기서 벌어들인 돈으로 모자라는 식량을 외국에서 비싼 값에 사들인다.

그래야만 부자는 돈을 벌 수 있고 정치가는 뇌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72)

 

현상을 바라보지 않고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 날카롭다.

한국에서 '잘 살아 보세'의 보이지 않는 주어는 바로 <부자들>이었던 셈이다.

가난한 백성들은 주어도 모르고 자기들이 잘 살게 될 줄 알고 허리 부러지도록 일한 것일 뿐.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참 부드럽고 다사롭다.

 

가정에서 인간적인 교류가 일어나면 어린이의 안테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반응한다.

 

아빠가/ 늦게 와서/ 엄마가 화가 나서/ 집에 있는 문을/ 모두 잠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까/ 아빠는 자고 있었습니다.(107)

 

초등학교 1학년의 눈은 이렇다.

 

그 시대를 읽게 되면서, 어제 읽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등장했다. 가슴이 먹먹하다.

 

레이건과 전두환 사이에 오고간, 인권보다 안보가 원이라는 성명을 읽는 것으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다.

한 나라에서 어린 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천 명이 자기 나라 군인들한테 희생되어 피를 흘려가며 쓰러져 죽어가는데

나만, 우리 식구만 무사하면 된다는 말입니까.

라고 광주사태에 항의하고 분신자살을 한 젊은 노동자 김종태 씨의 숭고한 민족애는...(113)

 

그가 어느 료칸에 머물면서 느낀 감정은 황홀하다.

 

사람은햇살이 다사로이 비치는 양지에 있으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거나 슬픔이나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게 된다.(124)

 

료칸에서 행복했던 시간을 회상하며 남긴 글이다.

 

고작 교사와 제자 사이에 지나치게 친한 척하는 사람이 나는 감당이 안 된다.

둘 사이에 인생을 엄격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맺어진 우정이 없다면 그 인간관계는 메마른 관계라고 생각한다.(160)

 

<인생을 엄격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맺어진 우정>이라...

그래. '일베'하는 녀석을 제자라고 친한 척하는 일은 고통스러 일이리라.

우정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닌 관계다.

 

아이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

생명이 살아가는 일이 가혹하다는 것을,

인간의 고통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인간에게는 상냥함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배우고 있다...

절망과 맞부딪쳐 이겨내기 않고서는 진정한 상냥함을 지닐 수 없다.(201)

 

진정한 상냥함은, 고통에서 배우는 것이고,

상냥함과 배려는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선생님 신부 예뻐요?/ 상냥해요?/ 뚱뚱해요?/ 점점 무서워질 거예요./ 신부가 무서워져도/ 선생님은 상냥해야 돼요.

(초등 3, 결혼, 209)

 

열 살짜리 생각치고는 통찰력이 대단.

 

아이들이 이해하느냐 못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느냐 아니냐가 문제다.(215)

 

진심은 통한다. 세상이 각박해지는 만큼, 소통의 노력을 더욱 기울여야 하겠지만,

상냥한 진심으로 소통하기 위해 애쓴다면, 시대를 탓할 필요 없는 관계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던 아이가 보인다는 것은 분명 하나의 세계를 발견했다는 뜻이며,

그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뜻.(250)

 

인간은 양지에서만 성장하지 않는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욱 아름다운 인간이고자 하는 정신을 지닌 인간이 용기를 준다.(264)

 

그는 문학의 힘을 이렇게 말한다.

 

상상력이 사실을 뛰어넘을 때가 있다.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이 영혼 그 자체이기 때문이리라.(326)

 

허구적인 문학이 필요한 것은,

현실에 기반하여 영혼을 통찰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잡다한 잡문집이지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다.

교육에 대하여, 어린아이들에 대하여...

초등학교 선생님이나, 학부모라면 재미를 떠나 곰곰 배우는 자세로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른, 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아이들은 배우지 않는다.

가르치려는 의도 없이 진심으로 다가가면, 아이들은 상처받지 않으면서 성장한다.

'유리 가면'의 마야가 가진 가능성을 짓밟지 않는 어른이 되기를 소망했던,

다시 2월이다.

 

새학년도에는 다시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터인데,

아이들과의 만남을 '피곤한 일터'로만 여기고 있지나 않은지,

자라나는 아이들을 '골치아픈 말썽쟁이들'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상냥하게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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