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은 있다 - 좋은 선생도 없고 선생 운도 없는 당신에게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동섭 옮김 / 민들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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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훌륭하다'가 이 책의 제목이다.

선생님은 훌륭하다.

이 명제에 대하여, 사람들의 의견은 다양하고 분분할 것이다.

사실명제가 아니라 판단명제이기 때문이다.

선언한다고 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개개의 선생님에 대한 판단이 개입하기때문에 동감하기 힘들 것이다.

특히, 훌륭하지 않은 선생님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은 심정이 목울대를 울컥거리기 때문이겠다.

 

그럼, 이건 어떨까?

책과 애인의 공통점은?

 

1. 보면 자고만 싶어진다.
2. 침 바르면 잘 넘어온다.
3. 가을이 되면 더 보고 싶다.

 

웃자고 하는 소리다. ^^

책을 봐도 말똥말똥할 때도 있고, 책에 침 같은 거 바르면 싫어할 사람 알라딘에 많고,

가을이 아니래도 책은 늘 보고 싶은 사람들로 여긴 가득하니까...

 

이 책에선 스승과 애인의 공통점은? 이런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평범한 선생님은 '이걸 할 수 있으면 된 거야.' 정도로 만족하지만,

스승이라면,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한다.

 

기술에는 완성이 없다.

완벽을 벗어나는 방식에서 창조성이 생겨난다.(35)

 

이런 것이 가르침과 연애의 특성이다. '연애는 끝이 없다. 실패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독창성을 발휘한다.

 

스승과 애인의 공통점은 이것이다.

 

이 사람의 진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나 뿐이라는 믿음!

 

여느 사람이라면, 그 선생님을 평범한 어떨 땐 평범 이하인 사람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진가를 알고 있다고 믿는 이에게, 그는 걸출한 스승일 수밖에 없다.

애인 역시 그렇다. 그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나머지 조건들은... 우수리에 불과하다.

~~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존경할 수는 없는 거다.

'바로 그 사람'이기때문에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만이 이유가 된다.

 

그러면, 스승과 애인은 왜 중요한가?

그 사람은 나를 어떤 사람인지 알아주기 때문에...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일까?

 

일이 일어나는 순서를 잘 기억해주세요.

당신이 '나는 어떤 인간인가'를 생각했단 것은 당신은 정말 어떤 인간인지를 알아줬으면 하는 사람과 만났기 때문입니다.(49)

 

스승과 애인이 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먼저 '나를 인정해주길 바라는 그'와 전면적으로 만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마주침'과 '만남'을 통해 '스승과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저 '우발성', '우연성'으로 그 화학적 변화 과정이 일어난다면... 지하철에서 몸 부딫는 사람들 모두와 연인이 될 수 있지나 않을까? 두려웁게도~ ㅎㅎㅎ

 

우린 늘 이야기를 할 때,

듣는 이에게 내 말이 어떻게 닿을지 신경씁니다.

저 사람이 누구보다 나를 깊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를 더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나에게 경의를 표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신은 그때까지 자신에게도 숨겨왔던,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상대방이

애당초 당신에게 없었다는 애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들어줄 용의가 있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정말로 말하고 싶은것'을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52)

 

음...

이 구절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단 생각을 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난 다음에, 그 사람을 더 알고 싶어지고 궁금해하게 되는 것인데,

사실은,

사랑을 통해, 스승님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발견을 얻게 되는 것임을... 간과하며 사랑을 달리고 마는 것이다.

달려가면서 산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주마간산의 바보가 되는 것이다.

 

스승은 있다.

애인도 여기 있다.

그는 참 고마운 사람인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당신 말이다.

 

두 사람이 서로 진심으로 바라보고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거기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둘 중 누구도 아닌 그 누군가입니다.(58)

지금까지 이야기를 이끌어온 것은,

처음으로 준비했던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상대방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욕망도 아니고,

그저 당신이 추측한 상대방의 '욕망'입니다.

당신이 이야기한 것은, '이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 아닐까'란 상상으로 만든 이야기인 것.

 

사랑에 애태우고, 마음 졸이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소통해야할지 모르겠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연애의 기술(실전편)으로 이름붙여도 멋진 책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강의를 해야하는 사람, 또는 리더십을 발휘하여 남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면 '리더'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리더십 지침서'로도 소용될 수 있어 보인다.

리더의 <소통>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

 

우리는 거꾸로 알고 있기 쉽다.

우리에게 깊은 성취감을 가져다주는 '대화'는,

말하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이 먼저 있어 그것이 두 사람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왔다갔다하고 나서야 비로소 두 사람이 말하고 싶었던 것과 듣고 싶었던 것을 알게 되는 것.(68)

 

사랑하는 사람과는 무슨 이야기든 자주, 많이 하고 싶어진다.

그들 사이에선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거지, 할 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을 보여줄 수 없으니... 말이 먼저 오고가는 것이겠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친절'이라고 말해버리면 너무 노골적이어서 함축성의 맛은 없다.

'마음 씀씀이', 그렇게 말해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말 그대로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작가가 마음을 다한 것이 독자에게 통했을 때 비로소 문학의 영원성이라든지

혹은 문학의 고마움이라든지 기쁨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성립한다.(다자이 오사무, 여시아문, 113)

 

여기서 '오해'와 '이해'가 닿을 듯 말 듯 빠듯하게 접근하면서 절대 100페센트 이해되지 않게 쓰고 있는 것이 작가의 천재성이라고 말해도 좋겠죠.(115)

 

결국, 스승과 애인의 소중함은, 그 닿을듯 닿을듯 닿지 못하는 데서 간절함과

오해의 간극을 이해하려는 애씀에 달려있다는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필승의 병법은 필패의 구조에 몸을 둔 자만이 터득할 수 있다.

이것을 소통의 이야기로 말하면,

'이해'는 메시지 내용을 적절하게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소통이 갖는 '오해'의 구조에 정통하게 되는 것(141)

 

이 책이 정말정말 맘에 드는 것은 이런 구절 때문이다.

 

오해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는 일...

그래서 '필패의 구조'에 놓일 수밖에 없으니, '필승'을 위해 서로 한발 물러서는 자세가 필요함을 알고 격려하는 일...

연애에서도, 스승님에게서도...

어떤 말로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

거기서 오해도 생기지만, 이해의 가교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

 

커뮤니케이션에 관하여,

또는 리더십에 관하여,

이 책에서 예를 들고 있는 사랑의 성취와 커뮤니케이션에 관하여,

심지어는 무도인의 필승 비법에 관하여,

얻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읽을 일이다.

 

이 책에서 가르쳐 주는 바는 없다. ^^

그러나, 배우는 바는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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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30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0 0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2-08-30 23:47   좋아요 0 | URL
두루두루 고맙습니다~ ^^

다크아이즈 2012-08-30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스승 만나는 것 말고라도, 이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런 것 같아요. 좋은 사람 만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친구 되어 주면 된다는 것. 인간이기에 때론 좋은 친구 해달라는 사람에게 되어주기 싫을 때도 있고, 좋은 친구 되려다 된통 당할 때도 있고...
<이 책에서 가르쳐 주는 바는 없다, 그러나 배우는 바는...> 글샘님의 이런 시니컬을 제가 좋아합니다요. 크~

글샘 2012-08-30 17:0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스승도 애인도 '믿자' 이래야죠. ㅎㅎ
제가 시니컬 하다구요? 왜 제가 쓴 맥락에서 '^^'를 빼고 시니컬하다고 하시는 건지.... ㅠㅜ

2012-08-30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0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8-3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는 메시지 내용을 적절하게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소통이 갖는 '오해'의 구조에 정통하게 되는 것(141)
- 이것, 어디에 적어 두고 싶군요.

애인을 만나는 연애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점에서 애인 자체가 스승이라면, 저는 글쓰기를 통해 저를 알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글쓰기가 스승이 되곤 해요. 글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만큼 저를 알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아직 다 알지 못했지만... 알아가는 중이지만...

이 리뷰의 제목, 맘에 들어요. ^^

글샘 2012-08-30 17:09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알라딘에 그래서 적어 두잖아요. ㅋ~ 맨날 까먹으니깐...
제목이 맘에 들면, 같은 제목으로 한번 써 보세요~
 
달려라, 탁샘 - 탁동철 선생과 아이들의 산골 학교 이야기
탁동철 지음 / 양철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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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참 오래 읽었다.

 

도종환, 이계삼, 이상석 선생 같은 이가,

교육은 이런 일을 해야하지 않는가?

이런 당위론을 이야기할 때는,

나는 달팽이집 안에 들어앉은 채,

이런 의견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것이고, 이건 또 너무 감상적이고, 이건 또 상당히 도발적이고,

이러고 평가를 내리면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재단하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는, 무장해제 당하고 만다.

 

길을 오래 걷다보면 발바닥에 굳은살이 배겨서 감각이 둔해지지만 걷는 데는 도움이 된다.

망치질이나 특별한 도구를 사용하는 일에서도 오래 숙련되노라면 굳은살이 배기고 감각이 둔해지면서 작업에 도움을 준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 역시 그렇다.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새살이 아려서 몹시 힘들었다.

아이들과 다투면 주말 내내 몸살을 앓았고,

우리반 아이들이 너무 의견이 많고 시끄러우면 나의 잘못된 교육관 탓을 하며 엉뚱하게 술을 마셨다.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삐딱선을 탄 아이를 만나면 미운 마음이 막 들었고,

내가 좋다고 졸졸 따르는 아이들은 이뻐서 어찌할 줄을 모르곤 했다.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이 살아있어서 너무 이뻤고,

아이들은 서로 발표를 하려고 했고, 글쓴 거 하나 읽고 칭찬 듣고도 세상을 얻은 듯 해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도 오래오래 편지를 보내왔고,

지금도 가끔 그때 토욜 저녁에 학교 운동장에서 야영하면서

내 팔베고 누워 밤하늘의 별을 헤던 이야기를 하는 '소설창작반' 아이들도 있다.

 

야영하던 밤, 엄마가 없어서 '어머니의 손'을 못써온 아이 손바닥을 때린 일을 알려줘 나를 부끄럽게 했던 아이,

일요일이면 키는 나보다 더 큰 여학생 둘이 총각 선생님 자취방에 쳐들어와서 볶음밥 해달라고 조르던 아이들,

고등학교 입학해야하는데 등록금이 없다고 통장에서 27만원 빼줬더니,

그길로 날라서 아직 연락이 없는 아이.

알콜중독 아버지한테 매일 맞다가 머리가 굵어 집나가서 중국집 배달한다던 녀석,

엄마 없이 이모집에 사는데 감기로 결석했다고 아이들이랑 병문안갔더니 스승의 날 담배한갑이랑 불티나라이터 연습장에 둘둘싸서 선물이라고 들고온 아이...

 

아이, 아이, 아이들...

그래. 이 글을 읽으면서 끝도 없이 많은 아이들이 계속 떠올라서,

글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던 건가보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내가 탁샘처럼 다정하고 자상하게 친절하고 지혜롭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이

스스로 몹시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내 마음의 결에 굳은살이 배긴 것 같다.

경력있는 교사랍시고, 수업에 자신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고,

내 맘대로 아이들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작은 신'의 권력을 맘껏 누린 모양.

 

학생부 선생이라고 학교를 뺑뺑이 돌면서

담배 피우는 넘, 돈놀이 하는 넘, 수업 땡땡이 치는 넘, 친구 돈 삥뜯는 넘... 잡아다 패고,

형사처럼 조서 꾸며서 심사해서 처벌하고...

또 무슨 연구학교 한다고 이런저런 연구자료 뒤져서 몇마디 적어놓고는 보고서랍시고 떠들어대고,

별 쓸데 없는 공문서 응대한다고 끙끙거리고 컴퓨터 앞에서 시간보내면서 아이들 자습시킨 교사...

그 부끄러운 시간들이,

잊혀진 줄 알았던 지나간 시간들이,

깨어진 듯, 가느다란 균열 사이로 솔솔 피어올랐던 모양이다.

 

탁샘, 을 읽으면서,

아이들을 부처로 보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고,

여기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일이 아니라면,

교사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는 반성을 한다.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 삼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상장을 못 받는 아이들을 향해 위로를 보내고,

과자를 못 사먹는 아이들에게도 동정의 마음을 내고,

아이들이 자기 의견을 내는 걸 보고 기뻐하고,

자기 의견을 못내는 걸 보고 화가 일어나는...

그런 마음을 배우자.

 

내 마음에 아이들을 가진자와 못가진자, 나은자와 낮은자로 가르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깨닫고,

항상 상하쌍회향(위아래를 모두 보는) 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살며,

내가 안다는 생각을 버리고,

모르고 모르는 사람끼리 같이 헤매며 알아내는 과정은 아름다울 수 있겠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의 미운 말도 이쁘게 들어줄 줄 아는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되기를...

 

아이들은 부드럽고 따뜻한 말에 반응해서 움직여야 하고, '감동'으로 움직여야 함을 잊지 말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아무 것도 아닌 한쪽으로 잡아끄는 것 또한 폭력임을 잊지 말고,

경험없는 아이들은 뭘 봐도 놀라운 눈빛으로 반짝이듯, 자꾸자꾸 놀라고 허둥대며 오늘 하루를 만나길 바란다.

 

싸우려 해도 싸움이 되지 않는 아이, 싸움없는 세상, 바보 이반의 나라, 평화... 이런 것을 소중히 여기고,

아이들은 사탕 하나에도 감동할 줄 아는 존재임을 늘 잊지 말고,

어른이 지어 올리는 백 개의 탑은 추상임을, 지 혼자 알아냈다고 뻐기는 하나가 초라해도 진짜임을 알게 하고,

내게 필요없는 걸 주는 건 죄이며, 내게 필요한 걸 줘야 진짜 주는 것임을 배우게 되기를...

 

이 책의 리뷰는 도무지 평가를 내리는 글로 지을 수 없어서,

몇 줄 참회의 글로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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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0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종환의 교육 이야기 -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 개정판
도종환 지음 / 사계절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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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보려고 애를 써도,

교육의 효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

그걸 도종환 선생은 시지프스가 바위를 밀어올리는 일을 하는 거나 같다고 말한다.

시지프스.

매일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밀어올림은 운명이다.

피할 수 없다.

 

아이가 어머니에게 '예쁜 꽃이 피었어요.'하고 말을 걸면,

정작 어머니쪽은 '제게 무슨 꽃인지 아니? 00꽃이야. 잊어버리면 안돼.'하며

감동은 제쳐 놓고 우선 지식을 주입한다.

우리 아이에게 예쁜 꽃의 이름이 중요한지,

아니면 그 꽃을 통해 아름다운 세계관을 갖는 것이 중요한지 생각해볼 문제.(시나가와 다카노, 일본 아동심리학자)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어른들은 지식을 사랑한다. 자기 스스로는 무지하기 짝이 없으면서.

 

당신이 비를 내리는 일처럼

꽃밭에 물을 주는 마음을 일러 주시고

아이들의 이름을 꽃처럼 가꾸는 기쁨을

남몰래 키워 가는 비밀 하나를

끝내 지키도록 해 주소서(김시천, 시인)

 

아이를 바라볼 때,

꽃 한 송이를 가꾸는 심정으로,

그렇게 가르치면 아이들이 덜 엇나갈까?

 

철학자는 삼단 논법으로 말하고,

화가는 형상과 화폭으로 말하며,

정치경제학자는 통계 수치를 이용하여 독자의 이성에 다가가지만,

시인은 생생하고 선명한 현실 묘사를 이용하여 독자의 마음에 다가간다.(벨린스키, 러시아 문예비평가)

 

사람마다 성격과 방향성이 다르다.

아이들을 바라볼 때, 어른들을 판단할 때,

자기 중심적으로 충고하고, 탐색하고, 해석하고, 판단하지 말 노릇이랬다.

 

단과 대학별로 학생들의 만족도를 조사하면,

신학대학, 음악대학, 교육대학 순이고,

법학대학, 사회대학, 이과대학, 상경대학은 상대적으로 낮다.

 

이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 하고 싶어하는 일과,

부모나 학교에서 강요하는 것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는 결과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서울대를 하나라도 더 가게 하는 일이 얼마나 무식한 일인지, 이 결과는 보여준다.

하버드 대에 진학하려던 학생이 떨어졌다.

의대에 가겠다는 아이가 헌혈 한 번 하지 않은 것이 이유였다고 한다.

소신과 신념을 가지고 대학에 진학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 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 데 관심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다이애나 루먼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전문

 

인간이 용서받아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

무한한 가능성 자체인 아이들은 끊임없이 용서받아야 한다.

아이들이 순연한 본래의 마음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아무 조건없이 용서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 위에 군림하거나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길로 홀로 갈 수 있을 때까지 안내하고 뒷바라지하러 와 있는 까닭이다. (203)

 

교사는 어차피 '거대한 절망' 앞에 선 시지프스와 같은 처지다.

그러나, 교사들이 불안해할 때 아이들은 더 두려움에 떨 것이다.

교사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한번이라도 더 웃고, 행복해할 수 있도록,

교사들은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듣고 읽고 웃어야 한다.

아기를 뱃속에 넣고 사는 임부의 처지와

매일 아이들과 만나며 사는 교사는 같은 처지임을

아이들의 찡그린 얼굴을 만들면서 나는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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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12-03-26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2 아들의 성적을 걱정하고, 초2 딸의 반항과 조급증에 짜증내고 절망한 아침,
글샘님의 글에 있는 '교사'가 '부모'로 보여... 읽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부모는 어차피 거대한 절망 앞에 선 시지프스와 같은 처지다.
그러나, 부모가 불안해할 때 아이들은 더 두려움에 떨 것이다.
부모를 보면서 아이들이 한 번이라도 더 웃고, 행복해할 수 있도록,
부모는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듣고 읽고 웃어야 한다... 책상 앞에 붙여두고 아침저녁으로 읽어야겠습니다.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듣고, 읽고, 웃는 한 주 되시길...

글샘 2012-03-26 10:37   좋아요 0 | URL
애들 금세 자랍니다.
불안해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지난 시절... 아이한테 불안해서 못할 소리 많이 했죠.
이제 대학생 되고 나니... 다 부질없는 짓이었더라구요. ㅎㅎㅎ
책세상님도 좋은 것 많이 보고, 듣고, 읽고 웃으시길...
 
변방의 사색 - 시골교사 이계삼의 교실과 세상이야기
이계삼 지음 / 꾸리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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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밀양...

그 도시의 숨은 빛, 이계삼 선생.

그가 우리교육, 한겨레, 프레시안 등의 지면에 발표했던 글을 모은 책이다.

 

우리에게 고향이 있는가

육신의 탯줄을 도회에 묻었을지언정,

우리가 뿌리내릴 정신의 고향은 있는가

가치로운 것이라면 뿌리부터 뽑고 보는

이 기막힌 시대에

몸 둘 곳 하나 없는 이 가여운 시대에

마음의 정처를 찾아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나는 거듭 묻는다

다들, 고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과연 다들, 고향이 있는 사람들일까?

녹색평론에서 도정일 선생이 <시장 전체주의>라는 말을 썼다고 한다.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도 아니고 어떤 주의도 아닌,

시장 전체주의라는 것.

오로지 시장의 무자비한 경쟁 원리만이 하나의 이즘이 되어 뿌리박혀 있다는 것.

 

두려운 일이다.

한국 사회처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곳에서,

국민들은 각개 약진을 위하여,

제 새끼 제가 알아서 먹여 살리는 시스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학교는 날이 갈수록 괴물로 변해가고 있다.

 

이계삼 선생은, 그 지점에 서서 다소 낭만적이지만 구체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다.

전교조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그 조직의 무기력함, 분열상에 좌절하고,

촛불집회, 용산 참사, 지율스님의 천성산 단식, 황새울과 새만금 등의 모든 사회,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활동한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려는 아이들이 줄어들지만,

그래도 고향이 힘이 될 것임을 믿으려 애쓰는 선생님.

그렇지만 소도시의 한계 역시 시장 전체주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를 위하여 상담을 하면서도, 180도 달라질 수 있는 학과 선택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힘든 진로 지도,

희망과 기대를 배신당하며, 학교 현장에서 '교육 불가능'을 절감해야 하는 엉망진창 교육 정책,

갈수록 질곡으로 쏠려가는, 아이들을 왜곡된 자기장 속으로 쏟아붓는 학교라는 희한한 공간.

 

그 학교로 등교하는 아이들의 어깨가 활짝 펴졌을 리가 없다.

 

일본의 정치사상가 후지타 쇼조가 오늘날의 일본인들을 두고 'human-nature 인간성'에서 'nature'는 사라지고 'human'만 남았다고 했다고 한다. (현대 일본의 정신)

 

현대인의 인간성에서 본성의 영역, 이를테면 자연에 대한 천부의 감각이나 상식이라는 이성적 현실 감각,

혹은 양심이라는 도덕적 감각, 그것도 아니면 그저 분노와 같은 자연스러운 야생의 정서가 거세된 것이다.

그리고 멍청한 '인간'만 남게 된 것.

 

아이들의 얼굴에서 환한 낯을 만나는 날은 흔하지 않다.

소풍날 아침에 지하철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낯이나, 체육대회날 축구 경기를 앞둔 머시매의 낯 정도,

졸업식날 속 시원해하는 아이들의 낯 정도에서나 환한 얼굴을 만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환한 낯을 돌려주는,

인간의 본성 - 인간성을 살려주는 교육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닥치고, 정치, 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가 많은 것을 이룰 수는 없어도, 한 순간에 아이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넣기는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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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3-18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광주에서 엄기호, 이계삼 선생님 강연회 때 뵜는데 좀 수줍어하는 선생님이던데 활동은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그때 '교육불가능의 시대' 구입해서 골라봤어요.

글샘 2012-03-18 21:57   좋아요 0 | URL
저는 글로만 만나고... 사람은 몰라요. ^^
선생님들이 원래 좀 수줍어 하죠. ㅎㅎ 아이들 앞에서나 왕처럼 군림하지.
참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입니다.
 
학교의 풍경 - 삐딱한 교사 조영선의 솔직한 학교 이야기
조영선 지음 / 교양인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어 보니 나의 지난 23년간 교단 생활이 동영상처럼 돌려감기가 된다.

 

1989년 봄,

조회대에 소개된 나는 '여러분하고 친하게 지냈으면 합니다.' 한마디로 부임인사를 했고,

정말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랬는데, 그 학교에서 학생부를 하면서 아이들을 많이 때리고 혼내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여전히 친했다.

전교조의 광풍이 불 때, 군대를 핑계로 도망을 갔고,

부산으로 와서도 학생부 선생을 해야하는 나이였고, 나는 부지런한 학생부 선생이었다.

 

교장,교감은 나의 수업이나 시험문제를 간혹 문제삼기도 했다.

예를 들면, 교과서에 버젓이 수록된 '가난한 사랑 노래' 같은 것도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곤 했고,

촛불 집회 때면, 교감이 엄청 걱정해주는 척 하면서, 수업 시간에 '썩은 소고기' 운운은 자제하라고...

이 동네가 한날당 텃밭이 아니냐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썩을...

 

부장자리가 승진에 도움이 되던 시절,

나는 경력이 있음에도 부장을 하지 못했다.

학생이 급격히 줄면서, 신규 교사를 채용하지 않는 학교 구조에서,

부장을 누구도 하지 않으려고 하던 시기부터,

나는 학생부장, 학년부장, 그리고 이명박표 자율형공립고 부장까지 충성을 다했다.

 

과연 나는 누구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던가, 되돌아보면... 물음표 없이 살았던 과거는 모두 '괴물'의 삶이었다.

 

이 책은, 읽다 보니 나와 같은 과 후배인 듯한 교사가

풋내기 시절부터 좌충우돌 열심히 살면서 생각한 것들을 기록한 것을 묶은 책이다.

물론 요즘엔 자신의 생각을 기록해둘 공간이 쉽게 생기지만,

나는 일기를 쓰기보다는 술자리를 찾아다니는 데 젊음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신규 교사때는 조선생과 비슷한 시행착오와 제도적 억압에 저항하는 일을 겪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괴물과 싸우다 보니 어느덧 괴물의 앞잡이가 되어있는 느낌이다.

 

20세기 초반 미국에 이주한 유럽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빵과 장미'가 거론되었다고 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는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들은 모두 '빵'을 위한 학교다.

'장미'에는 누구도 흥미가 없다.

고교생 신입생 수련회에서도 계속 '대학'과 '스펙'에 대한 이야기만 언급되었다.

그나마 우리학교는 저녁에 동문 선배들이 와서,

공부보다 더 중요한 '삶'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떠들었다.

 

희망과 절망을 생각했다.

 

절망으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은 '괴물'과 다르지 않다.

괴물의 사전적 정의는 '괴상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아이들이 실내화를 신는지 지켜보는 교사

운동장에 실내화를 신지 않는지 순찰하고, 흡연자를 잡아내는 교사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길다(이건 아무래도 집합이 되지 못한다.)고 벌점 부과하고,

지각(이것도 물리적 집합이 되기 어렵다.)과 무단조퇴를 엄벌하는 교사

아이들이 야간 타율 학습에 동원되면, 복도를 몽둥이 들고 오락가락하는 간수같은 교사...

심지어, 고3 담임은... 쉬는 토욜에 쉬지 않고 순시하는 교사가 되어야 하는... 괴물.

 

아이들과 자유롭게 '수업'만 하고...(우리 학교 수업은, 정규 수업 + 보충수업 + 야간 특강 + 동아리 활동 지도까지 졸라 많다.)

아이들의 진로에 대한 '조언과 상담'을 해 주고...

아이들의 동아리 활동에 같이 참여하여 인솔해 주고...

부모와 교사들이 머리 맞대고 아이들의 <성장>을 위하여 노력하는 학교,는 없다.

 

부모들의 요구도 오로지 '욕망'에 대한 것이고,

교사들 역시 '욕망의 실현'을 꿈의 다른 이름이라고 몰아 붙이며,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욕구 불만'인 자신을 '문제아'로 치부하고 만다.

 

교육이 없는 학교.

거기서 하나의 억압기제로 작용할 뿐인 나를 돌아보게 만든 책이다.

조선생도 그래서 아이들에게 토론을 많이 시켜본 모양이다.

나도 아이들에게 토론을 시켜보기도 했지만, 자치 능력을 길러주기엔 세상이 너무 타율적이고 억압적이다.

 

촛불집회까지를 달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교육부의 억압적 일제고사에 저항하면서,

물구나무 서기한 세상을 바로 서서 보는 일 역시 멀미나는 일이리라.

 

조선생도 '디베이트' 기법을 좀 배웠으면 좋겠다.

아니, 이미 배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디베이트' 가 전혀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하나의 방법을 배우는 의미는 분명할 듯 싶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디베이트'할 수 있는 회의 풍토, 분위기가 중요한 것이다.

그 분위기는 조선생처럼 '투쟁'하는 이들 덕택에 얻어가는 것이고,

'생각'하는 사람들 덕에 열려가는 것이리라.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어둡고 음습하여 괴물들이 서식하기 딱 좋은 공간이다.

 

'인권'을 이야기하면 괴물로 여기는 현실에서,

아이들을 열심히 지도하는 일이 방향을 잃는다면, 죄악이 될 수 있다.

'눈 먼 사랑'이 '스토킹'이 되는 일...

바로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사건들의 비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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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2-02-22 00:56   좋아요 0 | URL
너무 욕심을 과하게 가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학교 구조가 심하게 비틀려서... 신규는 없고, 경력자만 가득하잖아요...
천천히 발전하길 바라야죠.

순오기 2012-02-23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9년 봄에 교사가 되셨군요, 나는 엄마가 되었는데...^^
삐딱한 선생님과 삐딱한 학부모가 연대해야 학교도 바뀌어 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글샘 2012-02-28 02:24   좋아요 0 | URL
저는 삐닥하지 않아요. ㅎㅎ
얼마나 사랑으로 가득한 교사라구요.
교장 교감이나 관료들에게는 영 맘에 안 드는 삐딱한 교사인 것 같긴 합니다만,
학교에서 젤 중요한 건 애들이니까는...
안그래도 저도 올해 학부모 연대사업을 뭘 해볼까 궁리중입니다.

풀꽃선생 2013-09-13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교육공동체 벗에 초대합니다. http://cafe.daum.net/communeb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