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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 ㅣ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06년 4월
평점 :
1권에서도 많은 작곡가, 연주가, 지휘자들이 등장하지만, 2권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울리는 정도가 아니라 주먹으로 쾅쾅 친다. 책을 다 읽고, 뒷부분의 음반 소개를 복사해 둔 뒤에도 먹먹한 가슴을 주체하기가 힘들다.
클래식 코리아 사이트에서 클라라 하스킬의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B flat Major D.960 를 틀어 두고 한참 듣고 있으니 먹먹한 가슴을 계속 통통 두들기면서 조금 잦아들게 만든다.
찰리 채플린이 처칠, 아인슈타인과 함께 천재라고 일컬었다던 클라라 하스킬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음이 저리다. 다발성 경화증이 어떤 병인지는 모르지만, 천재 피아니스트에게 근육이 굳어지는 병을 주신 하느님은 인간에게 어떤 진리도 없음을 가르치시는 것일까? 인생이라고 인간이 이름붙일 그것조차 없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을 지휘하기 위해 사업을 하는 틈틈이 음악 공부를 시작한 카플란의 이야기는 나를 끝없이 부끄럽게 했다. 아, 그는 목표가 있는 삶을 살았구나. 나는 왜 살고 있는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이 물음은 음악과 함께 이 가을에 내게 또 찾아왔다. 목표가 있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그저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을 째각거리는 시계 부속품처럼 살고 있는 나를 돌아보라고 내게 보내주신 글로 읽었다.
성남 아트센터에서 역시 말러의 <부활>을 연주하기 전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두 가지 부끄러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가 남들 앞에서 지휘를 했을 때 당할 부끄러움이요, 나머지 하나는 제가 지휘를 하지 않았을 때 두고두고 제 자신이 후회하게 될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저는 전자를 택했을 뿐입니다..." 과연 나는 무엇을 두고두고 부끄러워 할 것인가...
쇼팽을 즐겨 연주하던 늘 단정한 신사 리파티가 마지막 <화려한 왈츠>를 앞두고 거친 숨을 헐떡이면서 연주했다는 <주 예수는 나의 기쁨>을 읽을 때는, 인간은 운명에 순종하고 죽음을 맞아들일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과 막연한 환상의 세상이 뿌옇게 떠올랐다.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골라 연주했던 레온 플라이셔 이야기나, 백혈병을 이겨 내고 재기에 성공한 호세 카레라스 이야기는 이 책을 <인간 극장>처럼 감동스런 책으로 만들었다.
월드컵 중간에 올해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행사로 가득하단 뉴스를 들은 것도 같은데, 얄팍한 상술로 예술혼도 물들어버리는 세상이 야속하다. 울밑에선 봉선화를 연상시키는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2악장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고, 지은이 말마따나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듣는 기분도 황홀하다.
내 삶에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이 뭔지... 그런 것이 있어야 하는 건지... 오늘 하루를 왜 살아 가야 하는 것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순교자의 발걸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클라라 하스킬의 연주는 비장하게 울린다.
그가 비록 아라비안 나이트의 '천일 야화'를 '천날밤의 이야기'라고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가 들려준 아름다운 음악들과 삶과 죽음과 삶의 굴레 이야기에 묻혀 용서할 마음이 절로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