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수는 광대다 - 얼음 같은 세상, 마음을 녹이는 현장예술가 최병수
박기범 외 지음, 노순택 외 사진 / 현실문화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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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단단하기로 차돌멩이 같은 것이 있으랴.
강가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것 같지만, 그 둥글고 단단함은 딱 최병수 그 만큼이다.

최병수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
그러다가 아니 웃어야 한다.
그래서 웃는다 웃다가 울다가...

권정생 선생님께서 최병수를 보고 쓰신 글이다.
요즘처럼 학력 위조니 권력에 빌붙은 로비니 하는 세상에
최병수처럼 거꾸로 사는 사람도 드물다.

학력도 없고, 온갖 잡일을 하던 사람이 화가가 되고, 조각가가 되고, 환경 운동가가 되고, 통일 일꾼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아무 것도 되지 않았다. 차돌멩이일 뿐.

꿩먹고 알먹으면, 멸종!이란 퍼포먼스,
환경 회의장에 나타난 녹아버리는 얼음 펭귄,
솟대들이 불쑥 솟아난 새만금과 평택 들판, 어메리카 속의 코리아... 식민지들...

그의 설치미술은 예술가연 하는 자들이 쓰레기를 모아두고 헛소리하는 것과는 유가 다르다.
아마도 청와대에서 힘꽤나 얻던 신모 교수가 최병수를 보았다면, 픽, 웃었을는지도 모른다.
병~쉰, 하면서...

자본의 5.18 FTA

운동장은 학원 지랄탄에 텅텅비고
가정은 조기유학탄에 이산가족이 되고
수능화학탄에 부품 인간이 생산되고
거리는 광고 총격에 욕망과 탐욕이 질질 철철 넘쳐나고
세치 혀와 미사일 집값에 부상자가 속출하고
인터넷 중독에 사고는 뒤틀려 마비되고
무분별한 성형 칼에 살과 뼈만 벌벌 떨고
텅 빈 링거 병처럼 거리를 뒹굴던 몸은 버려진 취급주의 박스 속에서 신음하며
결코 원하지 않던 결과를 보고 있다.

IMF 도시에서,
거대한 아우슈비츠에서

그는 시인이고 뜨거운 가슴의 예술가다.
한국 사회의 고름 덩어리를 그만큼 날카로이 해부하고 뛰어다니는 예술가를 더 만나기 어렵다.

도서관 사서 샘이 이 책을 읽고 너무 감동적이어서 새로 한 권을 사셨단다.

솟대로 기어오르는 어부들의 어선과, 농부들의 경운기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들처럼 이 땅의 풀뿌리같은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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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를 캐스팅하다
진동선 지음 / 효형출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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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니, 영화 속에서 사진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듯 하다.

사진은 삶의 한 장면을 'pause' 키를 누른 뒤, 'copy'하여 인화지에 갈무리해둔 느낌이다.
그 시간은 이미 지나간 한 순간이지만, 사진이어서 오래 남는다.
영화도 숱하게 많은 사진들을 연속하여 돌리는 필름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내 눈이 사물을 인지하는 상황에서, 눈을 깜박여도 상이 단속적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은, 내 대뇌는 상을 분절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리라.

사진은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부재를 증거'하기도 한다.(부재는 증명한다고 하니 좀 어색해서 말을 바꿨다. 없는 걸 증명하다니...)
상대가 보고 싶으면 사진을 넣고 다니고, 벽에 사진을 걸어 두고... 한다.
영안실 영정 사진을 보고 있으면 슬프다. 그 사진들은 부재임을 증거하기 때문이리라.
요즘은 뽀샵질이 심해져 증명 사진이 그 사람을 증명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 책을 읽다가 '미장센'이란 용어를 만났다.(전부터 찾아봐야지 하던 단어였는데 이제서야 찾아 본다.)

When applied to the cinema, mise en scène refers to everything that appears before the camera and its arrangement – sets, props, actors, costumes, and lighting. Mise en scène also includes the positioning and movement of actors on the set, which is called blocking.

미장센(Mise-en-scene)은 원래 '무대장치, 무대에 올린다'란 뜻의 프랑스어로 연극에서 쓰이는 용어였으나 영화로 옮겨오면서 '쇼트의 프레이밍'과 관련된 영화 제작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되었다. 이런 생소한 말을 영화에서 굳이 원어 그대로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영화에 있어서 미장센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뉘앙스가 연극에서처럼 그저 세트 장치만으로 불려질 수 없는 더 복합적인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진동선이란 작가는 처음 만나는데, 영화와 사진을 잘 이해하고 글을 쓰고 있어서 책이 재미있다.
영화를 본 것도 생생하게 살아나게 하고, 보지 못한 영화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많은 책들은 내가 보지 못한 영화는 읽을 재미를 못 느끼게 쓰는 책들인데, 작가의 능력이 뛰어난 거겠지.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에서부터 비롯된 사진에의 관심은
너는 내 운명, 파이란, 8월의 크리스마스, 타임 투 리브 같은 죽음의 스틸...
아이엔지, 조제, 봄날은 간다, 메멘토, 올드보이, 텔미섬딩 등의 기억의 사진 같은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풀어간다.

영화와 사진을 다 좋아라 하는 이라면 추천해 주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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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1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사진 다 좋아하는데요...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란 책만 있는줄 알았어요~ㅎㅎ

글샘 2007-09-11 09:20   좋아요 0 | URL
이책, 재밌습니다. 함 읽어 보셈~~

책읽기는즐거움 2007-09-10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좋은 책 소개도 받고요^^ㅋ

글샘 2007-09-11 09:21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은 맞고요, 좋은 글은 아닌 듯~~^^

프레이야 2007-09-1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무지 흥미롭게 잘 읽었어요. 철학, 영화를~~, 다음으로요.
이 책을 보고 영화 '클로저'를 골라 봤죠. 영화속 사진의 의미가 새로이 다가오더군요.
미장센이란 단어는 정의는 알겠지만 제게 아직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는데, 현장감각이
없어서일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글샘 2007-09-11 15:33   좋아요 0 | URL
그쵸? 재밌죠? 혜경님이야 영화도 좋아하시고 사진하시는 분도 가까이 있으니 더 재미있게 읽으셨겠네요.
미장센이란 스프레이도 있던데, 자기를 연출한다고 보면 꽤 잘 붙인 이름 같죠. 그래도 연출이라고 하기엔 쓰이는 폭이 넓어서... 외래어들은 입에 착 붙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이물감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혼(魂) - 김수남 사진굿
김수남 사진, 고운기.양진.백지순 글과 사진 정리 / 현암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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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권좌를 틀어쥐고 정통성도 없는 주제에 한 일은, '전통과의 단절'이었다.
음력을 쓰지 못하게 하고(이런 건 정말 친일파같은 짓거리다.) 설과 추석을 없애버렸으며,
각종 무속을 금지했고, 새마을 운동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뒤집었다.

그 와중에 전통 의술은 잘날 것도 없는 양의가 자리를 차지하면서 불법 의료 행위로 규정되어 맥이 끊겼고, 무당은 '미신'을 믿는 또라이들이 되고 말았다.

정통성도 없는 주제에 그 다음 권좌를 틀어쥔 전두환이가 한 일은, '전통의 계승'이었고.
국풍이라는 둥 난리 부르스를 떨기도 했지.

민속사에서 김수남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 사람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찍으면 남산 밑을 들락거리던 시절이었는데, 무당을 찍는 사진은 뭐 별로 정치성은 없어보였는지 모른다. 그래도 열화당에서 '한국의 굿'을 그것도 20권으로 발행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덕이 크다. 아니, 그가 한번 쓰러졌던 영향도 클 것 같다.

술꾼이어서 무당들과도 잘 어울리고, 무속을 잘 이해하며 눈물을 천둥천둥 흘리던 사람.
그래서 그가 사진기를 들이밀어도 밀쳐내지 않는다던 사람.

이런 사람이 세상에는 많이 필요한데...
그는 영어 공부를 잘 하지도 못했고, 컴퓨터로 사진을 보정할 줄도 몰랐는데...

세상에는 영어 잘 하는 사람만 필요한지, 사람 사는 것의 중요함은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다.
생각한다고 남산 아래로 보내던 시절도 아닌데...

다만, 이 책이 사진에 인색한 점은 아쉬운 마음 크다.
김수남을 회고하는 책인데... 사진이 인쇄되지 않은 페이지 조차도 두꺼운 종이를 써서 책이 묵직하게 한 점을 김수남은 싫어할 듯 싶다. 덕택에 책값은 35,000원이나 나가게 되었지만, 책값에 비겨 내용이 가볍다. 아쉽다. 김수남의 사진들을 실컷 보려 빌려온 책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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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광, 그림을 읽다 - 클래식 음반에 숨은 명화 이야기
이장현 지음 / 세미콜론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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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반에 숨은 명화 이야기

클래식 음반의 표지화로는 명화들이 많이 쓰인다.

이 책의 저자는 그 점에 착안하여, 클래식 음반에 쓰인 명화들과 음악의 연관성을 짚어내려 음악의 이야기와 그림의 이야기들을 끌어낸다.

읽으면서 저자의 내공이 그리 깊지 않음을 느꼈다.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긴 하지만, 그림을 깊숙이 읽어내기엔 역부족인 듯.

그리고, 큐레이터가 아닌 한계는 책에서 가장 중요한 도판을 읽어주지 못한다.

그림들을 섬세하게 읽어주는 오주석의 그림책처럼 초보자들도 감칠맛나는 독서에 빠질 수 있는 책을 쓰려면, 좀더 공력을 길러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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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8-27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요즘 클래식으로 달려가시는군요.음악 에세이 중에서 딱 마음에 드는 책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글샘 2007-08-28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풍월당만한 책도 찾기 힘들군요. ^^
김학민 책도 좋았는데요.
이제 휴가 다 지났네요^^ 힘내서 출근 하시길...
 
클래식으로 읽는 인생 - 삶과 예술의 키워드, 그 12가지 이야기
김문경 지음 / 밀물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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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든 뭐든, 어떤 범주든 인간의 삶과 무관한 것은 없으리라.

이 책을 쓴 이는 클래식 음악 속의 인간상의 삶들을 주제별로 묶어 보려고 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 그 슬픈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금지된 사랑, 소설 속의 클래식, 팜므파탈, 신화, 복수, 파우스트, 죽음, 전쟁, 영웅, 술과 백조의 노래...

이런 열 두 꼭지를 다양한 클래식 음악들을 거론하면서 엮어 나간다.

설명을 읽으면서, 간혹 풍월당 홈페이지에서 찾아 듣기도 하곤 했는데,
김학민의 책처럼 독자를 휘어잡는 매력이 없는 것이 흠이기도 하다.

사랑에 빠진 자, 모든 유행가가 제 노래로 들리고,
이별을 겪은 자, 또 숱한 유행가가 제 처지로 번역되듯,
음악 속의 인생들 이야기가 신화를 번역한 것이든, 허구를 구성한 것이든...
내 삶과 한 발짝 떨어졌을 뿐, 다른 인생인 것도 아니다.

작가처럼 음악에 푹 빠져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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