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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를 캐스팅하다
진동선 지음 / 효형출판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다 보니, 영화 속에서 사진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듯 하다.
사진은 삶의 한 장면을 'pause' 키를 누른 뒤, 'copy'하여 인화지에 갈무리해둔 느낌이다.
그 시간은 이미 지나간 한 순간이지만, 사진이어서 오래 남는다.
영화도 숱하게 많은 사진들을 연속하여 돌리는 필름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내 눈이 사물을 인지하는 상황에서, 눈을 깜박여도 상이 단속적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은, 내 대뇌는 상을 분절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리라.
사진은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부재를 증거'하기도 한다.(부재는 증명한다고 하니 좀 어색해서 말을 바꿨다. 없는 걸 증명하다니...)
상대가 보고 싶으면 사진을 넣고 다니고, 벽에 사진을 걸어 두고... 한다.
영안실 영정 사진을 보고 있으면 슬프다. 그 사진들은 부재임을 증거하기 때문이리라.
요즘은 뽀샵질이 심해져 증명 사진이 그 사람을 증명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 책을 읽다가 '미장센'이란 용어를 만났다.(전부터 찾아봐야지 하던 단어였는데 이제서야 찾아 본다.)
When applied to the cinema, mise en scène refers to everything that appears before the camera and its arrangement – sets, props, actors, costumes, and lighting. Mise en scène also includes the positioning and movement of actors on the set, which is called blocking.
미장센(Mise-en-scene)은 원래 '무대장치, 무대에 올린다'란 뜻의 프랑스어로 연극에서 쓰이는 용어였으나 영화로 옮겨오면서 '쇼트의 프레이밍'과 관련된 영화 제작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되었다. 이런 생소한 말을 영화에서 굳이 원어 그대로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영화에 있어서 미장센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뉘앙스가 연극에서처럼 그저 세트 장치만으로 불려질 수 없는 더 복합적인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진동선이란 작가는 처음 만나는데, 영화와 사진을 잘 이해하고 글을 쓰고 있어서 책이 재미있다.
영화를 본 것도 생생하게 살아나게 하고, 보지 못한 영화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많은 책들은 내가 보지 못한 영화는 읽을 재미를 못 느끼게 쓰는 책들인데, 작가의 능력이 뛰어난 거겠지.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에서부터 비롯된 사진에의 관심은
너는 내 운명, 파이란, 8월의 크리스마스, 타임 투 리브 같은 죽음의 스틸...
아이엔지, 조제, 봄날은 간다, 메멘토, 올드보이, 텔미섬딩 등의 기억의 사진 같은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풀어간다.
영화와 사진을 다 좋아라 하는 이라면 추천해 주고 싶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