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머릿속의 '라틴'은 멕시코인들의 큰 모자, 선인장, 삼바... 마야와 잉카 문명... 뭐, 그 정도다.

간혹 쿠바를 여행한 기행문들도 읽곤 했지만, 아직도 내겐 너무도 먼 대륙이다.

김병종이 두루 누빈 라틴아메리카를 그림과 함께 읽게 되었다.

가난이 넘쳐서 달걀 서른 개가 두 달치 월급인 사람들. 120그램짜리 비누 하나를 사고 나면 그 월급의 반이 줄어드는 사람들. 불꺼진 아바나에는 그래도 음악, 여유, 미소, 춤이 가득하다. 열적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거기 있다.

촛불을 들면서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도 따스하게 피어오르는 미소가 생겼다. 이제 불씨가 지펴졌을 뿐이지만... 그 전엔 음악도 춤도 '자본'의 지배하에서 '추악한' 곳에서만 존재했다.

개인의 밀실에서 썩어빠진 나라...라고 '최인훈의 <광장>'에서 비판했던 남한의 치부가 썩을대로 썩어서 지금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광장'이 정답은 아니지만, 그래서 우린 '광장'에서 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임기없는 대통령, 게바라는 쿠바에서 '사랑의 공기'로 통한단다.
그가 누구든, 어떤 의식의 소유자든... 그걸 떠나서, 사랑의 공기가 있는 사람들... 부럽다.
이상 사회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는 과거가 아닌 현재였다.

아마도... 할아버지들이 열정적인 눈빛으로 무대를 누빌 수 있고, 음악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그 분들이 혁명의 시대에 동지로서 살아왔다는 '동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금 386들이 촛불로 서로를 위로하듯이...

헤밍웨이가 동경하던 마초의 열기와 떠들썩함, 생명력은 한조각 우울도 자리할 틈 없어 보인다.

늙은이여, 지금은 가져오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지금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지. 파괴될 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인간상. ... 나이는 들어가고, 삶은 늘어지고 시간은 빨리 흐르는데... 생각할 부분이 있는 글발이다.

마야문명의 아우라를 벽으로 말하게 한 디에고 리베라의 삶도 짜릿한 감동이다.

혁명이 사라진 땅은 죽은 땅이다. 우리가 사는 자본은 부패하고 문명은 낡고 지루하다. 그 죽음의 땅에서는 예술은 장식으로 전락한다. ...(9) 이런 글을 읽다가 한 달을 넘겼는데, 지금 나는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 조선과 한나라당과 뉴라이트와 60년전의 친일파가 한꺼번에 위기에 몰리게 된 혁명의 시대에 나는 아름다운 촛불을 들고 살고 있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엔 영원한 사랑, 레콜레타의 에비타가 있다. 돈 크라이 포미 알젠티너... 진실로 지상의 삶은 화려할 수록 더욱 무상한 것인지...

어느 날, 대주교가 기도하러 텅빈 성당에 갔다. 맨 앞자리에 앉아 습관대로 손을 모으고 하느님 아버지, 하고 불렀다. 왜 그러느냐 내가 여기있다. 하느님이 대답했다. 대주교는 심장마비로 숨졌다. ㅋㅋ 불경스런 석 줄짜리 소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코르코바도 예수상을 그림으로나마 보면서, 시국 미사를 감싸안아주신 주님께 잠시나마 감사를 드렸다.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가 나를 찾아왔어...
나는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하여간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어.
밤의 가지에서,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이 시를 읽으면 자연스레 김종삼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가 떠오른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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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의 펜화기행 - 천 년의 문화를 펜 끝에 담다
김영택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에서 언어영역을 가르치다보면 부작용으로 잡다한 지식을 엄청 주워 듣게 된다.
특히 비문학 지문에서는 문학 외에도 예술, 과학, 기술 등의 용어들과 무제한 접촉하게 되는데...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한 글들도 상당히 많이 읽을 수 있다.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이라면 비대칭의 대칭을 들 수 있고,
무위의 아름다움, 무아의 미를 찾을 수 있단다.
억지로 지어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그 아름다운 예술품같은 건축을 지은 이들이 어느 구석에도 제 이름 석 자 남기지 않았다는 것.

내가 이 작품을 지었다.고는 외치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짓느냐에 따라 그 쓰임을 가장 명확하게 건축으로서 증명해 보이는 건축미를 조선 건축에서 본다.

글쓴이와 그린이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도 맛깔나게 잘 쓴다.

이 책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이라면, 그 멋진 그림을 좀 큰 도록으로 실어주지 않고, 책의 가운뎃금에 맞물리도록 수록해서 감상하는 이가 책을 억지로 구겨서 펼쳐야 겨우 전체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 두었다는 것이다. 좀더 친절함이 필요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수십만번의 펜의 흔적이 이룬 명작들에 콱! 적힌 작가의 이름이 조금 보기 싫기도 하다. 한국의 건축미가 소박하고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진 그것이라고 극구 칭찬하던 이가 말이다. 서명도 좀더 자연스레 했더라면...

양산 팔경의 강선대, 함양 화림동의 거연정과 농월정, 거창 위천의 요수정, 봉화의 청암정, 강릉의 선교장 등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인데... 마음 속에만 담아 두었던 함양의 농월정이 방화로 소실되었다 하니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소쇄원을 제대로 보려면 장마철에 보는 것이 제일 좋다...는 구절을 만나고 혼자 빙긋이 웃었다.
몇 해 전, 교육과정 강연에 나설 일이 있었는데, 시간을 미리 내서 소쇄원을 들렀더랬는데,
그날 하필이면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서 운전하기엔 고생했지만,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소쇄원을 독차지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멋진 바위와 물과 소나무의 삼합을 둘러싼 펜화의 운치를 함빡 맛볼 수 있는 멋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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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8-05-23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앙일보에 연재되는 그 양반의 그림을 눈 크게 뜨고 들여다보곤 했는데
책이 나왔군요. 보고 싶은 책이네요.

글샘 2008-05-24 02:11   좋아요 0 | URL
그림이 참 깊은 맛이 있습니다.
정말 눈 크게 뜨고 오래 보게 되데요... ^^

순오기 2008-05-23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중앙일보 구독할 때 즐겨 봤어요. 지금은 경향신문 구독중!^^

글샘 2008-05-24 02:12   좋아요 0 | URL
아~ 중앙일보~
글도 맛깔나고... 멋진 그림도 매혹적이지요.
 
그림 속에 노닐다 - 오주석 유고집
오주석 지음, 오주석 선생 유고간행위원회 엮음 / 솔출판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한때나마 좋아했던 사람이 욕을 먹는 일은 마음아프다. 내겐 유홍준이 그렇다.
그가 제법 호기롭게 비판했던 세상사에 물들어가는지, 무슨 청장이 되었다는 소식 뒤로는 아름다운 소식보다는 영릉에서 고기 궈먹은 잡설이나 숭례문 복원도 같은 그림으로 추하게 비추이는 모습이 싫었다.

아마도, 아마지만 오주석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정치권의 무슨 청장 같은 거 하지 않으셨을 듯 싶다. 그저 박물관장 같은 자리에서 늘상 그림과 음악과 글씨와 문장들을 놓고 씨름도 하고, 말꼬리도 걸고, 술자리에서 허허실실 토론도 하고 하셨으리라.

나는 학자로서 오주석 선생같은 이를 좋아한다.
유레카의 희열을 아는 학자.
오래 궁리하던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은 언제 올는지 모르는데, 그걸 참을 수 없어 목욕탕에서 뛰쳐나갈 정도로 몰두할 줄 아는 학자적 자세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현실에선 그런 이들을 왕따시키는 것이 이 세상이다.
변양균처럼 권력자의 손에 빌붙는다면 신정아처럼 비주류였던 인물도 어느 순간 주류로 들어설 수 있는 곳이 '문화'란 이름을 붙인 다른 하나의 '권력'이 되어버리는 곳이 그곳인 모양이다.

훨씬 돈되는 자리에 계시다가, 또 일본 문부성 시험에 합격하여 잘 나가는 학자 라인에 줄을 설 뻔도 하시다가... 돈 안되는 국립 박물관 연구관으로, 그러면서도 작품 읽는 즐거움에 시시콜콜 구구절절 재미난 이야기 보따리를 쏟고 살았는데...

가인박명이랬던지...
술과 친구를 좋아하며,
솔직하고 따뜻한 성품에 가족 사랑이 지극했던 사람,
그러나 질병과 죽음 앞에서 무력함을 보이는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
이렇게 그가 좋아하던 김홍도에 대한 '찬'을 그대로 닮아버린 사람.

아파트에 살면서 참 편리하단 생각을 하면서도, 가장 그리운 것은 낙숫물 듣는 행복을 놓치고 산다는 것이다.
그의 글 속에서, 그리고 그의 글에 담긴 풍정에서 낙숫물 듣는 행복을 느끼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살아있는 이들이 여기저기 신문 같은 곳에 실었던 글들을 책으로 묶어내는 일을 나는 참 짜증내는 편이다. 어쩌다 그런 책을 만나면 싫증이 난다. (홍세화, 하종강 씨처럼 안쓰럽게 싸우는 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런 우려를 했는데, 이 책은 오주석 선생이 생전에 <그림 읽어주는 수필>로 기획하고 있던 글들이 절반가량 실려있어 반갑고 또 반갑다.

글들이 좀 짧고 산만한 구석도 없지 않지만, 선생이 퇴고를 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주석 선생처럼 친절하게 그림 읽어주는 사람의 글이니 그만큼 바라는 것도 많았기 때문이리라.

지금쯤 선생은 그림 속에서 김홍도와 술 한잔 기울이며 노닐고 계실는지 모르겠다.
이런 선비같은 사람들을 읽는 일은 행복하고, 또 기꺼운 일이다.
늘상 이 땅에 태어나서 사는 일이 비루하게 여겨지는 일상일지라도, 간혹 장대비 퍼붓는 날 낙숫물 소리 듣는 광경이 떠오르기라도 할라치면, 삶이란 게 또 그리 비루한 것만도 아니란 평안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고인 만큼 다 떨어져야 낙수도 그치겠지?
천상 선비의 대책없는 낙관이고, 꼿꼿하고 강파른 결기가 읽히는 글이다.

그가 '천덕꾸러기 겨레 문화'라고 쓴 것을 읽으면서...
천덕꾸러기란 관형어가 겨레를 지칭하는 것인지,
문화를 수식하는 것인지... 잠시 골똘히 한눈을 팔았다.
아, 이 겨레붙이가 천덕꾸러기였던 것에서 그 문화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것은 어찌 다른 것이겠나마는...

뉴스 말미에 툭하면 '한류'의 경제적 논리라는 싸구려 장사치의 말투를 들으면 성마른 나는 짜증이 와락 밀려오는 것이다. 중국 문화에 비겨 얕잡아 보는 어투로 '한류'란 이름을 붙여 주었더니, 그게 좀 돈된다고 좋아라 떠드는 꼴이란... 오주석 선생이 봤더라면 또 두주불사했을 노릇이다.

반갑던 중에 반가운 책을 반갑게 읽었는데,
204쪽에 <이재 초상화>와 <이재 초상화>를 비교한다고 적어둔 데서, 좀 가벼움이 보인다.
분명 <전 이재 초상>과 <이채 초상>으로 이름 붙여야 할 것인데 말이다.
오주석 선생이 꼼꼼하게 고쳐주지 않아서 그랬다 치고, 선생의 다른 글들이 다시 발굴되어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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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4-28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혹시 이 책이 유고집이다보니 여기저기 글들이 지나치게 산만하지 않을까 싶어 일단 보류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님 글을 읽으니 다음번 주문에 바로 넣어야겠네요. ^^

글샘 2008-04-28 16:01   좋아요 0 | URL
뒤의 1/4쯤은 고인을 회상하는 글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렇지만, 앞의 글들은 중복되는 글들이 아니더군요.
원래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쓰신 수필들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나저나 제가 알라딘에 기여하는 바가 좀 큰 듯... ㅠㅜ

마노아 2008-04-2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주문 넣었는데 수요일에나 도착한대요. 뭔 배송이 이리 느린지...;;;
근데 변양균 옆의 박정아는 혹 '신정아'인가요??

글샘 2008-04-28 22:58   좋아요 0 | URL
네. 신정안데... 한밤중에 몽롱하니 성희롱을 한 듯 싶네요.
마노아님... 너무 슬퍼말고 희망을 갖고 기다리셈. ^^
 
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 - 한국편 2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한국편 2
최석태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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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중섭의 터치는 고흐의 그것과 같고,
아니, 고흐보다 슬픈 심연을 소에게 투영한 그림들이어서,
김소월이나 한용운의 시보다 더 슬픔을 잘 드러낸다.

아이들의 순박함과 천의무봉을 그려낸 그림들도 단순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고...

황소와 게그림, 아이들 그림으로 가득한 이중섭의 그림을 이중섭이란 인물과 함께 잘 그린 책이다.

초등 고학년부터 중학생 정도까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예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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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공미술인가 - 미술, 살 만한 세상을 꿈꾸다, 학고재신서 40
박삼철 지음 / 학고재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누구에게 권해주고 싶으냐면...
일단은 미술하는 사람에게 권해줘야 할거고,
그 다음은 건축이나 설계 등 도시 공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고,
또 인문학이나 공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거시적인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듯 싶다.
사회학적으로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다.

미술은 개인적인 것이었다. 저자는 그걸 소승, 즉 개인이 타는 수레로 여긴다.
자기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예술이 미술이라 보던 것.
이제는 미술은 더이상 개인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을 대승, 곧 연대를 찾는 큰 수레에서 공공미술을 찾는다. 내면적이고 초월적인 소승에서 순수미술의 수신을 보고, 참여하고 연대하는 대승에서 공공미술의 처신을 본단다... 참 멋지게도 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공공미술은 의미를 찾을 게 아니라 '사용'을 찾아야 한단다.
그 공간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뭔가 사용할 수 있게 해야 공공미술이란 것.
그 사용은 꼭 의자처럼 앉는 게 아니더라도, 연대의 공감을 또는 환경 문제처럼 문제 의식을 공감하게 만드는 사용의 확대된 외연을 뜻한다.

유토피아를 지향했던 과학 기술이 디스토피아의 파괴된 현실을 직면하게 할 때, 미술은 다시 거리로 나온다.
그렇지만, '불신 지옥'의 압력처럼 공공미술은 보는 이를 압도하고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미술?인지도 불분명한 거대한 돌덩이, 쇳덩이들은 관객을 무시하고 때로는 억압해 왔다고 본다.

이제는 모든 축제조차도 삶의 숨구멍, 탈출구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장소 마케팅, 관광 산업'의 물신 숭배의 장이 되어버린 현실... 여기서 공공 미술은 사용자를 위하여 축제의 장을 마련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살이'가 밀려나고 '벌이'가 지배적인 구도의 사회에서 생태, 다양성, 건강성을 추구하는 예술의 지향점...

문화를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창작 지원은, 요령있고 인기있는 소수의 엘리트 미술가와 전략가만 살리고 그들이 문화 예술의 전부인 것 같은 착시 현상을 일으켰다.(289)는 비판은 최근 신모씨를 둘러싼 권력형 비호 비리 사건이 공공 미술의 사용자를 어떻게 소외시키는지를 설명해주는 구절이다.

공간은 '채움'의 건축물들,
'비움'의 광장, 또는 공원,
이들을 '연결'하는 길들로 이뤄진다고 한다.
채움도 아름답게, 비움도 넉넉하게, 연결도 매끄럽게 하는 것이 공공을 위한 건축이고 예술가의 마음일진댄, 성냥곽을 채우듯 아파트를 쑤셔박고, 비움은 최소화하고, 연결은 중구난방으로 뚫었다 막았다하는 정책으론 거기 사는 사람을 소외시키는 역할밖에 못할 것이다.

얼마 전 시민도서관에 출장갔던 길에 돌아오다가 하야리야 부대 터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 터를 공원으로 썼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운 맘 가득했다. 하긴 그 땅 밑엔 온통 오염물질로 가득하다 하니 공원으로 한들 건강에 도움되는 구석도 없을 듯 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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