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사진관
최창수 사진.글 / 북하우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전문적 사진 작가가 아니면서도 그의 사진은 이야기와 핏줄이 비칠듯한 투명함이 느껴진다.

그의 사진 중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아프간의 반디아미르를 담은 것이다. 153
일부러 정원 한 구석에 조성한 연못처럼 단아함을 지닌 호수.
그러면서도 하늘을 가득 담아내고도 남는 넉넉함을 지닌 호수.
이런 호수들을 통해서 사람은 하느님과 영혼의 교통을 나눌 수 있으리란 생각을 문득. 

수만 마일을 여행하는 것은 수만 권의 책을 읽는 것이다.
여행하면서 얻는 것들과 책을 읽고 얻는 것의 우위를 따질 수야 없을 것이지마는, 환하게 웃음짓는 아이들과 여인들과 남성들의 배경에 무슨 소품처럼 드리운 탱크와 캐터필러 잔해, 지뢰에 날아가버린 발목과 목발들, 낡고 낡은 제국주의 시대의 전차와 아프리카 여성들의 아랫입술에 꿰어진 지름 10센티는 넘을 토기들... 이런 것들을 배경으로 하여 전경에 두드러진 반짝이는 눈빛들의 살아있음이 곧 인생임을 그는 여행을 통해 배웠고, 나는 그의 사진을 보며 읽는다.

예멘 남자들의 칼과 아이들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눈망울들, 이것들을 만나는 일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것은 기쁨이었다.

전문 작가가 아니라고 하지만, 나름의 매력을 뿜어내고 있는 그의 사진을 앞으로도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
오주석 지음 / 월간미술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이명박 죽으면 떡돌린다... 이런 이야기가 요즘 나돈다... 고 백분 토론에서 어떤 시청자가 말했다.
근데, 욕먹는 넘은 절대 안 죽는다. 당분간 떡 먹긴 힘들겠다. 내 돈 내고 사먹을 밖에... 

그런데, 오주석 선생처럼 아까운 이는 왜 데려 가는 건지...
하늘나라에도 큐레이터 한 분쯤 두고
멋진 그림이나 경치를 설명듣고 싶어하는 분이 계신 건지... 

그이의 그림 속에 노닐다, 단원 김홍도,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2, 한국의 미 특강을 모조리 찾아 읽은 나로서는 이 책에 나온 글들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아니, 이 글들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거라는데, 앞의 책들에 나온 이야기들을 신문에 싣기 좋을 분량으로 간추렸을 뿐이다. 

그림에 대한 설명이라든지, 그림보는 법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한국의 미 특강과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같은 데서 훨씬 더 잘 들을 수 있다. 

이 책은 오주석 선생님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선물하면 좋을 책이다.
신문에서 스물 한 번 연재했던 분량이라서 정말 간결한 설명으로 되어있다. 

다 읽은 글이지만, 이 책을 산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아, 좋은 책이란 그런 것이다.
좋은 글이란, 읽은 글을 다시 읽어도, 또 좋은 것이다.
좋은 사람이란 만나고 또 만나도 못만나 그립고 아쉬운 것과 마찬가지다. 

제주도 여행을 갈까? 돈도 시간도 넉넉지 않은데... 하다가, 여행은 고민되면 무조건 가라는 말이 떠올라, 시간을 굳이 내서 가기로 했다. 올렛길을 한번 걸어보고 싶었던 것인데, 무리하진 말고 쉬엄쉬엄 걷고 싶다.
물건을 살 때 고민이 되면 사지 말고, 여행이 고민되면 무조건 출발하란 말은... 좋은 말 같다.
이 책을 살 땐, 유고집이 다 그렇듯 별 내용이 없을 수도 있단 생각도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오주석 선생님의 간결하고 단아한 말투를 나긋나긋하게 듣는 일은, 투박한 남성의 목소리가 아닌, 마치 혜원의 미인도의 주인공이 곱상하게 들려주는 목소리임을 익히 잘 알기에 일단 사고 본 것이다. 

반신욕을 하면서 땀을 줄줄 흘리며... 오주석 선생님이 남긴 아름다운 언어들의 조합을 느리게 느리게 읽었는데도, 책은 훌쩍훌쩍 넘어가 버리고 말아, 책갈피에 바람이 부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그림들 사이로 걸어들어가는 길은, 금강산의 바람이나 동해의 바닷바람, 그리고 한국이라면 눈 돌리면 어디에나 있을 산과 물과 하늘, 그 빈 공간의 헛헛함과 홀가분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 여행길과 마찬가지였다. 

유고간행위원회의 강우방 선생이 서문을 썼는데...
어느 날, 논어의 한 구절을 주워들고는, 그저 김홍도의 이름을 얻었을 그 구절이 너무 감격스러워, 오주석 선생에게 너무도 전화가 하고픈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슴이 찡~ 했다.
무엇인가 발견하고는 기쁜 나머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픈 때가 있다.
이제 누구에게 한단말인가. 새삼 그를 그리워한다...
는 강선생의 말이, 바로 내 맘이었다. 

이인문의 송계한담도 설명 중, 141쪽엔 고송유수관도인에 館을 썼고, 145쪽엔 觀을 썼다.
내 생각엔, 오랜 소나무와 흐르는 물 사이 도인을 보다...는 후자가 맞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 위의 작업실>을 리뷰해주세요
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텔레만을 듣는 아침...으로 김갑수를 읽었다. 그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텔레만을 들어서 더 상쾌했던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다. 한 6,7년이 넘었는데도... 

음악 듣기에 미친 그가, 드디어 줄라이홀이란 자기만의 공간을 찾았다.
하긴 음악을 듣고, 그 음악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서는 도망가는 공간이 아니라 작업실인 셈이다. 교수들의 연구실과 같은 개념일 거다. 

그렇지만, 그의 연구실에선 음악 말고 커피도 연구한다.
이건 외도에 속하지만, 워낙 푹 빠져서 외국 기계들 이름 주워섬기는 소리 듣노라면... 뭐, 커피 메이커 이름인지, 오디오 시스템의 이름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다. 

뭔가에 이렇게 푹 빠져 있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아름답다.
내가 혼자 살았더라면... 하는 말들을 흔히 하지만, 혼자 살았다손 치더라도, 글쎄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서 그걸 낙으로 삼고 살았을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무엇이든... 직업적으로 접하는 순간, 그 접점에선 특별한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함수에서 말하는 '변곡점'으로 작용하는 그 때부터, 밥벌이의 지겨움이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졸박'인데, 그건 곧 넘치지 않고 화려하지 않은 진짜 은근하고 깊은 멋이 졸박이다.
이웃에 벗이 있어 그의 졸박한 심사를 헤아려 주면 좀 좋으랴만,
그의 이웃은 정육점 사내여서... 미친놈 소리 듣지 않으려면, 졸박이고 뭐고 입닫고 있어야 한다.
바바리 입고 하늘 쳐다보며 폼 팍 재지만, 내용은 하나도 없는 인간...과 졸박 사이에서 음악에 몸을 맡긴 인생. 그가 김갑수다. 

사주에 부모, 형제, 친척, 친구도 이웃도 없는, 돌 틈에서 저 혼자 생겨나 저 혼자 생겨나 혼자 살다갈 천고와 천문의 운명... 스스로를 그 운명에 맞춰가며 사는지도 모르는 그.(122) 

대한민국이란 너무도 신체화되고 각인된 조국. 끊임없이 정체감을 이루려는 나라...
그 국가에 대해서, 그는 단순 소박으로 '나라 지겨움'에 대해 토로하기도 한다.(127)
소속될 수 없는 영혼들에게 나라란... 결국 구속에 불과한 것이니... 

밥벌이의 지겨움을 둘러쓰고 강연을 다니는데 어느 공무원이 물었단다.
군상의 체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속감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술 체험이 필요하다는 말에,
"왜, 벗어나야 합니까?"
헐, 완전 딱, 공무원만큼의 질문이다.
황동규 시인의 시로 답한다.
다들 망거질 때 망거지지 않는 놈은 망거진 놈 뿐야!
멋진 말이다. 

스스로 불쌍을 떠안고 사는 그가 가끔 불쌍을 떨칠 때가 있다.
노지마의 피아노 타건에서 손톱 부딪히는 소리가 명료하게 들릴 때,
교체한 진공관의 음색이 촉촉하게 젖어올 때...
홀로 살 운명, 맞다. 

아무 것도 못 되고, 못 얻은 그는, 이제 안다.
가는 음악을 듣는 사람이 되었음을...
뒤늦은 깨달음이다.(196) 

길을 가다가 산을 오르다가 아주 많이 가버리는 수가 있다.
그때 남들이 못 본 것을 본다. 견자가 되는 것이다.(개아들 말고... 볼 견, 놈 자)
소리 탐구에도 견자의 도착지, 히말라야가 있단다. 대단한 수준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경지... 더없는 음원에 대한 욕심과 추구...
결국 얼마 전, 8000미터 상공의 산들을 오르는 것에 지나친 집착에 빠진 한 산악인이 고인이 되어 돌아왔다. 여성 최초의 14고지 점령이란 꿈... 내가 보기엔 무모한 도전이지만, 그는 남들이 못본 무언가를 보고 가던 이였을 것이다. 고인은 목숨을 놓친 것보다, 꿈을 놓친 것을 더 아쉬워할는지도 모를 일... 

오블리 비아테, 좋은 기억만 남겨 두고 나쁜 기억은 사라지라.(214)
루프리텔캄, 모든 것을 이루어지게 한다.
세렌디피티, 생각지 못한 귀한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하는 행운의 주문.
하쿠나마타타폴레폴레, 걱정마 다 잘 될거야.
마하켄다프펠도문, 슬픔과 고통을 잊게 해 주노라... 

마치, 영화 '마더'의 엄마가 허벅다리에 찌르는 침과 같은 주문과 치유가 인생의 영혼들에겐 필요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백석이 시 '모닥불'에서 쓴 것처럼, 온갖 잡동사니가 다 굴러와 불타고 있는 그 속에 우리 삶이란 것도 오롯이 자리잡은 그런 것임에... 

그의 책을 읽으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손에서 놓아버린 피아노 건반과,
클라라 하스킬과 호로비츠 같은 음악들을 듣던 날들이 다시 떠오른다.
조용히 음반을 걸어놓고 소리를 좀 키우려는데...
아내가 잠들었다. ㅠㅜ(더운 날 헤드폰 끼는 일은 불쌍, 이다.) 

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글쟁이들이 간혹 시들을 허투루 쓰면 기분이 상한다.
미당의 시 중에 무등을 보며...란 시가 있다.
그 시의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처럼 멋진 구절을... (전쟁 중, 질긴 목숨이 살다가 살다가... 축축 휘어지듯 힘겨울 때를 그린 구절을)
목숨이 가다가다 농을 치기 시작하는...(25)으로 변형시켰을 때, 난 글 전체의 신빙성을 놓으려는 마음이 든다. 농울쳐 휘어드는...의 멋진 구절을... 농을 치기 시작하다니... 휴~~ 

그가 정육점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도 가시 하나가 시선에 콱, 들어와 박힌다.
항정살 맛이 진짜 남의 살 맛이라니까요...하는 말에 맞장구칠 만한 고기 철학이 없어서 나는 언제나 '흐흐'한다. 그럴 땐 왜 꼭 입에서 '흐흐' 하는 부슬부슬한 파찰음이 새나오는지 모르겠다...는 구절인데...(34)... 흐흐는 파찰음이 아니다. 파찰음은...'파열음으로 시작하여 마찰음으로 끝난다는... ㅈ, ㅊ, ㅉ' 소리를 가리킨다. ㅎㅎ는 궂이 말하자면... 마찰음 계열이 아닐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뇌의 원근법>을 리뷰해주세요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경식에게 서승, 준식 두 형의 한국행은 디아스포라로서의 재일조선인이었던 그들에게 강한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국가주의라는 괴물이 잡아먹은 두 형의 어깨 위에서 날개가 돋친다.
그의 날개를 달고 서경식은 <평화와 전쟁>에 대해서 천착하게 되고,
돌발적으로 그의 글들은 미술을 통해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가 바라보는 그림들, 그리고 화가들 이야기는... 반도롬하게 이쁜 그림들과 인생들이 아닌 바, 그의 트라우마는 다시 그의 영혼을 한국의 감방 안으로 불러 들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살상을 부르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그림으로 남기려는 노력들도 부수적일 것이고...
이런 것에 천착하는 서경식의 맷집도 끈질기고, 도판에 대한 자세한 해설도 돋보인다.  

여기 대해서 야노는 토론에서 이렇게 덧붙인다. 

서경식 씨의 책을 읽어보면, 서경식씨는 어둡고 비극적인 작품에 반응을 보입니다.
피에타도 그렇지요.
저같은 사람은 기독교의 교양주의적 관점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서경식 씨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느끼지요.  
이게 옳고 그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그림이나 조각의 표현 속에 현재로 이어지는 비극성이 있다는 게 중요하죠.
거기에 개인적인 체험이 결부될 때 비로소 그 그림의 이야기가 제대로 살아났음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고흐의 그림도 단순히 옛날 사람이니까... 이렇게 말할 게 아니라,
거기에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제일 재미있게 읽은 것은 '고흐' 이야기였다.
테오에게 일생을 기댔지만, 테오의 그림조차 그리지 못했던 영혼 고흐.
그를 야노 시즈아키는 <공허함에 밀도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고흐가 하려고 한 모든 것의 근본>이라고 일컫는다. 아무 것도 없는 풍경을 그리면 아무 것도 없어야 당연할 텐데,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육박해오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편으로 돌진하면서 자신을 끌어당겨가는 풍경이 된다. 대상은 하나도 없는데...... 아, 고흐를 이렇게 꿰뚫어 보는 말은 ㅡ 글로 읽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시원스러운지...

172쪽 3행과 6행에 두 번의 큰 실수를 저질렀다.
번역기를 돌렸는지는 몰라도... 같은 발음이라곤 해도... 일본말 가마 를 솥으로 번역한 것은 결정적 실수다. 가마에는 '낫(鎌)'이란 뜻도 있고 '솥(釜)'이란 뜻도 있다.
여기서 솥이라 했지만, 그림에서 보듯, 낫이 옳다. 혹 편집자가 본다면, 이 심각한 오류는 바로 시정하시길...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해한모리군 2009-06-26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낫인데..
이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산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책갈피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어 삐쳤습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

글샘 2009-06-30 21:55   좋아요 0 | URL
편집자에게 메일을 넣었더니... 앞으로 수정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천억키라 2014-10-25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혹시 다른 맞춤법 오류는 없나요?

글샘 2014-10-26 20:53   좋아요 0 | URL
모르죠. 제가 맞춤법을 고치려고 편집자로서 읽은 것도 아닌데요 뭘~
 
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정말 사회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자의식으로 가득찬 인간.
김점선이 스스로 살아온 길을 적고 점선뎐으로 이름붙였다.
결국 이 책이 나오고 그는 세상을 떴다.
워낙 거침없던 이였으니,
가서, 즐거웠노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악마는, 악은 엉킨 에너지다. (96)
예술가도 마찬가지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 허용하는 방향으로 해소하는 것을 예술가라 하고, 그 에너지가 엉켜버리면... 악이라고 한다. 

그는 독서를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개발한 가장 효율적 생활 방식.(109)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자기가 생각하면 수백 년 걸릴 것들을...
독서를 통해서 한 순간에 깨칠 수 있으니...
인간의 독서란 얼마나 효율적인 것이냐. 

그렇지만... 그는 또 삶으로서만 물결지을 수 있는 삶의 무늬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191쪽에선 남편이 암에 걸렸을 때의 '황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역설적이지만,
인간이 소중함은 그 존재를 잃고 나서야 느낀다고 한다.
남편의 사주에 '황홀한 일'이 엮였는데, 겪고 보니 그것이 죽음이란다.
죽음을 앞두고... 하루 하루가 황홀할 수밖에... 아! 짠한 사람. 

김점선을 읽으면서,
내가 그에게 많이 그랬다.
아, 짠한 사람. 

나를 모르는 그가 나를 보면, 똑같은 소릴 할지도 모르겠다.
장영희 교수랑 마음이 맞았는데,
장교수 수필 제목처럼,
하필이면,
올해... 그는 3월 22일에, 장교수는 5월 9일에 잠이 들었다.  

스스로 그림그리는 큰 벌레...라고 자신을 느끼고,
생각이라는 병균에게 침식당한 큰 짐승. 이라고 이름 붙이는 김점선. 

무궁화란 촌스러운 꽃을, 왜 국화로 삼았나를 생각해 보고는...
싱싱하고 건강한 아름다움, 숨겨진 듯해 얼핏 눈에 듸지 않는 모습.
그들은 우리가 이렇게 살기를 원했다.
촌스런 무궁화.
건강하고 튼튼한 꽃나무.
촌여자처럼 아름다운,
제 할일 다하면서 바쁘게 살다가 얼핏 모양낸,
그런 여자처럼 쬐끔만 아름다운 꽃.
본래의 아름다움이 무엇엔가 가려져서 조금만 보이는 듯한 그런 꽃.
그 가려진 것을 치우고 싶게 만드는 그런 꽃.
언젠가 더욱 아름다워질 것만 같은 그런 꽃.(341) 

그의 어린 시절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기도 한다.
나도 꽤나 내 속으로 고치처럼 스스로의 집을 지었던 존재지만,
그처럼 멋대로 살 힘은 없었던 듯 하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었다.
자의식을 벗어나려는 여성의 삶은 주변에서 인정해 주지 않으면 힘들다.
아니, 여성이 좀더 심할 뿐,
너무 자기를 강하게 드러내는 사람을 한국 사회는 참 싫어한다.
이제 한국 사회는 김점선의 '개인주의'를 배워야 한다.
아들 녀석에게 잔소리를 덜하게 만들어준 책이다. 

하늘나라에선 김점선이 남 눈치 안 보고 맘 편하게 살 수 있길 빈다.

98쪽. 편집자들도 잘 틀리는 맞춤법 하나 : 절대절명 - 절체절명이 옳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9-06-23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톡톡 튀고 짠한 사람이군요.^^
놓쳤던 책인데.. 바구니에 담아가요.

글샘 2009-06-23 19:27   좋아요 0 | URL
음... 김점선 땡스투가 들어오면... 님 생각을 할게요. ^^
그래요. 톡톡 튀고 짠한 사람... 맞네요. ㅎㅎ

어느멋진날 2009-06-2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장하고 있긴 한데 아직 읽지 않은 책이에요,, 글샘님 덕에 읽고 싶은 충동이 일어서 아무래도 이번주 내에 읽을 것 같네요,,

글샘 2009-06-23 19:27   좋아요 0 | URL
재밌게 읽으실 걸요. ^^ 첨 뵙는 거 같습니다.

파란 2009-06-26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의 책에서 한권을 한벽에 붙여놓았어요. 그녀가 가버리니까..조금 많이 서운하더라구요.어디에서 또 이런 여자를 볼수 있을까 해서요. 잘 읽고 갑니다

글샘 2009-06-30 21:56   좋아요 0 | URL
그의 말 그림에 정이 많으 든 것 같아요. 처음 만났을 땐 뭐 이래? 그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