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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평점 :
텔레만을 듣는 아침...으로 김갑수를 읽었다. 그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텔레만을 들어서 더 상쾌했던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다. 한 6,7년이 넘었는데도...
음악 듣기에 미친 그가, 드디어 줄라이홀이란 자기만의 공간을 찾았다.
하긴 음악을 듣고, 그 음악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서는 도망가는 공간이 아니라 작업실인 셈이다. 교수들의 연구실과 같은 개념일 거다.
그렇지만, 그의 연구실에선 음악 말고 커피도 연구한다.
이건 외도에 속하지만, 워낙 푹 빠져서 외국 기계들 이름 주워섬기는 소리 듣노라면... 뭐, 커피 메이커 이름인지, 오디오 시스템의 이름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다.
뭔가에 이렇게 푹 빠져 있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아름답다.
내가 혼자 살았더라면... 하는 말들을 흔히 하지만, 혼자 살았다손 치더라도, 글쎄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서 그걸 낙으로 삼고 살았을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무엇이든... 직업적으로 접하는 순간, 그 접점에선 특별한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함수에서 말하는 '변곡점'으로 작용하는 그 때부터, 밥벌이의 지겨움이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졸박'인데, 그건 곧 넘치지 않고 화려하지 않은 진짜 은근하고 깊은 멋이 졸박이다.
이웃에 벗이 있어 그의 졸박한 심사를 헤아려 주면 좀 좋으랴만,
그의 이웃은 정육점 사내여서... 미친놈 소리 듣지 않으려면, 졸박이고 뭐고 입닫고 있어야 한다.
바바리 입고 하늘 쳐다보며 폼 팍 재지만, 내용은 하나도 없는 인간...과 졸박 사이에서 음악에 몸을 맡긴 인생. 그가 김갑수다.
사주에 부모, 형제, 친척, 친구도 이웃도 없는, 돌 틈에서 저 혼자 생겨나 저 혼자 생겨나 혼자 살다갈 천고와 천문의 운명... 스스로를 그 운명에 맞춰가며 사는지도 모르는 그.(122)
대한민국이란 너무도 신체화되고 각인된 조국. 끊임없이 정체감을 이루려는 나라...
그 국가에 대해서, 그는 단순 소박으로 '나라 지겨움'에 대해 토로하기도 한다.(127)
소속될 수 없는 영혼들에게 나라란... 결국 구속에 불과한 것이니...
밥벌이의 지겨움을 둘러쓰고 강연을 다니는데 어느 공무원이 물었단다.
군상의 체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속감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술 체험이 필요하다는 말에,
"왜, 벗어나야 합니까?"
헐, 완전 딱, 공무원만큼의 질문이다.
황동규 시인의 시로 답한다.
다들 망거질 때 망거지지 않는 놈은 망거진 놈 뿐야!
멋진 말이다.
스스로 불쌍을 떠안고 사는 그가 가끔 불쌍을 떨칠 때가 있다.
노지마의 피아노 타건에서 손톱 부딪히는 소리가 명료하게 들릴 때,
교체한 진공관의 음색이 촉촉하게 젖어올 때...
홀로 살 운명, 맞다.
아무 것도 못 되고, 못 얻은 그는, 이제 안다.
가는 음악을 듣는 사람이 되었음을...
뒤늦은 깨달음이다.(196)
길을 가다가 산을 오르다가 아주 많이 가버리는 수가 있다.
그때 남들이 못 본 것을 본다. 견자가 되는 것이다.(개아들 말고... 볼 견, 놈 자)
소리 탐구에도 견자의 도착지, 히말라야가 있단다. 대단한 수준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경지... 더없는 음원에 대한 욕심과 추구...
결국 얼마 전, 8000미터 상공의 산들을 오르는 것에 지나친 집착에 빠진 한 산악인이 고인이 되어 돌아왔다. 여성 최초의 14고지 점령이란 꿈... 내가 보기엔 무모한 도전이지만, 그는 남들이 못본 무언가를 보고 가던 이였을 것이다. 고인은 목숨을 놓친 것보다, 꿈을 놓친 것을 더 아쉬워할는지도 모를 일...
오블리 비아테, 좋은 기억만 남겨 두고 나쁜 기억은 사라지라.(214)
루프리텔캄, 모든 것을 이루어지게 한다.
세렌디피티, 생각지 못한 귀한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하는 행운의 주문.
하쿠나마타타폴레폴레, 걱정마 다 잘 될거야.
마하켄다프펠도문, 슬픔과 고통을 잊게 해 주노라...
마치, 영화 '마더'의 엄마가 허벅다리에 찌르는 침과 같은 주문과 치유가 인생의 영혼들에겐 필요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백석이 시 '모닥불'에서 쓴 것처럼, 온갖 잡동사니가 다 굴러와 불타고 있는 그 속에 우리 삶이란 것도 오롯이 자리잡은 그런 것임에...
그의 책을 읽으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손에서 놓아버린 피아노 건반과,
클라라 하스킬과 호로비츠 같은 음악들을 듣던 날들이 다시 떠오른다.
조용히 음반을 걸어놓고 소리를 좀 키우려는데...
아내가 잠들었다. ㅠㅜ(더운 날 헤드폰 끼는 일은 불쌍, 이다.)
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글쟁이들이 간혹 시들을 허투루 쓰면 기분이 상한다.
미당의 시 중에 무등을 보며...란 시가 있다.
그 시의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처럼 멋진 구절을... (전쟁 중, 질긴 목숨이 살다가 살다가... 축축 휘어지듯 힘겨울 때를 그린 구절을)
목숨이 가다가다 농을 치기 시작하는...(25)으로 변형시켰을 때, 난 글 전체의 신빙성을 놓으려는 마음이 든다. 농울쳐 휘어드는...의 멋진 구절을... 농을 치기 시작하다니... 휴~~
그가 정육점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도 가시 하나가 시선에 콱, 들어와 박힌다.
항정살 맛이 진짜 남의 살 맛이라니까요...하는 말에 맞장구칠 만한 고기 철학이 없어서 나는 언제나 '흐흐'한다. 그럴 땐 왜 꼭 입에서 '흐흐' 하는 부슬부슬한 파찰음이 새나오는지 모르겠다...는 구절인데...(34)... 흐흐는 파찰음이 아니다. 파찰음은...'파열음으로 시작하여 마찰음으로 끝난다는... ㅈ, ㅊ, ㅉ' 소리를 가리킨다. ㅎㅎ는 궂이 말하자면... 마찰음 계열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