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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들의 춤
최수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수용소 포로들이 춤을 춘 사연은...
포로수용소에서
미군의 사지 복장을 한 포로들이
어설픈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
돌아가신 장인은 포로 출신이었다.
포로 수용소에서 비인간적인 생활을 하다가, 다시 남한의 군인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현실의 역사도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지만,
아우슈비츠가 거제도에 있었고,
오늘날도 난민들의 눈빛은 거기서 얼마 나아가지 못했다.
인간은 인간을 제한한다.
앞의 인간은 잘난 체하는 악마들이다.
후자는 인간성을 잃게 마련이다.
거제 포로수용소라는 비극을 한국사에 남겨야 한다.
최수철의 소설은 재미 없다.
재미없지만 역사로 기록하는 의미는 있다.
거제도에서는 모든 것이 조작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지시가 내려졌고
사진을 찍는 우리들 앞으로는 그럴듯한 사람들만이 지나가도록 계획되었다.
이 사람들은 '보도사진'에 찍히기 위해 포즈를 취했다.
나는 이게 진정 수용소에서의 생활인지 끊임없이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사 비숍, 184)
저 한 장의 사진은 당연히 조작이고 날조다.
역사라는 것은 그렇다. 날조다.
박그네의 비아그라 만큼이나 '올바른 오른쪽 우익 뉴라이트 교과서'도 날조다.
고대사를 가득 넣고 우리의 투쟁의 현대사를 적게 넣는 것은,
'임시 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3.1 운동과 4.19 혁명의 정신으로 열린 조국'의 대한 국민을 부정하는 날조다.
그렇지만, 역사는 그렇게 한다.
나는 거제도에서 붉은 바다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살아나왔어.
살아나오기 위해 죄도 지었고 몸도 팔았지.
그 당시 좌익의 빨갱이도 아니고 우익의 흰개미도 아닌,
그 사이에 존재하는 포로들을 얼룩말에서 따와 얼룩이라고 불렀지.
나는 얼룩이였어. 말하자면.
나는 빨간 줄무늬를 입고 있었던 거야.(111)
인민군 포로들을 조국으로 송환하지 않고 포로수용소에서 갈등하게 만든 이승만 정부의 추악한 일면이다.
제3국으로 떠나버린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그 안에서의 생활은 지긋지긋했다.
전쟁이 끝난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삶은 지긋지긋하긴 마찬가지다.
아직도 이 나라의 삶은 포로의 삶이다.
보도사진에 찍히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처럼,
대학엘 가고 집을 사고(있지도 않은 분양권을 파는 나라는 없다.) 차를 몰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올바른 삶인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과연 이것이 최선인지, 질문할 때가 되었다.
법당에서 암탉 두 마리가 숨어
나란히 앉아 구구거리며 졸고 있더라.
내가 쉬쉬 쫓아보려 했지만 꼼짝도 않더라니까.
그 모습을 보고, 아, 참선은 저렇게 하는 거구나.
쉬쉬 쫓아도 구구거리며 죽치고 앉아있는 거구나.
세상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 거구나.(35)
시위대 사이에서 춤을 추다 잡혀가곤 하는 여자.
술에 취해 번개탄으로 죽음을 부른 여자.
스토리가 긴박함이 떨어지고 인물 창조가 좀 허름하긴 하지만,
사는 일의 단순하고 무의미함에 대하여,
포로들의 삶과 우리의 삶을 나란히 놓으며 이야기한다.
슬픈 소설이다.
분단을 이야기하면 끝도 없이 슬픈 것이 당연한 정서일지도 모른다.
80년 광주에 대한 소설과 영화가 더더더더~~ 나와야 하듯,
한국 전쟁의 비극, 제주 4.3의 비극에 대한 영화도 더더더 나와야 한다.
박정희가 밀짚모자 쓰고 막걸리 마시던 '날조된 늬우스'에서 벗어나는 데 수십 년 걸렸듯이,
전쟁과 학살에서 벗어나는 데는 수백 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