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 2001년 제25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신경숙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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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부석사란 절을 참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 수도 없이 많은 절을 다녀 봤지만, 거기서 살라 한다면 답답해하지 않을 절이 바로 부석사다. 무량수전에서 내려다보는 눈맛과 안양루처럼 사푼히 앉은 절집들이 아기자기해서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굳이 기대서지 않더라도 부석사는 절집의 이름만큼이나 아름답다. 무량수전 오른편의 좁다란 소로 위의 절에는 어울리지 않는 선묘당도 웃음 물게하는 소재고, 실이 통과한다는 뜬돌도 재미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남녀는 사회생활에서 실패했다는 좌절감과 이물감을 가진 사람들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는데, 눈가가 짓무른채 머무를 곳 없어 어슬렁거리는 바람이라는 이름의 개처럼, 뜬 돌을 찾아 헤매보지만, 결국은 목적이 없었던 여행이었고, 결국에는 길을 잃고 마는 여행길이었다.

이 소설을 서너번 읽었다. 책을 선물받아 바로 읽었고, 언젠가, 부석사를 다녀와서 다시 읽었고, 오늘은 문득 부석사가 몹시도 그리워 다시 읽어 보았다. 읽을때마다 점점 부석사가 맘에 든다. 신경숙이 이런 상징적 구도로 얽고싶어할만큼 부석사란 절의 생김새부터 이름까지 뭣 하나 허투루 버릴 것이 없다. 부석사 입구의 사과나무와 은행나무, 하늘 끝간데까지 오를듯한 급경사의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돌층계와 구름처럼 올라앉은 안양루의 사뿐함. 그러나 인간의 냄새가 나는 절집 부석사와 거기 가지 못한 소설 사이에서 나는 '개'에 주목한다.

개는 얼마나 순간순간에 몰두하는가. 개는 산책나갈 때마다 매일 같은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에 코를 킁킁거리고 두리번거리게 마련이다. 인간만이 매일 다른 하늘을, 매일 다른 사람들을, 매일매일 달라진 거리의 풍경들을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는 무지몽매한 존재인 것이다.

운전석 앞자리의 남과 여는 자기가 갈 곳이 어딘지 몰라 허공에 뜬 존재들이지만, 바람이라는 이름의 개는 원래 그 곳에 있었으면서 없었다. 원래 남자의 개였으면서 여자의 개이고, 그 곳에 있으면서도 존재감은 없다. 그의 이름은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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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2004-03-08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석사 참 좋은 곳이죠. 그 곳에 일주일 정도 있었습니다. 참 좋은 곳이죠.
단지 흠이라면 사람이 너무 많이 찾아온다는 정도랄까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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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삼미슈퍼스타즈를 등장시켜 풀어낸 그의 스토리는 자못 진지하다. 가난의 70년대를 지나고, 폭압의 80년대를 맞으며 우리가 통과해온 비극적 역사를 소재로, 자신의 인생관을 탁월한 방법으로 드러내고 있다. 삼미슈퍼스타즈를 통해 서민과 중산층의 갭을 읽고 있으며, 프로의식과 구조조정 사이의 고통과, 어떤 노력을 해도 변화하지 않는 프랜차이즈의 세계적 자본 권력의 음모를 통렬하게 꿰차고 있는 작가. 일찌기 이런 주제를 이런 식으로 펼친 작가는 없었다. 그의 글은 개그를 뛰어넘어 해학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교육헌장과 애국가에서는 극도의 패러디 작가로, 삼미슈퍼스타즈에서는 다다이즘의 꼴라쥬같은 문체로, 결국 자본과 삶의 의미 규정은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추상화를 보는 듯, 늘어진 시계바늘과 일그러진 사물들을 투영하고 있다.

그가 우리 시대의 비극을 이토록 경쾌한 문체로 희극적이고 해학적으로 그릴 수 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조신몽'에서처럼 그는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진짜 인생은 욕망, 성공, 부귀 영화와 사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지금은 사라져버렸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도시 삼천포.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279쪽)

그의 해학의 완성은 서울에 살 필요가 없음을 인식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해 준 아름다운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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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1 2006-08-04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사 두었던 책이었는데 이제야 읽었습니다. 스포츠 만화의 <무대리>를 읽은 느낌이랄까요. 재미있었고, 또한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이더군요. 뭔가에 쫓기듯이 살아왔다는 느낌이니까요. 민족의 슬기를 모으지도 새 역사를 창조하지도 못했던 삶이면서 말입니다.

글샘 2006-08-04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재밌지 않나요?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서광현.박승걸 글, 김계희 그림 / 여름솔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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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시대의 하품.

동화도 아니고, 연애 소설도 아니고, 책은 좀 예쁜데 정말 사서 보긴 아깝다. 패러디라고 보기엔 그냥 백설공주 이야기인걸. 물론 주인공은 반달이지만, 우리 모두 반달이처럼 가슴아린 삶들을 움켜쥐고 살고 있지만, 이걸 책이라고 보기엔 글쎄...이건 누가 읽으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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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에 이 책을 읽고 참 시답잖은 책도 다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이런 리뷰를 올린 걸 보면. 사실 이 이야기는 새로운 거라곤 하나 없는 이야기다. 오늘 아이랑 이 연극을 보고 서로 쳐다보며 눈물을 훔쳤다. 아이도 내 눈치를 보며 함초롬히 젖은 눈을 닦고... 연극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느끼며, 반달이의 외사랑을 안타까워하면서 시민회관을 나섰다. 책으로는 별볼일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연극인들을 위한 책이었던 만큼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나처럼 다 늙은 어른이 눈으로 줄글을 읽고 있노라면 참으로 따분하기 그지없는 일일게다. 그러나, 사랑스런 아이를 눕혀놓고, 잠을 재우는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목소리로, '이 세상에서 왕비님을 가장 사랑했던 분은, 바로 안개마을의 반달님이었답니다.'하고 읽어주는 동화로는 참 아름다운 운율을 가진 동화란 걸 깨달았다.

눈으로 읽기엔 별 것 아닌 책도, 소리로 읽을 때, 연기자의 목소리로 다시 태어날 때, 전혀 다른 작품이 된단 걸 깨달았다. 먼젓번의 혹평을 이 글의 작가가 보았을 확률은 아주 낮지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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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내게로 왔다 1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시가 내게로 왔다 1
김용택 지음 / 마음산책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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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시가 올 것 같지 않으므로.

나도 한 때, 시를 쓰던 따스한 마음이 있었다. 아니, 뜨거운 마음이었을게다. 고등학교 선생으로 문학을 가르치면서, 수능에 나올만한 시를 많이 접한다. 수능에 나올만한 시가 딱부러지게 있는 건 아니지만, 아주 유명한 시인들이 주로 등장한다. 그러나 시란건 유명하지 않아도, 가슴을 아리게 하는 그런 거다.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시는 신경림의 갈대와 백석의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그리고 천상병의 귀천이다. 이런 시들을 입 안에 넣고 중중거리는 것만으로도 삶을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느긋함이 느껴진다.

김용택이 고른 박용래, 정호승, 김수영, 고은, 황동규, 파블로 네루다, 도종환, 안도현, 신동엽, 오규원 들도 좋아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내 어린 시절 시에게로 달려가게 한 시가 깃발이라면, 이제 삼십분 거리의 동산에 올라 해운대 바닷가를 내려다보며 웅얼거리고 있는 시들은 아무래도 좀 슬프고 어두운 것들이다.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는가. 아침이슬처럼, 저녁놀처럼, 그리고 소풍나온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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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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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연히 수수롭다...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 년도 수유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움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정비석, 산정무한)'

우리가 어린 시절 지긋지긋했던, 아니 그래서 지겨운 줄도 몰랐던 초췌함이 오롯이 살아있었다. 그는 어쩌면 행복한가? 지금의 흥성거림을 모르기에...

'... 큰 길을 물밀어가는 사람 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주요한, 불노리)' 라던 시인의 말을 그는 안 뱉어도 되잖는가.

이 시집에서 건진 말은 딱 두 마디다. 가난, 때, 결핍, 소외, 작은 공을 쏘아올린 난쟁이의 모습을 읽는 작업은 참 지긋지긋한 일이었으나, 그의 시집을 부등켜 안고 있는 건, 이 두 마디 때문이다.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장미빛 인생의 마지막 구절)와 그의 청년 시절에 붙인 김현 선생의 '암연히 수수롭다'는 단 두마디.

'살아있으라, 누구든 살아있으라'며 크레졸 냄새 가득하던 그의 젊음은 봄날처럼 가고,
그의 죽음과 겹쳐졌던 이 땅 교육의 죽음의 여름, 주검 썩어가는 역한 냄새가 겹쳐져 그의 이름은 '기이하게도' 그로테스크하다. 내 머릿속의 기형도는 기이하게도와 중첩되어 교육 살해 원년의 피비린내를 지긋지긋하게 떠올린다.

이 어쩔 수 없는 심상의 부유함을 두고 '암연히 수수롭다'는 두 마디로 정리할 줄 알았던 정비석의 '산정무한'은 명문이고, 그것을 적확히 옮겨 쓸 줄 알았던 김현 선생도 '삶'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아직도 모르는 그 삶을,...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삶이란 것의 심연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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