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마음이 불편해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2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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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언가 결핍되어 늘 가지고 채우려 애쓰는 존재다.

불법은 그 마음을 알아차리라는 가르침이다.

채우려는 생각을 버리라 그러면, 허전함도 사라지리라....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여 늘 더 나은, 더 좋은 걸 바랄 때,

그럼 현실을 그만두라고 단언한다. 그러면, 현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바로 깨닫게 된다.

 

성장기에 사랑을 상실한 경험이 많은 사람은,

늘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될 때, 쉽게 좋아하고 금방 그만둡니다.(37)

 

결혼이든 뭐든 자기 뜻대로 하려면 다른 어떤 것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49)

 

세상 만사는 늘 길항의 연속이다.

작용엔 반작용이 있고, 순기능엔 역기능이 따라붙는다.

반작용을 제거하더라도 부작용은 또 생기게 마련인 거.

 

참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이것은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상태, 즉 꿈속에 있는 것이다.

사로잡힌 상태를 사로잡힌 줄 알고 놓아버릴 때부터 '수행'이라 한다.(72)

 

개에게 흙덩이를 던지면 개는 흙덩이만 쫓습니다.

그러나 사자는 흙덩이를 던지는 사람을 쫓습니다.

허전하다고 뭔가 채울 것을 찾는 것은 개가 흙덩이를 쫓는 것과 같아요.

사자가 사람을 쫓듯이 망상을 쫓지 말고 허전한 마음을 탁 꿰뚫어 봐야 합니다.(114)

 

사자가 될 것인가, 개가 될 것인가... 인간은 왜 늘 개가 되어 사는가?

 

법문을 듣고 깨침이 있어서 각자의 업을 바꿔야 하는데

귀로 듣기만 하면 몸이 잘 따라가지 않는다. (166)

 

늘 내 생각 내려놓기를 하면서, 훈련하고 연습해야만 허전한 마음도 놓아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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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면 물어라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1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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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은 이 시대의 멘토로 유명한 분이다.

산 속에서 처박혀 있지 않고, 속인들과 삶의 문제를 놓고 불법 수행과 관련된 질문들에 답하는 걸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는 분야가 한정되어 있지 않다.

남편과 아내의 갈등, 부모 자식의 갈등, 직장이나 결혼, 취업에 대한 갈등들이 주제로 등장한다.

 

대답은 늘 하나다.

제 마음이 하고자 하는 욕심에 끄달려 살면서 그걸 모르고 사는 게 어리석다는 것.

 

결혼해서 너무 힘들면 갈라서면 된다. 잘 살펴보고 갈라서지 않을 거면 잘 하면 되고...

법륜 스님의 대답은 에둘러가는 법이 없다. 가식이 없다. 시쳇말로 돌직구다.

 

인생은 다 자기가 선택해서 사는 것이지 윤리와 도덕으로 살게 되지 않습니다.(27)

 

그렇다. 윤리와 도덕이란 것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 것.

거기 너무 끄달릴 필요 없다.

 

아이도 문제고, 남편도 문제다.

그러나, 그 것은 내 문제다.

이렇게 분명히 입장이 정리될 때 수행자의 자세를 가질 수 있는 것.(92)

 

바깥 경계에 너무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자기 내면에 자기가 잘 났다는 어떤 상을 쥐고 있기 때문.

사람은 '나는 이런 사람이다. 혹은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자기 상을 갖고 있다.

그 상이 현실과 차이가 있어서 우울증은 시작되는 것.(103)

 

스님의 말씀은 냉랭하고 시원한데, 속세의 인간이 알아듣기엔 너무 날이 서 있을 지경이다.

그렇지만, 원인을 찾는 데는 이만한 칼날이 없다.

교사들도 많이 가서 묻는데, 교사 역시 무지 끌어안고 사는 존재다.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질 수도 없고 변화시킬 수도 없음을 깨달아라.(115)

 

이러고 마음을 내려 놓아야 한다.

사랑에 대하여서도 돌직구는 상쾌하다.

 

보자마자 반했다는 그 사랑은 이기심이다.

이렇게 확실히 알고 사랑을 하면 눈물의 씨앗이니 미움의 씨앗이니 할 일 없다.(125)

 

한 사람을 무조건 좋아하는 일..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이기심으로 가득한 심사라는 말이 수긍된다.

자식에 대한 사랑도 그렇고, 연인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리라.

 

깨달음을 이 책으로 얻을 수 없다. 그걸 이렇게 말로 한다.

 

깨달음이 어떤 것인지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직접 먹어보지 않고는 맛을 느낄 수 없듯이, 깨달음을 말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맛이 어떻다'는 것은 본인이 직접 먹어보고 판단해야 합니다.(204)

 

그래, 살아보는 게 유일한 답이다.

스님들처럼 할일없이 앉아있는 모습으로 보여도,

사실상 그 마음 속에서 온갖 상들이 일어남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 마음 쓰임의 원인을 찾으러 뛰어다니느라 머리털 자랄 틈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치열한 정진 이후에라야,

즉문즉설이 가능한 경지가 될 것이다.

 

며칠 전, 친한 선생님이 도올의 금강경을 보다가,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뭐냐고 물어 오셨다.

난 내 책상 앞에 그 말을 써붙여 두고 살기에, 여기 있다고 하면서 웃었는데,

갑자기 물으니... 답이 막혔다.

잘 설명하려고 하니... 내 마음이 또 욕심에 끄달렸던 것인지...

한형조의 책을 빌려주는 걸로 설명을 대신했다.

 

앞으로는 학벌이 덜 중요한 사회가 됩니다.(214)

 

그렇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말이다.

한국 사회처럼 문화적 전통이 다 무너진 신생국가에서는,

자본만이 전통이 되기 쉽다.

학벌이 무너지기 어려운 이유가 역사 속에 있는 것이다.

 

자꾸 안 된다는 타령을 하면 안 됩니다.

안 되면 또 하면 돼요.

그냥, 화가 탁 나면 '아이고, 또 화냈네.'하고

분별심이 일어나면 '어, 또 분별심이잖아, 나 또 시작이다.' 이렇게 자기를 돌아보면서 가면 됩니다.(237)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한 마디다.

마음은 머무는 곳이 없다.

늘 움직이는 괴물이다.

허영이고 헛된 그림자다.

그걸 매 순간 보고 깨닫는 것. 그것이 수행이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들어 있고,

한 톨의 쌀에도 만민의 노고가 깃들어 있고,

한 올의 실타래 속에도 직녀의 피땀이 서려 있다.(253)

 

감사하며 살아야 함을 가르치는 말이다.

인간은 늘 채무자로서의 의식보다는 채권자로서의 의식이 강하다.

갚아야 할 것에는 너그러우면서

받아야 할 것에는 치밀하다.

 

스님의 돌직구에 스윙 아웃 당하더라도,

스님의 피칭에 맞서 붙어볼 일이다.

치열한 마음은 결국 하나로 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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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06-24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글샘님 돌직구에 처음엔 좀 심하게 휘청했어요.
때로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기도 하겠어요. 정신이 퍼뜩 들었으니.

셉티머스 말씀해 주셔서 목차 한 번 훑어보다가 일단 <애도예찬>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글샘님 돌직구 댓글 스타일 아직 제대로 파악 못해서 저 좀 '쫄아 있는' 상태입니다. ㅎㅎ)

글샘 2012-06-25 08:21   좋아요 0 | URL
제가 초면에 실례를 했나보네요. ㅎㅎ
쫄아 있으시다니깐...
쫄 필요 없으신데 쪼시니깐 제가 겁먹으라고 돌직구를 던진 모양이죠. ㅋ
 
아이처럼 행복하라 아이처럼 행복하라
알렉스 김 지음 / 공감의기쁨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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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모두 행복할까?

한국의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도 많지 않을까?

다음 주 화욜인가, 전국 일제고사를 다시 치른단다.

올해가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

초등학교가 밤늦게까지 보충수업을 한다고 하니, 행복을 위한 일일까?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등지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가이드 생활도 하는 알렉스 김이란 사람이 찍고 쓴 책.

파키스탄에 아이들을 위해서 알렉스 학교를 하나 세워 주었다고 한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하여 공교육의 미치지 못하는 나라도 참 많다.

그곳엘 가서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는 아름다운 마음도 참 곱다.

 

이 책에 찍힌 아이들의 표정은,

그 마음처럼 깨끗하게 보였다.

얼굴도 아름다웠고, 그래서 깨끗하지 않아도 순수함이 비쳤다.

 

    

  

불가촉 천민 아이와 노는 사진이 참 정겹다.

그 아이가 헤어질 때, 목메어 우는 이야기는 있는데, 사진이 없다.

다행이다. 그걸 찍고 있었다면, 영혼이 없는 사진이 되었을 건데 말이다.

 

수상인명 구조요원으로도 활동했다는 그는... 수영에 대해서 몸에 힘을 빼야 함을 강조한다.

사는 게 다 그런 거 같다.

목에도 힘을 빼야 하고... 뭐, 인격이 성숙할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처럼...

 

겸손한 마음... 그것은 경제적 부유함과 반비례 관계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동방의 고요한 나라가... 경제적으로 조금 부유하게 되자, 세상에서 가장 시끄런 민족으로 전락하는 걸 보면...

아이처럼 행복하기 위해서는... 부유함을 버리는 길뿐일지 모르겠다.

글쎄.... 그게 버려지는 것이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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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6-20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에도 힘을 빼야 하고... 뭐, 인격이 성숙할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처럼..."
"겸손한 마음... 그것은 경제적 부유함과 반비례 관계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 이 글에 동의합니다. 저, 자세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글샘 2012-06-20 23:31   좋아요 0 | URL
목에 힘주고 사셨어요? 그러니 어깨가 아팠지. ㅋ
순수한 아이들 얼굴 보는 걸로 참 행복했던 책이었습니다.
오랜만이어서 더 반갑네요. ^^

페크pek0501 2012-06-22 12:11   좋아요 0 | URL
저, 까르르~~ 웃고 갑니다. ㅋ
제가 목에 힘주고 살아서 그렇게 어깨가 아팠던 거군요.
이제 알았으니, 목에 힘 뺄게요. ㅋ

글샘 2012-06-22 17:05   좋아요 0 | URL
아셨죠? ㅎㅎ
그렇게 까르르 웃으시면, 어깨 아니라 모든 병이 나을 걸요? ^^
 
일침 一針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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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김영사에 욕 한 마디...

이런 책은 '한문 문장'에 적힌 '한자 한 글자'조차도 생명이다.

그 한문이 어떻게 편집이 되었기에, 글자가 들쭉날쭉 개판으로 편집이 되어있다.

내가 빌려본 책만 그렇게 인쇄되었을 리는 없고... 암튼 개판이다.(205,211,214-5,그후로도 계속...)

 

요즘 정민 선생의 책이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나온다.

조만간 내 태그엔 정민 선생만 짙은 글씨로 도드라지게 생겼다. ^^

 

아직 안 읽고 대기중인 책이 조선이 차 문화,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한밤중에 잠깨어, 삶을 바꾼 만남... 이러고 있으니 말이다.

든든하다.

식량 창고에 갓 배달된 식량들로 가득 채워놓은 느낌이랄까?

 

이 책은 주루룩 읽기엔 큰 의미가 없고,

신문 같은 데서 한 편씩 읽게 된다면 참 좋을 문장들이 많다.

이지누가 <관독일기>에서 옛 문장들을 더듬어 가면서 자신을 뉘우치고 있었다면,

이 책에서 정민 선생은 옛 문장에서 자신과 세상을 함께 회초리질 하고 있다.

 

대부분이 낯선 단어들이고,

그 원 시들도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문제는 이런 책을 읽어야 할 자들은... 독서가 뭔지 모를 거라는 데 있다.

 

마음을 일깨우는 말들이 많은데, 특히 전미개오(轉迷開悟) 이야기가 남는다.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보통 때의 기운이 들떴음을 알았다.

침묵을 지키고 나니 지난날의 언어가 조급했음을 알았다.

일을 줄이자 평소에 시간을 허비했음을 알았다.

문을 닫아걸고 나서 평일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

욕심을 줄인 뒤에 평소 병통이 많았던 줄을 알았다.

정을 쏟은 후에야 평상시 마음 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다.(35)

 

마음은 말이다.

고요히, 조용히, 한가로이, 외로이, 가난히, 애정하는 사이에 다가선단 말이다.

들뜨고 조급하고 허비하고 지나치게 사귀며 병통이 많고 각박한 인간임을 스스로 알게 한단다.

 

언어의 소음에 치여 하루가 떠내려간다.

머금는 것 없이 토해내기 바쁘다.

쉴 새없이 떠든다.

무책임한 언어가 난무한다.

우르르 몰려 다니며 희희덕 거리는 행태는 너무 가볍다.(61)

 

나 역시 다르지 않다.

 

고요에 익숙해지만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바쁨만 쫓다 보면 하루가 너무 짧다.

책을 읽으면 하루가 아깝게 여겨진다. (85)

 

내가 살 수 있는 건, '지금 오늘 하루'다. 선물 같은 하루...

 

우작경탄... 소가 새김질하듯 牛嚼 고래가 삼키듯 鯨呑

독서는 그렇게 차근차근 음미하며, 강렬하게 삼키듯 들이킬 필요가 있다는 말.

 

일을 처리하는 두 가지 요령.

 

시늉만 하고 절대 책임질 일은 하지 않는다. 문제는 키워서 해결해 준다.

 

후흑학... 에 나오는 판사이묘... 辦事二妙

거전보과라고 한다.

거전 鋸箭... 화살을 자르고 내과로 보내는 외과 의사, ㅋ

보과 補鍋 구멍난 솥의 구멍을 더 키워 때우는 땜쟁이. 그래야 인기가 있단다.

올해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 거전 보과... ㅎㅎ

 

좋은 말은 많은데, 편집의 오류로... 독서의 기분을 망쳤다. 아쉽다.

 

재미있는 우리말 두 개

살쩍(귀밑머리 털)이 먼저 희어진다.  

멱미레(짐승의 늘어진 턱 밑 살)여기서 멱살잡다...가 나온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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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6-29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

김영사 편집부의 000 편집장이라고 합니다.
정민 선생님의 <일침>에 대한 서평 감사 드립니다.
더불어 김영사에 대한 따끔한 비판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일침>의 경우 재판을 찍는 과정에서
데이터 처리에 오류가 발생했고
그 결과 인쇄상에 오류가 난 책들이 발간되었습니다.

현재는 그 책들이 서점에 나가는 것을 정지시킨 상황인데
유통업체의 실수로 서점에 나간 것 같습니다.

김영사로 연락을 하시면 바로 교환을 해 드리겠습니다.
연락처는 02 -3668 -3259번입니다.
 
애도예찬 - 문학에 나타난 그리움의 방식들 예찬 시리즈
왕은철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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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mourning.... 죽음이나 상실을 아파하고 슬퍼하는 일을 애도라고 한다.

 

개인적인 애도의 경험은 누구나 다를 것이다.

어린 시절 겪게 되는 가까운 존재의 상실은 '성공적인 애도'에 실패하여 평생 트라우마에 가까운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사회적인 애도도 있을 수 있다 .

재임중 욕도 많이 먹었지만, 급작스런 서거로 국민적인 애도를 받은 전 노 대통령의 경우,

아직도 애도가 진행중인 분일 수 있다.

2002년 6월13일 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여름, 아스팔트에 깔린 두 여중생의 넋에 대한 애도도 끊이지 않고,

일본군 성노예로 존재를 부정당한 여성들의 삶에 대한 애도도 진행형이다.

 

이 책은 2010년~11년까지 '사랑과 죽음, 그리고 애도'란 꼭지로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주로 서양 문학 작품을 소재로, 그 당시 일어났던 사건들과 관련지어 애도의 의미를 짚어보는 책이다.

그 사이에 천안함 사태(2010), 일본 3.11 쓰나미(2011)가 일어나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

 

프로이트와 데리다가 자주 등장하는데,

결론적으로 프로이트는 '죽은 사람'은 이미 간 거,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동네 어르신같은 이야길 한다.

반면 데리다는 '애도는 끝이 없고, 위로할 수 없고, 화해할 수 없는 것'으로 성공한 애도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둘 다 맞다.

 

죽음이나 상실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가버린 사람과, 남은 사람. 그 어느 하나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버린 사람에게는 종지부(마침표 .)가 찍힌 하나의 완료형 사건이 되겠지만,

산 사람에게는 그 사건은 하나의 느낌표(!)이자 물음표(?)일 수도 있고, 쉽게 잊히지 않고, 데리다의 말대로 끝없고 위로할 수 없고 화해할 수 없는 말줄임표, 말없음표, 말이음표(......)로 진행형인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앞둔 젊은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야, 처음하는 거니깐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마~ ㅋ' 이런 말을 한다.

'다음에 하면 잘 할 거니깐 ~ ㅋ' 이렇게... 말이 씨가 될라. ㅎㅎㅎ

그치만 모든 죽음은 <첫죽음>이다. 고인이나 남은 사람에게나 학습 효과가 있을 수 없다.

 

내 생각은 데리다 편이다.

쉽게 애도에 성공하는 죽음들도 많다. 가까운 사이라도 장례식장에서 애도가 끝나는 일도 많다.

예전이 3년상이 요즘 49재로 줄어든 것이 그 방증인데, 뭐 애도랄 것도 없는 돈놀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애도는 쉽게 극복되지 않는 애도, 즉, 성공하지 못하는 - 애도에 실패한 케이스들이다.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슬픔에는 끝이 없어야 하며 그것이 어쩌면 진정한 애도일지 모른다.(18)

 

그의 이야기 중에서도 첫꼭지인 '폭풍의 언덕'이 가장 인상적이다.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나보다 더 나야."...

아,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캐서린의 이 말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들먹이기엔 너무도 큰 마음이다.

한자어에 '지음'이란 말이 있다. 남의 마음 속에 들어앉은 듯, 사람을 읽을 수 있을 때 쓰는 말이다.

'막역'한 친구. 어떤 말을 해도 마음이 거슬리지 않는 친구. 바로 캐서린이 느끼는 히스클리프다.

그런 이들에게 애도에 성공... 운운함은 사치로 여겨지지 않을까?

 

철학은 산 사람의 존재를 파헤치는 동네다. 죽음의 세계를 종교나 정신분석학으로 미룬다.

그래서 철학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감당하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다.

문학으로 죽음과 애도를 설명하는 데 대한 작가의 변명이다.

 

죽음에 대하여 안티고네처럼 <대단히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애원이지만 지극한 슬픔에 논리나 이성이 있을 턱이 없다>는 편이 오히려 논리적이고 설득적이다.

 

몇 년 전, 국가가 국민한테 해 주는 게 뭐가 있냐?던 박성광이 나올 무렵,

4가지 없는 광고가 있었는데, 남편 죽고 10억인가 받았다고 편안해하던 아줌마의 보험 광고였다.

남편의 빈 자리에 아파하는 동안, 경제적 궁핍까지 겹친다면 더 큰 고통일 수 있으나,

아픔은 충분히 아파하는 것만이 살아남은 자의 몫일 수 있는 <삶과 사랑>의 편에서는 그 광고가 불편했다.

 

애도란 결국 <몸에 의한 몸을 위한 몸의 애도>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몸에 집착하는 존재다.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는데, 밥이 넘어가면 먹으면 된다. 그러나, 몸이 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이 애도다.

친구가 죽었는데 묻고와서 살아지면 살면 된다. 그러나, 밤마다 생각나서 술을 찾게 된다면, 그것이 애도다.

죽음 앞에서 일상으로 복귀해서 억지로 살아야 하면 그렇게 살면 된다. 그러나, 삶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계속 눈물이 나고 마음이 허방다리를 짚는 듯하여,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꿈속에서 계속 만나는 고통을 겪으며 울어야 한다면, 그것이 애도다.

밥을 못 먹고, 술에 의존하고, 우울증과 울음에 매몰되는 애도를 '애도 작업의 실패'라고 말하는 프로이트는 애도에 대해서는 아마추어다. 아니면 인간에 대한 애정따윈 비과학적인 소재라고 무시하는 냉혈한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그사람을 고통스럽게 애도하다가,

돌이되고 싶고 돌이 되어서도 그에 대한 애도를 계속하고 싶은,

살아남은 사람의 심리적 진실...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애도다.

 

성경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인물로 등장하는 건 '욥'이다.

자식의 죽음과 온몸을 둘러싼 질병, 그 존재 자체가 고통이다.

<욥기>가 제기하는 수많은 질문들은 명확하게 답변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물음표로 찍힌 채 그대로 두는 것이 불만스럽더라도 정직하고 현명한 것이라고 할 정도니 말 다 했다.

<욥기>를 통해, 침묵도 애도의 한 방식이며, 저항이나 절규, 절망도 애도의 한 방식일 수 있음을 보여주다.

 

인간의 삶은 죽음의 자리에서 증명된다고 한다.

"어쩌면 존재가 사라진 후에 다른 존재에 남긴 공동의 크기가 살다 갔다는 존재 증명의 전부"일지 모른다는 박완서의 말.

나란 존재를 다른 사람들은 얼마만한 자리에 갈무리해 둔 걸까?

그건 죽어 보면 안다. 그 존재를 가슴에 담아 두었던 것인지...

그 존재의 쓸모를 필요로 했던 것인지...

그래서 정승집 개가 죽으면 찾아가지만,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던가...

 

'나보다 더 나'인 존재를 잃었다면, 그 대상에 집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그런 자연스러움을 거부하고, 프로이트라는 사랑에 대한 아마추어의 이론에 둘러싸인 정신과 의사가,

"슬픔을 치료의 대상으로 삼고, 피상적이고 일률적인 처방을 되풀이하여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울프가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239)

 

구제역 걸린 가축들을 생매장하던 비극적 동영상을 잊을 수 없다.

홀로코스트란 것이 신에게 바치는 번제였다면,

구제역 홀로코스트는 악마에게 바치는 악마의 피였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잔인하고 불필요한 짓"이라고 한 무명의 여성이나,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고 했던 사르트르의 말은 꼭 인간을 대상으로 할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일본 소설 중에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은 <죽은 이가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누가 그에게 감사했는지>만을 조사한다. 긍정적인 것만을 기억함으로써 죽은이의 특수성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자세는 애도에 대해 깊이 생각한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애도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문제고,

논리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다.

그리고 마침표가 쉽게 찍히지 않는 것이,

아니 마침표를 쉽게 찍지 않으려 하는 것이 애도의 본질이다.

애도는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일지 모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 희미해져 가는 기억과의 싸움일지 모른다.(307)

 

삶은 행복할 때, 사랑하고 사랑받을 때, 존재로서의 가치가 있다.

노예로서 죽음만도 못한 삶을 살 때, 질병으로 삶의 하루하루를 저주할 때,

없어졌으면...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폭력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그 죽음 후엔 애도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할 따름이다.

 

공동체가 사라졌다.

공동체가 사라진 자리에, 공동체의 애도는 형식으로만 존재한다.

 

개인의 사회가 아직 건설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개인의 삶, 개인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받아야 하는 것인지 정립하지 못했다.

그래서 개인의 삶과 개인적 삶의 소중함을 마친 사람들에 대한 애도의 형식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

 

애도를 완성하려면,

사랑해야 한다.

뜨겁게 사랑하였던 사람만이 애도할 수 있고, 애도에 실패할 수 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런 말에 '애도'를 붙이는 것은 애도에 대한 모욕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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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7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17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댈러웨이 2012-06-17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담아 둘까 뱉을까 이 둘을 견주다가 후자를 택했는데 배포 좋게 한 번 웃고 말았으면 좋았을 일이었지 싶어요.
공력이 한참 부족한 티만 다 내고 말았습니다.

일단 인사를 드리는 게 예라고 생각되어 잠시 들렀습니다.
올려주시는 좋은 글들은 찬찬히 읽겠습니다.

글샘 2012-06-17 23:46   좋아요 0 | URL
ㅎㅎ 예라고 생각되어... 예의가 바르시군요. ^^
이 책에 댈러웨이 부인의 셉티머스도 등장해요~ ㅋ 한번 읽어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