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품절


침체의 늪에 빠져 고전 중인 작가든, 아직 시작하지 않은 작가든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비법'이다.-9쪽

글을 쓰기로 결심한 순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써야 하는 의무를 독자에게 진다는 점을 깨닫도록 하고-28쪽

작가를 한편으로는 버르장머리 없는 어린아이로,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받는 순교자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건달의 모습을 한 괴물로 바라보는 시각은 지난 세기가 물려준 유산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유산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전에는 작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훨씬 건전했다. 즉 작가는 보통 사람보다 마음이 더 여리고, 공감을 더 잘하고, 더 진지하고, 취미가 더욱 다양하고, 군중 심리에 덜 좌우된다는 생각이 주를 이루었다. -41쪽

책을 간절히 읽고 싶어하는 사람과 마지못해 읽을 책을 가진 사람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111쪽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 되라. ...... 천재의 재능이 마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천재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은 뭐든 활용한다. 천재에게 너무 깊숙이 가라앉아 되불러낼 수 없는 경험이란 없다. 천재는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상상력에 기대 거기에 딱 맞는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다. 무관심과 권태의 나락에 빠져드는 것을 거부한다면 삶의 모든 측면을 글의 소재로 되살려낼 수 있다. -131쪽

천재의 게으름은 단지 표면상의 침묵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챌 만큼 영특한 관찰자들은 이 낯설고도 고립된 시기를 '예술적 혼수 상태'라고 불러왔다. 분명히 뭔가가 작용하고 있긴 하지만 너무 깊숙이 가라앉아 있어 생각을 구체화할 준비를 갖추기 전까지는 활동의 조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천재에게 쏟아지는 괴팍하다느니 무례하다느니 하는 비난 뒤에는 대개 고독 속에, 한가로운 여가 속에, 오랜 침묵 속에 푹 잠기고 싶어하는 예술가의 절실한 욕구가 있다. 침묵의 기간이 인정받고 용인된다면 부작용이 생길 리 없다. 이따금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초탈의 시간을 갖는 것이 예술가의 특징이다. -17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셜록 홈즈 전집 5 (양장) - 셜록 홈즈의 모험 셜록 홈즈 시리즈 5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 / 황금가지 / 2002년 4월
장바구니담기


아내는 일찍 세상을 떴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엘리스를 남겨 주었소. 엘리스는 아기였을 때부터 단풍잎 같은 손을 들어 나에게 옳은 길을 가리켜주는 것 같았소. 이 세상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그 애가 했던 거요. 한 마디로 나는 새 출발을 했고 과거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소. 매카시가 내게 손을 뻗치기 전까지는 모든 게 다 좋았소. -154쪽

때는 9월 말이었다. 추분 무렵의 강풍이 유독 거세게 부는 날이었다. 온종일 바람이 울부짖으며 지나가고 비는 유리창을 두들겨댔다. 거대한 인공 도시 런던의 심장부에 있으면서도 잠시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우리에 갇힌 야생 동물처럼 문명의 창살 틈으로 인류를 향해 울부짖는 거대한 원초적 힘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이 다가오면서 폭풍우는 점점 거세졌고, 바람은 굴뚝 속에서 어린애처러머 울부짖고 흐느꼈다. 셜록 홈즈는 난로 한쪽에 우울하게 앉아서 사건 기록에 색인을 달고 있었고,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서 클라크 러셀의 멋진 해양 소설을 탐독했다. 밖에서 노호하는 강풍이 러셀 소설의 배경이 된 듯, 빗소리는 어느새 바닷가의 파도 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아내가 친정집에 잠깐 갔기 때문에 나는 며칠 동안 다시 베이커가의 하숙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159쪽

그[홈즈를 말함]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사소한 감정이긴 하지만 나는 정말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어. 이 사건은 이제 나의 문제가 되었네.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이 무뢰배들을 응징하는 일에서 손을 떼지 않겠어. 날 찾아와 도움을 청한 청년에게 고작 죽음을 선사하다니......"-187쪽

손님은 한 걸을 나서서 채찍을 휘두르며 말했다.
"난 네 놈이 누군지 안다. 이 악당 놈아! 네 얘기를 들은 적 있지. 참견쟁이 홈즈!"
내 친구는 빙그레 웃었다.
"간섭꾼 홈즈!"
홈즈는 더 활짝 웃었다.
"멋모르고 까부는 경찰 나부랭이 홈즈 녀석!"
홈즈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말씀을 아주 재미있게 하시는군요. 가실 때는 문을 꼭 닫아주십시오. 문틈으로 외풍이 들어오니까요."
......
로일롯 박사는 재빨리 다가와 부지깽이를 집어들더니 갈색으로 그을은 큼직한 손으로 단숨에 구부려놓았다.
"내 손에 걸려들지 않게 조심해라."
......
"정말 귀여운 양반이군."
홈즈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렇게 체격이 큰 편은 아니지만 저 양반이 좀더 있었으면 내 손아귀 힘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을 텐데."
그러면서 강철 부지깽이를 집어들고 끙하고 힘을 써서 다시 펴놓았다.-28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도의 노래 - 사라진 새 도도가 들려주는 진화와 멸종 이야기 김영사 모던&클래식
데이비드 쾀멘 지음, 이충호 옮김, 신현철 해제 / 김영사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걸작! 단순히 자연을 보호해서 멸종을 막자는 게 아니다. SLOSS 이슈와 논쟁의 의미를 독자에게 끈질기게 이해시키고(끔찍한 사례들에 지치지 않게 자주 독자를 웃겨주는 센스) 국립공원이나 자연보호구역에 생태계를 섬처럼 격리하는 것이 오히려 이들의 멸종을 앞당길 수 있음을 엄중히 경고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 - 개정증보판
김호준 지음 / 주류성 / 2013년 11월
장바구니담기


자유시사건은 고려공산당 창당 후 한 달 만에 발생한 독립운동사상 최악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1921년 6월 28일 자유시에서 이르쿠츠크파 고려군정의회가 러시아군의 지원을 받아 상해파 군대를 무장해체 시키는 과정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동족상잔의 참변이다. -121쪽

마을에서는 아무도 하느님을 믿지 않았고 그 어떤 종교의식도 없었다. 고려인 농민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토지문제이다. -147쪽

평등을 추구하는 소비에트시대라고 하지만... 내부적으로 러시아 쇼비니즘이 지배했던 소비에트정부는 부유한 백인 농민의 토지를 빼앗아 빈한한 황색인종에게 넘겨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농장집단화를 추진하면서 고려인 재산을 몰수하고, 국경을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고려인에 대한 추방정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고려인은 적군의 승리를 위해 기여했지만 여전히 미덥지 못한 존재였다. 고려인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데다가 국경지대에 집중 거주하고 있어 안보를 놓고 볼 때 소련당국은 고려인의 존재를 늘 경계했다.-150쪽

우리는 자연히 CIS 고려인들로 남게 될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내고 다른 민족으로부터 더 나은 점을 받아들이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한국을 떠나온 이후 백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잃어버렸던 말과 문화를 복구한다 하더라도 '새 조국'에서 얻은 말과 풍습을 상실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독립국가연합에서 사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가치이자 다른 민족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우리 고려인들의 능력인 것이다. 나는 고향에서 떨어져 나온 우리 동족들에게 한국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동족들을 잊지 않았으며 우리들과의 만남을 절실히 고대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정말이지 어머니는 영원히 기다리시는 분이 아닌가. -546쪽

고려인들은 소련을 '사회주의 조국'이라고 부르면서도 그 조국을 지키는 '대조국전쟁'에 나갈 권리를 갖지 못했다. 적성민족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군에 입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조국의 운명이 걸린 전쟁의 참호 속에 뛰어들지 못하게 된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 고려인들은 전쟁 초기부터 '소비에트 조국'을 구하기 위한 출전을 자원했다. 대학생과 중학 졸업생이 중심이 된 고려인 청년 수천 명이 전선으로 보내달라는 청원서를 들고 군사위원부로 앞다투어 달려갔다.-268쪽

1926년생 청소년에 대한 노동군 동원은 음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들의 소집 영장에는 적군에 복무할 고려인 젊은이들을 징병한다고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고려인들은 이제 우리도 다른 민족과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되었다고 반기면서 영장을 받아들였다. 콜호스마다 성찬 모임 등 다양한 송별행사가 벌어졌다. 고려인 청소년들은 다른 민족 징병자들과 나란히 머리를 깍았고, 소독실을 거쳐 샤워실로 향했다. 이들은 자신이 전선으로 파견될 것이라고 믿었으며 그걸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송 도중에도 이들에게는 큰 군용식당에서 식사가 제공되고 군용 건빵과 통조림 등이 배급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속고 있었다. 그들이 간 곳은 전선이 아니라 후방의 강제노동수용소였다. -270쪽

강제이주를 당하고 멸시와 탄압을 받는 서러운 민족이 소련에 대한 조국애와 노동열정의 기적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쟁으로 나라가 어려운 상태에 빠졌을 때 고려인들은 온갖 모욕을 참고 소련을 위해 일을 했다. 그러한 태도가 가능했던 것은 대부분의 고려인은 자신들에게 행해진 소련의 정책들이 오해와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라고 우즈베키스탄의 한 발레리 교수는 풀이했다. 고려인들은 여전히 스탈린은 순수한 사람이라고 믿었고, 자신들은 세계에서 가장 공평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298쪽

고려인들은 요직에 진출했어도 중요한 의사 결정권을 행사하는 지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러시아인과 토착민 사이의 중간 계층에 머물렀다. 러시아인이 지배하는 사회체제가 유지되고 운영되도록 기여하면서 자신들의 지위를 보장받은 것이다. 고려인들이 이러한 신분 상승을 위해 치른 대가는 민족정체성 상실과 민족어의 상실이었다. -32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 - 개정증보판
김호준 지음 / 주류성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37년 18만 고려인 강제이주! 그 맥락과 실상을 정확히 알고 다시는 그런 일 없게 하는 것이 후대의 소명. 그 일이 서(히틀러)와 동(일제)으로 포위된 스탈린정권이 짜낸 쇼비-인종주의적 국가작전의 일환으로 당시 60개 소수민족 300여만 명이 같은 재앙을 겪었음을 알게 된 것 등 수확이 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