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 말기 소주의 이러한 문화적 영향력이 정치의 장에서 발휘된 것이 '복사(復社)'다. 당시 과거 시험에 필수적 문장이었던 팔고문의 선평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문인 결사가 강남의 여러 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는데 그 중에서도 소주 태창 사람인 장부를 주동자로 한 복사는 조직을 확대해 가면서 점차 문학 결사에서 정치적 결사로 성격이 바뀌었다. (22)
남방 출신 명인들의 예술적 성취가 탁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그들의 명성이 뭇사람의 입에 떠들썩하게 오르내리게 된 과정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그들의 작품 가치나 명성이 높아진 데에는 예술 시장에서의 유통 문제가 개입했다. 그리고 그들을 대표 선수로 하는 강남의 이른바 '문인 취미'가 보급된 이면에는 남송 시대 이후 강남에서 형성된 '목록' 내지 '매뉴얼' 문화 현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38)
주례라는 인물의 존재로 상징되듯이 건양에서 출판된 역사서와 소설의 상호 관계가 밀접하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로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명대 후반기 역사소설의 제목에는 '안감'이라는 이름이 붙여 있는 경우가 많다. ... 곧 허구적 소설에 일정한 테두리를 설정하는 역할을 역사서가 담당하고, 소설이 역사서의 문자를 빌려다 썼다는 사실이 텍스트의 상호 비교를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 그들 대부분의 작품에 강감이 활용된 이유는 개개의 이야깃거리를 연결하는 시간 축을 제공해 주거니와 문장 자체를 그대로 빌려올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로 황당무계한 이야기와 역사서의 기술이 상호 결합하는 기묘한 혼합체가 생겨났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작품으로서 완성도가 지극히 낮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는 문학작품으로서의 측면이며, 역사의 '통속화'와 일반 민중에게 널리 보급한다는 역할은 충분히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125-6)
왜구의 등장은 강남과 복건에서는 분명히 재앙이었다. 그러나 왜구를 통한 경험이 심각했던 만큼이나 남인에게 준 영향은 지대했다. 또한 그것은 과거를 통해 등용된 엘리트와는 전혀 다른 인간상이 나타나는 계기도 되었다. 척계광이 북방으로 갔을 때 왜구에 대한 경험을 밑천 삼아 그를 따라 북행한 남인은 앞서 언급한 몇몇 인물들 외에도 여러 명이 있었다.
물론 남왜에게 통용되었던 전략이 그대로 북로에게도 먹혔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왜구와 북변의 문제를 함께 비교해서 생각하게 됨으로써 남인은 그때까지 지니지 못한 새로운 시야를 획득한다. 실제로 이후에 몽골을 대신하여 새로운 북로인 만주인이 등장하자 과거 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세대와 또한 여전히 발호하는 해구의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153)
어째서 소흥인이 북경에 이토록 많이 진출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 설이 있지만 이는 계기에 대한 설명은 되지만 그러한 현상이 왜 지속되었는가를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아울러 북경 지역의 문화를 생각하는 데도 이들 소홍인의 존재를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 노신의 고향 소흥은 소박하지만 명청사의 일정 부분을 지탱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194)
주로 문인에 의해 만들어진 곤곡의 주된 향수층 또한 문인들이었다. 상연되었을 뿐만 아니라 읽는 희곡으로 곤곡은 한 시대를 풍미한다. 문인의 심심풀이 소일거리가 독자적 가치를 지니고 평론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서화의 제작과 감상의 세계에서 일어난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 소주의 문화 시장 제패는 여기서도 일어났다. 그러나 이것은 읽는 희곡으로서의 현상으로서 출판의 위력이 힘입은 바가 크다. (196)
고염무는 절약본이나 유서와 같은 '속본'과 함께 선본 역시 상당히 용이하게 입수할 수 있는 시대의 전환점에 태어나 생을 누렸다. 그가 이룬 업적은 초인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지만 그러한 업적을 이루는 데에는 이러한 조건의 정비가 전제가 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3)
그런 한편 한자의 원류에 대한 괴상한 해설이 묘하게 생동감 넘치게 다가온다. 진지한 사대부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종류의 것이지만 그 기묘함으로 인해 도리어 선교사들에게는 충격을 주어 그들이 품었던 상형문자에 대한 환상을 한층 강화하는 작용을 했다. ...... 우리는 강남 문화의 첨단 부분, 위의 맑은 부분에만 눈길을 빼앗기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 아래에 아와 속의 회로를 잇는 문화 영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5)
동기창이 등장하기 위한 전제로 강남 미술 시장의 성숙이라는 문제가 있다. 복제품이 많이 생산되고 목록 문화의 정착에 의해 미술품의 향수층이 확대된 것, 신안인이나 항원변과 같이 종래의 정의에서는 '상감가'로서는 실력인 무리가 큰 역할을 담당한 것, 그리고 동기창 자신이 그러한 정황을 잘 파악하여 신안인 오정과 산인 진계유의 힘을 빌리면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확립한 것을 지적하였다. 아(雅) 문화의 정책에는 이렇듯 상업주의가 크게 작용하였다. (207)
또한 강남 언어의 다양성 문제도 문화를 생각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 책에서 다룬 복건과 신안은 어느 곳이나 오늘날의 '비관화권'에 속한다. 소주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지역 사람들이 근세 문화의 유통에 큰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은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관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방언 지구라는 사실이 역으로 문화의 교통에 대한 문제의식을 예리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관화에 의한 공통 문화의 층과 방언에 의한 지역 문화의 층이 어떻게 결합하는가는 교육, 독서, 연극 등의 문제와 서로 얽히는데 그러한 측면에서도 문제 의식이 점차 제기되고 있다. (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