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런던 신문 편집자들의 그런 예상은 옳은 것이었다. 당시[빅토리아 시대를 말함] 영국의 기성 체제는 지금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계급차별적 제국주의적이고, 허장성세가 심하고, 보수반동적이고, 인종차별적이며, 근심 걱정 없는 세력이었다고 조롱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장점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엄청나게 박식했고 자신감에 넘쳤다. 그들은 이 세상 모든 사물은 알아낼 수가 있고, 그런 만큼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그런 철학에 바탕을 둔 깊은 학문에서는 엄청난 지혜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여기서 이런 점을 지적해두는 것이 좋으리라. 이처럼 뛰어나고, 박식하고, 교양 있고, 호기심 많고, 현명하고, 또 시간 여유가 많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 책에서 자세히 다룬 저 엄청난 정신적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이다. (17)
왜냐하면 영어가 발달해온 방식, 18세기에 영국 국내에서 영어를 인식해온 방식은 다른 나라들에서 자국의 어휘를 검토하여 사전에 기재하는 방식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59) ...... 왜냐하면 엉어는 고정시킬 수 없는 언어이고 또 이런저런 용법을 일방적으로 부과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변할 뿐 아니라,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영어는 또한 영원히 진화한다. ... 그 때문에 영어를 기록하고 분류한 사전들은 결코 '규범적prescriptive'이 될 수가 없었고, 전적으로 '기술적descriptive'이 되어야 했다. 그러니까 언어의 당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실상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62)
오늘날의 엄정한 눈으로 살펴보면 존슨 사전에는 기이한 설명이나 예문들이 눈에 많이 뛴다. 그가 내린 일부 안어의 정의는 매우 정치적이었다. 가령 귀리의 정의는 이렇게 되어 있다. "귀리: 잉글랜드에서는 일반적으로 말에게 주는 곡식이나 스코틀랜드에서는 사람들이 먹는다." 어떤 정의는 중상모략에 가까웠다. "물품세: 물품에 붙이는 가증스러운 세금... 물품세를 징수하는 사람들에 의해 고용된 한심한 자들이 정한다." 어떤 정의는 겸손하다 못해 자기 모멸적이기도 하다. "사전편찬자: 사전을 집필하는 사람. 단어의 기원을 추적하고 그 뜻을 자세히 분류하는, 그리 해롭지 않으나 따분한 일을 하는 사람." (66)
왜냐하면 그는[제임스 머리를 말함] 자신의 일에서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또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절대적인 완벽을 추구하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전 제작에 들어가기에 앞서 스스로 이런 맹세를 했다. '나는 결코 편의 위주의 작업을 용납하지 않겠다. 나는 결코 지름길로 달려가지 않겠다. 해결되지 않은 수수께끼가 있다면 결코 수수께끼라고 해서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 신비한 것일지라도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설명하겠다.' (148)
머리는 평생 동안 이런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시간이 빨리 바닥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간은 나의 편이다. 역사의 어느 한 순간, 언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한다. 그럴 때 그 언어를 사로잡으면 영원히 포착할 수 있다." (199)
피체드워드 홀의 스토리가 분노, 쓰라림, 강박적 의무감에 대한 이야기라면, W.C.마이너의 스토리는 위험한 광기, 피할 수 없는 슬픔, 궁극적 구원에 대해 말한다. 어째서 구원일까? 그의 대사전 자원 봉사 작업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치료제가 되었고, 온전하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마이너의 정신을 지켜주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두 사람은 미국인이고 학식을 갖추었고 동양과 관계가 있으며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아주 다른 방식으로 사전에 기여하고 또 그런 작업을 통해 자신의 삶을 향상시킨 방식은 우리의 흥미를 더욱 유발시킨다. (280)
우리는 이런 무수한 자원봉사의 사례를 알고 있지만,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상도 거의 없는 일에 그토록 많은 시간을 바쳐 일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이것은 사전이라는 엄청나게 민주적인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정말 믿기 어려운 미스터리다. 몇백 명씩 되는 사람들이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동기로, 또 말하거나 말하지 않은 이유로, 저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엄청나게 복잡한 언어를 기술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 그렇게 하여 두 자매의 이름은 완성된 대사전의 1권 <서문>의 각주에 8포인트 클래런던 활자로 남게 되었다. 그들이 얻은 보상은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톰슨 자매와 그 외에 사전의 완간을 위해 헌신적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 이상의 다른 보상은 원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다. (301)
OED 직원이 사전 편찬이라는 괴팍한 분야를 초월하여 유명 인사가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 특별한 젊은 편집 조수, 줄리언 반스는 곧 '무해하지만 따분한' 사전 편찬에서 벗어나 유명한 수필가이자 소설가가 되었다.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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